1. 들어가며
양들의 침묵을 20번도 넘게 본 열렬한 팬으로서 영화고수님들의 다양하고 깊이있는 해석을 구하던중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리뷰어들이 "최고의 심리스릴러다" ,"내 인생영화다" 이런 극찬 일색인데 반해
정작 핵심을 놓치고 지나친 비약과 억지스런 상징해석을 남발해 영화를 더 미궁속으로 빠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리뷰어들이 이 영화가 긴박한 심리스릴러라는 측면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에만 관심을 가지는데
제가 느끼기에 수박의 겉면만 열심히 핥고 참 맛있는 수박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애호가 분들이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핵심 포인트'에 대해 부족하지만 저의 해석을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영화속의 캄캄한 미궁에서 헤메고 계신 분들에게 야간투시경 역할을 맡아 보겠습니다.
2. 주인공 스탈링은 왜 FBI 인가?
그녀는 FBI 훈련생입니다.
풋내기 훈련생으로 그녀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아직 한 사람 몫을 하기 부족한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 또한 많은 존재라고 할 수 있죠.
FBI는 남자들이 대부분인 거친 직장입니다.
스탈링은 강한남자들 틈에 껴서 살아남아야 하는 연약한 여자입니다.
감독은 영화 내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냉소당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또한 스탈링은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추파를 던지는 칠튼박사>
여자라는 이유로 성적인 희롱을 당하고
<수감자 미그스의 정액을 맞는 스탈링>
성폭력수준까지 발전합니다.
그녀는 외부적,직업적으로 상당한 시련을 겪고 있는 셈이죠.
또한 그녀는어려서 아버지가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상처 많은 여자이기도 합니다.
정리해보면
스탈링은 내면적으로 불우한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의 극복이라는 장애와
외부적으로 살인마 버팔로 빌의 체포라는 2가지 당면 과제를 가진 FBI훈련생입니다.
3. 한니발 렉터는 왜 정신과 의사인가?
한니발 렉터는 영화 내내 스탈링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어두운 과거를 들춥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니발 렉터와 스탈링의 첫대면에서 아주 흥미진진한 상징물이 나옵니다.
저도 10번 이상 영화를 보고서야 이 장면을 어렴풋이 이해했습니다.
한니발 렉터는 첫번째 만남에서 자신의 환자였던 '헤스터 모펫' 이란 사람을 찾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단서는 'your self' 라는 창고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처음 이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언어유희 정도로 넘겼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your self 는 창고의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너 자신을 상징합니다
즉, 니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답을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너의 내면을 탐구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해석의 비약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실텐데
아랫쪽에 있는 상징의 증거를 따라가 봅시다.
창고 안쪽은 어둡고 컴컴한 스탈링의 내면을 상징합니다.
어린시절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친척집에 맡겨져야했던 불우한 기억과 트라우마가 내재된 공포스러운 공간이죠.
이 장면은 창고로 들어가다가 생채기가 나는 장면인데 상징적으로 아주아주 흥미롭습니다.
트라우마 투성이인 자신의 내면을 탐사한다는것은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과정이니까요.
스탈링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수수께끼입니다
정리하자면
한니발 렉터는 외부적으로 범죄자 체포를 자문하는 역할을 하지만
사실 그는 영화 내내 그녀의 개인 상담을 맡고 있으며
그녀의 내면을 치유하고 트라우마와 싸우게 하는 멘토 역할을 해줍니다.
렉터의 직업이 정신과의사인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4. 버팔로 빌은 왜 살인마가 되었나? 그리고 왜 사람 가죽을 벗기는가?
버팔로 빌은 변태적인 살인마입니다.
버팔로 빌은 왜 여자 가죽을 벗겨 변신을 시도할까요?
렉터박사는 버팔로 빌에 대해 설명하면서 묘한 이야기를 합니다.
렉터- "빌리는 원래 성전환증이 아니었어.
폭력과 연관된 불우한 어린시절을 상상해보게
빌리는 타고난 범죄자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양이야"
버팔로 빌도 유년시절의 학대가 범죄성 발현의 단초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버팔로 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버팔로 빌이 태어날때부터 살인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회가...즉 어쩌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렉터 - "빌리는 자신의정체성을 거부하고성전환을 꿈꾸지만 더 끔찍하고 무서운병은 다른데있어"
렉터는 또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깁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버팔로 빌은 사회로부터 차별당하고 천대받아서 만들어진 괴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보다 약자인 여자만 괴롭힙니다.
상원의원의 딸을 납치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납치된 상원의원의 딸은 자신보다 더 약자인
강아지를 우물속으로 납치합니다.
즉,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약한 약자를 괴롭히며 악순환됩니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병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5. 양들의 침묵...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다른 리뷰어의 글에서 '양들'을 성서의 양으로 해석하여 스탈링을 범죄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메시아로 이야기하는 리뷰를
읽었습니다. 너무 비약이 심해서 개인적으로 좀 납득하기 어렵더군요.
아랫쪽은 호텔의 철창에서 렉터가 스탈링의 과거를 묻는 씬입니다.
스탈링은 몬타나 목장에서 달아나며 어린 양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우리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양들은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양 한마리라도 구하기 위해 양을 들고 뛰지만 곧 보안관에게 붙들린다고 말합니다.
이때 렉터는 "아직 꿈속에서 양의 울부짖음이 들리나?" 라고 그녀에게 묻습니다.
이 장면의 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스탈링의 내면적 측면에서 보면
어린시절 양을 구해주지 못한 기억은 현재 그녀를 속박하는 내면의 장애가 됩니다.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가엾은 양들을 그녀 자신과 동일시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날 두고 온 양에게 측은함과 미안함이 그녀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스탈링의 외부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양이 상징하는 것은 버팔로 빌에게 붙잡혀 비명만 지르고 오도가도 못하는 가엾은 상원의원의 딸을 상징합니다.
즉, 그녀 내부에서는 양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괴롭히고 있고
외부에서는 납치된 희생자가 비명을 지르며 그녀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셈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끊임없이 양들이 비명을 지르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6. 도입부의 극기훈련장면과 마지막 미궁에서의 총격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처, 고통, 통증.. 이것들을 사랑하라>
앞에서 정리했던것들을 돌이켜볼때 첫장면이 상징하는바는 명확합니다
앞으로 훈련생 스탈링에게 수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날 것이다. 외부적 장애든 내면적 장애든...
그런 시련의 극복을 통해서 주인공은 좀 더 완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미궁씬.
your self 창고가 스탈링의 내면적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었다면
이 미궁은 외부적 장애(범인)이 숨어있는 무시무시한 공간입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궁 추격씬.
범인은 바로 그녀 곁에 있습니다.
이 총격장면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감독은 범인을 카메라 각도상 1인칭 시점으로 잡고 있습니다.
감독의 의도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버팔로 빌이라는 살인마는 사회가 만든 괴물이란 점을 강조하는것 같습니다.
즉, 살인자는 다름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 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면 비약일까요?
정리해보면
스탈링은 렉터의 조언을 통해 버팔로 빌의 미궁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범인을 사살합니다.
이것을 통해 그녀는 외부적인 장애(범인검거)와 내면적 트라우마(어두컴컴하고 불우했던 유년시절)를
동시에 극적으로 해결하게 되는 기막힌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훈련병에서 정식 요원으로 성장한 스탈링.
그녀는 렉터의 치유를 통해 정신적으로도 누에고치에서 한마리 아름다운 나비로 성장하게됩니다.
7. 마지막 전화 장면
"양들이 비명을 멈췄나?"
이 질문은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스탈링의 내면적 성숙과 외부적 성장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던 멘토인 렉터가 애정을 듬뿍 담아 던지는 질문이니까요.
이제 과거의 상처는 좀 치유되었니?
맡았던 임무에서 성공적으로 희생자를 구했니?
이런정도 의미 아니었을까요
어떤 리뷰어는 호텔 철창에서 손가락을 스치는 이 장면을 '정신적 섹스' 또는 '손가락으로 나눈 정사'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고 있던데 개인적으로 렉터의 캐릭터를 평가하자면
연인으로서의 사랑보다 딸이 훌륭하게 성장했으면 하는 아버지의 애정을 가진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스탈링이 끔찍히 따랐던 아버지를 어린시절 사고로 잃었다는 점이 좋은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8. 결론...감독이 말하고자 하는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간단히 정리하면 '치유와 성장' 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탈링이라는 여자 FBI훈련병이 렉터라는 정신과의사를 통해 어린시절의 상처를 치유하고 납치범을 검거하여
정식 FBI요원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정도 아닐까요
스탈링의 내면을 상징하는 your self 창고에 가려져 있던 유리병입니다.
스탈링의 내면에는 아주 끔찍하고 흉물스러운게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머리는 헤스터 모펫이라는 렉터의 과거 환자였습니다.
헤스터 모펫을 아나그램화해서 스펠링을 재조합하면
Hester Mofet -> the rest of me(나의 남은 부분) 로 해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흉물스런 머리가 스탈링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스탈링과 버팔로 빌은 결코 다른 인간이 아니다 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들은 어려서부터 소외받고 학대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탈링은 렉터라는 관심과 애정을 주는 멘토를 만나서 훌륭하게 성장했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받은 버팔로 빌은 흉물스러운 살인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감독은
"버팔로 빌을 그렇게 만든 것은 사회..즉, 바로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 때문이야"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소외된 가족, 친구, 이웃에게 관심을 좀더 가져봐야겠습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