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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의 결혼 막은 쪽집게 예언 스님



등록 : 2012.04.04 20:48

수정 : 2012.04.05 11:45

탄허 스님

탄생 99돌 맞아 ‘탄허록’ 출간
‘족집게 예언’ 탄허 스님 “고통 지나면 남북통일 서광”
동서고금 꿰뚫는 법문 담겨 40~60년전 한국발전 점쳐
현실정치에도 매서운 잣대 “정치가 손에 흥망성쇠 달

1950~70년대에 한국이 전쟁의 참화를 딛고 세계의 새로운 주인공이 될 것이며,
독재의 터널을 지나 민중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누군가 말했다면?

그때까지는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에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까지 이루고,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에 한국인이 지명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랬기에

‘산승의 헛소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이가 오대산의 탄허 스님(1913~83·사진)이었다.

그의 탄생 100돌을 10개월가량 앞두고,

법문의 핵심만을 담은 <탄허록>(휴 펴냄)이 출간됐다.

이 책엔 세간의 궁금증을 유발한 예언뿐 아니라

정치, 철학, 생사, 종교에 대해서도 동서와 고금을 꿰뚫는 지혜의 요체가 담겨 있다.

우선 관심을 불러오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그의 예언이다.

“지구의 주축 부분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인류역사의 시작과 끝이 이뤄질 것이다.

5천년 동안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불행한 역사는 머지않아 종결될 것이다. 새 시대가 오기 전엔 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고통이 지나면 남북통일의 서광이 보이고,

생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도래한다.”

일제 식민과 민족끼리 살육하는

전쟁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예언이다.

언론인 김중배는 탄허에 대해

“비록 몸은 산간에 있으나 눈은 우주의 운행을 뚫어보고자 하며,

부정적이고 피해망상이라 할 수 있었던

우리 역사의식에 새로운 긍정,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었다”고 평했다.

한반도와 달리 일본에 대한 그의 예언은 가혹하다.

백범 김구를 도와 독립운동을 했던 부친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는 “지난 500년 동안 무려 49차례나 우리나라를 침략한

그 죄악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일본 침몰설’을 제기한다.

탄허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정치지도자들에게

‘우리의 정신 철학을 굳건히 하지 않고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정신문화원 설립과 남북화합 방안을 건의하는가 하면

대전 국립묘지의 터를 잡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산사의 노승의 말로 보긴 어려운 매서운 잣대를 현실 정치에 들이댔다.

그는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면서도

“무엇보다 정치가의 역할이 막중하고,

그들의 손에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사람이 아무리 밝다 해도 만민의 총명을 모으는 것보다 밝지는 못하다”며

독단을 경계했다.

그는 노나라 정승이 공자에게 ‘우리나라에 먹을 게 없다’고 걱정하자 공자가

‘적은 것은 걱정하지 말고

먼저 공평하게 분배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고 한 예화를 들며,

“탐심이 많은 지도자는 권력을 통해 제 욕심만을 채우므로 백성들이 곤고해진다”고 경고했다.

탄허는 “한 사람만 소득이 높아서는 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춥고 배고픈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만약 한 사람이 100만명 먹을 것을 지니고 있다면

이것은 정치 부재의 사회임에 틀림없다”고 꼬집었다.

탄허는 또 노나라 정승이 ‘우리나라엔 도둑이 많아서 정치를 못하겠다’고 하자,

공자가 ‘당신이 욕심을 안 내면 백성은 상금을 주고 도둑질하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최고의 지도자가 소인일 때는 그에 따라

10퍼센트의 극악질(아주 악질형) 관리가 등용되어,

10퍼센트의 극선질(아주 선한 부류)은 모두 암혈에 숨을 수밖에 없어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치가들에게 젊은이들의 말을 경청하라고 권한 것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탄허는 정치가에게

“돈벌이하는 기업가의 건의나 주장보다는 밤새워 고민하고 국가의 미래를 주시하는 학자,

철학자 그리고 종교가의 말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하며 이렇게 썼다.

“정치만을 위한 정치는 백해무익이다.

진실로 인간을 위한 정치일 때만 그 기강이 바로 세워질 수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화엄학연구소 제공

전문은 휴심정(http://well.hani.co.kr/90102)


탄허 스님의 예지력

개미떼죽음에 ‘난리’ 예상…베트남전 미국 패배도 내다봐

1949년 어느날 탄허는 개미 떼가 자기들끼리 싸움을 해서

오대산 중대 법당과 뜰에 수백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를 본 뒤 역학 원리로 난이 일어날 것을 알고

상좌들을 경남 양산 영축산 고지에 있는 백련암으로 피신시켰다.

또 월정사의 한 암자에서 <신화엄경합론>을 번역하고 있던

그는 1968년 가을 장서와 번역 원고들을 모두 강원도 삼척 영은사로 옮겨두었다.

그러자 울진·삼척에 북한 무장간첩 120여명이 침투했다.

월정사에 군단사령부가 세워져 소탕작전을 하면서 암자는 폐허가 되었다.

재가 될 뻔한 ‘필생의 원고’를 미리 구해낸 것이다.

탄허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패배도 정확히 예언했다.

당시는 미국을 도와 국군이 파병돼 남한엔 ‘미국의 승리와 월맹 타도’

분위기가 고조되던 때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숭산 스님이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 하나면 월남은 꼼짝 못할 것”이라고 하자,

탄허는 “역학의 원리를 볼 때 월남은 남쪽으로 화(火)인데

미국은 태방으로 금(金)이어서 금이 불에 들어가면 녹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우담 화엄학연구소장은 출가승으로서

탄허 스님을 모실 당시 그의 남다른 예지력을 자주 지켜봤다.

1965년 겨울, 강원도 횡성에서 버스를 타고 진부로 가던 중이었다.

운전기사 뒤에 타고 있던 스님이 갑자기 내리자고 해서 황급히 내렸다.

날도 추운데 왜 그러느냐고 불평을 했더니

“운전기사의 미간을 보니 곧 죽을 상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20분쯤 가다 보니 앞서 간 버스가 전복되어 있었다.

서우담이 “왜 운전기사에게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져물었다.

하지만 탄허의 대답은 “몸 성히 운전 잘하고 있는 사람한테

‘당신 곧 죽을 것이니 운전하지 말고 한겨울 고갯길에서 차에서 내리라’고 하면

미친 놈이라고나 하지 내 말을 듣겠느냐”는 것이었다.

1979년 늦은 봄 고려대에서 봉직하고 있던 한 여교수가

서울 안암동 대원암으로 스님을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박정희 대통령과 혼담이 오가고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탄허 스님은 “결혼 좋지,

그러나 서산에 지는 해는 부상(扶桑·해가 뜨는 곳)에 잡아맬 수 있을 때 좋은 것이지!”라고

답했다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이 예언 때문인지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조현 기자


탄허 스님은 현자들의 큰 스승
원고 6만장 분량 ‘화엄경’ 첫 번역

탄허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이미 동양사상의 한 경지를 이룬 상태에서

조계종 초대 종정인 한암 스님과 20여통의 서신을 주고받은 끝에

21살에 강원도 오대산에 출가했다.

그는 23살 때 이미 승려들에게 불경을 강의하기 시작했고,

26살 때 훗날 조계종 종정이 된 고암 스님과 탄옹 스님 등의

요청으로 불교의 정수인 <화엄경> 강의를 개설했다.

42살때엔 한암에 이어 월정사 조실로 추대돼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탄허는 한자만 100만자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고,

유불선에 통달하지 않고선 해석이 불가능한 <화엄경> 80권을 붓다 이래 최초로

자국어로 번역해낸 인물이다.

10여년간 매일 원고지를 100장씩 쓰는 초인적인 작업을 거쳐

원고지 62500장 분량으로 펴낸 <신화엄경합론>은

원효·의상 이래 최대 불사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불교를 뛰어넘는 선각자이자 경세가로 ‘현자들의 스승’ 구실을 했다.

탄허보다 10여년 연상인 함석헌(1901~89) 선생이 그를 자주 찾아 동양학을 물었고,

국문학자 양주동(1903~77) 박사는 탄허에게 <장자> 강의를 들은 뒤

“장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도 탄허만큼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

혜거 스님은 1960년대 초 여름 영은사에서 49재를 모실 때

한밤중에 큰 바람이 불어 문짝이 흔들리고 모든 호롱불이 일시에 꺼져

모든 대중이 우왕좌왕할 때

탄허 스님만은 <금강경>을 마지막 구절까지 독송하며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탄허 스님은 밥 짓고 일하느라 공부할 수 없는

공양주와 부목까지 함께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서

아침 공양 지을 때, 점심 공양까지 한꺼번에 밥을 짓도록 해

3년간 찬밥으로 점심 공양을 때웠을 정도로

공부하려는 이들을 돕는 데 남달랐다”고 회고했다.

조현 기자

http:/예수에게 부인이 있었음을 제시하는 하버드 학자의 발견과학과 사회/ 과학

2012/09/1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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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게 부인이 있었음을 제시하는 하버드 학자의 발견

Published September 18, 2012, Associated Press, FoxNews.com

BOSTON – 지난 목요일 한 하버드 대학 교수가 4세기 파피루스 조각 내용을 공개했다. 예수가 부인이 있었음을 명확히 언급하는 유일한 고대 텍스트라고 그녀는 말했다.

파피루스 조각: 전면. (Credit: © Karen L. King 2012)

카렌 킹(Karen King)은 기독교사(~史) 전문가이다. 그녀는 파피루스 조각의 텍스트가 예수의 대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내용 중에 예수가 "내 부인"이라고 언급하고 또한 마리아(Mary)라고 밝히고 있다고 한다. 킹(King) 교수는 이 콥트 성경(스크립트) 단편이 복음서 사본이고 아마도 2세기 그리스어로 쓰인 것이라고 말한다.

* 우리나라 성경에는 거의 마리아(막달라 출신 마리아)로 적는다. 실제로 성서에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마리아'가 나온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녀로부터 창녀까지 다양한 논란이 있지만, 최근에는 상당한 인텔리 여성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킹(King)은 로마에서 열린 콥트 전문가 컨퍼런스에서 작은 파피루스 조각의 번역을 돕고 내용을 밝혔다. 그녀는 파피루스 조각이 예수가 결혼했음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가족과 결혼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 세로가 각각 1.5인치 x 3 인치(3.8센티미터 x 7.6센티미터)인 이 조각은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결혼했다고 믿었던 최초의 증거를 제공한다고 킹(King)은 말했다. 단어들은 고대 이집트 기독교도들의 언어로 쓰였는데, 번역하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했다, 내 부인,"이라는 내용이라고 킹(King)은 말했다.

킹(King)에 따르면, 대화 내용 중에 사도들이 마리아가 (사도로) 합당한 지를 의논하고 있고, 예수는 "그녀는 내 사도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한다.

기독교 전통은 뒷받침할 믿을만한 역사적 증거는 없지만 오랫동안 예수가 미혼이라 여겨왔다고 킹(King)은 말한다. 그 모든 의문은 성생활과 결혼에 관한 격렬한 논쟁의 일부로 나타난 것이라고 새로운 복음서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초기부터 기독교인들은 결혼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예수 사후 100년이 지나자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예수의 결혼 상태(여부)에 호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킹(King)은 로마 라싸피엔자(La Sapienza) 대학과 폰티피칼 라테란(Pontifical Lateran) 대학 아우구스티니아눔 연구소에서 6일간 열린 컨퍼런스에 문서를 제출했다. 교황청 신문과 라디오는 보통 학회 내용을 자주 다루지만, 지난 목요일 교황청 미디어 내용 중에는 킹(King)의 발견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그녀는 논문은 전 세계 300 학계가 모인 컨퍼런스에 전달된 60편의 논문 중의 한 편이었다.

이 파피루스 조각은 익명의 개인 수집가 소유로, 그는 킹(King) 교수에게 번역과 분석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발견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러나 건조한 기후가 고대의 문서를 지켜냈고, 고대 콥트어로 성경이 쓰여진 것이라면, 이집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킹(King)은 말했다.

명확치 않은 문서의 출처 때문에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켄터키 주(州) 윌모어(Wilmore)소재 애즈버리(Asbury) 신학대 교수이자 작가인 성서학자 벤 위더링턴 3세(Ben Witherington III)는 이 문서가 2, 3, 내지 4 세기 그노시스 텍스트 패턴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영적 관계를 언급하면서 친밀감을 나타내기 위한 언어(language of intimacy)"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노시스 쪽에서는 '자매'나 '부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자매'나 '부인'이란 요리나 청소, 그리고 실내 잡일을 했던 여신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엄격한 수도승 생활을 했던 3, 4세기에서는 절대 성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위더링턴(Witherington)이 말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다빈치코드를 확인해 준다든지, 그노시스파에서 예수가 말 그대로 결혼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 그노시스, Gnosis. 문맥상 Gnositicism, 즉 영지(靈知) 주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킹(King)은 이런 종류의 의심 때문에 학자들이 문서 검토를 중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파피루스 조각을 최초로 검토한 사람들 중에는 뉴욕의 고대사 연구소(Institue for the Study of the Ancient World) 이사로 있는 파피루스 전문가 로저 바그널(Roger Bagnall)과 프린스턴 대학의 신약 및 초기 기독교 학자 앤머리 루이젠디크(AnneMarie Luijendijk)가 포함된다. 그들은 파피루스를 검토한 결과 수기(handwriting) 및 잉크가 화학적으로 흡수된 방법 등으로 볼 때 고대 텍스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또 다른 학자인 히브리 대학 언어학 교수이자 콥트어 전문가인 아리엘 쉬샤-헤일비(Ariel Shisha-Halevy)는 텍스트의 언어를 살펴보고 위조의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킹(King)과 루이젠디크(Luijendijk)는 파피루스 조각이 편의상 "예수 부인의 복음"(Gospel of Jesus's Wife)이라 부르는 새로 발견된 복음의 일부라 믿는다고 말했다. 킹(King)은 파피루스가 쓰인 시기가 2세기 후반이라고 말했다. 도마(Thomas) 복음서나 마리아(Mary) 복음서, 그리고 빌립보(Philip) 복음서 등 새로 발견된 당시 쓰여진 성서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참조: http://www.foxnews.com/science/2012/09/18/harvard-scholar-discovery-suggests-jesus-had-wife/#ixzz26sCdYf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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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이명박·박근혜가 왜 이집트 벽화에?

오마이뉴스 | 2012.08.25 18:19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장도리'의 만화가 박순찬 화백의 < 나는 99%다 >

ⓒ 비아북 제공

"개인적으로 꼽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책 표지'."

최근 트위터에 어떤 책의 표지 사진이 올라오자 이런 반응이 나왔다. 이어 "기발한 표지"라는 감탄과 함께 "대한민국 생태계 써머리(요약본)"라는 좀더 진지한 평가가 뒤따랐다. 도대체 어떤 표지이길래 트위터 이용자들을 이렇게 뜨겁게 달군 것일까?

이명박과 박근혜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어떤 책'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이 표지는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고대 이집트의 벽화를 차용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 파라오와 왕족, 성직자, 노예 등이 나오듯, 이 표지에도 한국사회의 '권력계급'을 암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장 높은 자리에 이건희 삼상그룹 회장이 앉아 있다. 이 회장의 의자 아래에는 법원과 검찰이 바짝 엎드려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했던 '삼성공화국'의 한 단면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 회장 옆에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나란히 서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다.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손에는 각각 그들의 상징인 '삽'과 '박정희 깃발'이 들려 있다.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삽질공화국'과 부친의 '후광정치'를 꼬집은 것이다. '앵무새'로 형상화된 언론은 흥미롭게도 이 회장과 이들 권력 사이에 배치했다. 이를 통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압도된 한국언론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러한 권력계급에 맞서는 계급도 나온다. '민중' 혹은 '시민'으로 불리는 이들은 '촛불'과 '스마트폰'으로 저항한다. 하지만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계급 등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불법사찰하고, 권력계급들은 이를 흡족하게 바라본다. 헌법에는 '권력의 원천'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이들의 처지는 이렇게 초라하고 무력하기만 하다.

17년간 < 경향신문 > 시사만화 '장도리'를 그려온 박순찬 화백은 최근 펴낸 < 나는 99%다 > (비아북)에서 이러한 '1% 대 99%의 현실'을 끈질기고, 날카롭게 담아냈다.

< 나는 99%다 > 는 4대강 사업 강행, 천안함 침몰, 민간인 사찰, 검사 스폰서, 종편 사업자 선정, 한미FTA 체결, G20 정상회의 개최 등 지난 2010년부터 최근까지 일어난 굵직한 일들을 펼쳐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평면적인 네 컷'에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 검찰, 여당, 재벌 등 '1% 권력'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구조'를 보여준다.

박 화백은 "99%의 사람들이 전쟁터와 같은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덕택에 상위 1%는 그들의 기득권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방법을 구상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독자들은 < 나는 99%다 > 에서 '99%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무서운 현실과 마주한다. 특히 정치권력이 바뀌어도 죽지 않는 자본권력은 '1% 권력'의 중추이다. 이는 책 표지에서 이건희 회장이 정치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 등 쟁쟁한 권력보다 위에 그려진 이유다.



박순찬 화백은 한 초등학교 2학년의 시를 '어느 재벌의 시'로 비틀었다.

ⓒ 박순찬 화백 제공

"99%가 99%의 현실을 인식할 때 1%에 저항할 수 있어"

이집트 벽화의 가장 밑에는 노예 등으로 구성된 일꾼들이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로 치면 이들은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그 찬란했던 이집트 파라오 문명도, 자본주의의 스마트혁명도 없었다. 하지만 고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들은 뒷전이고, 찬밥이다. '1% 권력'의 중추가 자본권력이라는 사실은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무거운 현실을 반추한다.

그래서 박 화백은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한 초등학교 2학년의 시를 패러디해 '어느 재벌의 시'로 비틀었다.

'정부가 좋다. 나를 예뻐해주어서. 비밀금고가 좋다. 나에게 돈을 주어서. 언론이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노동자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박 화백은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똑바로 살펴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이지 권리"라며 "99%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99%에 속해 있다는 현실을 인식할 때 1%의 세력이 그들의 기득권을 천년만년 지속시키기 위해 99%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박 화백의 당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을 떠올리게 한다.

< 나는 99%다 > 를 펴낸 박순찬 화백은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천문대기과학과를 다녔다. 대학 시절 만화동아리 '만화사랑'에서 노동운동과 관련한 만화유인물과 걸개그림을 그렸고, 이후 95년부터 지금까지 17년간 < 경향신문 > 시사만화 '장도리'를 연재해오고 있다.

< 만화 조선왕조실록 > 의 저자인 박시백 화백은 "시대의 자화상을 기록하는 박순찬은 우리 시대의 김홍도, 신윤복이다"라고, < 신과 함께 > 의 저자인 주호민 화백은 "작가의 안전이 걱정된다는 독자들의 댓글이 장도리의 정신을 말해준다"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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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의 달인` 안철수, 밤에는 돌변…
낮에는 의사, 밤에는 프로그래머…7년간 이중 생활
17년새 네번의 변신…대선고민 1년반
의사→벤처→교수→정치, TV출연 이후 2030에 인기
기사입력 2012.09.19 19:11:15 | 최종수정 2012.09.19 19:16:49 싸이월드 공감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604923 기사의  이미지

안철수의 과거 사진들. 맨 위부터 1970년대 초 부친의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초등학생 시절 모습과 2000년대 들어서 찍은 가족사진,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미래기획위원으로 위촉되는 장면.

제18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962년 2월 26일 의사인 안영모 옹(81)과 박귀남 여사(76)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경상남도 밀양이지만 1963년 4월 가족들이 부산으로 이사한 후 부산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다녔다.

유년시절 안 원장은 왜소한 체격,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항상 땅만 보고 걸었다. 스스로도 "나는 공부나 운동 어느 것도 잘 하지 못하고 너무나 내성적인 내 자신에 실망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초등학교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 성적표에는 수보다 우, 미가 많았다. 중학교 때까지도 반에서 1등 한 번 못했다. 고3 때 처음으로 반에서 1등, 이과 전체에서 1등을 했다.

그는 `책벌레`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쯤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었을 정도다. 체육시간에도 운동은 하지 않고 혼자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최근 펴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평생 읽은 책의 절반 정도는 중학교 때까지 다 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한때 존 그리샴과 스티그 라르손의 추리소설에 푹 빠져 지내기도 했다.

원래 꿈은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의대 진학을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진급 즈음이다. 큰아들이 의사가 돼 가업을 이었으면 하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는 "피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내가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과대학에 갈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후에는 의대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1982년 가을 친구 집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다. 1년 후에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컴퓨터를 갖게 됐다.

1988년 6월 11일은 안 후보 인생의 일대 변곡점이 되는 날이다. 기계어 공부를 막 끝냈던 그해 초 잡지를 통해 `브레인 바이러스`라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안 후보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6월 11일 새벽녘 최초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 V1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를 찾았지만 박사과정 공부에 수업조교까지 해야 했다. 결국 수면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꼬박 7년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백신을 만들고 이후에는 의사로 일했다.

91년 2월 6일 해군에 입대해 39개월간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입대하는 날 새벽까지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 94년 4월 전역한 후에는 입대 전 몸담았던 단국대 의대 교수로 복직하려고 했지만 학교 측과 마찰을 빚어 실업자가 됐다. 이를 계기로 비영리법인 설립을 추진했고 한글과컴퓨터 창업자이자 대표였던 이찬진 현 드림위즈 대표와 인연이 닿아 95년 2월 16일 서초동 골목에 직원 3명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연구소를 세운 후 95년 9월에는 엔지니어 출신 사업가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EMTM(기술경영전문대학원) 과정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중요한 업무는 직접 필라델피아에서 챙겨야 했다. 매달 한 번 이상 연구소 일 때문에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틀에 하루는 밤을 새우는 생활이 계속됐다.

2년간 악전고투 끝에 기술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1997년 10월 30일 귀국했지만 급성간염으로 쓰러져 곧장 병원에 실려갔다.

병실에서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연구소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직원 월급을 주려고 물품대금으로 받아놓은 어음을 은행에 들고가 할인(깡)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1999년 4월 26일은 연구소에 기적 같은 기회였다. 이날 오전 9시 전국에서 30만~50만대 컴퓨터가 동시에 다 먹통이 되는 CIH바이러스(일명 체르노빌바이러스)가 창궐했다. 그해 연구소는 처음으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2001년 9월에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연구소 창립 10년째인 2005년 3월. 안 후보는 돌연 사표를 냈다. "영혼이 있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두 번째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008년 4월 30일,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아내 김미경 교수가 한 달 앞서 자리 잡은 카이스트에 석좌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복귀했다. 카이스트에서 기업가정신을 강의하면서 청년실업 등으로 `불안의 늪`에 빠져 있는 2030세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각종 강연에 강사로 나섰다. 카이스트 교수 재직시절 한 해 평균 100회 강연을 했다.

[문지웅 기자]

귀가 큰 '노자'(老子)를 뽑자

[머니투데이]입력 2010.05.0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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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인재는 경청자다]

6·2지방선거가 다가왔다. 어떤 후보를 뽑아야 하나?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첫째, '귀가 큰 인재'를 뽑아야 한다. 사료(史料)에 따르면 노자의 성명은 이이(李耳)다. 비슷한 이름으로 조선조 중기 정치가이자 학자인 율곡 이이(李珥)가 있다. 귀고리 이(珥). 율곡도 귀와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귀고리는 동서고금의 습속이다. 귀고리는 고귀함을 상징하는 장신구였다. 율곡 이이라는 이름에는 나라의 동량이 되라는 부모의 바람이 있다.

노자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아주 컸다. 그래서 이름을 '이'(耳)로 붙였다. 후대의 화가나 조각가들이 왜 그렇게도 귀를 거대하게 강조하는지 알 만하다. 동양에서는 성인(聖人)을 비롯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의 귀를 늘 크게 표현했다. 부처와 공자도 그렇고 관운장과 칭기즈칸도 그렇다. '성'(聖)자 자체가 '이'(耳)라는 의미와 '정'(呈)이라는 발음요소의 결합 문자다. 즉 잘 듣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자의 성씨는 '공'(孔)이니까 공자라고 부르고 맹자의 성씨는 '맹'(孟)이라서 맹자라고 부른다.

◇동양의 리더들은 모두 귀가 크다

그럼 노자의 성씨는 '이'(李)씨니까 '이자'라고 불러야지 왜 '노자'라고 부르나? 전설에 따르면 막 태어난 노자는 귀가 클 뿐만 아니라 하얀 눈썹과 수염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엄마 뱃속에서 81년 동안이나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를 '노자'(老子), 즉 늙은이라고 불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경청과 경륜이 그의 미덕이라는 뜻이다.

인재는 경청자다. 과거 역사의 소리를 잘 듣고 또 현재와 미래의 소리를 잘 듣는다.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를 존중한다. 뿐만 아니다. 가까운 소리는 물론 먼 곳의 소리도 잘 듣는 인재다. 공간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컨설턴트(Consultant)라는 뜻도 의미심장하다. 컨설턴트에는 네 단계가 있다. 초보단계는 바로 조사자(Surveyor)다. 배우는 것마다 신기할 때다. 옮기면서 떠들고 싶어한다. 다음은 애널리스트(Analyst)다. 나름의 논리가 자랑스런 단계다. 다음은 조언자(Adviser)다. 많은 충신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이 경청자(Consultant)다. 컨설턴트는 누구를 가르치는 게 아니다. 경청하고 동행(同行)하는 사람이다. 비 맞는 이를 위한 우산이 없어도 좋다. 함께 비를 맞으며 동행하면 그 자체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청은 능력의 출발이다.

균형된 능력을 공자의 손자 자사자(子思子)는 중용(中庸)이라 했다. 그 중용의 요체는 다섯가지다.

◇언론인처럼 배우고 CEO처럼 행하라

박학(博學). 넓게 배우라, 언론인처럼. 심문(審問). 깊이 질문하라, 학자처럼. 신사(愼思). 신중하게 생각하라, 법조인처럼. 명변(明辯). 맑게 판단하라, 정치가처럼. 독행(篤行). 독실하게 행하라, CEO처럼.

노자는 '도덕경'이라고도 부른다. 경구와 격언으로 짜여진 도덕경 5000자를 남겼기 때문이다.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이 합쳐진 것이다. '도'는 우주의 본체를 가르킨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를 낳는다'(有無相生).

하이데거는 서양철학자로 가장 먼저 '무'의 중요성을 깨닫고 노자에 심취했다.

노자에게 '덕'이란 인간관계를 관통하는 보편성이다. '리더는 고집이 없다.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以百姓心爲心). 그 뜻은 '밀어붙이는 사람'은 뽑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말 잘하는 사람도 안된다. 소위 공약이나 정책이란 것도 허상일 때가 더 많다.

둘째, '깨끗하고 고요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깨끗함과 고요함은 천하를 바르게 한다'(淸淨爲天下正). 비자금, X파일, 부동산투기, 탈세, 병역을 회피하는 자들은 천하를 해치는 자들이다. 위장전입 공직자, 뇌물 교육감, 성상납 검찰, 부패 군수는 사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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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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