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리콜’ 민주당 초선 의원 14명 국민소환 법안 발의

[중앙일보]입력 2012.06.23 01:56 / 수정 2012.06.23 01:57

지역구·비례대표 모두 청구
통과 땐 이석기도 소환 대상

22일 ‘국회의원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한 황주홍 민주통합당 의원(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최민희 의원. [뉴시스]
민주통합당 황주홍·최민희 의원 등 초선 의원 14명은 22일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 국회의원들까지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을 발의한 황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이 ‘주민소환 제도’를 도입하면서 그 대상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으로 한정한 채 자신은 소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며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입법권의 남용이자 법안의 현저한 불평등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뽑아줬다면 당연히 국민 손으로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의원은 기초단체장(전남 강진군수) 출신이다.

 법안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소환은 청구일 기준 선거구 획정 인구상한선(현재 31만406명)의 30%에 해당하는 유권자의 서명으로 할 수 있다. 이때 해당 국회의원은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유권자의 1%를 무작위 추출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 투표율이 33%가 넘으면 개표하고, 반대의 경우엔 개표하지 않는데 개표 시 50% 이상이 해임에 찬성하면 국회의원은 자격이 박탈된다.

 이 법안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 당시 오병윤 의원(광주 서을)이 당원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당권파의 ‘간판’으로 활동하자 지역 시민단체들이 주민소환운동을 펼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 발의됐다. 광주지역 ‘진보시민모임’은 18일 “야권연대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도, 광주시민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일개 정파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반혁신 조직인 당원비대위를 구성해 대표를 맡았다”며 주민소환운동을 펼치겠다고 예고했었다. 또 지역구 의원뿐 아니라 비례대표 의원까지 소환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면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소환도 가능해진다.

 황 의원은 “국민소환 범위를 지역구에 한정하지 않고, 비례대표까지 넓힌 건 당선 이후 (비례대표 의원의) 업무영역과 의정활동의 파장이 전국으로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같은 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법안에 대해 “불필요한 특혜들은 폐지하자는 측면에서 당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의장은 “특정 단체와 이익집단이 반대하는 법안을 국회의원이 소신껏 발의하지 못하거나, 정체 세력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점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숙의 미래예측뉴스> ‘인간은 영생하나? 뇌공학기술 의료과학 인지공학발전이 눈부시다’

박영숙 (사)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

    미래예측을 공부한지 30년이 되면서 인간 영생주장이 증가하고 있음을 본다. 처음에 인간 영생이야기를 할 때 미치광이 사기꾼으로 취급했었는데 여러 과학적인 증거를 대면서 영생을 한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존 스마트 엑셀러레이팅 퓨처스 CEO는 인간의 수명연장을 예측하면서 화학적인 두뇌보존 기술의 성공을 예측하고 있다. 수명연장의 기술 중에서는 장기재배, 즉 장기를 재배하여 자신의 고장 난 장기를 자동차부품 갈들이 교환하는 작업이 2020년 이후에 가능해지며, 영생학 등이 발달하여 인간을 영구적으로 살아남게 하는 기술이 영생연구소들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다.

    현재 매년 약 5700만 명, 매일 15만 5000명의 다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죽은 사람들의 두뇌 속에 들어 있던 기억과 독자성은 영원히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은 신경학자들은 화학적 두뇌 보존 기술의 발달로 인해 죽은 사람의 기억과 독자성을 비싸지 않은 가격, 선진국의 경우 한 사람 당 1만 달러, 개발도상국에서는 한 사람 당 3,000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영구적으로 보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화학적으로 보존된 두뇌는 묘지, 저장소, 심지어 가정에도 보관할 수 있다.

    두뇌보존재단(brainpreservation.org)에서는 최초로 포유류 두뇌의 전체 시냅스 연결(뇌신경 연결지도)를 나타내 주는 연구 팀에게 10만 달러의 상을 제공할 것이다. 신경학자들은 낮은 비용이 드는 화학적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의 기억과 독자성을 보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오늘날 컴퓨터가 하드 드라이브를 읽는 것처럼 미래에는 화학적으로 보존된 두뇌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증거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기억과 독자성은 복원될 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에 자동적으로 보존되고 나누어지며 이미지화되어, 컴퓨터화된 복원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이미 제브라피시와 송사리와 같은 작은 동물의 뇌를 스캔하고 뇌신경 연결지도를 작성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가속되면 2020년에 보존된 사람의 두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아직 살아 있는 2060년 초반에 컴퓨터를 이용한 형태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기술과 이러한 기술이 가져오게 될 사회적, 정치적, 개인적 영향에 대해 토론한 필요가 있다.

    유엔미래포럼의 이사이면서 조지워싱턴대학교 공대교수인 빌 할랄은 사고의 기술이라는 기술이 2021년이 되면 완벽한 기술로 부상하고 뇌 모자, 전자 임플란트가 두뇌 신호를 읽게 되며, PC도 조종할 수 있는 기계가 나오고 통신도 할 수 있으며 휠체어를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기술이 나온다고 본다. 지금 이미 원숭이가 로봇을 조종하는 실험이 성공하였고, 미군에서는 원거리조종 무기를 개발 중이고, 현재 10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에게 칩이 주입되어있으며, 1,000여명이 칩을 넣었으며 전자 눈, 코클리어 임플란트 등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칩이 나왔고 바아오닉 맨 즉 전자인간도 나오고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기술은 송아지가 탄생하자마자 귀에 칩을 달아서 송아지를 관리하는 기술은 10년 전에 나온 기술이다. 인간도 칩을 넣는 시대가 이미 다가왔다. 칩을 넣으면 암에 걸린다는 속설이 있지만 귀에 칩을 단 소들이 다 암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소니는 이미 시력이나 소리 맛을 조종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고 있으며 생각에 의해 조종이 가능한 인공신체부위를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이 보편화되는 시기를 빌 할랄의 테크케스트 즉 미래기술예측에서는 2021∼2024년 정도라고 본다. 미국 내 시장은 350조원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뇌공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여 뇌신경계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공학적인 장치·제품·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술 및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들 예측한다. ‘뇌 이해’ 즉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게 된 인간은 현재 10% 정도 뇌의 이해를 마쳤는데, 곧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중추인 뇌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된다고 본다. 뇌공학자는 뇌공학의 발전이 점점 더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본다.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뇌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뇌영상기술, 뇌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뇌조절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2011년 2월 타임즈지 표지에 레이 커즈와일 인터뷰로 2045년이 되면 인간 불멸의 세상이 온다고 예측한 바 있다. AI의 1인자이면서 스스로 영생을 위해 수많은 알약을 먹고 있는 레이 커즈와일은 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온다고 예측하고 컴퓨터의 기능이 인간의 지능을 따라오는 시기를 2025년이라고 주장하면서 2045년이 되면 인간과 기계의 융합이 일어나면서 영생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또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인간의 두뇌에 대한 공학적인 이해가 완료되어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의 마음이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의 뇌를 스캔하여 컴퓨터에 업로드,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되는 해를 2045년 정도라고 보면 메이트릭스 영화가 현실로 다가오는 시점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버리고 컴퓨터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커즈와일의 주장이다.

    이런 기술들을 두뇌와 컴퓨터의 인터페이스(BCI)기술이라고 하면서 뇌에 기기가 달린 모자를 쓰면 뇌의 사고를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브레인 컴퓨터로 “How are you?"라는 대화 즉 말로 하지 않고 뇌로 생각만해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기술을 캘리포니아대학교 인지공학교수 마이컬 즈무라가 연구 중인데, 그는 미군용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연구예산을 40억을 지원받았다. 뇌와 컴퓨터가 사용하는 언어는 전기신호’로 둘 사이에 적절한 통역기만 삽입해 주면 키보드나 음성을 통하지 않고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는다. 두뇌공학이 앞으로 유망한 직종이 될 것이다.

    영생을 하게 되는 경우에 각국의 보건의료예산이나 고령인구 예산이 급증하게 되며, 빈부격차에 따라 돈이 있는 사람은 영생을 하게 되고 돈 없는 사람은 기술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도 없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거나, 윤리도덕의 문제 등 각종 미래관련 문제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기술발전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가진 양날의 칼날이 될 수가 있다.

    <www.korea2050.net www.unfuture.org="www.unfuture.org">

    <www.korea2050.net>

    미래예측 믿지 않아 망한 기업 코닥미래학,미래뉴스

    2010/11/04 21:42

    복사http://blog.naver.com/parkseayun/40117265462

    로얄 더치 쉘이 자체 미래예측연구소에서 수천명의 외부 미래예측전문가를 동원 작성한 미래예측시나리오가 무명의 쉘오일회사를 세계3위 기업으로 끌어 올렸다. 지금도 쉘은 기업미래예측연구소를 통하여 꾸준히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미래예측보고서는 1971년에 OPEC 카르텔 조직, 환경운동등으로 유가가 두배 세배로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여기에 쉘이 미래전략을 세우면서 현재 세계3위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래전략연구소 없이 미래예측을 하지 않아 일류기업이 망해버린 경우도 있다. 코닥이 그 좋은 예이다. 미래예측에서는 모든 방송이나 영상미디어가 디지탈화 할 것이며 인터넷의 보편화로 대량이미지용량 전송이 가능하여 디지탈카메라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였지만, 그 속도나 그 분야의 미래전략부족으로 코닥은 지금 사경을 해메고있다. 잉크제트 프린터를 생산하지만, 제조업의 소멸과 플라스틱종이나 새로운 이미지산업이 부흥하면서 프린트 판매도 용이하지 않다. 디지탈카메라 등장으로 필름시장이 소멸하게되는 상황을 보자.

    세계최초 디지털 카메라 필름을 넣지않고 찍는 카메라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에서 1972년에 개발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카메라 시제품을 만들지는 않고 다시 코닥사의 엔지니어인 스티븐 사손이 카메라를 만들었지만 실험이었고, 페어차일드반도체사에서 1973년에 CCD칩을 만들면서 실제로 카메라가 만들어졌다. 무게는 3.6kg이나 되었고 흑백사진만 찍을 있었으며,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찍었다. 화질은 1만화소였는데, 한장찍는데 1975 기술로는 23초가 걸렸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것이 대량 상품화가 아무도 몰랐다.

    요즘의 디지털카메라 손에 들고다니면서 찍는 카메라는 1981년에 나왔는데, 소니 마그네틱 비디오카메라 소니 마비카였는데, TV 기술을 넣어 2x2인치 플라피비디라고 불렀다. 아날로그 카메라는 캐논이 1984 올림픽에서 모델을 선보이고 홍보를 시작하였던 것인데1986년에 캐논 RC-701이라는 모델을 내놓고, 처음에는 가격이 2만불정였다. 1989년에는 카메라기술을 이용, 위성중계없이도 이미지를 전송할수 있어 1989 천안문사태, 1991 걸프전에서 활약을 하게되었다. 당시 니콘QV-1000C 나와서 수백개 정도를 팔았다.

    1988년에 후지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요즘의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고 16메가 저장용량에 바테리가 붙었다. 1991년에 코닥도 니콘카메라몸체를 이용 1.3메가픽셀의 디자탈카메라를 만들어 13천불에 팔았다

    인터넷의 jpeg, mpeg 등이 1988년에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면서 퍼졌고, 일반에게 퍼진 것은 1995년에 카지오가 크리스탈 디스플레이를 넣고부터다. 리코 등도 1995년에 디지털카메라시장에 뛰어 들었고, 1999년에는 니콘이 뛰어들어 디지털 SLR 개발하였고, 미놀타는 1999년에 뛰어 들었다.

    코닥이 망하게되는 이유중 하나는 코닥이 폴라로이드사로부터 특허권 침해로 1988년에 고소를 당하면서다. 폴라로이드사가 코닥에게순간사진특허 침해 손해배상을 신청한 금액이 60억불로 한화 6조원이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당시 6조원은 엄청난 돈이었고, 1985년에 이미 코닥을 소송에서 상황에 폴라로이드사가 엄청난 거액의 피해보상소송을 것이다. 이로서 코닥줏가가 떨어지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코닥은 잉크젯트 프린트쪽으로 옮겻으나 , 출판사가 망하고 e-출판으로 가고, 플라스틱종이가 나오는 프린트 시장이 급속히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유엔미래포럼 박영숙)

    이상현 대한야구협회 사무처장
    “아마추어 야구대회가 치러지던 동대문구장 자리에 동대문공원이 들어섰다. 고척동 돔구장은 그 대체 장소다. 1년에 약 400경기를 맡아 관리하는 대한야구협회에 지연되는 완공 일자는 반가울 수 없다. 수익 창출 이상은 물론 넥센 히어로즈가 홈으로 사용하는 목동구장을 중복 사용해야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공생이 아닌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셈이다. 고척동 돔구장은 프로구단도 사용해야 한다. 아마추어만 사용한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 뻔하다. 더 많은 연구의 시간도 필요하다. 당초 고척동 돔구장은 하프돔으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소음 등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민원으로 뚜껑을 달게 됐다. 하지만 주차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교통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셔틀버스 운영, 사전 예매제도 등 다양한 방법이 검토되어야 한다.”

    윤정현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
    “학생 야구가 셋방살이로 전락했다. 구걸하면서 야구한다. 내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도 고척동 돔구장에서 치르지 못하게 됐다. 아마추어 야구는 프로의 젖줄이자 기틀이다. 많이 도와달라.”

    양해영 KBO 사무총장
    “고척동 돔구장의 사용료는 동대문구장의 수준과 같아야 한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차질이 생긴 건 전적으로 서울시의 책임이다. 고척동 돔구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으니 프로구단들이 잠실구장, 목동구장을 비워야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프로경기는 어디서 치러야 하나. 어느 정도 합의를 봐야 할 사안이다. 전세로 살고 있는 가족에게 집주인이 무작정 나가라고 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용철 KBS 야구해설위원
    “아마추어 야구가 떠돌이 생활을 한다. 동대문구장 철거 직전 중계를 맡아 고별방송을 했는데 ‘야구의 메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당시 많은 야구인들이 반대했지만 서울시의 정책을 막지 못했다. 그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제 야구는 성적보다 즐기는 문화가 됐다. 하지만 서울시 내 어린이들이 뛸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서울시는 이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일본의 경우 전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도쿄 긴자 거리 빌딩 숲에도 어린이야구장이 마련돼 있다. 왜 일본이 스포츠 강대국인가. 엘리트 스포츠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즐기는 야구를 한다. 서울시 체육진흥과의 1년 예산 가운데 어린이 야구에 전달되는 투자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줘야 야구 종사자들도 힘을 낼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야구는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외면당하고 있다. 깊이까지 신경을 써 달라. 그래야 야구가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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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가 아는 승려들 중에는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지만…"

    '쌍계사 조실(祖室)' 고산 스님

    "인터넷과 운전만 못하고 농사 짓는 데는 신농씨, 부엌에선 일류 요리사"

    '내가 승려생활 못하지만 나보고 주지 맡으라는 거냐' 동료 스님의 귀싸대기 패더라

    "조석예불을 소홀히 하는 승려를 이 염주로 때려 일곱 바늘 꿰맸다지. 목탁으로도 두들기고. 내 근처에는 아예 안 오려는 승려들도 있지."

    고산(79) 스님은 씩 웃었다. 어린애 주먹만 한 염주알을 굴리면서.

    "계율을 안 지키면 수행자 자격이 없지. 부처님 열반하기 직전 아난존자가 제일 먼저 물은 게 그것이다. '스승님께서 열반하시고 나면 이제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리까' 물으니, '계(戒)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했다."

    한낮의 햇볕이 쨍쨍했다. 부산 연산동의 혜원정사에는 분홍색 연등이 머리 위로 한가득이었다. 뜰에 비친 그림자까지 불그레했다.

    그는 쌍계사의 조실(절에서 최고 어른)이고, 승려들의 '면허'인 비구계를 수여하는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이다. '룰만 따지는 사람치고 재미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불쑥 들어, 나는 뭔가 대변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시작했다.

    ―내가 아는 승려들 중에는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는다. 이들은 "계율은 작은 것이다. 계율에 매여선 안 된다. 이를 뛰어넘어야 깨달음과 무애(無碍)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치는 금방 깨달으나, 다생습기(多生習氣·오랜 생에 걸쳐 몸에 밴 습관)는 금방 없앨 수 없다'고 했다. 설사 계율을 안 지키는 처사도 금방 깨닫고, 소 잡는 백정도 소 잡는 칼을 들고도 부처님 법문 한마디에 깨닫는다. 깨닫는 이치는 그렇다 해도, 다생습기는 남아 있다. 바람이 그쳤지만 물결이 계속 출렁이는 것과 같은 이치지. 이런 고로 서서히 없애는 것이다."

    ―깨달음은 찰나에 얻을 수 있어도 몸에 밴 습성은 계율을 지키는 수행을 통해 없앨 수 있다는 뜻인가?

    "계율은 그릇과 같다. 그릇이 똑발라야 물이 바로 담긴다. 물이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머물러 있는 것이 '선정(禪定)'이다. 그래야 물 위에 그림자가 담긴다. 그림자는 바른 지혜를 비유한 거지. 이처럼 계율은 수행자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계율은 속세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 결혼 잘 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욕망에 매이면 수행을 할 수가 없다. 수행자는 세속을 뛰어넘는(出世間) 공부를 하는 것이다."

    ―요즘 승려들을 보면 머리 깎은 것 외에는 나 같은 속세 대중과 무엇이 다른지를 모르겠다.

    "수행을 원만히 이룬 사람이면 성불(成佛)한 것이다. 하지만 수행 과정에 있으면 아직 '사람'이다. 다생습기에 여전히 끌려갈 수밖에 없다."

    ―호텔에서 웃통 벗고 도박하던 승려들도 그런 과정에 있다고 봐줘야 하나?

    "수행 과정인데 아직 초월하지 못해 자연히 습기에 끌려간 것이지."

    ―내가 좋아했던 불교가 전체적으로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Chosun

    "세속의 습성이 남아 있는 몇 사람이 그렇지, 그걸로 전체를 평가하면 안 된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팔만대장경을 열람해 봐도 모순된 점은 없지만, 부처님 제자들이 하는 짓을 보면 아니꼬워 나는 불교에 귀의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자로는 승(僧), 두 자로는 화상(和尙), 초상난 집에 쭈그리고 앉아 만날 염불하니 세 자로는 수시귀(守尸鬼), 기생집에 가면 땡추들이 먼저 딱 차지하고 있으니 네 자로는 색중아귀(色中餓鬼)'라고 놀렸다. 그러자 한유(韓愈)가 '이 철없는 친구야, 부처님의 도가 내려온 지 오래이고 수천명의 제자가 있는데 그까짓 몇몇 못된 놈으로 그러느냐'고 했다. 대부분 스님들은 수행의 근본을 망각하지 않는다."

    ―어느 절에 가니 초입부터 '축(祝) 신임주지 ○○○○' 현수막이 쭉 걸려 있더라. 요즘은 주지나 종단 자리를 놓고 정치판처럼 다툰다.

    "저런, 수행하면 그런 데 허비할 시간이 없다. 내가 어려서 해인사에 있을 때 '차기 주지(住持)를 누가 맡느냐' 논의가 있었다. 한 스님이 '이번에 주지는 자네가 맡게' 하니까, 당사자가 귀싸대기를 패더라고. 뺨 맞은 스님이 '와 이러노?' 하니, '아무리 내가 승려생활 못하지만 나보고 주지하라는 거냐'며 화내더라. 옛날에는 그랬다."

    ―스님도 쌍계사와 조계사 주지를 했지 않는가?

    "맡겨주니 할 수 없이 대중을 시봉하는 마음으로 했지, 오래 할 게 못 된다. 나는 주지를 해도 내 손으로 불전함을 털어 돈을 세어본 적이 없다. 태국·미얀마·스리랑카에 가보니, 스님이 직접 돈을 못 만지게 한다. 스님이 호주머니가 달린 가죽부채를 내밀면 신도가 그 속에 시줏돈을 넣어준다. 버스를 탈 때도 스님이 부채를 내밀면 차장이 그 속에서 차비만 꺼내고 다시 잠가 주더라."

    ―스님은 과거에 총무원장을 맡고서 열 달 만에 물러난 적 있다.

    "상대 후보 측에서 선거 규칙에 어긋났다며 소송까지 냈다. 그런 시비에 말리면서 '하고 싶은 사람 실컷 해라'고 한 뒤 바랑을 메고 내려와 버렸지."

    ―절집 풍토가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환경이 뭐가 문제인가. 옛날 큰스님은 여기저기 시골 장터를 찾아다니며 가장 요란한 곳에 앉아서 수행했다. 귀에 시끄러운 소리가 안 들리면 '오늘 장 잘 봤다'고 했다."

    ―스님은 계율을 어긴 적이 없나?

    "…마음속으로는 계율을 어기려고 한 적은 없다. 가르침을 지켜 나왔다."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인가?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절 생활 25년쯤 됐을 때 오만한 후배 승려를 한 대 쳐버렸다. 그게 살인 미수로 고발돼 '폭력승'이 됐고, 결국 산문출송(山門黜送·승적 박탈)이 됐다. 그 뒤에 다른 스님들의 탄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생습기로 나도 모르게 울컥 성질이 일어나니까."

    ―절에서 25년이나 수행했으면….

    "그걸로는 안 되지, 다생습기는 남아 있지. 견성오도해야 그게 없어지지."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출가했던 이유는?

    "입산하면 돌아가신 모친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 당시 범어사에 계시던 동산(東山·1890~1965) 스님이 은사였다. 나는 출가하기 전에 이미 명심보감과 동몽선습 등을 읽었고, 절에 들어가서는 모든 경전을 다 열람하고 일대 강사(講師)가 된 거지."

    ―승려들에게는 계율에 능한 율사, 경전에 능한 강사, 포교에 능한 법사, 참선에 능한 선사가 있다. 스님은 이 모든 것을 고루 갖췄다고 들었다.

    "어려서는 놀기를 좋아하고 낭만적이었다. 영화 구경을 가거나 부산의 용두산 공원에서 뛰어놀았지. 열일곱 살인가, 암자에 들어와 살 때였지. 내게 고추밭 일을 잠깐 맡겼는데 비료를 잘못 줘서 농사를 망친 적이 있었어. 호된 책망을 들었지. 그때 나는 '사람으로서 하는 일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라도 다 배워야겠다'고 서원했다. 모내기, 쟁기길 같은 농사일은 말할 것도 없고, 부엌에 들어가면 일류 요리사요, 법당에 들어가면 목탁 치고 염불 하는 게 예식종장의 소리를 듣고, 강원에서는 팔만대장경을 거꾸로 보고도 읽을 수 있는 일대 강사가 된 거야. 다만 못하는 게 인터넷과 자동차 운전이다. 그건 수행하는 데 필요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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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스님은“소 잡는 칼을 들고도 깨달을 수 있지만 몸에 밴 습관은 금방 못 없앤다”고 말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절집에서도 그렇게 부지런해야 하나?

    "세속에 물든 것인지, 요즘 절간에도 놀고먹으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 상좌 중 절반가량이 절집 일이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했다. 나는 경전만 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읽은 세속 소설도 다섯 짐은 될 거야. 유교·도교·천주교 경전을 열람 안 한 게 없다. 특히 신약·구약성서는 외우다시피 했다."

    ―선방 수좌들 중에는 '도(道)를 닦아 깨달음을 얻는 데는 경전 공부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하는 이도 많다.

    "옛날에는 부처님의 행적과 법문을 배우게 한 뒤 강원이나 선방에 보냈다. 하지만 성철스님이나 혜암 스님이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사람 마음에 달렸다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며 머리를 깎으면 바로 선방에 보냈다. 이 때문에 스님들 중에는 선방에 앉아 오로지 '이뭣꼬?'하며 간화선(看話禪)만 하지,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부처의 행적과 가르침)조차 모르는 스님도 있다."

    ―그래도 선승을 높이 치지 않는가?

    "나도 젊은 날 한때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다. 앞뒤도 없다. 몸뚱아리를 끌고 다니는 이것은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참선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깨달음에 진전을 얻은 것은 경전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도반(道伴)들은 경전 공부를 하는 나를 보고 '타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자 내게 경전을 물으러 왔다."

    ―깨닫는다는 것은 뭔가?

    "내 마음의 본바탕이 삼라만상의 근본이고 우주의 근본임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멀리 떨어진 것도 장중(掌中)의 구슬처럼 보인다."

    ―스님은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서 있나?

    "옛날에 '스님 견성했습니까?' 물으면, 그 경지에 오른 선사는 '육육은 삼십육, 구구는 팔십일, 동지한식(동지에서 한식까지 날 수)은 105일이니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는 뜻이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창천, 창천(답답하구나)'이라고 했다."

    ―내가 만나본 승려들 중에는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이 좀 있다.

    "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직 먼 거다."

    ―깨달음의 경지에 있으면 일상이 어떻게 달라지나?

    "스스로 체험해야지,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이니, '사는 게 허망하다'는 중생들에게 한 말씀은 해줘야 하지 않나?

    "부처님도 인생살이 무상함을 말했다. '아침 풀끝의 이슬과 같고 저녁 연기와 같고 물에 뜬 거품과 같고 먼 산의 아지랑이와 같다'고. 이 몸뚱아리도 무상하고 잡념도 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무상함 속에 진심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찾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너무 모호하다. 아침 이슬 같은 삶의 허망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몸뚱이는 죽더라도 내 마음자리, 내 본성은 존재한다. 절대 변함이 없다."

    ―몸이 죽었는데 마음이 존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사가 본래 없다는 뜻이다. 중생들은 나고 죽는 것을 보지만, 깨달은 이들은 헌옷(몸뚱이)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본다. 원래 주인은 항상 그대로 있다. 헌옷을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는데 무슨 슬픔이 있고 허망함이 있겠나."

    ―스님은 헌옷을 버리고 내가 걸치고 있는 옷도 입을 수 있나?

    "수행을 참되게 오래 하면 어디에 연연하고 매이는 게 없다. 내가 바꾸고 싶은 데로 바꿔버리면 되지."

    ―아직은 너무 정정하다.

    "세속 나이가 팔십인데 지금도 새벽마다 108배를 한다."

    ―새벽 4시에 기상하고?

    "무슨, 3시 반에 일어나지. 목탁이 치기 전에. 절 내 밭뙈기를 다 내손으로 매지. 아까 말한 대로 농사짓는 데는 신농씨, 법당에는 예식종장, 부엌에는 일류 요리사다."

    스님이 직접 가꾼다는 고추·상추밭과 화단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땡볕이 여전해 밭에서 빛이 났다. 길목에서 할머니 신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스님을 잠깐 친견하려고…." 수줍게 인사하자, "나를 만나 봐서 뭐 할라꼬"하며 방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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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문이 불여일견

    TOTAL ARTICLE : 103, TOTAL PAGE : 3 / 11
    화장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물속에 그냥 있겠다
    남기인 | 2005·07·06 10:38 | HIT : 1,274 | VOTE : 33
    살인적인 무더위가 지구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전 세계가 물난리를 겪고 있다. 습기 하나 없을 것 같던 하늘이었건만 장마철에 쏟아지는 장대비는 차라리 양동이로 퍼 붓는다는 표현이 옳을 듯 하다. 나는 비가 올 때마다 공중의 물과 지상의 물, 그리고 땅속에서 흐르는 지하수가 상호 교류하고 있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떠올리곤 한다. “저 빗물 중에 일부가 수맥파장으로 갈라진 틈새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형성하게 되겠지” 그러다보니 수맥에 묻혀있는 조상은 더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조상의 感應을 받는 자손들은 아픈 부위가 더욱 욱신거리기도 하고 통증도 커지리라는 생각도 그때마다 느껴 보는 현상 중에 하나이다.

    장마철이나 찌는 더위에 이장하는 분들의 답답한 심정이란 겪어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충북 음성의 이장 현장을 찾아와 상담을 요청한 세 사람이 있었다. 16위의 선대 조상을 납골 묘에 안치하기에 앞서 자문을 얻고자 했다. 작업개시 3일을 남겨 둔 시점에서 화장의 문제점을 들추기가 곤란스러웠다. 화장을 한 후에 호전되는 집안을 별로 보지 못한 것도 내가 머뭇거린 이유 중에 하나였다.

    조상님들과 직접 대화를 통해 물어 보는 게 가장 정확하리라는 판단 하에 다음 날 영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은사를 지닌 S집사님과 함께 J씨의 선영을 찾았다. 제일 윗대 조상의 묘에 오르니 十 자 수맥 속에 묻혀있던 영가는 “나 뿐만 아니라 내 자손들이 전부 수맥에 묻혀 있으니 빨리 물속에서 꺼내 달라”고 했다. “화장(火葬)을 하여 납골로 잘 모셔드릴 터이니 그리 아세요.” 하고 자손들의 의사를 전달하자 놀란 영가는 ‘지금까지 이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고통을 참아왔는데 화장이라니, 화장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물속에 그냥 있겠다.’ 며 노발대발했다.

    16위 조상의 묘를 거치며 수맥을 탐사하며 대화를 시도해 본 결과 제일 윗대 할아버지 영가의 말씀대로 수맥을 피한 묘가 단 한기도 없었고, 영가들마다 '제발 화장만은 하지 말라' 며 애원을 했다.’ 한 영가는 ‘땅속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 같고 수맥이 너무 무섭다’ 는 표현을 했다. 가장 윗대 조상 할아버지는 ‘내가 나쁜 곳에 묻혀있다 보니 너희들에게 복을 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떠나지를 못하고 있다. 나와 내 자손들을 이장해 주면 너희에게 내린 저주를 거두어 떠나겠다.' 했다.

    뜻하지 않은 조상님들의 반란에 급작스레 화장(火葬)에서 매장(埋葬)으로 계획을 변경한 J씨 집안에서는 이렇게 조상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르게 되었음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 이장하던 날 가장 먼저 대화를 시도했던 맨 윗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합장묘에는 영가의 말씀대로 물이 차 있는 광중에는 한 조각의 뼈도 볼 수가 없었다. 비록 뼈 한 조각 없는 물속이었건만 영가들은 우직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자신의 묘지가 나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 기거하면 될 것을 왜 그 자리를 피해가지 못하는 것일까! 자손들에게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 가공할 힘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금번의 이장을 통한 연구에서 얻은 게 있다면, 우리나라의 영가들은 화장(火葬)이란 장묘 법을 아직까지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수맥이 흐르는 무덤 속 영가들의 일치된 호소로 보아 그분들이 가장 무섭고 두려워하는 존재는 수맥이라는 것.
    추가로 영가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묘지가 나쁠 경우, 영가들 스스로가 좋은 곳을 찾아 옮겨가면 될 것을 무슨 미련이 남아 있다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애궂은 자손들만 괴롭히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도대체 유골이 무엇이기에.....

    -이번 주 음성신문 칼럼에서-
    83 "火葬하면 無害無德하다"는 주장 잘못 1 남기인06·03·13176827
    82 “수맥파 차단으로 겪는 플라시보 효과” 남기인06·02·27155212
    81 [사전발복 1] 무슨 한이 저리도 많으셨기에 남기인05·08·171480761
    80 [사전발복2] 무슨 한이 저리도 많으셨기에 남기인05·08·30207034
    79 순국 및 애국지사의 묘와 그 후손들 남기인05·08·03130913
    78 제사 음식의 맛과 냄새를 구분하는 사람들 남기인05·07·21139354
    화장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물속에 그냥 있겠다 남기인05·07·06127433
    76 Re: 그날의 현장 사진자료 남기인05·07·07163931
    75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는 삶을 살자 남기인05·06·221335411
    74 부모님의 참담한 몰골에 경악한 자손들(일산) 남기인05·05·0411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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