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표 벽 넘으면 ‘의제정당’ 꽃핍니다

등록 :2020-02-13 05:00수정 :2020-02-1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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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연동형비례 도입 첫 선거 맞아
여성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지역·이념 아닌 개별의제로 도전
거대정당 맞서 선거연대 논의도
21대 국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특정 정책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의제정당의 국회 입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바라본 국회 본회의장의 야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1대 국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특정 정책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의제정당의 국회 입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바라본 국회 본회의장의 야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이 열리고 있다. 저 문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건 70만표. 새로운 꿈을 꾸는 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준연동형비례제가 도입되는 첫 선거를 앞두고 의제정당을 내세우는 다양한 작은 정당들이 그 주인공이다.

여성주의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한 ‘여성의당’이 오는 15일 중앙당 발기인대회를 연다. ‘기본소득당’은 비례후보 4명, 지역구 후보 2명이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직접 교육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교육당’도 창당을 준비 중이다. 기성정치 대신 ‘플랫폼 정당’과 ‘3040세대’를 내세우는 ‘시대전환’은 지난달 창당선포식을 하고 당원 모집에 들어갔다. 시대전환의 창당선포식과 토론회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찾는 등 기성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기존 정당과 가장 다른 점은 목표가 ‘디테일’하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전반적인 ‘진보’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올해 국회 진입을 노리는 작은 정당들은 ‘기본소득’ ‘기후환경’ ‘여성’ 등 정당이 개별 사안으로 다뤘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성의당 창당에 함께하고 있는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새로운 선거제도가 마련해준 가능성에 주목했다”며 “2030세대들이 여성주의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어젠다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결사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창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원재 ‘시대전환’ 공동대표는 “그동안 정당에서 정강정책은 중요하지 않고 정치인 개인만 중요했다. 정당에 의제가 담기지 못하는 상황을 이번 선거법 개정을 통해 한걸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수 대 진보’ ‘산업화 대 민주화’의 진영 다툼에서 벗어나, 유권자 자신이 관심을 갖는 사안에 목소리를 낼 정당을 찾을 시기가 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을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역시 득표율만큼 의석을 받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아직 100% 득표율이 반영되지 않는 탓에 ‘준연동형’이란 딱지가 붙어 있지만 이전보다는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국회에 진출할 기회가 열린 셈이다.

특히 이들은 이전 선거제와 달리 정당득표율 3%라는 기준을 넘어섰을 때의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한 정당이 3%를 득표하면 이전 총선에서는 1석만 받았지만, 바뀐 제도에서는 3~4석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정당 2~3곳만 연합해도 입법 발의 요건인 국회의원 10명을 채울 수 있다. 3%를 넘기면 작은 정당의 발언권이 이전보다 훨씬 커지는 것이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신생정당의 돌풍도 이들의 희망을 키우고 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아이슬란드의 해적당 등은 이미 오래된 서구 양당정치에 균열을 낸 바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공화당도 사회당도 아니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은주 소장은 “여성의당은 온라인을 통해 20대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선거전략을 세우면 80만~100만표 정도 득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내놨다. 이원재 대표는 “총선 전까지 국회의원을 영입해 앞번호 기호를 받을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이번에 국회에 깃발을 꽂아야 (연동형비례제하에서 정당으로서) 오래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원내 진입장벽인 정당득표율 3%의 벽은 생각보다 높을 수 있다. 유권자 70만표 이상(20대 총선 정당득표율 기준 73만여표)을 받아야 하는데, 20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0.76%를 받았고, 민중연합당은 0.61%에 그쳤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한국의 양당정치가 아직 살아 있어서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을 심판하려면 민주당에 표를 주고, 정부를 심판하려면 한국당에 표를 주는 정치공학이 여전하다.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이유로 작은 정당들은 활로 모색을 위한 선거연대 등도 논의하고 있다. 12일 녹색당과 시대전환, 기본소득당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득불평등, 기후위기, 기술변화로 인한 일자리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소득제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당리당략과 국고보조금을 위한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책 중심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색정당·군소정당을 넘어 유니콘정당으로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원내에 진입한 정의당은 청년정당인 우리미래당과 녹색당 등에 선거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3%라는 문턱을 넘으려면 단일 의제정당 간 네트워크나 응집력이 도모되어야 한다”며 “거대정당이 위성비례정당을 만드는 상황에서 소수정당이 손해 보지 않으려면 몸집을 키워 전략적으로 호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지역구를 제외한 미미한 의석(47석)을 놓고 경합하기 때문에 의제정당·군소정당이 빠른 속도로 지분을 넓힐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신 교수는 “유럽에서 20년째 나온 현상을 보면, 이주자·난민·성소수자 등 제한된 이슈에 총집중한 극우정당이 기존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밀어내고 성공한 비결 역시 비례제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어 “수십개 정당의 포스터가 붙을 텐데, 유권자들이 충분하고 올바른 정보를 갖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당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한국 정치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고 짚었다.

이완 황금비 기자 wan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28044.html?_ns=t1#csidx3cc5fa7a2a3fdce9a8aae49815fa413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 식객다운 노회찬의 비유

[음식天國 노회찬] <3> 영등포 길풍식당에서 죽변항까지
2020.01.26 10:31:02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합니다" 식객다운 노회찬의 비유
 

노동운동가 노회찬이 국회의원직을 수행한 것은 세 번이다. 그러나 4년의 임기를 채운 것은 그가 처음 여의도에 입성한 2004년 제17대 때뿐이다. 그의 정치 역정이 얼마나 치열했고 또 고단했던가를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그가 처음 의정 단상에 섰을 때, 그는 비록 비례대표였지만 진보정치의 의회 진출을 상징하는 대표 인물로서 각광을 받았다. 많은 국민들이 낡은 정치를 성토하는 신예 정치인의 직언직설에 묵은 체증을 쓸어내듯 열광했다. 그가 국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수단은 대중과 밀착된 삶과 언어였다. 

"50년 묵은 정치, 이제는 갈아엎어야 합니다.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판이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그의 '판갈이론'은 정치 주체의 교체 필요성을 서민적인 언어로 실감 나게 표현해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며 촌철살인으로 가득한 노회찬 어록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의 레토릭은 대개 서민의 삶 속에서 나왔기에 국민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노회찬도 국민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노회찬의 삼겹살 불판 갈이는 소박한 서민식당을 사랑하고 한국적인 미각을 찾아 골목길을 누볐던 식객다운 상상력의 소산이기도 했다. 

그렇게 삼겹살 불판을 사이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상에 더 익숙했던 그에게 처음 겪는 '국회의원의 식사'는 꽤나 낯설었던 것 같다. 첫 국정감사 때 감사원에서 있었던 일인가 보다. 

"감사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한다. 점심식사인데 전복이 등장하고 생선회와 산해진미가 차려졌다. 법사위원장은 국회의원 1인당 1만 원 미만으로 책정된 식대를 감사원장에게 전달한다. 형식적으로 보면 감사원 구내식당에서 법사위 돈을 내고 점심을 먹은 셈이다. 그러나 그 음식은 일반 서민들이 평생 한 번쯤 먹어볼까 말까 한 고급요리이다. 식당 창문 밖 북악이 회색빛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기름기 낀 기성 여야 의원들보다는 함께 노동운동을 한 젊은 보좌관들과 어울리는 게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오늘은 박○○ 보좌관 생일이다. 방 식구들이 국회 내 함바집으로 저녁 먹으러 가는데 따라가지 못했다. 신○○ 동지가 굶지 말라며 파전 한 장을 가져왔다."
  
노회찬 유고 산문집을 뒤적이다가 눈길이 멈춘 곳들이다.

비례대표로 출발해 처음으로 지역구에서 당선했지만 어이없는 법 논리로 2012년 제19대 의원직을 이백몇십일만에 잃은 뒤 노회찬은 2016년 20대 총선 때 여의도로 돌아왔다. 그렇게 4년 만에 다시 온 여의도는 역시나 또 낯선 변화들이 많았다. 노회찬은 그 여의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다짐 삼아 젊고 참신한 보좌진으로 진용을 꾸린다. 오랜 동지 몇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노동운동이나 기성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가 먼 '새 피'들로 의원실을 채운다. 그렇게 모인 노회찬 사단의 11명 가운데 20대가 4명이나 됐다. 여성도 4명이었다.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노회찬 의원 방이 가장 젊고 활기차다"는 부러움 섞인 관찰기가 속출했다.

노회찬은 그렇게 초선부터 3선까지 젊은이들과 일상 속에서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들 중에는 선거캠프 자원봉사자, 정의당 청년당원 출신 등 인간 노회찬을 추종해 모인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교수님의 추천으로 '취직'을 한 친구도 있다. 로스쿨을 막 마치고 공익 변론과 인권 분야에 관심이 많아 노 의원 방을 노크한 젊은 변호사도 있다. 그와 함께 한 2년의 시간,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알기엔 짧은 시간이었으되, 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동료 의원실로, 다른 직업으로 뿔뿔이 흩어진 '노회찬의 아이들'이 지난해 10월 24일 밤 영등포 양평동 사거리에 다시 모였다. 길풍식당. 그가 누구든 노 의원실의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장소다.   

"여의도가 갑갑하고, 정치가 답답할 때 수행원 한, 둘하고만 왔어요. 차를 댈 데가 없어 빙빙 돌 때도 많았지만, 마음 편해하시던 모습이 선하네요." 

여럿이서 혹은 단둘이서 노회찬과 함께한 이들 중 김성용(여영국 의원실), 장연경(김성환 의원실), 하동원(가업 승계 수업 중), 로스쿨을 갓 졸업하고 합류했던 법률보좌진의 신유정(법무부 인권정책과), 신건호(진선미 의원실) 변호사 등이 노회찬재단의 박규님, 박창규 실장 등과 자리를 함께했다.  

▲ 일러스트 김경래. ⓒ노회찬재단


정치가이기 이전에 문화인, 사상가의 풍모를 간직한 노회찬에게 여의도 정치는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은 노회한 자들의 정글이었다. 유난히 맛이 없기로 정평이 나 있다는 국회식당도 벗어나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국회 식당 밥맛은 하늘이 국회의원에게 내리는 벌이야."

입맛 떨어지는 여의도 일상이 애먼 구내식당 밥맛까지 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여의도 밖으로 나오지만 그리 멀리 가지도 못하고 들리는 곳 중의 하나가 이곳 길풍식당이었다고 한다. 

양평동 길풍식당은 소꼬리곰탕과 찜으로 유명한 맛집이다. 2대에 걸쳐 40년째이다. 건물 1층 안쪽에 자리한 식당으로 들어서면 유명인사들의 즐비한 방문사인 속에 노회찬의 이름도 보인다.  

"맛 최고입니다."  

소꼬리 맛은 미식가 노회찬의 추천을 믿는 것으로 소개를 생략한다. 꼬리뼈에서 살점을 발라 찍어먹는 간장 맛이 일품이다. 간장에 비빈 탱탱한 식감의 중면을 후루룩 먹는 맛도 그만이다. 과연 노회찬의 날카로운 혀를 감당할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먹다 보니 소꼬리를 요리해 먹는 민족이 세계에서 몇이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올라온다. 뿔과 발굽을 빼고 소의 거의 모든 부분을 요리해 먹는 한국인이 꼬리를 그냥 둘 리 없었을 터. 파리나 흡혈충을 쫓기 위해 채찍처럼 힘차게 등짝을 때리는 소꼬리를 보며 입맛 도는 보양식을 떠올렸을 법하다.

하지만 먹거리가 많은 시대에 성장한 젊은 세대에게는 꼬리에서 살을 발라 먹는 게 쫀쫀해 보이거나, 혹은 신기한 내공이 요구되는 음식으로 비치기도 하는 것 같다.

"노 의원님의 높은 공력을 느낄 때가 두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예상 질의서도 만들어드리지 못했는데 즉석에서 정곡을 찌르는 질의를 할 때. 그리고 소꼬리에서 고기를 부스러기 한 점 남기지 않고 기가 막히게 발라먹을 때." 

이들 노회찬 의원실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첫 직장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노회찬은 자상한 아버지 같기도 했다.  

"이것도 먹어 보라고 하고 저것도 먹어 보라며 여러 가지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먹는 법도 가르쳐주시곤 했습니다." 

 


길풍식당에서 노회찬이 소꼬리를 먹는 원칙 중에 첫손에 꼽히는 것이 절대 소금을 쓰지 않는다는 것.  

"소금을 찍어 먹거나 뿌리면 맛이 가리게 된다고 해요. 건강에도 나쁘고. 노 의원님은 종종 우리에게 세 가지 흰 것을 멀리하라고 하셨죠. 쌀밥, 설탕, 그리고 소금."

노회찬이 특히 면 음식을 좋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 길풍식당 특유의 간장에 중면을 비벼 먹는 맛도 그가 이 식당을 즐겨 찾은 이유 중의 하나였을지 모르겠다.

"국숫집을 참 많이 데려가 주셨습니다. 이탈리아 파스타도 무척 좋아했고요. 당신이 파스타를 잘 만든다고 한껏 자랑하시고 조만간 곧 맛을 보여주겠다고 약속도 하셨는데…."

'노회찬표 파스타'를 끝내 먹어보지 못한 젊은이의 시선이 허공을 향해 부옇게 흔들린다.

길풍식당을 나선 일행이 택시를 타고 이동한 2차는 영등포경찰서 부근 먹자골목 안의 해물포차집 죽변항. 경북 울진이 고향인 주인 부부가 10여 년째 죽변항에서 실어온 해물을 내놓는다. 주인 아주머니가 "의원님은 한 5~6년 전부터 오셨어요"라고 알려주며 그가 즐겨 앉았다는 모퉁이 자리를 가리킨다.  
 
이 집은 가까운 이들과 '짱박혀' 술잔을 기울이기에 알맞은 지하를 가지고 있다. 장사가 잘 돼 지하로도 가게를 넓히고 나서 노회찬도 오기시작한 듯 하다고 하니 그 역시 죽변항의 신선한 해물만큼이나 이 호젓한 지하공간을 편하게 여겼던 듯 하다.

그가 즐긴 메뉴는 돌멍게. 겨울철에는 도치알탕도 좋아했다. 계절에 관계없이 마무리 식사로 해물전골라면을 즐겼다. 이미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우리 일행도 그 순서를 따라 소주잔을 기울였다. 남녀 모두 젊은이답게 잘들 마신다. 빈 멍게 껍질에 소주를 채우고 빈 소주잔 위에 잠시 놓아두었다가 마시면 바다 향기가 솔솔 올라온다고 노회찬이 즐겨 권했다고 한다. 그 술맛만큼이나 그가 그립다고 젊은이들이 멍게 술잔을 훌쩍훌쩍 들이킨다. 바다 향기 너머 한 사람의 향기가 흐르는 영등포의 밤.  


* '음식천국 노회찬'은 노회찬재단의 소식지 <민들레>에 실린 글입니다.(☞ 노회찬재단 바로 가기) 

7000명 떨고 있나? 공수처 사용 설명서
  • 장일호 기자
  • 호수 644
  • 승인 2020.01.21 12:32

공수처법 통과까지 23년이 걸렸다.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 약 7000명이다. 공수처 소속 검사의 범죄는 검찰이 수사한다. 정권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시사IN 조남진
지난해 12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이 통과되고 있다.

 

‘검찰’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권력기관’이라는 말이 겨누고 있는 곳은 명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7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2019년 12월30일 국회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수처법)을 언급했다. 공수처법을 “누구나 법 앞에서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평등하고 공정하게 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만큼 오기까지 23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공수처법은 1996년 참여연대 입법청원을 시작으로 15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수처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 핵심 방안이었다. 공수처가 ‘조국 수사’ 때문에 갑자기 도입된 게 아니라는 의미다. 1월9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집권 4년 차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입법이 모양새를 갖춰나가는 중이다.

 

문 대통령은 1월7일 정부로 넘어온 공수처법 공포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속도감 있게, 빈틈없이 준비해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르면 7월부터 공수처 설치·운영이 가능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처럼 공수처 역시 입법·사법·행정에 속하지 않는 별도 독립기구 지위를 가진다. 인권위가 법적 강제성이 약한 ‘권고’로만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반면, 공수처는 검찰이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독점적으로 쥐고 있던 수사 및 기소권을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나마 나눠 갖는다.

7000명 중 5000명이 검사와 판사

일각에서는 이 ‘족보 없는’ 기구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다고 비판하지만, 다른 나라에 공수처와 비슷한 기관이 있는지 사례를 살펴보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김선수 대법관은 변호사 시절인 2017년 <권력과 검찰>(창비)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공수처 자체에 ‘한국적’ 특수성이 있다고 말한다.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면서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막강한 검찰 권력을 개혁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으로 세계에서 입법 예가 없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특수성이 있는 거죠.”

공수처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을 포함해 약 7000명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차관, 국회의원,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판사, 검찰총장 및 검사, 광역시장·도지사, 교육감,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을 망라했다. 퇴직 이후에도 재직 당시 범죄가 밝혀지면 기간 제한 없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가족에는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이 포함되고, 대통령은 이에 더해 4촌 이내 친족까지 대상 범위가 넓어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가 물거품이 된 원인 중 하나로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으로 꼽았지만, 이번에 국회가 통과시킨 공수처법은 국회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공수처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그만큼 강력했다.

 

 

ⓒ연합뉴스
공수처법 표결이 진행되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수사 대상 7000여 명 중 약 5000명이 판검사다. 문 대통령이 말한 ‘특권을 누린’ 집단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일수록 법망을 잘 피해간다. 법조계는 내부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셀프 개혁을 다짐해왔다. 공수처는 그 믿음이 번번이 깎여나간 자리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왔다. 2019년 10월29일 법무부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 2018년 검사를 대상으로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 중 검찰 처분이 이뤄진 사건은 모두 9903건이다. 이중 기소가 이뤄진 사건은 14건, 기소율은 약 0.14%다. 판사에 대한 기소율도 0.16% 정도로 알려졌다.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은 어떨까. 대검찰청 검찰연감에 따르면 비슷한 기간 일반 형사사건 기소율은 34.8%였다.

 

대검찰청은 사건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사건 관계인이 사건 처리에 불만을 품고 민원성 고소·고발을 남발해 각하 처분되는 사건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통계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형사사법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검사는 수사를 한 다음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할 수도 있고 회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검찰 권력은 이처럼 재판을 제외한 형사사법 절차를 지배하는 기소편의주의에서 나온다. 특히 고위공직자 비리와 관련된 인지사건은 처리 기한에 제한이 없다. 이른바 ‘캐비닛’에 넣어둔 사건은 언제든 봐주기 수사나 표적 수사로 변질될 수 있다.

 

검찰·경찰과 더불어 제3 수사기관의 지위를 얻은 공수처는 권한을 나눠 지고 서로를 견제하도록 설계됐다.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검찰과 공수처의 수사 대상 자체가 구분된다. 또 공수처 수사 범위는 형법 제122~133조에 규정된 고위공직자 뇌물 수수, 직권남용, 피의사실 공표죄 등으로 제한된다. 무엇보다 공수처의 기소권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 판검사나 경무관급 이상 경찰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경우에만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수처는 원칙적으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만 갖는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이의가 있을 경우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재정신청 정도를 할 수 있다. 또 공수처 소속 검사의 범죄 혐의는 검찰이 수사하도록 정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2017년 “공소기관은 검찰로 단일화할 필요가 있지만, 수사기관은 복수이면서 서로 견제하는 게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검찰과 권력>).

 

 

ⓒ연합뉴스윤석열 검찰총장이 1월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만난 뒤 법무부 건물을 나서고 있다.

 

공수처가 정권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역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공수처법 제3조 3항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 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수처처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 의결 기준도 높였다. 애초 재적위원 5분의 4 이상의 찬성을 위원 7명 중 6명이 찬성해야 의결 가능하도록 바꿨다. 추천위는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인사 2명, 야당 추천 인사 2명으로 구성되는데, 야당 추천 위원이 후보자를 비토할 경우 의결이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공수처장 임명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공수처 출범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1월7일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장 임명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법을 무력화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수처장은 추천위가 최종 추천한 2명 중에서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검찰에 비해 100분의 1 규모

공수처 규모는 검찰 조직과 비교하면 100분의 1 정도다. 검찰청 구성원은 검사 2100여 명과 수사관 7000여 명인 반면 공수처는 처장 1명과 차장 1명을 포함한 검사 25명 이내, 수사관 40명 이내로 구성된다. 물론 규모가 작다고 해서 파급력까지 작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례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 당시 파견 검사 20명을 포함해 총 60명 규모였다. 하지만 특검이 정해진 기간 내에 단일한 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달리 공수처는 수사 대상과 수사 범위 자체가 훨씬 폭넓다.

 

공수처 조직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사건 인지와 관련해 다른 수사기관과 협력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공수처법 제24조 2항은 검찰이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내용이다. 공수처법 수정안이 공개된 직후인 2019년 12월26일 대검이 입장문과 반대 의견서를 내며 ‘독소조항’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이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 수사가 중복되는 경우 공수처장은 사건 이첩을 요청할 수 있고, 검찰이나 경찰은 이에 따라야 한다. 한 검사는 “‘통보’ ‘이첩’ 같은 표현이 검찰 내부를 자극했다. 칼을 휘두를 줄만 알았지 빼앗겨본 적이 없으니 당황스러울 거다. 검찰 입장에서는 공수처가 눈엣가시인 만큼 견제는 확실히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공수처와 검찰은 필연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기관이다. 공수처법 신설 이유가 곧 ‘무소불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와 전관예우를 통한 사법 거래를 견제하려는 목적과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공수처 등장으로 앞으로 어쩌면 더 자주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 ‘스폰서 검사’와 유사한 사건이 드러날 수도 있다. 다단계 사기범에게 돈 받은 부장검사도, 대학 동창에게 공짜 주식을 받은 검사장도 발붙이기 어려워졌다. 적어도 노골적으로 검찰 내부에서 사건을 은폐하기는 어려워졌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13년과 2014년 부실한 검찰 수사로 인해 2019년 구속되고도 공소시효 만료로 법망을 비켜갔지만 이런 풍경은 공수처법 통과와 함께 이제 ‘과거’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도 아버지가 검사장을 지낸 ‘귀족 검사’ 성추행 사건 당시 감찰을 게을리한 검찰, 공문서(고소장)를 위조하고도 징계를 받지 않은 검사 등 임은정 검사의 내부고발로 드러난 검찰의 ‘선택적 정의’가 공수처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임은정 검사는 공수처법이 통과된 12월30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의 도움으로 검찰의 곪은 부위를 도려내고 건강한 검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적었다.

 

개혁은 그 사회 수준에 맞게 이뤄진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없다. 일단 만들어진 제도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발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필요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월3일 취임사에서 “국민적 염원 속에 통과된 검찰개혁 법안이 법무 현장에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출범하기까지 약 6개월,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등 공수처 설립을 위한 더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 준비 작업은 법무부가 하겠지만 공수처가 독립기구인 만큼 2001년 인권위 설립 때와 마찬가지로 별도로 준비위원회가 꾸려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인회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법률 통과는 검찰개혁의 종착점이 아니라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또 다른 출발점이라고 지적한다(<시사IN> 제638호 ‘패스트트랙 이후의 검찰개혁’ 기사 참조). 실패를 바라는 집단은 개혁 취지가 실무에 매끄럽게 정착되지 않는 빈틈을 노린다. 1월9일 자유한국당 공약개발단은 4월에 치를 21대 총선 ‘1호 공약’으로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공수처 폐지를 내걸었다.

 

 

 

 

신년특집 2부 - 집 있는 사람들의 나라 ② - PD수첩 (1월14일 밤11시10분 방송)

 

 

대한민국 비밀예산 '묻지마 특수활동비' 1조원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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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납금이 특수공작금? 쉬쉬하고 나눠 쓴 정부·국회도 '공범'

11월 28일 한국납세자연맹 회원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특활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11월 28일 한국납세자연맹 회원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특활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 연간 60억원 국정원장 판공비, 퇴임 후 챙겨 가도 ‘모르쇠’   
■ 특별사법경찰 운영해도 힘없는 기관은 특활비 없어 ‘볼멘소리’  
■ 국회는 수년째 말로만 제도 개선 운운하면서 ‘흐지부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양재천변을 따라 타워팰리스·대림아크로빌 등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즐비한 지역에 국정원 소유의 I빌딩이 있다. 이 건물은 지하 5층, 지상 18층 규모로 국정원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12~18층을 사용한다. 나머지 1~11층은 일반 사무실과 일식집, 여행사 등 상가로 임대 중이다. 일반인들은 11층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12층 이상은 출입이 제한돼 있다.
 
그런데 2010년 7월, I빌딩에서는 ‘수상한 공사’가 진행됐다. 823㎡(248평) 규모의 맨 꼭대기층 중 4분의 3가량을 개조하고, 1층부터 18층까지 논스톱으로 운행되는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또 내부는 주거용으로 리모델링을 한 후 유명 크리스털 브랜드 장식품과 고급 집기 등을 들여놓았다. 공간 개조와 인테리어 공사 등 리모델링에 들어간 비용은 10억원이었다. 고급 펜트하우스로 탈바꿈한 이곳은 원세훈(66·구속 수감) 당시 국정원장과 부인 이모(65) 씨가 사용했다. 2011년 원 원장이 내곡동 관저를 두고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도곡동 안가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당시 국정원 측은 “1995년 지어진 기존 국정원장 관저가 너무 낡았고, 빗물이 새 수리 공사를 하고 있다”며 “(도곡동 빌딩은) 임시 관저”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 국정원 관련 적폐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의 수사 결과는 국정원 측의 당시 해명과 달랐다. 검찰은 국정원 적폐청산 TF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분석하는 한편 당시 국정원 예산 업무를 담당한 기조실 관계자 등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검찰은 “도곡동 펜트하우스는 원 전 원장 부인이 지인들과 모임을 갖는 사적 공간이었다”는 국정원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 당시 공사업체를 원 전 원장이 직접 골랐고, 공사 과정은 부인 이씨가 주도한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검찰은 건물 리모델링 공사에 사용된 비용 10억원을 국정원 예산으로 처리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 국정원 예산은 다름 아닌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를 뜻한다. 공사비 전액을 우선 현금으로 지급한 뒤 이를 ‘해외공작금’ 항목으로 회계 처리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회계 서류에 별도의 영수증은 첨부하지 않았다. 도곡동 펜트하우스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2014년에 철거됐기 때문이다. 국민 혈세만 낭비한 셈이다.
 
검찰은 원 원장 재직 때 또 다른 거액의 특활비가 해외로 빼돌려진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2011~2012년 200만 달러(약 20억원)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미국 스탠퍼드대의 한 단체 계좌로 이체됐다. 이 돈 역시 ‘해외공작금’ 명목으로 회계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송금에 관여한 국정원 기획조정실 직원들을 소환해 “원 원장의 지시로 돈을 만들어 미국에 보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 같은 큰 규모의 돈이 공작금 명목으로 외국의 한 대학 단체에 전달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국정원 소유의 I빌딩 전경.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재임 시절 국정원 특활비 10억원을 유용해 I빌딩 15층 전체를 리모델링해 펜트하우스를 만들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국정원 소유의 I빌딩 전경.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재임 시절 국정원 특활비 10억원을 유용해 I빌딩 15층 전체를 리모델링해 펜트하우스를 만들었다.



 

 

원 원장이 자신의 퇴임 후를 대비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 용도로 특활비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원 원장은 2013년 3월 퇴임 후 스탠퍼드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내기 위해 이 돈을 기부했다. 그리고 이 기부금에서 나오는 연간 10만 달러의 이자를 자신의 미국 체류비로 쓰겠다는 계약을 맺은 정황도 나왔다. 원 전 원장이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기부금 원금은 온전히 대학 측에 넘기는 조건에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 원장의 퇴임 후 유학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2013년 당시 윤석열 수사팀이 국정원 댓글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을 출국금지했고, 그의 미국행은 무산됐다. 현재 이 돈은 스탠퍼드대 관련 계좌에 남아 있는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 원 전 원장의 부인 이씨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0만 달러의) 이자까지 350만 달러가 연구소 펀드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명박(MB) 정부 국정원은 원장의 특활비 사적 유용 외에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간인 여론 조작팀(사이버 외곽팀) 활동 비용으로 30억원의 특활비를 사용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 심리전단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으로 구성된 30개팀(3500명)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인건비로 한 달에 2억5000만~3억원을 지급했다.
 
경제부총리 집무실서 1억원 상납 의혹
 
 
12월 4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관계자들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들은 ‘특활비 점검 보고서’를 비공개한 감사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12월 4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관계자들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들은 ‘특활비 점검 보고서’를 비공개한 감사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정권이 바뀐 후에도 국정원 특활비는 주머니 쌈짓돈처럼 쓰였다. 이번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에게 거액의 특활비가 상납됐다. 박근혜 정부 첫 국정원장으로 임명된 남재준 원장은 2013년 5월부터 1년 가까이 자신의 비서실장을 시켜 특활비 중 매달 5000만원을 이재만 당시 청와대 총무 비서관에게 전달했다. 이 전 비서관에게 건네진 특활비는 모두 6억원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병기 전 원장도 동일한 수법으로 청와대로 특활비를 상납했다. 이 전 원장은 당시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을 시켜 매달 1억원씩 총 8억원의 특활비를 당시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문고리 3인방에게 전달된 국정원 특활비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상당부분 건너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활비는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도 전달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 중이다. 2014년 6월 취임한 조 수석에게는 매달 500만원씩 총 5000만원 정도가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근혜 정부 실세 정치인 중 한 명인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도 특활비 1억원이 전달된 정황을 잡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은 최 의원이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낼 당시인 2014년 10월 집무실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영장 청구서에 따르면 이병기 당시 원장의 지시를 받은 이헌수 기조실장이 최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 하지만 최 의원은 이런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그 이전 정부 때도 국정원의 특활비 전용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른바 ‘눈먼 돈’으로 불리는 국정원 특활비는 정보활동의 기밀성을 이유로 그동안 용처가 공개되지 않았다. 몇 차례 비슷한 의혹이 제기된 적은 있었지만 매번 정치권에서 공방만 벌이다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국정원 특활비 중 겨우 1% 정도가 최근 검찰 수사로 베일을 벗고 있을 뿐인데도 일반 여론은 “충격적이다”는 반응이다. 한국납세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제도적 감시와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특활비를 이번 기회에 아예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직 국정원 직원 C씨는 “국정원장의 사적 전용이나 청와대 상납 등 최근 드러난 특활비 사용 행태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며 “과거 진보·보수 정권 할 것 없이 국정원 자금이 본래 목적 외에 정치권·시민단체 등에 어떻게 쓰였는지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면 국민은 진즉 국정원 문을 닫으라고 성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또 “감시를 받지 않는 4000억원대의 국정원 특활비 규모는 눈속임일 수 있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C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종종 언론에 보도가 나오기는 하지만 국정원 예산이 어떻게 구성되고 편성돼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정원 특활비가 대략 40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예산 운용 행태로 보면 베일에 쌓인 돈은 그 배에 달한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C씨의 이런 언급은 국정원 예산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국정원 예산은 본예산과 예비비로 구분된다. 공식 예산인 본예산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특활비다. 특활비는 정보 수집 및 사건 수사와 그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활동을 은밀히 수행하는 정보 조직의 특성상 국정원은 특활비 자체가 본예산으로 편성된다. 일반인들은 일반 부처처럼 국정원 예산 중 일부가 특활비로 편성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국정원 전체 예산이 특활비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서훈 국정원장 역시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2017년 5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서 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 예산이 대부분 그렇게(특활비로) 되어 있지요? 전부 다”라고 물었다. 이에 서 원장은 “예”라며 “국정원은 특활비라는 하나의 항목으로 모든 일반 예산이 다 편성돼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국정원은 본예산 전체가 특활비로 분류돼 있어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거나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회계 처리가 가능하다.
 
국정원 예비비도 실질적인 사용 행태는 본예산인 특활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국정원 예비비의 정확한 명칭은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다. 이 역시 외부의 검증을 따로 받지 않는다. 국정원 예비비 처리 과정은 당연히 정부 일반 부처가 따르는 절차와 다르다. 일반 부처는 예비비가 필요할 경우 그 사유와 금액 등을 담은 명세서를 정부(기획재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국정원 예비비는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라는 이름으로 기재부 예산 내역에 기재만 될 뿐 고스란히 국정원 계좌로 옮겨진다. 마음만 먹으면 예비비 역시 국정원이 ‘눈먼 돈’처럼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국정원 예비비를 특활비와 따로 구분하지 않고 통칭해서 특활비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정원 예산은 전체가 특활비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활비 수십억 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재만(왼쪽),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활비 수십억 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재만(왼쪽),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

문재인 정부의 내년도 국정원 본예산(특활비)은 4630여 억원으로 잠정 결정됐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정부 원안보다 300억원 정도가 삭감됐다. 최근 검찰 수사로 드러난 국정원 특활비 뇌물 상납, 유용 등이 예산 삭감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국회 정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총 4차례에 걸쳐 예산 소위에서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청와대 상납 등 물의가 빚어진 특수공작사업비와 각종 수당을 삭감 내지는 감액했다”며 “국회 차원에서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특활비를 포함해 국정원 예산을 총 680억원 가까이 감액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의 설명대로라면 국정원의 비공식 예산인 예비비에서 380억원 정도를 추가로 삭감했다는 뜻으로 유추할 수 있다. 예비비 규모는 정권을 거치면서 계속 늘어나 현재는 5000억원 규모로 편성돼 있다. 따라서 국정원 총 예산은 1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 C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정원이 하는 일은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국정원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 소관이 아닌 타 부서에서 하는 일은 아예 관심도 갖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자기 월급이 어떻게 짜이는지도 잘 모른다. 매달 지급되는 총액만 알고 있을 뿐 기본급이 얼마인지, 수당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개개인이 받는 월급도 이렇게 관리되는데 대부분 은밀한 정보활동 등에 쓰이는 특활비 등은 어떻겠나. 본예산인 특활비뿐 아니라 예비비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거나 삭감하는 경우는 그동안 별로 없었다. 결산 역시 마찬가지다. 타 부처의 경우 사용한 예비비 명세서를 작성, 기재부를 통해 감사원에 제출하지만 국정원은 대상 기관에서 빠져 있다. 예비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예산의 절반을 넘다 보니 비상금이 생활비보다 더 많은 셈이다. 예비비 편성 원칙상 예측할 수 있는 곳에 쓰여져야 하는데 국정원은 ‘국가 안보상 필요성’을 이유로 그런 원칙에서 항상 예외였다. 그러다 보니 간혹 국회나 시민단체로부터 ‘깜깜이 예산’이라며 비판도 받아왔지만 형식적인 견제만 있을 뿐 별 탈 없이다 넘어갔다. (1조원 규모의) 국정원 예산 전체를 영수증 필요 없는 특활비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C씨의 설명처럼 그동안 국정원 예산은 국회 정보위에서 형식적인 심의만 받고 넘어갔다. 국회 정보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은 “국정원이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 심의 관련 보고서에는 본예산 OOOO억원, 예비비(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 XXXX억원 하는 식으로 액수를 합산해 놓았을 뿐 구체적으로 세부 항목을 하나하나 구분해 기재하고 해당 항목별 액수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이러다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 대한민국 비밀예산 '묻지마 특수활동비' 1조원의 행방
보니 관련 서류라는 게 불과 한두 장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원 예산의 이 같은 처리 방식은 ‘국정원법’과 ‘예산 회계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또 앞서 지적했듯이 국정원 예산 전체가 특활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원 예산이 공적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8월 감사원은 문 대통령 지시로 ‘특활비 집행실태 점검’을 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국정원 예산은 ‘고도의 비밀 유지 필요성’ 등의 이유로 제외됐다. 이와 관련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한 관계자는 “(국정원 예산은) 지출 증빙 서류를 제출할 의무가 없고, 예산·결산 심사도 예산특위가 아닌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만 비공개로 진행돼 용처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활비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특수공작비’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흐름도. 박근혜 정부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를 상납받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흐름도. 박근혜 정부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를 상납받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국정원 특활비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를 접했다. 국정원 특활비 중 국정원장 개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판공비가 매달 5억원 정도라는 것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60억원이나 된다. 국정원장의 연봉이 대략 1억1000만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원장 개인에게 할당된 특활비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MB 정부 당시 국정원 기조실에 근무한 이력이 있는 P씨는 “원장 판공비 내역은 원장 자신과 기조실장, 감사관, 기조실 예산담당 실무책임자 정도만 알고 있다”며 “원장이 받는 월급이나 지급된 법인카드는 판공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과거 일부 국정원장 중에는 퇴임 시 판공비를 반납하지 않고 갖고 나간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퇴임 시 목돈을 챙겨 나가는 것이 일종의 전관예우로 받아들여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월 5억원이나 되는 판공비를 실제로 다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여 그 돈을 다 쓴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슨 명목으로 지출했는지 누구도 따지지 않는다. 또 만에 하나 국정원장 판공비가 바닥이 나더라도 다른 부서의 특활비를 여러 명목을 붙여 끌어 쓸 수도 있어 국정원장의 현금 금고는 바닥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20년 가까이 정보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경찰 관계자 K씨도 국정원장 판공비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정원장이 자신의 판공비로 청와대와 검찰·경찰 등 핵심 기관의 주요 인사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관행이자 미덕처럼 여겨졌다”며 “과거 여의도 정보모임에서는 청와대 수석이나 정부 실세 장관, 여당의 핵심 정치인 등에게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돈이 전달됐다는 확인되지 않는 얘기가 비밀스럽게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K씨에 따르면 특히 총선이나 지방선거, 당내 경선 등 각종 선거를 앞두고 이런 돈이 오고 갔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로는 많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총선 또는 지방선거에서 서울이나 수도권 핵심 지역, 관심도가 집중되는 박빙 선거구를 중심으로 특활비가 지원됐다고 한다. 선거 판세를 알아보기 위한 여론조사도 국정원이 비용만 대거나 필요에 따라 직접 조사를 하기도 했다. 정당 내 경선 때도 국정원이 은밀하게 자금을 대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선거가 끝난 후 당선이나 취임 축하조로 돈을 건네는 일도 많았다. 국정원에서 나오는 돈은 꼬리표가 전혀 붙지 않아 탈 날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정원장이 직접 집행하는 돈은 대부분 ‘특수공작사업비’라는 이름으로 처리됐다고 알고 있다. 조윤선 전 수석이나 최경환 의원이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국정원장이 직접 집행하는 특수공작비에서 처리됐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특활비 중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이 특수공작비다.”
 
올해 국정원 예산안을 심의한 국회 정보위가 삭감한 국정원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국정원 특수공작비였다. 김병기 의원은 “청와대 뇌물 상납 물의를 빚은 특수공작비를 50% 삭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활비의 부적절한 사용이 문제가 된 사례는 드물지만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2009년 11월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출입기자들과의 회식자리서 특활비로 기자들에게 50만원이 든 봉투를 돌려 입길에 올랐다. 그는 2011년에도 검찰 고위간부가 참석한 워크숍서 검찰 간부들에게 200만~300만원씩, 총 9800만원의 특활비를 봉투에 담아 격려금으로 돌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10년 9월, 당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문화부 제2차관 재임 시절 13개월간 1억9000만원에 이르는 특활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개인 유흥과 골프 접대비로 사용됐다는 의혹이었다. 또 2013년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부적절한 특정업무경비 사용이 결정타가 돼 낙마했다. 그는 월 400만원의 특정업무 경비를 개인 통장에 넣어두고 주말에 수차례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 사용을 놓고 ‘김영란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과거 검찰은 중수부가 특활비 가장 많이 챙겨
 
12월 6일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 사진:·임현동 기자

12월 6일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 사진:·임현동 기자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4월 21일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본부 간부 6명, 안태근 당시 검찰국장을 비롯한 법무부 검찰국 간부 3명과 식사를 하면서 법무부 과장 2명에게 1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지검장이 건넨 돈은 특활비에서 나온 것이었다. 최근 1심 재판부는 이 전 지검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상급 공직자가 위로 등을 목적으로 하급 공직자에게 제공하는 금품은 법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적 잣대를 떠나 특활비 사용의 적절성 논란은 여전하다.
 
이런 사례로 볼 때 검찰 역시 특활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흔히 검찰의 특활비는 검찰총장의 활동 자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원래 검찰 특활비는 법무부가 아닌 검찰총장이 검사들의 수사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돈이다. 그러나 인사와 예산권을 쥐고 있는 법무부가 280억원(2017년 기준) 상당의 특활비를 검찰총장에게 모두 귀속시키지 않고 그중 일부를 법무부 장관 특활비 명목으로 ‘유보’를 해왔다. 그래서 검찰 안팎에서는 “장관과 총장이 나눠 가지는 돈”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검찰 고위 인사인 B변호사는 “법무부 특활비는 처음부터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장관이나 법무부 간부들의 몫은 없다”면서 “(법무부 측이) 특활비를 확보하기 위해 검찰 특활비 일부를 관행적으로 다시 가져가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법무부가 검찰에서 돌려받는 특활비는 매년 억대가 넘는 금액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총장이라고 해도 특활비를 자신이 모두 쓰는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일선 지검과 고검에 내려간다. 검찰청의 규모에 따라 금액은 대략 정해져 있다. 수사 기능이 많은 지검이 고검보다 더 많은 특활비를 받는다. 또 같은 지검이라도 검사 수가 많고 사건을 많이 처리하는 서울중앙지검이 가장 많은 금액을 받는다고 한다. B변호사에 따르면 부서에 따라서도 내려가는 특활비 규모가 다르다. 또 수사 부서라도 그 파워와 영향력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폐지된 대검 중수부에 총장의 특활비가 가장 많이 내려간 것으로 안다. 중수부가 정치인·기업인 등 검찰의 핵심 수사를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중수부에는 못미치지만 공안부에도 상당한 특활비가 지원됐다. 대검과 각 지검에 특활비를 지급하고 남은 돈은 총장 활동비가 된다. 과거 출입 기자단에게 밥을 사거나 봉투를 돌릴 때 사용되기도 했다.”
 
특활비는 국정원·법무부·경찰청 등 수사나 정보 수집에 준하는 활동에 필요한 비용이지만 이들 기관 외에도 정부 부처별로 일정액이 매년 책정된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실제로 정부 각 기관에서 특활비로 사용한 금액은 8조4268억원이다. 인구 300만 명이 넘는 인천시의 한 해 예산(8조 3132억원)보다 많다. 광역자치단체의 한 해 예산보다 많은 국민 세금이 특활비로 쓰이는데도 어떻게 쓰이는지 검증할 방법은 없다. 기관별로 보면 국정원이 지난 10년간 특활비 4조6969억원을 사용해 전 기관에서 1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론 국방부가 1조5888억원, 경찰청 1조393억원, 법무부·검찰이 2707억원 상당의 특활비를 썼다. 4개 기관 외에 지난 10년간 1000억원 대 이상의 특활비를 쓴 곳은 청와대(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 경호실)다.
 
지난 10년간 청와대도 1000억원대 특활비 사용
 
12월 10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 사진:김경록 기자

12월 10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 사진:김경록 기자

 
한국납세자연맹이 기재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규모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8000억원~1조원 상당의 규모로 19개 정부 기관에 특활비가 책정됐다. 2017년 특활비는 8939억원이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국정원 4931억원, 청와대 232억원, 감사원 39억원, 국회 82억원, 경찰청 1302억원, 법무부 286억원, 국방부 1814억원, 국민권익위원회 4억2000만원, 국세청 54억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8000만원, 국민안전처 81억원,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 비서실 12억원, 통일부 22억원, 관세청 7억원, 미래창조과학부 59억원, 외교부 8억9000만원, 공정거래위원회 4000만원, 방위사업청 3000만원, 대법원 3억2000만원 등이다. 이들 수사, 정보 수집에 준하는 활동과 큰 상관이 없는 기관들도 매년 특활비가 책정돼 있지만 명확한 기준은 없다.
 
최근 특활비가 문제되자 각 부처는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다. 법무부에 책정된 특활비 중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70억3700만원) 항목은 한국을 드나드는 외국인 중 ‘위해(危害) 인사’를 확인하고 이들의 해외 동선을 추적하는 데 쓰는 예산이다. 감사원의 특활비인 ‘감사활동경비’(30억9600만원)는 공직 사회에 노출할 수 없는 암행 감사 활동비가 들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편사업특별회계상 수탁사업비’(5억1800만원)는 국정원이 대테러 업무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테러단체 관련 우편물을 감시하는 예산으로 사용된다.
 
상대적으로 특활비 책정에 소외된 일부 정부 기관은 그들 대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소위 힘없고 빽 없는 기관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기류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특별사법경찰이 배치돼 식품·의약 관련 수사를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특사경이 문화재 도굴 등을 수사하는 문화재청, 선거 사범을 적발해 조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은 별도의 특활비가 책정돼 있지 않다.
 
정부 각 부처의 특활비 사용의 적정성을 따지는 국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2018년 책정된 국회 특활비 총액은 72억2200만원(예비금 포함)이다. 세부항목은 ‘의정 지원’ ‘상임위 운영 지원’ ‘의회 외교’ ‘사무처 기본 경비(국회의장단)’로 돼 있다. 2017년 특활비 88억800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총액은 15억8600만원 줄었다. 하지만 이 감액분은 ‘특정업무경비’와 토론회·공청회 등 소요경비, 포상금으로 전환돼 실제 감액 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특정업무경비와 포상금은 지출을 증빙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예산에 따른 지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는 특활비를 감액하고 투명한 집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얼마나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국회 특활비 역시 국정원 못지 않게 방만하게 운영돼 왔다는 사실이 우연히 공개된 적이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5년 5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취지의 글을 올렸다. “2008년 여당 원내대표를 할 때 매달 국회 특활비를 4000만~5000만원 씩 받았는데, 그 돈을 현금화해서 쓰다가 남은 돈을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 아내는 그 돈을 대여금고에 모아뒀다.”
 
홍 대표는 그 돈을 자신이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갈 때 경선자금으로 사용했다고도 했다. 당시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지만, 공적인 용도에 써야 할 특활비를 사적으로 부당하게 사용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홍 대표는 시민단체로부터 국회 특활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특활비 제도 개선이 진짜 적폐 청산”
 
11월 21일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김성태 위원장 등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 대한 특활비 수사를 요구했다.

11월 21일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김성태 위원장 등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 대한 특활비 수사를 요구했다.

 
정부와 국회의 특활비 사용 실태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국회에서는 관련 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바른정당·국민의당 의원 10명은 국회 특활비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대표발의자인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개인의 쌈짓돈으로 전락한 정부의 특활비 적폐를 지적하기에 앞서 국회 특활비부터 없애놓고 얘기하자”며 “국회가 먼저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행정부 예산의 투명하고 공정한 운용을 감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회의장은 국회 소관 예산요구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특활비 등 별도의 총액으로 제출하는 항목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국회법 제23조 3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국정원과 국회 등의 ‘묻지마 특활비’를 통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활비 집행 내역을 정확하게 기재하고 이에 대한 증빙자료를 갖추되 비공개 결산을 하는 방향으로 국정원법과 국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법 개정이 실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준표 대표의 언급 등으로 특활비 사용과 관련해 국민적 비난이 거세게 일어난 2015년에도 여야 정치권은 “예결위 내에 특활비 개선 소위를 구성해 집행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적 개선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제도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많다. MB정부 당시 국정원 기조실 직원으로 일했던 P씨는 취재 말미에 “국정원만 때려잡고 끝낸다면 진정한 적폐 청산이라고 할 수 없다”며 소회를 밝혔다.
 
“국정원의 행태가 잘못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모든 비난을 감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국회나 검찰 역시 과거 자신들의 특활비 사용 내역이 적나라하게 국민 앞에 공개된다면 똑같은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적폐청산을 하려고 한다면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특활비 문제를 제대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대수술을 해야 하지 않겠나.”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 대한민국 비밀예산 '묻지마 특수활동비' 1조원의 행방

신년특집 | 4·15 총선 전망] 전문가가 꼽는 21대 총선 키워드 

세대·세력·현역의원 교체 모두 바꿔야 살아남는다! 

민주당 6연승 교두보 마련이냐, 한국당 3연패 사슬 끊기인가
국민 공감하는 공천·보수 단일화 여부에 따라 승패 갈릴 듯


▎20대 국회 후반기 개원을 맞이하여 국회의원들이 본청 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1대 총선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3년 차의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선거이자 차기 대선의 길목에서 치러진다. 2022년 대선주자들의 명운을 가르는 전초전인 셈이다. 어떤 사람은 총선승리를 통해, 또 어떤 사람은 의미 있는 선거패배를 통해 2022년을 향해 달려가게 될 것이다.

21대 총선은 ‘3연승’과 ‘3연패’의 맞대결이다. 아직 한국 정치에 없었던 4연승과 4연패의 2020년 총선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3연승’과 ‘3연패’는 10년을 사이에 두고 반복된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그리고 2008년 총선과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그리고 2018년 지방선거다.

‘3연승’과 ‘3연패’의 2020년 총선은 2016년 이후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와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시험대다. 2020년 총선이 ‘3연승’과 ‘3연패’의 정치지형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지를 결정하는 선거라는 뜻이다.

만약 한쪽의 4연승이라면 5연승(2022년 대선)에 6연승(2022년 지방선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이 말하는 ‘20년 집권’을 향한 정권 재창출의 진입로가 될 수 있는 완벽한 승리가 된다. 한국 정치지형 변화의 완결판이다.

다른 한쪽의 3연패 후 반전의 1승이라면 2연승(2022년 대선) 또는 3연승(2022년 지방선거)으로 이어질 역전의 승리가 된다. 21대 총선승리가 정권교체의 교두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정치지형은 변화를 향해 또 다른 출발점에 선 것이다. 2020년 총선승리가 2022년 대선 승리를 보장하진 못한다. 그러나 총선승리 없이 대선승리를 기약하긴 어렵다. 2022년 대선승리는 같은 해 지방선거 승리와 함께할 가능성이 높다.

21대 총선은 한국 정치와 각 정당의 운명이 걸린, 그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선거다.

그렇다면 21대 총선을 가를 키워드는 무엇일까. 바로 ‘교체’다. 이번 총선의 ‘교체’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세대교체’다. 정치적 기득권 세대를 청년과 젊은 후속세대로 대체하는 세대교체다. 이른바 ‘586세대’가 대표적 교체대상이다.

둘째, ‘현역의원 교체’다. 역대 총선은 대체로 40% 전후의 초선의원을 배출해왔다. 이번 총선은 세대교체 요구와 맞물리면서 그 어느 때 총선보다도 정당들의 현역의원 교체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현역의원 교체와 세대교체는 동의어이자 승부처다.

셋째, ‘세력교체’다. 한국 정치 주류세력은 그동안 군부 엘리트, 관료 엘리트, 산업화 엘리트 그리고 민주화 엘리트로 이어졌다. 민주화 엘리트 이후 한국 정치를 주도할 세력교체의 출발점이 21대 총선이다. 세대교체는 이번 총선 교체의 핵심이다. ‘교체’ 키워드의 21대 총선은 ‘협치의 국민통합과 대한민국 공동체의 회복’을 요구한다. 국민통합의 대한민국 공동체는 공정과 경제적 양극화 해소 그리고 평화를 추구한다. ‘통합, 공동체, 공정, 평화’가 21대 총선의 시대정신이라는 뜻이다.

선거제·국정 지지도가 총선 결정 변수


▎불출마 선언으로 586세대 교체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21대 총선을 결정할 첫 번째 변수는 선거제도다. 이번 총선은 선거제도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요소로 등장하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첫 번째 선거다. 선거제도 변경을 통해 게임의 틀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가 조금이라도 바뀐다면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이 바뀐다. 내용이 같아도 그들의 선택이 표를 통해 의석으로 전환되는 방식이 변경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의 선택이 바뀐다는 건 선거 결과가 바뀐다는 말이다.

선거제도 변경을 둘러싸고 지난 1년 동안 여당과 야당 그리고 군소 야당들이 보여준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21대 총선 결과에 담길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비례성 제고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결국 연동률과 비례대표 의석 비중을 놓고 원칙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합시키는 데 매몰된 ‘4+1 협의체’를 국민은 봤다. 또한 일체의 협상을 거부하며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한 고민을 과연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받은 제1야당도 지켜봤다. 국민은 누가 통합과 공동체 그리고 공정과 평화의 대한민국 미래가치를 더 우선했는지 선거를 통해 평가할 것이다.

두 번째 변수는 대통령 지지도다. 대통령 임기 3년 차의 총선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선거라는 뜻이다. 대선이 ‘미래지향적 선거’라면 총선은 ‘회고적 평가의 선거’였다. 대통령 권력의 3년 차는 대통령이 ‘역사와의 대화’에 빠지느냐, 아니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정책변화의 인사를 통해 반전에 성공하느냐의 기로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필수조건은 후자다.

대통령 지지도는 취임 초 최고점을 기록한 다음 시간이 지나면서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 하락하는 대통령 지지도의 분출구, 즉 대안정당 또는 대안세력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지고 유권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한다면 여당은 임기 후반 총선에서 고전한다.

지난 1년간의 흐름을 보면 ‘국정 안정론’ 또는 ‘정권 옹호론’이 ‘정권 심판론’보다 근소하게나마 상대적으로 앞서는 상황이 계속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늘면서 국민적 공감을 얻어가고 있지만 ‘국정 안정론’과 ‘정권 옹호론’을 아직 넘어서진 못한 형국이다. 결국 총선까지 남은 4개월여 동안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경제에서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문 대통령 지지도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버팀목은 남북 관계다. ‘판문점 남·북·미 회동’으로 하락세였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50%대 초반으로 다시 상승했다. 이후 대통령 지지도는 40% 후반에서 지지와 반대가 엇갈리는 모습이 계속된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북핵 진행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대통령 지지도, 나아가 총선 결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최근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향해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보복 행동을 다짐하는 건 총선 즈음에 극적 상황 반전의 가능성을 보이는 대목이다.

2018년 지방선거 전날의 북·미정상회담은 대통령 임기 초반의 지방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선거결과를 사실상 결정했다. 당시는 만남 자체가 중요했지만 이젠 실질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과 내용의 비핵화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부담이다.

대통령 지지도를 결정하는 두 번째 요소는 경제 상황이다. 대통령 임기 후반 총선이 ‘정권 심판론’인 이유는 악화된 경제 상황 때문이다. 민생회복과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필요했다고 주장한 정책(소득주도성장, 주52시간제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내년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고민이다. 역시 사람들이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관건이다.

지금 모습으로는 한국당 선거 승리 불가능


▎2016년 4·13 총선 대구 지역 후보자 전원이 새누리당 공천 파동과 관련해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21대 총선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당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여당과 제1야당이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총선 결과에 결정적이다. 민주당은 변화와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핵심이다. 임기 후반 청와대 친위부대 구성의 유혹을 당의 입장에서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이는 공천과정에서 국민들이 확인한다. 민주당이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대통령과 적절한 긴장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당 내부 활력으로 연결시켜 역동적인 집권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당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진정성 회복과 국민공감’이다. 이게 되어야 집권 3년 차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 심판으로 이어진다. 국민들이 그들의 정책대안 제시능력과 개혁공천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한국당은 현 정권의 안보·경제·일자리·교육 등의 정책실패를 규명하고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문제 해결 능력이다.

문제는 한국당 비호감도다. 60%가 넘는 한국당의 비호감도는 변화가 없다. 비호감이 호감의 두 배가 넘으면 선거승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당의 비호감도는 한때 호감도의 5배까지 이른 적도 있다. 지금 모습으로는 한국당의 선거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제1야당의 근본적 변신이 필요한데 ‘헤쳐모여 방식의 통합’이든 ‘당명 변경’이든 뭐든 계기가 필요하다. 그 계기의 출발은 ‘공안검사 출신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알려진 황교안 대표의 변신과 정치력이다. 황 대표가 탄핵의 정치적 책임을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정리하고 개혁공천을 통해 한국당이 국민들에게 대안으로 인식되도록 해야 총선승리를 바라볼 수 있다.

군소야당들도 나름 변화가 필요하다.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고, 호남 군소야당들은 다선 중심의 개인 경쟁력을 지키며 호남에서 민주당의 대안정당임을 보여줘야 한다. 변화와 혁신의 새로운보수당은 보수통합의 압력을 어떻게 극복하며 개혁보수로서 자신의 영역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21대 총선 승부는 공천부터 시작이다. 우리나라 총선은 공천이 마무리되면서 승부의 절반을 사실상 결정한다. ▷어느 정당의 공천이 더 국민적 공감을 얻었는지 ▷어떤 정당의 공천이 국민적 요구를 반영했는지 ▷어느 정당의 공천이 반성과 희생의 공천이었는지 ▷어떤 정당의 공천이 개혁적이며 미래지향적이었는지 등 공천은 총선승부의 전초전이다. 동시에 공천과정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해 원심력을 줄이느냐도 관건이다.

2016년 총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과 최경환 의원을 앞세워 이른바 ‘진박공천’을 강행했다. 일여다야(一與多野) 대결의 야권분열로 ‘180석 이상’을 기대했지만 공천파동은 새누리당을 122석의 제2당으로 만들었다. 반면 민주당은 어땠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3선 이상 중진의원 중 하위 50%, 재선 이하 의원 중 하위 30%에 대해 공천배제를 단행했다. 정청래, 이해찬 의원 등이 공천 탈락했다. “100석도 불가능할 것”이라 했지만 제1당에 올랐다. 민주당은 수도권 122석 중 82석을 차지하며 새누리당을 압도했다.

文 지지율 반토막 난 20대, 캐스팅보트 쥐다


▎2017년 대선 유세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청년들과 프리허그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2000년 총선도 마찬가지다. 당시 계파보스였던 김윤환 고문과 구 민주당계의 이기택 고문을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했고 당내 5선 이상 의원 중에서는 김영구·양정규·박관용 의원 등 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천탈락 시켰다. 대신 오세훈과 원희룡과 같은 지금 정치권에서 주목받는 당시 새로운 피 ‘386’ 인재들을 공천해 총선승리를 이끌었다. 성공사례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국민공감과 감동의 공천이다.

21대 총선은 수도권과 PK가 결정한다. 총선은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하면 253개의 선거가 동시에 진행되는 선거다. 253개 지역구의 승부가 지역과 권역으로 묶이고 전국단위로 합해져 정당별 의석수로 나타난다. 여당은 호남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보일 것이다. 개인 경쟁력을 가진 군소야당 현직의원들과 경쟁하겠지만 지난 총선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이다. 한국당은 대구·경북지역에서 우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TK지역 강세를 부산·울산·경남 지역까지 이어갈 수 있느냐다. 이른바 PK목장의 결투다. 여야가 엇비슷하게 나눠 가져온 충청 지역도 승부처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충청 지역에서 19대 총선은 10:12, 20대 총선은 12:14였다. 중원을 장악해야 천하를 제패한다.

승부의 분수령은 선거구의 절반이 걸린 수도권인데, 여야 1:1 구도를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수도권에서의 여야 맞대결 여부는 보수재편 또는 보수통합과 관련된다. 많은 선거구에서 500~1000표 차로 승부가 엇갈리는 수도권에서 보수 단일화 여부는 총선 승부에 결정적이다.

21대 총선은 청년이 결정한다. 세대교체의 핵심은 청년이다. “공식 논의한 바 없다”거나 “설익은 총선 공약”이라며 한발 뺀 모습을 보였지만 민주당은 모병제와 도시의 한 구역을 청년 맞춤형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의 “청년신도시” 공약을 제시했다. 한국당도 “청년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고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청년과 여성 그리고 학부모들로 구성된 “2020 총선 디자이너 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2002년 이후 우리 정치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작용해온 세대구도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세대구도는 2002년 대선 때부터 뚜렷해진다. 당시는 2030세대의 노무현 후보와 5060세대의 이회창 후보의 대결이었다. 이후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2030세대에 40대가 추가되면서 진보성향의 20~40세대와 보수성향의 6070세대가 맞붙는 양상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50대의 선택이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세대구도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바뀐다. 20대의 대통령 지지도가 가파르게 빠지면서다. 20대는 지난 대선에서 60% 이상 문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다른 세대에서 문 대통령 지지도가 크게 변하지 않은 걸 보면 20대의 변심이 여당에겐 고민이고 야당에겐 기회다. 20대의 대통령 지지가 3040세대보단 낮고 5060세대보단 높아 총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청년에 매달리는 이유다. 2019년 12월 17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다. 21대 총선, 이제 시작이다.

-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mpark@dongguk.edu

“역적 문희상, XX야”…또 욕설·몸싸움 난무 ‘동물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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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거센 반대 속에 가결됐다. [뉴스1]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거센 반대 속에 가결됐다. [뉴스1]

지난 4월의 ‘패스트트랙 동물국회’가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연됐다. 국회의장석 주변은 2시간 가까이 아수라장이 됐고 욕설이 난무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표결을 막기 위해 의장석 주변을 점거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이를 뚫기 위한 문희상 국회의장,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뒤섞여 몸싸움을 벌이면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 선거법’ 통과
한국당 의원들 의장석 주변 점거
문 의장, 1차 진입 시도는 실패
1시간 대치 후 2차서 저지선 뚫어

야당 의원들 유인물 던지며 항의
한국당 ‘비례정당’ 창당하기로

오후 5시45분 문 의장이 선거법 개정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할 때 혼란은 절정에 달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의장석 주변의 벽을 두드리며 문 의장을 향해 “역적 문희상! 독재 앞잡이! 아들 공천!”을 외쳤다. 의장석으로는 ‘독재가 시작됐다’고 적힌 유인물이 날아들었다. “XX야”라는 욕설도 나왔다.
 
이날 본회의장 주변은 오후 3시로 예정된 개의 시각 전부터 전운이 짙게 감돌았다. 의장석이 설치된 단상은 오후 2시55분부터 사실상 봉쇄됐다. 한국당 의원 수십 명이 비장한 표정으로 단상 주변을 에워싸고 인간 장벽을 만들었다. 손에는 ‘대한민국을 밟고 가라’ ‘헌법 파괴 연동형 선거법 절대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었다.
 
김태흠 한국당 의원은 본회의장 관람석의 기자들을 향해 “이런 저희 모습은 불법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날치기도 정도껏 하라”(장제원 한국당 의원)는 성토도 이어졌다. 본회의장에 입장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석에서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의장실 주변도 내내 어수선했다. 한국당 의원들이 “임시국회 회기 결정을 첫 번째 안건으로 처리해야 함에도 선거법 표결을 1번 안건으로 올린 건 국회법 위반”이라고 항의하면서다. 1시간 넘게 본회의가 열리지 않으면서 본회의장은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오후 4시32분 문희상 의장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면서 ‘1차전’이 시작됐다. 본회의 개의 예정 시각을 1시간30여분 지난 시점이었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희상 사퇴. 문희상 물러가라”를 외치며 단상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당장 나가” “이게 대한민국 의장이냐” 등 고성이 터져 나왔다. 의원석에 앉아 있던 민주당 의원들은 “의사 방해”라며 항의했다.
 
문 의장은 방호 요원 20여 명에 둘러싸여 한국당 의원들의 저지선을 조금씩 밀어냈지만 ‘1차 진입 시도’는 실패했다. 의장석까지 15m 정도를 남겨두고 문 의장은 10분 만에 회의장 뒤편으로 철수해 한쪽 의원석에 주저앉았다.
 
문 의장이 물러선 뒤 1시간 가까이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회의장 맨 뒤 한 켠에는 문 의장과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의원석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단상 근처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각자 자리를 잡으며 ‘이중 전선’이 형성됐다.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사이 한국당 소속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문 의장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문 의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오후 5시30분쯤 문 의장이 의장석 재진입을 시도하며 ‘2차전’이 벌어졌다.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힘으로 한국당 의원들이 만든 인간 방어벽을 무너뜨리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국당 의원들은 “밀지 마” “으악. 깔려 있다고…”라고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지만 저지선은 약 7분 만에 뚫렸다. 문 의장은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떠밀리다시피 하다 오후 5시37분쯤 의장석에 앉는 데 성공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희상 역적”을 외치며 들고 있던 유인물을 의장석으로 던지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문 의장은 곧바로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란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본회의를 개의하겠다”고 선언했다. 의장석 옆에 서 있던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게 뭐예요.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라며 고성을 연이어 내질렀지만 문 의장은 심 원내대표를 향해 “그만해. 이제 그만해”라고 했다.
 
문 의장이 선거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치려 하자 혼란은 극에 달했다. “선거법 날치기는 안 된다. 좀 말이 되게 (일을) 하라”(심 원내대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입법차장은 질서 유지를 해달라. (한국당 의원들은) 단상에서 내려가 달라”는 문 의장 주문 이후 의장석 주변의 혼란은 국회 방호원들에 의해 물리력으로 정리됐다.
 
오후 5시45분 선거법은 표결 절차에 들어갔다. 민주당과 군소 야당 의원들이 참여한 전자표결 이후 문 의장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의장석으로 욕설과 유인물이 날아들었다. “역적 문희상”이란 한국당 의원들의 고성도 회의장 안에 울려 퍼졌다.
 
문 의장이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역공을 취하기도 했다. 김정재 한국당 의원(경북 포항북)이 자신이 발의한 포항지진특별법 제안 설명을 포기하자 문 의장은 “김 의원이 제안 설명을 안 한다니까 꼭 기록해 놨다가 포항 분들에게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선거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한국당은 예고한 대로 ‘비례정당’ 창당에 본격 착수하기로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이미 실무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으며 지도부 결정이 나오는 대로 속도감 있게 창당 절차를 밟아 선관위 등록을 마칠 계획”이라며 “이르면 내년 1월 중 비례정당을 출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영익·정진우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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