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회의원과 미국·영국의 국회의원들

의원 수·세비 줄이는 영국·미국 정치인들… 연금 만들고 세비 늘린 한국 정치인들

글 : 윤정호  미 예일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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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상·하원 의원들이 국민들과 고통을 나누겠다는 법안만 20개가 의회에 계류 중
⊙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제2 의원회관 신축 강행하는 대한민국 국회
⊙ 한국 국회의원들, 미국과 영국 의회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애써 외면
2009년 1월 2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고위 백악관 스태프의 봉급을 동결하며 공무원과 로비스트 간 접촉에 새로운 규제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개혁을 하려면 위기를 놓치지 말아라(Don’t Waste a Crisis).” 빌 클린턴 전(前) 대통령의 보좌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람 이매뉴얼(Rahm Emmanuel) 시카고 시장의 말이다. 국가적 위기는 대규모 개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다. 올해로 3년을 맞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많은 정치인이 이매뉴얼과 의견을 같이해 왔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대대적인 제도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2009년 1월 출범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위기를 정부의 권한과 크기를 키우는 호기로 삼으려 한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 제도 개혁을 통해 복지 혜택을 확충하고 고속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리고자 한다. 경제위기의 주범인 금융과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환경 분야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려 한다. 이러한 행보는 야당인 공화당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오바마의 정책이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재정적자를 늘려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캐머런의 영국 보수당 정권은 위기를 작은 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지렛대로 이용하고자 한다. 지난해 5월 정권을 잡은 캐머런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노동당 정부가 남긴 1조 파운드에 육박하는 국가 채무를 해소해야 한다며 강력한 긴축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예산 삭감은 물론 대대적인 인력 감축 및 기구 축소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에드 밀리밴드(Ed Miliband) 신임 당수를 비롯한 노동당 의원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정 긴축이 실업난을 가중시키고 경제난 극복을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람 이매뉴얼(Rahm Emmanuel) 시카고 시장은 국가적 위기는 대규모 개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책 U턴이 진행 중이다. 작은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청사진으로 2008년 2월 집권한 한나라당은 경제위기와 지지도 추락의 이중고(二重苦) 속에 변신을 했다. 큰 정부의 전도사가 된 것이다. 국가 부채가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초대형 토목 사업과 방대한 복지 정책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민주당은 큰 정부 만들기의 방향과 속도가 불만스럽기만 하다. 민주당은 강력한 조직 노동운동이 존재했었고 일국 케인스주의 정책이 가능했던 시대의 역사적 산물인 서유럽식 복지 국가를 21세기에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이에는 한 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영국에서는 정치인들이 ‘국민과 함께’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다. 경제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대다수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자는 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자신들이 누려왔던 특혜와 특권을 솔선수범해서 줄이려 한다. 단 한 푼이라도 혈세를 아끼기 위해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정부 예산과 정치 비용을 삭감하는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더위도 잊고 있다.

 
 
  세비 자진 삭감에 나선 美 의원들
 
  미국에서는 여야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국민들의 고통을 나눠 지려 하고 있다. 우선, 오바마는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공무원들은 여당의 핵심 지지층이다. 게다가 전국공무원연합(American Federation of Government Employees)과 전국 재무부공무원 노조(National Treasury Employees Union) 등 관련 단체들은 이 조치에 대해 격렬히 반발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의지는 단호했다. 민생 경제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주가는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많은 대기업은 호황을 누렸지만 9%가 넘는 실업률과 2%에 못 미치는 성장률, 그리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가 때문에 국민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공무원들과 공기업 직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오바마의 결정에 한 몫을 했다.
 
  경제난 이후 “내가 낸 세금으로 공무원들만 해고 걱정 없이 호의호식한다”는 시각을 갖게 된 미국인들. 상무부 경제분석국(Bureau of Economic Analysis)이 2000년대 들어 공무원들의 수입이 민간 부문 피고용자들보다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한 뒤 부정 여론은 더 악화됐다. 이에 따라 오바마는 2010년 8월 정무직 공무원들에 대한 상여금을 동결시켰다. 일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임금 인상폭을 1.4%로 제한했다. 세 달 뒤에는 아예 현역 군인을 제외한 대통령 이하 모든 공무원의 임금을 2년 동안 동결하도록 했다.
 
  둘째, 의원들은 의회 예산과 경비를 절약하려 안간힘이다. 지난해 중간 선거에서 의회 예산 삭감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화당. 새해가 밝자마자 다수당 권한이양팀(House Majority Transition Team)의 수장인 그레그 월든(Greg Walden) 의원 명의로 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의회 예산 삭감안을 발의한 것이다. 하원 세출위원회 예산은 2010년 회계연도 기준 9%를 삭감하고 하원 지도부 예산을 포함한 나머지 의회 예산은 일괄적으로 5%를 줄이도록 했다. 이를 통해 3500만 달러의 혈세를 아끼고자 한다.
 
  팀 그리핀(Tim Griffin), 크리스 깁슨(Chris Gibson), 그리고 조 월시(Joe Walsh) 등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십 명의 의원은 의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이들은 일과가 끝난 뒤 의원 사무실 내 소파나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목욕은 레이번 의원회관(Rayburn House Office Building) 지하의 의원 체련실에 딸린 샤워장에서 하고 식사는 구내식당이나 자판기를 이용한다. 단 1달러라도 세비를 아끼려는 것이다. 주택난으로 고통받는 지역구민과 고통을 나누겠다는 의지다.
 
  셋째, 의원 특권을 사양하고 스스로 세비를 깎았다. 다수의 의원은 의원 의료보험에도 가입을 하지 않고 있다. 거액의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의보제도는 대표적인 의원 특권이다. 의원들은 10개의 보험 상품 중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용 의료 시설은 물론 워싱턴 D.C의 정부 의료시설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빌 존슨(Bill Johnson), 스티브 케이겐(Steve Kagen), 그리고 폴 고사르(Paul Gosar) 의원 등은 의보 가입을 거부한다. “많은 국민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도 못 받고 있는데 나 혼자만 특권을 누릴 수 없다”는 게 골자다.
 
  동시에 세비를 줄이기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1월 개브리엘 기퍼즈(Gabrielle Giffords) 의원은 5% 세비 삭감안을 발의했다. 3월에는 앤 커크패트릭(Ann Kirkpatrick) 의원이 29명의 의원과 함께 5% 삭감안을 제출했다. 같은 달 제이미 버틀러(Jamie Beutler) 의원은 한 발 더 나갔다.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상·하원 의원들의 봉급 10% 삭감안을 내놓았다. 공직자들이라면 응당 국민과 고통을 나눠야 한다는 이유였다. 의회정치 전문지인 《더 힐》(The Hill)에 따르면 6월 29일 현재 같은 취지의 법안은 20개에 이른다. 이들 법안 중 하나라도 의결될 경우 미 의회는 1933년 이후 처음으로 세비를 자진 삭감하게 된다.
 
 
  의원 수를 줄인 영국
 
‘제2의 그리스 신세’를 피하기 위해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이 강력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가운데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연립정부가 2010년 5월 13일 각료들의 임금을 5% 삭감하고 향후 5년간 동결하는 내용을 포함한 재정감축안을 발표했다.
  영국의 경우 집권 보수당이 고통분담의 리더십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첫째, 고위 공무원들의 임금과 특혜를 줄였다. 의원과 장관직 겸직이 허용되는 영국. 이에 따라 장, 차관들은 의원 세비 이외에도 적게는 약 2만6000파운드 많게는 약 13만 파운드의 연봉을 받아왔다. 2010년 5월 캐머런은 자신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들의 봉급을 5% 전격 삭감했다.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연간 28만5000파운드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는 삭감 조치는 캐머런의 임기 동안 지속될 예정이다.
 
  아울러 공무원의 관용차 사용을 대폭 줄이도록 했다. 지난해 5월 물러난 노동당 정권은 80여 대의 장관 전용차를 포함해서 171대의 관용차를 운용했다. 이를 위해 연간 830만 파운드의 예산을 투입했다. 캐머런은 이러한 관행에 철퇴를 가했다. 관용차를 3분의 1로 줄이고 전용차 이용 대상을 수상과 국방부, 외무부, 그리고 내무부 장관으로 제한했다. 다른 고위공무원들은 가급적 지하철과 버스, 철도 등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차 사용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카풀(Car Pool)을 이용하도록 했다.
 
  둘째, 의회 예산과 의원 특혜를 줄였다. 2009년 5억 파운드에 달했던 의회 예산을 10% 삭감하도록 명령했다. 이를 위해 의원들의 의정홍보비용을 폐지했다. 의원 1인당 1만 파운드를 제공, 지역구민들에게 의정 활동을 알릴 수 있도록 했지만 비용을 오용하는 사례가 잦다는 이유였다. 의회 구내식당과 바에서 판매하는 식음료에 대한 보조금도 철폐했다. 시중가의 절반만 내고 식사와 음료를 즐겼던 호시절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캐머런은 보조금 철폐를 통해 연간 550만 파운드를 절약하고자 한다.
 
  연금과 주택구입 보조금 개혁도 추진 중이다. 2009년 설립된 의회윤리감사기구(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가 주도하는 연금개혁의 골자는 특혜시비 근절이다. 의원 부담금을 인상하고 연금 수령 액수를 공무원연금 수준으로 낮추려고 한다. 의원들만 특별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일부 의원들이 부동산 투기에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모기지(Mortgage) 제도를 고쳤다. 지원 금액을 줄이는 한편 등원하는 데 90분이 안 걸리는 곳에 사는 의원들에게는 지원금 제공을 중단했다. 숙소가 필요할 경우 의원 사무실이나 숙박 업소를 이용하게 했다.
 
  셋째, 의원 수를 줄였다. 캐머런은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 보수당 전 당수의 뒤를 좇아 의원 수 감축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손쉽게 재선이 가능한 안전 의석을 확보한 채 법안 상정도 하지 않으며 특권만 누리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와 관련, 미 예일대의 로버트 달(Robert Dahl)은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On Political Equality)에서 미국의 경우 의원 1인당 국민 수가 67만3000명인 데 비해 영국은 9만1000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캐머런은 자유민주당 당수이자 부수상인 닉 클렉(Nick Clegg)과 함께 의회선거제도 및 선거구법안(The Voting System and Constituencies Bill)을 발의했다. 의원 수를 조정하는 한편 투표 제도 변경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고 선거구를 재획정해서 일부 지역이 과대대표(Overrepresentation) 되는 현상을 줄이고자 한 법안은 11월 하원을 통과했다. 3개월 뒤에는 여야 의원들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상원도 개혁안에 손을 들어줬다. 상원 통과 이틀 뒤에는 왕실재가(Royal Ascent)를 받았다. 이로써 650명이었던 하원의원 수는 600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연간 1200만 파운드의 혈세를 절약하게 된 것이다.
 
 
  역주행 중인 우리나라
 
2009년 4월, 의원회관 리모델링과 지하 5층, 지상 10층 규모의 제2 의원회관 신축공사 기공식이 열렸다. 사진은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제2 의원회관 기공식에서 첫삽을 뜨는 모습.
  우리나라는 어떤가. 첫째, 고위직 공무원을 포함한 공무원 임금을 인상했다.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친 국민고통지수가 노무현 정부 시기보다 악화된 7월 초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위기가 끝났다는 이유를 들어 임금 인상을 지시했다. 여당도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정권 후반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은 공무원에서 나오기 때문에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대통령과 장, 차관 등 고위직 공무원은 조치에서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은 무시됐다.
 
  부실 공기업 직원들에 대한 상여금 잔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채가 212조원에 달한 공기업 22곳이 지난해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한 돈은 1조746억원이다. 직원 1인당 평균 1450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2009년의 성과급 총액인 7338억원보다 46.5% 늘어난 수치다. 작년 말 부채가 125조원이었던 LH는 1인당 평균 191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같은 해 1조7874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한국전력공사도 직원 1인 평균 1960만원의 보너스를 제공했다. 무분별한 성과급 지급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노력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둘째, 국회의원들의 씀씀이는 헤프기만 하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발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2009년 4월, 의원들은 의원회관 리모델링과 지하 5층, 지상 10층 규모의 제2 의원회관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2011년 7월 현재 공사비는 2424억원. 당초 1804억원이었던 비용은 지하주차장을 증설하는 바람에 껑충 뛰었다. 지난해 5월에는 국회 본관 옆에 257평 규모의 한옥을 신축했다. 같은 달 18일에서 20일까지 3일간 열린 G20 국회의장회의 행사를 위한 접견실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를 위해 들어간 세금은 41억2800만원이었다.
 
  국회 예산은 증가 일변도다. 2010년 11월 국회는 2011년도 예산으로 5564억원을 요구했다. 기획재정부는 421억여 원을 삭감했지만 국회심의과정에서 다시 32억원을 늘렸다. 전년도 대비 15.5%나 늘어난 수치다. 의원 정책홍보 유인물 비용은 1인당 800만원이 늘어 2000만원이 됐다. “외교가 아니라 외유”라는 비판을 받아온 의원외교 예산도 20.5%나 폭증한 93억원을 편성했다. 공무수행 출장비 역시 2억7000만원 늘었는가 하면 일부 의원들이 개인 홍보비나 개인 자금으로 유용한다는 의혹을 받아온 정책개발비는 91억원이 편성됐다.
 
  셋째, 연금을 신설하고 세비를 올렸다. 지난해 2월 국회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지원금을 1억9600만원 인상하는 한편 헌정회지원법을 개정했다. 전직 의원 중 65세 이상, 1년 이상 의원 생활을 한 사람에게 매월 13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사실상 의원 연금이 신설된 것이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전과 유무, 그리고 다른 연금 수급 여부와 관계없이 전원에게 지급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여론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단 하루 만에 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에서도 찬반 토론을 생략한 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의결했다. 표결에는 단 2명의 의원만이 반대했을 뿐이었다.
 
  세비도 5.1% 올렸다. 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파동과 전국청원경찰친목회의 입법로비 수사 등으로 극한 대립을 거듭하다가 2010년에도 법정 예산안 통과 시한을 못 지킨 여야 의원들. 하지만 그들은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 도발을 했던 11월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었다. 수당과 입법활동비를 포함한 세비를 1억1300만원에서 1억1870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미국의 고통분담 리더십의 숨은 조력자들
 
  미국의 고통분담 리더십에는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많은 시민단체가 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이들로 하여금 자기반성과 솔선수범에 나서도록 해왔다. 2003년 노먼 아이선(Norman Eisen) 등이 창설한 책임과 윤리 시민모임(Citizens for Responsibility and Ethics)은 주로 공화당 의원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클린턴 행정부 관료들을 고소해서 유명세를 탔던 사법감시회(Judicial Watch)는 리버럴 성향의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의 권한 남용과 비윤리적 행위를 모니터한다. 정부낭비반대 시민모임(Citizens against Government Waste)은 “보다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정부 운영 실현”의 모토를 내걸고 정부 기관들의 예산 낭비와 실정을 살핀다. “GAP”라는 약자로 더 잘 알려진 정부책임성 프로젝트(Government Accountability Project)는 1977년 설립된 뒤 지금까지 기업과 정부 기관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 관행들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들을 보호해 왔다. 정부 계약 과정의 비리를 찾아내는 정부감시프로젝트(Project On Government Oversight)와 로비스트와 로비단체들을 추적하는 책임정치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는 활동 못지않게 장기간 구축해 온 꼼꼼한 데이터 베이스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시민단체들은 언론 플레이의 달인들이다. 치밀한 조사를 통해 수집된 자료로 뒷받침된 주의·주장을 언론에 제공해서 비판 여론을 환기시킨다. 정치인들로 하여금 여론이 두려워서라도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낭비 요소를 줄여서 국민의 지지를 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벤치마킹 좋아하는 한국 정치인들, 왜 미·영 의원을 따라하지 않을까
 
  물론 미국과 영국의 고통분담 리더십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실효성 없는 생색내기”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일부 진보 단체들은 의원들의 의회 기거를 예산 절감과는 거리가 먼 정치 쇼라고 몰아붙인다. 전기료와 수도세를 내지 않는 무전취식(無錢取食)이라고도 폄하한다. 캐머런의 의원 수 감축도 도마에 올랐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피터 프레스턴(Peter Preston)과 전 외무부 장관 잭 스트로(Jack Straw) 등은 개혁이 적자를 줄이는 데는 큰 기여를 못 한 채 민주주의만 후퇴시킬 것이라고 꼬집는다.
 
  곧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94년 중간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공화당. 당시에도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혈세 낭비를 막고 청렴 정치를 추구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톰 딜레이(Tom DeLay) 원내총무 등 많은 수가 결국 부정부패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존 메이저(John Major)의 보수당 정권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1993년 “근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s)”는 구호를 내걸고 도덕재무장 운동을 추구했건만 메이저 본인을 비롯,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조너선 에이켄스(Jonathan Aitkens) 등 보수당 의원들은 스캔들에 휘말렸다.
 
  보다 근본적이고 강도 높은 개혁을 방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영국의 개혁 조치들 중 눈에 띄는 것은 불법 로비에 대한 강력한 규제책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개혁 과정에서 월스트리트의 밀실 로비에 휘둘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지 불법 도청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캐머런은 언론과 불미스러운 유착 관계를 가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도청에 개입했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월드지의 편집장 앤디 컬슨(Andy Coulson)을 언론담당 보좌관으로 중용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과 영국에서 진행 중인 자정(自淨)과 자숙(自肅), 고통분담의 시도들이 부럽기만 하다. 미국과 영국 정치 사례를 드는 것을 즐겨 하고 두 나라 정치인들을 벤치마킹하기 좋아하는 여야 정치인들. 하지만 현재진행 중인 ‘국민과 함께’ 프로그램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할 뿐”이라며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게 될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내는 선량들. 그러나 자기희생과 무한헌신의 정치력을 보여달라는 들끓는 여론에 대해서는 귀를 열 줄 모른다.
 
  대한민국 민주화 25주년을 맞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모두 있다. 대한민국 유권자는 자신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적어도 나누려는 지도자를 찾고 있다. 관용차를 3분의 1로 줄인 캐머런 영국 총리,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 봉급 10% 삭감을 주도하는 미 제이미 버틀러 의원과 같은 사람이 출마하면 찍어줄 텐데.⊙
 
영국의 고통분담 리더십에는 보수·진보가 없다
 
  영국 보수당의 관용차 개혁은 보수와 진보의 합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9월 캐머런은 개혁의 영감을 3월 출간된 크리스 멀린(Chris Mullin) 노동당 의원의 수기(手記) 《풋힐스에서 본 영국 정치》(A View from the Foothills: The Diaries of Chris Mullin)에서 얻었다고 고백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노동당 내에서도 급진파로 꼽히는 멀린. 그는 토니 블레어 전 수상에 의해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뒤 장관 전용차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발견한다. 장관 전용차의 주당 이용비는 기사에게 지급되는 시간 외 수당과 연료비, 주차비 등을 제외하고서도 864파운드에 이르렀다. 더 황당했던 것은 차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한 주에 최소 704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 이런 규정 때문에 멀린은 3000파운드의 벌금을 내야 했다. 4주 동안 전용차를 타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멀린의 경험담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제도를 근본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캐머런으로 하여금 관용차를 운영하는 정부차량관리국(Government Car and Dispatch Agency)의 예산 280만 파운드를 삭감하도록 했다. 또 공무원들이 기차 이동 시 1등 객실을 이용 못 하게 하는 등 교통경비를 대폭 줄이도록 했다. 수상 관저에서 의회까지 걸어서 등원하며 모범을 보였다.

의원 1명당 보좌진 9명 … “국회엔 세금 7억 쓰는 회사 3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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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특권 언제까지<상> 
여의도 정가에는 “국회 의원회관에 가면 세금 지원을 받는 300개(의원 수)의 작은 회사가 몰려 있다”는 말이 있다.
 

미국·영국·일본 등 6개국 비교하니
보좌진 지원액 미국 다음 많은데
세비 2.6% 올리고 8급 1명 늘려
입법 효율성·신뢰도는 6개국 꼴찌
“체질 안 바꾸면 행정부 견제 못해”

1억원이 훌쩍 넘는 연봉을 받으며 개인 사무실을 포함해 매년 수억원을 지원받고, 9명의 보좌진을 거느리고 있는 국회의원은 작은 기업에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런 국회의원들이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세비를 2.6% 인상하고, 보좌 인력을 한 명 늘렸다. 과연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어느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을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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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진 지원 유럽 선진국 앞서=국회도서관이 2016년 발간한 『국회의원직 한눈에 보기』에 수록된 보좌진 급여표 등에 따르면 한국 국회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과 비교했을 때 의원 보좌진 지원 액수면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였다.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라 한국 국회는 의원 1인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 1명 ▶계약직 인턴 2명 등 총 9명을 둘 수 있다. 이들의 지난해 기준 연간 보수(급여+상여금)는 4급 7750만9960원, 5급 6805만5840원, 6급 4721만7440원, 7급 4075만9960원, 9급 3140만5800원. 지난해 기준으로 의원 1인당 보좌진 9명(인턴 2명 포함)의 급여 합계는 4억4000만원가량이었다.
 
반면에 영국 하원은 14만7000파운드(약 2억1400여만원, 런던 지역구 기준), 독일 의회는 23만8956유로(3억700여만원), 프랑스 하원은 11만4048유로(1억4600여만원)로 나타났다. 국비로 의원 한 명당 3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는 일본도 1753만6800엔(1억7000여만원)이었다.
 
미국(하원 94만4671달러, 10억3000 만원)을 제외하면 한국이 일본이나 유럽


[출처: 중앙일보] [단독] 의원 1명당 보좌진 9명 … “국회엔 세금 7억 쓰는 회사 300개”
강국 을 앞섰다. 이번에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을 바꿔 내년부터 인턴을 2명에서 한 명으로 줄이는 대신 8급 비서를 1명 증원하면서 보좌진 지원 액수는 더 늘게 됐다.
 
◆의원 한 명에게 연 7억원 국고 지원=세비도 높은 수준이다. 세비는 수당과 상여금, 여비로 구성된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1인당 1억3796만원. 매달 1149만원꼴이다. 이번에 세비를 2.6% 인상하면서 한국 국회의원의 내년 연봉은 올해보다 200여만원이 많은 약 1억4000만원이 된다.
 
한국 의원들이 받는 월 급여(1149만원)는 수치상으론 미국(1582만원), 일본(1255만원)보다는 낮은 수준이며 영국(912만원), 프랑스(914만원)보다는 높다.
 
그러나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2015년 발표했던 ‘정부 경쟁력 2015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보수 수준을 1인당 GDP로 환산했을 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한국 의원들에겐 세비 말고도 예산으로 지원하는 돈이 또 있다. ‘의정활동 지원 경비’가 지난해 1인당 9251만원(월 770만원)이었다. 매달 15일이면 사무실 운영비(50만원), 차량 유지비(35만8000원), 차량 유류대(110만원)가 나온다. 정책자료 발간비(108만3330원), 입법 및 정책 개발비(186만4500원), 공무수행 출장비(37만5830원), 정책자료 발송료(38만1510원) 등도 신청할 수 있다.
 

세비와 지원 경비를 합치면 의원 본인에게 지급되는 금액만 지난해 약 2억3048만원이다. 여기에 보좌진 지원금 4억4000만원을 더하면 6억7000여만원이 된다. 새로 늘어난 8급 비서 인건비를 감안하면 내년에 의원 한 명에게 국고에서 지원하는 예산 규모는 7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국회 전체로는 2100억원가량이다.
 
의원들은 정치후원금도 모금할 수 있다. 후원금 한도는 연간 1억5000만원이지만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으로 늘어난다. 의원들을 가리켜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효율성과 정치인 신뢰는 꼴등=기업의 매출이 높으면 금융비용을 갚고 나도 이익이 남는다. 국회의 생산성이 높으면 세금 지원이 아깝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국회는 만성 적자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각국의 제도·산업·인적자원 경쟁력을 분석한 ‘국제정보통신보고서 2016’에 따르면 ‘입법기구 효율성’에서 한국은 139개 국가 중 99위였다. WEF가 전 세계 경영인 1만4000여 명을 설문조사한 항목 중 ‘입법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인가’에 대한 응답 결과였다. 보좌진 인력 비교 대상으로 삼은 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6개국 중에선 최하위였다.
 
WEF가 올해 펴낸 ‘국제경쟁력지수 2017-2018’ 보고서의 ‘정치인 신뢰’ 항목에선 137개국 중 90위였다. 순위는 ‘정치인들의 윤리 기준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각국 경영인의 응답 결과로 정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인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해소하려면 입법부의 권한 강화가 불가피하다”며 “국회가 바뀌지 않으면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요구까지 힘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채병건·김록환 기자 mfemc@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단독] 의원 1명당 보좌진 9명 … “국회엔 세금 7억 쓰는 회사 300개”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 그리고 검은 돈

[삶은경제] <블랙머니>를 보고,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을 읽자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 그리고 검은 돈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담을 넘는 고전적 수법 대신, 영화에서나 나오는 섬세한 전략을 바탕으로 완전범죄를 기획했다. 경비를 매수해 현관문과 금고를 열었다. 일정기간 금고 주인 행세를 하다, 금고를 사겠다는 자에게 금고를 되 팔고 유유히 현관으로 걸어 나왔다. 

기획의 핵심은 경비원의 확실한 매수다. 도둑이 금고를 털고, 되 판 뒤 현장을 떠날 때까지 전체 범행을 조력할 경비원이 없다면 애초 불가능한 기획이다. 이런 도둑질이 성공한다면, 그 무용담은 당연히 책과 영화로 회자될 것이다. 보란 듯 우리 앞에 한 편의 영화 <블랙머니>와 한 권의 책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홍성준 저, 도서출판 레인북)이 나왔다. 

누가 현관을 열었나 : 노무현 정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인 2003년 7월 15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관계기관 10인이 참석한 비밀회동이 열린다. 재경부 금융정책국 변양호 국장과 추경호 과장, 금감위 김석동 정책국장 등 금융당국 핵심들과 이강원 행장 등 외환은행 인사들, 당시 외환은행 자문사인 모건스탠리 관계자, 그리고 법률가들이 참석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끌던 청와대도 이 비밀회동에 행정관(주형환)을 보냈다. 노무현 정부 출범 5개월 만에 이들이 굳이 호텔에서 비밀스럽게 모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날 이들은 금산분리원칙이 서슬 퍼런 나라에서 감히 론스타라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은행을 갖겠다고 나선 문제를 의논한다. 론스타는 부동산과 골프장 등 다양한 비금융자산에 2조 원 이상을 투자한 펀드로 산업자본에 해당 돼 은행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의 비밀회동 직후인 2003년 9월 4일,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갖겠다는 공식 요청(동일인 한도 초과 보유 승인 신청)을 한국 정부에 제출하고 9월 26일 승인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해당여부를 심사하지 않았고, 회계법인 확인서는 거짓으로 제출됐으며, 론스타의 동일인 재무제표도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MBC 보도로 폭로된다.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는 론스타 펀드에 투자한 한국인 론스타 임직원들을 폭로했는데, 이들 중에는 10인 비밀회동 멤버인 김석동의 처조카와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의 딸도 있다. 끝이 아니다. 외환은행 인수 승인 직후인 2003년 9월 30일부터 다음달 30일(인수자금납입만기일)까지 해외에서 국내로 모두 스물 세 번의 달러 송금이 이뤄졌다. 이 중 열다섯 번의 송금을 원화로 계산하면 10억 원 단위로 맞춰진다. 사모펀드 뒤에 숨은 이 검은머리외국인의 실체는 아직도 모른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조짐을 보이는 <블랙머니>를 본 독자들은 영화 속 관련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리라. 영화가 당시 청와대와 실세를 간접적으로만 묘사하는데 비해, 홍성준(현 약탈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씨가 쓴 책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은 그들의 실명과 혐의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이른바 '팩스 5장'으로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조작해서 멀쩡한 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몰고 간 사람들, 관련자의 죽음 등 론스타 대한민국 입성기의 거친 윤곽들이 나온다.  

누가 탈출을 도왔나 : 이명박 정부 

이어지는 론스타 탈출기. 여느 사모펀드처럼, 이들도 단시간 기상천외한 방법들로 외환은행, 외환카드의 골수를 빼먹고 한국시장에서 철수를 준비한다. 2006년 1월 21일, 사모펀드의 엑시트(인수기업 매각) 시점은 인수 후 3년을 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추진을 발표한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이를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약탈자본과 결탁한 초대형 먹튀 사건으로 규정했고 투쟁을 강화한다. 검찰이 론스타게이트의 수사에 나선 것도 이 시점이다. 같은 해 6월 비밀회동 멤버인 변영호 전 국장이 구속됐고, 김석동 등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수사과정에서 투기자본과 정부 간 유착 혐의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2008년 권력은 이명박 정부로 넘어간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던 HSBC가 2009년 가을 인수를 포기했고, 하나은행이 새로 등장한 권력을 등에 업고 외환은행 인수에 나서 2012년 인수 작업은 끝났다. 탈출기의 하이라이트는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론스타의 지분매각을 승인할 정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얻을 수 없는 징벌적 매각을 요구하면서다. 이미 산업자본임이 확인된 만큼 보유지분을 장내매각토론해서 더 이상의 국부유출을 막으라는 요구였지만, 금융위원회는 다시 론스타의 손을 들었다. 

홍성준의 책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은 론스타, 맥쿼리 등 사모펀드로 대표되는 약탈자본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무대로 벌인 행적들과 공모자들의 실체를 상세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이들의 약탈수법과 여기에 가담한 공범자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부유출 게이트" 

론스타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정부가 열어 준 금융시장의 정문으로 들어와, 이명박 정부가 끝나기 1년 전 당당히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만 끝난 스토리가 아니다. 론스타는 현재 한국 정부에 5조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금융위원회는 징벌적 매각을 결정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고 하나금융으로부터 5조 원의 인수대금을 챙겨 갈 수 있도록 론스타의 탈출을 도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된 금융당국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한민국을 뜸과 동시에 한국정부의 방해로 매각이 늦춰졌다며 5조 원이 넘는 손해액을 투자자국가분쟁중재(ISDS) 요구액으로 청구한다. 5조 원은 지금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같은 규모다. 외환은행 인수 후 8년 2개월 동안 이들은 키코(KIKO)같은 고위험 파생상품을 예금자들에게 팔았고 그렇게 얻은 수익을 다시 주주(라는 이름의 자신)들에게 고배당해 제 주머니를 채웠다. 지분매각을 포함해 이렇게 한국에서 챙긴 돈이 4조7000억 원이다. 

ISDS마저 승소할 경우 이들이 한국과 최종정산하게 될 수익 규모는 어떤 외국자본도 꿈꾸기 힘든 기록적인 수준이 된다. 그래서 론스타 게이트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부유출 게이트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절망의 도돌이표, 문재인 정부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야하고,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이 대통령이 됐다. 신임 대통령이 임명한 초대 금융위원장 최종구. 국회 정무위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외환은행 인수 승인과 먹튀 방조를 당시 금융위원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반성을 요구한 질문에 돌아 온 대답. "지금도 그때 상황이면 그렇게 판단하겠다." 청문회장 곳곳에서 탄식이 쏟아졌지만, 후보자는 당당했다.  

이 문제적 장면은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론스타 사태에 대한 반성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단지 과거 잘못에 대한 부정이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3월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에 진행 중인 ISDS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은행 인수 자격 문제를 더는 다루지 않겠다고 한 정황을 담은 소송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론스타의 은행인수 자격을 인정할 수 없어야 싸울 수 있는 소송에서 이를 포기하다니! 국민세금 5조 원이 걸린 소송이 진행 중인 판국에 금융당국의 수장으로 임명된 사람의 입에서 "그 판단은 옳았다"는 말이 나온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정부는 사실상 5조 원 소송 포기나 다름없는 이 의혹과 관련해 국회나 언론에 어떠한 설득력 있는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퍼즐맞추기 : 론스타, 은산분리 폐지, 대주주자격심사 완화, 사모펀드 확대
  
문재인 정부는 출범 1년여 만에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이유로 은산분리원칙을 사실상 폐기하더니, 한 발 더 나아가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 자격 심사 기준도 대폭 완화했다. 결과적으로는 금융 산업 전체의 건전성과 금융공공성을 위협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런 모습은 본질적으로 16년 전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심사에 임했던 노무현 정부의 태도와 흡사하다.  

문재인 정부 초대 민정수석 조국은 법무부 장관 임명을 앞두고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사모펀드에 투자한 이유를 묻자 "주식은 안 되지만 펀드는 '가능'하다고 해서"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정수석이 주식 투자는 못해도, 사모펀드 투자는 가능한 나라라는 말이다. 론스타 게이트의 핵심의혹, 권력 실세로 추정되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실체를 여전히 밝히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것이 가능한 나라, 권력자들이 사모펀드에 숨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청와대나 조 전 장관은 몰랐을까?  

판단하기 힘들다면, <블랙머니>를 보고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을 읽자. 사모펀드가 보장하는 고도의 익명성 뒤에 숨어 정책 결정에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위관료와 정치인을 밝혀내자는 것이 <블랙머니>와 <한국의 약탈자본과 공범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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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현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풀뿌리신문 기자로 출발했지만 정의당에서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조직국장으로 일하며 조합원들과 함께 경제 팟캐스트 ‘삶은경제’를 제작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일에 관심이 많다.

국민 뒤통수 친 우리 안의 '이명박'을 만나다

[리뷰] MB 정권 시절 과오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두 편, <삽질> 그리고 <졸업>

19.11.13 10:43최종업데이트19.11.13 10:43
 
 상지대 사학비리에 맞선 학생들의 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

상지대 사학비리에 맞선 학생들의 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 미디어나무

 
과거 쓰라린 기억을 다시 되뇌이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 7일 개봉한 <졸업>과 오는 14일 개봉을 앞둔 <삽질>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학교가 망가지고 4대강 국토가 파헤쳐진 아픈 역사를 다룬다.

'지난 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기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을 뒤흔드는 '적폐'들의 실체를 목도하는 동시에 그들의 비리와 만행에 용감하게 맞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두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졸업>, 거대 사학비리에 맞선 학생들의 10년 투쟁사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은 '비리의 온상' 구 재단 복귀에 맞서 10년간의 길고 긴 투쟁 끝에 대학 정상화라는 결실을 이룬 상지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993년 문민정부 사학비리 1호로 법정구속되었던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은 MB 정권 2년 차에 학교 이사진으로 복귀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박근혜가 집권하던 2014년 끝내 상지대 총장으로 돌아왔다. 김문기의 복귀는 구 재단의 손을 들어줬던 당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암묵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비극이었다. 

지금은 총장에서 해임된 김문기 전 이사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던 시절 상지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축소판 혹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의 회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학교와 학생들을 상대로 숱한 비리와 전횡, 탄압을 벌여왔다. 

당시 학교측은 김문기의 복귀를 반대하는 학생, 교수들에게 무기 정학, 파면 등의 중징계를 남발하며 전방위로 압박했고 1993년 이후 달라진 대학 마크를 과거 김문기가 학교를 좌지우지했던 구 시대 것으로 되돌리는 등 김문기 우상화 작업에만 몰두했다.

 
 사학 비리에 맞선 상지대 학생들의 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

사학 비리에 맞선 상지대 학생들의 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 미디어나무


 
MB 정권을 등에 업은 김문기 세력의 연이은 횡포와 무능으로 상지대는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에 오르는 불명예까지 떠안게 되었지만 당시 상지대 집권 세력 중 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이는 없었다. 이 때도 학교를 살리겠다고 나선 이는 학생들과 몇몇 양심있는 교수들 뿐이었다.

상지대 투쟁은 비리 사학, 재단에 맞서 확실한 승리를 거둔 몇 안 되는 사례라는 점에서 한국 인권 투쟁사에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상지대가 비리 재단을 몰아내고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 재단의 잔혹한 탄압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연대와 신뢰를 보낸 학생들이 있었다. 

상지대 민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대다수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김문기 퇴진과 더불어 부모님이 피땀 흘려 번 등록금을 객관적으로, 중립적으로 쓸 이사들이 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내 민주화라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했다.

그토록 그리던 '상지대 정상화' 이후 이제 홀가분하게 학교를 떠날 수 있겠다고 하던 학생들에게 비리 사학을 몰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10년간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상지대 민주화 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 곳곳에 내재된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지난 시절의 과오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영화 <졸업>이다. 

<삽질>, 4대강 망치고도 책임지지 안 지는 사람들

비리 재단이 학교를 망쳤던 상지대에 학내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건 학생들이 있었다면, MB정권 실세들에 의해 황폐화된 4대강에는 12년간 대운하 사업의 실체와 4대강 사업의 참상을 고발한 '4대강 독립군'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 후보시절부터 지금까지 대운하,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추적하는 탐사 보도 기사를 내보냈던 <오마이뉴스>가 제작을 맡은 <삽질>은 22조 2천억 원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사업의 진실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불릴 정도로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사업은  '4대강 살리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유역을 초토화 시켰고, 이로인해 강의 수질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녹조로 뒤덮인 4대강을 두고 '녹조라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MB정부 시절 앞다투어 '4대강 사업 전도사' 역할을 자청하던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기 시작했고, 황폐화된 4대강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MB정부 당시 22조 2천억원의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

MB정부 당시 22조 2천억원의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 오마이뉴스

 
4대강을 망치는 데 일조를 했다는 증거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 주역 혹은 부역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데에는 책임을 묻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꿋꿋이 4대강 사업 진실을 알리기 위한 취재를 진행했고, 침묵하는 '4대강 부역자'들을 향해 용맹하게 돌진하여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영화가 완성된 지금도 거의 매일 4대강에 나가 꾸준히 4대강 사업 관련 탐사보도를 진행하는 '4대강 독립군' 김병기 감독, 김종술, 이철재, 정수근 시민기자의 헌신적인 저널리즘이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던 <삽질>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대운하, 4대강 사업을 향한 이 전 대통령의 욕망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욕망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MB에게 표를 던진 우리 안의 이명박, 내 안의 이명박을 돌아보게 만들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추적하는 <삽질>은 오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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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압박에 굴복한다면 나라도 아니다

[한반도 브리핑] 한미동맹, 지속 가능한가
방위비 압박에 굴복한다면 나라도 아니다
하노이회담 이후 북미협상이 교착되면서 남북관계도 거의 단절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고, 북한이 미국에게 자신의 선제적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를 제시하는 새로운 셈법을 요구한 연말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탄핵과 대선 국면에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북미 협상의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는 않은 채 한국에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약 6조 원을 요구하는 등 동맹의 새로운 셈법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한국 정부의 외교통일 분야 전체 예산이 5조 1000억이었고 여성가족부 예산이 1조 700억 원 수준이었다. 

상징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위한 예산의 3배 이상을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트럼프의 미군 소요 플러스 50% 공식에 따르면 한국은 70조를 부담해야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새로운 동맹 셈법은 단순히 비용의 문제를 넘어서 기존의 한미동맹 혹은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의 기대를 철저하게 붕괴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가 미국 오바마 정부와 추진한 전략동맹의 기초는 안보와 경제 및 가치의 선순환적 관계였다. 그런데 트럼프의 미국은 민주주의의 전범도 아니고 자유무역 등 기존 국제규범의 수호자도 아니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확대할 때는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무역전쟁을 진행하는 것처럼 안보와 경제를 연계시키지만, 동맹의 안보적 기여를 이유로 동맹에게 경제적 특혜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시각에서 동맹은 미국 민중을 착취하며 공짜 안보를 누려왔으며 이제는 그에 대한 보상 혹은 부채를 갚아야 할 의무를 질뿐이다. 동맹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다면, 그것은 자동차 수출에 대한 관세 부과 면제나 유예처럼 강압을 자제하는 부정적 혹은 소극적인 것이다.  
 
동맹 딜레마로 보자면, 트럼프 정부의 새로운 셈법은 주한미군의 철수라는 방기를 위협하면서 미군을 '용병'으로 쓰라는 요구와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여 미중 경쟁에 연루될 위험을 감수하며 (냉전시기의 베트남 파병과 비교하면) 자비를 쓰는 미국의 '용병'으로 참여하라는 요구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웨이 사용 금지의 압박은 한국의 미래 경제발전에 대한 통제이고, 유엔사 강화는 한국의 미래 주권에 대한 잠재적 개입이자 훼손이다.  
 
일본의 식민지 역사 사죄 거부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은 일체 언급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협력의 공동이익을 강조하고 지소미아 연장을 압박하는 것 역시 일본의 식민통치와 관련된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과거)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민주주의의 현재)을 부정하는 동시에 한국의 경제적 발전권(미래)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다.
  
이러한 압박의 근거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라는 것이고 공유하는 가치의 근본은 민주주의인데,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가치의 공유가 갈등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음을 웅변한다. 적어도 선출된 권력이 (비록 미국 선거인단 제도의 특수성 때문에 표의 왜곡이 심하더라도) 민의를 대변하다고 보면, 기존의 글로벌리즘과 대립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민주주의의 요구가 기존 동맹의 문법을 거부함을 의미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과의 동맹이 예산에 대한 민주적 통제나 국익을 결정하는 주권적 권리에 우선할 수는 없다. 미국의 국익을 미국 자신의 (아무리 왜곡되었더라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하듯이 한국의 국익도 한국이 결정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두 나라의 민주주의 혹은 민중이 군부나 워싱턴-서울의 엘리트 네트워크를 우회해서 진정으로 민주주의 가치의 공유가 경제적, 안보적 이익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본적도 사실 없다. 예를 들어, 사드배치와 지소미아 등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한국의 정치적 위기 속에서 공개적, 민주적 논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진행된 것이었다.  
 
오바마 임기 말기 대법관 임명 시도를 공화당 의회가 거부한 사례를 기준으로 보자면, 한미 양국의 동맹 관리자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우회 혹은 훼손한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이나 일본의 수출규제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주지는 못하면서, 더 나아가 한미 FTA 재개정이나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한 무차별적인 관세부과의 무역전쟁을 실시하면서, 동맹의 새로운 셈법을 압박해서는 기존의 한미 전략동맹은 물론 한미관계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압박에 굴복한다면 나라도 아니다. 동맹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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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교수는 2002년부터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외교와 국제정치를 연구‧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로 '정치적 현상의 기원'을 중심으로 군부 정치 개입의 기원을 탐구하기 시작해 미국 패권의 기원과 근대 국제관계의 기원으로 연구 지평을 넓혔고, 한미 동맹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윤동호 교수 "공수처, 한 마리 괴물보다 세 마리 괴물이 서로 싸우게 해야"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국민대 법과대 윤동호 교수.<br />/김영민 기자

국민대 법과대 윤동호 교수. /김영민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검찰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린다. 검찰 입장에서는 공수처 설치가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설치를 통한 힘의 분산이 과도한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여론은 반대를 앞선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지난 10월 18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1.4%, 반대는 41.2%로 집계됐다. 앞서 올해 1월 10일 리얼미터가 tbs(교통방송)의 의뢰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매우 찬성 48.3%, 찬성하는 편 28.6%)이 76.9%, ‘반대’(매우 반대 10.5%, 반대하는 편 5.1%)가 15.6%로 나타났다. 

공수처 설치 주장이 등장한 것은 1996년. 하지만 이후 23년이 지나도록 검찰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부터 퇴임 때까지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자체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본질적인 검찰 권한 축소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윤동호 국민대 법대 교수(51)는 “공수처 설치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검찰 스스로 자초한 일일 뿐 (검찰이)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2011년 형사정책연구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의 정당성과 필요성’ 논문을 발표하는 등 공수처 설치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법학자 중 한 명이다. 11월 6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국민대 교수 연구실에서 윤 교수를 만났다.

-현재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공수처 설치법안이 올라와 있지만 본회의 통과가 불투명하다. 차라리 기존 제도를 개선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검찰이 자체적으로 내놓는 개혁안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한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수십 년을 봐 왔다. 검찰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한다. 외부에서 강제로 검찰을 개혁해야 할 상황까지 왔다고 봐야 한다. 검·경수사권 분리안부터 보자.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1차 수사개시권과 종결권을 경찰에게 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프레임을 잡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그마저도 불완전한 수사와 기소의 분리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등 특수사건은 여전히 검사의 직접 수사 대상 아닌가. 또 막강한 검찰권력이 나오는 핵심은 ‘독점적 영장 청구권’이다. 그런데 이것은 개헌을 통해서만 바꿀 수 있다. 설령 개헌을 하더라도 이 조항을 개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이 차지하는 위치는 막강하다.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나. 국회 법사위 위원 18명 중 10명이 검사 출신이다.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검사도 다수 있다. 이들이 검찰에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지 않나.” 

-그럼에도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준다는 것은 또 다른 막강한 권력기관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나는 오히려 공수처가 수사와 기소 권한을 모두 가져야 한다고 본다.”

-백혜련 의원안보다 더 나아간 주장 같은데…. 

“분명 수사와 기소 분리원칙에는 반(反)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에 대한 적발과 처벌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다른 일반 범죄와 달리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고위공직자는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으로 자신의 범죄를 덮을 수 있다. 또 일반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돈을 들이거나 내부 커넥션을 통해 대형 로펌의 유능한 변호인단을 꾸릴 능력이 있다. 그들만을 상대로 수사하는 공수처에는 좀 더 막강한 권력을 줘 대응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수처가 또 다른 막강한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 경찰에게 일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면 경찰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 등은 검찰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불과하다.” 

-공수처가 설치되더라도 그 안에서 업무를 담당할 사람들의 수사와 기소 역량이 기존 검찰 특수부 검사와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나지 않을까. 

“그 지적은 옳지 않다. 공수처의 검사와 수사관은 검찰 조직에서 상당 부분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검찰수사는 검찰 수사관들이 대부분 한다고 봐야 한다. 검사는 수사한 결과물을 검토해 부족한 점을 보강하도록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경찰과도 비교해보자. 경찰은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서 사건을 처음부터 정리해 기소·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한다. 흩어져 있는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유·무죄 판단에 필요한 증거를 모으는 작업은 애초에 경찰이 해온 일이다. 현재도 전체 형사사건의 95%를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검찰이 다루는 사건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게다가 검사는 경찰이 이미 잘 정리해 넘긴 사건을 토대로 기소여부를 판단하니 더 나아간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리포트를 쓴 사람보다 그 리포트를 베낀 친구가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처럼 말인가.

“그렇다. 애초에 경찰과 검사의 역할이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역할만을 보고 무조건 검사가 수사역량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공수처의 독립성·중립성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공수처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재 나와 있는 공수처법안은 국회에서 설치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지명한 자를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국회가 더 강하게 개입하면 검찰총장·경찰청장보다 대통령의 영향을 덜 받게 할 수 있다. 다만 권력기관의 권한 오·남용 가능성은 내재적으로 갖는 한계다.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괴물 1개(검찰)를 갖는 것보다 서로 견제하는 괴물 3개(검찰·경찰·공수처)를 갖는 게 오히려 우리 사회에 유익하지 않을까. 물론 권력기관에 대한 최종 통제는 결국 시민사회의 몫이다.” 

-우리가 차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 등을 보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 건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막상 개점휴업 사태가 올 수도 있는데.

“한 해에 한 건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사건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그동안 은폐돼온 일들이 많을 뿐 공수처가 개점휴업 상태가 될 정도로 사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또 공수처가 개점휴업이 된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의 윗물이 맑아졌다는 이야긴데, 그건 좋은 일 아닌가. 공수처가 신설되면 그동안 숨어있던 암수범죄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더이상 권력을 이용한 은폐가 불가능하고 언젠가 범죄가 적발되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고위공직자 사이에서 확산된다면 범죄예방 효과도 있을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091029001&code=940301&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top#csidx6bcfdbef37057aeb5e823121d3580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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