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표 벽 넘으면 ‘의제정당’ 꽃핍니다

등록 :2020-02-13 05:00수정 :2020-02-1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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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연동형비례 도입 첫 선거 맞아
여성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
지역·이념 아닌 개별의제로 도전
거대정당 맞서 선거연대 논의도
21대 국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특정 정책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의제정당의 국회 입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바라본 국회 본회의장의 야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1대 국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특정 정책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의제정당의 국회 입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바라본 국회 본회의장의 야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이 열리고 있다. 저 문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건 70만표. 새로운 꿈을 꾸는 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준연동형비례제가 도입되는 첫 선거를 앞두고 의제정당을 내세우는 다양한 작은 정당들이 그 주인공이다.

여성주의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한 ‘여성의당’이 오는 15일 중앙당 발기인대회를 연다. ‘기본소득당’은 비례후보 4명, 지역구 후보 2명이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직접 교육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교육당’도 창당을 준비 중이다. 기성정치 대신 ‘플랫폼 정당’과 ‘3040세대’를 내세우는 ‘시대전환’은 지난달 창당선포식을 하고 당원 모집에 들어갔다. 시대전환의 창당선포식과 토론회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찾는 등 기성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기존 정당과 가장 다른 점은 목표가 ‘디테일’하다는 것이다. 정의당이 전반적인 ‘진보’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올해 국회 진입을 노리는 작은 정당들은 ‘기본소득’ ‘기후환경’ ‘여성’ 등 정당이 개별 사안으로 다뤘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여성의당 창당에 함께하고 있는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새로운 선거제도가 마련해준 가능성에 주목했다”며 “2030세대들이 여성주의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어젠다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결사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창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원재 ‘시대전환’ 공동대표는 “그동안 정당에서 정강정책은 중요하지 않고 정치인 개인만 중요했다. 정당에 의제가 담기지 못하는 상황을 이번 선거법 개정을 통해 한걸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수 대 진보’ ‘산업화 대 민주화’의 진영 다툼에서 벗어나, 유권자 자신이 관심을 갖는 사안에 목소리를 낼 정당을 찾을 시기가 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을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역시 득표율만큼 의석을 받는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아직 100% 득표율이 반영되지 않는 탓에 ‘준연동형’이란 딱지가 붙어 있지만 이전보다는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국회에 진출할 기회가 열린 셈이다.

특히 이들은 이전 선거제와 달리 정당득표율 3%라는 기준을 넘어섰을 때의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한 정당이 3%를 득표하면 이전 총선에서는 1석만 받았지만, 바뀐 제도에서는 3~4석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정당 2~3곳만 연합해도 입법 발의 요건인 국회의원 10명을 채울 수 있다. 3%를 넘기면 작은 정당의 발언권이 이전보다 훨씬 커지는 것이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신생정당의 돌풍도 이들의 희망을 키우고 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아이슬란드의 해적당 등은 이미 오래된 서구 양당정치에 균열을 낸 바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공화당도 사회당도 아니었지만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은주 소장은 “여성의당은 온라인을 통해 20대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선거전략을 세우면 80만~100만표 정도 득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내놨다. 이원재 대표는 “총선 전까지 국회의원을 영입해 앞번호 기호를 받을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이번에 국회에 깃발을 꽂아야 (연동형비례제하에서 정당으로서) 오래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원내 진입장벽인 정당득표율 3%의 벽은 생각보다 높을 수 있다. 유권자 70만표 이상(20대 총선 정당득표율 기준 73만여표)을 받아야 하는데, 20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0.76%를 받았고, 민중연합당은 0.61%에 그쳤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한국의 양당정치가 아직 살아 있어서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을 심판하려면 민주당에 표를 주고, 정부를 심판하려면 한국당에 표를 주는 정치공학이 여전하다. 다양한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이유로 작은 정당들은 활로 모색을 위한 선거연대 등도 논의하고 있다. 12일 녹색당과 시대전환, 기본소득당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득불평등, 기후위기, 기술변화로 인한 일자리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소득제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당리당략과 국고보조금을 위한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책 중심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색정당·군소정당을 넘어 유니콘정당으로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원내에 진입한 정의당은 청년정당인 우리미래당과 녹색당 등에 선거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채진원 경희대 교수는 “3%라는 문턱을 넘으려면 단일 의제정당 간 네트워크나 응집력이 도모되어야 한다”며 “거대정당이 위성비례정당을 만드는 상황에서 소수정당이 손해 보지 않으려면 몸집을 키워 전략적으로 호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지역구를 제외한 미미한 의석(47석)을 놓고 경합하기 때문에 의제정당·군소정당이 빠른 속도로 지분을 넓힐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신 교수는 “유럽에서 20년째 나온 현상을 보면, 이주자·난민·성소수자 등 제한된 이슈에 총집중한 극우정당이 기존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밀어내고 성공한 비결 역시 비례제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어 “수십개 정당의 포스터가 붙을 텐데, 유권자들이 충분하고 올바른 정보를 갖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당체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한국 정치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고 짚었다.

이완 황금비 기자 wani@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28044.html?_ns=t1#csidx3cc5fa7a2a3fdce9a8aae49815fa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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