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핵 못하면 국회 해산까지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16-11-30 17:35
[2016년 12월 01일자 23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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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탄핵 못하면 국회 해산까지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표현이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발언한 것에 따라 사실상 조기 퇴진 가능성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대통령의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는 말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의 요구와 달리 명확하게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국회에 공을 넘김으로써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회에서는 거국중립내각과 특검, 탄핵소추 등에 대해서 각 정당들과 계파들 간의 복잡한 정치셈법에 따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국민들의 촛불이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국민들의 목소리가 뚜렷하고 강력하게 전해지면서 정치권의 입장이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특검법이 통과됐고, 일부 비박계 의원들의 탄핵소추 찬성을 계기로 탄핵소추에 대한 합의가 어렵게 이뤄졌다. 그런데 탄핵소추안의 발의와 의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한 것은 국회의 내부적 갈등을 부추기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국회 내에서는 국민들의 요구에 등떠밀려 탄핵소추에 대해 합의했을 뿐,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거국내각 구성이나 책임총리 임명에 대해 구체적 안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권한대행체제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그동안 국정혼란으로 인한 민생의 고단함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해진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한 달여 전에 최순실 사태가 문제되기 시작했을 때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했던 것처럼, 탄핵을 회피하면서 현재의 정치상황을 장기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의심될 소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현재 정국 주도권은 정치권이 아닌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1조 제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추상적인 문구 속의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촛불을 들고 전국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국민들, 그들과 공감하며 한 마음이 되어 있는 수많은 국민들의 결정이 정국의 방향을 이미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담화 이후 비박계 의원들이 흔들리고 있으며,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만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에 어떤 후폭풍이 불어 닥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는 것인가.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아니기에 국민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될 경우,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한 달 후에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 드러나 후폭풍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것이다. 당시 30%의 지지도 받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탄핵을 했다는 이유로 양대 정당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참패했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 탄핵이 부결되면 국민들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고 국회해산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현 상황은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되며, 이 상황을 장기화시키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함으로써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권의 최우선 과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이재명 대선 지지율 17.2% 반기문 누르고 `2위`...문 23.8%, 반 15.2%

 

백승훈 기자 monediedt.co.kr | 입력: 2016-12-0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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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선 지지율 17.2% 반기문 누르고 `2위`...문 23.8%, 반 15.2%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선 지지율 17.2%,반기문 누르고 '2위'...문 23.8%, 반 15.2%

이재명 성남시장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치고 대선후보 선호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로 조사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는 지난달 30일 국민 10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1월 정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 적합도는 문 전 대표가 23.8%, 이 시장이 17.2%,반 총장은 15.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0월 31일 조사보다 0.7%포인트 지지율이 올랐지만 반 총장은 4.2%포인트 지지율이 떨어졌다. 이 시장은 11월 조사에서 처음으로 대선후보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돼 2위에 올랐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전달보다 4.5%포인트 하락한 6.9%, 박원순 서울시장은 0.3%포인트 떨어진 5.8%를 기록, 각각 4위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손학규(5.4%) 더민주 상임고문과 오세훈(3.5%) 전 서울시장, 유승민(3.2%)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 등이 뒤를 이었다. 무응답은 19.1%였다. 

문 전 대표는 30대(43.5%), 40대(32.5%), 서울(26.5%), 경기ㆍ인천(22.0%), 호남(22.9%), 부산ㆍ울산ㆍ경남(31.6%) 등에서 선두를 달렸다. 이 시장은 20대(30.3%), 충청(22.1%), 대구ㆍ경북(22.5%)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고, 반 총장은 50대(23.6%), 60대(29.0%), 강원ㆍ제주(26.0%)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층의 51.6%가 반 총장을 지지했다. 더민주 지지층은 문 전 대표(51.0%), 이 시장(20.2%), 박 시장(8.6%) 순으로 지지했다. 국민의당 지지층은 안 전 대표(31.1%), 이 시장(19.6%), 손 전 대표(10.4%) 순으로 지지했다.

이번 조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를 발표한 다음 날인 30일 오전 전국 성인 휴대전화 가입자 1091명을 대상으로 컴퓨터 자동응답시스템을 이용한 임의걸기(RDD)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0%포인트고, 응답률은 15.9%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 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디지털뉴스부기자 dtnews@dt.co.kr

개헌? 자칫하면 선무당이 나라 잡는다

[남재희 칼럼] '87년 체제'와 한국 정치의 과제
2016.11.29 06: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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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자칫하면 선무당이 나라 잡는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민정당의 노태우 씨가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간접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지명 대회를 치렀을 때 4.19 학생 혁명을 방불케 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거국적인 민주 항쟁(1987년 6월)에 굴복하여 대통령 직접 선거와 김대중 씨 정치 복권을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이 나온 것이다.

이어 헌법 개정 협상이 진행되었는데 경북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의 노태우 씨의 정당, 경남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적인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 씨 중심의 야당,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약간 개혁적인 민주화 세력인 김대중 씨 중심의 야당, 충남을 기반으로 하는 구 군부세력의 공화당 잔존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김종필 씨 정당 등의 4개 정치 세력이 합의를 보아 이른바 '87년 체제'를 뜻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 직선제이지만 대통령의 비상 대권을 폐지하는 등 비민주적인 조항을 삭제했으며, 헌법위원회를 헌법재판소로 승격시키는 등 향상도 있었다. 일반이 묵과하기 쉬운 것은 국회의원 선거 제도의 개편이다. 1선거구 2인의 선거 제도를 1선거구 1인의 선거 제도로 환원한 것은 중대한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 제도 개혁 협상에 있어 여당 측과 김영삼계 야당, 김대중계 야당 등 3파는 당초 1선거구 2인을 중심으로 하되 큰 곳은 3인, 작은 곳은 1인으로 하는 이른바 '1, 2, 3 선거구제'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합의 후 김영삼 씨가 자파 세력의 우세를 믿어서인지 완전 1인 1선거구 제도로 하자고 태도를 바꾸어 그렇게 된 것이다. 

(88년 4월의) 총선 결과 김영삼계가 김대중계에 눌려 오히려 제3당이 되었다. 그것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곧이어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씨 등 정당의 3당 합당을 촉진하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헌법 개정과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등을 종합하여 '87년 체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87년 체제' 성립 후 30년쯤 지나면서 우리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시대를 경험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 정권의 연장이지만, 여소야대와 3당 합당이라는 정치 상황 속에서 부정 축재 문제 말고는 비교적 무난히 지냈다. 김영삼 정권은 하나회 척결, 전두환-노태우 구속, 금융 실명제 실시 등 반쯤 혁명적인 개혁을 시행했다.

김대중 정권은 미국과 중국 등 국제 관계의 제약 속에서 남북한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여는데 진일보했다. 노무현 정권은 본인의 진실성과 지방색 타파의 열의로 대통령이 되기는 하였으나, 본인의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본래가 정주영 씨의 아류이기도 하지만, 토목·건축 등 경험만 믿고 대운하란 어설픈 공사를 추진하는 등 엉성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사이비 목사에 현혹되어 때로는 주술적 형태를 보이는 등 완전히 실패한 정권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총탄에 잃은 트라우마에서 그런 유혹에 빠진 가련한 인간상을 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30년 된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고 개헌을 주장하며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고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위태로운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설피 개헌을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 중심제의 굳건한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헌론자들의 주장을 보자 첫째로 내각 책임제 주장이다. 우리는 제2공화국의 혼란스러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정당 정치가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 있다. 지난 총선 때 돌연히 거대한 안철수의 제3신당이 탄생하는 등 매우 안정적이지 못한 정당 정치가 아닌가. 

이원 집정부제 주장이 있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갈등으로 제대로 기능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제2공화국 때는 순수 내각 책임제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총리가 심한 갈등을 벌인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 5년 단임이 너무 단기간이라고, 예를 들어 미국처럼 4년 중임제도로 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현대는 매우 급속히 변화하는 정보 시대로 농경 사회나 단순한 산업 사회가 아니다. 그러한 급변하는 시대에 8년은 너무 길다. 지금의 임기가 합당하다고 본다. 물론 개헌 협상 당시의 5년 단임제 합의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씨 등 모두에 대통령이 될 기회를 주기 위한 타협이었지만 말이다. 또한 그동안의 대통령들을 볼 때 중임했으면 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시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굳이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대통령 선거 중간에 중간 선거라고 의원 선거가 있지 않은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의 날이기도 하며 일대 정치 정화의 계기이기도 하다. 굳이 일치시켜 그런 기회를 줄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밖에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강하니 분권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 뚜렷한 개정 방향을 제시하는 측은 없다. 그러나 법률 개정으로도 얼마간의 분권의 실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지방 분권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세수 배분의 문제가 주가 아닌가. 법률로서 다룰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 개헌 논의는 무언가 있는 듯 요란하고 시일을 끌겠지만,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는 결말이 될 것이 눈에 선히 보인다. 우리는 전쟁으로 치닫는 듯한 남북한 관계의 완화 및 평화적 해결, '부익부 빈익빈'의 빨대 구조에 심화되기만 하는 빈곤 문제의 개선 등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개헌 문제에 말려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듯 소란만 피우며, 결과적으로 그러한 심각한 문제를 간과해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개헌을 하려면 기본권 조항의 선진화 등 고쳐야 할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시점에서 개헌에 착수할 절실한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개헌할 내용이 있다'는 것과 '개헌할 적절한 시점이냐'는 두 차원의 작량의 문제이다. 

▲ 세종시에 문을 연 대통령기록전시관. ⓒ연합뉴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제도 개선의 면에서 보자. 앞서 개헌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이 진행될 경우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바와 같은 대통령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정의 총책임자를 과반수 국민의 지지도 못 받는 사람으로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는 후보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를 상대로 2차 투표를 하여 득표순으로 대통령을 정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정치에의 길이다.

또한 국회에서 비례 대표 의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 비례 대표의 문제는 개헌 사항이 아니라, 법률 개정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의원의 반수는 지역 선출로, 반수는 비례 대표로 하고 있는데 당장 그렇게까지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비례 대표 확대에 최선의 노력해야 할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0명의 비례 대표 의원 수를 100명으로 하자는 대단히 참신하고 지혜로운 제안을 했었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여야 협상 과정에서 비례 대표 수는 오히려 거꾸로 몇 석이 줄고 말았다. 급속히 진행되는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과 농촌 지대의 인구 과소화 현상 때문에 서너 개 군을 합쳐야 한 개 선거구가 된다는 난처한 지역구 분할의 사정도 무시하기가 참으로 곤혹스럽기도 하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국회의원의 정수 문제다. 어느 학자에 의하면 수많은 국가들의 의원 수를 조사해보니 우리도 상하원 합쳐 500명 수준의 의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날에 국회의원을 10만 선량(選良)이라고 했다. 지금의 인구에 비추어볼 때 얼추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500명까지 확장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30명이나 50명을 확장하여 그것을 모두 비례 대표 몫으로 하자는 것이다. 

"비례는 대표의 원리이고 다수는 결정의 원리"라는 명언이 있다. 가령 1선거구 1인의 국회의원 선거 제도에 있어서 약간의 표차는 당선과 낙선을 가른다.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전 유권자가 던진 표 가운데 30% 내지 50% 정도의 표가 죽은 표 즉 사표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국회의원 전원을 예를 들어 이스라엘처럼 비례 대표로 선출할 경우 사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례 대표에만 의존할 경우, 정치의 안정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고도 한다. 지역 대표는 그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독일 방식을 목표로 꾸준히 비례 대표의 확대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민의를 보다 더 충실히 정치에 반영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다음 우리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인 남북 관계를 생각해보자. 우선 말해둘 것은 북한 체제의 실패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경제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수많은 탈북 난민들의 증언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독제 체제 아래서의 인권 상황은 비참하다. 매년 거듭되는 유엔(UN)에서의 북한 인권 탄압 규탄 결의안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이 건재한 북한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중국은 6.25 한국 전쟁에서 무엇보다도 그들 국경 주변의 완충 지대를 보존하기 위해 무수한 희생을 치르며 싸웠다. 모택동(마오쩌둥)의 아들까지도 참전하여 희생되었다. 중국이 그런 북한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여 중국의 동북방에 있는 동삼성(길림, 요녕, 흑룡강성) 옆에 성이 하나(북한) 더 있다는 동사성이라고 생각하여 지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핵무기라는 것은 몇몇 강대국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다만 핵전쟁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중소국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려고 강대국 간에 합의하여 핵무기 개발 금지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대국들은 중소국에 대한 핵무기로 인한 위협을 방지해줄 의무가 있음은 당연하다. 만약 그런 군사적 위협을 방지해 주는 보장이 없다면 중소국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 

북한과 미국 간에는 클린턴 행정부 말, 관계 개선의 좋은 조짐이 있었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의 백악관을 방문했으며, 클린턴 대통령마저 평양 방문을 준비했다. 그런데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반대하여 아깝게도 성사되지 못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과 군수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체니 부통령은 매우 호전적이었다. 이라크, 이란, 북한 등을 '악의 축'이라고 악마화하였으며, 핵무기가 없는 이라크를 무조건 침략하여 때려 부수기도 했다. 이라크 침략은 아들 부시의 '푸들 강아지'라고 불리게 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지원도 받았는데, 석유 이권을 확보하고 이스라엘에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러한 '악의 축'의 악마화 정책이 지금도 계속되고 군사위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질 스타인 녹색당 후보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뉴딜정책'을 실시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군사 산업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성'을 경고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산 복합체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군사와 외교 정책까지도 지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군산 복합체에 그들을 유지하고 팽창시킬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고양이에게는 갖고 놀 쥐가 필요한 것 아닌가. 거칠게 결론지어 말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그러한 요인이 게재되어 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정책에도 중국에 대한 견제 목적과 아울러 그러한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으로 본다. 

세계 최강의 미국이 휴전이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북한과 평화 조약은 물론 불가침 조약도 맺고 있지 않으며, 북한 주변에서 가공할 무기를 동원하여 군사 훈련을 계속하고, 심지어는 북한의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참수 작전 운운하고 있다. 한국의 이명박 정권은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고 임기 내내 북한과의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다시피 하였다.

박근혜 정권은 '통일 대박' 운운의 요상한 이야기를 하며 남북 관계를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만 한다. 영어로 '브링크맨십(brinkmanship)'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에 아슬아슬하게 접근하여 펼치는 전략은 매우 위험하여 고도로 유능한 군사, 외교 전략가들만이 펼칠 수 있는 전략이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아마추어가 함부로 택할 전략은 아니다. 국민은 박근혜 정권의 극단적 대북 정책에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남북은 공존하며 대화로 앞날을 열어갈 수밖에 없다. 권총을 든 강도에게 권총을 내려놓으면 안전도 보장하고 원조도 하겠다고 한들 설득이 되겠는가. 안전도 보장하고 원조도 하는 절차를 진행하며 설득해, 종국에는 권총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을 택하여야 할 것이다. 같은 이치로 북핵의 폐기를 선행 조건으로 삼지 말고, 미국은 북한을 승인하고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며 경제 협력을 하는 등의 절차를 병행하면서 핵무기 폐기 협상을 진행해 종국에는 핵무기를 제거하는 성과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평화 성취 노력, 그리고 남북한 간의 화해 노력이 우리가 힘써야 할 초미의 제1과제임은 분명하다. 그와 같이하여 남북한 간, 미국-북한 간의 평화가 이루어질 때 북한도 점차 그들의 정책을 변경하여 아직도 세계에 잔존하는 공산 국가인 중국, 베트남, 쿠바의 예에서 보듯이 점차 경제에서의 자유화의 길을 걸으며 정치적 탄압을 완화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30년 또는 50년 안에 남북 분단은 봄날의 얼음 녹듯이 해소될 것이 아닌가. 

지난한 과정일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장기적인 전망에 희망을 걸어야 할 줄 안다. 지금의 우리 시대는 그와 같은 남북한 간 화해와 타협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런 결단을 감히 내리는 용기를 가진 정치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아시아 회귀 정책이라고 말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온 미국의 오바마 정권의 정책을 계승하고 더 강화하겠다는 클린턴 후보가 패배하고 미국 중심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는 트럼프가 당선됨으로써 한반도의 사정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미국 국제 관계 전문지에서 '빙하를 움직이기 위하여'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훌륭한 논문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남북한 관계의 극한적인 군사적 대치를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이끄는 일은 마치 움직이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시피 한 빙하를 인력으로 움직이는 일과 같이 지난한 일일 것이다. 

(이 글은 잡지 <씨알의 소리> 송년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와 잡지사 측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지금 우리는 '문명의 단두대'가 필요하다

[장석준 칼럼] 우리가 광장에서 배운 세 가지
2016.11.29 0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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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문명의 단두대'가 필요하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1) "문재인-민주당은 '촛불'보다 <조선>이 무섭다"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2) <조선일보>, 박근혜 도려내고 권력 접수?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대통령 퇴진 운동이 한 달이 넘었다. 벌써 다섯 차례나 주말에 광장이 열렸다. 이제 수백만이 모이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혁명이다.

광장에는 논란도 있다. 그 중에는 차벽에 갇힌 혁명은 혁명이 아니라는 항변이 있다. 노래하고 떠드는 게 혁명은 아니라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차벽에 갇힌 것은 광장이 아니다. 청와대가 차벽 속에 숨어 있을 뿐이다. 또한 바리게이트가 혁명의 유일한 장면도 아니다. 혁명의 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축제다. 

하기는 광장에 모인 얼굴이 수백만이니 광장의 얼굴도 여럿일 수밖에 없다. 그 중 어느 하나만을 뽑아내 광장을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이런 오랜 관성에 맞서려고 광장에 나서는 것 아닌가. 저마다 자신이 광장에서 발견한 가장 소중한 무엇을 키워나가는 일, 그게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광장에서 찾은 가장 반가운 얼굴은 '민주주의의 학습장'이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지금 거리에서 배우고 있다. 가르쳐줄 교사를 찾지 못하던 민주주의를 서로한테서 배우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한국인들은 1987년 이후 30여 년 동안 잊거나 미뤄온 학습을 한꺼번에 몰아 하는 중이다.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피의자 박 씨를 한낱 괴뢰로 만들었다는 사이비 종교의 내막? 평소 듣도 보도 못한 향정신성 의약품 이름? 이런 건 한 번 듣고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이런 곁가지 이야깃거리들 때문에 우리가 이참에 진짜 배워야 할 내용을 놓쳐선 안 된다. 이런 학습의 교란이야말로 '박근혜'를 낳고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보수 언론이 원하는 바다.

사회 국가로 나아가지 못하는 민주공화국은 부패한다 

우리가 진짜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저마다 초점이 다르고 표현도 다르겠지만, 나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첫째, 한국 사회에는 남아돌아서 썩어가는 돈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박근혜-최순실 일당은 전화 몇 번으로 재벌들로부터 수백억 원을 모았다. 이번에 세운 스포츠 재단 두 곳 외에도 그 동안 이곳저곳에서 긁어모은 불법 재산을 다 합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안 된다. 박근혜는 지하 경제를 양성화하겠다더니 스스로 지하 경제의 역군으로 나섰다. 

재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엄청난 잇속을 챙겼다. 눈물 삼키며 골목 깡패에게 상납금 바치는 영세 상인을 떠올리면 안 된다. 재벌들은 박근혜-최순실 일당에게 갖다 바친 돈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이득을 보았다. 그래서 뇌물이라는 것이다. 정의당 부설 정책 연구소 미래정치센터의 추계에 따르면, 재벌들은 박-최 일당에게 808억 원(현재 알려진 것만)을 투자해서 약 3조7000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지배 블록 안의 일부가 박근혜로부터 돌아서는 바람에 이 사실들이 폭로되기 전까지 이 사회에서는 이런 거액이 대중의 눈길 닿지 않는 곳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이 돈이 다 어디에서 왔는가? 어느 강물을 흘러 바다로 모여야 할 돈이 땅 밑을 떠돌고 있는가?

박근혜가 2007년 대선 무렵부터 민 핵심 정책이 이른바 '줄푸세'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는 것이었다. 세금을 줄인다니 많은 이들이 서민의 세금 부담을 줄여 준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겪고 보니 세금이 줄거나 아니면 늘어나야 할 만큼 늘지 않아 불어난 것은 재벌의 뒷주머니뿐이었다. 재벌들 뒷주머니에서 다시 수백억 원이 나와 '줄푸세'를 밀어붙인 박-최 일당의 뒷주머니로 갔다. 이게 '줄푸세'의 정치경제학이었다.

또 박근혜가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한 게 세금을 더 걷을 수 없으니 자기가 선거 운동 중에 내뱉은 '복지 확대'니 '경제 민주화'니 하는 공약은 다 실현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일이었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한창 부풀어 오르던 복지 국가의 꿈은 박근혜 정부 5년(이제 4년으로 줄어들려나)간 감금당하는 신세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 확대 할 돈 없다고 하소연할 때 정작 거기에 쓰여야 할 돈이 다 어디로 흘러갔는가? 정치 모리배와 재벌의 복지에 쓰였다. 건전 재정을 위해 복지를 줄여야 한다고 떠들던 경제학자는 둘 사이의 돈 배달 심부름을 했다. 이 모두가 기업이 어려워서 임금을 묶고 하청 단가를 낮추고 비정규직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외환 위기 이후 20년째 듣고 있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미련했다. 우리는 너무 소박하고 소심했다. 이 나라는 비정규직 임금 올리고 복지를 확대하는 데 쓸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노동권 보장하라고 더 세게 밀어 붙이지 못하고 복지 확대하라고 더 강하게 들이받지 못해서 그 돈이 모조리 지하 경제로 간 것이다. 우리가 징수하지 못하니 저들이 마음껏 착복한 것이다.

이번에 제대로 배웠다. 사회 국가로 나아가지 못하는 민주공화국은 반드시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민주공화국은 한 세대가 안 돼 다시 왕과 귀족들의 나라로 뒷걸음질 친다. 부패와 퇴행을 막는 길은 단 하나, 민주공화국의 진화형인 사회 국가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의 복지를 늘려 저들의 부패를 막아야 한다. 법인세를 늘리고 소득세 누진성을 강화하고 자산세를 신설해서 공공 서비스 확대가 됐든 시민 기본 소득이 됐든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재벌들의 식상한 하소연에 흔들리지 말고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나서야 한다.

문명화된 단두대(=선거 제도 개혁)가 필요하다 

둘째로 우리가 배운 것은 권력의 목을 쉽게 벨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금 국민 90% 이상이 반대하는 인물이 청와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저희가 살려면 탄핵소추안이 빨리 가결돼선 안 된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는다. 이런 황당한 광경을 마주하며 우리는 이 나라 정치의 불문율 중 하나를 새삼 확인한다. 그것은 공직 선거 당선은 왕관이나 귀족 작위를 받는 일이며 다음 선거까지는 권력 앞에 거칠 게 없다는 것이다. 

선거로 뽑히면 그나마 낫다.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 중 다수는 아예 선거와는 무관하다. 최태민 일가야 너무 황당하니 피의자 박 씨의 특수한 인격적 결함 탓이라 치자. 박근혜를 꼭두각시로 내세워 신나게 칼자루를 휘두르던 자들, 즉 청와대의 현대판 환관들, 기획재정부 등 힘 있는 부처의 고위 관료들,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은 몇 년 뒤에 돌아올 선거조차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음번 꼭두각시만 보장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시작되자마자 떠오른 상징이 있다. 이번에는 왕의 목을 확실히 베고야 말겠다는 결의의 상징, 바로 단두대다. 

단두대라니까 너무 섬찟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문명화된 단두대가 있다. 선거가 그것이다. 선거는 본래 주기적으로 왕의 목을 베는 의식이다. 주권자인 시민이 권력의 목을 베는 (혹은 목숨을 너그러이 연장시켜주는) 문명화된 의식이다.

이번에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비선출직 공직자들의 권력을 모두 단두대 앞에 세워야 한다. 선출직으로 바꿔야 한다. 검찰총장도, 경찰청장도 이제 선거로 뽑아야 한다. 그래서 제 목구멍이나 상위 공직자가 아니라 오로지 유권자인 시민만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머지 행정부 고위 관료나 대법관, 헌법재판관, 공영방송 임원 등도 직접 선출이 아니라면 의회의 강력한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또한 선거로 뽑힌 자들도 이제는 언제 목에 칼이 들어올지 몰라 긴장해야만 한다. 그리고 실제로 무능과 비리가 드러나면 쉽게 쫓아낼 수 있어야 한다. 국민 95%가 반대하는 대통령을 집에 보내려고 수백만이 차디찬 겨울바람 맞으며 거리에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편리한 제도와 절차를 갖춰야 한다. 

간단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의 소환제를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하야 선언과 탄핵 의결을 기다릴 필요 없이 국민 소환 서명을 받아서 투표로 피의자 박 씨 같은 인물을 몰아낼 수 있다. 혹은 이런 제도의 존재만으로 제2, 제3의 박근혜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

혹자는 그래서 내각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구석도 있지만, 절반은 사기다. 서유럽 내각제 국가에서 정권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내각제라서가 아니라 다당 구도라서다. 이들 나라에서는 100% 정당 명부 비례 대표제가 뒷받침하는 덕분에 좌부터 우까지 여러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해 있다. 그래서 민심의 변동에 따라 쉽게 정당 간 합종연횡을 통해 기존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구성한다. 

핵심은 내각제보다도 선거 제도 개혁이다. 만약 현행 승자독식 선거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내각제로 바꾼다면 제왕적 대통령보다 더 끔찍한 제왕적 총리가 등장할 수도 있다.

우리도 이제 알만큼 알았다. 자꾸 '개헌', '개헌' 하는데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광장 시민의 편인 아닌지 가리는 리트머스 시험지는 '선(先) 선거 제도 개혁'을 말하는가 아닌가다. 선거 제도 개혁이란 곧 단두대의 날을 날카롭게 가는 일이다. 지금은 무슨 방도가 됐든 권력의 목을 베는 데 뜻을 함께 하는 자만이 우리 편이다. 

광장의 힘이 일상에서도 지속될 수는 없을까? 

셋째로 우리가 배운 것은 광장의 힘이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만든다는 진실이다.

지난 한 달만큼 민주주의를 실감한 적이 있었던가. 정치인들이 이렇게 시위대의 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집회가 거듭될 때마다 집회에서 나온 요구의 뒤꽁무니를 따른 적이 없다. 모두 시민들이 광장을 연 덕분이었다. 광장이 열리자 여당 의원 중 그나마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이 혼비백산했고 야당 의원들이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재벌도, 보수 언론도 촛불 시민들의 눈치를 본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웅성대니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답게 돌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장면이 예외적 순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피의자 박 씨를 청와대에서 퇴거시킨 뒤에도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답게 돌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결국 광장의 힘이 일상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 삶 곳곳에서 광장의 촛불이 계속 타올라야 한다. 

광장의 일상화…. 방향은 분명한 것 같은데, 아직 구체적인 모습은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광장에 나선 우리들은 이 과제를 반드시 함께 토론해야 한다. 그것만이 4월 혁명과 6월 항쟁의 회한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당장 행동 계획이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 물음을 던져야 한다. 

사회의 여러 장소들 중에 가령 기업에 광장의 힘이 살아서 작동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노동조합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노동조합으로는 약하다고? 그럼 촛불 시민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조합은 대기업 정규직만 위한다고? 그럼 다수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기업 안에 광장의 힘이 살아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촛불 시민들이 권력을 흔들고 새로 세우듯 일터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이 결정권을 행사해야 하지 않을까? 독일의 노사 공동 결정제처럼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정도 되면 국가와 노동자, 소비자 대표가 지배 구조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려면 그게 지금처럼 창업주 일가가 농단하는 것보다 못할까?

기업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학교에서도, 상가에서도, 동네에서도 광장의 힘을 구현할 조직과 제도,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 무리의 2류 정치인들과 재벌, 보수언론이 시민혁명의 성과를 낚아채는 일도, 다시 한 30년쯤 지나 또 다시 왕과 귀족을 몰아내려고 거리에 나서야 하는 일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5주 동안 이런 값비싼 교훈들을 배웠다. 아니,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더 배워야 한다. 이제부터 답을 만들어가야 할 물음들이 아직도 더 많다.

하지만 일단은 이런 집단적 학습 과정이 열렸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경이롭다. 이 희귀한 순간을 허투루 지나칠 수는 없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는 더 많이 발언하고 더 진지하게 의심하며 더 확고히 결의해야 한다. 이런 우리 하나하나의 모든 행위가 이 경이로움을 이어가고 연장시킬 것이다.  

촛불에 숟가락 얹으려는 자, 누구인가

[기고] 11월의 혁명,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2016.11.29 0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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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숟가락 얹으려는 자, 누구인가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1) 시민 혁명의 교란자들을 넘어
김민웅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많은 사람이 국정 혼란을 걱정한다. 시민들이 수백만 명씩 시위에 나서고 정부 부처들은 움직이지 않고 외교와 안보도 걱정한다. 하루빨리 이 사태가 수습되고 정국이 안정화되는 것이 국가를 위한 길이라고 말한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호칭을 부여했는지 모르지만 원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난국을 타개하자고 한다. 좋다. 이 혼란 상황을 끝내고 대통령이 질서(?)있게 물러나거나 탄핵 절차를 조용히 지켜보거나 해서 정국이 안정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바람직한 일인가? 모두가 생업으로 돌아가 개헌 논의를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바뀌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입장들을 뉴스 생중계로 확인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인가? 

정국이 안정되면 제일 먼저 닫히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다. 끓는점을 넘긴 시민들의 에너지는 그동안 굳게 닫혀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대한민국 판도라의 뚜껑을 열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억울하지만 체념되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세월호 7시간, 비정규직의 설움, 경쟁에 내몰려 벼랑 끝에 선 아이들과 이들을 방치하는 교육, 공영 방송의 파괴, 재벌들의 악행, 정치 검찰의 패악질, 반시민적 정치인, 시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들, 권력만을 호위하는 경찰, 방산 비리, 민영화, 성과 연봉제, 청년 실업, 몰락하는 자영업자, 무너지는 농업까지 눈만 들면 확인 할 수 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평범한 삶을 꿈꾸는 시민들을 숨 막히게 했던 것들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한국은 아직 살 만한 사회라거나, '노오력'이 부족하다거나, 국민 소득 3만 달러 시대 같은 말을 했던 사람들이 안정화시키자는 정국은 무엇인가? 거침없이 사회와 거리를 달궜던 희망의 소리를 얼른 상자 안으로 집어넣자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관료들, 재벌들, 정치인들, 말 타는 학생과 그 가족들은 몰랐겠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삶이 이미 극악한 혼란이고 아수라였다. 탈출만 할 수 있다면 이 끔찍한 지옥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 투성이었다. 시민들은 몸을 비비 꼬며 비굴한 모습으로 심판대 앞에 서 있은 지 오래다. 심사위원이 준엄하게 내리는 OX 판정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 이 질서를 바꾸자고 나섰다. 이제는 비천한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심사위원들을 심판하겠다고 나섰다.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질서의 전복은 절대 안 된다는 앙시앙레짐 신봉자의 신념일 뿐이다. 

이미 4년 동안 아니 지난 10년 동안 정국은 늘 혼란 상태였다. 비로소 2016년 11월 시민들이 거리로 진출하면서 정국이 제자리를 찾았다. 현재의 국면을 혼란으로 규정한다면 이처럼 행복한 혼란이 또 어디 있으랴. 시민들이 서로 양보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핫팩을 건네고 같이 춤추고 웃고 우는 혼란이라면 지배자들이 말하는 안정보다 훨씬 아름다운 혼란이 아닌가? 외교가 걱정이라고? 세계의 외신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칭송하고 있다. 시민들은 유엔(UN) 사무총장은 물론 그 어떤 외교관보다 국격을 높이고 있다. 100만이 광장에 모여 힘을 보태는데 이처럼 든든한 안보가 어디 있는가? 

이미 혁명은 시작됐다. 눈치 보는 사람들은 목을 움츠릴 것이고 기댈 곳을 잃은 자들은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이다. 파렴치한 사람들은 과거를 세탁할 것이고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갈등할 것이다. 갈등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라도 그동안 겪은 말도 안 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백은 서로를 치유하는 아주 좋은 약이다.

시민 혁명이 좌초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모두가 눈을 부릅떠야 한다. 4.19는 군부 독재 세력에게 도난당했다. 87년 6월 항쟁의 성과를 이제는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나선 보수 야당이 분열하면서 축적되지 못했다. 지금 계산기를 두드리며 2016년 11월, 시민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누군지 유심히 살피자. 개헌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며 시민들을 집안으로 들여보내 구경꾼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기억하자. 

시민들은 자신들의 몸을 얽어맨 사슬을 확인했다. 지난 세월 동안 1%가 주도면밀하게 씌운 사슬들이었다. 다음 단계는 이 사슬을 끊는 것이다. 여의도와 서초동을 시민들이 쫓는 게 아니라 국회와 검찰이 시민들을 받들게 해야 한다. 누구라도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 말할 수 없게 하자. 11월의 혁명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우리 몸의 사슬들을 봇물 터지듯 광장에 쏟아 놓자. 그리고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차근차근 말하게 하자. 모든 공론의 장에서. 
 

정봉주도 삭발 동참 "뭐라도 도우려고..."

빗속 25km 8시간 행진, 광명 도착해 휴식.... 5일 대규모 촛불문화제

15.04.04 12:12l최종 업데이트 15.04.05 09:44l

눈물 짓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들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아이들의 영정을 받아들고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 눈물 짓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들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아이들의 영정을 받아들고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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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품에 안고 시작하는 도보행진 세월호 유가족들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향하는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영정 품에 안고 시작하는 도보행진 세월호 유가족들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향하는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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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영정 든 예원이, 엄마 삭발에 눈물 고 김동혁군의 동생 예원양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삭발을 하는 엄마 김성실씨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빠 영정 든 예원이, 엄마 삭발에 눈물 고 김동혁군의 동생 예원양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삭발을 하는 엄마 김성실씨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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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머리 삭발에 흘러 내리는 눈물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한 세월호 유가족이 삭발식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긴머리 삭발에 흘러 내리는 눈물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한 세월호 유가족이 삭발식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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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신 : 4일 밤 9시 20분]

예정보다 다소 늦게 출발했지만 계획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진상규명 가로막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 결정 촉구를 위한 시민 가족 도보행진단'은 4일 오후 8시 첫째날 숙소인 광명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도착했다.

참사 이후 여러 번의 도보행진에 익숙해졌는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비 속에서도 세월호 가족들의 걸음 속도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행진단은 이날 약 25km 거리를 약 8시간 동안 꼬박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특히 마지막 2시간은 전혀 휴식 없이 걸었기 때문에 시민 참가자들의 대열이 조금씩 뒤로 처졌고 오후 7시가 넘어서자 시민 참가자 중에서 낙오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광명 시내를 통과하는 행진단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행진단이 든 피켓을 보고 "어머, 아직도 아홉명을 못 찾았구나"라며 놀라는 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여성은 "그동안 TV에서 못 봐서 실종자는 다 찾은줄 알았다"며 "보상금을 몇 억 준다고 뉴스에 나온 건 봤는데 실종자 문제도 다 해결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도보 행진단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묻는 어린 아이에게 "사고 나서 아직 못 찾은 사람 찾아달라고 하는 거야"라고 가르쳐 주는 엄마도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행진단은 곧바로 저녁 식사를 하고 짧게 소감을 나눈 뒤 잠자리에 들 예정이다.

행진 2일차인 5일 오전 9시 30분 단원고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이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행진단은 오전 10시 광명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행진을 시작, 서울에 입성한 뒤 11시경 가리봉오거리·구로시장, 오후 12시 40분 신도림역, 오후 1시 40분 여의도공원에 도착에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다.

이후 공덕오거리와 충정로를 거쳐 오후 3시경 광화문에 도착하는 행진단은 각종 사회단체와 함께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세월호 인양 결정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를 연다. 각종 단체들이 문화제 참여를 독려하고 있어 대규모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삭발 동참하는 정봉주 전 의원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정봉주 전 의원이 동참하는 의미로 함께 삭발을 하고 있다.
▲ 삭발 동참하는 정봉주 전 의원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정봉주 전 의원이 동참하는 의미로 함께 삭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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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4일 오후 5시 40분]
딸기와 손피켓, 응원하는 시민들

세월호 참사 직후의 도보행진 때만큼은 아니지만 4일 도보행진에도 시민들의 응원과 합류가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화물 트럭과 함께 탑승했다가 화를 면한 화물기사들도 이번 도보행진에 함께 하고 있다. 최은수씨 등 6명은 25톤 트레일러에 "우리도 피해자다!"라고 쓴 현수막을 걸고 행진 후미에 동참하고 있다.

최씨는 "화물과 트럭을 수장당했지만 아무런 보상을 못받고 생계가 막막하다"며 "말 그대로 우리도 피해자 입장에서 나왔다. 세월호 즉각 인양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한다"고 말했다. 최씨 등 세월호 참사 피해 화물기사 11명은 5일 도보행진과 광화문 집회에도 합류할 계획이다.

행진하는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딸기를 내놓은 농민도 있었다. 강석철씨 등 '시흥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모임' 회원 5명은 시흥시 목감IC주유소 앞에 테이블을 내놓고 일회용 컵에 담은 딸기 200컵을 행진대열에 나눠졌다.

강씨는 "인근에 유기농 딸기를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오늘 세월호 가족들 행진이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딸기를 좀 갖다주라고 부탁하셨다"며 "가족분들만 행진하는줄 알았는데 같이 행진하는 시민들이 많아 딸기가 턱없이 모자랐다"고 밝혔다.

시흥시 목감IC를 지나 도보행진 반대편 갓길에 차를 세운 한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행진단에 인사를 하며 동조를 표시했고, 다른 운전자는 박달삼거리주유소 앞에서 "세월호 그 후 1년 이젠 돈보다 생명입니다"라고 쓴 손 피켓을 들었다. 이를 본 도보행진단은 환호로 답했다.

참여 시민 "세월호도 결국 돈의 논리로 왜곡될까 우려"

이날 행진에 동참한 시민들에게선 세월호 문제가 왜곡되고 있고 참사 초기 때 같은 공감을 상실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타났다.

대안학교 교사는 남기웅씨는 이날 아기를 안고 부인과 함께 도보행진을 함께 했다. 남씨는 "평소에도 기회가 되는대로 세월호 관련 활동에 참여하고는 있었다"면서 "최근엔 이 문제도 돈의 논리로 왜곡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세월호 관련 수업을 한 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주변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그런데 상가번영회에서 '노란 리본을 달면 세월호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상권이 죽게 된다. 떼달라'고 요청하더니 결국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달아놓은 리본을 떼버렸다"며 "결국엔 돈의 문제로 굴러가서, 이제는 세월호를 잊자고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행진 중간에 빗방울이 굵어져도 아랑곳 없이 도보행진을 하던 중학생들도 어른들이 마음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걸 우려했다. 중2인 이규헌 양은 "누구탓인지 가리기 전에 일단 세월호를 인양은 해야하지 않겠냐"며 "인양을 하고 실종자부터 찾아야 누구 탓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란히 걷던 중1 조수민양은 "정부가 피해자의 얘길 들어주면서 해야지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하는 건 안 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양은 다시 "이젠 사람들이 세월호 문제는 유가족이 다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처음에 가졌던 관심을 거둬 들인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조양은 "아직까지 자기 일이 안 돼 봐서 그러는 것"이라며 "한 할아버지가 '8억 받았으면 됐지 또 뭘 더 받으려고 그러느냐'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고 했다. 조양은 "가족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 그래서 우리는 행진한다"고 말했다.

[2신 : 4일 오후 3시 5분]
삭발 행진 정봉주 "뭐라도 도우려고 깎았다"

오후 2시 현재 개나리가 핀 도로 옆을 영정을 든 세월호 가족들이 앞서 행진하고, 노란 풍선과 플래카드를 두른 시민들이 뒤따르고 있다. 도보행진단은 1000명이 조금 넘는 규모다.

행진단이 지나는 안산 시내 도로의 운전자들은 도보행진으로 인한 통제에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불편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휴일 오전이라 시내는 대체로 한산했지만 시민들도 길가에 서서 행진단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행진단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행진단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몇 명씩 그룹을 이뤄 자체 제작한 플래카드를 몸에 두르거나 들고 합류하는 이들이 가끔씩 눈에 띈다.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에 앞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삭발한 뒤, '특별법 시행령 폐기' 노란 머리띠를 두르고 걷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은 "광화문 삭발식 소식을 뒤늦게 들었고 마침 다른 일이 있어 참석할 수 없었다"며 "뭐라도 도울 수 있는 게 있나 생각했는데 나도 삭발하는 것 밖에 없더라"고 삭발 및 행진 동참 계기를 밝혔다.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출발, 약 2시간을 걸어 오후 12시 35분 경 부곡종합사회복지관에 도착한 세월호 도보행진단은 점심밥을 먹었다. 메뉴는 계란후라이가 든 나물비빔밥에 된장국. 영정을 한데 모은 유가족들은 삼삼오오 풀밭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행진단은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영정을 안고 걷는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곳은 희생자들이 상당수 안장돼 있는 부곡동 공설공원(하늘공원)이었다.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은 하늘공원을 지나치면서 "얘들아 미안하다. 엄마아빠가 꼭 진실을 밝혀줄게", "우리들이 함께 꼭 진실을 밝혀줄게"라고 외쳤다.

[1신 : 4일 오후 12시 12분]
"배 안에 9명 있는데, 인양 않고 추념공원 만들자고?"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 돼 가는 상황에서 희생자 유가족, 실종자 가족들이 또 삭발을 하고 도보 행진에 나섰다. 조사권이 보장되지 않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즉각 인양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가족들은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에 모신 영정사진 150여 개를 내렸다. 세월호 가족들은 이곳에서 서울 광화문 농성장까지 1박 2일 걸어서 행진하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행진에 앞서 유가족들은 삭발을 했다. 정봉주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등 시민과 세월호 국민대책위 관계자도 삭발에 동참했다. 이날 머리카락을 자르고 노란 머리띠를 맨 '동혁엄마' 김성실씨는 "유가족이 이제 어떻게 달라지는지 똑독히 보라"며 "우린 이젠 절대 멈출 수 없는 엄마 아빠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린 이젠 절대 멈출 수 없는 엄마 아빠들"

엄마 품에 다시 안긴 영정 속에 딸   한 세월호 유가족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서 한 유가족이 딸의 영정을 품에 안고 있다.
▲ 엄마 품에 다시 안긴 영정 속에 딸 한 세월호 유가족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서 한 유가족이 딸의 영정을 품에 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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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우리 딸'  한 세월호 유가족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하기 위해 딸의 영정사진을 받아 들고 어루만지고 있다.
▲ '오랜만이야 우리 딸' 한 세월호 유가족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하기 위해 딸의 영정사진을 받아 들고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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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받아들자 눈물이 흐르는 성복이 아빠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고 박성복군의 아버지 박창국씨가 자식의 영정을 받아 들자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영정 받아들자 눈물이 흐르는 성복이 아빠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고 박성복군의 아버지 박창국씨가 자식의 영정을 받아 들자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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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자식 죽어 돈 받으니 대박났다'고 한 사람들, 당신들이 이 자리에 서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나섰다"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삭발을 한 가족들은 "대통령님 약속을 지키십시오.", "실종자들 뼛조각이라도 만지게 해주십시오"라고 절규하며 눈물을 흘렸다.

'찬호아빠' 전명선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정부는 특위 조사인원을 대폭 줄이고 공무원이 대부분인 특별법 시행령으로 세월호 조사특위의 조사권을 무기력화하고 일방적으로 배보상액을 발표하면서 유가족 앞에 돈을 쥐고 흔드는 반인간적 행태로 세월호 가족들을 내몰고 있다"며 "피해자 가족으로 사는 것, 힘없는 아빠로 사는 자신이 너무 원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의 인양을 통한 완전한 사고 수습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답변을 받으러 간다"며 "정부가 하지 않으면 가족이 앞장서겠다. 국민 여러분들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행진에 앞서 세월호 가족들은 다함께 "김진태 이 X새끼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세월호 인양 반대 입장을 밝히며 "괜히 사람만 또 다칩니다. 대신 사고해역을 추념공원으로 만듭시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겁니다"라고 올렸다.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김진태 얘길 안 할 수가 없다. 배 안에 아홉 명이 있는데 추념공원을 만들자는 거냐"며 "아이들을 가슴에 묻는다는 건 평생 죽을 때까지 처절한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유족들 "김진태, 이 X새끼야"

영정 바라보는 유가족  한 세월호 유가족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단원고 희생자들의 여정을 바라보고 있다.
▲ 영정 바라보는 유가족 한 세월호 유가족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단원고 희생자들의 여정을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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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위원장이 앞장서 "김진태, 이 X새끼야 네 자식 잃고 너나 그렇게 살어!"라고 외치자 다른 유가족들도 하나같이 "김진태, 이 X새끼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가족들은 김 의원에 대해 욕설을 한 내용을 꼭 보도해달라고 취재진에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다르게 영정 사진이나 가족들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할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절박함이다.

세월호 가족들의 행진은 오전 10시 30분 경 시작됐다. 영정 150여구를 안은 세월호 가족 300여 명과 시민들 1000여 명은 "진상규명 가로막는 시행령을 폐기하라", "유족 앞에 돈 흔드는 모욕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전 11시 25분 현재 안산시청 앞을 지나고 있다.

도보행진은 안산 부곡동공원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2시 반 목감사거리 오후 4시 박달주유소, 오후 5시 덕안주유소 오후 6시 광명시민체육관, 오후 7시반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에 도착 하루 밤을 자고 이튿날 10시 서울 광화문을 향해 출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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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22%, 반기문 18%, 이재명 10%…안철수 9% 한 자릿수, 부동층은 20%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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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정국 대선주자 지지도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21.5%,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18.1%, 이재명 성남시장 10.1%,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9%로 나타났다. 지지후보가 없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부동층은 20.3%였다.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지난 21~22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새누리선 김무성이 2%로 1위

‘최순실 게이트’가 대선판도에 미친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다. 지난 9월26일 본지 여론조사에서는 반 총장 32.7%, 문 전 대표 17.3%, 안 전 대표 8.1%였다. 이 시장은 2.7%에 불과했다. 당시 조사와 비교해 보면 반 총장은 14.6%포인트 하락했고, 이 시장이 7.4%포인트 오르면서 대선 지형이 바뀌었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가장 먼저 박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강성 발언을 쏟아낸 이 시장은 본지 조사에선 처음으로 안 전 대표를 추월했다. 9월 조사에서 부동층은 16.2%였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판이 흔들리면서 부동층이 소폭 상승한 양상이다.

문 전 대표는 반 총장을 누르고 지지율 1위에 올랐지만 10% 후반대에서 20% 초반의 범위 안에서만 지지율이 오르내리는 ‘박스권 지지율’에 갇혀 있다. 매달 대권주자 지지도를 발표하는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8월 16%, 9월 18%, 10월 18%, 11월 19%였다.

문 전 대표는 민주당 지지자로부터는 5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반면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無黨)층에서는 10.4%의 지지를 얻었다. 9월 조사(10.3%)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야권 인사들에 비해 새누리당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극히 저조했다.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전 대표가 2.3%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유승민 의원(1.8%), 오세훈 전 서울시장(1.5%) 순이었다


[출처: 중앙일보] 문재인 22%, 반기문 18%, 이재명 10%…안철수 9% 한 자릿수, 부동층은 20%로

[단독] 박 대통령 이후가 더 문제…박정희 패러다임 ‘관치’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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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 농단 특별기획 진단과 전망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기가 이번엔 정치를 통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관치경제 종결을 그 첫걸음으로 지목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기가 이번엔 정치를 통해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까. 관치경제 종결을 그 첫걸음으로 지목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광장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의 민주적 의사 표현은 세계 정상급이다. 이번엔 생방송 중계까지 됐다. 그 힘은 4·19혁명 이래 여러 크고 작은 시위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절반일 뿐이다. 다른 절반이 있음을 우린 종종 놓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그 전철을 다시 밟을 것인가.

최장집 교수의 시국 해법

‘박근혜 이후’가 문제다. 경쟁하는 정당들이, 그리고 현재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주화운동을 잘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선출된 정부들이 좋은 정치를 통해 정부를 잘 운영하고, 좋은 정책을 통해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문화적 삶의 질과 국민적 자긍심을 향상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절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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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새 총리와 과도내각 인준 등을 법 절차에 따라 무리 없이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새 정부가 지향해야 할 제1의 과제로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운영 원리로 작용해 온 ‘박정희 패러다임’의 극복과 관치경제의 종결을 지목했다. 그것이 이번 최순실 사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권위주의 구체제의 유산이 그대로 또는 변형된 형태로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고 했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놓고 자신의 비전과 대안을 내놓고 경쟁하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개헌은 중요하고 필요하면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며 차기 정부에서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질의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피의자 신세가 됐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박근혜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아요.
응답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개인적으로 특수한 배경과 민주화 이후 드러난 여러 제도의 허점이 결합하면서 이번 최순실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질의 :박 대통령의 개인 환경에 문제가 되는 대목은.
응답 :“사회 속에서 살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잖아요. 공주니 하는 그런 말로 표현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최태민·최순실씨와의 특수한 인간관계도 만들어졌고요.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와 사회를 이해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통치의 전기가 아니라 그 후기인 유신시대입니다. 그때 대통령 권력 성격과 통치방식은 민주주의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것이었지요.”
질의 :민주화 이후 제도의 허점이란 무엇인가요.
응답 :“박근혜 대통령이 기대고 있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운영과 경제성장 모델을 ‘박정희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 패러다임은 우리가 경제적 후진국에서 60~70년대 산업화를 통해 대표적 개발도상국가로 성장하고 지금 세계 13, 14위 경제 강소국으로 성장한 발판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봐요. 그러나 거기엔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질의 :어떤 한계죠.
응답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민주적 규범과 병행하기 힘들다는 점이에요. 강력한 대통령이 위로부터 권위주의적으로 경제를 주도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모델입니다. 이 패러다임의 핵심요소는 국가-재벌 동맹입니다. 노동자들도 산업화의 중심 동력의 하나였는데 노동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구조였어요.”
질의 :또 다른 한계는 뭔가요.
응답 :“시대의 변화입니다.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수출 제조업 육성이 60~70년대 산업화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90년대 말 국제 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신자유주의적 원리를 과격하게 그리고 전면적으로 도입하면서 달라지죠. 한국 경제가 놓인 세계 경제환경과 경제를 운영하는 원리가 급진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지요.”
질의 :경제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나요.
응답 :“신자유주의의 핵심요소는 감세를 강조하면서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시장의 자율성과 경쟁을 중시합니다. 국가의 경제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고, 국가 역할을 대폭 줄여 사적 경제영역으로 민영화하는 것이지요. 금융자본의 역할이 엄청나게 커지고, 기술발전이 세계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면서, 모든 나라의 사회경제적, 문화교육적 구조를 뒤바꾸어 놓았지요. 고기술, 지식집약적 서비스산업이 중심이 되는 시대입니다. 이는 관치경제를 통해 이른바 ‘개발독재’를 하던 사회구조와는 잘 상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상상했던 경제운용 원리는 아버지 시대를 재현하는 것밖에 몰랐고, 그걸 현재에 대입하려고 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질의 :박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펼쳐야 했을까요.
응답 :“아버지의 업적을 알리려고 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한국 사회가 더 민주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폈어야 했어요. 아버지 모델은 민주주의의 규범과 충돌하는 불완전한 모델이었으니까요. 그걸 박근혜 대통령이 완성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부녀가 역사적 역할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회귀적인 방향을 선택했고, 그것은 파멸로 가는 길이지요. 그것이 이번 최순실 사태를 통해 드러났어요.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 권력이 사적 인간관계와 접목되고,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어요.”
질의 :‘박근혜 이후’가 문제입니다. 국민의 분노와 열기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요.
응답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이제 그 이후 문제를 생각해야 할 전환점입니다. 해답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탱해 왔던 국가운영의 이념이자 원리인 박정희 패러다임을 대체할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거라고 봐요.”
질의 :대안적 패러다임은 뭐가 있을까요.
응답 :“박정희 패러다임은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는 옛날 하던 경제운영 방식(박정희 모델)을 계속 유지하는 상태에서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를 과격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라고 특징지을 만한 현상이 나타났어요. 서구 국가들에서 민영화는 국가의 역할과 규모를 작게 유지하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영화된 사적 영역까지 국가권력이 확대돼 오히려 국가 영향력이 전 사회적으로 더 넓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이번 최순실 사태에서도 알려졌듯이 CJ그룹 부회장을 청와대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퇴진시킬 수 있고, 또 포스코나 KT가 민영화돼 정부가 주를 갖지 않고 있어도 그 회장을 임명하거나 퇴진시킬 수 있지요. 한국에서 재벌 대기업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경쟁자가 없다시피 절대적으로 강하지만 국가권력은 그들을 줄 세우고 충성을 강제할 수 있지요.”
질의 :미르 ·K스포츠재단 사태로 그런 문제점이 다시 드러나게 된 것이군요.
응답 :“전경련을 통해 재벌들을 강탈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만 미르 ·K스포츠재단에서 770여억원이고,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지요. 경제적으로 우리만큼 성장한 국가로서 이런 나라가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군요. 관치경제는 끊어야 합니다. 국가의 규모와 권력을 축소 조정해야 하고, 기업에는 자율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강조돼야 할 것은, 재벌 대기업이 국가권력에 대해 자율성을 가질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라고 하겠어요. 물론 이때 법은 공정하게 적용돼야겠지요. 나는 이런 것들을 ‘자유주의 원리’라고 통칭하고 싶어요. 특히 이러한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것이에요. 그동안 우리는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하겠습니까.”
질의 :자유주의 부재를 한국 민주화의 허점이라고 보는 것인가요.
응답 :“민주화 투쟁 시기 대표적인 구호가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이었지요.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통해 깨닫게 됐습니다. 어떤 정부 형태, 어떤 국가구조를 갖느냐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구조는 사적 영역에서의 자율성, 그러니까 경제영역에서 기업들의 자율성이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질의 :박정희 패러다임은 중국의 덩샤오핑도 벤치마킹했다는데.
응답 :“1970년대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하면서 산업화 노선을 현실로 옮겼을 때 한국에서처럼 중국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산업화도 안 된 상태였지요. 중국을 위해 박정희 발전모델은 매우 매력적인 모델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중국 역시 산업화를 성취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성공적인 개발도상국가의 하나이고, 나아가 고기술·고학력에 서비스산업 또한 한국 못지않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요. 중국에서도 박정희 패러다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내가 박정희 발전모델을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는 유용했을지 모르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말입니다.”
질의 :민주화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박정희 패러다임과 다르지 않았나요.
응답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보수 지배의 정치체제에서 야당이 두 번이나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고, 국가를 운영할 기회를 가졌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이 박정희 패러다임의 대안을 가지고 통치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국가운영 원리, 또는 그 자신들의 경제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지 않아요. 박정희 패러다임 위에서 당시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것을 통해 선거에 나가 당선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봅니다. 이제 그 결과는 정당들과 정치인들의 어깨에 걸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의 :향후 새로운 패러다임은 통일과 관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응답 :“지금까지 큰 틀에서 정부 형태, 경제를 운영하는 방향을 얘기했는데 통일은 그것과 구분되는 영역입니다. 통일 문제도 이제 방향은 간단하다고 봐요. 평화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그동안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힘으로 무너뜨려서라도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통일 대박’은 그걸 경제적으로 바꾸어 말하면서 통일만 되면 우리는 싼 노동력이 대량 공급되고 시장도 생기고, 세계의 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그런 생각 아니었을까요. 그런 발상은 망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무력충돌 또는 대규모 전쟁, 한반도 군비경쟁과 최첨단 무기 배치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려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발상 또는 접근이라고 봐요. 이제 진정으로 대북정책을 평화지향적인 것으로 바꿀 때가 됐고, 그런 상황이 강제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봐요.”
질의 :다시 개헌 문제가 나오는데.
응답 :“정부 형태가 문제가 있으면 개헌을 논의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개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시점은 참으로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정치체제가 제도적으로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헌법 내용에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광범하게 논의한 다음 이슈를 축소하고 개헌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논의해 컨센서스가 일정하게 형성된 연후에 본격 논의로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개헌 문제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박근혜 정부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복잡한데 그 둘을 섞어 놓으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게 개정된 헌법은 각 정파들의 정치공학적 산물 이상이 아닐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문제를 처리한 다음 대선을 치르고 나서 필요하다면 다음 정부에서 논의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질의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공범으로 지목하자 국회에서도 ‘탄핵’ 절차에 들어갈 것 같은데요.
응답 :“탄핵은 헌법 절차를 따라서 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난다고 보기 어렵고. 안 물러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법적 절차를 따라서 국회에서 실제로 해 보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한다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은 포괄적으로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 절차까지 시민들이 결정하고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회와 정당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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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출처: 중앙일보] [단독] 박 대통령 이후가 더 문제…박정희 패러다임 ‘관치’ 끝내자

낡은 것은 놔두고 멀쩡한 승차대 교체 '논란'도, 복권기금 128억 투입 제주시 도심 256곳 교체 중..."혈세 낭비 아니냐" 비판 목소리

김현종 기자 | 승인 2016.11.14
제주도가 예산 128억원을 들여 비가림 버스 승차대 교체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낡고 오래된 것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들을 바꾸면서 적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최근 신제주 한 버스 정류소의 비가림 승차대에 대한 교체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제주일보=김현종 기자] 제주특별자치도가 100억 넘는 예산을 들여 도심지 버스 승차대를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정작 낡고 오래된 시설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을 바꾸면서 적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제주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사업으로 예산 128억원을 확보해 교통약자에 대한 대중교통 이용편의를 위한 시설개선 사업으로 연말까지 제주시 도심에 있는 비가림 버스 승차대 256곳을 저상버스 맞춤용으로 교체하고 버스정보안내기(BIT)도 신형으로 바꾸고 있다.

버스 승차대 교체는 저상버스가 운행하는 95번 버스노선에 위치한 것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예산은 한 곳당 승차대 약 1300만원과 BIT 약 1500만원을 포함해 4000만원선이다.

그런데 1990년대 이전 설치돼 상대적으로 낡고 노후한 승차대들은 제외된 채 2000년대 이후 설치돼 오히려 시설상태가 양호한 승차대들이 교체되면서 시민들의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여기에다 제주시 동별로 방언인사말을 붙여놓고 차별적으로 꾸며놓은 승차대들도 상당수가 철거되면서 교체 대상 선정의 부적절성과 그에 따른 예산 낭비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도내 버스정류소는 총 3033곳으로 이 중 1859곳(61%)에만 비가림 승차대가 설치된 데다 조명시설까지 갖춘 승차대는 350여 곳(19%)뿐이다. 여기에다 1970~80년대 설치된 승차대들이 지금까지 이용되면서 디자인 종류만 17개 안팎에 달하는 등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시민들은 “외곽에 가보면 30~40년 전 설치돼 녹슬고 볼품없는 승차대가 널려있는데도 제주시 도심에 있는 멀쩡한 것들을 바꾸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며 “연말만 되면 인도 보도블록을 뜯어내 새것으로 까는 대표적 혈세낭비 사례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시민은 “불과 몇 년 전 동별로 꾸며놓은 승차대까지 철거하니 근시안적 교통정책이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복권기금사업 취지에 맞게 교통약자 대중교통 이용편의 증진에 초점을 맞췄고 노후 BIT 180여 개의 기능이 사실상 마비돼 교체가 시급한 점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교통약자를 위한 복권기금 사업이어서 저상버스가 다니는 95번 노선을 중심으로 교체 대상 승차대를 선정했고 BIT 교체와 다중 이용 측면까지 고려했다”며 “내년에는 복권기금 60억원을 확보해 제주 전역을 대상으로 승차대 교체를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BIT는 2007~2008년 188개, 2014년 114개, 지난해 227개 등이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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