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핵 못하면 국회 해산까지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16-11-30 17:35
[2016년 12월 01일자 23면 기사]

원본사이즈   확대축소   인쇄하기메일보내기         트위터로전송 페이스북으로전송 구글로전송
[시론] 탄핵 못하면 국회 해산까지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표현이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발언한 것에 따라 사실상 조기 퇴진 가능성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대통령의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는 말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국민의 요구와 달리 명확하게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 국회에 공을 넘김으로써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회에서는 거국중립내각과 특검, 탄핵소추 등에 대해서 각 정당들과 계파들 간의 복잡한 정치셈법에 따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국민들의 촛불이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국민들의 목소리가 뚜렷하고 강력하게 전해지면서 정치권의 입장이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특검법이 통과됐고, 일부 비박계 의원들의 탄핵소추 찬성을 계기로 탄핵소추에 대한 합의가 어렵게 이뤄졌다. 그런데 탄핵소추안의 발의와 의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진퇴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한 것은 국회의 내부적 갈등을 부추기는 '신의 한 수'가 될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국회 내에서는 국민들의 요구에 등떠밀려 탄핵소추에 대해 합의했을 뿐,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거국내각 구성이나 책임총리 임명에 대해 구체적 안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권한대행체제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 그동안 국정혼란으로 인한 민생의 고단함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해진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한 달여 전에 최순실 사태가 문제되기 시작했을 때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했던 것처럼, 탄핵을 회피하면서 현재의 정치상황을 장기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의심될 소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현재 정국 주도권은 정치권이 아닌 국민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1조 제2항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추상적인 문구 속의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촛불을 들고 전국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국민들, 그들과 공감하며 한 마음이 되어 있는 수많은 국민들의 결정이 정국의 방향을 이미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담화 이후 비박계 의원들이 흔들리고 있으며,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도대체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만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경우에 어떤 후폭풍이 불어 닥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는 것인가.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아니기에 국민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될 경우,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한 달 후에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 드러나 후폭풍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것이다. 당시 30%의 지지도 받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탄핵을 했다는 이유로 양대 정당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참패했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 탄핵이 부결되면 국민들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고 국회해산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현 상황은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되며, 이 상황을 장기화시키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함으로써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권의 최우선 과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