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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 세인트존스 대학의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공부
조한별 (지은이) | 바다출판사 |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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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296쪽 | 225*152mm | 396g | ISBN : 978895561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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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만 당연한 세인트존스의 공부"
세인트존스는 하버드나 예일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이 아니다. 그럼에도 종종 이 대학의 교육과정이 소개될 때면 화제에 오른다. 일단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읽는다는 데에 놀라고, 고전을 읽는 게 아니라 고전만 읽는다는 데에 다시 놀란다. 별도 전공 없이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게 수업이고, 따로 치르는 시험 없이 토론 참여 태도와 내용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처럼 지식 습득이 필요한 과목도 고전으로 배운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그가 남긴 글을 읽으며 증명한다든지, 옛날 과학자가 했던 실험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다. 외국어는 고대 그리스어와 불어를 배우는데, 회화가 아니라 문법과 독해가 중심이다. 작가가 쓴 언어로 고전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고전을 강조하면서도 고전을 읽을 기회를 마련하기 어려운, 고전이 필요하다 하면서도 고전에 힘을 쏟지 못하는 한국 실정이기에, 고전 읽기를 교육의 중심으로 실현하는 세인트존스의 특별하지만 당연한 학풍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대학을 다닌 한국 저자의 진솔한 경험담이라, 섣부른 기대와 환상에서 벗어나 그곳을 교육을 한국 상황에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저자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을 들여 이곳에서 읽은 책들을 다시 읽으며 평생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4년 동안 이곳을 다니며 고전 100권을 읽고 난 소감이라 말한다. 그렇다. 본래 고전이란 이렇게 읽는 법이다. 저자의 특별하고도 당연한 깨달음이 그가 다닌 학교와 자연스레 겹친다.
- 인문 MD 박태근 (2016.02.26)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배우는 학습 공동체 세인트존스 대학의 공부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책. 세인트존스 졸업생인 저자는 그곳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법과 학교생활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가 말하는 세인트존스는 우리 알고 있는 학교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순다. 그곳에는 교수가 없고, 강의가 없으며, 시험이 없다. 대신 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튜터가 있고, 꾸준한 독서와 치열한 토론이 있다.

고전 100권을 읽는 것이 학교의 핵심 커리큘럼이며, 철학과 역사 같은 인문학은 물론이고 언어와 음악 심지어 수학과 과학도 고전을 통해 배운다. 세인트존스의 수업은 단순하다. 고전을 읽고 자신만의 의견을 만들어 와 함께 토론한다. 토론을 하며 생각이 정리되었다면 그것을 써낸다. 단어와 공식을 외울 필요는 없다. 세인트존스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의견이 없는 사람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고전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고전을 읽으며 오히려 한국에서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세인트존스만의 커리큘럼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평생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추천사
서문_세인트존스는 스스로 공부한다

1. 세인트존스를 소개합니다
말 안 하면 ‘쫓겨나는’ 대학
강의와 교수가 없는 학교
전공과 시험이 없는 학교
튜터들의 공개 뒷담화, 돈 래그

2. 진짜 공부하는 법 배우기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하기
똑똑하지 않아야 공부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 같은 튜터들
‘다름’을 소통한다는 것

3. 세인트존스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세인트존스의 핵심, 세미나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2학년 말, 가장 많은 학생이 쫓겨나는 이유
핵심 토론 프리셉토리얼

P.19~20 : 세인트존스에서 1학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 밤새 눈이 펑펑 내린 적이 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교수님이 수업에 못 오시는 불상사가 발생해 속으로 ‘오호, 휴강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
P.50 : 나는 처음 독서를 하면서 이 심사숙고해서 진짜 생각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애국가를 읽고 “‘영원히 우리나라 만세’라는 뜻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며 넘어갔다. 그러고는 내가 읽은 구절을 ‘이해했다’고, ‘생각해봤다’고 믿었다. 수업에 가니 토론을 할 수가 ...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 ‘다양한 직업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깎다’
KBS 프로그램 ‘명견만리’ 강연을 하기 전까지 나는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읽고 모든 수업을 토론으로 진행하며 시험도 없는 세인트존스라는 대학이 있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이미 나는 10년 넘게 거 의 강의를 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팀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주제를 정하고 연구하며 활동할 뿐, 절대로 시험은 보지 않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 수업에서 세인트존스를 운영한 셈이다. 교수의 농담까지 일일이 받아 적고 깡그리 외워 답안지에 그대로 토해내야 A+를 받는 대한민국 명문대의 授業 혹은 受業과 극명하게 다른 세인트존스의 修業. 공부는 본래 스스로 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지금 청년 세대는 평생 직종을 적어도 대여섯 차례나 바꾸며 살 것이란다. 요행으로 첫 직장의 문만 열 수 있는 ‘맞춤 열쇠’ 한 개가 아니 라, 평생 맞닥뜨릴 다양한 직업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마스터키’가 필요하다. 세인트존스 학생들은 자신만의 마스터키를 깎고 있다.
이명현 (천문학자, 과학저술가,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
: ‘질문하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지성인의 핵심 교양을 배우는 곳’

지성인으로서의 삶의 핵심은 질문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특별한 대학이 있다. 세인트존스에서는 4년 동안 100권이 넘는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4년 내내 수학, 과학 실험, 글쓰기, 음악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원전 논문이나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방식으로 배운다.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핵심 교양의 샘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런 특별한 학교를 졸업한 저자가 여러분들을 그 내밀한 세계로 이끌고 간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시대의 등불처럼 타오르는 그곳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인트존스에 아들을 보낸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16년 2월 18일자 '잠깐독서'

최근작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 총 2종 (모두보기)
소개 :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관 덕분에 초등학생 때 한 번, 중학생 때 한 번 학교를 휴학하고 가족들과 세계여행을 다녔다.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가훈 아래, 어릴 적부터 키워온 영화인의 꿈을 이루고자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던 중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세인트존스라는 신기한 학교를 발견, 영화와 인문학 중 어느 길을 택할지 고민하다가 영화를 만드는 기술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입학을 결심했다. 부잣집 딸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외국어로 고전을 공부하...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배우는 진짜 공부의 힘
인문학부터 수학, 과학, 음악까지 고전으로 배우다

고전 100권 속에서 발견한
생각하는 공부의 즐거움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은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배우는 학습 공동체 세인트존스 대학의 공부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책이다. 세인트존스 졸업생인 저자는 그곳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법과 학교생활을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들려준다. 저자가 말하는 세인트존스는 우리 알고 있는 ‘학교’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순다. 그곳에는 교수가 없고, 강의가 없으며, 시험이 없다. 대신 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튜터(tutor)가 있고, 꾸준한 독서와 치열한 토론이 있다. 고전 100권을 읽는 것이 학교의 핵심 커리큘럼이며, 철학과 역사 같은 인문학은 물론이고 언어와 음악 심지어 수학과 과학도 고전을 통해 배운다.
세인트존스의 수업은 단순하다. 고전을 읽고 자신만의 의견을 만들어 와 함께 토론한다. 토론을 하며 생각이 정리되었다면 그것을 써낸다. 단어와 공식을 외울 필요는 없다. 세인트존스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의견이 없는 사람이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고전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저자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고전을 읽으며 오히려 한국에서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세인트존스만의 커리큘럼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평생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선인의 지혜를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세인트존스의 고전 공부법


세인트존스에서 고전을 읽는 이유는 고전 속에는 인류가 고민해온 문제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인트존스에 들어오기 전, 저자에게 고전은 ‘나와는 상관없는 있어 보이는 책’이었다. 하지만 세인트존스에서 공부하면서 그녀는 고전이란 ‘읽는 책’이 아닌 ‘생각하는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전은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우리말로 쓰여 있어도 어려운 게 당연하다. 모르겠으면 무엇을 모르겠는지, 궁금한 점은 무엇인지 물음표를 달아가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으며 읽어야 하는 책 바로 고전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럼으로써 누가 읽든 자신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만들게 하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은 저자가 4년 동안 읽은 리딩 리스트를 바탕으로, 세인트존스의 세미나 수업이 어떤 식으로 학생들을 배움의 길로 이끄는지 알려준다. 학생들은 4년 동안,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부터 모더니즘 소설 《더블린 사람들》까지, 철학과 소설 그리고 역사를 넘나들며 시대순으로 고전을 읽는다. 《파이드로스》와 《향연》을 읽으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읽으면서 자연 운동의 작동 원리에 대해 토론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독서 후에는 인간의 이성과 본성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며, 멜빌의 소설《베니토 세레노》를 읽고 인종차별과 인간의 잔혹함에 대해 토론한다. 그렇게 고전을 시대순으로 읽어가다 보면 인류의 가치와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300년 전, 데카르트에 의해 유럽에 대수학과 해석기하학이 소개된다. 이 일은 정치, 도덕, 종교 등 여러 분야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적 혁명의 하나였다. 또한 인간의 자연, 문화적 가치를 재정의하고 변화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은 세인트존스 프로그램의 핵심이자 학교가 특별하게 강조하는 부분이다. 세인트존스 커리큘럼의 마지막 2년 과정(3, 4학년)은 이 사건에서부터 뻗어나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첫 2년(1, 2학년) 때 배우는 호메로스 시기부터 데카르트 시기까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_4장. 핵심 교양을 키우는 학교(162쪽)

가르치지 않는 수업
세인트존스는 스스로 공부한다


세인트존스의 모든 수업은 토론이다. 특히 일주일에 두 번, 세미나 수업에서는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한다. 토론식 수업은 강의식 수업과 다르다. 강의식 수업을 들을 때는 예습할 필요 없이 교과서만 가지고 가서 교수가 설명해주는 핵심만 잘 듣고 외우면 된다. 하지만 토론식 수업에서는 예습이 필수다. 예습, 즉 책을 읽어가지 않으면 토론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인트존스의 학생들은 교과서 대신 고전을 읽고 느낀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여 수업에 가야 한다. 토론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런 강의식 수업과 토론식 수업의 차이를 저자는 전쟁터의 군인에 비유한다. 강의 전쟁터의 군인(학생)은 총(교과서)만 잘 챙겨 가면 된다. 총을 쏘는 방법은 지휘관(교수)이 알려준다. 그가 알려준 대로 연습만 잘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토론 전쟁터에서는 학생이 직접 총 사용법을 만들어간다.
반면 토론 수업에서는 스스로 사용법을 익히고 오기 때문에 엉뚱한 총 사용법이 있을 수 있다. 하나, 총을 들고 탭댄스를 춘다. 둘, 추다가 필이 오면 방아쇠를 당긴다. 이와 같은 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온다. 그 후 전쟁터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자기가 연구해온 대로 우선 총을 쏴보는 거다. 각자가 연구해온 방법을 살펴보면서 다른 사람의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따라 해보기도 하고, 자신의 방법을 더 발전시키기도 한다.
_2장. 진짜 공부하는 법 배우기(44~45쪽)

세인트존스의 토론에는 사회자가 없다. 발언권을 얻을 필요 없이 발언하고 싶을 때 끼어들어 말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의견을 수렴하기도 하며 자신의 생각을 깊고 넓고, 더 풍부하게 가다듬는다. 고전을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써서 내야 한다.

고양이를 해부하고 수학 공식을 증명하다
고대 그리스어를 번역하고 작곡을 공부하다


세미나 수업에서 읽는 고전은 세인트존스에서 읽는 책의 4분의 1 정도다. 이곳에는 세미나를 뒷받침하는 언어, 음악, 수학, 과학 수업이 있고 각 수업에서는 해당 과목의 고전을 읽는다.
수학 수업에서는 수학자들이 쓴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또 유클리드의 기하학이나 뉴턴과 오일러의 증명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 증명들을 자신이 이해하고 친구들에게 설명하며 납득하는 방식으로 추론 능력과 창의력, 비판 능력을 키운다.
과학 수업에 대한 학교의 자부심은 꽤 높다. 과학 수업 중 일주일에 하루는 실험으로 이루어진다. 직접 동물을 해부하며 생물에 대해 배우고 예전에 이루어졌던 주요 실험들을 그대로 재현하며 물리, 화학 등 과학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과학과 수학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우주 속의 인간과 사물,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생각해보고 그에 대한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의 생각을 접한다.
언어 수업에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를 배운다. 특이한 점은 회화를 위한 수업이라기보다 원전을 읽기 위한 수업, 그리고 언어의 구조를 알기 위한 수업이라는 점이다. 원문을 번역하고 친구들과 번역문을 비교하는 수업도 있다. 또 리포트나 에세이를 쓰기 위한 글쓰기의 기초를 닦는다.
세인트존스는 음악이 사람의 감정과 영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음악 수업에서는 합창을 연습하고 음악의 기초 이론부터 작곡까지를 공부하며 학생의 정서를 함양한다. 물론 토론도 빠질 수 없어서, 여가활동의 의미와 목적 혹은 음악이 어떻게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지 등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왜 배워야 하는가?
고전을 넘어 배움을 생각하다


만약 한국의 학교에서 고전 100권을 배운다면 그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강의실 칠판 앞에 교수가 서 있다. 학생들은 단체로 교수를 바라보고 앉아, 교수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교수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으로 최고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듣고 그가 중요하다고 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교수가 설명하는 그 문장의 뜻을 그대로 필기한다. 시험문제로 그 문장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면 모두 교수가 말한 것을 그대로 적는다. 고전을 배우는 이유가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닌 선인들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이렇게 배운 학생들은 고전 속 지혜를 얼마만큼 제대로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몰랐던 배움의 즐거움을 세인트존스에서 깨달았다는 저자의 말은 ‘공부란 무엇인가, 배움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 학생들에게 공부가 즐겁냐고 물어본다면 돌아올 말은 십중팔구 ‘아니요’일 것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공부, 일등이 되기 위한 배움은 즐거움보다 스트레스와 가깝다.
그냥 읽어도 어렵다는 고전을 읽고 토론까지 해야 하는 세인트존스의 수업이 한국 학교의 수업보다 쉽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 학생이 헤쳐 나가기에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에게 배움이 즐거웠던 이유는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없이 외우기만 하고 배운 것을 꺼낼 기회를 주지 않는 주입식 교육만 받은 학생은 언젠가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받는 한국의 교육이 어쩌면 터지기 직전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의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데, 고전을 생각하게 하는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이 유의미한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리딩으로 리더하라  +   [독서]   |  2015.08.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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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더하라.  독서요약(책쓰기,독서법) 

2011.07.0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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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지배하는 0.1%의 인문고전 독서법

<v:line id="_x0000_s1026" style="left: 0px; text-align: left; position: absolute; z-index: 251657728;" strokeweight="6pt" from="0,45pt" to="478.5pt,45pt"></v:line>리딩으로 리더하라.

이지성 / 문학동네(출판사) / 2011. 6.23일. <st1:personname w:st="on"><st2:sn w:st="on">이</st2:sn><st2:givenname w:st="on">종태</st2:givenname></st1:personname> 요약

□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이유를 알아야 한다.

 - 사고뭉치에서 위대한 천재로 탈바꿈한 비결과 인류역사상 위대한 영웅들의 공통점이 있다.

☞ 그 비밀은 모두 인문고전 독서에 있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성경 잠언 9:10)

 - 세상에 태어나 학문을 하지 않으면 사람답게 될 수 없다. (율곡)

 - 나는 술 대신 철학과 고전에 취하겠다. (아인슈타인)

  ☞ 아인슈타인은 고교에서 퇴학, 대학입시에서 낙방하는 문제아였으나 인문고전을 읽음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36세까지 중간급 장인이었다.

 - 특별한 독서를 하기 전에는 내면에 숨은 천재성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 라틴어를 독학해 문학, 철학, 역사, 고전을 읽고 천재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 그의 좌우명 중 하나는 ‘어떤 장애물이든 고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이다.

 - 고전은, 짧게는 100년, 길게는 2000년 이상 살아남은 천재들의 저작이다.

☞ 인문고전의 독서는 천재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접촉하는 것이다.

 

□ 운명을 바꾸는 인문고전 독서의 힘

 - 지구의 지배계급인 선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인 것이 특징이다.

 - 하지만 후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와는 거리가 멀고 대다수가 문맹이다.

 - 이것은 지배계급의 ‘음모와 의도’가 아닐까?

 

□ 조선의 지배계급층은 인문고전 독서가 업이었다.

 - 피지배계급의 접근은 사실상 허락되지 않았다.

 - 유럽의 왕가와 귀족, 미국의 백인 지배계급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우리나라는 옛날에 팔도의 넘치던 동양고전을 현재는 청학동에서나 볼 수 있다.

 - 미국의 부자들은 사립학교(인문고전 독서를 엄청나게 시킴), 빈자들은 공립학교에 다닌다.

☞ 두뇌의 수준은 그가 읽은 책의 수준과 같다.

 

□ 초강대국들이 쉬쉬해 온 비장의 무기는 인문고전 독서다.

 - 스파르타 교육은 체육보다 철학을 더 시켰다고 한다.

 - 르네상스시대 이전에 유럽은 아랍보다 미개한 지역이었다.

 - 영국과 프랑스의 인문고전의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일본의 국력 신장 프로젝트

 - 고등학생들은 3년 동안 매주 10시간 이상 외국어(라틴어 필수) 수업을 듣는다.

 - 서양고전 원전을 읽기 위해서라고 한다.

 - 아시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문고전 독서 전통은 중국, 한국, 일본 순이었으나,

 - 근세에 와서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국가적인 인문고전 독서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1만엔권’의 주인공 후쿠자와 유키치는 인문고전독서를 통해 메이지 유신을 이끈 사람이다.

 

□ 지금은 국민이 주인이다. 나라를 바꾸고 싶은가?

 -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인문고전 독서를 하도록 분발해야 한다.

 - 그리고 치열하게 독서를 해야 한다.

 - 인문고전 독서는 나라와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과 운명을 결정짓는다.

 

□ 공교육은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고 있다.

 -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 옳은 교육은 스승과 제자가 깊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터득해 나가야 한다.

 -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 스승과 지속적인 접촉과 정신적 대화가 필요하다.

 

□ <st1:personname w:st="on">장한나</st1:personname>는 왜 하버드 철학과를 선택했을까?

 -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의 권유 때문이었다.

 - 세계적인 석학들 중에서 역사와 철학을 외면한 사람은 별로 없다.

 

□ 자녀를 음악가로 키우고 싶다면

 - 1살이 되면 클래식을 들려주고 2살부터 감성의 강도를 높여라.

 - 감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육에 참가한 다른 아이나 부모와 함께 듣게 하라.

 - 부모도 클래식 악기를 배워야 한다.

(스즈키 신이치의 ‘천재들의 뇌’)

 

□ 시카고대학이 3류에서 노벨상 왕국이 된 사연

 - 1929년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광신도 로버트 허친스 5대 총장 부임이 계기가 되었다.

 - 뉴턴은 초등학교시절 전교 꼴찌 부진아였고, 처칠도 꼴찌로 입학했었다.

 - 에디슨도 입학 3개월 만에 퇴학 당했으나 모두 인문고전 독서로 성공하게 된다.

 -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인문고전 독서가 천재로 만든다는 강력한 믿음이다.

☞ 믿음 없는 인문고전 독서는 단순한 여가 이상의 효과가 없다.

   시카고 대학은 고전 100권 이상 외울 정도로 읽지 않으면 졸업을 불허했다.

 

□ 인문고전 독서는 문맹을 천재로 만든다.

 - 뛰어난 인재로,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다.

 - 인문고전 독서 교육은 학습장애를 지적 성장으로 유도한다.

 -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 질문을 많이 하도록 유도한다.

 - 철학고전은 스스로 지식의 근본원리, 즉 지혜에 도달할 때까지 ‘왜’라 묻게 만든다.

 - 교과서는 도서관 있는 책의 요약집이니, 정말 이해하려면 도서관에 있는 책을 봐야 한다.

 - 지식의 근원을 파헤치고자 하는 ‘왜’라는 질문이 책을 읽게 한다.

 

□ 다산 <st1:personname w:st="on">정약용</st1:personname>의 자녀교육법

 - 과거 시험 공부의 정석을 깨뜨렸다.

 - 족집게 선생을 붙이거나, 여러 책 짜집기 한 교재를 주지 않았고, 기출문제집도 멀리했다.

 - 대신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켰다.

☞ 논술 시험만을 위한 인문고전 독서는 하지 마라.

 

□ 고전을 읽는 법 (통독 ⇒ 정독 ⇒ 필사요약)

 - 자신만의 의견을 갖게 하고, 인문고전 연구가와 토론시켜라.

☞ 방법은 다양하나 메이지 않도록 하라.

 

□ 부자가 되려면 인문고전을 많이 읽어라.

 - 조지 소로스도 온 힘을 다해 철학고전을 읽고 그 영향으로 투자의 대가가 되었다.

 - 주말에는 철학과 선생에게 개인지도까지 받을 정도였다.

 -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운다.

 - 인문고전 독서에서 얻은 사고력과 통찰력을 ‘돈’과 관련된 쪽으로 활용한다.

☞ 그런 사람이 경제, 금융계의 꼭대기에 가 있다.

□ 전세계 0.1% 부자들은 인문고전을 읽는다.

 - 역사를 배우면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 존 템플턴은 자신을 살아있는 도서관이라 대답할 정도였다.

 - 그리고 통계학보다는 역사와 철학공부가 주식투자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 황무지에서 돈의 흐름을 꿰뚫으려면 철학, 역사, 지리 공부를 해야 한다.

☞ 베스트셀러는 감동과 지식을 줄 수는 있어도 지혜는 줄 수 없다.

 

 ⓘ 가난한 사람은 독서로 부자가 되고, 부자는 독서로 귀하게 된다. (왕안석)

 

□ <st1:personname w:st="on">정주영</st1:personname>과<st1:personname w:st="on">이병철</st1:personname>의 공통점

 - 어린 시절에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았다. (논어, 대학, 맹자, 자치통감 등)

 - 평생 인문고전을 애독했고, 그 결과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자가 되었다.

☞ <st1:personname w:st="on">이병철</st1:personname>회장은 인재경영(논어),<st1:personname w:st="on">정주영</st1:personname>회장은 의지경영(채근담, 대학)으로 성공했다.

 

□ 조선 최고의 군주 세종과 정조의 공통점

 -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걱정할 정도로 인문고전 독서에 광적으로 몰입했다.

 - 재임 중에 인문고전 토론경연을 수시로 열고, 자문기관인 집현전과 규장각을 세웠다.

 - 세종은 인문고전을 독서하는 중 떠오른 생각이 정치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 정조는 국가경영의 근본 뜻은 오직 고전을 읽음으로써 확립할 수 있다고 했다.

 

□ 모든 경영인의 꿈은 ★★

 - 인류역사의 마지막까지 존속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 영원은 물질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 소크라테스, 공자 등은 인류의 마음 속에 영원에 가까운 세계를 세운 사람들이다.

 - 때문에 진정 경영자라면 그들처럼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인 플라톤의 ‘대화편’ 손무의 ‘손자병법’ 공자의 ‘논어’가

   최고의 영감과 지혜를 줄 것이다.

 

□ 소크라테스식 대화법 ★★

 - 항상 질문을 던지면서 뒤에 숨은 근본적인 가정을 파고드는 위대한 심문 자였다.

 - 왜 이런 전략을 선택했는가? 투자대비 최고 이익을 주기 때문에……

 - 왜 그런 기준을 적용했는가? 투자자들이 바라는 것이 그것이니까……

 - 왜 그들이 판단의 유일한 결정자인가? 사업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 왜라는 질문을 서너 번 계속하면 결국 상대방의 동기와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동기까지 밝혀낼 수 있다.

□ 잭웰치의 소크라테스식 질문법을 활용한 사례

 - 만일 당신이 그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뛰어들 것인가?

 - (새로 시작한다면) 그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당신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

 - 돈 없고, 능력 없고, 배경 없는 사람일수록 인문고전을 치열하게 읽어야 한다.

 - 인문고전을 보다 잘 이해하려고 많은 돈을 지불하고, 독서여행을 떠나고,

 새벽마다 조찬 특강을 듣는 CEO보다 더 열심히 인문고전을 읽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 그렇게 자신의 두뇌를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 <st1:personname w:st="on">정약용</st1:personname>은 하루 아침에 죄인으로 몰려 강진으로 유배됐다. ★

 - 감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그는 복사뼈에 구멍이 3번 날 정도로 치열하게 독서했다.

 - 그에게 독서는 피난처이자 휴식처였다.

 

□ 저자(이지성)는 매일 새벽 두 시간 정도 새벽독서를 했다.

 - 15분 거리의 집 옆 도서관에서 읽고, 옆에 있는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 6시에 집에 와서 샤워하고 책을 더 읽다가 8시쯤 출근했다.

 - (초등교사라 오후 3시경에) 퇴근 후에도 매일 도서관에 들러서 책 반납하고 새로 빌렸다.

 - 저녁식사 이후 1시간 뒤부터 12시까지 글을 쓰고, 일주일에 2~3번은 새벽 3시까지 글을

   쓰고 그런 날은 6시에 일어났다.

☞ 거의 수도승처럼 하루에 1권 이상 읽지 않으면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 하루에 밥은 3번씩 먹으면서 책은 3권 못 읽고,

 - 잠은 4시간 자면서 책은 4시간 이상 읽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든 규칙이었다.

 - 피렌체에서 화형을 당했던 단테는 도망 다니는 와중에도 읽고 글을 썼다고 했다.

  ☞ 독서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열정에 결정된다.

 

■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 ★★

□ 독서는 예배의 연장이다. (토마스 아켐피스)

 - 책을 손에 쥘 때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입 맞추는 시몬처럼 하라.

 - 책 읽기를 마치면 하나님의 입을 통해 나온 모든 단어들에 감사를 표하라.

 - 인문고전 독서는 단순 독서가 아니라, 사명이다. (버지니아 울프)

 

□ 맹수처럼 덤벼라.

 - 무시무시한 열정으로 집중하고 온 마음으로 읽기를 사랑하라.

 - 마음을 책 속에 빠뜨려 주변환경을 잊어 버려라. (서예 <st1:personname w:st="on">류성룡</st1:personname>)

 - 사랑하는 모친과 오랜 이별 끝에 다시 만난 것처럼 독서하고

   아픈 자식치료법을 묻는 어미처럼 질문하고 토론하라. (성호 이익)

 - 먹고 자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책 속에 빠져나올 줄 몰랐다. (도연명)

 

□ 자질과 능력이 남들보다 못하다고 깨달았다면

 - 전심전력을 다해 독서하지 않으면 털끝만한 효과도 얻기 힘들다.

 -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읽고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반복해서 읽고, 보고, 베끼고, 사색하라.

☞ 독서는 1권을 다독하는 것이 최고다.

 

□ 연애편지 쓰듯 필사하라.

 - 어떤 책이든 손에 잡으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대목만 가려서 뽑고

 - 나머지는 눈길도 주지 마라.

 - 그러면 비록 100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st1:personname w:st="on">정약용</st1:personname>)

☞ 최고의 필사는 영혼을 뒤흔드는 문장들을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이다.

 

□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

 -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

 - 책을 읽으면 이치를 궁리하고 탐구해야 한다. (율곡)

 - 사색한 것은 글로 기록하라. 그러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 독서는 오로지 사색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 사색을 기록하는 방법

 -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따로 종이나 노트에 적는다.

 -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다.

 - 책 한 장(章) 또는 책 전체를 읽고 사색한 뒤 독후감식으로 적는다.

 

- End -

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 제21화. 실전: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_깨달음 인문고전에 빠지다... / 게시판

2011.02.0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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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실전: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_깨달음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의 핵심인 ‘반복독서-필사-사색’은 ‘깨달음’을 향해 있다. 이는 곧 ‘깨달음’이 있는 독서를 해야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깨달음’이 있는 독서란 책을 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요, 그의 정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인문고전의 저자와 동일한 수준의 사고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었다고는 하지만 글자만 읽고 마음은 읽지 못했구나. 『항우본기』를 읽고서 성벽 위에서 전투를 관망하던 생각이나 하고 『자객열전』을 읽고서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치던 장면이나 떠올리는 것을 보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사마천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인문고전 저자의 마음을 아는 경지, 그것은 황홀한 기쁨과 함께 온다. 에라스무스, 니체, 헤르만 헤세는 그 경지에 도달한 순간을 “끝없는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마르틴 루터는 “그냥 푹 빠져버렸다”라고 표현했다. 하이데거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압도하고, 몇 년 동안 정신 못 차리게 만든 마력”이라고 고백했다. 괴테에게 그 순간은 “밝은 방 안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바그너에게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베토벤에게는 “행복 그 자체”였고, 천재 수학자 가우스에게는 “인생의 가장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마하트마 간디에게는 “나를 사로잡고 뒤흔드는 대 사건”이었고, 에이브러햄 링컨에게는 “감각과 감성을 단번에 사로잡는 영원한 아름다움”이었다.

퇴계 이황과 반계 유형원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고백은 ‘반복독서-필사-사색-황홀한 기쁨-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인문고전 독서의 극치를 잘 보여준다.

 

퇴계가 젊은 시절 『주자전서』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유례없는 무더위로 팔도강산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때 퇴계는 방문을 꼭꼭 닫아걸고서 독서했다. 그 소식을 듣고 걱정된 친구가 한달음에 찾아갔다. 이미 전에 한 번 독서하다가 중병에 걸린 전력을 갖고 있던 퇴계가 아닌가. 퇴계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친구에게 퇴계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가슴 가득 시원한 기운이 감돌면서 깨달음이 느껴져서 더위를 느낄 수조차 없다네. 어디 그뿐인가. 이 책을 읽으면 학문하는 방법을 알 수 있는데, 그 깨달음을 얻으니 독서가 갈수록 즐겁고 흥이 나네. 이 책의 의미를 충분히 깨우치고 나서 『사서』를 다시 읽었는데 성현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전혀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 아니겠나. 덕분에 나는 학문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네.”

 

어린 시절부터 인문고전 독서를 하면서 황홀한 기쁨에 젖었던, 다산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필사하라고 지시한 『반계수록』의 저자인, 모든 백성이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의 최고의 경제학자이자 조선 후기 실학 시대의 문을 연 천재 학자 반계 유형원은 자신의 평소 독서경험을 이렇게 남겼다. “밝은 창가 조용한 책상 앞에서 가지런히 두 손 모으고 단정하게 앉아서 종일 독서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책을 읽다가 고요히 사색에 잠긴다. 책에 적힌 성인의 말씀과 내 사색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순간이 온다. 붓을 들어 그것을 기록한다.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을 만나면 밥과 잠을 잊고서 매달린다. 그러면 언젠가 마음에 깨달음이 온다. 그때 나의 심장은 뜨겁게 고동치고 내 입술에선 흥겨운 노래가 나오고 내 손과 발은 덩실덩실 춤을 춘다.”

 

다산 정약용은 『주역』 때문에 열등감을 느꼈다. 인문고전 독서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다산이었지만 유독 『주역』만은 책을 단지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속의 기가 꺾였기 때문이다. 하여 몇 번에 걸친 그의 독서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마침내 다산에게 그날이 왔다. 감히 손 댈 엄두조차 못 내던 『주역』을 드디어 손에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산은 뒤로 물러서는 대신 ‘독서하다가 죽어버려라!’를 선택했다. 그는 단순히 반복적으로 읽고, 베껴 쓰고, 사색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주역』은 그의 생각이 되었고, 마음이 되었고, 눈이 되었고, 입이 되었고, 밥이 되었고, 삶이 되었고, 세계가 되었고, 우주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다산은 마침내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는 경험과 함께 기적처럼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독서 경험을 들어보자. 다산이 음악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다가 얻은 경험을 덧붙인다.

 

“오로지 『주역』만을 책상 위에 두고서 밤낮으로 마음을 가라앉혀 탐구했더니, 계해년(1803년) 늦봄부터는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 입으로 읊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붓으로 베껴 쓰는 것에서부터 밥상을 대하고 뒷간에 가고 손가락을 퉁기고 배를 문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주역』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 결과 『주역』의 이치를 환하게 깨달았다.”

 

“지난 수년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사색하고 산(算) 가지를 붙들고 늘어놓고서 심혈을 기울였더니 어느 날 아침 문득 마음속에서 깨달음의 빛이 나타났다. 동시에 삼기(三紀), 육평(六平), 차삼(差三), 구오(具五)의 법이 빛처럼 번쩍이면서 눈앞에 열을 지어 나타났다.”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즉 환희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이 한때 평범했던 심지어는 둔재이기까지 했던 그들을 천재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괴테나 반계 유형원처럼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자질을 보였던 인물들의 입에서도 같은 고백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는 몇십 년 전 혹은 몇 년 전에는 세상으로부터 천재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그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독서 고백과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의 인문고전 독서는 진정한 천재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빈약한 수준이다. ‘사색’은 말할 것도 없고 ‘반복독서’나 ‘필사’조차도 그렇다. 특히 벤저민 프랭클린(오른쪽 그림)의 “나는 크세노폰의 저작을 읽고는 정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책에 푹 빠져버렸다”거나 헤르만 헤세의 “공자의 『논어』를 처음 접했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감격적이었다.……중국 인문고전들을 접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처음의 벅찬 떨림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등의 고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뇌는 무엇인가를 읽고 쓰고 암송할 때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읽고 쓰고 암송하는 뇌의 사진을 그렇지 않은 뇌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신피질의 활동이 급격하게 증가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인간이 깊은 사색에 잠길 때 뇌에서는 전혀 다른 뇌파가 나온다. 아인슈타인이 사고실험에 몰두하고 있을 때, 동양 최고 수준의 바둑 명인이 바둑을 두고 있을 때, 전설적인 명상가가 깊은 명상에 빠져들었을 때 나오는 바로 그 뇌파가 나온다. 인문고전을 읽고 필사하고 암송하고 사색할 때만 그러는 게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고 신문 사설을 읽고 필사하고 암송하고 사색할 때도 뇌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특별한 뇌파가 나온다. 그런데 인문고전을 읽고 사색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문고전의 저자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그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두루 깨닫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 사람의 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뇌의 모든 신경세포와 신경회로가 일순 눈부신 빛에 감싸여 전혀 다른 형태로 재탄생하고 재배열되지 않을까? 하여 그 사람의 두뇌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를 하는 위인의 뇌로 기적처럼 변화하는 게 아닐까? 나는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를 연구하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는 그 정도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면이 있었다.

 

나는 인문고전 독서교육도 ‘깨달음’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두뇌를 변화시키는 것은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앞에서 제시한 ‘통독-정독-필사-자기 의견 갖기-인문고전 연구가와 토론하기’만 해도 두뇌의 변화를 경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지성이라는 사람의 수준에서 말하는 ‘변화’에 불과하다. 즉 내가 말하는 방법을 따른다면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는 천재는 절대로 될 수 없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나는 인문고전 독서 초보자에 불과하다. 나는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인 ‘반복독서-필사-사색-황홀한 기쁨-깨달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물론 나도 ‘통독-정독-필사’는 제법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인문고전독서의 진정한 경지인 ‘사색’의 세계에 발을 제대로 들여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는 천재들이 말하는 ‘사색’이 뭔지 모른다. 형편이 이러하니 중병에 걸릴 정도의 치열한 사색 끝에 찾아오는, 황홀한 기쁨과 위대한 깨달음은 당연히 경험해본 적이 없다.

 

물론 나는 인문고전을 읽을 때마다 어떤 놀라운 정신적 체험들을 하곤 했고 그것은 어떤 깨달음으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 내 수준에서의 체험과 깨달음이었을 뿐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자체가 바로 그 증거다. 만일 내가 천재들이 말하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나는 지금 인문고전 독서법에 대한 책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처럼 새로운 인문고전을 쓰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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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1. 양자역학이란?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아직까지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대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1905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태동되고 1920년대에 이론으로 정립된 양자역학. 이 이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이유는, 양자역학이 분자나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을 설명하는 데에는 뉴턴역학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학교 교과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개정된 고등학교 과정에는 아주 조금 다루는 것 같구요.

그런데 왜 뜬금 없이 양자역학이냐구요?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양자역학의 '이중 슬릿'
 


물질의 최소 구성 단위를 미립자라고 합니다. 빛도 미립자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미립자는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집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양자역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실험이 '이중 슬릿'입니다.

밀폐된 공간에 두 개의 슬릿을 놓고 그 곳을 향해 미립자(예를 들면 전자)를 쏘았을 때, 사람이 관찰하면 왼쪽 사진처럼 입자의 성질, 관찰하지 않으면 오른쪽 사진처럼 파동의 성질로 나타나서 간섭현상(연못에 두 개의 돌을 던지면 나타나는 두 물결의 중첩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이중슬릿 실험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크기, 모양,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입자가 사실은 텅 비어있다(확률 파동)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찰자가 개입하면, 즉 마음, 생각, 의식이 더해지면 그 텅 빈 곳에서 돌연 알갱이(입자)가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다시 관측하지 않으면, 즉 마음, 생각, 의식이 사라지면 다시 파동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결론적으로 미립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믿는 대로 호응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각, 즉 뇌파도 미립자이기 때문이죠.
 
 
 
 

3. 미립자는 내가 생각하는 그 곳에 나타난다

 



왼쪽 그림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배워 온 수소 원자의 이미지입니다. 하나의 전자가 하나의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오른쪽 그림은 양자역학에서 생각하는 수소 원자의 이미지입니다.
양자론에 따르면 전자는 어느 특정 궤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개의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무수히 다양한 위치에서 동시에 공존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평행우주의 개념이 나오죠.

간단하게 말하면 미립자는 다양한 가능성으로 존재하다가 우리의 생각, 믿음, 의식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곳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겠는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요?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삶을, 나의 모습을, 미래를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까?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섬네일 윤미정과 장성규 이웃추가 멜라루카 윤미정&장성규 
나폴레옹 힐 ◆。인물

2011.11.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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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학이란 것을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한 사람. 성공인의 공통분모와 노하우를 찾기 위해 자신의 인생 20년을 바친 사람.
강철왕 카네기는 '부(富)의 비밀'을 세상에 알릴 메신저로서 나폴레옹 힐을 선택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에게 아무런 비용도 대줄 수는 없소. 그래도 하겠소?"
힐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뒤 나폴레옹 힐을 통해 그 성공철학은 활짝 꽃을 폈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공인들이 그 성공철학의 힘을 증명해왔다.

변호사를 꿈꾸던 나폴레옹 힐은 조지타운 법대에 입학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비 마련은 그의 몫이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생활을 했던 그는 <봅 테일러스 매거진>이라는 잡지사에서 성공인들에 대한 기사를 쓰는 일을 하면서 학비를 충당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그 일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 인터뷰에서 그의 운명은 거대한 시험대에 놓이게 되었다.

뜻밖에 첫 인터뷰를 수락해준 이는 당시 세계 최고의 부자, 강철왕 카네기였다.
25세의 나폴레옹 힐이 운 좋게도 73세 거인과의 인터뷰를 성사시킨 것이다. 첫 만남에서 무려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에 몰입하는 동안 어느덧 창가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마음 속으로 마무리 멘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카네기가 말했다.
"이 인터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네.
어떤가, 함께 내 집에 가서 식사라도 하지 않겠나? 밥을 먹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세."

이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은 인터뷰라기보다는 대가의 철학 강론이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정신적인 측면의 철학을 얘기했다면, 카네기는 부를 만들어내고 축적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카네기는 누구라도, 이를테면 거리의 부랑아라도, 자신과 같은 사람이 인생에서 배우고 정립해온 성공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드디어 사흘째가 되는 저녁, 카네기가 나폴레옹 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자네에게 사흘에 걸쳐 '새로운 철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네. 그럼 이제 자네에게 질문을 하겠네. 만일 내가 이 새로운 철학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작업을 자네에게 의뢰한다면 자네는 그것을 어떻게 하겠나? 물론 협력자들이나, 자네가 인터뷰를 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내가 소개장을 써주지. 우선 한 500명 정도가 될 걸세. 이 성공 프로그램을 편집하는 데는 20년 정도의 조사가 필요할 것이네. 그런 일을 자네가 해볼 생각이 있는가? 있다, 없다, 한 가지로만 대답하게."

집으로 돌아갈 여비가 충분한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잔돈을 세고 있던 나폴레옹 힐은 뜻밖의 제안에 멍해졌다. 한낮 지방잡지사의 무명기자에게 세계 제일의 부자가 같이 일해보자고 하다니….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망설이지 말라'는 메시지를 들었다. 그리고 카네기가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이라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폴레옹 힐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카네기 씨, 꼭 저에게 시켜 주십시오. 그 일을 반드시 해낼 것을 약속 드립니다."

그러자 카네기가 말했다.
"단, 내가 자네에게 주는 금전적인 원조는 한푼도 없네. 그래도 괜찮겠나?" 한푼도 받지 않고 세계 제일의 부자를 위해 20년 동안 일을 하라구? 순간 그는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네."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카네기가 주머니에서 스톱워치를 꺼내며 말했다.

"29초네. 자네가 대답을 하는 데는 29초가 걸렸네. 만일 1분이 넘었다면 자네를 그저 앞길이 별로 안 보이는 평범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제안을 철회했을 걸세. 이런 결단을 1분 안에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을 시켜도 시원치가 않네."
사실 카네기는 나폴레옹 힐 이전에 260명의 사람에게 제안했었으며, 아무도 1분 안에 대답하지 못했다.

20년 동안의 무료 프로젝트와 가장 가치 있는 대가

나폴레옹 힐의 계획을 들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 일에 젊음을 낭비한다며 만류했다.
그의 어머니만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20년이란 기간 동안, 카네기가 소개해 준 인물들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었다. 나폴레옹 힐은 이들의 성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성공철학을 완성해 나갔다.

그 무렵 카네기는 죽기 전, 자신이 모은 모든 돈이 올바른 일에 쓰이기를 바랐다. 교육단체·도서관·평화재단 등에 2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으나, 그것은 아직도 자기 재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는 나머지 대부분의 재산을 나폴레옹 힐을 통해 환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카네기가 나폴레옹 힐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돈을 기부했지만 아직도 충분치 않아. 이는 내 재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은, 내가 부를 축적한 방법, 그 노하우야.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이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남기고 싶다네.
그리고 자네라면 틀림없이 이 일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믿네. 자네라면 내가 손에 넣었던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을 거두게 할 수도 있을 테고."

카네기의 안목은 정확했다. 나폴레옹 힐은 카네기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약속한 20년이 지난 1928년 나폴레옹 힐은 드디어 열 여섯 개 파트로 이루어진 성공철학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 프로그램을 소개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Think & Grow Rich)>라는 책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권이 팔려나갔으며, 각계 각층에서 수많은 성공인들을 배출해냈다.

카네기로부터 전해진 여섯 가지 성공비결

자동차왕 헨리 포드, 백화점 사업의 선구자 존 워너메이커, 루즈벨트 대통령, 코닥의 창립자 이스트먼, CNN을 설립한 테드 터너, 노먼 필 박사, 리 아이아코카 등등이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룩한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성공의 길로 인도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에 눈을 뜨고 있다.

나폴레옹 힐 자신도 자신의 성공철학을 통해 크게 성공했다.
"나처럼 가난한 시골 출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 '사고(思考)'라는 대자연으로부터 특별하게 얻은 뇌력(腦力)을 인식하여, 그것을 활용하기만 하면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다니…. 나야말로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운명의 여신의 넓은 품에 안기게 되어 최고의 성공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뇌력의 힘'은 나폴레옹 힐에 의해서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혹자는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발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의 근간이 된 것은 다음의 여섯 단계이다.
이 여섯 단계는 카네기가 나폴레옹 힐을 처음 만나 사흘 밤낮으로 이야기했던 부의 철학이고, 나폴레옹 힐이 20년간 체계화시킨 성공철학의 근간이 된 것이다.

마음 속에 당신이 원하는 돈의 액수를 분명하게 정하라.
돈을 무조건 많이 벌겠다는 식의 목표설정은 무의미하다. 구체적으로 정하라.

당신이 원하는 돈을 받은 대가로 당신은 무엇을 지불할 것인지 결정하라.
이 세상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보수는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이 원하는 돈을 언제까지 얻고 싶은지 그 날짜를 정하라.

당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라.
그리고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망설이지 말고 곧 행동에 옮겨라.

당신이 얻기 위한 구체적인 돈의 액수, 그것을 얻기 위한 대가, 날짜,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 이상의 네 가지 사항을 종이에 자세히 적어라.

종이에 적은 이 선언을 하루에 두 번,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자기 직전에 되도록 큰소리로 읽어라. 이때 당신은 이미 그 소망을 실현한 것처럼 생각하고 믿어라.

나폴레옹 힐은 이 여섯 단계의 교훈이 돈을 모으는 데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소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제 나폴레옹 힐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을 맛보자.

성공은 명확한 꿈과 목표에서 시작된다

"꿈과 목표는 단순한 바람이어서는 안된다. 불타는 듯한 열렬한 소망이어야 한다.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꿈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면 기적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이 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보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기회가 당신 앞에 나타난다. 타인의 도움을 받게 되고, 마법처럼 친구가 나타난다. 그리고 당신 안에 있는 공포와 의심이 자신감으로 바뀐다."

나폴레옹 힐은 꿈과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으로부터 목표달성을 도와주는 손길이 생긴다고 했다.
그 자신도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매번 도움의 손길을 받았는데, 그는 그것을 '자신의 뒤에 있는 투명인간으로부터의 도움'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런 투명인간의 도움을 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것은 하반신 불구자인 로이드 코리엘 이야기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화이트 빌 근처에 있는 어느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전반에 심한 병을 앓아 평생을 하반신 불구로 살아야 했다. 그의 모습은, 길가에 깡통을 들고 앉아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비참했다. 그를 가엾게 여긴 어느 사업가의 도움으로 그는 작은 가게 한구석에서 시계수리공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항상 자신감과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나폴레옹 힐의 책을 접했다. 그는 그 책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책에 쓰여져 있는 성공법을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화이트 빌에서 가장 멋진 보석점을 갖겠다는 목표를 기록했고, 그 목표를 기억 속에 집어넣고 매일 여러 차례 그것을 복창했다. 결국 그의 가게는 화이트 빌에서 가장 멋진 보석점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그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여 훌륭한 가정과 귀여운 아이들을 갖게 되었다. 로이드는 명확하게 설정한 모든 목표를 달성했으며, 크게 성공했다.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은 인내력

"소망을 실현하여 금전적인 가치로 바꾸기 위해서는 인내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때 인내력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의지력'이다. 의지력과 인내력이 결합될 때, 무서운 힘이 생겨난다. 의지력과 인내력으로 많은 어려움을 이긴 사람들만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

나폴레옹 힐은 인내력을 이야기할 때면 브로드웨이를 정복한 몇몇 인물을 예로 든다. 그중에서 패니 허스트는 단골 메뉴다.

그녀가 작가의 꿈을 안고 뉴욕에 온 것은 1915년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불타는 희망을 안고 저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4년 동안 수도 없이 출판사를 왕래했지만, 편집자를 만나고 돌아올 때면 늘 발걸음이 무거웠다.
'브로드웨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내쫓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코 몰아낼 수 없을거야. 지쳐서 단념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네가 될거야.'라고 스스로 격려했다.

그녀는 많은 실패와 거부와 좌절을 맛보았다. 심지어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는 그녀에게 무려 서른 여섯 번이나 거절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판사들을 드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항상 승리에 대한 확신이 불타고 있었다.
드디어 출판업자들이 그녀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녀의 작품은 책으로,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막대한 부와 명예가 쏟아져 들어왔다. 케이트 스미스는 노래를 가지고 패니 허스트와 똑같은 인내력 테스트를 받았다.
강렬한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마이크만 있으면 노래를 불렀다. 돈을 받지 못할 때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결국 브로드웨이는 그녀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녀는 엄청난 성공을 했다.

위대한 사람들도 성공하기까지는 온갖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이 온갖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한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이 발휘해온 초자연적이고 위대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폴레옹 힐은 헨리 포드와 에디슨의 삶을 곁에서 연구함으로써 그 힘의 원천을 찾아냈다. 그 두 사람이 온갖 난관을 극복하게 한 힘의 원천은 바로 '인내력'이었던 것이다.

상상한 것은 반드시 실현된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창조할 수 있다. 최근 50년 동안 인간은 이전의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이룩한 성과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해냈다. 이러한 성과도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폴레옹 힐은, 부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고, 그 아이디어는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상상력을 얘기할 때면 늘 한 사례를 든다. 작은 마을의 약사였던 팸버턴이 만든 마법의 액체에 대해서이다.
팸퍼턴은 강장제를 만들기 위해 실험을 거듭했다. 1886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완성된 재료에 물을 타기만 하면 액체의 강장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가 실수로 액체 대신 소다수를 넣어버렸다. 그런데 이 액체는 독특한 단맛을 냈다. 팸버턴은 그 액체를 약국에서 팔았지만, 별 소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 약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이가 있었다. 시골의 작은 약국의 점원이었던 캔들러는 자신의 전 재산인 1750달러를 지불하고 이 약의 조제법과 한 주전자의 약을 사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주전자에 담긴 액체가 마법의 물이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판로에 골몰하던 캔들러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 검은 액체를 약이 아닌 청량음료로 판매했다. 이 액체는 다름 아닌 오늘날 전 세계 최고의 히트 상품인 코카콜라이다.

잠재의식과 연결하라.

"나의 성공철학은 모두, 잠재의식에 도달하여 감응하는 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자극제이다. 그러나 한 번의 도전으로 도달하지 못했다고 실망해서는 안된다. 잠재의식은 습관화될 때 비로소 생각한 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념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나폴레옹 힐에 의하면, 원하는 목표를 어떻게든 잠재의식 속에 심어두기만 하면 잠재의식이 알아서 모든 것을 이루어낸다고 한다. 그리고 잠재의식이 해낼 수 있는 범위는 무한정하다. 때문에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란, 바로 잠재의식 속에 소망을 부지런히 입력시키는 일이다.

나폴레옹 힐은 잠재의식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잠재의식은 당신의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잠재의식은 단 일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게으름 때문에 잠재의식에 소망을 입력시키지 않으면, 잠재의식에는 부정적인 정보가 계속 입력될 것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에는 그게 부정적인 정보가 되었든, 긍정적인 정보가 되었든 무차별적으로 입력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공포나 빈곤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버리기 위해서는 좀더 건설적인 정보를 계속 입력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나폴레옹 힐에 의하면, 잠재의식을 창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상상력'이라 한다. 상상력으로 좋은 계획이라는 씨앗을 만들고 그것을 잠재의식이라는 밭에 뿌린 후 신념이라는 물을 주면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힐의 성공철학 또한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의 직접적인 체험이 담겨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성공학의 바이블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 힐은 성공철학을 정립하는 20년 동안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가 성공철학을 만드는 과정에서 활용한 것은 대략 다음의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물론 이 네 가지는 나폴레옹 힐에 의해 때로는 여덟 가지, 때로는 열 세 가지의 성공철학으로 정립되었다.

첫째, 확고한 목적의식과 불타는 강렬한 의욕을 갖는다.
둘째,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착실히 실행해나간다.
셋째, 주위 사람들의 부정적인 견해는 깨끗이 무시해버린다.
넷째, 나의 목표와 계획에 찬성하여 항상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을 친구로 사귄다.

이 네 가지의 성공철학은 다시 하나로 표현된다. 그것은 바로 '불가능이란 없다'이다.

한번은 나폴레옹 힐의 생일날, 그의 성공학 세미나를 들었던 제자들이 멋지고 두툼한 사전을 그에게 선물했다. 단상에서 사전을 받은 나폴레옹 힐은 펜을 꺼내고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이 멋진 선물을 받게 되어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사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 사전 속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 힐은 '불가능'이라는 말을 찾아내서 펜으로 그 부분을 지워버렸다. "자, 이제 이 사전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실려 있는 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이제까지 불가능이라 일컬어지던 것들이 실은 불가능하지 않았던 예들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가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전에도 '불가능'이란 말은 필요치 않습니다."

'불가능이란 없다'는 바로 나폴레옹 힐의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출처] 나폴레옹 힐|작성자 루시

  하버드 교수들이 열광한 자녀교육법  +   [독서]   |  2016.05.01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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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이지성의 전 국민 인문고전 독서 프로젝트! 
정약용, 장한나, 처칠, 윌 스미스, 스티브 잡스…처럼 읽어라 
개인, 가족, 기업,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인문고전 독서의 위력! 


ㆍ 아인슈타인, 뉴턴, 처칠, 에디슨이 사고뭉치에서 위대한 천재로 탈바꿈한 비결은? 
ㆍ둔재들만 가던 소문난 삼류 학교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사연은? 
ㆍ카네기, 워런 버핏, 이병철, 정주영이 황금 손이 될 수 있었던 밑바탕은? 
ㆍ알렉산더, 세종과 정조, 당 태종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희대의 국가 경영자들의 공통점은? 

‘인문고전 읽기’를 통해 미래를 바꾸는 힘을 제시하는 책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출간됐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역사를 움직여온 위대한 개인, 조직, 국가 뒤에는 항상 탄탄한 인문고전 독서 전통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그 중요성을 역설하며, 기존의 방식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온 천재들의 독서법을 공개한다. 『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스물일곱 이건희처럼』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대한민국 대표 멘토로 자리매김한 이지성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차별화된 시각과 명쾌한 논리로 수천 년간 강대국과 지배계급만이 쉬쉬하며 이어온 성공의 비밀을 파헤친다. 더불어 가정에서 아이에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킬 때 주의할 점, 초보자를 위한 세심한 조언, 단계별 추천도서 목록까지, 바로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실용적인 정보들도 담았다. 
‘인문고전’이란 철학, 역사, 과학, 예술 등의 분야를 아울러 짧게는 일이백 년, 길게는 일이천 년 이상 전해오며 널리 읽히는 작품, 기성의 사고와 양식에서 탈피해 비약적인 혁신을 이뤄낸 천재들의 저작을 일컫는다. 저자는 인문고전을 읽는 것을 “천재의 두뇌에 직접 접속하는” 행위,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나누는 일에 비유한다. “만일 앞으로 10년 동안 매일 두 시간 이상 위대한 인문고전을 남긴 진짜 천재들에게 개인지도를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간명하면서도 강력한 시발점이다. 
“인문고전 독서는 두뇌에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물론 처음에는 고되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이해하지 못해 진도가 일주일 또는 한 달씩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기면 고통은 기쁨으로 변한다.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천재들이 쓴 문장 뒤에 숨은 이치를 깨닫는 순간 두뇌는 지적 쾌감의 정점을 경험하고, 그 맛에 중독된다. 그리고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뻔한 꿈밖에 꿀 줄 모르고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인문고전 저자들처럼 혁명적으로 꿈꾸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20쪽) 

누가 우리의 책장에서 인문고전을 치웠을까? 

우리나라 대학은 한때 세계 어느 나라 대학 못지않게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었다. 교수가 수업시간에 인문고전을 원서로 강독하고, 선배가 후배에게 철학고전을 권하고, 대학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독파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베스트셀러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는 교수, 신입생에게 재테크 서적을 권하는 선배, 무협판타지 소설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들어섰다. 누가 우리의 책장에서 인문고전을 치웠을까? 저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근대의 영국과 프랑스, 20세기를 지배한 미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막강한 국력과 융성한 문화를 자랑한 나라들이 하나같이 인문고전 독서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실천해왔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그러한 전통이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소수에게만 허용되었다는 사실을 추적하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66쪽) 

체력 단련과 군사력 증강에만 힘썼다고 알려져 있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는 사실 운동보다 철학을 더 사랑했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스파르타는 탈레스, 솔론 같은 고대 그리스의 7현인이 부러워하고 칭송할 정도로 최고의 철학 및 변론 교육을 실시했다. 그렇다면 스파르타는 왜 강한 육체만 추구한 국가로 알려졌던 걸까? 자신들의 성공 비결이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한 스파르타인들이 거짓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비밀은 잘 지켜져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스파르타 예찬가들은 거의가 그들의 계교에 넘어갔습니다.”(플라톤, 『프로타고라스』 중에서) 

‘인문학’과 ‘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그들 또한 인문고전을 읽었다! 


흔히 인문학을 ‘돈’과 대척점에 두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고정관념’이자 ‘환상’이라고 말한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해 막대한 부를 일군 경영자와 투자자 들은 모두 인문고전 독서광이었다. 
영국 런던 빈민가에서 접시닦이, 웨이터, 페인트공 등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던 조지 소로스는 1992년, 런던을 떠난 지 36년여 만에 세계 금융계의 황제가 되어 다시 영국 땅을 밟았다. 그는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하는 순간을 노려 영국 중앙은행에 도전해, 일주일 만에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실패의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도 온 힘을 다해 철학고전을 읽었던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투자 성공 비결을 ‘철학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철학적 사고를 통해 얻은 이론들을 현장에 적용한 결과 나는 주가가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언제든지 돈을 벌 수 있었다.” 
세기의 경영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아이폰 신드롬을 낳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유명한 소크라테스 신봉자이다. “만일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가 가진 모든 기술을 그와 바꾸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은 『논어』에서 기업경영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장 감명을 받은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오히려 만족한다.” 
인문고전 독서와 부富의 관계를 밝히려는 저자의 시도는 다음과 같은 동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나쁜 의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잘살던 사람을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시키는 그 악한 시스템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새로 쓴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법 

리딩으로 리드하라 1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우리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로 독서하고 공부하자. 조상을 위해, 부모를 위해, 후손을 위해 여기서 일하다가 같이 죽자”라고 당부했다. 그 결연한 의지의 밑바탕에는 백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2 맹수처럼 덤벼들어라 
남명 조식은 검을 차고서 책을 읽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나태해진다면 이 검으로 나 자신을 베어버리리라는 각오의 표현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스승 암브로시우스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두 눈은 책장을 뚫어버릴 듯했다”고 묘사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3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인식하라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대하고서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아이작 뉴턴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읽다 벽에 부딪혔고, 수시로 처음으로 돌아가 읽기를 반복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4 위편삼절韋編三絶,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어라 
천재 작곡가 바그너는 1,000페이지가 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처음 접한 해에만 네 번 읽었고, 그 뒤로 평생 반복해 읽어 내용을 전부 외워버렸다.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또한 같은 책을 40년 동안 반복해서 읽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5 연애편지를 쓰듯 필사하라 
다산 정약용은 매일 새벽마다 고전을 몇 쪽씩 베껴 쓰는 일을 황홀한 취미로 삼았다. 그는 필사의 효과를 의심하는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로 끝낼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6 통通할 때까지 사색하라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사색 없는 독서는 전혀 씹지 않고 삼키기만 하는 식사와 다를 바 없다”라고 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통찰력의 근원으로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을 꼽았다. 

리딩으로 리드하라 7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라 
환희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은 진정한 천재와 일반적인 수재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다. 헤르만 헤세는 “공자의 『논어』를 처음 접했을 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로 감격적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입법론』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라고 했다.

 

세계 최고의 신의(神醫) 장병두

 

              출처) 민중의술 명의열전 ** 글쓴이 : 황종국판사 


       비나리 - 여는 마당

                                                               

              

 

 심연(深淵)이다.

물이 맑으면 깊어도 바닥이 보이지만, 너무 깊으면 물이 아무리  맑아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법이다.

장병두 선생님을 뵈면  뵐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도대체 저 불가사의한 의술과 지혜는 어떻게 해서 터득된 것일까?

호칭부터 정리하자.

사람들은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백 살 하고도 두 살. 범인이 생각하기 어려운 연세이시니 할아버지라

해도 증조부, 고조부 뻘이시다. 그러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졸자(拙者)의 느낌은 다르다.

가까이서 꽤 대화를 나누어본 감으로는 선생님은 ‘할아버지’가 아니다. 강기(剛氣)와 포부를 아직도

간직하고 계시다. 사람을 호령할 기개가 여전히 살아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시고, 스스로 ‘기분파’

라고 하실 정도로 감정도 상당히 분방하시다. 이런 분을 어떻게 할아버지라고 하겠는가! 당신의

생각도 그러실 것으로 짐작하지만, 졸자는 그 강기(剛氣) 앞에서 감히 할아버지라고 보호성 존칭을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저 ‘선생님’, 무릎 꿇고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고 무난할 것이다.

감사의 말씀을 먼저 올린다. 먼저 하늘에 감사드리고, 다음으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민중의술의 명의를 많이 찾아다녔지만, 정말로 그 표본 중의 표본, 대표자를 만났다.

우리 민중의술의 표상을 너무나도 그대로 지니신 분이다.


민중의술의 표상, 그것이 무엇인가?

자생적인 것,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서 저절로 터득된 것이 그 하나이다.

선생님은 서당을 몇 달 다닌 것 외에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으시고도 독보적인 의술의 경지를

여셨으니 여기에 꼭 맞다. 지식으로 따지고 까부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통찰하여 단숨에 터득된 것이

그 둘이다. 그 지혜는 선천적인 생이지지(生而知之)가 아니면 반드시 정신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멀리 있지 않고, 생활 속에 있으며 간명한 것이 그 셋이다. 서양식 분석학으로 따지면야 복잡해질는지

몰라도 현상적으로 선생님이 펴시는 의술은 진단에서 처방까지 너무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탕약으로만 병을 고치시는데, 그 약 또한 먹기가 일반 한약과 달리 너무 자연스럽고 부담이 없다.

오로지 생명을 위한 것이고 돈을 위한 것이 아님이 그 넷이다. 약재가 들 어가고, 그것도 비교적 좋은

약재만 쓰시기 때문에(좋은 약재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신다) 기본적인 원가가 소요되고, 따라서 최소한의 돈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어려운 사람, 어린이, 노약자 등에게는 무료로 많이 해주시고, 치료의

효과가 확실한 데 비하면 그 약값은 전혀 비싼 것이 아니다.


하늘만 아는 기연


백 두 살이 되도록 소수의 아는 사람만 알고 있던 선생님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정말로 하늘만 아는 인연의 기묘함이라고 해야 할 것 같 다. 병을 너무 잘고치다 보니 한의사협회에서

고발을 하게 되었고, 법정에 서게 된 것이 바로 그 인연의 출발이다. 졸자와의 인연도 그로 인함이고,

그 후에 전개된 선생님의 생명의술 살리기 운동과 단체의 결성, 그리하여 마침내 매스콤을 통하여

온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것도 그러하다.

한의사들은 선생님의 의술을 매장하려고 손을 댄 일인데, 그것이 오히려 천하의 신의(神醫)를

세상에 드러내고 그 의술을 살리면서 이 땅의 민중의술을 세계만방에 펼칠 기회로 전개되었으니,

인연의 기묘함을 하늘이 아니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 출발과 경위를 몇 가지 치료사례와 더불어 간략히 적는다.


치료, 수사, 재판

00사에 계신 00 스님. 20대부터 병을 앓았다. 17년간 여러 가지로 노력했으나 점점 안 좋아져갔다.

소화불량, 변비에다 피부는 습진 같은 것이있어 몇 년간 흰 장갑을 끼고 살았다. 황달, 흑달로 악화되면서 몸무게가 10kg이나 줄었다. 맥도 없고 의욕도 없어 하루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나중에는 심신이 분리되는 느낌이 왔다. 대전에 있는 노인 한의사에게서 암으로 진단받았다. 어머니가 위암으로 48세 때에

전주 우석대학병원에서 돌아가신 터였다.

약을 지어 인천 00사에 갔더니 어느 스님이 ‘서울에 용한 할아버지가 있다’고 하였다. 한의사가 지어준

약은 팽개치고 그 길로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뵙고 할아버지가 지어주는 약을 먹었다. 지금부터 15년여 전의 일이다. 3개월을 먹고 나니 할아버지가 “됐어” 하였다. 차츰차츰 몸이 좋아졌다. 그 뒤로는 계절이 바뀌거나 할 때만 할아버지에게 몸을 점검받고 약을 지어 먹었다. 할아버지는 00스님의 집안 내력으로 위가 특수구조로 되어 있어 병이 온 것인데, 다른 사람은 못 고친다고 하신다.

군산남중 한문교사 문선생은 갑상선암(임파선암)을 15년 정도 앓았다. 마침내 병원에서는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오빠인 00스님을 통하여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완치되었다.

문선생 주변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문선생도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보면

할아버지를 찾아가 보라고 알려주었다. 환자들이 서울로 몰려가기 시작하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게 되자 환자들의 불편을 걱정한

할아버지께서 한 달에 한 번씩 군산으로 내려와서 치료를 해주게 되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오시기

로 한 전날 저녁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기다렸다. 군산뿐만 아니라 전주, 익산, 광주, 순천, 여수,

목포, 대구, 서울 환자까지 해서 5백 명 내지 6백 명이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그 많은 환자들을 5박6일 동안에 다 봐주셨다. 하루에 100여명을 보신 셈이다.

100살 넘은 나이에, 놀라운 일이 아닌가! 맥활법으로 1인당 2~3분이면 진단과 처방이

다 끝나므로  가능한 이야기다.

사람으로 하여금 병고에서 벗어나도록 치료의 인연을 맺게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좋은 일도 그 일에 너무 부대끼면 피곤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선생과

그 가족들은 그 인연을 오로지 ‘복을 짓는다’는 애틋한 정성으로 키워내었다.

군산과 전북의 한의사협회에서 고발을 했다. 2006년 6월의 일이다. 무면허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이다.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하여 부정의료업자로 몰려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죄가 되었다.

문선생과 동생도 함께 입건되었다. 경찰의 조사를 거쳐 9월에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문선생과

남동생은 구속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고령이라 구속을 면했다.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 사이에 할아버지의 치료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암울한 일이다. 그러나 하늘의 인연은 기이하여

그 깊이를 헤아리기가 심히 어려운 법. 이 일이 앞으로 어떤 일을 연쇄적으로 몰고 올 것인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치료받은 사람들과 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미 경찰에서 조사하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환자들의 아우성 때문에 여관에서 진료를

해 줄 수밖에 없었던 터였다.  환자들의 말에 의하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여관으로

돌아오시면 할아버지는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이렇게 한탄하셨다고 한다.

“이 죽어가는 환자들은 어떻게 하라고 ...”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해도 고치지 못하고 고생하던 병을 할아버지가 지어 준 약을 먹고 고쳤거나

고치고 있는데, 이런 명의를 왜 처벌하느냐, 선처해 달라는 등의 탄원서가 법원에 쇄도했다.

약이 중단된 환자들은 더 아우성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1심 재판이 끝나고  문선생은 항소를 포기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당한 수모의 고통과 그로 인해서 재발한 후두암이 그녀의 싸울 용기를 접어버린 것이다. 집행유예가 확정되면서 교직에서도 파면되었다. 나중에 재판을 받고 역시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병과 받은 할아버지는 항소를 하였다.

분노한 환자들이 마침내 단체를 구성했다.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의술 살리기 모임」.

인터넷에 카페도 개설하였다. http://cafe.naver.com/lovelifejang 누리꾼들의 의견이 폭주했다.

‘장병두’라는 단어는 인터넷 검색어 1위가 되었다.

신문도 관심을 표하며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방송도 나섰다. 유례가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민중의술을 애써 외면하며,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 백성의 생명을 옥죄는 의료제도에 한마디

발언도 하지 않던 언론 이 움직이는 역사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어떤 병들이 나았길래 이러는 것일까?

탄원서에 적혀 있는 치료사례들 중 몇 가지를 그 요지만 옮겨본다(선생님이 평생 치료해온 사례는

너무 방대하여 별도로 책으로 편찬되어야 할 일이고, 여기에서는 그 편린이나마 보여주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치료사례 - 그 편린들

① 본인은 2003년 여름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3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하였으나

의사 선생님 처방이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은 혈전용해제, 혈관확장제 등, 정확한 이름을 모르나

매일 3번씩 복용을 해야 한다고 하여 약 2개월간 복용을 했었으나 너무 많은 약으로 인해 위까지

아프고 식욕이 떨어져 삶의 의욕을 잃어갈 때 장병두 할아버지의 치료(약 2개월분의 탕약치료)로

인해 오늘날까지 병원약이 없이 건강하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다시 약을 먹어야 될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이제는 할아버지의 약을 구할 수 없다고 하니 본인으로써는 막막하기 그지없습니다.

② 본인은 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 아토피 피부병으로 심하게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피부과를 다니기 시작하여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다 다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약을 4개월가량 먹고 건강해졌습니다.

제 아들도 그 약을 먹고 아토피가 없어졌습니다. 제 아들은 지난겨울 감기에 걸린 후 비염이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무료로 석 달 동안 한약을 지어주시어 완치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어머니의 병

(오줌소태, 소화불량, 중풍)까지도 다 낫게 해 주셔서 저희 집안에서는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아토피만 나은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제 몸에서 좋지 않았던 간, 장염, 위염 등 모든 잡다한 것들이 다 나을 수 있었습니다. 한약을 먹으면 위가 안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실제 다른 한의사의 한약을 먹을 때에는 위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달랐습니다. 몸 전체를 건강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③ 저는 약사입니다. 1990년대에 충청북도 여약사회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선방에서 3년간 입선하였는데, 남편의 간병생활과 사별의 충격으로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위염과 불면증으로 3년간 체중이 10kg 감소하여 40kg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주대병원에서

종합 진단해보 니 위염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하였고 특별한 처방이 없었습니다.

그 무렵 할아버지를 알게 되어 진맥을 받고 약을 썼습니다. 할아버님은 마치 신선과 같은 비범한

모습이셨으며, 특이한 진맥법으로 맥진하셨고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좋다 하시며 명년 4월쯤 46kg이

될거다 하시며 명년4월에 다시 오라 하셨습니다. 처음엔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 몰랐으나 어느새

체중이 늘어 이듬해 4월에는 건강이 회복되었으므로 할아버님과의 약속도 잊은 채 지났습니다.

2005년 5월 자고 일어나니 양쪽 안구가 충혈 되어 있었습니다. 2,3일 기다려 보아도 낫지 않아

청주에 있는 안과에 가서 치료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고, 또한 위․소장․대장이 운동을 안하는

것처럼 소화도 안되고 먹먹하며 온 몸이 뻣뻣해지고, 표현하기 어렵게 몸의 상태가 몹시

불쾌하였습니다.

할아버님 생각이 떠올라 수소문 한 끝에 군산에 가끔 내려오심을 알게 되어 간청한 끝에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할아버님은 맥진하시고 중풍 초기 증세라 하시며 약을 지어 주셨는데

그 약을 먹자마자 혈액순환이 됨을 느꼈고 몸의 컨디션이 좋아졌습니다.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가끔 씩 양쪽 손,팔에 쥐가 나고 마비감이 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사실 MRI 촬영이나 컴퓨터 촬영으로도 초기에 중풍을 발견하기란

어렵거든요. 그리고 눈에는 웅담으로 특수제조하신 안약을 주셨는데 그 약을 넣은 후 완전히

충혈이 가시고 나았습니다.

00사에 다니는 신도중에 6년 전 자궁암으로 하혈을 많이 하며 실의에 빠져있었는데 할아버님

약을 먹고 완전히 나아서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도 치료해주고 선물로 대통령 휘호 액자를 받으셨고,

이병도 서울대 학장님 손자의 백혈병을 고쳐 주었고, 경북대 병원장 아드님의 백혈병도 5년 전에

치료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④ 본인의 어머니(87세)는 신태인읍에서 생활하시다가 2006. 5. 4. 갑자기 한쪽(우측 팔, 다리)에 마비가 와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하여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내는 상태에서 우리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께서 환자는 연세가 많을뿐더러 뇌경색에 중풍으로 우측에 마비가 와 팔다리를 못 쓴다고 하면서 치료가 어려우니 종합병원으로 옮기라고 하여 사실상 병원에서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저도 어머니 연세가 많아 고민하다가 병원에서조차 포기한 상태이므로 결국 한방으로 치료하기로 결정하고 모친을 노인복지단체인 전주 원심원에 위탁하고 아주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찾아가 진맥하고 한약을 복용한 결과 신기하게도 2주 만에 홀로서서 걸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와 집에서 평상시와 같이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어머니는 지금도 할아버지 약을 한번만 더 먹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시면서 왜 할아버지에게 데려가지 않느냐고 야단이십니다.

⑤ 태어난 지 10개월 된 아이가 홍역을 앓다 병원에 실려 간 건 2000년 12월. 심한 폐렴으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가까운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별 차도가 없어 다른 지방병원을 전전하다가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긴 건 2001년 5월이었습니다. 그때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인공 호흡기를 달고 있었는데, 어렵게 병실생활을 하다가도 다시 나빠져 중환자실에 가기를 수차례 하였습니다. 2002년도에는 좀 좋아져서 집에 와 지내기도 했지만 감기만 걸려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폐 때문에 다시 중환자실로 가곤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으로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붉은 물결을 만들 때 우리는 중환자실에 연락 후

엠블런스를 타고 가며 차량 통제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의식이 없는 아이 목의 캐뉼라에 숨이

멈추지 않도록 끝없이 앰브를 주물렀다 폈다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다 2003년 말에

전주로 이사하여 병원 가는 횟수를 줄인 대신 집에서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하고 지냈습니다. 2000년

이후로 산소발생기는 아이의 생명줄로 언제나 인공산소를 대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 9월 언니 친구로부터 장병두 할아버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진료하시는 날에

찾아가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위해 모여 있었다. 아침 10시쯤 갔더니 새벽부터 오셔서

기다리시는 분들도 많았는데 목에 호스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시고 문계수 선생님께서 “중환자니까

먼저 봐도 될까요?” 한마디에 그 많은 분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양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이의 주된 증상은 끝없는 덩어리 큰 노란 가래였습니다. ‘일곱 살 15kg 아이의 작은 몸 어디에서

저런 가래가 끝도 없이 나올까?’ 싶을 만큼 아이는 가래가 많아 숨쉬기를 힘들어하며 자주 파래지고

산책을 나갈 때도 몇 발짝 걷고 나면 안아줘야 할 만큼 체력이 약했습니다.

할아버님이 조제해 주신 약은 작은 한 봉지를 하루 세 번 나누어 먹었는데 이틀 6번을 먹고 나자

“그 많던 가래가 다 어디로 갔을까?” 의구심이 생길 만큼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러던 두 달을 복용한

어느 날, 산책을 가던 아이가 오빠와 함께 잰 걸음으로 앞서 가더니 껑충껑충 뛰는 것이 아닙니까?

“재미있다”하며 오빠와 달리기 경주를 하듯 달리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던지..... 그 후로 언제나 백짓장처럼 하얗기만 하던 얼굴에 분홍빛 혈색이 돌고 1km 떨어진 오빠학교에 천천히 걸어갔다 올만큼 회복이 되어 24시간 하고 있던 산소도 거의 하지 않을 만큼 건강해졌습니다. 얼마 전 외래 진료로 서울대학병원을 갔을 때 전에 중환자실에서 아이를 돌봐 주셨던 간호사님이 “애가 정말 그 아이 맞아요?”하시며 이리 저리 자꾸 만져보고 몇 번이나 확인하시던 모습에서 또 한번 아이의 회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할아버님이 진맥을 하시며 “애는 폐가 문제가 아니라 장에 있는 뭔가가 자꾸 폐를 건드리며 치는 거야, 심장과 위도 좋지 않고” 하셨을 때는 폐가 좋지 않을 뿐인데 왜 다른 장기가 문제라 하실까 의아 했지만 지어주신 약이 신기할 정도로 들어맞는 걸 보며 인체의 모든 면을 꿰뚫어 보시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⑥ 본인(고등학교 교감)의 장남(1982년생)은 2003년 4월경 조울증으로 인하여 전북대학병원,

김제 미래병원 등에서 6차례나 입원치료를 받고 투병 중 이었던바, 우연히 주위에서 장병두 할아버지가 만성 및 불치병에 대하여 치료를 잘한다는 입소문을 듣고 2004년 10월경부터 약 4개월에 걸쳐서 한약을 구입하여 먹고 난후 완치되어 지금 현재는 학교생활(대학 3년)도 잘하고 있는바 전문 정신병원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⑦ 저(금강대학교 불교복지학부 교수)는 1991년 1월 척추인대 파열의 부상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사지마비 등 여러 증세가 악화되어 1992년 1월~2월 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 입원치료를

받는 등 여러 병원과 의원등에서 갖가지 치료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점점 증세가 악화되어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1995년 우연히 장병두 선생님을 소개받아 그분의 치료를 받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러는 과정에서 그분이 의술뿐만이 아니라 도학(道學) 분야 등에서도 그야말로 신이(神異)한 경지에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을 만난 것을 항상 감사히 여기면서

가르침을 받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05년 7월 종합건강진단을 받아본 결과 갑상선결절이 발견되어 2005년 9월 을지병원

내분비과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갑상선질환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바로 장병두 선생님의 진료를

받은 후 3개월 간 약을 복용하였는데, 금년 6월 건강검진을 받아본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⑧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2003년 첫아이를 출산하고 두 달 무렵이 지났을 때 말초성 안면신경마비가 좌측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왼쪽의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고, 소리가 마치 귀 옆에 확성기를 켜둔 것처럼 여과 없이 들리고, 입이 점점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보기에도 흉측할 정도로 틀어졌습니다.

2003년 12월 초쯤 아이와 친정이 있는 전주로 내려가서 원광한방병원에 다니고 침과, 한약 물리치료 등 치료를 꾸준히 받았으나 증세는 그리 나아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찬바람을 쐬거나 몸이 안좋을 때면 다시 안면마비의 증후군이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개학이 임박하여 인천의 학익동에 위치 하고 있는 한의원에서 침치료를 받던 중 둘째아이가 2004년 4월에 생겨서 그나마 받던 치료마저 중단한 상태여서 심하지는 않았으나 다시 입이 틀어져 주변의 친척분들이나 직장에서도 한눈에 알아보시고 걱정하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비관적인 생각만 하고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를 출산하고도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드러눕거나 특히 좌측 머리 부분이 심하게 아프고 조금만 감기증세가 있어도 안면신경이 점점

굳어지는 듯한 증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집 가까운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임시방편

으로 그 순간만 모면하면 또 며칠은 별다른 증세 없이 생활하고 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아픈 것을 남편이나 시댁에서도 걱정해 주셨지만 이유없이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점차 남편도 시댁어른도 꾀병이라고 생각하시기에 이를 정도로 원인

모르게 아픈 나날이 계속되었다.

2005년 8월 말경 시댁 식구들과 제주도에 여행을 가기 위해 둘째 아이를 맡겨놓은 상태여서 아이를

찾기 위해 친정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몸이 좋지 않아 친정어머니께서 잘 아시는 한의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진맥을 해보신 그때의 한의사님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몸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한심하면서도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일단  약을 한제 짓고 오기는 했으나 내 마음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셋째 언니로부터 군산할아버지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뵌 할아버지의 모습은 100세에 가까운 연세임에도 아이처럼 순수하고 해 맑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같이 갔던 남편과 친정어머니까지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의 진단을 바라보고 누구 하나

병의 증세를 말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그 다음 순간 정말 기가 막히게도 허허 하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누가 봐도 꾀병이지” 하고 그러시는 거였습니다. 그 순간 나와 남편은 눈이 동시에 마주치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당시 나의 병은 정말 누가 봐도 꾀병이라고 할 정도로

멀쩡하다가 아프고 했으니 항상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남편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둘째 아이를 낳고 더 몸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 그 자리에 데리고 가지 않은

아들아이의 증세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생후 한 달부터 아주 심하게 배앓이를 해서 병원을 자주 출입했었습니다. 그 때 병원에서는 아토피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몸이 많이 흐트러지고 산후풍도 있다고 하시며 약을 지어 주셨습니다. 배가 아픈 아들아이에게는 따로 약을 지어 주시지 않고 내 약을 하루에

아주 작은 티스푼으로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한 달 동안 약을 먹는 동안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약을 먹는데도 침을 맞는 것처럼 안면신경마비가

왔던 왼쪽 얼굴이 찌릿찌릿하고 머리며 심지어 전에 삔 다리까지 아픈 부위가 다 나타나는 명현반응이 나타났습니다. 1년 1개월 동안 그 후로 6번 정도 더 약을 먹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약은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신기하게도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나타났던 머리 아픈 증세며 안면이 경직되는 증세, 뒷목에서부터

어깨까지 바위 돌을 짊어지고 있었던 듯한 뭉특한 증세까지 모두 사라졌습니다. 또 전혀 미동도 않던

왼쪽 눈썹이 거의 85% 정도까지 움직인다는 사실이.... 지금은 표정을 지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알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어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정말 많이 좋아지고 건강해진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때마다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과 또 더불어 병을 이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셨던

문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얼굴의 표정을 과잉되게 지으면 약간 표가 나긴하지만 차차로

나아지는 것을 느끼고 지금은 아이를 하나 더 낳을 계획까지 세우고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몇 년 동안 다닌 병원과 한의원까지 병을 낫기 위한 나의 노력과 시간과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할아버지와 문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노력은 계속 될 것이고 그때마다

나의 실망감도 더 커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시이모부님은 중한 병을 앓고 계시는데, 할아버지의 약을 두 번째 드시고 다리에 힘도 생기고

드시는 것도 나아지셨을 정도로 속이 편안해 지셨다고 합니다. 매번 나에게 질부의 은혜를 꼭 갚겠다고 말씀하시곤 하십니다.

⑨ 저(중학교 교사)는 2004년 9월 5일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고관절 골절로 3개월을 입원했습니다.

전북대학병원, 전주21세기병원, 전주 송천동 정형외과 등에서 입원 치료를 했습니다. 물리치료, 약물치료, 방사선치료 다 받아보았고 원광대 한방병원에서 침술 치료도 받았습니다. X레이 상에 아무 이상이 없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도 여전히 아프고 다리를 절뚝거렸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습니다. 꼭 꾀병을 부리는 줄로만 의사도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계수 선생님을 통해서 장병두 할아버지를 알게 되어서 약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할아버지가 아직 뼈가 완전히 붙지 않았다고 하면서 한번 사진을 찍어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관절 치료로 유명한 화순 전남병원 윤택림 교수한테 가서 CT와 핵의학

검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사진 상에 완전히 뼈가 붙지 않아서 아픈 거라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미심쩍었던 할아버지의 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약을 할아버지에게서 더 먹고는 뼈가 완전히 붙었다는 말을 듣고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100% 정상적이진 않지만 많이 호전되어서 쾌활하게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특효약이 없다고 하는 고관절 치료에 할아버지의 약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생활하고 있어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있습니다.

⑩ 저는 1992년경 입안과 부인과 쪽이 헐어서 염증이 심하고 다리에는 붉은 반점이 나고 근육이 심한

염증이 나오며 걷기조차 불편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질병을 지방병원에서 병명도 모르고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서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희망을 갖고 찾아가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결과

베체트병이란 희귀한 병명을 받았습니다. 더 무서운 경과도 올 수 있다 하셨어요. 심하면 관절로

들어갈 수 있고 눈으로 들어가면 실명도 할 수 있다 했어요. 실명한 환자도 보았어요. 무서웠어요.

별 차도는 없고 희망도 없이 여러 해를 치료하니 몸은 더욱 기력이 약해져서 주기적으로 영양제 주사제를 투약하면서 종교단체에 봉사를 하던 중 어느 스님을 만나 알게 된 장병두 할아버님.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할아버님의 치료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우리 가족은 의지하며 투병생활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세계적인 희귀병 베체트병을 할아버님은 ‘걱정하지마’ 하시며 제게 새 희망을 주시며 그 지겨웠던 10년의 양방치료과정을 단 1년에 떨쳐버리게 되었습니다. 증세가 없어져서 할아버님 몰래 병원에 가서 몇 차례 검사를 해봤는데 베체트증세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8시간의 긴 설악산 등산과 철야기도를 하고서도 다음날 정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장병두 할아버님이 국보급 명의 지정을 받으셔서 저같이 힘든 병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낫게 해주실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⑪ 저(전북대학교 교수)는 2001년 7월 서울 현대중앙병원(현 현대아산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고,

이후 6개월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위암 수술이후 암 치료에 좋다고 하는 수많은 약과 보조식품 등을 복용하며 많은 돈도 엄청나게 들어 많이 들 때는 한 달에 1,500만원 정도의 지출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가까이 된 2004년 5월부터 이상 징후를 느껴 동년 5월 13일 검사결과 소장과

대장 연결부위의 장암과 복막암이 발견 되었습니다. 5월 15일 친구 *** 원장이 운영하는 전주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진통제를 주는 것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고, 또 다른 친구 당시 전북의대학장 *** 교수는 인간이 할 일은 다 했으니 기도를 하자고 했었다는 말을 친구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당시 장폐색으로 엄청난 통증으로 고통을하였고 음식을 조금도 섭취할 수 없어서 아마도 며칠 이내에

세상을 떠나게 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저 자신도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예감했습니다.

그런데 약초즙과 장병두 할아버지께서 주신 한약을 5개월 정도 복용한 후 병세가 급격히 호전되어

지금은 휴강 없이, 국내외 출장도 다녀오는 등 거의 정상인과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등창으로 시작한 인생

선생님은 1906년 병오년 생이다. 그러니 올해 102살 되신다.

전북 임실군 지산면 안하리(雁下里) 골뜸마을에서 태어나, 25세 무렵 서울로 올라왔다.

생후 두 달째에 등창이 났다. 창자가 보일 정도로 구멍이 뚫렸다. 등 근육이 사방으로 뻗치니

전신이 아팠다. 백약이 무효였다. 심지어는 옛날 처방에나오는 인생(人生) 생골, 즉 살아있는

사람의 골을 등창에 넣으면 낫는다고 하여 구해보려고 하였으나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갓 죽은 아이의 골을 돈 주고 사서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더 악화만 되었다.

사람들은 오늘 내일 죽겠다고 했다. 등창 때문에 누울 수가 없으니 어머니가 업고 키웠다.

그렇게 하기를 십 년을 했다. 십 년을 어머니의 등에서 자란 것이다.

십 년이 지나자 외조부가 연구를 해서 고쳐 주었다. 그때서야 어른들이 출생신고를 했다. 

 

그래서 호적에는 1916년생으로,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이나

적게 올라있다.  외조부는 왕실의 전의(典醫)였다.

성함이 진(陳)응양이었는데, 대 명의 이셨다고 한다.
이렇게 등창으로 인생을 시작하여 십 년을 고생한 덕택에 등창의

명의가 되었다고 스스로 말씀하신다. 10년, 20년 된 등창도

1주일이면 치료하신단다. 열아홉인가 스무 살 때, 30년간 등창을

앓아 온 여자를 고치는데, 평생 잠을 못 잔 여자가 약을 붙여주고

세 시간이 지나니 쿨쿨 잠을 잤다.

 

“그런데 막상 등창의 명의가 되고 보니 등창 환자가 없어. 병원에서 다 죽여 버리니까.”

이것을 보면 의술을 할 수밖에 없었고, 명의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타고난 분이다.

하늘이 날 때부터 이분에게 의술을 가르친 것이다.


스스로 연구하고 터득한 의술

의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열아홉 살부터였다. 먹고살기 위해서 의술을 배웠노라’고 하신다.

열일곱 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는 외할아버지의 의술을 외양만 보고 배웠다.

혹시 외조부께 전수받은 비방이 있지 않았느냐고 여쭈니,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연구해서 의술을 터득해가면서 동네 병을 다 고쳤다.

그 연구의 방법을 물었다. 책을 본 것은 전혀 없고, 우선 강남풍월로 듣기만 해도 공부가 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여섯 살 때 ‘치질이 있었는데 집 없는 달팽이를 구워서 먹으니 낫더라’는 말을 누구에게서 듣고는 잊어버리지 않고 그 방법을 사용해보니 낫더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한번만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공부를 했는데, 기억력이 특이하셨다고 한다. 개, 토끼, 쥐 등을 수백 마리 잡아가며

약을 연구했다. 대구, 대전 등의 약전 골목을 부자(附子)를 씹으면서 돌아다녔다.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하신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어떻게 탁월한 의술을 터득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스승도 없이 독학으로 수승한

의술을 터득한 비결을 묻는 졸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물리를 터득하면 되는 거야. 물리는 사물을 잘 관찰하면 터득할 수 있지. 나는 말이야, 어릴 때부터

관찰을 잘했던 것 같아. 내가 여섯 살 때 일이지. 어느 날 똥 싼 옷을 어머니가 빨래하는 동안 담장 밑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고양이가 감나무 위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것이 보여. 가만히 보니 쥐구멍 입구를 노려보면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런데 쥐란 놈이 머리를 구멍에서 살짝 내밀어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쏙 들어갔다가 조금 있으니 또 살짝 머리를 내밀고 살피는데, 부엌에서 문밖으로 부어버린 개숫물에 섞여 나온 밥알을 주워 먹으려고 눈치를 살피는 거야. 결국 쥐가 나오지않으니까 고양이란 놈이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쥐구멍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땅이 약간 솟은 곳을 앞발로 탁탁 치는 거야.

그쪽을 치면 쥐가 이쪽으로 도망오리라고 예상하고 유도하는 거지. 그때 고양이의 생태를 터득했지.

관찰을 해보니 그런 게 보이더라니까.”

이런 식으로 물리를 터득했다는 말씀이다.

“예를 들어 콩씨 있잖아. 그게 쌍을 짓지 않는가. 그 쌍으로 된 것에서 싹이 나고 대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지. 모든 ‘씨’는 다 똑같아. 두쪽이지. 정자와 난자도 마찬가지고. 쌍으로 되어 있지.

그 중 하나가 없으면 안돼. 이것이 바로 상대성 원리를 표현한 게야. 음양이 짝을 이루는 이치지.

단순해.” 그래서 간에 독이 오면 그 상대독을 써야한단다.

“의사는 본래 이렇게 해서 형성된 거야. 면허는 무슨!”

자연의 이치를 통하여 터득한 선생님의 지혜는 끝이 없다.

“바다에도 의사가 있어. 이거 모르지? 바다의 의사가 뭐냐 하면 바로 거북이란 놈이야.

거북이가 왜 의사냐. 고래가 무엇에 부딪쳐서 어깻죽지를 다쳤어. 그런데 아무리 해도 낫질 않는 거야. 그것을 거북이가 고쳐주거든. 어떻게 고치느냐. 바다를 떠다니는 오래된 소나무 판자들이 있어.

뗏목 조각 같은 것이지. 거기에 붙어있는 송진을 거북이가 이빨로 뜯어서 고래 다친 곳에 발라주는 거야. 그러면 낫는 거야. 그래서 고래란 몸이 거북이는 잡아먹지 않아.”

“소가 말이야, 삼(대마)을 절대 먹지 않거든. 삼밭에 갔다 놔도 삼 잎은 한 잎도 뜯어먹지 않아.

그런데 소가 간이 안 좋아져서 병이 들면 쓸개에 단단한 것이 뭉쳐지는데, 이것이 우황이야.

이 우황이 생기면 소가 삼 잎부터 뜯어먹어. 그래서 스스로 고치는 거야.

런데 요즈음 소보다 못한 것들이 의사라고 하고 있어. 참 내!”

지금 선생님의 의술은 필자가 보기에 거의 신의(神醫)의 수준이다.

암은 항암제 쓰고 수술한 사람도 고친다(물론 생사의 경계선을 이미 넘어버린 사람은 제외하고).

다만, 항암제의 독이 온 몸에 퍼진 사람은 약을 먹여봤자 항암독이 약을 잡아먹어 버려 치료가

안 될 수 있다고 한다.

중풍환자는 송장이 된 사람도 24시간 이내면 살릴 수 있다고 한다. 발병 6개월 이내면 침 한방 쓰지

않고 약만으로 완치할 수 있단다. 선생님의 집 인근에 있는 병원에서 중증의 중풍환자 10여명을

선생님에게 보냈는데, 모두 고쳐주었단다.

통풍은 3일만 약 먹어도 차도가 난다고 한다. 당뇨, 백내장, 실명방지, 치통 등은 쉽다.

당뇨는 합병증이 눈과 발끝으로 먼저 오는데, 한쪽 눈이 썩고 다른 한쪽마저 썩기 시작하는 것도 고쳤다. 일제 때부터 고쳤는데, 하도 잘 고치니 왜놈들이 “너 아편 쓰지” 하면서 추궁했다고 한다.

백내장과 치통은 바로 고쳐버린단다.

살찌게 하고 살 빠지게 하는 것도 마음대로 한다.

불임도 잘 고친다. 18년간 아이를 갖지 못하여 노심초사하던 어느 대갓집 며느리에게, “아, 한꺼번에

아들 둘 낳으면 되지 뭘 그래. 나이도 들었는데 한꺼번에 나아서 길러버리고 말지, 뭘 하나 낳고 또 낳고 하며 고생해? 걱정 마!” 하고는 약을 지어 주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덜컥 쌍둥이 아들을 낳아버렸다.

그 며느리가 이번 어버이날에 한복을 한 벌 지어왔다.

수술 시간을 받아 놓은 담석환자의 수술을 늦추고 약을 먹여 5,6시간만에 돌이 빠져나오게 해 버린다.

오래전에 이병도 서울대학교 총장의 외손자가 백혈병에 걸린 것을 서울대 학교병원 의사들이 보는 앞에서 고쳐 주었더니 측근에 있는 사람들이 환자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야단이었다. 결국 서울대 병원 의사들이 “이것 그대로 두면 서울대학교병원이 망한다”면서 반대하여 포기한 적이 있다고 하신다.

15,6년 전에 **병원에 재직하던 어느 목사가 그 병원에서 간암으로 죽는다고 판정받았는데

선생님이 살려 냈다.

업보로 온 병, 영적(靈的)인 병도 약으로 치료하신다. 영적인 병은 신경이 죽어 있는데, 그 신경을

고치면 된단다. 하늘이 내려준 병이라 하여 천질(天疾)이라고 불리는 일명 지랄병도 다 고쳐내셨다.

타고난 수명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단다. 약을 써서 체질을 두번 세번 부꾸어 주면 된단다.


환자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선생님은 환자가 오면 문진을 전혀 하지 않는다. 물어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떻게 문진을 해? 못하게 되어 있어. 문진할 필요가 없어.”찰진도 하지 않는다.

대신에 독특한 진단법을 쓰신다. 환자를 쳐다보고, 돌려 앉혀 놓고 손으로 등을 짚어 보신다. 심장과

위장을 만져보면 아신단다. 병이 왜 왔고, 어떻게 진행되어 왔으며, 그대로 두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다 알아버린다. 마음이 어떻고, 무슨 짓을 하다 왔는지도 안다. 도둑질했는지 강도질 했는지 다 안다.

병이 감기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까지도 안다. 심보, 성격, 버릇까지도 다 읽어 버린다.

그에 따라 약을 지어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아무 환자나 약을 지어주지는 않는다.

선생님은 직심(直心)이 있어야 병을 고친다고 말씀하신다.

수진만으로 다 알아내고, 냄새만 맡아도 안다. 이 진단법을 맥활법(脈活法) 이라고 하는데,

신라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내려온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 진단법이란 것도 일부러 모습을 취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선생님은 환자가 방에

들어오는 순간에 바로 알아버린다고 하신다. 직접 보지 않고 사진만 보아도 몸의 상태를, 몸 전체와

오장육부까지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불가피할 경우에는 사진 전송을 통한 원격 진단도 하신다. 하루에 백 명 이상의 환자를 볼 수 있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보는 것은 몸의 상태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상처살(喪妻煞), 상부살(喪夫煞)까지 그냥 바로 봐 버리는데, 그런 살(煞)이 있으면 약을 써도 소용이 없다고 하신다. 5년, 10년 앞의 일도 내다보신다.

이 진단의 정확도는 천명에 한 명 정도 실패할 정도라고 한다. 오진율이 천분의 일, 즉 0.1%라는 말씀이시다. 다만 실제 치료되는 환자의 비율은 10에 8이고 2는 못 고친다고 하시면서, 그 2는 치료받다가 중단하고 안 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결국 선생님 지시대로 따르면 거의 100% 고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의는 10명 중 5명 고치면 보통이고 6명 고치면 초월한 의사라고 그래. 보통 그렇게 알아.”

이 말에 견주어 보면 선생님은 가히 신의(神醫)다.


독보적으로 터득한 약

선생님이 쓰는 약은 기존의 한의학에서 한의사들이 쓰는 약과 전혀 다르다.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고 하신다. 기존 기록과 처방에는 없는 것을 순전히 선생님이 연구해서 창안해 낸 것이다. 지금은 옛날 한약 가지고는 절대 고칠 수 없다고 하신다. 100명중 한 명도 못 고친다고 하신다. 그 이유로 선생님은 공해, 석유, 휘발유, 아스팔트, 시멘트, 가공식품, 항암제, 사람의 입냄새 등을 드신다.

이런 것들이 종합되어 약을 죽여 버린단다.

“석유, 휘발유 냄새는 세균 냄새와 똑같잖아. 사람 죽은 송장 냄새와 같은거지. 생명이 썩은 것이기

때문에 생명과는 상극이야. 석유나 휘발유 냄새에 닿으면 풀이나 나무가 다 죽어 버리잖아.”

“제일 맛있는 비스켓에 양잿물 안 들어가면 안되. 맛이 없어 못 먹어.”

“병원에서 환자 치료하려면 항암제 써야 하는데, 항암제 쓴 환자들을 어떻게 고치나?”

“사람이 많으니 입에서 나오는 냄새도 병을 못 고치게 하는 요인이 돼!”

반면에 선생님의 약으로는 100명중 99명을 고친다고 하신다. 국내에 나지 않는 약재는 북경에 가서도

구하고 러시아에 가서도 구한단다. 동물에게서 나오는 약재는 요즘 동물을 못 잡게 하기 때문에 귀하고 비싸단다. 웅담 하나 사려면 5백만원 내지 6백만원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그것 하나를 사오면 열 명을 고친다고 한다. 선생님은 당신의 약은 아마 앞으로 천년까지는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또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좋은 약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야. 들을 때가 좋은 것이야. 이것이 상대성 원리야.”

“원리는 하나야. 죽을 것은 살리지 못해. 다만 약으로 ‘여기’까지는 살릴수 있다고 하는 것이야.”

이치를 통찰하고 그 이치에 사는 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바른 말씀이다. 이치도 모르고 병의 원인도

모르고 고칠 줄도 모르면서 헛된 자만심과 돈벌이 욕심에 함부로 약을 먹이고 수술을 해대는

오늘날의 수두룩한 사이비 의자(醫子)들이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다.

비방 중 일부는 ‘납’의 법제에 있다고 한다. ‘납’을 써야 백발백중하고, 안 쓰면 백발백중이 안 된다고

하신다. 독물인 납이 어떻게 명약이 되는지 여쭸다.

“단지에 수은을 태워서 아홉 번이나 열 번을 찌면 납 성질은 다 날아가고 없어. 극은 극으로 때려야 돼. 그것 아니면 안 돼.”

특히 십이지창, 등창, 연두창 등의 창증에는 이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병을 못 고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아홉 번을 쪄내는 구증(九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다 죽고 없다고 하신다.

선생님은 이런 이치들을 다 연구해 봤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미국 놈들은 세계를 좌지우지해도 병은 못 고쳐”


지혜의술의 근원이 된 수행법

물리를 터득하면 된다고 하지만, 물리를 터득하는 것이 사물을 관찰한다고만 해서 되는 것인가?

보통 사람에게는 관찰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독보적인 의술을 터득하려면 탁월한

정신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우리 민족의술은 깨달음에서 나온 지혜의

의술이 그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쭤보았다. 반드시 특별한 심신수련을 하셨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선생님은 말을

아끼시는 듯 조심스럽게 조금씩 말씀해주셨다.

경신(庚申) 수련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신다.

여기서 잠시 육경신(六庚申) 정신수련에 대하여 알아보고 가자. 육경신 수련은 이미 민중의술 명의열전에서 소개한 바 있는 천의선도 김영생 선생이 평생 해 온 수련으로, 육경신의 이치에 대한 설명은 그분의 글을 인용하기로 한다. 경신(庚申)이란 60갑자(甲子)에서 유래한 말이다. 일 년에 경신일이 여섯 번 있는데, 그때마다 잠을 한숨도 자지 않고 수련하는 것이 육경신 정신수련이다. 경신일 전날 밤 11시부터

경신일 밤 12시까지 25시간 잠을 자지 않는다.


육경신 정신수련은 왜 하며, 어떤 성과가 있는가?

경신일은 천상 영계의 대행사라 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주관하시는 천상 영계의 행사 중에 가장 큰

행사가 육경신이다. 이 날은 인간은 물론 동물들까지 행동은 물론이요 생각하는 마음까지 천상

영계에 전달되고 기록되는 날이며 벌신 잡영들에게도 자기 범주 내에서 활동의 자유를 주는 날이다.

이날 일백성계(一白星界)의 오방(五方) 신장들은 사람들에게 잠을 재우려 하고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으려 하는데, 사람이 잠을 자면 신장의 승리요, 잠을 자지 않으면 인간의 승리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이 때에 사람의 마음은 오직 하늘을 공경해야 하며, 대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순간에 조금만 흐트러져도 게임은 신장의 승리로 끝난다.

일 년 중 첫 번째 경신일에는 동방 청제신장과 겨루고, 두 번째 경신일에는 남방 염제신장과 겨루며,

세 번째 경신일에는 서방 백제신장과 겨루고, 네 번째 경신일에는 북방 흑제신장과 겨루며, 다섯 번째

경신일에는 중앙 황제신장과 겨루고, 여섯 번째 경신일에는 오방신장이 총동원해서 사람을 잠재우려

하는데, 잠을 재우지 못하면 신장들이 그 사람에 대한 관할권을 포기하기 때문에 육경신을 마친

사람은 신장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여섯 차례 경신일에 한 번도 졸지 않고 지나면 1경신을 마쳤다고 하는데,

1년 경신을 마치면 오방신장들의 규제를 받지 않고, 4년 경신을 통과하면 일백성계의 규제를 받지

않으며, 8년 경신을 통과하면 이혹성계의 규제를 받지 않고, 12년 경신을 통과하면 삼벽성계,

즉 지신계의 어떤 신장한 테도 규제를 받지 않는다.

16년 경신을 통과하면 사록성계의 규제를 벗어나고, 20년 경신을 통과하면 오황성계의 규제를

받지 않으며, 24년 경신을 통과하면 육백성계, 즉 수신계의 규제를 받지 않으며 지혜의 문이 열리고,

28년 경신을 통과하면 천신계의 초계인 칠적성계의 규제를 받지 않으며 우주 모든 현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32년 경신일을 통과하면 팔백성계에 도달할 수 있고, 우주의 모든 현상을 직접 볼 수 있는 천안이

열린다. 36년 경신을 통과하면 천상 상제님을 접견 할 수 있고, 상제님의 참뜻을 전달받고 조화의

능력을 얻어 초인간적인 진인 (眞人)이 되며 인류를 평화로 이끌어줄 신인(神人)이 된다.

그래서 고래로 육경신을 통하면 무불통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육경신은 곧 구도의 길이다. 육경신을 한번 지킬 때마다 깨우침이 새로워진다.

혜안이 열리고 능력도 생긴다. 이것이 도통이다.

선생님은 17살 때부터 육경신(六庚申) 수련을 했단다. 고향에 홍참봉이라고, 천여석지기 부자가

있었는데, 그분의 아들이 선생님과 동갑내기였다. 홍참봉이 육경신을 하면서 선생님에게

“너는 꼭 하게 생겼는데...” 하면서 권유하였다.

산골짜기, 불도 없는 집 방안에서 5,6명이 앉아서 수련을 하는데, 경신 수련은 잠을 안자는 훈련이므로 깜빡 졸아도 안 되기 때문에, 오른손에 칼을 쥐고 앉아서 수련을 하다가 깜박 잠이 올라치면 사정없이

왼손을 찍어버리셨단다.

그렇게 해서 왼쪽 손에 남게 된 흉터 여러 개를 보여 주신다. 왼손 중지 끝마디는 힘줄이 끊어져 구부러지지도 않는 상태가 되어 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하다가 나중에는 워낙 정도(正道)로 가니까

잠이 안 오더란다. 그리하여 귀신을 보지는 못해도 귀신이 오고가는 자취는 아는 정도가 되었단다.

참으로 대단한 강기를 지닌 분이셨구나 싶은데, 선생님은 당신이 통뼈라서 젊었을 때 ‘한방’ 날리던

주먹이었고 김두한도 자신에게 꼼짝 못했다고 자랑(?)하신다. 거기다 도술까지 지닌 산신령으로

대접받았단다.

육경신 수련은 물리를 터득해 버리면 되는데,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해야 머리가 열린다고 하신다. 그렇게 한 3년 가면 얼쭉 알게 된다고 한다. 수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어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지금도 정신이 맑지 않을 때는 경신 수련을 하신단다. “잡신에게 휘둘리지 않고 잡신을 제어할 정도는 되어야지” 사찰의 주지를 포함해서 스님들을 한 4천명쯤 고쳐주었다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불교와도

인연을 제법 맺으셨던 것 같은데, 육경신 한 사람이 선생님밖에 없으니까 스님들이 제일 무서워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단호히 말씀하신다.

“육경신 안하면 안돼”

그 외에 또 어떤 공부를 하셨느냐고 여쭈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역학을 공부하셨는데, 연산역(連山易)을 배웠다고 한다. 스승을 만나 그 밑에서

6개월 정도 배웠단다. 역(易)의 이치는 하늘 이치와 똑같더란다. 건곤리정(乾坤理定), 하늘땅의

이치는 정해진 것이고, 그 이치를 보면 알게 된다는 말씀이다.

10대 때 아버지 집에 출입하던 도인을 따라 지리산에 들어가서 3,4개월 산공부를 하며 고행을

하시기도 했다. 아버지가 민족주의자시어 많은 명사들과 도인, 기인들이 집에 출입했는데,

그 중에는 임학(林學) 선생처럼 둔갑, 축지를 완전히 하는 분들도 있었다.

임학 선생은 방에 같이 앉아 있다가도 없어지고, ‘억’하면 그릇이 나오고 또 ‘억’하면 쌀이 생기고

했다고 한다. 나쁜 짓 하면 절대 둔갑 못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김일성에 대해서도,

진짜 김일성은 둔갑 ․ 축지를 다 했는데 죽었고, 가짜가 해먹었다고 하신다.

이런 심신수행을 통하여 열린 지혜의 눈을 가지셨기에, 사람의 몸을 보면 그냥 그 내부의 구조와

오장육부의 상태와 마음까지도 다 보아 버리고, 운명까지도 다 통찰해버리신다.

선생님의 혜안은 실로 놀라워서, 예컨대 절친한 친구였던 창랑 장택상이 해방 직후 몇 월 몇 일에

수도경찰청장이 될 것이라고 정확히 예언하였고,창랑의 집에 기거하고 있던 23살의 청년 김영삼이

찾아와 “선생님, 제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고 하는데 되겠습니까?”하는 물음에 “그래,

내년 후내년 선거에 나가봐. 돼! 그런데 어쩌면 36년 뒤에 대통령이 될 지도 몰라.

남의 돈은 한 푼도 먹으면 안돼. 공을 많이 쌓아야 돼.” 하고 미리 다 말해주셨다고 한다.


물려줄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높은 의술을 전수해 주려하니 사람이 없단다.

육경신 수련을 사람들에게 지도해 보니 생명 거는 놈이 없단다. 130여명을 지도해봤는데,

모두 졸아버렸단다. 충남 논산에 있는 금강대학교의 권박사는 논산에 있는 집에서 육경신 수련을

하고 선생님은 서울 자택에서 앉아서 지켜보는데, 권박사가 졸면 선생님이 전화로 야단을 치셨다고

한다. 공간을 뛰어넘어 혜안으로 보고 앉아 계신 것이다.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단다. 아드님이 한의사지만, 선생님의 의술이 어려우니 이어받으려고

하지 않는단다.

102살의 연세인데도 아직 물려줄 사람을 못 만나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약간의 쓸쓸함이 배어든다.

이 땅의 민중의술을 뿌리째 말살하려 시도해 온 제국주의자(일본, 서양)들과 그 앞잡이들(양의사,

한의사, 보건의료관료, 정치인)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해 왔는지, 증명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의술은 본래 이렇게 심신수련을 통하여 우주자연의 이치를 깨친 고답적인 지혜의 경지에서

탄생한 것인데, 그것을 서양식 지식교육 위주로 하는 학교에서 가르치려고 드니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런데 세상은 이를 모르고 서양식이 좋은 줄 알고 한의과대학 교육도 모조리 서양식으로 한다.

그 결과 이 나라 민족의술의 정맥은 거의 끊어지고 말았다.

서양의 의료제국주의자들이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무서운 토착의술을 죽여라,

그것을 살려두면 전 세계를 제패할 것이니...’ 천지도 모르는 무지랭이들이 이 나라 의료제도를

주물럭거리면서 다 죽여 놓았다.

우리 의술의 명맥을 겨우 잇고 있는 것이 선생님처럼 초야에 묻혀 있는 어른들이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만약 앞으로라도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받아들이실 거냐고 여쭸더니,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대단히 총명해야 돼” 하는 말씀은 고답적인 의술이므로 당연한 자격요건이라고

할 것이지만, 그 다음 말씀이 신기하다.

“엄지손가락을 힘껏 치켜세웠을 때 손가락 끝마디 모양이 뱀대가리처럼 삼각형이 되어야 하고

뒤로 제껴지는 사람이라야 해.”어째서 그러냐고 다시 여쭈었다.

“뱀대가리의 속성이 뭐야. 씹지 않고도 모든 것을 삼켜서 소화시켜버리잖아.

이런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안 돼. 그래야 의술을 할 수 있어.”

이 말씀에 들은 비의(秘義)는 무엇일까? 모든 것을 단번에 삼킬 수 있는 넓은 마음과 통찰력과

정신을 의미하는 것일까? 곰삭여 볼 일이다.

또 하나 조건이 있다.

몸이 바른 사람이어야 한단다. 허리를 세우고 서너 시간은 꼿꼿하게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한다.

허리가 아프다거나, 다리가 아프다거나 하면서 몸을 뒤트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고 한다.

먼저 자기 몸이 발라야 한다는 말씀이라면서 바를 정(正) 자를 강조하신다.

그런데 물려주더라도 천기누설을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하신다. 그런 것은 절대로 가르쳐 줄 수

없고,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없다고 한다. 하늘은 궁극의 문은 스스로 깨달으려고 애쓰는 자에게만

열어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병이 생긴 이유와 ‘반대로 하면’ 8할의 병은 치료된다고 간단한 원리 하나를

알려주신다. 예컨대, 밥 먹고 체했으면 밥을 태워서 그 가루를 먹으면 되고, 돼지고기 먹고 체했으면

돼지고기를 태워서 먹는 식이다.

“걔들은 의사가 아니야”

의술의 경지가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선생님의 눈에 지식나부랭이 장난이나 하면서 병도 못 고치는

제도권 의술이 셈에 찰리가 없다. 비판은 냉혹하다. 지금의 양의, 한의들은 아무것도 모른단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그 놈들이 무슨 의술이냐? 협잡꾼, 도둑놈이지. 환자를 연구대상으로 삼잖아.

환자들은 ‘죽어도 괜찮다’고 서약하라는 데다 몸 대어주고...” 지금 제도권에 있는 의사, 한의사 중에는 천명에 한명, 제대로 된 의사가 있을 둥 말 둥 이라고 하신다.

“자유당 시절에 한의사 면허 받으라고 했는데, 그거 다 엉터리 면허, 그것 받아서 뭐하나.”

인산 김일훈 선생님이 자유당 시절에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위원을 하시면서도 한의사면허 하나

받아두라고 하는 주위의 권고를 무시하면서 “병 잘 고치면 되지 그까짓 면허가 무슨 소용이야”

했다가 5.16.후에 의료법이 바뀌면서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돌아가실 때까지 10여회 처벌을

받으셨는데, 그 꼴을 결국 선생님도 당하신다.

면허’라는 형식보다도 병을 잘 고치는 실질을 더 소중히 여기신 당당하고 지당한 자세인데도,

세상은 형식에 치우쳐 실질을 탄압하니, 바른 뜻 가지고 올곧게 사는 분들은 버티기 힘든 패악의

세상이다.

“일본놈들도 나를 손대지 못했는데...”

2003년도에 집행유예를 한번 받았다. 약을 지어준 곳도 아니고, 물어보길래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었는데 공갈협박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순사놈들에게 별짓 다 당했어. 돈 주고 무마하고... 일제치하에서 일본놈들도

나를 어쩌지 못했는데...” 그 상황, 그 심정, 더 듣지 않아도 백번 상상이 간다.

이 나라 의료제도의 터무니없는 역천(逆天) 때문에, 병고로 죽어가는 사람 살려주고도 처벌의 고통을

당해온 민족 민중의술의 한 맺힌 사연이 선생님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던 것이다. 울분이 다시 치솟는다.

이번에 수사 받을 때는 환자마다 돈을 50만원씩 받았다고 기소되었는데,이는 ‘검찰이 만든 것’이라고

하신다. 100명의 환자를 보면 30명 내지 40명은 공짜로 치료해 주셨고, 어린아이들은 무료로 해주었단다. 외국인들도 많이 고쳐주었다.

이런 신의(神醫)를 처벌하는 나라는 이 우주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밖에 없다.

“북경에 가면 나를 하느님 같이 위해. 중국 놈들 똑똑해.”

그럼에도 이런 못난 조국에 대한 사랑은 버리지 못하신다.

“살 빼는 약, 살 찌는 약, 일본과 미국에서 제의가 왔으나 거절했어.”

그러면서 “앞으로 살만 찌면 당뇨로 몰살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50~60년 내에 지구가 확 바뀌는데, 물이 오염되면서 물과 관계된 당뇨병이 제일 먼저 오고 당뇨로

사람들이 몰살할 것이라는 경고다. 당뇨로 인한 사망률이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제일 높다는

최근의 신문보도가 떠오른다.

선생님은 당신에게 의료면허를 주어 병자 고치고 외국에 약 수출하여 돈 벌어서 중국 땅 사자고 한다.

약 재료를 전부 산에다 몇 십년간 몰래 재배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신다. 황사 다음에는 적사가 중국에서 날아올 것이라는 경고도 하신다. 깊은 지혜와 안타까움이 들어있는 말씀이어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선생님은 그 연세에도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계시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잘 될 수 있을 것인지

여쭤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하신다.

“인재를 모아야 해. 세계를 좌우할만한 사람 3천명 내지 5천명을 양성해야 돼.”

그러면서 사람을 양성하는 그 일을 꼭 하려고 계획하신다.

정부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없느냐고 여쭸더니, “전부 무식한 놈들!”하고 일축하신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하여 많이 알려졌는데,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내자랑하는 것 같아서 인터뷰 안해. 조실부모하고 빌어먹고 자란놈이 무슨 내자랑을 해!”

조그만 재주만 있어도 서로 튀려고 아우성인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어른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선생님은 100여 세대 사는 고향마을에서 어릴 때 “저 놈이 덕재산 정기를 타고 났는데,

여기를 떠서 세상에 나가면 크게 잘 될 것이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크게 잘 되는 날’, 그것은 선생님의 의술이 세계 만방에 떨치는 날이 아닐까.

그 날이 바로 이 땅의 민중의술이 광복되는 날이고.

                                                                           출처) 민중의술 명의열전 ** 글쓴이 : 황종국


글을 맺으며

이 정도 긴 글로 정리해도 겨우 장님이 코끼리 다리 하나 만지고 나온 기분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선생님의 의술과 정신세계를 정리하는 글이 아니라 서론에 불과하다.

그만큼 선생님의 지혜와 의술의 깊이는 무궁무진하여 앞으로 세상이 이 분을 귀감과

스승으로 삼아 받들어 모시고 가르침을 청하여 그 지혜를 받아내려야 하리라고 본다.

민족 민중의술의 살아계신 표본을 만난 것은 커다란 기쁨이고, 반면 이런 세계적인 보배를

증손자뻘 밖에 되지 않는 검사, 판사들이 법정에 세워 재판을 하는 이 나라의 꼴이 너무 비감하다.

공자는 나이 칠십이면 ‘아무리 욕심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백 살이 넘도록 세상을

살았으면 무슨 짓을 해도 처벌하지 않는 그런 멋을 이 나라에서 기대하는 것은 정녕 환상일까.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아귀다툼하면서 물건 수출해서 몇 푼 남기느라고 애쓰는 것보다 이런 어른 한 분의

능력을 살려서 활용하는 것이 몇 만 배 국가에 도움되는 일이다.

이참에 이 나라의 의료제도라는 것이, 또 그런 제도를 만들어내어 옳다고 우기며 운용하고 있는

지적 풍토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고 어리석은지 되돌아보고, 이런 분이 존재할 수 있는 이 나라의

유전적, 생래적 풍토와 기운에도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온통 눈에 보이는 물질만으로 미쳐 뒤집어진 판에 이 나라라도 정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로 가야 살 것이니, 부디 지금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기를 차제에 신신당부한다.

민중의술은 이런 어른이 계시니 더욱 힘을 내자.

환자들과 국민들이 선생님의 사건을 계기로 엉터리 의료제도에 눈을 뜨면서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이 기회를 민족 민중의술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발판삼아 의료제도 대개혁을 위하여 단결하고

협동하여 큰 발전의 계기로 삼자. 그리고 우리 민중의술이 얼마나 깊고 무궁무진한지 자부심을

가지고 이를 제대로 배우고 발전시키도록 다짐하자.

하늘은 말없이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고 계신 것이다.


출처) 민중의술 명의열전 ** 글쓴이 : 황종국

장병두 할아버지 생명 의술 살리기 모임

http://cafe.naver.com/lovelifejang.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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