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한때는 한 방에서 동문수학했던 도반들이었는데…. 9월 제주는 아직 여름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때다. 10월은 넘어야 보일러를 켜라고 우긴다. 일어나자마자 부부도 체질이 맞아야 살 수 있을거라는 도반도 무척 긴 밤이었나 보다.
해제하자 오랜만에 도반들이 모였다. 준비한 객실은 가보지도 않고, 그냥 내 방에서 늦도록 환담하다가 함께 잠들었다. 남으로 만나 형제같이 지내는 도반들이 더없이 좋다. 정말 다 벗고 있어도 부끄럼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친구들과 평생을 같이 산다면 얼마나 편안할까도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옛적 함께 공부 할 때는 몰랐는지 아니면 맞추어 살았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서로 많이 달라 보인다. 제주는 아직 잠들기 전 잠깐이라도 에어컨을 켰다 끄고 자는 때인데, 어찌된 일인지 육지에서 온 도반들이 선풍기조차 춥다고 겁내하더니 결국 진공 포장해둔 겨울이불 팩을 모두 풀어 제치고 만다.
정말 우리가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함께 살아가는 같은 종족이 맞을까 생물학적으로 따져보고 싶을 지경이다. 일정이 하루였기에 다행이지 며칠만 되었어도 객사 신축불사를 계획해야 할 것만 같다.
지난 밤 강정마을 소식이 TV고발프로그램에 방영되었다. 지척에 위치한 곳이라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보였다. 참으로 미묘한 느낌이 든다. 찬성과 반대 두 얼굴 모두 낯익은 이웃이다.
정말 강정의 일에 획을 그을
확고한 논리란 게 존재나 하는 것일까?
양극단을 지양하는 중도 가르침이 더욱 맘속에
닿아오는 때인 것 같다
양쪽 모두 같은 목소리로 공생할 수 있는 평화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서로 극단적 목표치를 가지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한다. 다 같이 우리 마을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방법은 극단적으로 다른 것 같다. 한쪽은 힘을 갖추어 평화를 지키자하고, 다른 한쪽은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평화를 유지하자 한다.
종교적 입장도 표출되고 있다. 인근 약천사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부처님이시면 어떠한 행동을 취하셨을까? 너무나 급변하는 현실에서 판단은 자꾸만 복잡해져 간다.
처음부터 꾸준히 반대하거나 찬성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찬성을 얘기하던 분이 TV에서 반대의 논리를 피력하는 것도 보인다.
“모든 걸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라고 소리쳐 부르던 대중가요가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이 찬성과 반대에 서서 올인 하고 있는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이후 상처받은 마음에 외롭고 쓸쓸한 고독과 함께 해야 할 사람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가족들이 조상의 제사도 함께 모시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지도 벌써 오래다. 살아있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죽은 조상으로부터 다시 살아갈 뒷사람들까지 이번 충돌의 높은 파고에 휘청될게 분명하다.
세상이 너무 극단으로 치달리고 있다. 정말 강정의 일에 획을 그을 확고한 논리란 게 존재나 하는 것일까? 양극단을 지양하는 중도 가르침이 더욱 맘속에 닿아오는 때인 것 같다. 중도란 아름다운 길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모두들 지옥의 괴로움에 힘겨워 한다.
‘혜안관시지옥공(慧眼觀時地獄空), 지혜의 눈으로 바라보니 지옥도 텅 비었네.’ 서로 다른 체질을 가진 도반들과 함께한 지난밤,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해야 했던 창문처럼,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 가여운 늦여름의 선풍기처럼 시차를 두고 번복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더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
절 아래 일로 마음 아파해야 하는 나는 충실한 주지인 것일까? 자비심 충만한 사문인 것일까? 서로 다른 체질 탓에 밤잠을 설쳤더니 이마져 혼돈스럽다. 추위에 숙면을 못 취한 도반들도 힘겹기는 마찬가지겠지….
[불교신문 2755호/ 10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