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사람들이 만드는 수억개의 '미래 기업'

 

이 책은 예언서다. 저자는 '롱테일'과 '프리코노믹스(공짜 경제학)'의 창시자인 크리스 앤더슨. 그는 지난 10년과 향후 10년의 혁신을 단 두 문장으로 정리한다. "지난 10년은 웹에서 창조하고, 발명하고, 함께 일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는 과정었다. 앞으로 10년은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현실세계에 적용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혁신 속도는 눈부셨다. 여드름 투성이 대학생의 아이디어에 수만 달러가 투자되고, 인터넷의 그물망을 통해 현실화된 서비스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페이스북, 드롭박스, 에어비앤비가 그랬다. 이것이 비트(Bitㆍ디지털 세계의 기초단위)의 세계다. 웹 시대는 비트를 해방했고, 무게 없는 비트의 경제는 문화부터 경제학까지 사회 모든 분야를 재편했다.

그럼에도 사람은 대부분 원자(Atomㆍ현실세계)의 세계에 산다. 씨티뱅크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디지털 경제의 매출액이 20조달러인 반면, 비디지털 세계의 경제 규모는 130조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전자상거래 매출은 아직 전체 경제 규모의 10% 이하다. 디지털 혁명은 컴퓨터 모니터에 한정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원자의 세계, 즉 제조업의 영역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은 전문지식, 설비, 투자가 필요한 대기업과 전문 인력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발명가가 곧 기업가가 되는 시대다.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와 매슈 볼턴 같은 산업혁명의 영웅들은 특권층이었다. 대부분 상류층으로 태어났거나 운 좋게 엘리트에게 교육받았다. 일반인이 기업가가 되는 길은 구멍가게나 소기업을 창업하는 것이었는데, 파산하기 쉬워 많은 사람이 기업가가 될 엄두를 못 냈다.

반면 21세기 사람들은 인터넷 덕분에 훨씬 쉽게 기업가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DIY(Do-it-yourselfㆍ자가제작) 혁명'을 다룬다. 만드는 사람, 제조자, 제조업체 등을 뜻하는 '메이커스(Makers)' 의미가 달라졌다는 말이다. 제조의 디지털화 때문이다. 메이커스가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은 기술에 정통하고 강력한 디지털 도구를 갖추었다는 점. 바로 오픈 소스 디자인과 DIY 제조다.

이제 상품은 캐드 프로그램으로 컴퓨터 모니터로 디자인된다. 모든 디자인은 파일로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이 파일만으로 소량이나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3D 프린터를 통하면 집에서 직접 생산도 할 수 있다. 자본금이 없다고? 킥스타터, 쿼키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덕분에 벤처 캐피털리스트나 은행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국내외 소비자에게 동시에 제품 판매도 가능하다.
 

2012년 4월 미국 팰로앨토의 아파트에서 단 몇 명의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로 이뤄진 팀이 '페블 스마트워치' 개발 계획을 킥스타터에 올렸다.

햇빛이 비쳐도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전자종이 디스플레이에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과 연동되어 문자와 이메일, SNS를 보여주고, 애플리케이션까지 이용할 수 있는 똑똑한 시계. 이를 단 115달러에 판다는 계획에 후원금은 1000만달러를 돌파했고, 제품이 1대도 생산되기 전에 선판매된 물량만 8만5000대에 돌파했다.

책이 그리는 미래는 허황된 청사진이 아니다. 이미 세계 각지에는 1000개에 달하는 메이커스페이스(생산설비를 공유하는 곳)가 있다. 상하이에는 건설 중인 곳만 100곳에 달한다. 미국에는 페덱스 킨코스사의 전직 인쇄출판 부장이 경영하는 회원제 테크숍이 있고, 이를 판매하는 수공예품 전문 인터넷몰인 에치(Etsy)의 성장도 눈부시다. 2011년 100만명이 만든 상품이 5억달러 이상의 제품을 판매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초 일찌감치 시장 선도를 위해 향후 4년간 미국 학교 1000곳에 3D 프린터와 레이저 커터를 갖춘 메이커스페이스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저자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제 누구나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공장을 가동시킬 수 있다. 생산수단의 소유를 중시한 마르크스가 지금 세상을 본다면 놀라서 턱이 빠질 것이다. 누구나 생산수단을 통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문화계에서 언더그라운드가 새로운 문화의 원동력이 되듯이, 발명가와 기업가의 에너지와 창의성이 제조업을 탈바꿈하고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그는 내다본다. 세계 최대 기업들이 햐향식 혁신을 일으키기보다는 수많은 개인(아마추어, 사업가, 전문가)이 상향식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 전망하는 것이다.

'네이처', '사이언스'의 편집자를 거쳐 12년간 '와이어드'의 편집장을 지낸 이 시대의 트렌드세터 크리스 앤더슨은 현재 3D로보틱스의 CEO로 재직 중이다. 아이를 위해 레고에 달 수 있는 비행기 자동조종장치를 설계하며 시작된 그의 취미는 결국 원격조종 로봇 항공기를 만들어 파는 회사를 만드는 결과로 이끌었다.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모스터, 제너럴 밀스와 같은 이름을 가진 기업들의 시대는 끝났다.
 
시장에서 벌 수 있는 돈은 크릴새우와 같다. 영리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수억 개의 작은 사업 기회를 발견하고 잡을 수 있다." 정말로, 새롭고 거대한 산업혁명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글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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