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봇의 현재와 미래
이코노미스트 2014/07/02 04:00
영화 <AI>를 기억하는지, 아니 <아이로봇>이라는 영화를 보면 미래의 로봇이 갖고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이 기계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이제 점점 옛말이 되었다. 요즘 과학자들은 말을 하고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의지를 갖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지난 3월 17일 LA타임스는 지진 관련 소식을 전하는 속보 기사를 온라인에 냈다. 이 기사를 쓴 건 다름 아닌 로봇이었다. 지진 정보를 입력하면 로봇은 알고리즘에 따라 관련 자료를 추출한 뒤 미리 정해진 탬플릿에 따라 기사를 쓴다. 로봇이 쓴 속보 기사에 BBC 등 전 세계 언론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30년 안에 없어질 직업’에 기자를 포함시킨 언론사도 있었다. ‘로봇 저널리즘’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감정까지 읽어내는 지능형 로봇이 등장했다. 일본 통신회사 소프트뱅크는 6월 5일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느끼는 지능형 로봇 ‘페퍼’를 선보였다.
페퍼는 최신 음성인식 기술과 감정 인식 기능을 탑재해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로봇이다. 키는 121㎝, 몸무게는 28㎏이다. 한 시간에 최대 3㎞를 이동할 수 있다. 핵심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 최초의 로봇이라는 점이다. 원래 로봇은 프로그래밍에 따라 행동하지만 페퍼는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을 가진 로봇을 지향한다.
발표회장에서 페퍼가 손 회장과 나눈 대화는 애플리케이션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었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유 대화도 70~80% 정도 가능하다는 게 소프트뱅크 개발자들의 설명이다. 소프트뱅크와 프랑스 알데바란 로보틱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페퍼는 ‘감정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기쁘고, 고맙다는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을 수치화해 학습한다.
각각의 개체에서 얻은 정보는 클라우드 상에서 다른 페퍼와 공유해 보다 빨리 성장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페퍼는 더 똑똑해진다는 뜻이다.
페퍼 공개 사흘 뒤 영국에서 또 하나의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레딩대는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슈퍼컴퓨터로 구동되는 대화 프로그램 ‘유진’이 영국 왕립학회가 실시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고안한 것으로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테스트다.
심사위원이 컴퓨터와 문자로 5분간 대화하고 심사위원의 30% 이상이 상대가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본다. 이제껏 컴퓨터든 기계든 이 테스트를 통과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튜링 테스트에서는 심사위원의 33%가 유진이 기계임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원활한 채팅을 위한 프로그래밍의 결과일 뿐 유진이 실제 인공지능 또는 인간의 뇌에 근접한 사고 능력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여는 새 미래가 성큼 다가온 건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인공지능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 이다. 이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범주가 달라진다. 좁게 보면 인간의 평소 습성이나 패턴을 그대로 구현하는 기술(도우미형)을, 넓게 보면 정말 SF 영화에 나오는 듯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친구형)을 의미한다.
생각을 문자나 말로 표현하는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말, 글 등의 정보를 수집해 생각이란 걸 만든다. 인간과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구현하려면 인간 의 뇌 구조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현재 기술로는 무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인공지능은 현재의 IT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돈이 되는 것 역시 이 분야다.
이런 기술은 자연히 전자제품·자동차 등에 응용될 수 있다. 구글이 연구 중인 무인 자동차 역시 이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 카메라·GPS 등 하드웨어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운전 기사가 해석해 어떻게 운전할 지 결정한다.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순간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는 게 과제지만 기술적인 준비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인공지능의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로봇뿐만 아니라 기계 등 다양한 산업, 제품에 적용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각국 정부나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로봇 회사들을 잇따라 인수했고,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은 이미 전 세계 병원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세계는 뛰는데 우리는 걷는다. 우리나라엔 아직 국책 인공지능연구소가 없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인공지능연구소를 만들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부 대학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단위의 사업을 수행하는 게 전부다. 기업들의 대처도 아쉬움이 많다. 한 교수는 “인공지능은 장기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 삼성이든 LG든 대기업이 치고 나가줘야 하는데 도통 준비가 없다”며 “특허 등 향후 비용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지금이라도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로봇 사업은 10년 넘게 개발에만 매진할 뿐,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다. 카이스트가 자랑하는 ‘휴보’는 연구용으로 8대 정도가 팔렸고, ‘메로-S’ 역시 연구용으로 3대가 팔렸다. 지금까지 쏟아 넣은 개발비를 생각하면 밑지는 장사다. 물론 지금까지 축적된 기술로 더 경제성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문제는 개발자들이 이 로봇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디서 돈을 벌 수 있을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원 박현섭 로봇PD는 “페퍼는 로봇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로봇 산업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시작도 못한 고민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그저 먼 미래에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원 박현섭 로봇PD는 “로봇의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 로봇 시장의 규모는 약 13조원이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200조원이니 아직 그리 큰 시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계 많은 국가가 로봇에 주목한다. 로봇 자체를 팔아서 수익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로봇이 만들어내는 제2, 제3의 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멀리 보면 로봇이 국방을 책임지고, 로봇이 노인들을 간병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만들고, 전에 없던 문화를 창조해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세계 경제를 뒤흔든 것처럼 로봇이 가져올 변화를 유심히 살펴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게 박 로봇PD의 설명이다.
어떤 로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은 정교한 기계 제어 기술을 앞세워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구조·농업·국방 등 특정 영역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을 주로 만든다. 국내에서는 아직 ‘어떤 로봇’을 만들지는 않는다. 정부의 역할이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로봇학회장을 맡고 있는 송재복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정부에서도 미래 로봇 기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고 있지만 다소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큰 방향이나 비전이 없어 프로젝트 단위로 연구개발 지원금이 쓰인다. 여러 분야의 기술력은 쌓여 가는데 완성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연구개발투자가 아주 긴급히 필요한 분야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꼽고 있지만 아직 전략적인 움직임은 안 보인다. “정부가 추진하는 로봇 관련 로드맵 수립 계획에 여러 번 참여했다. 로봇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단 2~3번의 미팅을 갖고 결과물을 만든다. 당연히 비전이나 철학, 목표를 고민할 여력이나 시간이 안 된다. 제대로 된 로드맵을 만들려면, 정부기관·공학자·경영학자·사회학자·철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 한다.” 송 교수의 말이다.
서일홍 교수는 “전국 각지의 대학 연구실이나 여러 연구소에서 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그 기술들을 한 데 모으는 일이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한국에서는 구슬을 만드는 일보다 꿰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국내 로봇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미국은 오픈소스 생태계가 잘 꾸려져 있다. 누군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면 여러 집단이 공유하는 사이트에 소스를 공개한다. 그 소스를 바탕으로 관련 기술을 발전시키며, 보다 완벽한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 일반인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일도 흔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가 풀기 어려운 문제를 취미로 로봇이나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일반인이 해결하기도 한다.
유럽 역시 공동작업에 익숙하다. 한 관계자는 “유럽 개별 국가로 보면 한국보다 로봇 관련 연구소가 많은 나라는 드물지만 여러 국가가 팀을 꾸려서 연구를 하기때문에 결국은 한국보다 연구소가 많은 셈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중국 등 아시아의 연구 환경은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다. 자신의 연구를 공유하고 서로 힘을 모으는데 인색하다. 대신 일본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여러 기술을 한 곳에 모은다. 페퍼가 탄생한 것도 소프트뱅크라는 거대 기업이 뒤를 받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성과를 숨기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맞춰 발표하고, 개발한 기술이 경쟁 상대보다 뛰어나다고 홍보하는데 주력한다. 그래야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기업의 펀딩을 받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개발한 대학교가 어느 곳인지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그래야 연구비를 지원해준 학교에 면이 선다. 앞서 밝혔듯, 지능형 로봇은 수많은 기술의 융합체다. 하나의 연구실에서 눈과 귀를 만들고, 뇌를 만들고, 손과 발까지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기술을 한데 모아야 최근 정부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분위기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각 대학이 가진 기술과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실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구현이 가능한지를 파악한다. 이후 그 기술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정보를 공개해 모든 연구소나 대학이 공유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보다 많은 연구소와 기관이 서로 협력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제 준비를 시작한 단계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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