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11.27 16:01
요즘 경영의 최고 키워드가 된 ‘창의성’. 이것은 협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상대와 팽팽히 맞선 채 한 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런 때 누가 창의적인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협상의 성과가 판이해진다. 창의적 협상가가 되기 위한 비법, 세 가지 키워드만 기억하라.
<상황1> 하나가 꽉 막혔을땐 '어젠다'를 추가해 동시에 협상하라
"집안 청소는 당신이 해 줬으면 좋겠어."
"뭐? 청소? 싫어!"
벌써부터 신혼의 단꿈이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들린다. 맞벌이 신혼부부인 강주장과 도도한.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남편 강주장씨가 둘만의 핑크빛 미래를 그리려는데, 부인 도도한씨가 다짜고자 집안일부터 나누자고 나선다.
"청소가 싫으면 그 얘긴 이따 하고, 설거지는 어떻게 할까?"
"설거지?"
"응, 설거지를 당신이 할래?"
"그건 내가 자취하면서 죽기보다 하기 싫었던 건데…."
"아, 빨래도 해야지. 밥 차리는 건 번갈아 하기로 했고. 또 뭐가 있지?"
집안일, 참 많기도 하다. 할 말을 잃은 남편 강주장씨에게 부인이 이렇게 제안한다.
"그럼, 설거지랑 빨래는 내가 할게. 청소는 해 줄 수 있지?"
"알았어, 청소는 내가 할게."
- ▲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많은 협상가들이 실수하는 게 있다. 한 번에 하나의 문제만 처리하려는 것. 가격 협상이 끝나야 지불 방법을 얘기하고, 그게 마무리돼야 물량을 협상하는 식이다. 이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긴 협상의 과정에서 하나의 어젠다에 묶여 시간을 끄는 것은 소모적인 낭비일 뿐이다.
앞의 상황에서 부인 도도한씨가 남편과의 집안일 협상에 성공한 것은 협상의 어젠다를 '더한' 덕분이다. '청소'가 막히자 '설거지, 빨래' 등 다른 집안일들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 한 번에 협상을 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동료와 점심 메뉴를 놓고 협상을 한다. 당신은 오랜만에 햄버거가 당긴다. 그런데 동료는 따끈한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한다. '점심 메뉴'라는 하나의 어젠다로 맞선 상황. 해결이 쉽지 않다. 만약 이때 '돈은 누가 낼래?'라는 어젠다를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혹은 '내일은 뭘 먹을까?'라는 어젠다를 더한다면? 이렇게 협상의 어젠다를 추가해 동시에 협상하면 문제는 훨씬 쉽게 풀린다.
딱 하나의 어젠다만 갖고 협상해야 할 경우는 거의 없다. 비즈니스 상황은 더욱 그렇다. 구매 협상을 예로 들어보자. 가장 큰 갈등은 가격 문제에서 생긴다. 이때 창의적 협상가들은 가격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물량, 유통비, 지불방법, 품질, 애프터서비스 등 다른 어젠다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가격 문제를 풀 실마리를 얻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김종훈 본부장도 이 방법을 사용해 꽉 막힌 협상을 풀었다. 2006년 12월, 미국 몬태나에서 열린 5차 협상. 당시 양측은 '신약(新藥) 최저가 보장 문제'란 하나의 이슈로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미국 측은 '새로 나온 약의 최저 가격을 보장해 달라'며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제약 업계에 너무 큰 부담이 됐다. 이때 김종훈 본부장이 예정에 없던 얘기를 꺼냈다. '무역구제 비합산 조치'라는 어젠다를 추가한 것. '반덤핑 조치를 발동하기 위한 산업 피해 판정 때 한국산은 분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갑작스런 김 본부장의 제안에 미국 측은 당황하며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협상 어젠다가 둘로 늘자 흐름이 확 달라졌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신약 최저가 보장 문제는 미국측이, 무역구제 비합산 조치는 한국측이 양보하면서 협상이 부드럽게 마무리됐다.
협상장에서 하나의 문제로 팽팽히 맞서 있다면 다른 협상 어젠다를 더하라. 주제를 붙여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식이 보인다. 창의적 협상의 첫 걸음은 바로 어젠다를 늘리는 것이다.
<상황2> 주어진 틀에서 안되면 협상의 룰을 바꿔라
"내가 앞부분을 정리할게. 네가 뒷부분을 맡아줘."
"안 돼, 뒷부분이 훨씬 많잖아. 난 다른 발표 준비도 해야 해. 내가 앞부분 할게."
벌써 30분째. 3일 앞으로 다가온 '마케팅 전략' 수업 시간 발표를 앞두고 두 친구가 서로 쉬운 부분 정리를 맡겠다며 다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친구가 이렇게 제안한다.
"그러다 수업 전까지 나눌 순 있겠어? 이렇게 하면 어때? 전체 분량을 한 명이 두 부분으로 나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둘 중에서 자기가 맡을 내용 하나를 고르는 거야. 어때, 공평하지?" 친구의 제안에 동시에 "오케이"를 외치는 둘.
■협상 비법 2: "틀을 바꿔라"
탁자 위에 동그란 달걀을 세울 방법은? 다들 알다시피 '깨면' 된다. 콜럼버스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달걀을 깨선 안 된다'는 룰을 바꾼 사실이다.
그렇다면 창의적 협상을 위해선? 마찬가지로 협상의 룰을 '바꾸면' 된다. 쉬운 발표 내용을 맡겠다며 우기던 두 친구의 갈등이 한 번에 해결된 것도 '협상의 룰'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나누고 갖는다'를 '한 사람이 나누고 다른 한 사람이 고른다'로 바꾼 것이다.
이 원리가 유엔 해양법 협상에서 그대로 사용됐다. 1973년 시작된 해저 광물 채굴권 협상은 10년째 유엔의 큰 골칫거리였다. 태평양 등 공해(公海) 상의 심해에 묻혀 있는 희귀 광물 개발권에 대한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얽혀, 광물을 채굴할 해역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달랐다.
일단 대상 해역의 절반은 미국, 영국 등 선진국 기업의 컨소시엄이, 나머지 절반은 후진국 컨소시엄인 '엔터프라이즈'에서 갖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문제는 구역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다. 엔터프라이즈는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지웠다 만을 반복했다. 이미 충분한 정보를 가진 선진국들이 가치 있는 광물이 묻혀 있을 만한 지역을 독식할까 봐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이때 제시된 해결책이 '선진국 기업 컨소시엄이 구역을 반으로 나누고 엔터프라이즈가 고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선진국들은 최대한 공정하게 구역을 나눌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엔터프라이즈에 노른자위 땅을 다 내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으로 10년간 끌던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주어진 틀에서만 생각하면 누군가는 손해 보고 양보해야만 한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땐 협상의 룰을 바꿔라.
<상황3> 불확실한 미래로 난항일 땐 내기를 걸어라
나홈런 선수는 슬슬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홈런왕까지 하며 승승장구하다 일본 진출을 결정했는데, 일본 구단이 자신의 연봉을 너무 낮게 부른 것.
"한국에서의 활약, 인정하지만 일본은 달라요. 첫해엔 홈런 10개도 못 칠 겁니다. 그러니 2억엔 정도에 사인하시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전 홈런 30개는 거뜬합니다. 적어도 3억엔은 받아야겠습니다."
2억엔과 3억엔으로 팽팽히 맞서는 상황. 그때 나홈런 선수가 이렇게 제안한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기본 계약은 2억5000만엔으로 하고, 제가 홈런을 30개 이상 치지 못하면 내년 연봉 협상에서 5000만엔을 빼겠습니다. 단, 제가 그 목표를 달성하면 추가로 5000만엔을 주시죠."
나 선수의 제안을 들은 구단은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계약을 마무리했다.
■협상 비법 3: "내기를 걸어라"
협상에서 가장 힘든 경우가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예상을 갖고 대립되는 주장을 할 때'이다. 나홈런 선수는 홈런 30개는 거뜬하다며 연봉을 높여 달라고 한다. 반대로 구단은 나 선수의 성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낮은 연봉을 주장한다. 이 상황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나홈런 선수의 협상 상황처럼 자신이 믿는 쪽으로 '내기를 거는 것'이다.
이 방법은 주로 기업 인수·합병(M&A) 협상에서 많이 나타난다. 파는 입장에서는 자산 건전성 자료 등을 제시하며 최대한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 반면 사는 입장에서는 잠재된 부실 자산이 있는 것 아니냐며 가격을 최대한 낮추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내기를 거는 것'이다. 인수 계약이 끝난 후에 숨겨졌던 부실 채권이 발견됐을 때 그 금액을 추가로 지불하는 조건을 넣는 식(이를 '풋백옵션'이라 한다)이다. 양측이 서로의 내용에 자신이 있다면, 이런 조항을 통해 협상의 돌파구가 생긴다.
하지만 실제 협상에선 이런 창의적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1969년부터 10년 넘게 계속되다 결국 결렬된 협상이 있다. 바로 미국 법무부와 IBM 간의 협상. 미 법무부는 컴퓨터 시장에서 IBM의 독점을 경계, 시장 확장을 줄이라고 했다. 하지만 IBM은 컴퓨터 시장의 환경 변화로 점유율이 조만간 떨어질 것이라며, 생산 계획을 바꿀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미 법무부는 IBM의 반독점 제한 위반에 대해 소송했고, IBM은 항소했다. 지루한 싸움은 13년 동안 이어졌고 이를 위해 자그마치 6500만쪽 이상의 문서가 제출됐다.
이 협상의 승자는? 수백만달러를 받으며 양측에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들이었다. 이 협상은 시장 환경이 바뀌며 둘 다 상처만 잔뜩 입은 채 흐지부지돼 버렸다.
이 협상이 깨진 이유는 무엇일까? '점유율에 대한 예측'이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 IBM이 "5년 후 IBM 점유율이 50%가 넘지 않으면 소송 취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미국 법무부에서 "5년 후 IBM 점유율이 75% 이상 될 경우 벌금과 함께 일정 부분 시장 철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면? 이렇게 미래 상황에 내기를 걸었다면 서로 만족하며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 달리 생각하는 조건은 아무리 협상을 해도 풀리지 않는다. 그럴 땐 내기를 걸어라. 그러면 누구 하나 손해 봤다는 느낌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에필로그
많은 사람들이 “상대와 내가 너무 달라 협상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창의적인 협상가들은 “상대와 내가 달라 협상이 재밌다”고 말한다. 서로 달라서 새로운 가치를 그만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 협상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것을 즐겨라. 그리고 더하고, 룰을 바꾸고, 내기를 걸어라. 창의적 협상? 당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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