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8라운드 성남일화-경남FC 경기 후반 막판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상황을 놓고 지금 축구팬들 사이에선 말이 많다. 그 경기의 주심을 맡았던 홍진호씨의 명백한 오심으로 인저리타임에 선언된 페널티킥을 키커로 나선 성남 몰리나가 실축한 것.

실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전 PK판정이 내려진 직후 경남 조광래 감독이 격분하며 그라운드에 난입하려다 운동장 진행 요원들에 제지를 받았고, 이후 경남 선수들에게 경기 진행을 거부하고 그라운드에서 철수하라는 제스처를 강하게 취했던 게 컸다. 이것도 모자라 조감독은 입에 거친 말을 담으며 주심에 해를 가하려는 듯 달려드는 모습까지 보였다.

일단 PK실축을 두고 일부 팬들은 몰리나 역시 오심임을 인지했기에 당장의 승패에 연연하기 보다는 더 이상의 분란 없이 그 경기의 모든 것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볼을 하늘로 날려버렸다며, 그의 ‘대인배적’ 기질을 높이 산다. 반면 다른 팬들은 “승부는 냉정한 법인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막판 경기 지연사태 및 경남 수문장 김병지에 대한 심적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고 실축했다 생각한다. 서로 상반된 의견을 가진 이들 축구팬들의 공통점이라면 웃으면서 당시 상황을 복기한다는 것일 게다. 흥미로운 한 편의 해프닝이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뭐, 어쨌든 상관없다. 우리가 몰리나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몰리나 역시 그에 관해 이렇다 할 코멘트를 내놓지 않고 있으니.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PK 실축이 결과적으로는 여러모로 천만다행이었다는 것이다. 비단 나 자신만이 아닌 당시 그 경기를 지켜봤던 사람들이라면 대다수 비슷한 느낌을 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남-경남의 게임 자체는 좋았다. 전체적으로 기술축구를 팀 컬러로 내세우는 팀들답게 깔끔한 경기력이었고 ‘지능’을 컨셉으로 가진 양 팀 수장들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술 변화와 용병술 역시 볼 만 했다. 특히 경남은 왜 자신들의 축구가 최근 리그 관계자들은 물론 리그 팬들에게까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더 이상 그저 그런 중하위권 팀이 아닌 올 시즌 6강 혹은 그 이상을 노리는지 확실하게 어필했다. 기술적‧전술적 조련이 상당히 잘 돼있는 팀이었고, 선취 실점을 당했음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의 스타일을 끝까지 유지하며 기어이 동점과 역전을 이끌어내는 모습에서 ‘강팀으로 착실히 변모하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90분 동안의 이 게임의 모든 긍정적인 인상은 고작 인저리타임 몇 분 동안 산산이 깨졌다. 일단 분란의 빌미를 제공한 크나큰 오심을 내린 홍진호 주심에 대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엄중한 징계가 내려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원활한 경기진행 방해 및 주심에 대한 신체위협성 동작을 가한 경남FC 조광래 감독에게도 강력한 징계 및 확실한 사후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고작 향후 2경기 벤치에서 지휘를 못하게 하는 것은 처벌 수위가 약하다.

여전히 그 버릇을 못 버리시는 조광래 감독님께

조광래 감독님, 당신은 대한민국 직업 축구무대의 최고봉이라는 K리그에 소속된 경남FC 팀 감독입니다. 과거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높은 국민적 인지도를 가지고 계시고 지도자로서도 굵직한 업적을 남기셨으며 그것은 현재에도 진행형입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 상태와 선수 자원을 가진 도민구단을 맡아 강한 팀, 보기 좋은 축구를 하는 팀으로 성장시킨 그 지도력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감독님의 품위는 결코 존경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현 시점에서 K리그의 당당한 상위권 팀 수장으로서 리그의 격을 떨어뜨렸던 행동은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물론 그 순간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명백한 오심이었고 또 그게 하필이면 인저리타임에 나왔다는 게 감독님 입장에선 “정말 심판이 PK를 선언하려고 어떻게든 벼르는 것 같았다!”는 느낌을 줄만도 합니다. 당장 눈앞의 승점 3점이 어이없는 판정으로 1점으로깎일 위기에 처했는데 그 어떤 감독이라고 속 편하게 넘기겠습니까.

더구나 조감독님은 승점 3점과 1점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K리그 내 그 어떤 감독들보다 절감했던 당사자입니다. 경남이 2시즌 연속 리그 마지막 라운드서 털끝만한 승점이 모자라는 바람에 6강 플레이오프 진입에 실패했었기 때문이죠. 가슴 속에 맺힌 한이 크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그것이 명백한 오심이라도 경기 자체는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뒀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종료된 후 그라운드로 들어가 주심에게 어필하던가 아니면 인터뷰 룸에서 강력하게 주심을 비판(혹은 비난)했어야 옳은 것입니다. 실제 공개 인터뷰서 주심을 비난했어도 리그 팬들은 감독님을 지지했을 겁니다. 그 PK 판정은 명백한 오심이었으니까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들 역시 심판 탓 합니다. 당장 퍼거슨, 벵거, 베니테스 같은 EPL의 유명한 감독들의 입에서 거의 매 주 “형편없는 심판들 때문에 경기를 그르쳤다!”라고 대놓고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하지만 유럽축구를 즐겨보는 축구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저 사람은 감독으로서 품위가 없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심이 내려졌을 때 퍼거슨이 맨유 선수들에게 그라운드에서 철수하라고 지시하던가요? 벵거가 오심을 내린 심판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려고 달려드는 제스처를 취하던가요?

하지만 K리그 경남FC의 조광래 감독님은 모처럼 공중파를 통해 그것도 HD화질로 전국으로 나간 방송에서 이와 같은 추태를 보이셨습니다.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자랑하고 또 최근 글로벌화 추세에 걸맞게 일본, 중국, 호주 및 유럽 각지에서도 스카우터 및 언론인들을 파견해 주목하는 우리 자랑스러운 K리그의 권위와 명성을 실추시켰습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감독님의 이 같은 행동은 상습적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경기를 통해 일단 경남FC는 단순한 다크호스가 아닌 정말 강력한 6강 후보로서 겨울에도 축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팀이란 걸 저를 포함한 리그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감독님이 목표로 하신다는 우승도 결코 허황된 꿈만은 아니라는 느낌도 줬고요. 하지만 동시에 감독님의 지도자로서의 품위는 K리그 상위 6명의 감독들과는 여전히 거리가 먼 위치에 있다는 것도 확인한 하루였습니다. 일명 ‘조광래 유치원’에서 원생들을 가르치기 이전에 유치원 전체를 책임지는 원장으로서 자신부터 확실히 다스리시길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