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가는 게 의원 권리? 착각하지 마시라

[주장] 말 많고 탈 많은 의원 해외연수... 상식 눈높이에서 특권을 없애자

19.01.12 11:13l최종 업데이트 19.01.12 11:13l

 지난해 12월 23일 해외연수 도중 버스 안에서 가이드를 폭행하는 박종철 예천군의원 모습.
 지난해 12월 23일 해외연수 도중 버스 안에서 가이드를 폭행하는 박종철 예천군의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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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터졌다. 예천군의회 의원들이 해외연수 과정에서 보여준 '추태'가 전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가이드 폭행' '접대부 요청'이 알려진 뒤 이제는 군민들이 나서서 "의원 전원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뿐이겠는가? 지금이라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의원 해외연수'를 검색해 보시라. 전국 방방곡곡의 여러 사례와 문제점들이 수두룩하게 보일 것이다. 예천군의회 논란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도 10일 경북시군의회의장협의회는 베트남으로, 인천 계양구의회 의원들은 호주·뉴질랜드로 떠났다.

해외연수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는 것은 물론 개별의원의 인격 문제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십수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의원 해외연수'의 부조리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그 안에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특권 중의 특권 '의원 해외연수'
 
'철면피 예천군의원 배출해서 죄송합니다' 해외연수 당시 가이드를 폭행하는 등 물의을 일으킨 예천군의원들의 사퇴를 촉구하고 사과하는 성명서를 담은 주민들의 대형 현수막이 예천군의회에 내걸려 있다.
 해외연수 당시 가이드를 폭행하는 등 물의을 일으킨 예천군의원들의 사퇴를 촉구하고 사과하는 성명서를 담은 주민들의 대형 현수막이 예천군의회에 내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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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한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는 특권 중의 특권이다. 우리 주위 어떤 공무원이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나랏돈 300만~400만 원씩 들여가며 해외 선진문물 견학을 다녀오는가? 어떤 회사가 매년 올해는 유럽, 내년에는 미주, 후년에는 호주로 7박 9일이나 5박 7일씩 해외연수를 보내주는가 말이다. 그것도 출장이 아니라, 내용과 프로그램을 모두 자기들이 짜는 연수 여행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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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은 어떤 필요에 의해 그 자리에 특별하게 부여된 권한이다. 그러한 권한은 어디로부터 위임됐는지, 왜 주어졌는지 잘 알고 무겁고 귀하게 써야 한다. 그런데 그런 특권의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늘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나만의 권리'가 된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그 권리를 뺏기지 않아야 하고, 지키고, 더 확장해나가야 한다.

내가 5년 전 초선 구의원이 되고 구의회 해외연수 폐지를 제안했을 때 의원들의 반응이 딱 그것이었다. '왜 니가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빼앗으려고 하느냐.' '너만 튀려고 주제 넘고 개념 없는 말을 하는구나.' 물론 이 속내를 아주 좋은 말로 표현한다. 

"좋은 연수를 잘 다녀와서 구정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꼭 그렇게 나쁘게만 볼 수는 없지 않나...(어쩌고 저쩌고)"
  
해외연수 문제의 핵심은 ① 예산이 있으니 1년에 한 번은 다녀온다는 의원들의 관례적 인식 ② 목적·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것 ③ 사전 준비 및 사후 검증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해법은 분명히 있다.

해법 1. 안 가는 것을 기본으로
 
 의원 해외연수. '매년 정례적'이라는 인식부터 내려놔야 한다.
 의원 해외연수. "매년 정례적"이라는 인식부터 내려놔야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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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당연히 다녀오는 시스템부터 바꾸자. 왜 매년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해외에서 '배우고' 들어와야만 하는가?

구로구만 해도 의원들 해외연수로만 1년에 6000만 원 정도 예산이 든다. 4년이면 2억5000만 원이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60억~70억 원의 예산, 전국 기초지자체 의회로 따지면 의원 임기 동안 300억 원에 가까운 돈이 정기적인 해외연수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디 기초의회뿐인가? 광역의회나 국회는 어떠한가?

예산으로만 봐도 어마어마한 금액인데, 주민이나 언론, 지역사회가 납득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으면 당연히 안 가는 게 맞다. 매년 다녀왔고, 예산이 편성돼 있으니 다녀오고, 예산이 의원당 300만 원 내외이니 그 액수에 맞춰 동남아 휴양지나 여행사 패키지 따라 다녀오고... '주객이 전도된' 패턴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안 가는 것이 일상이고 정말 필요에 의해서 다녀온다면 피곤할 정도로 철저한 준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해법 2.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세워라

꼭 해외연수를 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어떤 지역 현안이 부득이하게 '해외연수'라는 방법 말고는 해결이 안 될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고 연수를 가야 한다.

예를 들자면 안전문제가 이슈화될 때 우리 지역에도 적용하기 위해 미국 911이나 독일이나 일본 안전·재난관리 시스템을 직접 보고 적용한다든가, 우리 구에 실버타운을 건설하는데 모범사례인 싱가포르·일본의 어떤 곳을 벤치마킹 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국내에서 좋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면 굳이 해외를 다녀올 필요가 없다. 또한 모든 의원들이 우르르 다 같이 다녀올 필요도 없다. 해당 상임위 몇몇 의원들에게 분명한 임무와 책임을 주고 다녀오게 하면 될 일이다.

해법 3. 철저한 사전준비·사후검증 필요하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사전 심의위원회, 사후 평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연수기간 무엇을 하고, 어디에 예산을 썼고, 그 성과는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기록해놔야 한다. 참여 의원간 사전 워크숍을 반드시 진행해 목표와 역할 분담을 숙지해서 의정 분야에 도움이 되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관광성 일정을 배제하고, 지역 시민단체와 기자 간담회 등을 통해 목적·취지·일정 등에 대해 사전 공유와 사후 검증을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연수 결과가 구정 어떤 부분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구체적인 성과를 남겨 그 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가급적이면 의원들끼리만 가지 말고 준비부터 연수동행, 이후 평가까지 해당분야 공무원·주민·기자들이 함께하는 방법도 고민해 볼 수 있다.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보면 너무나 쉬운 문제
 
 해외연수 당시 현지 가이드를 폭행해 물의를 빚은 박종철 예천군의회 군의원실 앞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다.
 해외연수 당시 현지 가이드를 폭행해 물의를 빚은 박종철 예천군의회 군의원실 앞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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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연수문제를 보면서 나는 국민들의 인식과 의원들의 인식 사이에 큰 괴리를 느낀다. 어디서부터 그 괴리가 생기는 걸까? 반복되는 해외연수 문제의 근저에는 '의원으로서의 권한'과 '나의 권리'를 혼동하는 것, '특권을 당연시 여기는 자세'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구청 예산을 지원받아 활동하는 주민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랏돈 쓰기 참 힘들다" "이거 이렇게 어렵게 쓰느니 내 돈 내고 하는 게 낫겠다", 이런 이야기다.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기도 하다. 우리 세금은 꼼꼼하게 불편하게 쓰여져야 할 필요도 있다. 주민들은 돈 100만 원도 그렇게 쓰는데 예산을 감시하고 제대로 써야 할 의원들이 '예산 무서운 줄 모르'면 되겠는가? '나한테는 관대'하면 되겠는가?

의원들의 해외연수. 이제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다시 정비할 때가 됐다. 나는 의원 해외연수를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 위에서 밝힌 내 소신에 따라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남들보다 뒤떨어진 의정활동을 하거나, 선진적인 의정활동을 못 따라가거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해외연수가 의원들의 활동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정말 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정비할 때가 됐다.

구로구의회는 '구로구 공무국외여행 조례'를 통해 의원 해외연수의 변화의 기초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 내가 대표발의로 만든 조례인데, 다수의 힘에 밀려 다른 의원들까지 못 가게 말릴 힘이 없다면, 제대로 다녀올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례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로구의회 전체 의원들이 여기에 동의해 줬고 의회개혁 자정조례, 해외연수조례 모범사례로 언론에 회자되기도 했다.

물론 조례, 제도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 조례가 담고 있는 의미, 조례에 담겨 있는 국민들의 뜻을 생각하고 의원들 스스로가 '의원들의 해외연수'를 바꿔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안 된다면 국민들이, 언론이 '마구 혼내서' 잘못된 버릇을 고치고, 권한을 회수해서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의원들의 모든 권한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위임받은 권한을 원래 내 것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제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희서씨는 정의당 구로구의회 의원(바선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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