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美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세계적 열풍 이유는

기사입력 2014-06-14 03:00:00 기사수정 2014-06-14 03:58:44

발가벗겨진 현대정치… 오바마-시진핑도 ‘광팬’

양손에 피를 잔뜩 묻힌 채 권좌에 오른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배우 케빈 스페이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넷플릭스 웹사이트
정치 스릴러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카드로 만든 집)’에 중독된 시청자들은 누구일까. 이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열렬한 팬이라고 고백했다. 드라마의 파괴력은 유명 정치인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 하원 원내대표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에 등극하는 프랭크 언더우드와 워싱턴 정가의 치열한 암투를 그린 이 드라마는 2013년 초 시즌1 방영 직후부터 전 세계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 ‘폐인’을 양산하고 있다.

올해 초 시즌2가 나온 후 이 열풍에 가속도가 붙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제작진에게 “2015년 방영 예정인 시즌3를 빨리 보게 해 달라”고 졸랐고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3월 ‘중국 정치인은 왜 하우스 오브 카드를 좋아하는가’라는 기고문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남편과 함께 이 드라마에 탐닉했다”고 털어놓았다. 거대 권력자들도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이 드라마가 권력 다툼과 정치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이 드라마 열풍은 한국에서도 일고 있다. 한국 시청자들은 불륜과 출생의 비밀 폭로가 난무하는 막장 드라마에 단련돼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드라마보다 훨씬 더한 막장으로 가는 현실을 목격했다. 정치와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섬뜩하게 고발하고 있는 드라마는 이 점을 파고든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동시 달성이라는 신화가 얼마나 허무했는지를 절감하는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가 먹혀들고 있다”고 말했다.

○ DVD 대여회사가 만든 혁신 드라마


이 드라마의 성공은 △스트리밍과 빅데이터 이용 △감독 데이비드 핀처, 주연 케빈 스페이시 등 할리우드 최상급 인력의 동원 △금권주의와 음모술수만 남은 현대 정치에 대한 소름끼치는 묘사 △주옥같은 명대사 △미국과 중국,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전통 언론과 뉴미디어 등 촘촘히 배치된 극적 갈등구조 등에 기인한다.

드라마 제작사는 방송사가 아닌 온라인 DVD 대여회사 넷플릭스. 당연히 기존 미국 지상파나 케이블 채널에서 볼 수 없고 드라마를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 넷플릭스가 드라마 제작에 나설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1990년 영국 BBC 방송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데다 제작비도 1억 달러(약 1018억 원)에 달했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2013년 2월과 2014년 2월 각각 시즌1, 시즌2의 13편을 동시에 공개했다. 매회 마지막에 극적 반전을 암시하는 ‘떡밥’을 던져 다음 회에 대한 기대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반 드라마의 전개방식과 크게 대비된다.

넷플릭스는 드라마 시청 패턴에 주목했다. 종전에는 실시간 시청(본방 사수)이 많았지만 지금은 ‘몰아보기’와 ‘다시보기’가 늘고 있다. 매체도 바뀌었다. 드라마는 TV로만 봐야 한다는 공식이 깨졌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보는 시청자가 급증했기 때문. 어떤 드라마에 몰입하면 그 자리에서 수십 개를 몰아보는 드라마 폐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미디어 산업 전략도 ‘방송(broadcasting)’에서 ‘스트리밍(실시간 재생·streaming)’으로 달라졌다. 스트리밍은 영상물을 따로 하드웨어에 저장하지 않아도 실시간 감상이 가능한 서비스로 원하는 콘텐츠를 그때그때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데이터 전송이 물 흐르듯 이뤄진다는 뜻에서 스트리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제작자의 직감과 개인적 선호에 의존하는 할리우드의 제작 관행도 탈피했다. 감독 데이비드 핀처, 주연 케빈 스페이시의 발탁은 데이터 분석 업체를 통해 이뤄졌다. ‘정치 스릴러에 어떤 배우와 감독이 가장 적합하냐’는 철저한 사전 분석부터 했다. 여기에 탄탄한 원작과 호연이 가세하자 유료 시청자가 열광했다. 이 드라마 덕에 2013년 넷플릭스의 순이익은 37억5000만 달러(약 3조8175억 원)로 1997년 설립 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때 실적 부진으로 나스닥 퇴출을 걱정했던 넷플릭스는 타임워너 등과 맞먹는 미디어 공룡으로 급부상했다.



독특한 캐릭터와 뛰어난 완성도

이 드라마 첫 회를 보기 시작하면 전편을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첫째 이유는 등장인물이다.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는 대통령이라는 야망을 위해 살인, 협잡, 언론 조작 등을 밥 먹듯 구사한다. 모든 사람을 자신의 도구로 여기고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충실한 심복도, 연인도 가차 없이 죽인다.

아내 클레어도 남편 못지않은 권력욕의 화신. 대통령 부인이 되겠다는 일념에 가득 찬 그는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밝히는 일조차 정치 도구로 활용한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타인을 짓밟는다는 점에서 이 부부는 모두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다. 둘 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 때로는 마음이 동해 바람을 피운다. 클레어가 남편 및 그의 경호원과 함께 셋이서 섹스를 즐기는 모습까지 나온다. 주변 인물들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끝없이 돌진한다.

언더우드 역인 케빈 스페이시가 들려주는 차진 대사도 압권. 그는 종종 극에서 빠져나와 화면을 바라보며 시청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이 방백(傍白)을 통한 명대사는 어지간한 잠언을 뺨친다. 희곡과 연극의 특징을 잘 접목했다. 얼핏 ‘사랑과 전쟁’류로 보이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처럼 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인간 본성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의 방백은 드라마 시작부터 나온다. 뺑소니차에 치여 죽어가는 이웃집 개의 목을 조르는 언더우드는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어. 사람을 강하게 하는 고통과 그냥 괴롭기만 한 고통. 난 쓸모없는 건 못 참아. 내가 하는 일도 이 개를 죽이는 것과 비슷해. 누구나 하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지”라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돼 있다”고도 일갈한다. 로비와 불법을 통해 더 많은 선거자금을 모으는 사람만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단 한 번의 선거도 치르지 않은 자신이 음모술수로 최고 선출직인 대통령까지 되는 것이 정치의 실상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정치인도 유권자나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미국인이 신앙처럼 믿어온 민주주의 제도가 실제로 얼마나 취약한지 폭로한다.

정치 드라마의 고전 ‘웨스트 윙’과 이 드라마의 결정적 차이도 여기에 있다. 1999∼2006년 방영된 미 NBC 방송의 웨스트 윙은 대통령, 백악관 참모, 이들의 정적, 로비스트, 유권자 등 모든 사람이 선한 의지를 지녔으며 협상과 토론을 통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치의 본질은 음모술수라고 본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웨스트 윙이 인기를 끌던 시절 백악관의 주인은 ‘힘의 정치’를 주창하며 이라크전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디스토피아의 끝을 보여주는 하우스 오브 카드가 나온 지금 백악관 주인이 다소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치는 버락 오바마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중국이 검열하지 않은 이유

민주주의의 고귀한 이상은 간데없고 돈과 이미지 싸움만 남은 미국 정치.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국가도 희생시키는 탐욕스러운 정치인.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이 때문에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란 지위를 잃었으며 현재 세계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중국에 있다고 말한다.

시즌2에서 부통령이 된 언더우드는 현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중국 사업을 확장시키려는 미 에너지 재벌 레이먼드 터스크와 전쟁을 벌인다. “돈은 10년 후면 무너질 고급 저택이고 권력은 몇백 년 유지되는 석조 건물”이라는 언더우드와 “미 대통령은 유권자 3억 명의 환심을 사야 하지만 나는 주주 몇 명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고 주장하는 터스크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싸움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두 사람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시청자를 모두 만족시켰다. 시즌2의 마지막에 언더우드는 터스크를 감옥에 보내고 그의 지원을 받은 현 대통령마저 스스로 물러나게 만든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은 당연히 부통령인 자신. 하지만 대통령이 된 언더우드는 가장 먼저 중국 주석에게 전화를 건다. 중-일 갈등으로 미국도 진퇴양난에 빠진 터라 중국 측에 일본과의 대치를 끝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언더우드의 승리는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최근 연달아 체면을 구긴 미국과 미국인의 불안 심리를 어느 정도 진정시켜 줬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 새 대통령이 중국에 매달리는 묘사도 잊지 않는다. 중국을 비판하는 외국 영화나 드라마의 반입을 엄격히 불허하는 중국 정부가 이 드라마를 검열하지 않은 이유다.

내년에 등장할 시즌3에서 대통령 언더우드와 미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BBC 원작은 시즌 3에서 끝났지만 제작진은 시청자 반응이나 현실 정치의 향방에 따라 추가 제작도 가능하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이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두 가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권력자의 파워 게임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카드의 집’과 같다는 점. 또 우리 모두가 이 상황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한 장의 카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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