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와서 놀고 먹고 쉬게하라… 직원들은 '창발'로 보답할 것이다

  • 이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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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2.07 03:04

    엔씨소프트 판교 본사를 통해 본 '社屋의 경제학'
    우연한 접촉을 많게 하고, 사무실 'ㅁ'자형으로 만들어 공간 끊김 없이 둥글게 연결
    설계 前 3년간 직원들과 토론, 지하 자전거 주차장 만들고 층마다 폰 부스 4개씩 설치
    녹색 공간은 될수록 많이, 앞뒤엔 공원… 샛강도 흘러 "판교테크노밸리 최고 명당"
    사내에서 모든 생활 가능하게, 사내 병원·어린이집·스파… 구내식당은 5가지 메뉴 준비

    사옥을 어떻게 짓느냐는 기업들에 새로 던져진 숙제다. 사옥은 단지 사무용 공간이 아니다.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투영한 구조물이면서 직원들에게는 일터이자 안식처이며 공장이면서 놀이터다. 까마득한 직사각형 마천루에 빽빽하게 내부 공간을 잘라 놓은 듯한 건물은 이제 과거형이다.

    직원들이 품고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기업들은 사옥 건축에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관심을 쏟아붓고 있다. '캠퍼스'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나, '그린 팩토리'로 통하는 경기 분당구 정자동 네이버 사옥이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세운 엔씨소프트 신사옥(R&D센터). 김택진 대표는“꿈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옥 처마를 떠올리게 하겠다는 의도로 만든 외벽 돌출 구조물이 먼저 첫눈에 들어온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세운 엔씨소프트 신사옥(R&D센터). 김택진 대표는“꿈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옥 처마를 떠올리게 하겠다는 의도로 만든 외벽 돌출 구조물이 먼저 첫눈에 들어온다./엔씨소프트 제공
    지난 8월 경기도 분당구 삼평동 일대 '판교 테크노밸리'에 새로 둥지를 튼 게임업체 엔씨소프트 신사옥도 이런 추세를 반영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넥슨·네오위즈·NHN엔터테인먼트·안랩 등 국내 굴지의 벤처기업들이 대거 본사를 옮겨오면서 테헤란밸리를 뒤잇는 새로운 벤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엔씨소프트 사옥은 외관이 영문 기업 이름 'NC Soft'의 머리글자인 영어 소문자 'n'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으로 지어졌다. 지하 5층, 지상 12층 연면적 8만8924㎡에 달하는데, 기존 서울 삼성동 사옥과 비교하면 전체 공간이 5.2배 커졌고, 최대 수용 인원은 3000명 규모. 전에는 빌딩 2개에 직원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이번에 한자리에 전 직원 2100명이 다 모였다. 땅값과 건축비를 합쳐 1540억원을 썼다. 엔씨소프트는 판교 사옥을 지으면서 소통·참여·생태·복지라는 네 가지 키워드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①소통(Communication)


    소통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최근 사옥 설계에서 가장 강조되는 포인트의 하나이다. 엔씨소프트 사옥의 각 층 사무실은 'ㅁ'자 모양으로 돼 있다. 가운데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사무 공간 양쪽이 마주 보는 구조이지만, 안에 있으면 공간이 끊김 없이 둥글게 연결된다. 옆 부서 동료를 만나기 위해 출입문을 드나들며 출입증을 댈 필요가 없도록 하고, 지나는 동안 우연한 접촉을 늘려보자는 게 목적이다.

    엔씨소프트 사옥은 두 개 동으로 이뤄졌다. 떨어진 다른 동은 12층 도서관이 잇는다. 개발자들이 자료를 찾기 위해 들르는 장서 2만여권 규모 도서관은 자연스레 이곳을 통해 사람들이 옆 동으로 건너가는 통로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건물 층마다는 휴식 공간을 뒀다.

    NHN엔터테인먼트의 판교 사옥 '플레이뮤지엄'은 3~10층까지 연결되는 비상계단을 중앙으로 옮겨 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직원들이 소통을 늘려가게 고안했다. 계단 주변에는 냉장고와 커피자판기, 토스트기 등을 놓아 음료수나 간식을 들면서 비공식적인 만남을 부담 없이 갖도록 권장하고 있다.

    미 실리콘밸리에 신사옥을 추진 중인 페이스북은 더 극단적이다. 전체 건물을 하나의 층에 하나의 방처럼 만든다는 것. 축구장 8개를 합친 넓이라고 한다. 한 지붕 아래 개발자가 수천 명이 모여 회의실과 사무실 구분 없이 소통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또 구글은 앞으로 모든 직원이 2분 30초 안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친 바 있다.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무한 반복 고리' 모양 경사로를 설치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옥과는 무관하지만 야후가 최근 재택근무를 중단시킨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직원들끼리 자주 마주칠수록 협업을 통해 창의성이 높게 발현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트렌드 연구 전문가 김용섭 놀라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직원들이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얼마나 더 많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사옥을 통해 구현된다"고 말했다.

    ②참여(Participation)


    엔씨소프트 사옥 곳곳에는 직원들이 직접 의견을 내 만들어진 공간이 많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족'들을 위해 자전거 주차장을 지하에 따로 만들면서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전에는 자전거 주차장을 외부에 뒀는데, 비나 눈이 오면 불편하고 자전거가 상한다는 불만을 수용한 것이다.

    층마다 공중전화 박스처럼 생긴 폰 부스(phone booth)를 4개씩 집어넣어 조용하고 사적인 통화를 하고 싶을 때는 이 부스를 이용하도록 했다. 역시 직원 의견을 반영했다.

    책상 칸막이 높이를 정할 때는 임직원이 치열하게 토론을 펼친 끝에 책상 위 45cm로 결정했다. 칸막이가 너무 높으면 상사가 직원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보는 데 번거롭고, 너무 낮으면 직원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맞서다가 결국 중간 지점에서 조율된 높이다. 사무실이나 휴게실 외벽은 자세히 보면 화이트보드 역할을 겸한다. 언제든 생각날 때마다 회의실에 가지 않고도 펜을 들고 토의를 하거나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한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판교 이전을 결정하고 본 설계에 들어가기 전 3년 동안 직원들 의견을 받아 토론을 거쳐 설계에 반영했고, 이러다 보니 당초 계획보다 50억원 이상 공사비가 더 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직원 참여형의 흔적은 건물 곳곳에 숨어 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제든 직원들이 의견을 내 공간 배치를 바꿀 길을 열어 놓았다. 사옥 1층 안내 데스크는 입주 초기 출입문 왼쪽에 있던 것이 지금은 중앙으로 옮겨졌다. "지나다니는 데 불편하고 외부 손님을 구석에 처박아 놓는 느낌"이라는 직원들 지적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아무리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게 설계했다 하더라도 그 공간을 만드는 데 조직원이 참여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면서 "직원들이 (건물이 지어지면 그냥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어가야 창조성이 살아 숨 쉴 수 있다"고 말했다.

    ③생태(Arcology)


    실리콘밸리와 마찬가지로 국내 벤처기업들도 건물을 지을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가 생태적 환경이다. 그래서 건축(architecture)과 생태학(ecology)을 합친 '생태건축(arcology)'이라는 단어로 이런 흐름을 설명한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하면서도 친환경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엔씨소프트 사옥은 앞뒤로 공원이 있고, 샛강이 흐른다. 입지라는 관점에서는 판교 테크노밸리 중 최고 명당이란 평가도 있다. 당초 이 자리를 놓고 네이버와 경합을 벌인 끝에 낙찰했다는 후문이다.

    12층에 있는 도서관 한가운데엔 정원이 있다. 책을 읽고 연구를 하다가도 잠시 숲 속에서 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 옥상정원도 이전 사옥보다 2배 이상 넓혔고, 계단이나 테라스 등 틈새마다 꽃을 심었다. 윤진원 엔씨소프트 홍보실장은 "녹색 공간을 많이 확보할수록 직원들 생산력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아마존이 미국 시애틀에 새로 짓는 본사는 둥글고 거대한 온실 3개처럼 생겼다. 외벽은 유리로 감싸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고, 빛이 그대로 투과되며, 건물 안에는 다채로운 식물과 나무를 심어 회사 이름처럼 아마존을 떠올리게 한다는 발상이다. 생태건축을 한 단계 진화시킨 건축물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④복지(Welfare)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내 복지 시설은 민감한 관심사다. 결국 "직원들이 직장에 오는 게 즐겁고 편해야 능률도 오르는 법"(엔씨소프트 이재성 전무)이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야근이나 밤샘 작업이 잦은 게임 개발자가 주를 이루는 인력 구조를 감안, 사내에서 모든 생활이 불편 없이 이뤄지도록 배려했다. 구내식당과 도서관은 물론 찜질방·스파·농구장까지 마련했다. 스크린 골프장도 곧 문을 연다.

    피트니스센터는 이전보다 3배 커졌고, 200명까지 받을 수 있는 어린이집 '웃는 땅콩'은 1층 문 앞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둬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둔 직원들(평균 연령이 35세)이 최대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했다. 어린이집 바로 옆에 수유실과 실외 놀이터도 있다.

    사내 병원이 있어 외과·소아청소년과·신경외과·정형외과·피부과·재활의학과 진료가 가능하며, 구내식당은 5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골라 먹을 수 있도록 선택 범위를 늘렸다. 지하 주차장은 원래 2개 층이었으나, 서울 외곽이라는 지역 특성상 직원들이 자가 차량을 많이 끌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1개 층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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