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서 시진핑까지 … 중국의 길 책에서 답을 찾다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20 / 수정 2013.09.27 09:04

지도자에게 독서는 필수 … 당, 연 2회 간부 필독도서 발표

“독서가 리더십 수준을 결정한다. 독서는 (리더의) 책임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말이다. 중앙 당교 교장(2007~2012년) 시절 그는 교육을 받는 당 핵심 간부들에게 꼭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시 주석은 당교 강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변화가 빠른 현대의 리더십은 시대를 호흡하는 공부, 즉 독서와 불가분의 관계다. 리더십과 업무 처리 수준은 독서에서 결정된다. 독서는 리더나 간부에게 생활이고 책임이며 정신이다.” 중국의 장기 세계·국가 경영전략, 안정적 리더십은 독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 리더들에게 독서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이미 시스템화도 돼 있다. 매년 리더들이 읽어야 할 독서 목록은 국가 경영전략과 업무 효율성을 연구하고 감독하는 당 중앙 국가기관공작위원회(공작위)와 당 산하 중국신문출판연구원에서 맡는다. 두 기관은 지난주 올 하반기 당 중앙 핵심 간부들이 읽어야 할 책 8권을 선정해 발표했다. 문화 등 국가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셉 나이의 『소프트파워』, 중국 최고 제도적 반부패 전문가인 리융중(李永忠) 국가행정학원 교수가 쓴 『부담과 책임-권력의 열쇠』, 빅토르 마이어 쇤버거와 케네스 쿠키어 공저인 『빅데이터 시대』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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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 “리더십, 시대 호흡 공부에서 결정”

 하오전성 중국신문출판연구원장은 “시대 변화를 읽을 수 있고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리더들의 인문적 소양을 제고할 수 있는 책이 우선 선정 대상”이라고 말했다. 추천된 책은 시 주석을 포함한 최고 지도부와 당 중앙의 100개 기관의 국장급 이상 간부가 읽는다. 그러나 도서가 추천되면 지방 성 정부 핵심 간부들도 읽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을 움직이는 리더 대부분이 독서를 생활화하고 있는 셈이다.

 리더를 위한 도서목록 추천은 2009년 4월 시작됐다. 당시 당 선전부가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의 하나로 ‘전 국민 독서활동 강화통지’를 발표하자 당 지도부가 이를 핵심 간부들에게 확대 적용했다. 이후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필독 도서 목록이 발표됐고, 지금까지 111권의 책이 추천됐다. 부문별로 보면 정치 서적이 32권으로 가장 많고 이어 문화 26권, 역사 22권, 경제 19권, 과학기술 12권 등이다. 문화 관련 서적이 2위를 차지한 것은 중국 리더들의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시사로 보인다.

 국가 지도자들의 추천도서도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당 총서기 취임 이후 성 서기와 성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공산당의 투쟁과 승리 과정을 그린 『찬란한 고난(苦難輝煌)』의 일독을 권했다. 진이난(金一南) 국방대 교수 등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항일 투쟁에서 G2(미국과 중국)의 중국을 건설한 공산당의 리더십과 힘을 사실에 입각해 기술한 책이다. 시 주석은 이 책을 읽고 ‘중국의 꿈(中國夢)’이라는 그의 통치 이념을 강화하고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지난 5년간 공작위가 추천한 필독서 111권 중 핵심 간부들이 꼽은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최근 제러미 리프킨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쓴 『제3차 산업혁명』을 읽도록 국무원 간부들에게 강조했다. 중국 경제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리 총리의 경제정책, ‘리코노믹스(Likonomics)’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말 왕치산(王岐山)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겸 기율위 서기도 반부패 좌담회에 참석한 기율위 고위 관리들에게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쓴 『앙시앵 레짐(구체제)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책을 돌렸다. 당의 부패가 극에 달하면 민중혁명이 일어난다는 경고를 책으로 대신한 셈이다. 이후 중국은 현재 ‘문만 열면 반부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치·문화·역사서적 순 … 독서토론 정착


 리더들의 독서는 토론으로 이어진다. 시 주석은 지난 7월 말 영상 40도에 육박한 최악의 폭염 속에서도 당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을 주도했다. 이날 주제는 ‘해양강국’. 관련 서적을 읽은 정치국원들의 견해가 발표됐고 해양전문가 강연이 이어졌다. 시 주석은 “해양 주권을 지키면서 주변국과 공동으로 해양을 개발하는 지혜를 모으자”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측은 지난주 추천도서를 발표하면서 국무원(행정부) 각 부서와 국방과학위 등 중앙부처에서 간부들이 정기적으로 정책 관련 독서를 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고 공개했다.

 중국 리더들의 독서 습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특히 마오쩌둥(毛澤東)은 광범위한 독서로 유명하다. 청소년기에는 『삼국지』와 『수호지』 『서유기』 등 역사소설에 심취했다. 공산정권 초기에는 국가체제 정비를 위해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특히 애독했다. 말년에는 역사와 문학에도 심취해 『자치통감』과 『이십사사(二十四史)』에 통달했고 루쉰(魯迅)전집을 수차례 읽었다. 평소 침대에서 독서를 하다 보니 독서하기 쉽도록 침대를 소파 형식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저우언라이·장쩌민 등도 모두 독서광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는 역사서를 애독했다. 그는 『삼국지』 『옹정황제(雍正皇帝)』 등 역사서를 즐겨 읽었는데 공산정권 초창기 외교전략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무협지와 판타지 서적을 즐겨 읽었다. 특히 그는 홍콩 무협지 작가 진융(金庸)의 팬으로 유명한데 그의 무협소설 대부분을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덩이 역사적인 중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것은 이 같은 환상에 대한 강한 집착이 창조적 리더십으로 연결됐다는 분석도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문학적 소양이 풍부해 시와 사(詞) 등을 좋아했다. 1997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중국의 국가주석이지만 동시에 평범한 시민이다. 취미는 당시(唐詩)와 송사(宋詞), 원곡(元曲)”이라고 밝혔다.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 등 세계적 문호들의 문학작품에 대한 애정도 표시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독서생활은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다만 2004년 러시아 청소년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청소년 시절 러시아의 유명 문호들의 작품에 매료됐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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