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 증발? 대통령기록관이 수상하다 [413]

오주르디 (gn***)

주소복사 조회 19134 13.07.19 08:49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실종됐다. 대통령 기록물을 보존·관리하고 있는 대통령기록관에 당연히 있어야할 중요 기록물이 사라진 것이다. 대화록 열람을 위해 두 번씩이나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던 여야 의원들은 “국가기록원이 그런 자료(대화록)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말 실종된 걸까

‘실종’ 가능성은 세가지다. ▲검색 시스템 오류, 파일 손상, 분류 코드 문제 등 기술적인 이유로 원본을 찾지 못하고 있거나 ▲애당초 대화록이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돼 있지 않았을 수도 있고 ▲보관돼 오다가 누군가에 의해 폐기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과 김정호 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 등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기록물 이관 작업에 참여했던 실무자들은 “대통령기록물을 넘기는 과정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만 빠졌을 가능성은 없다”며 "(대화록)을 못 찾고 있거나 고의로 회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임 전 관장은 노 전 대통령이 만든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의 특성상 파일의 삭제나 폐기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대화록 원본 파일이 손상됐다 해도 모든 대통령기록물은 백업 파일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찾게 돼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비밀기록의 특성상 열람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화록 제목을 코드화해서 보관했기 때문에 찾지 못하는 것이라는 견해에 무게를 두고 있고,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가 애당초 대화록 파일을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지 않고 폐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여 “노 정권이 폐기”, 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여야의 공방이 거세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통령기록물이란 지위를 최초로 공식화한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라며 “참여정부가 삭제·폐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록물이 폐기됐을 경우 국정원 댓글 폐기 등 삭제와 은폐의 전과가 있는 이명박정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거나 폐기됐다면 친노 전체가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이 불리한 기록을 폐기하도록 지시했거나, 퇴임하면서 관련 기록만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 아니냐”며 야당을 비난했다.

새누리당의 주장은 억지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과 대통령기록관 건립을 주도한 이가 노 전 대통령이다. 또 2007년 대화록 사본을 국정원에 남기도록 지시한 사실 등을 감안한다면 참여정부가 대화록을 이관하지 않고 폐기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 직전에 남긴 노 전 대통령의 친필. 기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대화록을 훼손했을 리 없다. 여당의 주장은 억지다>

새누리당의 의혹제기는 정황논리에 맞지 않아

2008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자료유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도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대통령기록관에 건네주지 않은 기록은 없다’라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삭제·폐기하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남아 있는 경우의 수는 크게 두 가지다. 파일 제목을 코드화시킨 까닭에 여야가 선별한 7개 검색어로는 검색되지 않아 찾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고, 이명박 정부 등 제3자에 의해 파일이 폐기처분 됐을 수도 있다.

두 가지 경우가 교차하는 곳에 있는 사람이 누굴까.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보존·관리 책임이 있는 대통령기록관장이 바로 그다. 대화록 논란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 벌써 수년째. 대통령기록관장이 대화록에 관심을 가질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그런데도 대화록을 찾아내지 못한 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찾을 수 없는 게 아니라 찾지 않으려는 것 아닐까. 방대한 자료더미 속에서 원본을 찾아낸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찾지 못한 채 미제사건으로 결론 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기록관장의 ‘열람권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대통령기록관장의 권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장이 사전 승인을 하면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는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기록관리 업무수행상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의 장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에 한하여 기록물 열람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관장을 통하는 게 대통령 기록물을 가장 손쉽게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2007년 4월 제정)의 기본 취지 중 하나가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이 후임자에 의해 함부로 열람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따라서 대통령기록관장은 직전 대통령의 퇴임 시 전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며, 임기 또한 후임 대통령 임기와 동일하게 5년을 보장하도록 돼 있다.

이 취지가 이명박 정부에 의해 훼손되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초대 대통령기록관장으로 임상경 씨를 임명했다. 법에 보장된 임기가 5년이니 2012년 12월까지 관장직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임기보장 원칙’을 깨고 2008년 7월 임 전 관장을 대기발령 시킨다. 노 전 대통령 자료유출과 관련해 고발당했다는 게 이유였다.

MB정부, 전임자 기록물 정치적 이용 막기 위한 법 취지 훼손

2009년 12월 임 전 관장이 직권면직된다. 이때 참여정부 출신 지정기록물 담당과장도 함께 쫓겨났다. 노 전 대통령 기록물을 관리해야 할 참여정부 측 인사들이 모두 축출된 것이다.

비난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관장 자리를 공석으로 뒀다가 2010년 3월 새로운 관장을 임명한다. MB정부에 의해 임명된 김선진 전 관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비서’ 출신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와 대통령실 홍보 1행정관을 거쳐 메시지기획관실 행정관을 역임한 MB의 수족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전임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이다. MB의 지시에 전적으로 충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관장으로 앉혔으니 무엇인들 못했으랴. 왜 자신의 심복을 전임 대통령기록물 ‘열람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힌 걸까.

MB의 ‘비서’가 관장에 임명되자 한국기록관리학회는 성명을 내고 “전임 대통령의 기록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느 정부가 기록을 제대로 남기려 하겠느냐”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관련 학과 10여개 대학 학생들은 임명 규탄 집회와 퍼퍼먼스를 열어 MB정부를 비난했다.

 

대통령기록관장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2010.3)>

 

 

MB는 ‘비서’를 대통령기록관장으로, 박근혜 정부도 그럴 것

MB정부만 수상한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MB가 임명한 김선진 대통령기록관장이 자신의 임기를 2년이나 남긴 채 지난 5월 돌연 사퇴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석달만이다. 왜 물러난 걸까.

현재 대통령기록관장은 공석으로 하종목 기획총괄과장이 직무를 대리하고 있다. 결국 새 관장은 박 대통령 손으로 임명돼야 할 형국이다. MB정부가 그랬듯이 또 자신의 사람이 대통령기록관장 자리에 앉게 될 게 뻔하다. 박 대통령도 사실상 전임자의 기록물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한 셈이다.

정권의 하수인이 대통령기록관장을 맡게 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와 부작용은 매우 크다. NLL 논란처럼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을 멋대로 열람해 정쟁의 도구로 삼을 수 있고, 주요 기록물을 삭제·폐기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대통령기록물의 보존·관리 책임자인 대통령기록관장이 정권에 의해 휘둘리는 입장에 있는 이상 대화록 실종 등 기록물과 관련된 논란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기록관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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