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 히브리판 '수메르 신화'세상이야기2010/08/23 01:01
'구약’은 모세의 언약에서 시작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사이다.
'구약' 39권은 BC 5세기 즉 ‘에스라’ 시대에 수집과 인정이 완료된 것으로 연구된다.
그리고 '구약'은 창조에 대한 모든 기원, 원천을 밝히는 '창세기'부터 시작한다.
또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를 '모세오경'이라 하고 '모세'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창세기'는 불가분 나머지 네 경전과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한다.
70인 역 성경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율법서 : 창세기 ~ 신명기(모세 5경)
역사서 : 여호수아 ~ 에스더
시가서 : 욥기 ~ 아가
선지서 : 이사야 ~ 말라기
하지만 위 구약의 순서는 발생한 시간적 순서는 아니다.
일례로 ‘욥기’의 발생 시점은 선사시대 즉 ‘창세기'에서 그리고 있는 싯점과 같이 보고 있다.
이는 ‘창세기’의 이해를 위해서는 ‘욥기’를 숙독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구약’ 시대의 히브리 역사를 주변 역사와 비교해 보면 창세기에 대한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히브리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선사시대 약 BC 6000 ~ BC 3200(설형문자) 약 BC6000 ~ Bc 3000(상형문자)
* 아담 수메르시대(BC 3000 ~ BC 2335) 신. 원왕조(BC 3100 이전)
아카드왕조(BC 2335 ~ BC 2150) 초기왕조(BC 3100 ~ BC 2686)
고왕국시대(BC 2686 ~ BC 2181)
족장시대((BC 2160 ~ BC1870) 우르3왕조(BC 2112 ~ BC 2004) 제1중간기(BC 2181 ~ BC 2040)
* 아브라함 ~ 요셉 이씬왕조(BC 2017 ~ BC 1794) 중왕국(BC 2040 ~ BC 1782)
* 욥기(?)
이집트 체류기(BC 1870 ~ BC 1440) 고대 바빌로니아(BC 1894 ~ BC1595) 제2중간기(BC 1782 ~ BC 1570)
* 함므라비 법전
광야 유랑기(BC 1440 ~ BC 1400) 카시트왕조(BC 1550 ~ BC 974) 신왕국(BC 1530 ~ BC 1070)
* 모세
* 모세오경
사사시대(BC 1400 ~ BC 1050) " "
* 여호수아 ~ 사사
* 가나안 정복
통일왕국시대(BC 1050 ~ BC 931) 앗시리아(BC 934 ~ BC 609) 제3중간기(BC 1069 ~ BC 525)
* 사무엘 ~ 솔로몬
분열왕국시대(BC 931 ~ 739) " "
-----------------------------------------------(중 략)---------------------------------------------------
디아스포라기(BC 586 ~ BC 538) 신 바빌로니아(BC 625 ~ BC 539) "
* 예루살렘 함락 및 포로생활
회복기(BC 538 ~ BC 445) 페르시아(BC 539 ~ BC 331) "
* 스룸바벨 ~ 말라기
------------------------------( 알렉산더 ) ----------------------------------------------------------------------
여기서 몇 가지 주목할 사항이 있다.
첫째,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는 BC 3000년 이전에 각각 설형(쐐기), 상형 문자를 만들어 유사시대
를 열었다.
반면 셈조어 문자는 BC 18C ~ BC 15C, 원시 가나안 문자는 BC 15C, 고대 히브리 문자는 BC
10C, 아람문자는 BC 8C 정도에 불과하다.
둘째,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의 족장시대(약 250년)에서 이집트 체류기(약 430년)까지 메소포타미
아는 우르3왕조부터 고대 바빌론까지 강력한 제국체제이다. 이집트 역시 최전성기의 왕국이었
다.
이에 비해 BC 2100 경 메소포타미아 '우르'를 떠나 하란과 가나안을 거쳐 이집트로 들어간 아브
라함의 부족은 나라는 커녕 먹고 살기 위해 유리방랑하는 처지이었다.
셋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다신교이었고 아브라함 부족은 유일신을 숭배했다.
그러나 '라반'의 '드라빔'이나 '엘로하이'를 볼 때 다신교 등 이방의 영향이 많았다.
이를 요약하면 아브라함 부족을 비롯한 고대 히브리인들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같은 강력한 세력 사이에서 밀려 유리방랑하는 변방의 약소민족으로 주변 문화에 동화되어 주체성도 부실하였다.
문자도 제대로 못 갖춰 구전에 의지했으며 부족간의 연합이나 국가형태보다 부족장 체제로 경쟁하였다.
이런 정황의 전제 하에 모세의 출애굽( BC 1440)이라는 '대사건'을 염두에 두고 '창세기'를 살펴본다.
'창세기'는 칠십인역의 제목으로 'Genesis'(기원, 원천, 시작)이다. 히브리 제목은 'Bereshith'( 태초에)로 본문의 첫 단어나 구절로 제목을 삼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창세기'는 창조 기원의 책으로 창조 記事, 가정형성, 죄의 기원, 하느님 계시, 히브리족의 발전, 선택된 백성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의 시작을 말하고 있다.
즉, 하느님과 자연,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선명하게 나타낸다.
'창세기'의 초기역사는 저자가 히브리족과 고대 근동지역의 구전, 설화, 필사본 등을 이용한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기록 추정연대(BC 1440 ~ BC 1400)보다 수메르 문명의 르네상스였던 '우르3왕조'(BC 2000 경)는 훨씬 앞선다.
그런데 '우르3왕조' 때 편찬된 수많은 '수메르 신화'가 '창세기'에 많이 차용되고 있음을 볼 때 이 사실이 증명된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 5경'은 저자가 누구냐 하는 의문부터 부딪힌다.
'모세'의 소작으로 본다면 자연스럽게 출애굽부터 광야유랑기(BC 1440 ~ BC 1400) 때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세의 소작으로 보는 근거로 출애굽 당시의 역사 참여자만이 알 수 있는 생생한 기록, 애굽문화에 정통함, BC 1000에 없던 BC 2000의 풍습(장자권, 구두유언 등)을 든다.
무엇보다도 애굽왕자로서 모든 학문적 소양을 갖추게 한 하느님의 섭리도 '모세' 소작을 뒷받침하는 논리 중 하나이다.
이른바 '성령인도설'인데 '모세'를 저자로 보는데 이러한 종교적 의미도 빠질 수 없는 주장이다.
반면 모세가 아닌 다른 사람, 특히 먼 후대인의 소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주로 '문서발달설'에 따라 BC 850에서 BC 5c 에스라 시대까지 편집, 구성된 것으로 본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두 가지 이름 ' Elohim'과 ' Y-ahweh'이 사용된 것을 근거로 두 종류의 '창세기'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아무튼 '창세기'는 모세나 당시 모세 추종자의 기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위에 든 근거나 종교적 확신에 따르는 것보다, 당시 불가능한 '출애굽'의 역사적 대사건을 전제할 때 후대인보다 모세 또는 모세 추종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료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방 문화에 찌든 약소민족이 세계 최강의 이집트제국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불확실한 시공으로 무작정 나가는 대역사를 감행한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불가능한 역사에 도전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제정신일 수 없다.
그것은 전지전능한 신의 절대적인 지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거나 집단최면이 아니면 가능할까?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는 '모세'와 그에 따른 '기적' 그리고 히브리족을 대역사에 동참시키는 '창세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방문화에 찌들고 노예근성에 젖은 거지같고 무식한 약소민족에게 '선택된 백성', 약속된 땅', '신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확신' 아니고선 기적은 일어날 수 없었다.
'모세'나 '모세 추종자'들은 그것을 위해 '창세기'를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당시에 잘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신화 즉, '수메르 신화'를 차용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선조 '데라와 아브라함'이 출발한 '우르'가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였으므로 세월이 지났어도 수메르 신화는 민중에게 아주 익숙한 테마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나아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기거하던 '옛터전'이 아니었든가?
고대 히브리족의 '민족 구원의 전승'을 구현할 희망과 이상향 '가나안'에 대한 열망, 대역사의 당위성 그리고 유일신의 절대적 의지를 구성원에게 확신시키는 수단으로 '창세기'는 창조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창세기'는 이어나온 '모세오경'의 '모세법'(율법)으로 구체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행동강령으로 이어지고 유명한 영화 '십계명' 같은 것에서 간접확인이 된다.
이러한 근거로 두 가지 사례를 든다.
하나는 '모세법'에서 고대 바빌론의 함무라비법전(위 연대표 참조)에 나오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Lex talionis)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동태복수법' 고대 근동의 대표적인 형벌로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상법이다.
그런데 '창세기'가 기술된 당시에 정작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동태복수법'은 '금전적 보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모세'는 강화하였을까?
바로 '출애굽이란 대역사'의 행동강령으로 강력한 법과 카리스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창세기'가 명분으로 머리라면 '동태복수법'은 손발로 행동수칙이다.
지금도 중동 무슬림에서 '피의 보복' 등 자주 세계 매스컴에 등장하여 뿌리를 볼 수 있다.
이 잔혹한 형벌의 파기선언은 바로 '나사렛 예수'가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지구상에서 '동태복수법'의 야만은 기승을 부린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볼 수 있다.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일제의 압제로 희망을 잃고 고통에 찼을 때 '민족사관'이 등장한다.
유물 유적의 충분한 근거없이 신화에 기대 '상고사'를 연구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찾고 나아가 광복과 미래를 기약했다.
물론 일제의 악랄한 지배수단에서 자행된 '식민사관'에 대한 민족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창세기' 배경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제 '수메르 신화 1'(조철수 저)에 나오는 내용과 '창세기'와 연관성을 살펴본다.
1. 천지 창조/ 혼돈(테홀)과 티아맛 여신의 동일 어원
2. 인간창조/ 진흙의 아담의 엔키의 진흙
3. 여자창조/ 아담의 갈비뼈와 엔키의 갈비뼈
4. 낙원/ 에덴동산과 딜문
5. 형제 갈등/ 목자 두무지, 농부 엔킴두와 아벨, 카인
6.. 홍수/ 노아의 홍수와 지우쑤드라의 홍수
7. 탑/ 바벨탑과 지구라트
8. 용어/ 샬롬, Salim. 에덴동산과 gan Eden
9. 명언/ 십계명과 슈루파크의 가르침
10. 안식일/ 안식일 '샤바트'와 정결레 '샤바투'
11 풍습/ 음부에 대고 맹세. 출산도구로서 흙벽돌, 문지방 예. 종과 주인의 관계, 구두 유언 등
12. 기타/ 다수( 사람불평과 멸망, 7주야, 흉년과 가뭄, 안식일, 년, 싸르곤 정설 등등)
이와 같이 '창세기' 초기역사 즉 아브라함 이전의 역사에서 수메르 신화는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즉 '창세기'의 원형은 의심할 나위 없이 '수메르 신화'이다.
그리고 주변 강대국의 다신교와 풍요로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일신의 확신, 구원과 약속된 미래, 선택된 민족이 강조되고 있다.
결론으로 '성령인도설'을 논외로 친다면 '창세기'는 이방문화에 찌들고 노예근성에 젖어 희망을 잃은 약소민족에게 '선택된 백성', 약속된 땅', '신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텍스트이다.
불확실한 시공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대사건을 성공하여 통일 민족과 국가를 이루기 위한 염원으로 잘 알려진 '수메르 신화'를 히브리족에 특정하여 합목적성을 띄고 재 편집한 '히브리판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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