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시대정신 1부 -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이야기(종교)
공지 2009/09/15 22:24   http://blog.hani.co.kr/qkek/23469
출처 : 문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우리의 근원과 역사를 깊이 탐구할수록 그동안 우리는 속아왔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그동안 왜 종교만이 유일하게 검증받지 않았을까?
 
종교는 세상의 쓰레기더미 가장 밑바닥에 있다. 우리에게 통치 기구와 몰락한 교육과 국제금융시스템을 제공한 바로 그들이 우리에게 종교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의 지배자들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 세상을 지배하는데 있다. 우리는 진실하고 신성한 존재로부터 오도되어 사람들이 '신'이라 부르는 우주에 있다.

나는 신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신이 무엇이 아닌지는 안다. 당신이 아직 진실에 준비가 안되어 있어도 진실이 당신을 어디로 인도하더라도 다른 관점으로 생각을 원하거나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하더라도 결국 당신은 신성한 정의에 접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탐구에 노력할수록 진실은 더욱 명백해질 것이며 세상 곳곳의 거짓이 보일 것이다. 진실을 알아야 하며 찾아야 한다. 그러면 진실은 당신에게 자유를 줄 것이다.
 

 
여러분 사실 하나 말해 드릴께요. 거짓말에 관한 얘긴데요. 엄청난 거짓말이 하나 있어요. 역사상 가장 과장되고 거짓된 약속의 최고의 거짓말!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가 계속 주입해 왔던 것을 생각해 봅시다. 저 하늘 위에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하늘에 거주하며 당신의 모든 행동을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투명인간은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열가지의 특별한 목록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열가지 중 하나라도 저지르면 그가 마련한 지옥불과 연기와 화형과 고통과 고뇌로 가득찬 아주 무서운 곳에 당신을 떨어뜨려 고통과 화형과 숨막힘과 비명과 눈물 속에서 영원히 종말의 시간까지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하...)

 
 
그는 당신을 사랑하시며 그는 돈이 필요하십니다. 전지전능하고 완벽하며 현명하십니다만...어째, 돈은 어찌하지 못하십니다. 종교집단은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세금도 내지 않지만 항상 돈이 더 필요합니다. 아주 잼있는 구라죠?
 
Holly Shit!
 
 
1.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이야기) - 종교
 
 

이것은 태양입니다. 기원전 10만년 전의 역사는 태양에 대한 인류의 존경심을 나타내는 무수한 조각과 벽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태양은 매일 아침 대지를 밝게 비추며 떠오르며 인류에게 안정과 따뜻함을 가져다 주고 어둠, 혹한과 밤의 맹수들로부터 인류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태양없이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류는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태양은 인류에게 최고의 숭배 대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는 별들에 관해서도 꽤 정통했습니다. 인류는 별의 관측을 통해서 태양이 오래전부터 반복해 온 규칙적인 활동을 예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식이나 만월처럼 말이죠.
 


인류는 오늘날 우리가 별자리라 부르는 도표로 별들을 분류했습니다. 이것은 '십자 황도대'라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개념도입니다. 1년 주기에 12 주요별자리의 경로를 따라 태양이 이동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년의 12달과 4계절, Solstice(지점)과 Equinox(분점)을 나타냅니다. 도표는 별자리가 사람, 동물 형태로 '의인화' 됐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초기 인류는 태양과 별자리를 단지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관련된 구체적 '신화'로 의인화했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을 불어넣고 유지하는 태양의 특성 때문에 인류는 태양을 '신' 또는 '보이지 않는 창조자'의 대리자로 의인화합니다. '태양신', '세상의 빛', '인류의 구원자'로 말이죠. 그리고 이 열 두 별자리는 태양신의 이동 경로를 내며 각각의 해당하는 시기에 일어나는 자연활동과 관련된 이름을 갖습니다. 예를 들면, 물병자리는 봄에 비를 내려줍니다.

 

이것은 기원전 3천년경 이집트 태양신 '호루스'입니다. 이집트 태양신이며 '호루스'의 일생은 태양의 움직임에 관련된 우화적 신화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보면 이 태양신의 신화에 관해 많은 걸 알 수 있습니다.
 
빛의 아들 '호루스'는 '세트'라는 적이 있었는데 '세트'는 어둠 또는 밤의 '의인화'입니다. 은유적으로 얘기하자면, 매일 아침 '호루스'는 '세트'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지만 밤이 되면 '호루스'는 '세트'에 패해 지하 셰게로 쫓겨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빛 VS 어둠' 또는 '선 VS 악'의 대결 구도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신화적 구도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호루스'에 대해 알아볼까요?
 
기원전 3천 년 12월 25일 출생,
'Isis-Meri' 처녀수태,
'동방의 별'이 출생을 지켜보았고
탄생 후 3명의 왕에 의해 숭배됨.

12살에 신성한 지도자가 됐으며
30살에 'Anup(아누프)'이라는
성직자에게 세례를 받고 성직 생활을 시작함.
12명의 추종자와 함께 방랑하며 병자를 치료하고 물 위를 걷는 등의 기적을 행함.

'진리', '빛', '목자', '신의 양', '주의 아들' 등으로 알려짐.
'타이폰'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죽은 뒤 3일 후 부활함.
 
이러한 '호루스'의 특징들이 원조격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적 구조의 같은 신화를 갖는 많은 다른 신들의 문화양식에 스며 들어간 것 같습니다.
 

 
ATTIS(아티스) - 그리스
'Nana' 처녀수태, 기원전 1200년경 12월 25일 출생, 십자가에 못박힘. 3일 후 부활.
 
 

KRISHNA(크리슈나) - 인디아
기원전 900년경, Devaki 처녀수태, '동방의 별'이 그의 출생을 알림, 제자들과 기적을 행함, 죽은 후 부활.
 


DIONYSUS(디오니소스) - 그리스
기원전 500년 경, 처녀수태, 12월 25일 출생, 가르침을 행하며 방랑함,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함, '왕들의 왕', '신의 독생자', '알파와 오메가' 등으로 불림. 죽은 후 부활.
 
 
 

MITHRA(미트라) - 페르시아
처녀수태, 기원전 1200년 경 12월 25일 출생, 12제자와 기적을 행함. 죽은지 3일후 부활, '빛', '진리' 등으로 불림, 흥미롭게도 미트라의 숭배일은 'SUNDAY(일요일)'
 
중요한 점은 각기 다른 시대의 세계의 수많은 구세주들이 이처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요?
왜 12월 25일 처녀수태였을까요?
왜 죽은지 3일후 부활했을까요?
왜 제자는 열 두명이었을까요?
 
그러면 가장 최근의 '태양신 구세주'와 관련된 신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는 12월 25일 베들레헴에서 Mary(마리아) 처녀수태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동방의 별'로 불리는 동방의 세 명의 왕에 의해 알려졌고 숭배되었습니다. 12세에 가르침을 시작했고 30세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은 후 성직을 시작했습니다. 열 두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병을 고치고 물 위를 걷거나 죽은 자를 살려내는 등 기적을 행했습니다. 또한 '왕들의 왕', '신의 아들', '세상의 빛', '알파와 오메가', '신의 양' 등으로 불렸습니다. 제자 '유다'에게 은 30에 팔아 넘겨지는 배신을 당한 후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며 3일후 무덤에서 부활, 승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출생의 과정은 완전히 천문학적입니다.
 

동쪽의 '시리우스'는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입니다. 12월24일 오리온 자리의 3개의 밝은 별과 일직선을 이룹니다. 오리온 자리의 3개의 별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세 명의 왕'이라 불립니다. 12월 25일이 되면 '세 명의 왕'과 가장 밝은 '시리우스'는 모두 태양이 뜨는 위치를 향합니다. '세 명의 왕'은 일출(태양의 탄생)을 가르키기 위해 동쪽의 시리우스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처녀 Mary'는 처녀자리(VIRGO)를 뜻합니다. 'VIRGO THE VIRGIN'이라고도 하는데, VIRGO는 라틴어로 '처녀'라는 뜻입니다.
 


 'HOUSE OF BREAD(빵집?)'와 '밀'의 상징은 추수의 계절인 8월과 9월을 뜻합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HOUSE OF BREAD'입니다. '베들레헴'은 지구상의 특정 장소가 아닌 하늘의 별자리 'HOUSE OF BREAD'입니다.
 


12월 25일경 혹은 '동지'에 일어나는 아주 흥미로운 자연현상이 있습니다. 하지에서 동지로 가면서 낮은 점점 짧아지며 추워집니다. 북반구에서 관측하면 태양은 남쪽으로 이동하며 점점 작아지고 빛은 약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지에 가까워짐에 따라 짧아지는 낮과 시들어가는 작물은 인류에게는 죽음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태양의 죽음'이었습니다.

태양은 여섯달 동안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12월 22일이 되면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하므로 12월 22일이 되면 태양은 가장 작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흥미로운 현상은 이 때부터입니다. 이 때부터 사흘동안(22,23,24일), 태양은 남쪽으로 이동을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정지된 사흘동안 태양은 '남쪽 십자 별자리' (SOUTHEN CROSS 또는 CRUX)에 머무릅니다.
 

 
이후, 12월 25일이 되면 낮시간의 증가, 온기, 봄을 예기하며 이번에는 북쪽으로 1도 이동합니다.
 
정리하면, 태양은 십자가에서 죽고, 사흘동안 죽은 상태로 머무르다 부활하여 승천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와 수많은 다른 태양신들이 '십자가에 못박힘', '3일간의 죽음', '부활'이라는 동일한 컨셉을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태양이 다시 방향을 북반구로 바꾸어 만물소생의 계절인 봄으로 가는 변환기의 현상. 다시 말해서, '구원'입니다. 하지만, 춘분 혹은 '부활절'이 오기 전까지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춘분이 지나서야 낮이 밤보다 길어져 어둠의 악마를 물리치고 봄이 올수 있는 조건을 다시 부흥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둘러싼 천문학적 상징들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도 12제자에 관한 것일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천궁도 상의 12별자리입니다. 예수는 가운데의 태양이며 12제자들과 함께 움직입니다. 실제로 숫자 '12'는 성경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십자 천궁도를 보면, 가운데가 상징적인 태양의 표식입니다. 이 표식은 단순히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미술적 표현이거나 도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이교도들의 정신적인 상징인데 약식표기는 이런 모양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상징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교도들의 '변형된 천궁도'입니다. 이 사실은 초기 예수 미술에 왜 항상 십자가가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예수는 바로 '태양'입니다. '신의 태양', '세상의 빛', '재림하는 구세주', 예수는 매일 아침 부활하는 어둠의 활동에 대항하여 싸우는 신성이며, 천국의 구름 위에 '가시 왕관', 즉 '햇살'을 머리에 두르고 나타나는 태양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점성, 천문학적 우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AGE(시대)'입니다. 성서에는 'AGE(시대)'에 대한 언급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해를 위해 '춘분점 세차'라는 자연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의 이집트인은 춘분의 일출은 대략 2150년을 주기로 천궁도 상의 일어나는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구가 자전시 유지하는 약간의 기울기 때문입니다. 이 때 별자리는 1년의 정상적인 주기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이동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세차라고 합니다. 세차가 천궁도의 12별자리를 모두 통과하는데 대략 25,765년이 걸리며 이 주기를 'Great Year'라고도 부릅니다. 고대인들은 이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12개의 별자리를 통과하는 시간은 25,765/12=2150년이 나오는데 고대사회는 이 주기(2150년)를 'AGE(시대)'라고 불렀습니다.

 
BC 4300년 ~ BC 2150년은 '토러스(Taurus)' AGE, (황소 시대)
BC 2150년 ~ AD 1년은 '에리스(Aries)' AGE, (양 시대)
AD 1년 ~ AD 2150년은 '파이시스(Pisce)' AGE,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AGE입니다.
 
대략 AD 2150년에 새로운 '아쿠아리스(Aquaris)' AGE가 시작됩니다. 성경은 3개 AGE 시대의 우화적인 역사와 동시에 4번째 AGE의 도래에 대한 암시의 기록입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모세가 십계명과 함께 '시내 산'으로 내려왔을 때 그의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을 보고 모세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모세는 십계명 석판을 부숴버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사하도록 서로 죽이게 했습니다. 대부분 성서학자는 이 유대인들의 우상숭배가 모세를 분노케 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유대인들이 숭배했던 황금 송아지는 천궁도의 '토러스 AGE'의 '황소'이고 모세는 '에리스(Aries) AGE'의 '양'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아직도 양의 뿔로 나팔을 부는 이유입니다. 모세는 새 AGE인 '에리스(Aries)' AGE, '양' AGE를 나타내며
새로운 AGE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구 AGE를 버려야 했습니다. '미트라' 따위의 다른 신들도 이와 유사한 신화를 갖습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신 '미트라'도 같은 상징으로 황소를 죽였습니다.
 


예수도 다음 AGE인 '파이시스(Pisce)' AGE, '두마리의 물고기' AGE로 안내하는 상징이었습니다. 물고기 형상은 신약성서에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가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의 백성을 먹이니 - 마태복음 14:17

예수가 갈레리와 함께 도보 성직을 시작하는데 '두명의 어부'가 친구가 되어 그를 따릅니다. 자동차 뒤에 부착된 물고기 문양을 우리는 자주 보았습니다.
 
 

이것은 '파이시스(Pisce)' AGE의 태양의 제국을 나타내는 이교도들의 천문학적 상징입니다. 또한, 추정되는 예수의 생일은 본래 '파이시스(Pisce) AGE의 시작일입니다.
 
누가복음 22:10 - 예수의 제자들이 마지막 유월절 잔치는 어디서 열립니까? 라고 묻기를 "보라 너희가 저 도시에 들어가면 물병을 든 한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니 그를 따라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들어가거라." 라고 예수는 대답합니다.

이 문장은 성경의 모든 천문학적인 비유가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물병을 든 한 남자'는 '아쿠아리스(Aquaris)', '물병자리'입니다. '아쿠아리스(Aquaris)'는 항상 물병의 물을 쏟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쿠아리스(Aquaris)는 파이시스(Pisce) 다음의 AGE를 나타내는데, 태양(신의 태양)은 '파이시스(Pisce)(예수)' AGE를 지나 '아쿠아리스(Aquaris)' AGE로 진입합니다. 예수는 '파이시스(Pisce)' AGE 후에 '아쿠아리스(Aquaris)' AGE가 도래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끝과 종말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마태복음 28:20을 근거로 종말을 묘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20 - 예수 왈 "나는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느니라"
 
그러나 '킹 제임스' 판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은 수많은 오역 중의 하나입니다. 실제 쓰인 단어는 'AEON(영겁, 무궁한 시간)' 즉, 'AGE' 입니다. "나는 AGE(시대)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느니라"가 정확한 해석이며 태양이 '아쿠아리스(Aquaris) AGE에 진입하면서 예수의 '파이시스(Pisce) AGE가 끝나는 것과 상통합니다. 성경의 '시간의 끝', '종말'의 발상은 천문학과 관련된 우화의 완전한 오역입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줍시다.
 

더욱이 문학과 천문학의 혼성물인 '예수'라는 캐릭터는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의 명백한 표절물입니다. 예를들어, 이집트 룩소르사원의 3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에는 기적의 개념, 출생 그리고 '호루스'에 대한 숭배사상이 나타나 있는데,
 
[기독교 15세기 전]
이 벽화는 '쏘'가 처녀 '아이시스'에게 곧 '호루스'를 잉태할 것이라 알리는 모습과 신성한 유령 '네프'가 '아이시스'를 임신시키는 장면, 그리고 처녀수태와 숭배의 개념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은 예수 기적의 개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사실상 이집트 종교와 기독교의 유사성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표절은 계속됩니다.
 
'노아'와 '노아의 방주'는 전설을 그대로 표절한 것입니다. 대홍수의 개념은 고대의 세상에서 일반적이었으며 다른 시대, 시기에도 200개의 인용된 대홍수의 개념이 있습니다.
 
기독교 이전 기원전 2600년에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신의 대홍수와 방주로 피한 동물들, 심지어 되돌아와 놓아준, 비둘기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데 많은 다른 유사성들과 함께 성경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모세에 관한 서사도 표절된 것입니다.
모세는 출생시 죽임을 피해 바구니에 담겨 강으로 흘려 보내졌는데 그 후 한 왕족의 딸에게 구출되어 왕자로 자랍니다. 이 모세에 관한 서사는 기원전 2250년경, '아카드의 사르곤' 신화를 그대로 도용한 것입니다. '사르곤'은 출생직후 죽임을 피해 갈대 바구니에 담겨 강으로 흘려 보내집니다. 그 후 '아키'라는 왕의 처에 의해 구출된 후 양육됩니다.
 
게다가, 모세는 '모세의 법' '십계명'의 제정자로 알려져 있는데 '산 위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제정되는 법전'의 개념은 아주 오래된 모티브입니다. 모세는 단지 신화 속 역사의 수많은 법제정자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인디아에는 위대한 법 제정가인 '마누'가 있고 크레타에는 '미노'가 '딕타' 산에 내려와서  '제우스'로부터 '신성한 법전'을 전수받는다는 설화가 있고 이집트에는 '미시'가 '신의 법전이 새겨진 석판'을 지녔다고 합니다.
 
마누 -> 미노 -> 미시 -> 모세
 
십계명은 이집트 'Book of the Dead(사자의 서)' Spell 125를 노골적으로 인용한 것인데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 '너희는 도둑질 하지 말지어다'
'나는 살인을 하지 않았다' ->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어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 '너희는 거짓말하지 말지어다'

로 변형되어 인용되는데 나머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이집트 종교는 유대 - 기독교 신학의 주요한 근본기초와 비슷합니다. 세례, 사후세계, 최후의 심판, 처녀수태, 죽음과 부활, 십자가에 못박힘, 방주, 할례, 구세주, 영성체, 대홍수, 부활절, 성탄절, 유월절, 등등...
 

이 특징들은 기독교와 유대교 훨씬 이전의 이집트 종교의 관념의 특성들입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학자와 옹호론자들 중 하나인 '유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처녀수태로 탄생한 지도자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부활, 승천하셨다'

'주피터의 아들들과 관련된 신화와 아무런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유스티누스의 또다른 기록에는 예수의 처녀수태 탄생 설화와 그리스신화 페르세우스의 그것과 같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렇게, '유스티누스'와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이교도의 종교와 얼마나 유사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스티누스'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이 '악마의 소행'이라는 것입니다. 악마가 예수를 미리 예견했고 이런 유사성들을 이교도들의 세계에 미리 만들어났다는 것입니다.
 
"근본주의 기독교, 매혹적입니다"
"기독교인들은 12,000년 전에 세상이 창조됐다고 믿습니다"
"제가 실제로 기독교인에게 질문했습니다"
"좋아요, 그럼 공룡화석은 어떻게 설명할거죠?"
그가 말하기를 "공룡화석이요?"
"신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려고 만들어 놓으신 겁니다"
"신이 내 믿음을 시험하려고 당신을 여기다 놓은것 같다. 이 양반아!"

 

성경은 기독교 이전 대부분의 종교적 신화와 마찬가지로 단지 천문, 신학적, 학문적 혼성물입니다. 한 인물의 특성이 다른 새로운 인물의 특성을 전이되는 현상은 성경에서도 발견되어 집니다. 구약성경에 '요셉'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은 신약성경의 '예수'의 원형입니다.
 
'요셉'의 탄생도 기적적이었으며, '예수'의 탄생도 기적적이었습니다.
'요셉'은 12명의 형제였고, '예수'에게는 12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20조각의 은에 팔렸고, '예수'는 30조각의 은에 팔렸습니다.
형제 '유다'가 '요셉'을 팔 것을 제안했고, 제자 '유다'가 '예수'를 팔것을 제안했습니다.
'요셉'은 30살에 일을 시작했고, '예수'도 30살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유사성은 계속됩니다...

 

더욱이, 12명의 제자와 방랑을 하며 병자들을 치료하고 마리아라는 어머니를 둔 예수라는 인물 혹은 이와 비슷한 인물의 기록이 성경 이외의 곳에서 얼마나 발견되었을까요?

예수와 비슷한 시기에 지중해 혹은 그 주위에 수많은 역사가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역사가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관해 기록했을까요?
 
하나의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이 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역사상의 예수의 존재를 논할때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4명의 역사학자가 있습니다. '플리니', '수에토니우스', '타키투스'가 첫번째 세명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기껏 '크리스터스' 혹은 '크라이스트'라는 단어에 관련된 몇 문장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크리스터스', '크라이스트'는 이름이 아닌 '부음을 받은 자'라는 호칭입니다. 네번째 '요세푸스'의 근거는 수백 년동안 허위로 판명됐지만 슬프게도 여전히 사실로 인용됩니다.
 
예수의 부활과 천국의 승천과 수많은 기적의 행함이 많은 사람에게 목격되지 않았기에 역사에 남지 않은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많은 증거들이 고찰될 것이고 따라서 예수라고 알려진 인물은 존재치도 않았다는 확률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태양숭배 신화의 패러디이다. 그들은 태양의 자리에 '크라이스트'라는 사람을 놓았고 본래 태양에 행해졌던 숭배를 그에게 행했다."
- Thomas Paine 1737-1809
 
"불쾌감을 주려하는게 아닙니다. 사실에 근거하려는 겁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정확하길 원합니다. 기독교는 결코 사실에 근거한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기독교는 로마신화, 그 이상의 것도 아니며, 또한, 정치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는 그노시스 기독교 분파의 태양신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이교도의 신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신화 속의 인물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라는 인물을 역사화시켜 사회를 조종하고자 모색되어진 정치적인 시스템입니다.
 
AD. 325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이 의회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동기화된 기독교의 교리가 제정됩니다. 
 


이렇게 기독교의 '학살'과 '정신적 사기'의 기나긴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음 1600년 동안 로마 교황청은 '십자군 성전'과 '종교재판' 따위의 기독교 계몽사건으로 그들에겐 너무도 즐거운 '암흑의 시대(476~1000)'로 인도하며 전 유럽에 걸쳐 지배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기독교와 다른 모든 유신론적 신앙은 시대(AGE)의 사기입니다. 종교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자연계로부터 분리시키는데 사용되고 권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굴종을 지속시킵니다. 종교는 '신'이 모든 것을 조종한다는 미명 아래 인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감소시킴으로써 '신의 계시'라는 핑계로 참혹한 범죄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을 알면서도 종교를 이용하여 사회를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지금껏 고안된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다른 신화들이 그 안에서 번성할 수 있는 정신적인 토양입니다.
 
"많은 사람이 신화를 믿지만 신화는 거짓입니다. 깊은 종교적 판단으로는 신화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을 결집시킵니다. 신화는 진실과의 관계에 초점이 있는게 아닌 신화의 기능에 맞춰져 있습니다. 사회나 국가에 의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신화는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신화의 끔찍한 사실성에 의문을 제기해도 논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념을 가진 종교인들은 그들과 논쟁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은 단지 그들을 무시하거나 신성모독으로 비난합니다."
 
* 시대정신 전편
1부 -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이야기(종교)
2부 - 전 세계를 무대로(조작된 사건)
3부 - 커튼 뒤의 사람들(국제금융재벌가) (☆)
 
* 시대정신 후편
1부 현대판 노예제도  (☆)
2부 경제적 암살자와 기업가 정치 (☆)
3부 통화기반체제 vs 자원기반경제
4부 무상과 공생, 그리고 의식의 혁명
 
* 부록
글로벌마켓 제7부 금융전쟁 - 거대자본의 공격 (2004.12.14 MBC)
 
* 외세의 간섭에 시달리는 한국근대사
친일파가 김구를 죽인 이유
백범 암살범 안두희는 미군 정보요원
미군, 한국군의 '좌익 집단처형' 묵인
대한민국의 독립과 통일을 열망한 지도자 - 김구
 

예수의 애인/부인/수제자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왜 창녀가 되었나 ? ㅋㅋ
공지 2012/11/14 12:13   http://blog.hani.co.kr/qkek/42988


개독교의 허구성/사기성은 크게 2가지 관점이 있다.

즉, 예수 이야기는 실제 존재하지도 않았던 예수란 인물을 ,서양의 태양신 신화를 다 짜집기 해서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관점과, 예수란 사람이 있긴 있었으나, 그는 신도 아니고 다만, 유대교 종교개혁가였는데, 그 제자들이 그를  태양신 신화에 짜집기 해서 신으로 만들고, 예수를  신으로 믿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어떤 관점이든 간에, 개독교는 인류최대 사기질이 되는 것이다~ ㅋㅋ
 
참고 : 예수에게 부인과 애들이 있었다~ by 4세기 문서 발견
http://blog.hani.co.kr/qkek/42346

다음의 글은, 2번째 관점. 즉 예수가 실존은 했으나, 그냥 유대교 종교 개혁가 였는데, 그 남자 제자들이 그를 신으로 만든 새로운 종교를 서양 태양신 신화에 짜집기 해서 만든 것에 기준해서 쓴 것임.


아래 그림을 한번 보라~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 그림(벽화)입니다.

최후의만찬1.bmp












가운데가 예수 이고, 왼쪽의 긴머리의 여자 처럼 보이는 사람이 보통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로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이 여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진짜 여자이고, 게다가 창녀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이고, 그녀가 예수의 수제자이자 예수의 애인이자 예수의 부인이였고, 예수의 애까지 낳은 여자라면 ?

위 부분을 확대해서 보자

오늘1.png
























자 예수 왼쪽에 있는 머리 길고, 얼굴 윤곽이 부드러운 사람이 남자로 보이는가 ? 여자로 보이는가 ?
이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고 바로 예수의 애인이자 부인이자 수제자이자, 예수의 애를 낳은 , 그러나 창녀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 이다.

다빈치는 이  개독교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면 로마 교황청의 카톨릭에게서 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 비밀을 암호처럼 표현했을 뿐이었따./ 책, '다빈치 코드' or 영화 '다빈치 코드 ' 참고

즉, 위 1의 제자는, 바로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 이다. / 참고로, 이 여자 그림 부분을 떼어서 예수 오른쪽에 붙이면, 딱 남녀의 다정스러운 포옹의 그림이 된다~ ==> 책-영화 '다빈치 코드' 참조

그런데 왜 ?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로 알려져 있꼬, 그녀의 존재를 발설하는 사람은 죄다 로마 교황 카톨릭에게 죽음을 당했을까 ?  / 참고로, 4대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란 문구-구절은 없다. 그냥 그렇게 인식되고 알려지고, 과거 교황들이 주장을 했을 뿐이었다.

이유.

1. 개독교 복음서는 4개만 있는 게 아니라, 1950년 전후에 발견된 '도마복음', '필립복음','마리아복음', '유다복음' 처럼 훨씬 더 많이 있었다.

2. 초기 개독교 지배층은, 4개만 공식 복음서로 정하고, 나머지는 죄다 불태어 없애 버렸고, 그걸 믿거나 전파하는 사람들은 죄다 죽여버렸다.

3. 그 복음서 들은,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았고, 단지 종교지도자/개혁자로 보았고, 예수를 인간으로 보았고, 남녀의 사랑/SEX와 여자를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4. 그 불태움과 학살에, 살아 남은 복음서들이 1950년을 전후해서 이집트 사막등지에서 발견이 된 것이다.

5. 그 복음서들에게는 4대 복음서와는 달리,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내용이 꽤 많이 적혀있었다.

6. 그 복음서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수제자였고, 예수의 애인이었고, 예수의 아내였다.

7. 그러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과거에 권력은 남자만 가지고 있었다. 여자는 그냥 애 낳는 애완견일 뿐이었다.
즉, 여자가 예수의 수제자인 것은, 기존 남자 제자들이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따. 특히 베드로에게는~

8. 예수는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당연히 평등을 주장을 하니, 약자인 여자들이 많이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9. 그러나 남성 위주의 권력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여자가 어딜 감히 예수의 수제자가 될 수 있는가 ? 이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10. 베드로는 바위란 뜻이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이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의 막달라도 탑이란 뜻이다. 즉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 자질을 봐서 이름을 달리 붙여주었는데, 여자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탑이란 아주 중요하고 중심이 있는 위치였단 말이다.

11. 또한, 예수는 신이 되어야 했는데, 신이 될 예수가 보통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애를 낳고 하면, 그 신성이 약해지고 없어진다. 그래서 예수의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는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남성 종교-정치 권력자들에게서 말이다.

12. 또한 개독교 이전의 대부분의 종교(인도의 종교는 지금도 그렇다)는 남녀의 사랑/SEX/쾌락을 좋은 것으로 보았다. 즉 남녀간의 사랑의 그 즐거움/쾌락은 천국으로 가는 열쇠였다.
즉, 남자들은 여자를 통해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3. 또한 과거 그리스-로마에서는 다신교를 믿었는데, 남자 신도 있고 여자 신도 있었다. 즉, 여자 도 남자에 버금가는 신적인 존재였으나, 개독교는 오직 남자인 예수를 통해서만 천국의 세계가 열린다고 본다. 즉, 개독교는 남자의 종교이고, 여자는 하찮고 더러운 sex만 하는 존재가 된다.

14. 실제로 여자도 그렇지만, 특히 남자는 사랑/SEX의 그 즐거움/쾌락을 뭐와 비교할 수 있을까 ?  남자들은 이를 천국의 경험으로 본 것이었따.  이 천국의 문은 남녀의 사랑/SEX으로, 결국 여자를 통해서만 맛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여자는 천국의 매개체이자 중요한 도구가 되고, 그만큼 여자의 지위는 남자와 대등해지게 되는 것이다.

15. 그러나 개독교는 천국의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남자인 예수를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없어지고, 여자는 하챦은 존재가 되고, SEX는 더러운 것이 된다.

즉,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여자에게서 남자인 예수로 옮겨간 것이다. 이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가지는 자가 세상의 권력을 가지는 것이다.

16. 즉, 이러한 사정으로, 예수의 수제자이자 애인이자 아내였던, 고귀한 여자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천한 창녀로 되어갔다. 물론 이는 로마 교황청에서 의도/조작한 것이었다.

17. 개독교는 원조인 유대교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이다. 실제 개독교는 예수를 믿는 새로운 종교다. 예수를 믿어야만 원죄가 없어지고 천당에 갈 수 있다. 창녀로 비하된 여자 막달라 마리아도 남자인 예수를 믿음으로써 창녀에서 성스러운 여자가 될 수 있는 종교적 이론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 예수의 수제자였던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된 이유 중의 하나다.

또한 남자인 예수는 성스러워지고, 여자는 하챤은 존재로 비하된다~

18. 실제로, 남자인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는, 남녀의 사랑/SEX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다~
SEX를 금기시 하지도 않았고, SEX의 즐거움/쾌락을 신이 준 선물로 생각했다.
당연히 예수를 믿지 않으니, 그를 통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사랑/SEX를 통해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도 유대교의 깔린 생각이다.

19. 그래서 그런지, 포르노의 원조이자 천국인 미국을 한번 생각해보라~
왜 미국은 그렇게 포르노/SEX에 대해서 관대할까 ?

힌트는 이거다.

미국의 숨은 지배자들은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미국 부/권력의 50%는 가지고 있다.
미국 영화 산업인, 헐리우드의 제작사/감독/영화배우의 50%는 유대인들이라고 보면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헤리슨 포드 도, 나탈리 포트만(레옹의 그 여자 주인공)도 ,커트 더글러스 도,  율 브린너 도, 폴 뉴먼 도, 기네스 펠트로(아이언 맨의 여자) 도,  다 유대인들 이다.


p.s.
위 2번째 그림에서,
2와 3은 여자의 상징이다. 바구니/자궁 모양이고, 술잔의 모양이다.  ==> 개독교 성배는 술잔이 아니라, 이 여자를 뜻하는 것이다. / 위 그림 1의 최후의 만찬에서 술잔(성배)이 보이는가 ? 그림에서 술잔은 없다. 그림에서 술잔(성배)는 바로 여자를 뜻하는 것이고, 그 여자가 예수 왼쪽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인 것이다. 다빈치는 이를 알고 있었으나, 이를 발설하면 로마 교황 카톨릭이 죄다 죽여버리므로,이를 그림으로 암호화해서 후세에 남긴 것이었다.

4는 남자의 상징이다. 솟아 있고, 남자 성기를 상징한다. / 참고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바로 남자의 상징인 남자 성기를 상징한다. 서양의 군대에서 이 솟아 있는 것이 남자 군대 서열의 상징이다. 하나면 이등병, 4개면 병장인 그런 류다~

참고로, 이집트 오벨리스크(프랑스 광장에도 있고, 미국 워싱턴에도 있는 이 거대한 하나로된 돌 솟대는)는 이집트 태양신의 성기를 상징한다.

5는 3과 4를 합친 것이다.즉, 남자와 여자의 합침. 가장 이상적인 차원을 상징하는 표시다. 그런데 이 5는 바로, 이스라엘의 국기에 있는 모양이다. 이스라엘의 별이라고도 하는데, 세상에서 별을 이런 모양으로 그리는 나라는 이스라엘 뿐이고, 과거 고대 인도에서도 이런 문양은 보인다.

재밌씁니까 ?
더 쓸게 많지만, 지면의 한계로~ ㅋㅋ

결론은, 개독교는 인류최대 사기질이란 겁니다~ ㅋㅋ



참고서적

시대정신
다빈치 코드
예수는 신화다
예수는 없었다.
화패전쟁
성서의 뿌리
그림자정부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
갈등의 핵, 유태인
기독교 죄악사

사전문명 밝혀지나… 3억년 전 금속톱니바퀴 러시아서 발견

 

2013.01.28 15:18 등록

                      

우리 이번 문명 이전에 현대의 과학기술을 능가하는 사전문명이 있었던 것이 아닐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3억 년 전 제작된 금속 톱니바퀴가 석탄 속에서 발견됐다.  (사진=인터넷 이미지)

 

 

인류의 역사는 과연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일단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300만 년 전에 나타났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가정해도 1억 년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약 3억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금속 톱니바퀴가 발견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금속 물질은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한 드미트리라는 시민이 난방을 위해 석탄을 태우다 그 속에서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땔감으로 사용하려던 지름 17cm의 석탄 속에서 이상한 금속 물체를 발견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겨 프리모르예에 사는 이상 현상 전문가이자 생물학자인 발레리 브리에르 박사에게 가져갔다.

 

브리에르 박사는 동료인 이고르 오쿠네프 상트페테르부르크 핵물리학 연구소 선임연구원과 함께 금속의 연대와 성분을 알아내기 위한 엑스선 회절 분석(-廻折分析, X-ray diffractometry) 등의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금속이 3억 1000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확인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톱니바퀴 형태의 금속은 약 2%의 마그네슘이 첨가된 순도 98%의 알루미늄으로 나타나 연구진을 놀라게 했다. 이는 높은 과학기술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이를 만들 정도의 문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인터넷 이미지

 

 

현대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대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2년 아프리카 가봉공화국 오클로 광산에서 초대형 천연원자로가 발견되기도 했다. 오클로 광산 지역에는 우라늄이 매장돼 있으며, 원자력 원료를 확보하려는 프랑스에 의해 개방돼 우라늄 채굴이 이뤄진 곳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알고 보니 이미 사용된 폐연료였던 것. 당시 프랑스 정부는 과학자를 보내 이 사실을 조사하게 했고, 오클로 광산의 우라늄은 사용 후 폐기된 폐연료, 즉 원자력 폐기물로 20억 년 전에 약 50만 년간 사용된 뒤 오클로 광산에 매립된 우라늄 찌꺼기라고 발표했다.

 

20억 년 전에 50만 년간 사용했다는 프랑스 정부 발표에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이 이를 전면 재조사했지만, 결국 이 사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개최한 원자력학회에서 공개적으로 인정됐다.

 

한편,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해당 금속에 관한 추가 실험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성 기자 valor09@epochtimes.co.kr

 

 

 

과학을 당황케하는 땅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이상한 유물들

 

 

1) 1200 만년 된 캘리포니아 Table mountain 금광에서 사람 두개골과 유물들이 발견됨.

 

1850년대 캘리포니아주 Needles 북서쪽 Table mountain 금광에서는 고대에 멸종되었다는 마스토돈, 맘모스,

아메리카들소, 말, 코뿔소, 낙타 등의 뼈들이 발견되어졌는데,

 모두 신생대 3기인 Pilocene로(1200만년전) 연대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1853년 Oliver W. Stevens는 가장 아래 갱도에서 큰 돌사발(stone bowl)을 발견하였고,

1857년 Paul Hubbs는 사람두개골 파편을, 1862년 Llewellyn Pierce는 stone mortar를,

1863년 Dr. R. Snell은 곡식을 갈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stone disc를 발견하였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1866년 2월 이 광산의 소유주중 한 사람인 Mr. Mattison이

이곳에서 거의 완벽한 사람 두개골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하버드대학의 Dr. L. Wyman에 보내져 조사되었는데 완전한 현대인의 두개골이었고,

두개골내에 뼈, 자갈, 조개 등이 들어있어 발견된 상황에 대한 진실성에 의심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견된 지층이 1200만년 전이라는 것이다.

 

2) 1 억 3500 만년 전 지층서 사람의 뼈가 발견됨.

 

1867년 Iowa City의 Saturday Herald 지는 4월 10일자 기사에서 사람의 유골과

 도구들이 콜로라도주 Gilman의 Rocky Point 광산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하였다.

지하 120m silver 광맥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에는 잘 다듬어진 구리 화살촉이 같이 발견되었는데,

 그 광맥의 지질학적 연대는 무려 1억 3500만년전 이었던 것이다.

 

3) 쥐라기 지층서 사람의 뼈가 발견됨.

1877년 7월.

4명의 광산시굴자들이 네바다주 Eureka로부터 멀지않은 Spring Valley 지역에서 금과 은의 광맥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광맥을 탐사하다가 딱딱한 바위에 묻혀있는

 사람의 다리뼈, 무릎, 정강이뼈, 완벽한 발뼈 등을 발견하였다.

 뼈를 함유하고 있는 암석은 검붉은 색의 규암이었고,

뼈들은 거의 탄화되어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여러 의학자들의 검사결과 매우 현대적인 사람의 뼈로 밝혀졌다.

뼈의 크기는 뒷굼치로부터 무릎까지가 39인치(99cm)로 3.6 m의 신장을 갖는 사람 뼈로 조사됐다.

 그런데 이 뼈가 발견된 지층은 공룡들의 시대라는

쥐라기 지층으로 1억8500만년전 지층이었던 것이다.

 

4) 4 억 2500 만년전 고생대 실루리아기 지층에서 사람의 유골이 발견됨.

1880년에 인쇄된 Scientific American article에는

그해 봄에 St. Louse Republican에서 보고한 특별한 발견을 다시 게재하였다.

 Dr. R. W. Booth는 미조리주 Franklin County에 있는 Dry Branch로부터 3마일 떨어진

 철광산에서 지하 5.4m깊이에서

사람의 두개골, 갈비뼈 일부, 척추, 쇄골 등과 두 개의 화살촉 모양의 부싯돌, 숯조각 등을 발견하였다.

 Booth가 두개골을 만졌을 때 이것들은 조각으로 부서졌고,

다른 뼈들도 조각이 났다.

2주반 후 Booth는 7.2m 깊이에서 같은 유골들을 더 발견하였는데,

 넙적다리뼈, 척추뼈, 숯이 된 나무들이 추가로 발견되어졌다.

그런데 Booth를 놀라게한 것은 발견된 지층이 고생대 실루리아기 초기로 4억 2500만년 지층이었던 것이다.

 지질시대에서 실루리아기는 육상생물들이 출현하는 시대로

원숭이나 포유류는 물론 파충류도 등장하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5) 3000 만년전인 Eocene 지층에서 사람의 어금니가 발견됨.

1926년 11월 J. C. F. Siegfriedt는 몬타나주 Billings로 부터 남서쪽으로 55마일 떨어진

Bear Creek 석탄광산의 3번 수갱에서 사람의 이빨을 발견했는데,

에나멜층은 탄소로, 뿌리부분은 철로 대치되어 있었다.

이 발견은 1926.11.11일자 Carbon County News에서 보도되었고,

여러 치의학자들의 조사결과 사람의 두 번째 아래 어금니로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빨이 발견된 지층이 3000만년전인 Eocene 지층이었던 것이다.

 

6) 2000 만년전 Miocene 지층에서 현대인의 두개골이 발견됨.

1958년 스위스의 자연사박물관의 Dr. Johannes Huerzeler는 이탈리아 Tuscany 석탄광산 지하 180m에서

완전한 현대인의 사람 턱뼈를 발견했는데, 5~7세의 어린이 턱뼈였다.

그러나 발견된 지층은 지질학적 연대로 2000만년이나 된 Miocene 지층이었던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화석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그의 동료 고인류학자들은 감히 동조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초기원인이 출현했다는 400만년보다 무려 5배나 앞선 기간에

현대인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1 억년이 넘는 지층에서 사람의 유골이 발견됨.

1973년 암석수집가인 Lin Ottinger는

 Big India 구리광산에서 불도저로 암석들을 찾고 있었다.

 광산은 유타주 Moab으로부터 남서쪽으로 35마일거리에 위치하였다.

 Ottinger는 노출된 암석을 살피다가 갈색 모래암석속에서 뼈와 이빨들을 발견했다.

일주일후 유타대학의 인류학자인 Dr. J. P. Marwitt와 사진사, 기자들과 함께 도착하여 두 구의 사람뼈들을 발굴했는데,

 관절은 이어져 있어 지층안으로 떨어져 묻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죽어 매장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발견된 지층이 1억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Lower Dakota와 Upper Morrison formation이었다.

 이 발견은 기존의 보수적인 사고와 너무도 틀려 사람들을 매우 혼란하게 하였다.

 Marwitt는 발굴된 뼈들은 초기원인이나 유인원의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현대적인 사람뼈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후 Marwitt는 갑자기 이 연구에 대한 흥미를 잃고,

유타대학을 떠났고 이 발견은 흐지부지 되었다.

 

 

1) 페루에서 발견된 완벽한 못(nail).

스페인 마드리드의 문서보관소에는 1572년에 기록된 편지가 한통 발견되었는데,

 이 편지는 페루에서 발견된 이상한 유물에 대해 스페인 총독으로부터 쓰여진 것이었다.

이상한 유물은 인디언 광산에서 지표면 역암층들의 자갈들을 제거했을 때 발견한 15cm의 완벽한 못이었다.

이 못은 후에 총독에게 기념품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첫번째 문제는 페루 인디안들은 철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못이 발견된 암석의 연대가 75,000~100,000년 이라는 것이다.

(보수적인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인류가 철, 구리, 금, 은 등의 금속을 녹여 이용한 것은

 최대 8,000년전의 중동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음).

 

2) 5 만년전 지층속 나무에서 발견된 금속 도끼에 의한 흔적.

1826년 north Cincinnati의 Ohio river 근처에서 우물을 파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물을 찾지는 못했지만,

지하 28m 지점에서 날카로운 도끼로 패인 흔적을 가진 나무 그루터기가 발견되었다.

흔적은 깊고

 매쓰럽게 패여져 있어 날카로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도끼의 흔적으로 추정되었다.

도끼가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 고안된 철로 만든 쐐기(wedge of iron)

 그루터기 윗부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루터기가 나온 지층은 50,000~75,000년이었다.

 

3) 10 만년전 지층서 발견된 금속 용기.

1851년 6월 Scientific American (Vol 7, P298~299) 지의 이슈는 Mssachusetts Dorchester의 Meeting House Hill 에서 암반 다이나마이트 폭파작업중 출토된 두 부분의 금속용기(metallic vase)에 관한 것이었다. 두 부분을 합쳤을 때 종(bell) 모양의 용기는 높이 11.4 cm, 밑부분이 16.5cm, 윗부분이 6.4cm였고, 두께는 3mm 정도였다. 금속용기는 아연과 은의 합금으로 이루어졌고, 화환으로 된 6송이의 꽃이 새겨져 있었는데, 은으로 세공되었으며, 금속에 부조, 조각, 세공한 방법 등은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용기가 발견된 지하 4.5m 깊이의 역암층의 연대가 10만년 이었다는 것이다.

 

4) 지하 30 m 깊이에서 발굴된 이상한 금속 메달.

 

1870년 8월 Illinois주 Peoria 20mile 북쪽의 Lawn Ridge에서 세사람이 우물(artesian)을 파고 있었다.

30m 이상 깊이쯤 팠을 때 펌프는 작은 금속 메달(medallion)을 땅위로 올려놓았다.

작업자중 한사람인 Jacob W. Moffit가 최초로 이 메달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Alexander Winchell 교수에게 보내졌다(후에 Sparks From a Geologist,s Hammer라는 책에서 보고함).

또 한명의 목격자인 W. H. Wilmot는 메달이 발견된 지층위치에 대해서

 1871년 12월 4일 기록에서 상세하게 적어놓았는데,

지표로부터 흙(soil) 0.9m, 황색점토 5.1m, 청색점토 13.2m, 검은 식물잔해 1.2m,

단단한 자주빛 점토 5.4m, 연녹색점토 2.4m, 부패된 점토 5.4m, palesol (ancient soils) 0.6m,

메달, 황색점토 0.3m, 모래와 물섞인 진흙이 3.3m 였다.

이 이상한 coin-medallion은 확인되지 않은 구리합금으로 만들어졌는데,

두께와 원형이 매우 정교했으며, 가장자리는 매우 잘 잘려져 있었다.

연구자인 William E. Dubois는 이 메달은 기계(rolling mill)로 제작되었음을 확신하였다.

메달의 양쪽면에는 그림과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금속으로 인쇄되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산(acid)을 이용한 부식방법 등과 같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통해 그림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쪽면에는 까운과 두건을 두른 여인이 마치 축도를 하는 듯이 왼손을 들고 있었으며,

오른 손은 왕관을 쓴 작은 아이를 잡고 있었다.

다른 면의 중앙에는 웅크리고 있는 동물이 있었는데,

길고 뾰족한 귀, 큰 눈과 입, 집게같은 팔, 긴 꼬리를 가졌고, 왼쪽 아래로는 말과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양면 모두 그림둘레에는 형상이 확실하지 않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일정한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알파벳의 형태와 비슷했다.

 1876년에 이 메달은 Winchell 교수에 의해 버팔로에 있는 미국지질학협회의 보내져서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시원한 설명은 없었다.

보수적인 역사학자인 J. R. Lesley 교수는 블란서나 스페인의 탐험가가 지나가다가 구멍으로

 메달을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하는 농담과 같은 희극적인 설명을 하였다.

Winchell은 여러 가지 정황을 검토하여 실제로 메달이 그 깊이에 지층에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충적층의 형성률과 탄소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으로

이 지역 30m 깊이의 지층은 10만년에서 15만년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에 고대에 잃어버린 문명이 있었다는 것인가?

구리와 금속을 가공하고, 까운을 입고, 왕관을 쓰며, 동물들을 길들이며,

 산을 사용하고, 기계를 만들어 메달을 찍어내는 문명이 10만년전에 존재했다는 것인가?

 

5) 6 천만년전 갈탄 속에서 나온 쇠로 된 입방체.

 

1885년 가을 오스트리아 북부 Bocklabruck근처 Schondorf에 위치한 철제련소에서 작업자인 Riedl은

Schwannstadt 근처 Wolfsegg에 있는 광산으로부터 가져온 갈탄 덩어리를 깨뜨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이상한 입방체(cube)가 발견됐다.

1886년 광산 엔지니어인 Dr. Adolf Gurlt는 독일 Bonn에 있는 Natural History Society에 그 물체에 대해 보고했는데,

얇은 녹으로 덮여있는 그 물체는 철로 만들어졌고, 6.7×6.7×4.7cm 크기이며, 무게 784.7g, 비중 7.75 이었다.

네 면은 거칠게 평평했으며, 나머지 두 면(서로 반대)은 볼록하였다.

분명한 깊은 홈이 중간 높이에서 물체 둘레에 새겨져 있었다.

 이 물체에 대한 초기 연구는 Nature (London; November 11, 1886, p36)지와

 L,Astronomie (Paris; 1886, p463)지에서 보고되었다.

 진품에 대한 석고형(plaster cast)이 만들어져서 오스트리아 Linz에 있는 Oberosterreichisehes Landesmuseum에

 전시되어 있고, 진품은 Vocklabruck에 있는 Heimathaus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66~7년에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의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세밀하게 분석됐는데,

 철로된 물체안에 니켈, 크롬, 코발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사실로 운석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또한 황(sulfur)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간혹 기하학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연적인 황철광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Dr. Kurat과 Dr. R. Gill은 이 물체는 주물로 부어만든 철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1973년 Hubert Mattlianer는 또 한번의 세밀한 조사후

이 물체는 사람이 조각한 밀납이나 점토 틀에 쇳물을 부어 만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물체가 나온 석탄을 함유하고 있는 지층이 신생대 3기인 6천만년전 지층이라는 것이었다.

 

6) 3 억년전 석탄 속에서 나온 금사슬.

 

1891년 6월 9일. Illinois Morrisonville에 사는 S. W. Culp 부인은 부엌난로에 석탄을 집어넣고 있었다.

큰 덩어리가 둘로 부서지면서 그 속에서 금으로된 사슬(gold chain)이 발견되었다.

 사슬은 25 cm정도 길이로, 8 carat gold로 만들어졌고, 12.4 g 정도로 고풍스러우며 기묘한 모양이었다.

 6월 11일자 The Morrisonville Times 지는

이 금사슬이 우연히 석탄속에 떨어져 발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자가 확신한다고 보도하였다.

석탄의 찌꺼기들이 아직도 금사슬에 붙어 있었고, 금사슬을 떼어낸 석탄에는 사슬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금사슬을 함유한 석탄이 속해있는 지층은 3억년전 이상의 펜실바니아기 지층이었다.

 

7) 1 억 5000 만년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The American Anthropologist (Vol.9, 1896, p66)에는 Ohio river의 West Verginia side에 있는

Parkersburg 북쪽 4마일 지점의 암석에서 완전한 사람의 발자국 발견을 보고하고 있다.

발자국은 길이가 36.8cm였는데, 암석의 연대는 1억5000만년이었다.

 

8) 텍사스 Glen Rose근처 Paluxy River의 백악기 지층에서의 사람과 공룡발자국.

 

파룩시강은 텍사스주에서 두 번째로 상류와 하류와의 수면 고도차가 큰 강으로(1마일당 5.18 m의 수면이 낮아짐),

 큰 홍수가 난 후에는 강주변의 침식이 커서 많은 지역이 엄청난 물살에 의해 파여지고 새로운 화석들이 나타나곤 하였다.

 1908년 최초로 공룡과 사람의 발자국이 같이 발견되었는데,

1938년까지 이렇다할 연구가 실시되지 않았다.

1938년 지질학자 Clifford L. Burdick과 뉴욕자연사 박물관의 Ronald T. Bird는 브론토사우르스,

티라노사우르스 등의 발자국을 조사하기 시작하다가 백악기 초기 지층(1억2천~1억3천년전)에서

완벽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는데, 맨발의 발자국은 발가락이 분명히 구별되었고, 발의 크기는 38.1cm 였다.

이들은 육식공룡의 큰 3발가락 발자국들도 발견하였는데, 각각의 발자국은 60.9×96.5cm 크기였고,

 발자국 사이의 거리는 3.66 m 였으며, 진흙속으로 깊이 새겨져 있었고,

사람과 공룡 둘 다 달리고 있었다. 1939년 5월 Bird는 매우 분명한 사람 발자국이지만

파충류시대에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멸종된 원숭이라 하였다 (그러나 원숭이와도 1억년차가 남).

파룩시강은 관광명소가 되었고, 불경기로 지역주민들은 공룡과 사람의 발자국을 관광기념품으로 팔기 시작하였고,

몇몇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위조도 되었다. 그러자 보수진화론자들은 발굴발자국 모두를 위조로 치부하여 버렸다.

 그후 지질학자, 고생물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발굴이 시작되어 1백여 군데의 사람 발자국들이 발견되었는데,

어린이 발자국도 발견되었고, 어떤 종류는 북미인디언들이 신던 얇은 노루가죽신과 같은 sandal을 신고 있었다.

 이것들은 곰, 검치호랑이, 매머드, 공룡들의 발자국 위, 아래에서 또는 나란히 발견되어졌다.

 이 발자국들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인위적으로 조작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증거들로

 mud push-up 현상(발가락이 진흙을 앞과 옆으로 밀어 올린 현상)을 보여주었고,

발자국이 찍히면서 바로 밑에 다른 색의 점토층에 압력을 가하여 만들어진 Lamination markings이

많은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에서 발견되어졌다.

 일리노이대학의 Dr. Wilde Smith는 건장한 남자의 발자국과 브론토사우르스의 발자국이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백년이 넘는 진화론의 가르침을 내던지게 하는 일이다.

이 사건은 다윈의 이론 전체를 폐기하고 오늘날 모든 생물학을 다시 세워야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후 발자국들은 수년간의 침식으로 공룡들처럼 사라졌다.

 

9) 3 억년전 석탄 속에서 나온 쇠단지.

 

1912년 Oklahoma주 Thomas의 Municipam Electric Plant에 근무하는 2명의 작업자가 이웃지역인

Wilberton근처 광산에서 캐내어 온 석탄을 삽으로 화로에 집어 넣고 있었다.

 석탄 한 덩어리가 너무 커서 다루기 힘들어 망치로 내리치자,

덩어리가 부서지면서 쇠단지(iron pot)가 발견되었다.

석탄은 쇠단지 내부에도 있어 몰드(mold) 형태로 들어 있었다.

 작업자들은 발견의 진실성을 보증하기 위해 진술서에 서명을 하였다.

 이 쇠단지는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검사되었는데, 하나같이 설명하기를 주저하였다.

쇠단지가 발견된 석탄층의 연대가 3억에서 3억2500만년전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10) 네바다주 Pershing Count Fisher Canyon 2억2500만년전 중생대 지층에서 사람발자국.

 

1927.1.25. Albert Knapp은 캐년의 헐거운 바위사이에서 사람의 신발뒤축이 찍힌 화석을 발견하였다.

 끈적한 상태에서 발을 잡아 뺀 모양의 화석으로 뒤축모서리는 부드럽고 둥글었으며,

오른쪽은 왼쪽보다 더 닳아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견지층은 2억2500만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석회암 지층이었던 것이다.

화석은 록펠러재단의 전문지질학자에게 분석되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현미경 조사 후였다.

가죽신은 두 줄의 실로 꼬매져 있었는데, 한 선은 바깥 모서리를 따라 이어졌고,

다른 선은 0.8 cm 안쪽으로 평행하게 이어져서 꼬매어져 있었던 것이다.

 Califonia오클랜드 박물관 Samuel Hubbard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기 지구의 원인들은 이러한 가죽신발을 도저히 만들 수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증거앞에 무엇을 대답하여야 하는가.

원숭이가 나타나기도전 수천만년전에 고등한 지적인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11) 3 억년전 고생대 펜실바니아기 지층에서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1885년 켄터키주 Berea 대학의 J. F. Brown 교수는 Berea 마을 동쪽 16마일지점인

 Cumberland 고원의 Rock Castle County의 Big Hill에서 나온 이상한 발견물을 검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정상부근에서 도로를 넓히기 위해 흙을 제거하다가 석탄기(펜실바니아기)

석회암 지층에 오래된 마차 바퀴자국(old wagon trail)이 나있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E. A. Allen이 American Antiquarian(Vol7, p39)에서 보고했던 것과 같이 그 지층에는 여러 생물체들의

화석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이 바퀴자국을 목격한 사람들을 더욱 신비하게 하였던 것은 바퀴자국 사이에

 매우 잘 보존된 두 개의 사람발자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발자국은 사람의 크기였고, 발가락들은 잘 구분되어 있었으며, 매우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상세한 추가 연구는 실시되지 않고 있다가,

1930년 Berea 대학의 지질학교수인 Dr. Wilbur Greely Burroughs는 회색의 Pottsville sandstone에 찍혀 있는

24cm정도의 발자국 12개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발자국들은 지질학적 연대로 3억년 이상된 후기 펜실바니아기 지층이었던 것이다.

보수적인 많은 지질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은 이 발자국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양서류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Dr. Burroughs는 Louisville Courier-Journal (May 24, 1953) 에서 두 쌍의 발자국에서 비교적 왼발은 오른발보다

앞에 나와있다. 발의 위치는 사람의 것과 똑 같았다.

뒤꿈치에서 뒤꿈치까지의 보폭은 45.7cm 였고, 발자국은 서로 평행하게 났는데,

 간격은 정상 사람의 것과 똑 같았다.라고 하면서 이 발자국들은 두 발을 가진 생물체의 것이며,

 절대로 네 발을 가진 동물의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양서류와 파충류들은 네 발을 가지고 있고, 간혹 뒷다리로 똑바로 서서 걷는 것들은 꼬리를

 제3의 다리처럼 사용하여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발자국에는 꼬리나 배가 접촉한 어떠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1938년 10. 29일 Science Newsletter에서 논평했던 것처럼 고생대 펜실바니아기에 똑바로 걷는

 양서류나 파충류 화석은 보고된 적이 없었다.

 분명히 나타난 5개 발가락, ball, 뒤꿈치는 양서류와 파충류의 발자국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사람의 것만이 이와같은 것이다. Albert G. Ingalls는 Scientific American (January, 1940)에서

 만약 사람이 어떠한 모습이라도 석탄기(펜실바니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존재하였다면,

 지질학 전체는 완전히 잘못되었으며, 모든 지질학자들은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 트럭이나 운전하여야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2)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지층에서 발견된 신발자국.

 

1948년 영국 Lake Windermere 근처에서 신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 해에 The Field 라는 자연사 학술지에 보고되었는데,

 발견된 지층은 믿을 수 없게도 5억년 정도로 추정되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석회암층이었다.

이 신발자국에는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진 흔적들을 보였는데,

 뒤뚬치와 발가락 앞쪽의 가장자리에는 납작못으로 시침질을 한 듯한(tacking) 둥근 자국이 나있었으며,

 뒤꿈치와 발바닥 중앙부근에는 꽃과 같은 무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자국은 바위의 갈라짐과 부서짐으로 약간 비틀어져 있었는데, 신발의 길이는 20cm, 폭은 8.9cm 였다.

 

13) 고비사막의 1500 만년된 사암층에서 발견된 이상한 신발자국.

 

1961년 Soviet journal (No.8, 1961)에는 소련과 중국의 고생물학 탐사대가(탐사대장 Dr. Chou Ming Chen)

1959년에 중앙아시아의 고비사막에서 발견한 홈이 파진 밑창(ribbed sole)을 가진

신발(shoe)자국 화석에 관한 내용이 보고되었다.

이 발자국들은 1500만년된 사암층에서 발견되었는데,

 탐사자들 다수가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 '이것은 어떠한 동물의 발자국이 아니다,

왜냐하면 홈이 파진 무늬(ribbing)이 너무 똑바르고 규칙적이어서 자연적 기원으로는 생길 수 없다' 라고 하였다.

 

14) 50 만년전 암석에서 나온 이상한 기계장치.

 

1961년 2월13일 세명의 암석수집가 Mike Mikesell, Wallace Lane, Verginia Maxey는

 캘리포니아주 Olancha 동남쪽 12마일 지역에 있는 Coso Mountains의 정상 1300m 부근에서 돌 하나를 수집했다.

이것은 안쪽으로 움푹한 선이 나있는 수정을 함유한 돌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정동석(geodes)인줄 알았으나, 후에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조개화석 일부를 함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Mikesell이 돌을 반으로 쪼갰을 때 이상한 물체가 나왔다.

안에서 나온 것은 어떤 기계적 고안에 의한 물체로, 흰색의 단단한 질그릇 재료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폭 0.85cm의 원통(ceramic cylinder) 이었다.

원통 둘레에는 나무와 비슷한 물질이 감싸고 있었고, 원통 중앙에는 2 mm의 축으로된 선명한 놋쇠질의 금속이 있었다.

 이 축(shaft)은 자기력(magnetic)을 가지고 있었고, 발견되고 수년후에도 산화되지 않았다.

또한 원통 둘레에는 구리로된 고리(ring)가 있었는데, 후에 대부분 부식되었다.

 원통이 발견된 암석안에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물체가 나왔는데,

 그것은 못(nail)과 볼트의 워셔(washer)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Charles Fort Society로 보내졌는데, X-ray 검사결과,

 확실히 기계적 도구의 일종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금속 축의 한쪽은 부식되었고,

 다른 한쪽은 금속 스프링과 같은 나선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점화통(spark plug)으로도 생각했으나, 축 끝부분의 금속 스프링형태 등은

 그동안 발견된 어떠한 점화통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계적 도구를 함유하고 있는 암석의 연대가 지질학자들에의해 50만년으로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15) 유타주 Antelope Springs 근처 6 억년전 캄브리아기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1968.6.1. William J. Meister (아마추어 화석수집가)는 유타주 Delta시 북서쪽 43마일에 위치한

 Antelope Springs에서 화석화된 삼엽충과 완족류를 찾다가,

놀랍게도 삼엽충 화석위에 사람의 가죽신발자국(sandal print)을 발견하였는데,

삼엽충은 으깨져 있었다.

지층은 6억년전 캄브리아기 지층이었고,

 자국크기는 길이 26cm, 폭 8.9cm였고 뒤꿈치 부분은 폭이 7.6cm였다.

 Sandal의 오른쪽 부분은 낡아 있었고, 뒷꿈치 부분은 1.7cm 깊게 파여져 있었다.

 이 화석은 유타주 지질조사단 Dr. Hellmut H. Doelling 에게 보내져 진짜임이 확인되었다.

 그해 6.20일 Meister는 전문가 Dr. Clifford Burdick과 같은 장소로 돌아와 재조사를 실시하였는데,

 5개의 발가락이 분명한 15cm의 맨발의 아기발자국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그후 Meister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함.)

 

16) 백악기 지층서 나온 이상한 금속 덩어리들.

 

1968년 프랑스의 동굴학자 Y. Druet와 H. Salfati는 Saint-Jean de Livet에 있는 채석장의 Aptian 백악기 지층에서

이상한 금속 덩어리들을(metal nodules) 발견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 덩어리들은 적갈색의 얇은 과자모양(wafer-shaped)으로 끝은 우묵했고,

 길이 3~9cm에, 폭 1~4cm 였다. 두 명의 조사자들은 처음에는 화석으로 생각하였으나,

금속성 성질이 밝혀진후 운석의 파편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밀한 조사결과 이 덩어리들은 자연적인 기원으로 보기에는 모양이 너무도 일정하였고,

 화학적 분석결과 현대적인 대장일(forging)과 주조(casting)기법과 일치하는 탄소함량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1억2천만년전 백악기말 지층에 사람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될 수가 있겠는가?

 Druet과 Salfati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물체는 선사 고고학에 의해서 정한 한계보다 훨씬 이전에 지구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하였음을 입증하였다.'

 

17) 300~500 만년전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1969.5.25일 Tulsa Sunday World지에서는 오클라호마 Tulsa 동부지역에서

 산에서 발견된 이상한 화석에 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지질학자인 Troy Johnson는 발자국 화석이 많이 나 있는 사암층에서 다섯발가락을 가진

분명한 사람의 발자국들을 다수 발견했다.

 이 발자국들은 지금은 멸종된 생물들의 발자국들과 같이 나 있었는데,

그 지층의 연대는 300~500 만년이었다.

 

18) 1 억년전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오클라호마 북서쪽 Carrizo Valley에서 사람의 발자국과 신발자국이 발견되었다.

맨발자국은 어느 정도 침식이 되었으나 분명히 압력이 가해진 가장자리를 보이고 있었다.

 신발자국은 보다 분명했는데 길이는 50.8cm 폭은 20cm이었다.

발견된 지층은 1억년 이상으로 추정하는 Morrison formation and Dakota Sandstone 이었다.

 

19) 17만 5천년전 지층에서 출토된 두상과 유물들.

 

1921년 아칸소주 Finch 북쪽 2마일에 위치한Crowleys Ridge로 알려진 작은 산줄기에서 Rowlands는 자갈 갱을 파고 있었다.

3m 정도를 팠을 때 삽은 커다랗고 딱딱한 어떤 것에 부딪쳤다.

 처음에는 큰 바위돌로 생각했으나, 좀 더 파자 그것은 사람의 머리를 조각한 커다란 두상이었다.

 높이는 1.2m였고, 사각형의 튀어나온 턱, 작고 굳게 다문 입, 짧은 코, 주름진 이마, 금무늬를 입힌

납작하고 강조된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귀에는 두 개 이상의 금고리로 장식되어 있었고, 구리로 된 하트모양의 마개가 가슴에 박혀 있었다.

머리는 조각된 두건으로 휘감겨 있었고 목덜미 아래로 내려져 있었으며 한조각은 목에 붙어 있었다.

머리부근 같은 지층에서 Rowlands는 금반지, 화산경석(그 지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으로 만들어진

 작은 보석함, 사람, 동물, 별, 달의 작은 조각들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이 두상과 유물들은 곧 지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신문들은 노려보는 듯한 이 두상을 King Crowley라고 이름붙여 주었다.

여러 조사자들과 전문가들은 자갈층 3m 깊이의 지층이 17만 5천년이라는 지질학적 연대에도 불구하고,

이 발견물이 진짜임을 인증하였다.

 두상과 유물들은 Little Rock에 있는 Akansas 자연사 박물관에 보내졌고,

발견물과 기록들을 철저하게 검사한 박물관장은 발견물이 진품임을 확인하고 전시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작은 유물 몇개는 워싱톤에 있는 스미소니안 박물관으로 보내어졌다.

매우 보수적인 협회인 스미소니안에서는 이 물건들을 설명할 수 없는 품목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 물건이 나온 지층과는 도저히 타협할 수가 없었다.

 15년간의 망설임 끝에 스미소니안은 인류문명사과 맞지 않은 17만 5천년전의 이 두상을 위조라고 선포하였다.

명성있는 스미소니안의 결정에 따라 Little Rock 박물관은 두상과 유물들을 전시대에서 치워버렸다.

 그리고 King Crowley는 개인 수집가들에 팔려 흩어져 버렸다.

 

20) 최소 30 만년 이상으로 평가되는 땅속 96 m 지점에서 출토된 인형.

 

1889.8.1일 직업적인 우물 굴착업자인 M.A.Kurtz 는 Idaho의 Nampa에 있는 집근처에서

두 사람의 동료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중이던 steam pump가 갑자기 3.8cm 길이의 갈색의 점토 조각을 토해내었다.

 모습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 발견은 Nampa의 여러 중요한 시민들에 의해서도 목격이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점토 인형(doll)이 나온 땅의 깊이가 무려 96m 깊이라는 것이었다

 (용암암석 4.5m, 모래 30m, 점토 15.2cm, 모래 12m, 점토 모래 섞인 것 50m).

작은 인형은 반은 점토, 반은 석영으로 구성되었는데, 숙련된 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Oberlin 대학의 Albert A.Wright 교수는 이 인형은 어린이나 아마추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인형의 모습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분명했는데

둥그런 머리, 간신히 알 수 있는 입과 눈, 넓은 어깨, 짧고 굵은 팔, 긴 다리를 가졌으며 오른쪽 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모습에는 희미한 옷이나 보석과 같은 것을 새긴 기하학적 흔적이 목둘레 가슴부위와 팔과 팔목에 남아 있었다.

 인형은 예술적인 차림을 한 매우 문명화된 사람의 모습이었다.

 Nampa 인형이 실제로 발견된 깊이에서 출토되었는지,

 얼마나 오래된 유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은 보스톤의 자연사 학회의 G.F.Wright 박사가 출토된 장소에서

 Kurtz의 장비, 파여진 구멍, 목격자들의 증언 등을 조사하였다.

조사후 Wright 박사는 이 발견이 진짜임을 확신하였다.

 Kurtz는 직경 15.2cm의 강철관으로 구멍을 파기 때문에 그 깊이에서 출토된 것에 대한 실수가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더군다나 펌프는 한쪽 방향으로만 가동되는 것으로서 위에서부터 어떤 물체가 펌프를 통해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Wright는 보스톤 학회에 이 물체가 보고된 깊이에서 펌프를 통해 출토되었음은 확실하다라고 최종 보고를 하였다.

 또 하나의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보스톤의 F.W.Putnam 교수는 현미경 분석을 통하여

인형 오른쪽 팔아래는 석영알갱이가 철입자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매우 오래된 시간이 흘렀으며, 발견된 깊이에서 실제 있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Nampa 인형의 연대는 얼마나 되었을까?

 Kurtzs가 뚫은 맨 윗층의 용암암석은 마지막 빙하기가 진행되기전에 발생한

 Columbia Plateau의 선사시대 용암류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지층 아래 90m 깊이의 묻혀 있던 인형.

현대 지질학자들은 인형이 출토된 지층의 연대를 최소 30만년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Nampa doll은 Boise에 있는 Idaho State Historical Society에 전시중에 있다.

 

21) 20 만년전 지층에서 발견된 Tile Floor.

 

1969.6.27일 Edmond와 Oklahoma City 사이 Broadway Extention 122번가에서

 암반 절단작업을 하고있던 작업자들은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발견을 하였다.

그 발견은 무늬가 새겨진 타일이 깔려있는 바닥(inlaid tile floor)으로

지표면 아래 90cm 깊이에서 발견되었는데 수천 평방 피트의 넓이로 발견되었다.

 Oklahoma City의 지질학자인 Durwood Pate는 1969.7.3일 Edmond Booster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것이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돌들은 평행한채로 다이아몬드 형태로 동쪽을 향하면서 완벽한 모습으로 놓여져 있었고,

10m씩 떨어져 정확한 거리에 위치한 구멍들이 발견되었다.

돌의 상부는 매우 매끄러웠으며, 그것의 하나를 들어올리면 들쭉날쭉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표면에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놓여져 있어 자연적으로는 도저히 생성될 수가 없다 또한

 Pate는 tile 사이에서 mortar의 한 형태도 발견하였다.

 그는 tile 표면은 많은 사람들이 쉬기 위하여 깔아 놓은 넓은 floor라고 생각하였다.

 지질학자인 Delbert Smith는 1969.6.29일 Tulsa World에서 그것에 관한 어떠한 의심도 없다.

 그것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그 tile floor가 놓여있던 지층의 연대는 20만년으로 평가되었다.

 

22) 6 억년전 캄브이라기 지층에 똑바로 나있는 이상한 두 줄의 띠 (iron bands) 자국.

1880.6.13일 Inverness 신문의 리포터이며 아마추어 암석탐험가인 Walter Carruthers는

 스코틀란드의 Loch Maree와 Victoria 폭포를 여행중에 그 지역의 지질학적 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Carruthers는 Victoria 폭포 상단 300~400야드 사이 물줄기의 서쪽으로 있는

 세개의 작은 폭포중 바깥쪽 바위에 특별한 자국이 남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바위는 캄브리아기의 Torridon Red Sandstone으로 표면이 4.8×4.8 m 크기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 자국은 나란히 나있는 두 개의 평평한 띠(bands) 줄로서, 3.2~3.8 cm 폭과 0.64 cm 깊이로 비자연적으로

사암층을 똑바로 4.8 m나 나있었는데, 풍화된 곳에서만 단지 끊어져 있었고,

 서쪽부근의 중첩된 암석밑에서 사라져 있었다.

수주일 후 이 이상한 띠자국은 Carruthers의 동료이며 이 지역 공립학교의 Majesty,s Inspector인 William Jolly에 의해

조사되었다. Carruthers는 이 자국은 매우 비범한 생명체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Jolly는 기록하기를 이 띠자국의 폭과 넓이까지 일정하게 지속되는 것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는 없다.

두 개의 띠자국은 함께 가까이 고정된 두 개의 쇠막대기에 의해 남겨진 자국임에 틀림없다라고 하였다.

 Jolly의 관측은 몇년 후 자국에서부터 iron oxide의 미세한 알갱이들이 확인되면서 더욱 확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iron band는 과거 한때 어떤 구조물을 걸려고 하다가 파여진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러 발견들은 이 주장이 잘못된 것임이 입증되었다.

첫째, 이 bands는 폭포 상단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람의 접근도 거의 이루어질 수 없으며,

 구조물을 설치하기는 더욱 어렵다.

 둘째, 이 bands는 0.64 cm 깊이로 얕게 나있기 때문에 어떤 구조물을 지지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셋째, 각 band의 옆에는 평행하게 얇은 물결자국의 사암이 남아 있었는데,

이것은 모래가 물에 의해 퇴적되면서 사암으로 굳어지기전 iron band가

모래를 흐트러트린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넷째, 자국이 남겨진 사암은 철의 미세한 흔적들을 보존한 작은 줄무늬(striations)들을 보였는데,

이것은 금속이 최초 모래에 즉 굳어지기전 모래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섯째, band 한 쪽의 한 부분은 암석표면 아래로 구부러져 들어가 있었는데,

 주의 깊게 그 끝을 파본 결과 주변 사암으로 이어진 iron oxide를 찾아내었다.

Jolly는 같은 장소에서 다른 band 자국들을 발견하였다.

세 번째 band는 다른 두 개를 따라 나있었는데 분명하지 않았고, 연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두 개의 추가발견된 band는 표면 60 cm 아래에 나있었고, 2.1 m 길이였으며,

 또 다른 두 개는 높은 위치에 90 cm 길이로 나있었다.

 이 iron band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규격화된 폭과 깊이,

 각진 모서리, 굴러가거나 파지면서 남겨진 미세한 알갱이 흔적들은 어떤 기계적인 도구에 의해서 남겨진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과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발견된 지층이 무려 6억년전의 캄브리아기 지층이라는 것이었다.

 

(Strange Relics from the Depths of the Earth) - 창조과학회 J. R. Jochmans

 

 

26년간 "윤회" 연구한 미국 정신과 의사

- 최면 치료 중 알게된 인류의 미래


2008.11.23 01:5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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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원]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와이스 박사는 콜롬비아대 화학부를 졸업한 후, 예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이후 예일대학과 피츠버그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마이애미대 의료원 정신과 주임 교수가 됐다. 1980년대 초반 그는 이미 40여 편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해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무신론자로서 철저하게 과학에 입각한 사고와 연구 방법으로 사물과 질환을 대했으며 영혼, 윤회 등 비과학적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1982년 "그날"이 오기까지 적어도 그는 철저한 "과학자"였다.

1982 년, 마이애미대 불면증 치료센터를 담당하고 있던 와이스 박사는 최면 치료를 받고 있던 캐서린이라는 환자를 만났다. 일면식도 없던 캐서린은 최면 상태에서 와이스 박사의 가족사에 대해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와이스 박사는 소름이 돋았다. 부친의 히브리어 이름과 희귀한 선천성 심장 질환으로 사망한 아들에 대한 일은 가까운 가족만 아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캐서린은 와이스 박사의 의학계에 대한 인식과 딸의 이름을 지은 경위 등도 말했다.

깜 짝 놀란 와이스 박사는 캐서린에게 누가 이 사실을 알려줬는지 물었다. 그녀는 "신들입니다. 나는 86회 윤회를 했습니다"고 대답했다. 최면 치료를 받은 캐서린은 자신의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 모든 질환의 증상이 개선됐다. 와이스 박사는 이 일을 계기로 기존 과 다른 연구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전생 연구에 뛰어들다

난 생 처음으로 윤회와 전생, 영혼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과학과의 접접을 찾기 시작했다. 라이스 박사는 먼저 도서관에 틀어 박혀 관련된 모든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어느새 가치관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관심사도 물질과 육체에서 정신으로 옮겨갔다.

아래는 와이스 박사의 이야기다.

여 러 가지 경로를 통해 알게된 바로는 나는 윤회하면서 불교도, 힌두교도, 카톨릭 교도로서 수행했다. 현세에 중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먼 옛날 중국에서 태어난 적이 있다. 당시는 불교가 중국에서 한창 활발하게 전파되던 때로 선종이 중국에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당시 불교 수행자로서 선종의 창립에 다소 관여했다. 이외에도 5~6명의 도가 수련자와 함께 수련을 한 적도 있다.

이런 전생의 경험이 현재의 나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현대 과학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

초 능력자로 알려진 한 사람은 나에게 "당신의 몸에는 두 개의 인간 영상이 보인다. 하나는 나이든 중국인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도사로서 중국에서 살았을 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동양의 종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나 는 신중하게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과학적 논리를 지킨다는 전제 하에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나는 일반적인 학자들과 다를지도 모른다. 양전자 단층 촬영술(pet)로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대에 성립된 정신세계에 관한 이론을 이해하고 활용하기도 한다.

사실 고대 불교 안에는 수많은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원자 이론, 소립자, 다차원 공간에 관한 기술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 과학과 아무런 모순이 없다. 단지 시대와 문화가 달라 기술 방법와 용어가 다를 뿐이다. 고대의 종교와 학문에서 기술한 정신 영역과 우주에 관한 현상들이 현대 과학에 의해 실증됐다.

천 문학자와 물리학자의 최신 이론을 접하면서 그들의 연구와 나의 연구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그들은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공간과 팽창하는 우주,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는 내가 최면 치료 중 만난 환자들이 말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 단지 환자들의 진술에는 복잡한 수학 공식이 없을 뿐이다.

천 문학자들이 인정한 다차원 공간의 존재는 전생과 현세, 내세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될 수 있다. 단지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최면 상태의 환자들이 말한 사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는 아직 연구 과제로 남아 있다. 기존에 생각지도 못했던 양자 물리학이나 초끈 이론, 최신 천문학적 발견은 전생과 윤회가 결코 비과학적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은 얼음같은 존재

최면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에 꿈을 연구했다. 일부 사람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꿈에서 미리 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런 현상을 겪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미래에 관한 것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꿈속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최면 상태에서도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최면을 통해 미래에 관한 언급을 수집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 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의식은 어떻게 장래를 알 수 있나?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어떤 종류의 힘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는지? 양자 이론이나 초끈 이론으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지? 이러한 문제는 과학자가 앞으로 연구해야 할 영역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추측으로는 일정한 차원의 생명이 되면, 의식은 마치 하나의 감각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그 차원의 생명의 모습을 기술할 적절한 단어가 없다. 한 가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보겠다.

모 든 사람을 크기도 모양도 다른 딱딱한 얼음덩어리로 가정해 보면, 차가운 물에서 이 얼음은 서로 떨어진 상태로 떠다니게 된다. 하지만 열을 가해 얼음이 녹으면 모두 물에 녹아 하나로 되어 버린다. 이 때 이미 얼음이라는 생명은 이전과 다른 형태다. 계속 열을 가하면 물은 수증기로 바뀔 것이고, 육안으로 수증기에서 얼음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얼음을 구성했던 물질이 수증기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이는 비유로서 사람을 얼음 덩어리에 비유하고 육신이 없어지고 수증기처럼 보다 높은 차원으로 옮겨 가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를 설명할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얼음덩어리 차원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단지 얼음 덩어리에 불과하며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에너지가 아니라 사랑과 같은 정신적인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우 리의 의식(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마치 얼음 덩어리가 녹아 물이 되는 것처럼 진동 에너지가 한층 더 높은 차원에 이르면, 우리들은 수증기처럼 된다. 수증기를 넘은 차원은 더욱 멀고 더욱 높은 차원으로 형용할 수 없다. 반대의 과정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높은 에너지 세계의 생명이 그 에너지가 서서히 낮아지고 낮아져 더욱 낮아지면, 마지막에 얼음, 즉 인간이 된다. 나는 우리 인류가 가장 저능하고 가장 완만한 진동, 마치 물 분자의 가장 늦은 진동 형식인 얼음 덩어리와 같다고 본다.

최면치료중 알게된 인류의 미래

최 면 치료를 받은 많은 환자들은 일상 생활 속의 불안과 공포감을 없앨 수 있었고 적극적인 생활 태도를 가지게 됐다. 이 중 상당수는 지구 인류의 미래를 보았다. 이들이 최면 중의 본 지구 인류의 미래 는 앞으로 대략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제 1 단계는 현재의 시기다. 이 단계는 자연적인, 혹은 인위적인 각종의 재난에 휩쓸려 비참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지만, 아직 전 세계적인 문제는 아니다. 이 단계에서 독을 가진 것이 더욱 더 많아지고 인구 증가로 문제가 발생한다. 또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가 진행된다. 아직 사람이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제 2 단계는 인류의 두 번째의 "암흑 시기"다. 왜 이러한 암흑 시기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인류를 정화하기 위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이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이 시기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은 것 같다. 많은 인류는 그 영혼이 승화하고, 지구상 인류의 일부는 보다 높은 차원의 공간으로 전생할지도 모른다.

그 후 제3 단계에 들어간다. 이 단계에 이르면 지구의 모든 것은 순결하고 소박하게 변해 만물에 활기가 흘러 넘치고 세계가 평화롭고 온화한 환경이 된다.

수천 건의 최면 치료 사례에서 영혼의 윤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구는 마치 시끌벅적한 교실 같아서, 많은 영혼이 이곳에서 태어나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많 은 사람들이 평화롭고 소박한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면 그러한 세계가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 태어난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생명은 이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바쁜 일상에 쫓겨 진짜 목적을 잊어 버렸다.

나 는 20여년에 걸친 정신과 영혼에 대한 연구로 이전보다 인간 관계를 더욱 소중히 하게 됐다. 부와 명예보다는 자신의 진정한 생명에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필요 없는지를 알게 됐다. 나는 이전에는 육체가 사망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다.



시대정신 (Zeitgeist) 한글자막 동영상 1부, 2부


시대정신 (Zeit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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