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함정
2013-01-11

직접판매 세계 1위, 세계 최고(最古), 판매원을 직원으로 고용해 꼬박꼬박 월급을 준다던 회사 에이본이 한국에서 두 손을 들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철수를 결정했고, 중국 역시 비슷한 길을 걸으리라는 것이 정통한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에 문을 열기로 했던 인도 시장에의 도전도 없던 일이 돼 버렸다.
2012년도의 결산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도 세계 1위 기업인 에이본은 왜 항복했을까? 이 회사를 좀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럴 줄 알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에이본의 가장 큰 약점은 느린 의사결정과 시장 상황을 도외시한 채 글로벌 에이본의 스탠더드에 맞추려 드는 고집 그리고,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감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비록 매출 규모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매출의 원천이 저개발국이었다는 점이다. 100여 개국 이상의 나라에 진출한 에이본이지만 주요 시장은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나 러시아 그리고 일부 동남아국가였다는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말을 종합하면 저소득 국가였던 브라질과 러시아 등의 GDP 규모가 증가하면서, 생활수준이 향상된 소비자들이 이제는 보다 높은 수준의 제품을 찾기 시작한 것이 위기의 발단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본은 자신들의 스탠더드 즉, 소득 수준이나 나라별로 상이한 소비자 및 판매원의 성향과 욕구에 맞추기보다는 미국 본사의 마케팅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에이본은 화장품류를 전문적으로 제조·유통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는 자사의 화장품보다는 한국 기업이 제조한 건강기능식품과 일부 수입 건강식품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거기에다 실시간으로 매출을 체크하면서 담당 직원들이 보고와 회의에 얽매이느라 본인이 감당해야 할 실질적인 업무는 뒷전으로 밀린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은 에이본이 철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의 근거는 ‘도덕적인 기업’이라는 환상이다. 실제로 에이본은 방문판매도 다단계판매도 아닌 보상플랜의 변경을 검토하면서도 다수의 판매원들이 선호하는 바이너리 플랜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 이유 또한 에이본은 도덕적인 회사이기 때문에 일 하지 않고도 수입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바이너리 플랜은 도덕에 기스(傷·흠)를 내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뭣한 이야기지만 정작 자신들은 일하지 않고도 월급을 받아가면서 판매원 중에 혹시라도 놀고 먹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사실 다단계판매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다수는 언젠가는 일을 하지 않아도 일정한 수입이 발생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일을 한다. 다단계판매 초창기에 많이 읽혔던 ‘파이프라인 사업’이란 곧 내가 지게를 지지 않아도 물 걱정이 없는 인생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에이본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무위도식 또는 불로소득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판매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왕에 보상플랜을 변경하기로 한 것이라면 조금만 서둘러 시행을 했더라도 ‘철수’라는 파국을 피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그들의 실책이라면 한국 지사 내에 본사에서 급여를 받는 부장급 직원을 상주시키면서 회사 안에서 성골과 진골을 나눴던 것이다. 동일한 부장 직급이라고 해도 본사의 직원은 용가리 통뼈 브라만인 듯 행동하고 지사의 직원은 개 뼉다구 수드라인 것처럼 신분 격차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8개월 여 동안 수장을 임명하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직원들은 의기소침해졌고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은 지사장이 없어서 편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에이본의 한국 지사에서 실질적으로 일을 한 사람은 자영업자인 사업자들 밖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한 가지 더 웃기는 것은 유일하게 일을 한 그룹인 사업자에 대해서는 보상 또는 배상에 관한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이다. 임직원이나 사업자나 지금도 한결 같이 에이본은 도덕적인 기업이므로 부도덕한 철수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돈과 도덕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삼성과 현대는 물론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조차도 그들이 벌어들인 돈에 도덕을 대입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처지이다. 물론 다단계판매를 포함하는 직접판매업계에서 도덕적 기업이란 판매원을 유혹하기에 더 없이 좋은 말이기는 하다. 많은 판매원들은 돈이 되든 안 되든 단지 도덕적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수십 년 간 일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에이본은 도덕적 기업이라는 구호를 10년 간 사용하고도 이렇다 할 혜택을 보지 못했다. 그동안 에이본이 기울여온 노력들을 모르지는 않지만 진실로 도덕적이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 임직원에게 급여를 제공할 게 아니라, 채찍을 휘둘러서라도 일을 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매출이 발생했더라면 한국 지사 철수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수많은 임직원과 판매원들이 실업 상태에 빠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했어야 하지 않을까? 두고두고 안타까울 일이다.



권영오 기자 chmargaux@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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