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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블로그 >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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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ever you see darkness, there is extraordinary opportunity for the light to burn brighter.

암흑 속에 있을 때 불은 더 환하게 타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는다.

치유명상



◐ 들어가는 말


:지난 여름 8월4일자 미국의 타임지에는 '명상열풍'이 소개된 바가 있는데 상담분야에서 명상의 방법을 끌어들였는데 '90년도 이후 생존 경쟁과 좌절 등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실용성있게 발전되면서 점차 깨달음과 마음 닦기의 본래적 명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명상은 집중력을 강화 시켜 공부와 건강한 생활을 유지시키며 침묵 속에서 명상을 통해 잠재력 개발에도 도움을 얻고 있는데 연륜이 있더라도 항상 처음 하는 심정의 초심으로 해야 한다. 명상의 열린 마음은 종교의 벽을 무너뜨리고 넘어서기에 그래서 종교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보는 관점을 바꾼다는 것

명상(mediatation)이란 라틴어'메데리'(mederi)에서 파생된 또 다른 하나의 의약(medicine)이란 단어로 '치유하다'란 뜻이므로 스트레스와 우울증, 편집증등 정서장애를 치유하는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
명상은 정신집중과 알아차림인데 情念 즉 마음을 하나로 가득 차게 해서 바라본다. 그 특징은 나란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사물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한다.

평소에 별 의식 없이 바라보던 것과는 다르게 바라보아야 하는데 마음을 집중하여 고요히 깊이 생각하는 것이며, 마음을 비우고 사물을 바라보고 바르게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명상에서 핵심 요소인 호흡을 바라 볼 때에도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을 바라보면 마음이 집중되고 어떤 깨달음이 온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알아 가는 것이며, 치유를 경험하고, 마침내는 신의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명상의 본질은 바라보는 것인바 마음을 비우고 머릿속을 다 비우고 바라볼 때 사물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뀐다.
보는 관점을 바꾼다는 것,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 외부적인 사건이 마음의 정서를 낳지만 사건을 보는 태도가 정서를 만드는데 예를 들면 이혼을 인생의 실패나 끝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에게는 이혼은 그만큼 커다란 스트레스와 슬픔과 상처가 되지만, 이혼은 슬프지만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하여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결혼은 좀더 멋지고 행복한 결혼생활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여성은 이혼으로 잠시 아파하다가 곧 회복이 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명상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마음을 만들어 간다.

바로 보는 것은 나, 神, 신과 인간의 관계의 바른 모습을 찾게되는데 그것은 깨달음으로 연관된다. 인간을 존중하는 것도 그 사람에 스며 있는 영혼의 숨결을 인내심을 갖고 보면 귀한 존재로 바뀐다.
이렇게 깨달음의 특징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꾼다. 미소와 너그러운 마음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데 반면 '화'가 갖는 것은 세포의 생성을 막고 심장병을 앓게 하며 그리고 몸을 파괴한다. 명상 속에서 '화'의 본질을 보고 깊이 보면 얼굴에 미소를 띄게 된다.

인도의 카톨릭 신부인 앤소니 드 멜로(Anthony de Mello)는 이름난 우화 작가이다. 그는 한 제자와 스승의 대화를 통하여 인간이 작위적인 노력으로 성공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공허하고 부질없고 허무한 사실을 말하고 있으나 절망으로 보지 않고 자유스러움과 신명남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다면 진실로 '그믈에 걸리지 않는 바람' 대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다.
대자유인의 삶이란 요한 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는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 보다 높은 자아! 아싸지올리의 성격 구조도

인간에게는 왜곡되지 않고 상처받지 않은 순수의식(영혼, 영성)이 있는데 반해 인간은 관계로 맺어지는바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왜곡되어 나의 모습이 된다. 그런데 인간이 현재 의식의 '나'라는 관점에서 하부 인격들을 보고 있는 한 변화와 치유는 있을 수 없다.

동물은 직선적인데 비해 인간은 나선형이다. 그러므로 우리 존재의 형태는 다양하고 나의 관계에 따라 '존재양태'와 '행동양태'가 같아지는데 사건에 대한 분노, 두려움, 시기는 주로 부모나 주위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관을 받아들여 내재화한 결과로서 자신의 가치 기준능력을 정해 놓고 그 가치 기준에 따라 어떤 일, 행동, 심지어는 마음의 감정까지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이렇게 외부 사물에 대한 우리 반응은 마치 자동 항법장치처럼 자동 판단체계를 갖추어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객관성을 결여한 기계적인 판단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마음속에 어떤 평화도 찾아볼 수 없게 되며 끊임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평가하고 판단하다보면 지치고 피곤하게 된다. 치유명상을 수련하는 사람은 어떤 사물에 대하여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 의식되면 그것을 억제하지 말고 그 판단조차도 그냥 고요히 바라보도록 훈련해야 한다.
현재 의식의 '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보다 높은 자아'의 눈으로 보면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명상 속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맑고 깊은 영성과 만나면 보다 높은 자아를 인식하게 되는데 보다 높은 자아는 神이라고 불리는 영적 실체와의 융합과 자연과의 통합도 이루어 낸다.
치유명상에서는 현재 나 외에 영혼, 영성, 神의 형상을 갈고 닦아서 성장해 가는 것이며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감정에 반응하고 바라보는 것인데 짜증, 공포, 분노를 바라보면 사실 본질은 작아지고 치유가 되며 현재의 나가 아닌 '보다 높은 자아'로 승화, 성장, 변화시켜 나아가는 훈련이 된다. 그래서 일상적인 수련과 마음닦기가 필요한 것이다.

◐ 초월(transcendence)경험

명상 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의식은 뚜렷하나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시계를 보니 아침에 시작한 명상이 오후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명상에서 초월의 신비체험은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데 초월의 신비 체험이 절정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느낌도 깨달음도 초월하여 비움을 극치에 달하게 하고 단지 절대자(기독교의 하느님, 우주의 정신)와 하나가 되어 그 안에 머무는 것이다.

요동치는 비행기 기류 속에서 편안해 지는데 순수의식이 승화되면 그렇게 된다
영국성공회 신부인 흄은 기독교 영성은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사막으로 가서 말씀을 듣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질의 빈곤에서 침묵을 통해 맑은 영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하느님이 외부에서 계시로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하느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절대 고독과 절대 침묵이 있는 곳일수록 인간은 내면 깊은 곳으로 내려 갈 수 있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인데 히브리의 지혜로운 명상가들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하느님의 맑은 영성이 있어서 인간이 그 곳을 접촉하기만 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절대자와 하나되는 경험은 일상적인 인간성 너머에서 들려오는 초청의 목소리를 따라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발견하는 강렬한 빛인 것이다. 깊은 어둠 속에서 절대자를 그저 바라만 봄으로써 절대자는 어느새 밝은 빛으로 우리를 감싼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그 빛은 생명과 사랑의 빛이다. 억지로 생명을 추구하고 억지로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생명과 사랑의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초월의 신비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실제로 느껴야 알 수 있는 경험의 세계이다.

◐ 치유명상에서 자기 발견,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정체성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니어그램을 통해서도 명상을 보는데 에니어그램의 9가지성격 특징 유형을 보고 상,중,하 로구분하여 자신의 성격의 긍 ,부정적인 면을 본다. 만일 자신의 성격의 문제점과 집착이 통찰되면 나의 왜곡된 모습을 발견하고 본래의 나의 모습을 회복해야겠다고 만트라처럼 말해가면 저절로 미소가 감돌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문제를 화두로 삼고 바라보노라면 자아정체성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 외부의 환경에 대하여 반응하는 나의 성격의 문제, 절대자 인 神의 문제 등으로 한없이 확장되어 간다.

육체가 나의 일부분인 것은 확실하지만 나의 본질은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슬프고 괴로움의 허상인 것이다.
인간의 생명도 자연의 순환가운데서 드러나 순간적인 삶을 살지만 이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나'라는 존재는 파도의 물방울처럼 순간적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바다로 사라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에 집착하여 고민하고 번뇌하며 발버둥치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이런 깨달음은 최선을 다하는 경우에도 집착을 하지 않는다.

번뇌는 집착에서 오는 것인데, 집착이 없으니 번뇌도 있을 수 없고 번뇌가 없으니 고통도 있을 리 없다. 나의 마음의 황폐함을 초래하는 분노도 나가 아니며 상처받지 않은 본래 모습, 보다 높은 자아, 참 자아가 있는데 왜곡되지 않은 자아는 분노 ,질투 등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보다 높은 자아는 힘이 있어 상처가 밀려나고 희석되고 치유가 경험되는바 그것은 각자가 바라보고 고민하며 깨달음에서 알 수 있는 각 개인의 몫이며 절대정신과 자기와의 비밀한 해답이며 하느님과 나만이 아는 것이다. '나'란 본래 그런 존재이다.

◐ 죽음에 관해

의미론적으로 죽음은 영적인 차원이다. 심리학에서는 죽음은 자연의 한 흐름으로 보고 있으며, 구약성서에서는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생, 노, 병, 사의 윤회로 본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지만 우주의 주인은 아니다.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삶의 주인도 아니다. 썩어서 사라지는 육체의 몸뚱이는 본래 나 자신이 아니듯이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이나 행위도 역시 나 자신이 아니다.

나는 본래 자연의 거대한 생명에너지(근본자, 하느님, 道)의 한 부분 일뿐이며 단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다. 삶도 죽음도 자연의 섭리 속에서 그냥 흘러가는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육체나 생각, 감정이나, 행위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집착에서 오는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나면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서 대자유인이 될 수 있으며 이것이 궁극적인 치유가 아닐까요?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느님께 귀의하는 게 신앙적인 입장이며 예수 또한 하느님께 영혼을 맡긴다 할 때 하느님의 형상 , 영혼을 맡기는 의미라고 본다. 생명도 우주에너지로 돌아간다면 어떤 형태든 깨끗한 영혼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 마치는 말

명상은 편안한 자세로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자 앞에서 생각을 내려놓고 숨을 들이 쉴 때 우주의 생명 에너지를 들이마신다고 생각하고 내쉴 때는 나쁜 기운을 뿜어낸다고 상상하여 호흡을 바라본다. 호흡으로부터 벗어나 방황하고 있으면 느끼는 순간 곧 호흡으로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5분 ,10분 늘려 가다가 허락되면 열시간 이상 호흡하며 앉아있어도 좋으며 어둠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나 빛을 발견하면 어둠을 즐길 수 있다. 방안 전체가 함께 호흡하는 것을 느끼며 또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통해 인생은 참 살만한 가치가 있구나 라는 깨달음의 즐거움을 가져보자!



- 본 내용은 2003년 11월 4일(화)오후7시 성가수녀원에서 갖은 YMCA영성분과 연구모임에
초청된 윤종모 교수(성공회대학교)의 발제와 토론을 요약한 내용으로 설명을 요하는 부분
은 '나무마을 윤신부의 치유명상'(2003년 정신세계사 펴냄)저서를 참고하였습니다.

나무마을 윤신부의 치유명상

윤종모 저 | 정신세계사 | 2003년 06월

책소개
성직자이자 대학에서 상담과 심리치료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치유의 관점에서 바라 본 명상을 이야기한다. 치유명상의 다양한 기술들을 이용해 영적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두려움을 물리치는 방법들과, 인생을 관조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영성의 성숙을 이끌어 주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깨닫는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삶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소박한 수단으로 깨달음을 권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삶에서 깨어나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즐거운 여정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가능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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