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과부’가 늘어난다
지난 6월 서울 봉천2동의 한 아파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주부 10명이 모였다. 이들은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동기들이다. 다과를 겸해 마련된 이날 자리에서 ‘공공의 적’은 주부들의 전통적인 뒷담화 대상인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아니었다. 이날의 공공의 적은 ‘스마트폰’인 것이다. 모인 주부들 가운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남편을 둔 주부가 무려 8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인인 주부 김모씨(29)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김씨는 “두달 전 남편이 휴대폰을 아이폰으로 바꾼 뒤 6개월 된 아기의 육아가 온통 내 몫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출산 직후엔 남편이 퇴근 후 청소도 도와주고 아기가 예쁘다며 일찍 퇴근도 하더니 아이폰을 산 뒤엔 각종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쓰느라 모든 일이 다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하소연했다.

남편과의 대화가 원활치 못하다는 원성도 있었다. 이모씨(33·서울 방배동)는 “남편과 대화가 안된다. 입만 열면 온통 스마트폰 얘기인데 내가 알아 듣지 못하고 관심도 별로 없으니 나와 얘기하기보다는 인터넷 포털의 스마트폰 카페를 둘러보면서 퇴근 후 시간을 다 보낸다”고 토로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부부싸움이 늘어났다는 얘기는 스마트폰을 쓰는 남편을 둔 주부들의 공통된 의견. 한 주부는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한 것도 모자라 집에 와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남편 뒤치다꺼리까지 하려면 짜증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다”며 “스마트폰이 좋으냐, 내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아무 대답이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모인 주부들이 스마트폰에 대한 원성이 높은 이유는 이들의 출산 시기와 무관치 않다. 주부들 대부분은 지난 1월 출산을 했다. 한창 스마트폰 바람이 거셀 때 출산을 했고 이후엔 육아에 여념이 없었던 터다. 때문에 아이폰 등 스마트폰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던 반면 남편들은 주위 지인들과 만나면서 스마트폰을 사고 또 스마트폰 재미에 푹 빠져버렸던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다수가 남자들이라는 점도 주부들이 ‘스마트폰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아이폰이 출시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시장조사기관 아틀라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이폰 사용자 가운데 남성 비율은 75.4%였다. 여성 비율은 24.6%였다. 특히 아이폰 사용자의 20대(48.4%)와 30대(34.7%) 비율은 전체의 80%가 넘는다. 이처럼 갓 결혼했거나 예비 아빠들이 스마트폰의 주 사용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 41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한 포털(아이폰&아이패드 사용자 모임)의 카페가 최근 발표한 회원들의 남녀 성비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81.4%가 남성이고 여성은 18.3%에 불과했다. 남성들이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계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다.

한편 이날 산후조리원 동기들 모임에선 회사에서 나눠준 스마트폰 때문에 남편의 업무가 늘어났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모씨(33·서울 흑석동)는 “퇴근 후에도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메신저를 들락거린다”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물으면 ‘일 때문’이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무슨 일을 퇴근 후에도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따지자 요샌 스마트폰 때문에 ‘밖에 있어서 메일 확인 못했다’는 변명이 안 통한다고 답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또 스마트폰을 아직 구매하지 않은 2명의 주부는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절대 바꾸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hong@fnnews.com홍석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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