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군
2010. 10. 22. 08:05
2010. 10. 22. 08:05
- 세상 규칙을 깨뜨리고, 거꾸로 뒤집어라
-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엘도라도, 2010) - 2010년 10월 21일 (목) 16: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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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What I wish I knew when I was 20)’ 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의 한국어판에는 '스탠퍼드대 미래인생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몇 살에 해야 할 일이라는 유행을 따른 듯한 제목과 해외명문대를 거론하는 부제까지 겹쳐져 상당히 통속적이고 무난한 내용을 다른 처세술책처럼 보이는 이 책은 실상 무척이나 새롭고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인 티나 실리그(Tina Seelig)는 스탠퍼드 의과대학에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가 몸담고 있는 일터는 대학병원이나 의학연구소가 아니다. 스탠퍼드 테크놀로지 벤처스 프로그램(Stanford Technology Ventures Program, STVP)라는 낯선 이름의 기업가정신 프로그램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스탠퍼드 대학의 디자인학교와 경영학부에서 기업가정신과 혁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신경과학과 기업가정신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참고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이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 도전하는 창업자나 새로운 일의 창시자를 의미한다. 그녀가 신경과학을 전공한 의학자로서 처음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던 것은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부즈앨런해밀턴에 입사할 무렵이었다.
신경과학과 경영학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면접관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두 분야는 연구 및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비슷하다. 즉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고, 가장 흥미로운 결과를 선별해내고, 설득력 있는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또 다른 문제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조금 엉뚱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다른 경영학도 또는 MBA 출신의 경영 컨설턴트들과는 조금 다른 인물이었다는 점이며, 당연히 다른 경영 컨설턴트들과는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그러했다.
이 책은 그녀가 스무 살을 맞이할 아들을 위한 정리한 것들을 묶은 것이다. 그녀는 아들에게 세상의 규칙을 깨뜨리고, 거꾸로 뒤집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많은 어머니들이 아들에게 원하는 것과 거리가 먼 이런 충고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미국이라는 사회가 우리보다 먼저 ‘새로움을 추구하고 만들어내지 못하면 안 되는’ 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아직 세상의 규칙을 잘 배워서 잘 따르고, 주위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반면 그들의 사회는 이미 그런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대부분의 삶을 살게 될 앞으로의 대한민국 사회는 과연 어떨까 고민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렇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삶이 더 가치 있으며, 세상에 필요한 더욱 많은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의 소중한 아들에게 그러한 삶을 충고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중 하나는 ‘문제가 크면 기회도 크다’는 것이다.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그녀는 5달러가 든 봉투를 나누어준다. 그리고 팀별로 주어진 시간 동안 그 5달러를 가지고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낸 후 30분 동안 발표하라는 과제를 냈다.
이제 각 팀의 학생들은 그 5달러를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기 시작한다. 그 5달러로 우산을 몇 개 사서 비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은 학생들을 다음 강의실까지 데려다 준 팀도 있고, 그 5달러로 재료를 구입해 주스를 만들어 판매한 팀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큰 수익을 올린 팀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가치를 만들어낸 팀이었다. 그들은 봉투 속의 5달러가 아니라 자신들이 발표하는 30분의 시간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제공해 돈을 벌었다. 즉 스탠포드 대학의 인재들을 채용하고 싶어 하는 회사를 찾아내, 과제발표 시간 30분 동안 그 회사를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발표하기로 하고 많은 돈을 받아낸 것이다!
기회는 문제에서 온다.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거나, 생과일 주스가 먹고 싶다는 문제에 비해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회사의 문제가 훨씬 더 컸으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자신들이 가진 한정된 자원 내에서 발견해낼 수 있었기에 그 팀은 가장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을 뒤흔들고 발전시키는 새로운 가치란 이렇듯 새로운 관점과 접근을 통한 도전을 통해 만들어지기 마련이라고 티나 실리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아야 한다. 나의 주위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그 문제는 기존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에 문제로 남아있는 것이다.
자, 이제 스무 살의 ‘나’는 그 문제를 어떤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문제로 남겨둘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나의 삶을 보람차게 살아가고, 세상을 바꿀 힘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문제에 도전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에 있다는 것이다. 짧지만 깊이 있고, 상투적인 제목이지만 무척이나 새로운 책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서 새로운 도전의 희망을 발견해보자.<박범준/바람도서관 관장>
※ 박범준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무선인터넷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결혼 후 산촌생활을 결심하고 도시를 떠난다. 여행하듯 살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상과 만나는 매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서다. 대전, 무주, 광양을 거쳐 지금은 바람의 섬 제주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제주에 살면서 거문오름 근처 와흘리 전원마을에 여행을 주제로 하는 작은 문화공간 ‘바람도서관’을 만들었다.
지난 2005년 아내 장길연과 무주산골 생활의 삶과 생각을 엮은 책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펴냈으며, 2008년부터 경향신문에 생태칼럼 ‘살데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