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간식·장외주식·미술품 등 ‘틈새 공구’로 진화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24 00:20 수정 2021.04.24 02:02 | 733호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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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구매 열풍 - 산업 지형 변화
유통 공룡 롯데그룹의 롯데홈쇼핑은 지난달 15일 ‘인플루언서 커머스’와 ‘셀럽 라운지’라는 이색 서비스를 출시했다. 인플루언서(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가 생방송으로 소비자의 SNS 계정과 연계, 특정 상품을 단기간 공동구매 특가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온라인 팬층이 두터운 인플루언서가 공동구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최근 트렌드를 홈쇼핑 방송 노하우와 접목했다”고 말했다.
그루폰·티몬 등 1세대 이후 변형
사전 주문형 크라우드 펀딩 급성장
롯데·신세계 등 이어 포털도 진출
해외에서도 공동구매 열풍 거세
중 핀둬둬 고객 수, 알리바바 추월
이에 맞선 신세계그룹은 SSG닷컴을 통해 ‘우르르’라는, 공동구매에서 파생된 사전 주문 서비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일정 기간 최소 인원이 충족돼야 배송을 시작하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수년 전부터 중국에서 유행한 쇼핑 플랫폼의 방식을 벤치마킹해 2018년 하반기 출시했다. SSG닷컴은 올 1월까지 총 1400건의 우르르 펀딩을 진행, 약 50%가 성사됐다고 밝혔다. 초기 성공률이 16%였던 것을 고려하면 소비자 호응이 그만큼 뜨거워졌다.
각양각색의 공동구매를 통한 소비 트렌드가 급부상하면서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통업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분야에 도전장을 던진 양대 포털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공동구매 시장 개척에 푹 빠졌다. 공동구매를 통해 e커머스 시장에 빠르게 진입하겠다는 의도다. 카카오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톡딜’로 승부하고 있다. 친구·지인 등 2인 이상만 모이면 할인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는 서비스다. 네이버는 일본 자회사 라인의 라인 메신저를 통한 공동구매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네이버는 6월 쇼핑몰 구축 솔루션 ‘스마트스토어’를 일본에 선보이고 글로벌 e커머스 시장 진출을 선언할 계획이다.
전 세계 크라우드 펀딩 작년 100조원
업체 입찰을 통해 교복을 할인된 가격에 단체로 맞추는 등 과거 오프라인에서 유행했던 공동구매는 인터넷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고, 스마트폰이 등장한 200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에서 소비 방식의 하나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2008년 설립된 미국의 그루폰이 전 세계의 이런 온라인 공동구매 붐 조성에 선구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루폰은 웹사이트에서 지역별로 특정 상품을 시중가보다 훨씬 싸게 제공하는 공동구매 딜(deal)을 제시하고, 쿠폰을 제공하는 등 전에 없던 사업 모델(소셜 커머스)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세계 최대 소비 시장 중국이 즉각 영향을 받았다. 2010년에만 1215개의 공동구매 웹사이트가 중국에서 생성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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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2010년 티몬(티켓몬스터)과 쿠팡 등 그루폰을 벤치마킹한 1세대 소셜 커머스 기업들이 설립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이들은 초기에 그루폰처럼 지역 상품 중심의 공동구매 딜과 반값 쿠폰으로 국내 소비자들을 모으고 사업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염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품질 저하 논란이 잇따르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쿠팡 등은 2010년대 중반부터 중간 유통 단계를 건너뛰고 보유 고객을 바탕으로 공동구매 상품을 싸게 직매입한 다음 직접 팔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챙기는 새로운 사업 모델로 승부, 수익성 강화와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김근우 티아이미디어 대표는 “1세대 공동구매가 단순히 완제품을 ‘규모의 경제’를 통해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개념이었다면, 이후로는 품질도 중시하는 개인 취향 맞춤형의 변형(變形) 공동구매가 인기를 끌게 됐다”고 분석했다. 고가 화장품을 여럿이 같이 산 다음 나눠 쓰는 ‘소분’의 유행이 대표적 사례다. 예컨대 색조 화장품은 소비자마다 찾는 컬러가 다른데, 최소 몇 종류가 필요한 상황에서 고가 완제품을 모두 공동구매하기는 부담스러울뿐더러 쓰다가 남으면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크다. 이와 달리 화장품을 소분하면 각자가 필요한 컬러를 필요한 만큼만 얻으면서도 품질과 가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이 같은 변형 공동구매는 포털 커뮤니티와 블로그에 이어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가 대중적인 소통 창구로 떠오르면서 기세를 더했다. SNS에서 인플루언서가 자신을 ‘팔로우’한, 서로 취향이 맞는 공동구매단을 모집하면 같이 상품을 사거나 이후 나누는 식이다. 산업계에서 롯데홈쇼핑 등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공동구매 서비스 도입 사례가 늘어난 이유다. 이 무렵 공동구매는 크라우드 펀딩으로도 변형됐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기업은 다수 개인의 지원금을 모아 사전 주문으로만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불필요한 비용 발생 없이 재고 처리의 어려움 등을 겪을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도 기업의 부담 전가 없이 정상가 대비 30~50%가량 저렴하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 전문 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신세계 같은 대기업까지 이 분야 포섭에 나선 배경이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15년 334억 달러였던 세계 크라우드 펀딩 시장 규모는 지난해 900억 달러(약 100조원)까지 커진 것으로 추산된다. 킥스타터(미국) 등 기존 강자들이 건재한 데다 후발주자가 대거 가세해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이제 온라인 공동구매는 ‘이런 것까지도 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부 분야 또한 다양해졌다. 장외주식의 소액 공동구매가 가능한 ‘엔젤리그’, 반려동물 업계 최초로 공동구매 플랫폼을 구축해 반려견용 간식 등을 구할 수 있게 한 ‘애니콩’, 미술품의 소유권 공동구매를 진행한 다음 미술품을 재판매해 그 수익을 배분해주는 ‘아트앤가이드’ 등 틈새시장을 노린 스타트업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공동구매 플랫폼 스타트업 늘어
해외에서도 공동구매 열풍은 거세다. 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직접 보고 구매하기보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빈도가 한층 늘었는데, 이왕이면 여럿이서 구매 경험을 쉽고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구매 상품을 더 신뢰할 만하다는 분위기가 퍼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에선 초저가 공동구매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운 핀둬둬(拼多多, 2015년 설립)라는 후발주자가 지난해 안방에서 총 구매 고객 수 7억8800만 명을 기록, 기존 공룡 알리바바와 징둥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황선명 삼성증권 연구원은 “핀둬둬는 혼자 구매할 때와 공동구매할 때의 가격을 비교해 실시간 보여주고, 12억 중국 인구가 쓰는 메신저 위챗과 손잡아 소비자가 위챗에 공동구매 링크를 쉽게 공유하게 하는 전략으로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분석했다. 이에 징둥이 공동구매 플랫폼 강화를 위해 배달 업체 ‘다다 넥서스’에 약 9000억원을 투자하기로 최근 결정하는 등 중국 산업계 지형도마저 흔들리고 있다. 공동구매 열풍을 기회로 삼으려 하는 한국 기업도 참고할 만한 사례라는 분석이다.
“꼭 필요한 것만 찾는 가치소비 시대, 공구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발전”
신혜성 와디즈 대표
“유형의 제품 위주에서 무형의 서비스 콘텐트 제공이 크게 늘어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신혜성 와디즈 대표(사진)는 공동구매에서 파생된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변화상을 이같이 진단했다. 신 대표는 국내 크라우드 펀딩 시장점유율 1위 업체 와디즈 설립자다. 2012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현재까지 누적 중개액 4910억원, 누적 프로젝트 2만7500건을 넘어서면서 국내 크라우드 펀딩 열풍을 주도했다.
일반 공동구매와 크라우드 펀딩은 정확히 뭔가 다른가.
“크라우드 펀딩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제품·서비스에 고객들이 후원·투자해서 소비하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고객·제품마다 다양한 니즈가 결합해 펀딩이 진행된다. 또 기업들이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테스트 마켓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구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분별된다는 점에서 공동구매의 장점도 포괄하고 있다. 공동구매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관점에 따라 비슷하게 보일 순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공동구매 트렌드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빠르게 이동한 배경은.
“최근 소비자들은 금액이 크든 작든 스스로 꼭 필요한 것만 찾는 ‘가치소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개인 취향 맞춤형 제품·서비스 중심의 크라우드 펀딩이 인기를 끌게 됐다. 메이커(기업) 입장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은 소비자 니즈 파악뿐 아니라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 이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존 같은 공동구매 방식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없었나.
“제품·서비스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예상보다 더 소요될 수도 있고, 기획한 의도와 조금은 차이가 발생할 때도 있다. 이를 두고 오해가 적잖았다. 메이커와 소비자 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보고 서비스를 개선해나갔다. 예컨대 오프라인에서 고객들이 펀딩 제품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체험샵(‘공간 와디즈’)을 열었다. 또 온라인 쇼핑 수준의 펀딩금 반환 정책을 지난해 새롭게 도입해 고객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고객이 요청하는 정보를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투명성 보고서도 현재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현재 크라우드 펀딩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나.
“과거엔 제품 중심의 리워드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면, 요즘은 출판·공연·여행 등 무형의 콘텐트가 많이 제공되고 있다. 100명이 모이면 전세기를 띄우는 신개념 여행 펀딩이 등장했는가 하면, 팬덤이 스타를 지원하는 팬슈머 관점에서의 펀딩도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뿐 아니라 여성 CEO, 그린(친환경) 메이커 등의 새로운 시도에 펀딩이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크라우드 펀딩 수요는 한층 다양한 영역에서 창출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와디즈의 대응은.
“제품·서비스의 품질 강화와 다양화가 중요하므로 스타트업에 자금 조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동반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해 직접 투자 역할을 강화한 ‘와디즈파트너스’를 신설하면서 예비 사회적 기업 등에 투자하는 ‘와디즈유니크밸류’라는 펀드를 결성했는데 1년 반 만에 15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진행됐다. 올해는 메이커 전반의 성장을 지원하는 ‘메이커 스케일업 펀드’를 100억원 규모로 조성할 예정이다. 아울러 서비스 고도화와 책임 중개 강화를 위해 법인 분리를 준비하는 등,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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