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녹두꽃' 마지막회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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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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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대를 진두지휘하는 대장 백이강은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의병대 대원들과 매복해있다

공격 싸인을 주기 전에 그가 의병대를 향해 외친다

"우리가 누구~?!" "의병~~"

"사람은 머~?!" "하늘~~"

선봉에 선 백이강은 서릿발같은 용호의 눈빛으로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돌격한다

"자, 가자~~~"

이것이 마지막 엔딩장면이다.

드라마 '녹두꽃'

48부작 대장정을 무사히, 아니 훌륭하게 마치고

드디어 끝이 났다.

끝까지 드라마 '녹두꽃'은 멋졌다

대하드라마라는 길고긴 분량 속에서도

스토리텔링은 탄탄했고, 인물들도 중심을 잃지 않았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단연 으뜸으로 빛났다

조정석이라는 배우는 완벽하게 백이강이었다.

우금티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싸우자고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나.

처형길에 오른 녹두장군을 마지막 배웅하면서

피눈물로 결의에 찬 맹세를 하는 장면이나.

동비해서 얻은 것이 뭐냐고 묻는 부친 백가를 향해

"사람으로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라고 답변하면서

단단하게 빛나던 눈빛도.

감옥으로 찾아온 이현과 등지고 앉아

마지막 대화를 나눌 때의 냉소와 질시의 표정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의병대 선봉에 서서 돌진을

외칠 때의 칼날같이 단호하고 매서운 눈빛 연기까지.

조정석은 없고, 백이강만 있었다.

녹두장군도 마찬가지.

송객주가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는

실제 전봉준장군과 싱크로율 백퍼일 정도로

표정이나 눈빛이 거의 흡사했다

"녹두꽃은 이미 수없이 보았다

삼례에서 우금티에서, 또 지금 내 눈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는 이강에게 그는

또 다른 수많은 녹두꽃들이 되어 싸워주길 당부했다.

"나는 속지 않았고, 자네는 속았어.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일본에게.

진짜 속았던, 속은 척을 했던 건 간에 어느쪽이든

자네가 개자식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걸세."

옥사로 찾아온 이현을 조소하면서 냉엄하게 한방 날린 대사.

"부탁이 있소. 내 귀를 좀 씻어주오.

가는 길에 개소리를 너무 들어 더러우니.."

처형 직전 마지막 순간의 대사까지 너무 멋졌다..ㅎ

장례길도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는 최경선대장도

조연 아닌, 조연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내 눈에 멋졌으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ㅎㅎ

다음 이미지

이현에 의해 최후를 맞는 황진사도 열연했다.

양반이라는 기득권을 놓지 못하고

내적 갈등을 그리도 열심히 하더니,

의병대 포로가 되어 이현과 피할 수 없는 재회를 하는 자리에서

살아서는 이현을 용서할 수 없고, 사과도 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이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이 나라를 망친 것은 양반인 나와

모리배인 너같은 놈들이다"

그나마 늦게라도 깨달았으나

말 그대로 너무 늦었다

이현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던 건 사실이니까.

황진사와의 마지막 대면에서 이현은 절규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야~!!"

그래서 백이현이 모자란 놈이다.

본인이 못난 걸, 남 탓이나 하고 있으니.

황진사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는 건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자.

그러나 이현의, 신분차별에 대한 부당함과 양반에 대한 분노는

얄팍하게도 사적인 복수심으로 삐딱하게 치닫고 만다

누구의 탓도 아닌,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그는 스스로 도채비가 되어 무고한 창의군들을 학살했다.

문명을 빌미삼아 오니라는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죄없는 민초들은 수없이 죽어갔고 우금티전투는 완패했다.

도채비도, 오니도, 결국은 그가 선택한 제 인생이니

결국 지 인생,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당연치 아니한가.

그러나 이현은 끝까지 못났다.

스스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면서 아버지 백가에게 말했다.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죽으면서는 아버지 백가를 비꼬고 원망한 것이다.

황진사는 자기 인생 망쳤고, 아버지는 지 목숨 끊게 만들었다고.

ㅉㅉㅉ....

남 탓하지 말지어다.

지 인생 지가 사는 것이고, 결국 그렇게밖에 살지 못한 건

지가 그만큼밖에 안되는 놈이기 때문이다.

'유약한 인텔리 멘탈'이라는 변명도 구차하다

그의 죽음에 동정도 아까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음 이미지

백가네의 몰락은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다.

"세상은 거시기, 도채비로 살아야 되는 것이여"

"동생을 위해 자결을 혀. 형 노릇 지대로 하고 가"

아무리 고쳐 들어도, 아비가 자식한테 할 말은 아니다.

아니, 사람이 사람한테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백가가 누렸던 짐승만도 못한 삶의 귀결은

결국 정승아버지를 만들어주리라 기대했던 아들의 자살이었다.

그것도 바로 제 눈 보는 앞에서.

그는 과연 아들을 자식으로 사랑했을까.

한놈은 정승아버지 만들어줄 놈이고

한놈은 그런 동생을 위해 자결해 줄 놈이고.

백가에게 있어 이현과 이강은 자식이 아니라, 자식이기 전에,

정승아버지라는 위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들이 아니었을까.

다음 이미지

이 드라마의 백미이자, 꽃.

바로 송객주와 명심아씨이다.

송객주는 워낙에 당찬 인물로 그려졌고,

끝까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주목할 인물은 명심아씨이다.

양반댁 규수로, 참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생각과 행동에 주관이 뚜렷한 모습은 살짝 의외였다.

그녀는 황진사의 극심한 반대에도 이현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지킨다.

"기다리겠습니다. 언제 어디서건

도련님이 오시는 길이라면

거기, 서있겠습니다"

용감하게 사랑을 지킨 명심아씨를 먼저 배신한 건 이현이다.

도채비 근성을 들켜버린 이현은 뒤도 안돌아보고 명심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훗날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돌아와서

마지막 한 올 지푸라기를 잡듯 명심을 찾아온다

"당신만큼은 날 달리 대해줄 줄 알았는데..."

그러나 변절한 이현 앞에서 명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고통스러워한 것은 백이현이지, 당신이 아니오.

내가 사랑했던 백이현은 죽었소.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니까"

이 멋진 두 여성은 이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의병대가 된다

송객주는 돈을 버는 의병대가 되고

명심아씨는 학당에서 교육하는 의병대가 된다

다음 이미지

비록 녹두장군은 가고 없지만

그가 뿌린 수천의 녹두꽃들은 지지 않고 피어나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투사들이 된다

그 선봉에 백이강이 서있다.

"우리는 비록 패했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저 백이강이라는 녹두꽃이었다.

수천이 모여 이룬 녹두꽃들은

인내천의 평등세상을 꿈꾸고 열망했던

민초들의 분노였고 함성이었고 절규였다.

다음 이미지

"전쟁은 증오가 만들지만, 혁명은 사람이 만든다"

녹두장군의 말대로, 동학은 이미 혁명이었다.

그리고 지금,

더이상은 전설로 남은 미완의 혁명이 아니다.

대한독립투쟁으로 이어졌고,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2016년 박근혜탄핵촛불로 타올라

2017년 문재인대통령 당선까지

인즉천의 세상을 꿈꾸는 민초들의 염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동학 혁명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진행중이며 언젠가는 완성될 그날까지

숭고한 그 정신을 계승해 나가야할

우리 모두의 숙명적인 과제인 것이다.

게다가 요즘 불붙은 일본불매운동!

이 역시 동학 정신의 일환이다.

내 자존심이 곧 내 나라 자존심이다.

내가 지키고 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처형당하는 녹두장군 마지막 순간에

이 노래가 흘러나와서 깜짝 놀랐다.

대학 때 민중가요로 불리던 노래였는데

공중파 드라마에서 BGM으로 듣게 되다니...

알기로는, 김남주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로 알고 있다

지난 13일 조국수석 또한 녹두꽃 드라마를 보는 중에

이 노래가 나와서 페북에 올렸다가

또 한번 씨끌벅적 잇슈가 되었던

그 죽창가...

확실히 세상은 변했다.

역사는 더디지만 앞으로 가게 되어 있다.

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던 선배 생각도 나고

어깨너머로 주섬주섬 따라 불렀던 생각도 나길래

가사를 옮겨 적어보았다

죽창가 - 김남주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웃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반란이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안치환의 '죽창가' 가사 원문

다음 이미지

드라마 '녹두꽃'.

근래 들어 보기드문 수작이었다.

보는 내내 같이 울고 같이 웃고

슬프면서도 또 기쁘면서

녹두꽃과 함께 뜨겁게 행복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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