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6.25민간인학살 그리고 과거사법 개정

 

 

[민미연 포럼] 자유한국당,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촉구한다
형제복지원, 6.25민간인학살 그리고 과거사법 개정
 
 
만 2년 전의 일이다.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앞에 못 보던 천막이 하나 생겼다. 그렇게 중년의 두 남자는 다리를 펴고 눕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뜨거운 염천의 태양 아래서도, 그야말로 살을 에는 여의도의 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그들은 꿋꿋이 버텼다. 점심은 주로 국회 식당에서 때우는 것 같았지만, 다른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잘 모르겠다. 두 사람의 이름은 최승우와 한종선으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다.

일주일 전 최승우는 6번 출구 지붕 위로 올라가 과거사법이 통과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몸이 간신히 들어가는 작은 움막을 지붕 위에 꾸려 놓고 늦가을 밤의 한기를 가까스로 피하고 있다.  

지붕이 버섯 모양의 곡면이라 가장자리가 낮아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밑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다. 높이도 3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게 아슬아슬하다. 지금도 기력이 많이 떨어졌겠지만, 기력이 더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

최승우는 왜 이런 위험한 일을 자초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과거사법 개정안 때문이다. 이들은 형제복지원 수용의 여파로 가족이 해체되었을 뿐 아니라 지옥에서 벗어난 지 30년이 넘도록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의 투쟁도 이들의 형편에서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우리 가족이 왜 이제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억울한 일을, 고통을 계속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헤어날 수 없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런데 이제 그 인내심도 거의 고갈되어 가는 듯하다.  

이들만이 아니다. 국회 정문 앞에서는 역시 2년 넘게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노인분을 만날 수 있다. 7·80대인 이들은 6.25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자 유족들이다. 그 가운데 한 분이 70대 말인 해남 출신의 곽정례 할머니이다. 이분은 6.25가 터진 직후에 자기 집 부엌에서 변복한 경찰관이 아버지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을 부엌문 뒤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좌익도 아니었고 해남읍에서 자동차 사업을 하며 돈을 잘 버는 사업가였다고 하니, 아마도 사감(私感)에 의한 살인인 듯하다. 여하튼 이분은 지금도 그 절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해 하늘만 쳐다보면 눈물이 흘러 세상이 부옇게 보인다고 한다. 70년이 지났는데도 그렇다. 오죽하면 그 연세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와 국회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간곡한 호소를 할까.  

곽 할머니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다 그렇다. 역시 여든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떤 남자 노인분은 대소일가의 성인 남자들이 다 학살당하자 할머니나 어머니가 그 한으로 세상을 뜨고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아이들은 굶고 병들어 죽어 집안이 통째로 무너졌다고 한다. 이 분은 할 수 없이 10대부터 남의 집 머슴 일을 해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평생을 어렵게 살아왔다고 한다.  

이 민간인 학살자 유족들이 매일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도 그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원과 한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서이다. 오랜 세월 동안 부모와 가족을 잃은 상실감 속에서, 지속적인 빈곤 속에서, 또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며 모멸감 속에 차별받아온 인생을 지금에 와서 천만금을 받은들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겠나.  

다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함께 국가가 자국민에게 행한 불법적 폭력행위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 부모나 내가 잘못된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해 회복 못 할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려 큰 상해를 입혔을 경우 때린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 용서를 하든 어떻든 문제 해결의 단초가 열리는 것 아닌가.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개정안에는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위원회에서 다루지 못한 한국전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이나 군사독재 하에서 벌어진 여러 인권침해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이번 개정작업에 따라 제주도 4.3특별법의 개정작업 등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반드시 개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그들도 말로는 '과거사 정리 문제가 진영논리로 인해 자유한국당이 무관심하거나 비협조적인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며 '과거의 잘못된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국민에 대한 진상규명과 필요한 경우 국가가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보상 조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떠든다.

그러면서도 과거사의 객관적 진상규명을 위해 진상조사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조사위원 구성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논의 지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또 기획재정부가 배·보상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등의 이유로 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을 내세우며 '과거사 진상은 밝혀져야 하나, 보상에 따른 재정 문제도 감안해야 한다'며 개정안 통과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중립성 강화라는 것은 핑계일 뿐이며 그것이 정 문제라면 더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여 합리적으로 고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또 배·보상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실제로 여당 쪽은 5년이고 10년이고 간에 분할지급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그렇게 분할지급하면 액수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 피해당사자들의 경우 배·보상이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현재로 반드시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먼저 진상규명이 되어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배·보상이 가능할 것 아닌가.  

만약 이대로 해가 넘어가면 그 후에는 내년 봄의 총선거 때문에 여나 야나 이 문제를 다룰 여지가 없을 것이고 이 개정안은 그대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민간인 학살사건의 유족들은 이제 7·80대의 고령이라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도 없는 지경이다. 또 인권침해 사건들 피해자들의 고통도 한계를 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더 이상 해결이 지연된다면, 국회 앞에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그런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면 국회는 다시 한번 국민들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고 과거사법 통과를 막은 자한당이 그 책임의 대부분 뒤집어쓸 것이다. 총선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은 당연하다. 자유한국당이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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