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국제협약을 제일 안 지키고 세계평화를 자주 위협하는 ‘불량국가’는 어디인가? 단연코 미국과 일본이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은 핵탄두 장착용 중·단거리 미사일을 폐기하고자 중거리핵전력조약을 체결했으나, 트럼프는 올 2월 탈퇴 뜻을 밝혔고 푸틴도 맞대응을 했다. 이는 실제 조약 파기로 이어져 핵무기 경쟁이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트럼프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미국 이익에 반한다”며 2017년 탈퇴를 선언했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려고 전 세계가 마련한 약속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위인 미국이 깬 것이다.
미국의 이런 행태는 뿌리가 깊다. 하워드 진이 쓴 <미국 민중사>를 보면, 미국 정부는 인디언과 400여건이나 조약을 맺고 서명했지만 단 한 건도 안 지켰다. 해마다 수만명이 살상되는 지뢰를 제거하는 협정에 100여개국이 서명했는데 미국은 하지 않았다. 국제적십자에서 ‘집속탄 사용 중지’를 각국에 호소했지만 미국은 거부했다. 집속탄은 수천개 알갱이탄이 쏟아져 인명을 대량살상하는 무기로 미국은 베트남전과 걸프전에서 이를 사용한 전력이 있다. 1999년 로마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서 미국은 상설 국제전범재판소 설립에 반대했다. 미국 군 지도자들이 법정에 설 수도 있음을 두려워한 것이다.
미국은 핵폭탄을 실전에 사용한 유일한 나라다. 한국인은 일본인 다음으로 원폭 피해를 많이 입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징용자가 많아 한국인은 피폭자 7만명, 사망자 4만명에 이르렀다. 미국은 정치경제적 이득을 노려 베트남, 그레나다, 파나마, 이라크,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수십개국을 침공하거나 공작을 벌임으로써 독재정권을 수호하거나 선거로 집권한 정부를 전복했다.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등은 북한, 이라크 등을 ‘깡패국가’(rogue state)라 불렀으나, 미국의 지성 촘스키는 군산복합체인 미국이 바로 깡패국가라고 비판했다.
일본은 전쟁 명분을 조작하거나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작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였다. 청일·러일·중일·태평양전쟁이 모두 그랬다. 태평양전쟁 때도 진주만을 기습한 뒤 포고문을 전달하는 수법을 썼다.
방위비 분담금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둘러싸고 한·미·일이 갈등하고 있는데 두 상대방이 이런 나라임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한·미관계는 ‘혈맹’이라며 동맹이 깨지면 큰일날 줄 아는데, 트럼프에게 ‘혈맹’은 없다.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위해 함께 피 흘려 싸운 쿠르드를 배신하고 철군한 걸 보라.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은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모두에 자해행위’라고 썼다.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에 필요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안보 컨설팅 회사 대표인 피터 자이한을 인터뷰해 “방위비 50억달러? 참 싸다”고 크게 보도했다. 그는 “한국은 일본을 절대 못 이긴다”며 “일본과 손잡지 않으면 국가 생존이 위태롭다”고 ‘컨설팅’했다.
보수언론이 그런 논조를 펴왔는데도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96%가 방위비 증액에 반대했다. MBC 조사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미국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 감축해도 상관없다’는 의견이 55%였다. 보수언론은 이런 여론은 부각하지 않고 정부의 협상 자세를 나무라며 힘을 뺀다. 연애든 협상이든 매달리는 쪽이 불리해진다. 두 나라가 협상할 때 국민의 반대가 큰 쪽이 협상력도 커진다. 이는 정치학자 퍼트넘의 ‘양면게임(Two Level Game) 이론’으로,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내세우면 상대방의 양보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의 GSOMIA 강요는 한·미·일 동맹을 굳히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완성해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웃인 북한이나 중국과는 관계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빅터 차의 칼럼을 통해 한·미동맹이 고장 나면 ‘퍼펙트 스톰’이 닥칠 거라며 겁을 주었다. 그러나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요구가 동맹국을 모욕하고 미군을 용병으로 격하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전담금’ 수준이다. 협상이 결렬돼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한다면 오히려 자주국방의 기회가 올 수 있다.
자주국방이 군비 증강으로 나아가서도 안된다. 문재인 정부 국방예산은, 무기 구입을 강요하는 미국 탓이기도 하지만, 집권 2년반 만에 10조원이나 증가했다. 폴 케네디는 “모든 전쟁의 승자는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였으며 군사적으로 가분수인 나라는 패배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냉전이 사라진 지구의 5대양 6대주에 함대와 군대를 전개해놓고, 남북한은 군비경쟁의 질곡에 빠져 있다. 한반도만이라도 군비감축에 바탕을 둔 평화 정착으로 나아가야 한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안보를 통한 평화보다 평화를 통한 안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 여론도 방위비를 더 부담하면서까지 미군 주둔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니 지금이 주둔군 감축에 참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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