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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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여의도쿠스
대부분의 의원들이 지역구에 가 있던 6월 둘째 주, 한적해진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이들을 만났다. 20대 국회에서 느낀 여의도의 속살과 좌절 그리고 당부를 들어봤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바다에서 어부를 하라고 하면 쉽지 않지요.”
13일 만난 조훈현 의원은 불출마 이유를 묻자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둑계에서 황제로 군림한 ‘조훈현’이라는 이름은 최고의 승부사를 의미했다. 전투적이고 감각적이면서도 빠른 바둑을 뒀다. 수 십년간 대국을 봐온 조훈현의 ‘수읽기’가 정치계에선 어떻게 통할지 궁금해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조 의원의 결론은 “바둑과 정치는 너무 다르다”였다. 그는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며 몇 차례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든 야든 언제나 100% 맞는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당에서 ‘이거다’ 하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바둑에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상대의 수를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제일 중요한 건 상대를 이겨야 하는 거다. 좋다. 나도 승부사다. 그런데 바둑에서는 상대가 좋은 수를 두면 그걸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신을 발전시킨다. 그런데 여기는 상대가 한 것은 무조건 반대하거나 바꾸려고만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승부가 안 되고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봐 온 승부의 세계와는 너무 다르다.”
계파 문화에 대한 마음고생도 털어놓았다.
“나는 어느 그룹에도 속한 적이 없었다. 새누리당이 쪼개질 때 세미나나 연구회 등 참여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갔더니 나를 ‘비박’이라고 분류하고, 또 어떤 모임을 갔더니 ‘친박’이라고 하더라. (웃음) 정치가 이런 거였나 싶다. 이제 여의도 셈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조금 알겠다.”
카메라 유무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의원들의 모습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카메라 앞에선 칼만 안 들었지 자칫 칼부림이 나겠다 싶었던 사람들이 카메라만 빠지면 ‘이제 회의를 시작하자’고 하더라.”(웃음)
“시쳇말로 못 해 먹겠다.”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는 이유를 묻자 제윤경 의원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내뱉었다.
제 의원은 20여년간 에듀머니ㆍ주빌리은행 대표 등 ‘서민 금융 전문가’로 활약했다. 국회 입성 후엔 민주당 원내부대표와 원내대변인을 지내고 부실채권 소각 등을 주도하는 등 의욕적인 의정활동을 펼쳤다. 한편으론 지난해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은산분리에는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같은 국회 환경에서는 무엇을 더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불출마 결심을 재차 강조했다.
제 의원은 국회의 개혁대상 1호로 의사일정을 꼽았다.
“1년에 단 한 번 정기국회를 열고 국정감사를 할 수 있다. 그 외 임시국회는 여야가 의사일정을 합의해야만 열 수 있다. 애초에 매달 정기국회를 열도록 했으면 매달 의사일정으로 합의하느라 시간을 끌지 않아도 된다.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데 공감하는 의원들이 많은데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그가 법안 심의 절차도 국회의 효율성이 떨어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법안 심사대상을 각 상임위 간사들이 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위원장이나 간사에 따라 같은 법안이라도 운명이 바뀌곤 한다. 게다가 법안소위에서 누군가라도 반대하면 심사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보류되다가 폐기처분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발의한 법안은 일단 심사까지는 보장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제 의원도 20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한 ‘죽은채권부활금지법’이 아직 보류된 상태다.
이와 더불어 그는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자료를 요구해도 행정부에선 ‘그런 자료 안 만든다’고 발뺌하면 그만이다. 밖에서는 국회가 대단한 권한을 가진 것 같지만, 여전히 정부에 비하면 미약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마약도 이런 마약이 없다. 한 번만 (국회의원) 하고 본업으로 돌아간다던 사람들이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더라.”
이상돈 의원은 중앙대 법대 교수 시절부터 정치권에 쓴소리를 자주 던졌다. 한국 정치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꾸준히 모색한 학자 군에 속한다.
그는 한국의 국회의원에 대해 ”미국이나 일본을 제외하면 사회적 대우나 급여 등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여기저기서 대우받고 비서를 9명씩 두고 국비로 봉급을 받으면서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권력이 있다는 걸 재미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구름 위에 사는 거라고 보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이 되어보니 계속 당선되려면 당이 중요하더라. 당은 모든 정치인에게 공천을 주긴 어렵지만 죽이기는 쉽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당의 요구를 거스르기 어렵다.”
그는 이어 “양극화를 억제할 수 있는 의원들이 설 땅이 없어졌다”며 “유승민, 남경필, 김성식 같은 사람들은 전부 비주류밖에 안 됐지 않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국회의원은 당론의 소총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또 “국회의원의 일상을 보면 너무 한심하다. 어느 나라 정치인이 아침부터 조기축구하고, 기사 식당을 돌고, 재래시장을 찾느냐”며 “미국도 지역구 유권자와 만나는 타운홀 미팅이 있지만 이건 유권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지역 현안을 토론하는 자리다”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유성운ㆍ현일훈·이근평 기자 pirat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마약도 이런 마약 없다" 조훈현·제윤경·이상돈 여의도서 짐싸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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