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남정호 기자
승인 2019.06.2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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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 ‘민심 그대로’의 국회 개혁·새로운 정치세대의 등장
촛불혁명의 시대정신 계속돼…공정·양극화 해소·리셋·참여·분권
이념·세대·계층 간 갈등으로 분열된 국민통합과 공생도 제시돼
치우친 시대정신 규정은 위험…‘탈이념적 다양성의 존중’ 필요





ⓒ뉴시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어느덧 10여개월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에 앞서 정치권은 저마다의 시대정신을 제시하며 프레임 짜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시대정신은 매 선거 때마다 표심을 가르는 주요 포인트가 돼왔다. 때문에 각 당은 선거에 앞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전략을 내놓기 위해 고심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제시된 이른바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은 지난 2017년 19대 대선을 강타했다. 적폐청산, 공정, 양극화 해소 등의 시대정신은 이후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차에 치러지는 내년 총선에서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이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정신이 제시될지에 대해 관심이 모이고 있는 가운데, <투데이신문>은 내년 총선에서 제시될 시대정신에 대해 시민사회와 정치학자, 정치평론가 등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세대교체…민심 그대로의 국회 재구성·시대변화에 맞는 정치세대 등장해야

21대 총선의 시대정신에 대해 시민사회와 관련 전문가들이 제시한 다양한 의견 가운데 먼저 ‘세대교체’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있다.

참여연대 박정은 사무처장은 내년 총선의 시대정신으로 시민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국회의 재구성을 꼽았다. ‘개혁이냐 아니냐’,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현재 있는 그대로의 민심이 반영돼야 하고, 이 같은 국회 개혁이 촛불혁명의 완성이라는 설명이다.

박 사무처장은 “저희는 한국사회 개혁의 병목지대가 국회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물론 그게 청와대나 정부가 잘한다는 뜻이 아니라, 개혁이나 민생에 관한 논의 자체가 정쟁으로만 변해버린다. 뿐만 아니라 선거법의 경우도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룰을 결정하면서 바뀌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득권에 상당히 유리한 현행 선거제도로 인해 실제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수를 거대 양당이 가져가고 있고,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성에 치우친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유권자 다수를 대변하는 구조가 전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며 “그래서 국회를 어떻게 재구성하는가, 한국의 시민사회를 부정하고 있는, 시민의 대표성으로 국회를 재구성하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세대교체를 시대정신으로 지목한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4차산업혁명 시대로 대변되는 시대변화에 맞는 새로운 정치세대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지목했다.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새로운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정치 세대가 나타나야한다는 것이다.

이종훈 평론가는 “과거 5.16 군사쿠데타 이후 등장한 군부엘리트, 관료엘리트 출신을 지나 현재는 민주화 운동세대가 성장해 집권세력을 구성하고 있는데, 다음 세대는 누가 리드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라며 “이미 운동권 세력들도 기득권 세력화돼 버린 거다. 그래서 이들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대체해 앞으로의 새로운 사회변화, 경제발전을 이끌 세대들이 등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제까지는 적폐청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그야말로 공유다”라며 “사유를 전제로 하면 가진 자와 안 가진 자가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유사회로 가게 되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조금 더 공동체적인 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라 봐야 한다. 정치조직, 사회조직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 사회는 그러한 사회로 넘어가기 임박한 단계로, 그 욕구가 팽배하다”며 “프랑스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나. 마크롱 대통령의 당 ‘전진하는 공화국’도 정당기반이 하나도 없었는데 총선에서 대거 당선됐다. 우리도 그런 변화가 임박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지난 2016년 11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 모습 ⓒ뉴시스



촛불혁명의 시대정신 여전히 유효

지난 촛불혁명과 2017년 대선에서 제시된 ‘공정’, ‘양극화 해소’, ‘대한민국 리셋’, ‘참여’와 ‘분권’의 시대정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명지대 인문교양학부(정치학) 김형준 교수는 2030세대에서는 공정을, 4050세대에서는 경제적 양극화 해소와 평화를 시대정신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2015년부터 최근까지 SNS상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을 해보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게 ‘공정’”이라며 “문제는 최근 조사에서도 시대정신으로 공정이 나오는 거다. 그 말은 여전히 이 정부도 공정에 대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더 아픈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4050세대의 경우에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소득불균형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지목했다. 이와 함께 제시한 평화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가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이 나면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런 부분들이 나이 든 사람일수록 이젠 안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화가 중요한 시대정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적폐청산을 포함한 대한민국 리셋이 21대 총선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촛불민심이 일부 변화하기도 했지만, 내년 총선에서 여전히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엄 소장은 “촛불민심이 문재인 정부에 요구한 것이 대한민국 리셋이라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을 새롭게 세팅해달라는 게 민심이었고, 그것의 일부가 적폐청산으로 나타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여론조사 결과나 자유한국당에 대한 메신저 거부현상을 보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촛불민심이고, 그에 따른 적폐청산을 포함한 대한민국 리셋에 대한 요구가 가장 클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윤종빈 교수는 ‘참여’와 ‘분권’을 시대정신으로 지목했다. 촛불혁명 이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제임과 동시에 공정, 갈등, 통합 등의 과제를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먼저 참여와 관련해 윤 교수는 “국민들이나 유권자들의 참여욕구를 그동안 대의제가 해소를 못 해줬기 때문에 갈등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참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정치적인 영역의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사회 모든 영역에 있어 중요한 개념”이라며 “국민청원이나 공론화위원회 등에 대한 학자들은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고 얘기한다. 결국 모든 근본은 참여의 확대에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직접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가 가장 큰 시대정신의 개념인 것 같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참여와 함께 시대정신으로 제시한 분권에 대해서는 이원정부제나 정·부통령제 등 분권형 권력구조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분권형 선거제도를 언급했다.

현재의 승자독식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서는 책임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고, 반대편은 비판만 할 수밖에 없지만, 분권을 통해 권력을 공유하게 되면 서로 공동의 책임을 지기 때문에 갈등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나타났던 촛불의 근본적인 원인은 집중화된 권력의 남용이었다.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분권을 지향해야 한다”며 “결국 국회의 권한이 분산되고 책임이 분산돼야 지금처럼 국회공전이나 등원거부가 사라지겠다. 과거보다는 다소 다당제적인 모습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나. 그걸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분권형 선거제도”라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분열된 사회 통합을 위한 국민통합

또한 ‘국민통합’ 역시 내년 총선에서 주요한 시대정신으로 지목됐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이현출 교수는 “내외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갈기갈기 찢어진 국론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민통합과 단합을 이끌어내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며 국민통합을 시대정신으로 꼽았다.

이념, 세대, 계층 간 갈등 등으로 심하게 분열돼 있는 우리 사회를 국민통합을 통해 하나의 시너지로 묶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잘못된 과거 청산을 통한 새로운 한국 건설’이 지난 대선 때의 큰 화두였다. 이를 적폐청산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갈등을 크게 키우는 결과로 비춰져버렸다”며 “그래서 계층, 이념, 진영 간 갈등도 더 두드러지게 된 것으로, 전체 국민의 반쪽만 갖고 정치를 해서는 안 될 문제”라고 강조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채진원 교수는 국민통합과 함께, 남북관계, 정치적 양극화, 경제문제에 있어서의 ‘상생’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했다.

채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유권자들은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을 같이하자는 쪽으로 요구했다”며 “결과적으로 국민통합이라는 것은 상생, 대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상생과 공생, 공존 등을 통해 더 이상 싸우지 말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시키고, 남북 간의 교류를 통한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것이 주된 시대정신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시대정신, 한쪽으로 규정하면 생각 경직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와 더불어 시대정신을 어느 특정한 쪽으로 규정할 경우, 사회가 경직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탈이념적 다양성의 존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임성호 교수는 “요즘 시대가 너무나도 파편화돼 있고,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려다보면 우리의 생각이 경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밝혔다.

좌우의 이념적 논쟁이 점차 거세지는 가운데, 선거에서 어느 한쪽으로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러 측면을 융통성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좌우의 이념적인 논쟁이 거세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는 잘못하면 흑백논리로 흘러가기 쉽다”며 “이건 우리를 상당히 경직되게 만들 수 있고, 급변하는 시대에 부합하기 힘들게 만들 수 있다”고 부연했다.

더불어 “우리의 생각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념의 틀 속에서 그 생각들이 수용, 또는 포용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시대정신을 너무 한쪽으로 규정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탈이념적 다양성의 존중’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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