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 제프 베이조스의 제국
베이조스는 불과 24년 만에 이처럼 초현실적인 부를 거머쥐었다. 인터넷 세상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직감한 그는 월가를 떠나 시애틀의 한 차고에서 맨손으로 창업했다. 문짝으로 만든 책상에서 지구상 가장 큰 서점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불태웠다.
아마존은 닷컴 거품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이 민첩한 독종은 이제 기업가치(7600억달러)가 네덜란드나 터키의 한 해 총생산과 맞먹는 거인이 됐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팔려는 온라인 소매상일 뿐만 아니라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디지털 유틸리티기업으로, 인공지능 제품을 만들고 우주로 가는 길을 여는 미래형 기업으로 거듭났다.
아마존은 디지털 정글의 제국이다. 베이조스는 질풍노도와 같은 제국을 이끄는 가공할 정복자다. 제국을 경영하는 그의 철학은 두 가지 면에서 유별나다. 하나는 시간의 지평이 남다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활동 영역에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오랫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다. 창업 후 20년이 지날 때까지도 미미한 흑자밖에 내지 못했다. 베이조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회사`를 표방했다. 회의 때는 테이블에 빈자리를 하나 남겨두곤 했다. 고객의 자리였다. 그는 "경쟁자에게 집착하지 말고 고객에게 집착하라"는 걸 지상 명령으로 삼았다.
가장 싸게 팔고, 모든 것을 갖춰 놓고, 배송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에 타협은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분홍색 아이팟 4000대를 주문받았는데 갑자기 애플이 제때 원하는 제품을 보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존 직원들은 단순히 고객에게 사과하고 환불하는 선에서 해결하지 않았다. 소매점을 샅샅이 뒤져 정가로 그 제품을 사서 손실을 감수하고 배송했다. 베이조스는 고객을 위해 단기적인 수익성은 희생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집했다. 그 집착은 결국 장기적으로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을 가져왔다.
아마존은 끊임없이 파괴적인 혁신을 추구했다. 고객들이 이 회사를 믿고 인터넷에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게 한다는 것부터가 급진적인 발상이었다. 원클릭으로 구매절차를 마칠 수 있게 한 것도, 제3자 판매인을 아마존 장터에 들인 것도 그랬다. 경쟁사에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웹서비스도 그랬다.
베이조스는 "정체는 곧 죽음"이라고 선언했다. 영역 파괴는 경쟁사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자책 단말기 개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 임무는 여태껏 쌓아온 사업을 죽이는 일일세. 종이책을 파는 모든 사람들을 실업자로 만들 것처럼 디지털사업을 진행하게."
베이조스는 뼛속까지 구두쇠였다. 그가 물어뜯을 것처럼 화를 낼 때 임직원들은 오만 정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경쟁자들에게 그는 정글의 무법자이자 냉혈한이었다. 그러나 고객과 시장은 그를 세계 최고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불같이 일어난 제국은 그만큼 빠르게 쇠퇴할 수도 있다. 베이조스가 갈수록 힘들게 싸워야 할 상대는 둘이다. 하나는 정부다. 아마존의 파워가 커질수록 경쟁당국이 칼을 빼들 가능성이 커진다.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다. 아마존이 광적으로 고객에게 집착하면서 얻어낸 엄청난 데이터는 무인점포나 의료보험 서비스부터 금융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혁신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이 디지털 제국의 정복자를 더 주의 깊게 지켜보려 한다. 앞으로 그의 발걸음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는 우주사업에 뛰어들면서 이런 슬로건을 내걸었다.
`한 걸음씩 맹렬하게(Gradatim Ferociter).`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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