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하루를 반복하여 대단한 하루를 만들어낸 사람
필자 : 박돈규 조선일보 기자 / topclass 2016.08 호
1985년 18세 때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린 강수진.
그는 1986년 세계 5대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단원으로 입단해 무대의 맨 뒷줄부터 한 줄씩 전진하며 11년 뒤 수석 발레리나가 되었다. 7월 22일 강수진은 자신을 세계적 발레리나로 키워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고별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6월 29일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출국을 준비 중인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을 만났다.
“미련 한 톨 없어요. 7월 23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구에서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발레리나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처음 주역을 맡아 무대에 등장했을 때도 이랬을까. 강수진(49) 단장이 7월 22일 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올린 전막 발레 〈오네긴〉을 끝으로 토슈즈를 벗었다. 출국 전 인터뷰에서 그는 “발레라는 ‘행복한 스트레스(good stress)’를 내려놓은 다음부터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자못 기대된다”며 “무대 밖의 인생을 음미하고 싶다”고 말했다.
“7월 23일 아침에는 가장 맛없는 커피라도 내가 마시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가 될 것 같아요.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겠네요. 발레리노가 더 이상 날 들어올리지 않아도 되니까.”
지난 30년 동안 강수진의 하루는 한결같이 이런 식이었다. 새벽 5시 기상. 커피를 마시며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두 시간 동안 스트레칭과 개인 훈련. 발레단에서 연습이나 공연을 하고 밤 11시 귀가. 하지만 이제 은퇴했으니 늦잠을 자도 괜찮다.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커피도 편안하고 여유 있게 맛을 즐길 수 있으리라.
맨 뒷줄부터 한 계단씩 올라 최고의 자리로
은퇴작 〈오네긴〉은 강수진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강수진은 1980년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다. 19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 입학했고 1985년 스위스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19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군무진(코르 드 발레)으로 입단한 직후 발목을 다쳤다. 1년이 다 가도록 솔로는커녕 군무(群舞)에도 끼기 어려웠다. 강수진은 “극장 옥상에 올라갔다가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떤 적도 있었다”고 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연습을 택했다. 매일 15시간 이상 땀을 흘릴 땐 하루에 토슈즈를 네 켤레(보통 2주일치 소비량)나 써서 물품 담당자로부터 “아껴 써달라”는 주의를 듣기도 했다. 옹이처럼 튀어나온 뼈, 뭉개진 발톱, 굳은살과 상처들. ‘세상에서 가장 못난 발(240mm)’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녀의 발 사진에 감동하고, 삶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퇴장은 한 시대가 저문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는 한국 발레 역사에서 누구보다 먼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무용수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조금씩 전진하며 1996년 수석의 자리까지 올랐고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무용계의 아카데미상)’ ‘캄머탠처린(Kammertanzerin·궁중무용수)’ ‘존 크랑코 상’ 등을 받았다. 그런데 발레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묻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나는 항상 화려했어요. 남들은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1999년을 강수진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상을 받자마자 정강이뼈 골절로 1년 넘게 쉬었잖아요. 사람 일은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하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무엇보다 발레단에서 군무를 오래 춘 것에 감사해요.”
그녀는 무대 맨 뒷줄부터 주어진 이름 없는 배역을 열심히 해 예술감독 눈에 들었고 한 계단씩 승급해서 결국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무용수다. “언제까지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오딜을 못 하면 죽어라고 목표를 정하는 식이었다면 일찌감치 발레를 그만두었을 것”이라고 했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며 “지루하게 반복되는 생활이었지만 하루하루 배역에 몰입한 게 쌓여서 이렇게 멀리 왔다”고 했다.
2007년 서울에서 열렸던 ‘강수진 발레 20년 감사모임’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을 가진 그녀”라는 사회자의 소개로 걸어나올 때부터 발레리나는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강수진은 “또 펑펑 울지 모르니까 미리 양해 구할게요”라고 말하곤 종이를 꺼냈다. 비행기 안에서 썼다는 감사 편지였다.
“올해는 기쁜 일이 많았어요. 3월엔 ‘캄머탠처린’을 인증받았고, 7월엔 발레단 동료들이 제 입단 20주년 헌정 무대를 만들어줬고 과분한 것들입니다.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지나간 세월과 여러 일들이 스쳐갑니다.(우느라 말을 잇지 못하자 박수가 나온다) 엄마, 아빠 그리고 소중한 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발레만 생각하고, 사랑한 시간이었습니다. (길게 심호흡) 어디서 일하든 여러분들을 잊지 않겠(다시 울음).”
강수진은 1993년 1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모든 발레리나가 꿈꾸는 주역(줄리엣)을 맡았다. 2007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그녀에게 헌정한 작품도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당시 발레리나로는 환갑이라는 마흔 살이었지만 강수진은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을 정도로 체력은 문제없다”고 했다. 발레단 동료들은 20주년 축하 파티에서 “앞으로 20년 더 해야지” 하며 웃었다.
멀리 볼 줄 모르는 무용수
마흔 살을 넘기고도 그녀는 짱짱했다. 그녀는 은퇴 시기를 물을 때마다 “강수진에게 가장 엄격한 비평가는 강수진”이라며 “스스로 에너지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그날로 내려온다”고 덧붙였다. “아직 팔팔해요. 발레는 몸으로만 하는 건 아니고 정신으로도 하니까 아무리 아파도 즐거워요. 나한테 중요한 건 오늘이에요.”
실제로 강수진은 멀리 볼 줄 모르는 무용수였다. 2013년 그녀가 펴낸 자서전은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사람들은 기똥찬 성공 비결을 듣고 싶어하지만 나한텐 그런 게 없어요. 사실 지루한 반복처럼 보일 겁니다. 나는 내일을 믿지 않아요. 오늘 하루, 똑같은 일과를 되풀이하면서도 조금 발전했다고 느끼면 만족해요.”
발레는 남녀가 함께 호흡해야 좋은 춤이 나오는 예술이다. 강수진은 “파트너에도 ‘그냥 파트너’ ‘OK 파트너’ ‘베스트 파트너’가 있다”면서 “내가 남에게 베스트 파트너가 되려고 하면 나도 베스트 파트너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녀는 숱한 인터뷰를 했지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기사에 실리지 않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 문장은 ‘강수진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반복하여 대단한 하루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였다.
등장이 있으면 퇴장도 있다. 자신의 춤이 세월에 침식되고 무너지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발레리나는 없다. 강수진은 “팔팔하고 몸이 따라와줄 때 끝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은퇴는 2년 전 국립발레단장을 맡아 모국으로 돌아올 때부터 정해진 스케줄이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역시 〈오네긴〉으로 고별 무대를 가졌다. 이번 독일 공연은 자신을 성장시켜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현지 관객에게 바치는 작별 인사였다. 7월 22일이 남편 툰치 소크만의 생일이라서 더 특별했다. 강수진은 “발레리나 아내를 둔 죄로 덩달아 오랫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린 남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강수진이 은퇴하면 자기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대요. 나보다 더 들떠 있어요. 아마도 우리 부부한테 굉장히 큰 변화가 오겠죠. 사실 발레를 하고 무대에 설 때는 함께 산책을 해도 내 머릿속에는 두세 가지가 늘 들어 있었거든요.”
은퇴작 〈오네긴〉은 존 크랑코(1927~1973)가 안무한 드라마 발레다. 강수진은 〈오네긴〉과 여주인공 타티아나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배역으로 꼽는다. 매력적이지만 오만한 청년 오네긴을 향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짝사랑과 이별, 재회를 드라마틱하게 따라간다. 강수진은 “나도 타티아나처럼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하다”고 했다. ☞ 피부질환 치료 전후사진 보기
강수진의 경쟁자는 여전히 ‘어제의 강수진’
강수진은 무대에 오를 때 토슈즈로 바닥을 콩콩콩 세 번 두드리는 버릇이 있다.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강수진은 〈오네긴〉 끄트머리에서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향해 나가라고 손짓하는 대목을 떠올리더니 “한국에서도 고별 무대에서 그날의 공연과 관객 반응, ‘이제 끝났다’는 감정이 뒤범벅돼 울음이 터졌고 걷잡을 수 없었다”며 “발레와의 이별을 주체 못 해 울고 있는 내가 벌써 보인다”고 덧붙였다.
잠, 승마, 골프, 와인, 여행. 은퇴 후에 하고 싶은 목록을 읊었다. “가장 기대되는 건 잠이에요. 잠을 잘 못 자는데 수면제도 못 먹어요. 근육이 풀어져버리니까. 운동은 다칠까봐 수영 빼고는 다 안 했어요. 삐끗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골프는 배울 시간이 없었고, 레드와인도 두 잔 이상은 안 마셨는데 은퇴한 다음에는 괜찮겠지요? 여행도 공연장과 호텔을 왕복하는 게 아닌, 보통 사람들처럼 여행하고 싶어요.”
강수진은 “반세기 가까이 발레를 하면서 새벽 5시부터 규칙적으로 살았던 습관이 금방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발레라는 마라톤이 끝나기 전에 또 하나의 마라톤이 이미 시작됐다”고 했다. “국립발레단에서 다음 세대에게 기술뿐만 아니라 표현과 느낌까지 발레 DNA를 전수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에요. 무대에 설 때의 책임감이 없어진 만큼 앞으로는 이 임무에 더 몰입할 거예요.”
강수진의 경쟁자는 여전히 ‘어제의 강수진’이라고 했다. 자기계발서 저자나 철학자와 마주 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 습관이 나쁜 것도 아니에요. 어제 컨디션이 꽝이었는데 오늘은 나아졌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요. 반대로 오늘 컨디션이 꽝일 수 있잖아요. 그럼 내가 나하고 싸워서 가라앉지 않게 지탱해야 해요. 하루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를 잘해 컨디션을 올려놓으려고 애썼어요.”
강수진은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다. 국립발레단은 단원과 스태프가 140명에 이른다. 그녀는 “내가 발레단장이 되었을 때 아마 나보다 직원들이 더 겁났을 것”이라며 “다들 도와주셔서 많이 배웠고, 서로 호흡이 잘 맞는 것도 나한테는 행운”이라고 했다.
이 발레리나와 인터뷰를 한 날,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터키는 남편의 모국, 시댁이 있는 나라다. 강수진은 “새벽에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며 “우리 인생은 하루하루가 ‘복권 당첨’인 것 같다”고 했다. “계획을 세우고 살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지진을 겪기도 하고 죽을 뻔한 일도 있었어요. 하루하루 산다는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오늘을 위해 살지 않고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은 반대해요. 폭탄이 터지면 그건 끝이니까.”
은퇴 이후의 강수진에게 강수진이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녀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수진아, 그동안 고생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한 데 대해 토닥여주고 싶다.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자. 강수진의 새로운 인생, 기대할게. 이제 좀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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