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한국 사회에 말하다

20대 청년 9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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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은 20대 청년 9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청년들의 ‘마음의 결’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그 가운데 일부를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출처 : 한겨레21

청년 9명을 초대했습니다.

이 사회에서 어떤 지점에 분노하나요?
이규리
삼성이 (삼성에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씨 아버지에게 500만원을 주고 정리했는데 최순실한테는 300억원 줬다는 것에 충격이 컸어요. 또 이랜드가 (84억원의) 임금을 체불한 게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걸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됐고. 최저임금도 정말 낮아요. 그런 거 볼 때 되게 불공정하다고 느끼죠.
박리세윤
정말 먹고살기 힘들어요. 그냥 기계가 된 것 같아요. 20대 평균 월급이 200만원을 넘지 못하는데 권력자들은 1천억 단위로 재산이 축적되고 있잖아요.
최종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그들이 축적한 부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우리의 핍진한 삶을 야기한 주범이란 점에서 분노가 컸어요.
최종민
부모의 지대소득에 따라서 도전할 수 있는 청년과 아닌 청년, 상속받을 수 있는 층과 아닌 층의 분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고사하고 계층 간 벽이 높아지는 것을 느껴요.
만 19~34살 1천 명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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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21

이들은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통과 동시에 박근혜·최순실과 대기업이 벌였던 공정하지 못한 ‘거래’에서 강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권력자들의 불공정함이 원인이 되어 내 삶이 비참해졌다’는 연결고리가 형성돼 분노의 폭이 더 커지기도 했다.

어떤 삶을 원해요?
이규리
저는 자취를 하는데요. 집이 굉장히 작아요. 6평이에요. 그런데 월세를 한 달에 50만원을 내요. 주거비가 너무 비싸요. 제 삶의 가장 중요한 게 주거비 문제예요. 사실 돈 문제가 제일 크죠. 주거비랑 등록금, 그리고 일자리.
이규리
제가 바라는 세상은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면서 사는 거예요. 너무 부자도 아니고, 너무 가난한 것도 아닌 삶 속에서 여유롭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박유영
졸업을 하고 뭘 할지 좀 덜 고민하면 좋겠어요. 취업할 수 있는 길이 너무 좁고, 취업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하기 힘들기도 하죠. 선택지가 너무 좁아요.
집과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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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21

생각보다 단순하고 소박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가 그 소박함을 ‘실현 불가능한 현실’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승연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해서 제가 최저시급 1만원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 아직 개개인의 삶이 변하지 않았고, 광장이 더 열려야 해요. 할 수 있는 참여는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승연
투표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사회운동단체에 들어간다든가. 시위나 집회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집단지성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문제의식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장이잖아요.
최종민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근본적 현상 중 하나가 ‘정치 덕후’를 많이 배출했다는 거예요. 정치에 관심 갖고 내 지역구 의원은 뭘 하고 어떤 법안을 내놨으며 의정활동은 어떤지 살펴보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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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21

대의민주주의 아래 내가 원하는 것을 실현해줄 누군가를 선택해 그가 당선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은 오히려 소수였다. 세월호 참사부터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까지 거치면서 쌓아온 경험이 이들에게 ‘일상에서의 정치 참여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도록 독려했다.

대통령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아요?
조성연
멋진 히어로 한 명이 우리 사회를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부터 버려야 해요. 히어로물에서 히어로들은 세계와 국가를 구하는 멋진 영웅으로 나오지만, 그 영화가 끝난 뒤 부서진 건물과 다친 사람들은 다루지 않잖아요.
김현우
남이 나 대신 뭔가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두면 세상에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정치란 뭘까요. 국회에서만 하는 게 정치는 아니죠. 하다못해 월세방 주인과 싸우는 것도 정치예요. 동네 구멍가게에 갈 것인가 큰 슈퍼마켓에 갈 것인가, 그것도 정치의 문제고요.

이건 또 언제 다 치우나(...)

출처 :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

어떤 이를 대통령으로 선택하느냐와는 별개로 ‘한 명의 선지자가 세상을 바꿔줄 것’이란 믿음은 점차 폐기되고 있었다. 이들은 “(부당한 요구를 하는) 월세방 주인과 싸우는 것도 정치 참여가 될 수 있다”며 생활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촛불 이후엔 어떻게 될까요?
정주리
저는 좀더 희망적으로 보고 싶어요. 이번 집회를 계기로 현실을 직시하게 된 사람이 정말 많아요. 촛불시위에 와서 평화적인 모습을 보며 이것이 내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지 이상한 사람들이 (선동)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직접 경험했어요.
정주리
시민으로서 고민하고 저처럼 뭐라도 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하나하나 해결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김예리
지금 광장의 구호들이 멈추지 말고 계속 나왔으면 해요. 재벌 기업을 다 없애자는 게 아니라, 재벌 구조를 형성하는 원인을 없애자는 구호가 나와서 실현됐으면 좋겠어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그를 지지하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이바지한 집단을 명확히 기억하고 책임지게 해야겠죠.
출처 : 박승화 기자

방향은 각기 달랐다. 누군가는 이제 분노의 화살을 대통령이 아닌 재벌 대기업으로 돌리는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자고 했다. 대규모 시위를 통해 느낀 연대의식을 모세혈관처럼 일상 속 곳곳으로 퍼뜨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여전히 이들에게 촛불은 ‘희망’이었다.

여러분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해주세요!
김예리
경쟁에서 낙오해도 삶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이규리
안정감.
최종민
희망.
조성연
예측 가능한 사회. 내가 투입한 만큼 나오는 사회. 노력만큼 대가가 따라나오는 사회.
정주리
변화.
승연
여유.
박리세윤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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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21

단어는 달랐지만 결국 이들은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스스로의 노력으로 삶이 당장 안정될 순 없을 거라고 체념하면서도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려면 “사회가 그걸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할 줄 알았다.


“실패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 튼튼한 사회안전망”이 주어진다면 자신들의 희망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사회가 이들에게 답을 해야 할 차례다.

 



글 / 송채경화·황예랑 기자

편집 및 제작 / 강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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