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커는 대박이 아니다

글자크기
광고
쇼핑 위주의 경제적 차원 넘어 교류의 대상으로 서로의 이해 높여나가야




5월 10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달빛광장. 축구장 3배 크기의 공원에 테이블 400개가 마련되고 스티로폼 그릇에 담긴 삼계탕 4000인분과 맥주 4000캔, 백세주 등이 올라왔다. 중국 기업인 중마이과학발전유한공사(중마이) 우수사원으로 뽑힌 임직원 8000명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들은 지난 5월 5일부터 13일까지 포상휴가로 한국을 방문했다. 비가 내려 쌀쌀했던 날씨에 삼계탕은 더욱 인기가 좋았다. 중마이 직원들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하오 츠(맛있다)”를 연발했다. 중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끓였던 음식을 드디어 먹어 본다는 감격 어린 반응도 있었다. 한류(韓流)가 유커(遊客)들을 사로잡는 현장처럼 보였다.

경향신문

중국 중마이그룹에서 포상휴가를 온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5월 6일 오후 서울 반포 한강시민공원에서 삼계탕을 먹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마이 임직원들의 서울행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요청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박 시장은 지난해 8월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 특별대책의 일환으로 중국을 방문해 서울 방문을 호소했다. 중마이 임직원들의 서울 포상휴가가 결정되자 실무업무는 서울시 마이스팀(MICE)이 맡았다. 마이스는 Meeting(회의), Incentive(성과급), Convention(국제회의), Event(행사·전시)를 뜻한다. 권소현 서울 마이스팀장은 “국제회의 등에 참석했다가 관광까지 겸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은 일반 관광객보다 소비율이 1.7배 높다고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양계협회가 농립축산식품부를 통해 중마이 직원들에게 삼계탕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삼계탕 수출을 기대하고 마련한 것이다. 주류회사도 대형 프로모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관광공사는 중국에 삼계탕 수출 시 기대되는 효과까지 계산해 ‘495억원의 경제효과’라는 평을 내놓았다. 유커가 한국 경제에 중요하고 강력한 플레이어가 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5월 6일과 10일 두 차례로 나뉘어 열린 ‘중국인 관광객(유커) 삼계탕 파티’는 한·중관계의 여려 면모를 드러냈다. ‘관광상품 다변화’, ‘한국 수출의 대중 의존’, ‘지역경제 활성화’, ‘여행문화 개선’, ‘한류 콘텐츠 투자와 소비’ 등 양국 경제 이슈들이 얽혀 있었다. ‘포상휴가’ 등 중국 기업에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날 행사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언론의 보도대로 ‘음식한류의 쾌거’는 아니지만, 인터넷 일각에서 제기하는 ‘과잉접대의 굴욕’도 아니다. 임대근 한국외대 글로벌콘텐츠학과 교수는 “‘유커’는 경제적 차원으로만 다뤄져 왔지만 좀 더 상호교류적인 시선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2005년 71만명에서 2015년 598만명으로 8배 넘게 늘었다. 메르스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4년에는 613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중 압도적 1위다. 삼성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현재 1억2000만명 수준인 중국의 해외 관광객 수는 2018년까지 1억7000만명 수준으로 증가하고,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증가함에 따라, 국내 소비액의 10%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행자의 구성원도 다변화됐다. 바링허우(80년대 출생자), 주링허우(90년대 출생자) 등 풍요롭게 자란 젊은 세대 여행객이 늘면서 단체관광객뿐 아니라 ‘개인 자유여행’ 관광객도 늘고 있다.

경향신문

10년 동안 중국인 관광객과 관련해 변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다. ‘쇼핑 위주’의 관광객이 많다는 점과 ‘중국 관광객’들을 보는 국내의 시선이다. 2014년 서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10명 중 8명은 방문 목적에 대해 ‘쇼핑’이라고 답했다. ‘유커(요우커)’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큰 손’, ‘대박’, ‘경제효과’ 등과 연동된 기사 제목이 쏟아져나온다. 한국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관광도시연합(WTCF)이 2014년 중국의 해외여행객 10만명을 두고 조사한 결과 전체 지출액의 57.65%를 쇼핑에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화통신은 지난해 중국인들이 전 세계에서 사들인 명품만 1168억 달러(약 142조원)로, 글로벌 사치품 소비의 46%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들의 대량구매 행태를 설명하는 ‘바쿠가이’(爆買い·폭매)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인 관광객 유치는 곧 ‘돈벌이’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중국인의 쇼핑관광을 한국의 관광자원 부족, 관광정책의 실패로 규정하고 질타하는 목소리도 동시에 올라온다. 중국인들에게 보다 매력적인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인식에 따라 특히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규제완화가 이뤄졌다가 지역사회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뒤늦게 비판받았다.

최경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인의 소비중심 관광행태에도 중국 나름의 맥락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자국민들의 해외여행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선전특구 등 주요 도시민들에게 홍콩·마카오 등 특구에 대한 개인여행을 자유화한 것을 시작으로 해당 국가를 늘려나갔다. 연 8%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던 중국에서 오랫동안 눌려 있던 해외여행의 욕구가 폭발했다. 최 연구위원은 “여행에도 단계가 있다. 한국 역시 첫 해외여행은 패키지 쇼핑관광 위주로 시작했으며, 여행인구가 늘면서 체험형 여행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며 “중국인들도 같은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도 중국인들의 해외 쇼핑에 한몫했다. 중국이 전 세계에서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수출국인 만큼 중국 당국이 국민들의 해외 쇼핑을 관대하게 대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는 것이다.(전종규·김보람 저 <요우커 천만시대,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2015). 중국인의 ‘싹쓸이 쇼핑’은 글로벌 차원의 무역수지의 균형 맞추기인 것이다.

중국인의 ‘쇼핑 관광’이 굳이 개선해야 할 것이냐는 시각도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는 지난해 6월 중국인 관광객들의 ‘재방문율이 낮다’는 통념에 대한 반박 보고서가 나왔다. 재방문율이 낮아 보이는 것은 중국의 여행객 자체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며, 재방문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만족도도 높다는 것이다. 자료를 분석한 권태일 연구위원은 “쇼핑 관광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쇼핑하고 싶게 만드는 것 자체가 국가의 강점이고 좋은 이미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것’,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강박을 굳이 가질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화장품, 첨단 IT제품 등이 이미 주어진 ‘우리 것’이다. ‘기와집’, ‘한복’ 등 전통적으로 관광상품으로 팔았던 것에 천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쇼핑 관광을 완전히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2014년 4월 홍콩과 중국 사이 유아의 오줌 문제가 분쟁이 된 적이 있다.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홍콩 거리에서 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동영상에서는 홍콩 주민이 관광객의 행동을 보면서 “경찰을 불렀다”고 항의하자, 관광객은 “당신집 아이는 오줌도 안 누냐”며 공방을 벌인다. 이 사건은 인터넷에서 홍콩인과 중국인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비화됐다. 당시 홍콩인들의 반응은 중국인 여행객에 대한 누적된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중국 당국은 홍콩과 마카오부터 여행 자유화 조치를 펼쳤다. 2000년대 초반 한 해 4000만명 가까운 중국인들이 홍콩을 방문했다. 홍콩 거주민의 6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홍콩의 소매판매업은 5년간 81% 성장했지만, 홍콩 경제는 아수라장에 빠졌다. 관광객들이 생필품을 쓸어담는 통에 물건은 동나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임대료도 폭등했다. 홍콩 주민들이 살기 어렵게 된 것도 그해 하반기에 일어난 홍콩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의 주된 원인이었다.

경향신문
중국인 관광객이 경제적으로 반드시 도움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조건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홍콩에서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서울보다 1.8배 넓은 홍콩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들은 작은 경제권에 고래가 들어와 휘젓고 다니는 모양새’였지만 한국은 서울 외 제주·강원 등 여행지의 다변화가 가능하고, 제조업이 탄탄해 생필품 부족사태가 벌어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요우커 천만시대,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의 저자들은 홍콩은 한국의 반면교사가 될 수는 있지만 홍콩이 한국의 미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국소적 도시구조의 재편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 가로수길, 홍대, 북촌 등지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지나친 관광객 유입으로 현지인과 소상공인이 떠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천편일률적 상업시설만 남아 결국 상권이 죽고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한 ‘단일한 원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인션이 일어난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증언한다. 책카페를 겸하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인문사회연구소는 월 400만원 이상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은평구로 이사했다. 이 연구실에서 근무했던 이모씨(37)는 “동네에 화장품 가게가 생겨나면 작은 책방, 카페 등은 망했다고 보면 된다.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테이블 회전율이 높은 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거나 사색할 공간은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인 성형관광객들이 몰리며 ‘아시안 성형 메카’로까지 불렸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땅값은 4.74% 상승해 서울시 평균인 4.09%를 웃돌았다.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명동은 수십억대로 월 임대료가 상승해 ‘버거킹’이 버티지 못하고 이전할 정도다. 화장품 매장과 의류 매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도시공간연구자인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국내) 부동산 투기 붐이 강남 아파트에서 강북 상가로 옮겨간 것에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이 유입되면서 가속화된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제주에서는 중국 자본이 추진하는 난개발이 문제가 됐다. 2010년 제주에 투자이민제가 실시된 이래 도내 중국인 소유 토지는 143만6000㎡에서 799만9000㎡로 늘었다. 2011년 중국 기업 비오젠이 조성한 비오젠 거리는 임대료가 200% 상승했다. 2012년에는 중국인 단기 방문자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는 방안이 추진됐다가 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해 제주 주민 10명 중 6명은 중국인 관광객이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중요한 것은 ‘한국적인 것’이나 ‘관광객을 미끼로 한 성장’이 아니라 ‘교류’다. 외국으로 나갔을 때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입장과 문화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관광정책 담당자들은 말한다. 서울시 마이스팀의 중국인 근무자 리 레이는 “‘중국인은 어때?’라는 질문이 가장 난감하다. (극동) 하얼빈과 (남부) 하이난 지역이 다르고, 시안에서 온 50대와 상하이에서 온 20대는 다르다. ‘중국인 관광객’이라고 뭉뚱그려지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난해 3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웹진에 기고했다. 중국의 새로운 기업문화를 겨냥한 ‘삼계탕 파티’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최 연구위원은 “시간이 지나면 중국인의 관광행태도 변화해갈 것”이라면서 “조급증으로 (단기적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교류와 이해를 늘려가고 관광의 인프라를 잘 구축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는 “인구규모 등을 감안했을 때 중국의 경제력은 언젠가 한국을 추월하게 돼 있다. (지금처럼 오로지 돈벌이로만 관계를 맺었다가) 과연 그때 한국과 중국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중국(인)은 한국에게 궁극적으로 아시아에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동반자다.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접근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관광의 비중을 늘려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상품을 파는 데 그치지 말고, 중국의 문화 콘텐츠도 적극 수입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커 대박론’을 넘어서 교류의 대상으로서 중국 관광객과 중국 사회 기저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