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더L / 인공지능 시대의 법정 ◆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는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전체 전적 4대1로 이겼다. '인간 이세돌'은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패배로 인류를 위로했다. 세기의 이벤트는 끝났지만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이벤트가 아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법정도 예외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몇 년 안에 증인석에 앉아 무표정하게 검찰의 심문을 피하는 로봇 증인을 보게 될 전망이다. 수사와 재판의 도구로 쓰이던 로봇은 재판의 당사자도 될 수 있다. 인간과 로봇 간 치열한 소송도 펼쳐질 수 있다. 2008년 철학자 안드레아스 마티아스는 '로봇형법'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로봇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로봇기술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그 법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외국 학계에서는 인권(人權)에 상응하는 '로봇권' 개념까지 등장했다. 20회를 맞은 레이더L은 인공지능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달라질 미래의 법정 풍경을 그려 봤다. 가천대 산학협력단이 최근 법무부에 제출한 '신기술과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법제 개선 방안 연구' 등을 참고했다.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는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전체 전적 4대1로 이겼다. '인간 이세돌'은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패배로 인류를 위로했다. 세기의 이벤트는 끝났지만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이벤트가 아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법정도 예외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몇 년 안에 증인석에 앉아 무표정하게 검찰의 심문을 피하는 로봇 증인을 보게 될 전망이다. 수사와 재판의 도구로 쓰이던 로봇은 재판의 당사자도 될 수 있다. 인간과 로봇 간 치열한 소송도 펼쳐질 수 있다. 2008년 철학자 안드레아스 마티아스는 '로봇형법'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로봇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로봇기술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그 법적 책임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외국 학계에서는 인권(人權)에 상응하는 '로봇권' 개념까지 등장했다. 20회를 맞은 레이더L은 인공지능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달라질 미래의 법정 풍경을 그려 봤다. 가천대 산학협력단이 최근 법무부에 제출한 '신기술과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법제 개선 방안 연구' 등을 참고했다.
■ 킬러 로봇, 살인혐의 기소…재판 당사자는 로봇? 제조사?
고도의 인공지능을 갖춘 A로봇은 인간을 때린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검찰은 지능화되고 자의식을 가진 로봇이 인간처럼 행동하면 사람과 똑같이 형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로봇을 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변호인 측은 로봇권을 대변하며 책임은 A로봇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인간에 대한 살상이 가능한 인공지능을 개발한 제조업체와 프로그래머에게 있다는 논리를 폈다. A로봇이 처음부터 인간을 상대로 공격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군사용 로봇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조사나 프로그래머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로봇이 개발되는 상황에서 정확한 목표 달성을 가능케 했다는 이유로 핵심 기술자를 처벌하는 것은 산업 흐름을 왜곡하는 처분이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이 같은 분쟁은 과학자가 다수 참여하는 국제인권단체 HRW(Human Right Watch)가 2015년 발간한 보고서 '마인드 더 갭'을 토대로 구성한 가상 시나리오다. 이 단체는 잠재적 위험이 높은 '킬러 로봇' 활동을 규제할 만한 현행법 체계가 미흡하다면서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제조사와 프로그래머, 군 관계자들 활동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상은 곧 현실이 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2000년부터 연평균 9% 이상 성장하고 있는 세계 로봇시장 규모는 2025년 67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5년에는 개인용 9.0%, 산업용 24.4%, 상업용 17.0%, 군사용 16.5% 비중으로 다양한 용도의 로봇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55·사법연수원 15기)는 "인간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던 로봇이 인간의 학습능력을 갖추고 점점 진화하면서 인간과 맞서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 로봇법학회에서는 인간이 로봇을 학대하거나, 로봇이 인간 명령에 반항하는 등 양자 간 충돌 상황에서 어떤 법률이 필요하고 누가 그 법을 만들어야 할지 연구가 한창"이라고 설명했다.
■ 화물운반 무인車 교통사고…책임은 車제조사? 택배사? 경찰?
B씨는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오다 길 앞 대로를 달리던 자동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차는 B씨와 부딪친 후 즉시 멈췄지만 그의 상태를 살피러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사전에 입력된 경로대로 컴퓨터가 운전한 택배물 운반용 '무인 자율주행차'였기 때문이다. B씨가 크게 다치거나 숨졌다면 형사 고소까지 가능한 상황이지만 차 제조사, 차를 운행한 택배사, 도로 관리를 맡은 경찰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누구도 몰랐다.
이러한 가상 시나리오는 지난달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험 주행하던 구글 자율주행차가 프로그램 오류로 버스와 부딪치는 사고를 내면서 현실이 됐다. 미국 언론은 10년 안에 자동차 산업이 자율주행차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컴퓨터가 인간의 운전을 도와주는 단계를 넘어 핸들이나 브레이크 조작 없이 모든 판단을 내리는 '무인 주행'도 거론된다. 많은 이들이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교통 혼잡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반면 기계적 결함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고 자동차가 인간의 안전·생명과 밀접하다는 점을 염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 현행법상 자동차 운전 중 발생하는 사고의 민형사적 책임은 운전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책임' 문제는 쉽게 답을 찾기 어렵다. 최근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자율주행시스템, 즉 컴퓨터를 운전자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주행시스템이 해킹될 경우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지능형 로봇 분야 연구를 맡아온 윤지영 연구위원은 "사람이 겪을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무인자동차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둘러싼 환경과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학·철학 분야에서 활발한 논의를 거쳐 기술 발달 단계에 맞는 도로교통법, 형법, 정보보호법, 보험법 등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사물인터넷 해킹 의료사고…범인은 해커…기업 수천억대 피소
잘나가던 U헬스케어(Ubiquitous Health Care) 전문업체 C사가 수십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것은 최근 벌어진 의문의 해킹 사건 때문이다. C사 주력 상품은 당뇨 환자 체내에 심는 '인슐린 펌프'로, 환자의 인슐린 분비 패턴을 파악해 정상인 췌장과 같은 리듬으로 인슐린을 공급하는 주입 장치다. 그런데 최근 특정 시기에 생산된 펌프에서 인슐린이 과도하게 공급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10여 명에 달하는 고객이 응급실 신세를 져야 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수사기관의 1차 조사 결과 해커들 소행으로 의심되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사고를 겪은 피해자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1인당 수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C사가 보안을 소홀히 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그들 주장이다.
이는 2012년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보안 콘퍼런스 '블랙햇'에서 해커가 당뇨 환자 체내에 심어진 인슐린 펌프를 해킹하는 장면을 시연한 것을 토대로 만든 가상 시나리오다. 사물끼리 인터넷에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확산되면 생활은 획기적으로 편리해지겠지만 이런 사고도 크게 늘어날 거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해킹 대상이 되는 시스템 범위가 늘면서 범죄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이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민감한 정보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해킹의 위험은 치명적이다. 개인정보 유출도 IoT 확산이 불러올 수 있는 문제다. 연충규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리사는 "IoT 기술 발달과 함께 해킹을 방어할 고도의 보안기술과 더불어 사생활 침해 등 다양한 분쟁에 대비한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IoT 기술 발전을 위해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개인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도사리는 만큼 더욱 엄격하게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드론 추락으로 인명 피해…잘못은 설계사? 제조사? 운전자?
아파트 15층에 사는 D씨는 주말 아침 베란다에서 기지개를 켜다 깜짝 놀랐다. 참새만 한 작은 비행물체에 달린 렌즈가 D씨를 찍고 있었던 것. 이 지역 순찰을 맡은 비행 드론이었지만 D씨는 누군가 자신과 가족을 들여다봤다는 느낌에 불쾌했다. 사생활이 얼마나 찍혀 어디로 보내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제조사, 지방자치단체, 경찰은 "치안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드론이 일상화되면서 이런 상황도 가정할 수 있게 됐다. 2007년 이후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은 드론을 무상 인터넷 보급, 초고속 배송 서비스 등에 활용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전 세계 드론 시장 규모는 6조5000억원에 이르렀고 10년 안에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형사사법 영역에서는 경찰이 하던 순찰·수색 업무에 드론을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그런데 고성능 카메라와 센서 등으로 주변 상황을 광범위하게 기록한다는 점에서 드론의 활용과 사생활 보호는 충돌할 수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지능형 로봇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1000명 중 780여 명이 드론의 수사 활용에 대해 "도움은 되나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