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마디] 내 마음의 사용설명서

미항공우주국에서 근무하는 과학자 바바라 브레넌(Barbara Brennen)은 자신의 저서 <기적의 손치유>에서 놀라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온전한 상태의 나뭇잎의 오오라는 깊은 물빛 같은 푸른색이었는데 가위로 잎을 자르자 오오라가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놀란 브레넌이 잎사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더니 1-2분 후에 다시 본래의 파란색으로 돌아왔다는 실험결과다. 진정성이 담긴 소리는 우리의 기운을 변화시킨다는 게 정설이다.

기운, 영성, 혼이라고 말하면 갑자기 애매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검증되지 않은 주술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다. 마음공부는 기운공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물리학에서 제4의 물질이라고 불리는 플라즈마가 브레넌이 말하는 에테르(Ether)체나 아스트랄(Astral)체에 해당한다.

명상과 만트라를 통해 이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가 변하게 되고 마음과 몸이 바뀌는 것이다. 칭찬과 격려, 그리고 유기농 음식 등이 그런 작용을 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모았던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봤을 것이다. 깊은 산 맑은 약수는 정 육각형의 아름다운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위생적으로나 과학적으로는 아무 불순물이 없어도 수돗물이나 생수에는 육면구조의 한쪽 귀퉁이가 깨져있거나 징그럽게 일그러진 물 결정체를 봤을 것이다.

일그러진 물에 '사랑'이나 '감사', '이해' 등의 글자만 써 붙여도, 아니면 간단한 축원을 하면 신기하게도 물의 결정체가 정육면체로 바뀌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만트라, 또는 영부의 힘이라고 보면 된다.

만트라 외에도 최근 유행하는 아로마요법이 있다. 향으로 마음의 평정을 얻는 명상법이다. 향뿐이랴. 색을 통한 마음 치유도 있고 꼴(모양)도 있다. 미술치료기법이 사실은 꼴을 통해 마음을 읽고 마음을 치유한다. 우리의 전통 옷인 색동옷은 오방색을 기초로 한 음양오행원리를 구현한 색이다.

하늘을 뜻하는 흰색 옷을 즐겨 입은 것은 농경민족으로서 무논에 가서 일하는데 흰옷은 전혀 실용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하늘 기운을 중요시하는 환족(桓族)으로서 흰색은 하늘을 뜻할 뿐 아니라 진실과 순결을 나타내고 오행에서는 금(金)에 해당한다.

피라미드 파워라고 들어 봤을 것이다. 히란야라든가 얀트라 등은 물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부적도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물질위주의 삶에 빠져 있어서 그렇지 비물질 또는 극미물질(플라즈마) 세계에 대한 이해를 조금만 가지면 마음공부의 원리가 바로 이해된다. 그러면서 칭찬과 긍정과 용서와 양보와 선행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게 된다.

이들은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힘이 된다. 좋은 방향이라 하면 영적 진보를 말한다. 영적 진보라 함은 수치심보다는 자긍심, 슬픔이나 두려움보다는 기쁨과 즐거움, 욕망보다는 이성, 미움보다는 사랑, 다툼과 경쟁보다는 평화와 공생, 갈등보다는 평화를 말한다. 결국 깨달음, 견성, 해탈, 본성 자리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생각이 바뀌면 물질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플라세보효과(Placebo Effect)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이 분야는 <의식의 세계>를 쓴 미국 프린스튼대학의 딘 라딘 박사의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두통을 앓는 사람에게 저명한 의사가 비타민을 주고 새로 개발된 두통약이라고 하면 낫는다는 것이다. 성공률이 54%였다고 한다.

한 방에 있는 열 명의 사람이 있는데 아홉 명에게는 활력제인 암페타민을 먹이고 한 명에게는 수면제를 먹였는데 수면제를 먹은 사람이 전혀 잠들지 않고 다른 사람처럼 활기차게 지냈다. 또 다른 방에는 아홉 명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한 명에게 암페타민을 먹였는데 활력제인 암페타민을 먹은 한 명도 다른 사람처럼 잠에 빠져 버렸다고 한다. 물질과 생각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인 것이다.

이처럼 마음공부에는 여러 방편들이 있고, 정성을 다해 노력해 가다 보면 자기의 근기에 딱 맞는 것을 만나게 된다. 나아가서 다양한 응용을 하는 경지에 다다르게도 된다.

[여덟째마디] 마음공부의 원리

살아있는 영성지도자 이현주 선생은 마음공부 단체가 난립하는 현상을 두고 '자본주의의 끝자락에서 펼치는 돈벌이 장사꾼들이 잔치'라고 혹평을 했다. 그런 면이 없지않다고 본다. 장사 속이 훤히 보이는 일들이 주변에서 많이 일어난다. 특히 마음수련 단체 중에는 사회의식은 수구보수적인 집단들도 있고 실명을 거론하기는 뭐 한데, 수련프로그램을 여러 단계로 늘리고 늘려서 전 과정을 하게 하고는 다 하려면 수백만원을 갖다 바쳐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

저렇게 살자면 일상생활은 어떻게 꾸려 가는지 아리송한 '마음공부꾼들'도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맑게 하면 이런 것이 문제가 안 된다. 기운이 맑아지면 깨달음은 따라서 온다. 불이 켜지면 저절로 어둠이 물러가는 이치다. 부정 정서와 씨름할 필요가 없다. 밝고 환한 기운을 키워가고 믿음과 사랑과 기도와 선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 나가면 뭔가를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영적 진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행을 하고서 그 대가로 받는 물질적 보상이라는 것은 내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진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행위 자체로써 이미 더할 수 없는 보상이 이루어져 버리는 것이 사랑이고 긍정이고 공감이고 선행이고 동정이다.

삶은 다양한 체험의 공간일 뿐이고 세속적인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믿는 사람은 마음 알기와 마음 다스리기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단지 이 체험의 공간에서 그것이 세속적인 성공이든 세속적인 실패든 연연하지 않고 그를 통해 어떤 의식의 진보를 이루느냐가 중요 할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수련 단체에 전 재산을 넣고 들어갔다가 10여 년을 살다 나온 후배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오면서 넣었던 재산을 달라하고 그 단체에서는 약속했던 대로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분쟁이 났던 때였다.

"'빈손 하나 달랑 들고 유유히 나올 수 있는 그 마음 하나'를 가져 나올 수 있다는 것만큼 더 큰 재산이 어디 있는가"라고.

체험의 순간들을 얼마나 충실하고 진실 되게 보내느냐. 그리고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중요한 자각과 각성을 이루느냐를 잊지 않는 것이 마음공부다. 분노, 미움, 회한 등 주로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백 프로 다 과거를 회상할 때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할 때이다.

마음공부가 평화와 안정과 사랑을 내 속에서 이루는 것이라면, 또 그것을 사회화시키는 것이라면, 오로지 현재에 머무르면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은 과거나 미래는 마음이 만들어 낸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마음공부에서 히어앤나우(Here and Now)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바로 반박이 뒤따를 법하다. '도사 같은 소리'라고. 또 의문도 들 것이다. '도대체 정의와 불의는 없는가.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빈곤과 차별과 폭력과 학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그렇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식별할 능력도 없고 그럴 관심도 없는 설익은 마음공부꾼들이 양시론에 빠진다고 본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사람을 보면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을 항상 명확히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낼 사회적 식견을 연마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사람은 다르다. 행동은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고 약자를 돌보지만 마음은 항상 평화로운 것이다.

마음공부꾼이 행동도 않고 관심도 없이 저 혼자 '멍하니 행복'하다면 깨달은 사람은 치열한 현실공간에 자기를 놓고서도 한결같은 사랑과 평화로 늘 충만하다.

마음공부 진영에서도 명성 높은 지도자급 인사 중에 독선과 자의식이 너무 강해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선문답 같은 말을 입에 올리면서 자기를 면책하고 남을 질책하는 도구로 '마음공부'를 이용 하는 사람도 없잖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을 반면교사 삼으면서 자신의 마음공부거리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로 마음공부 하는 사람이다.

데이비드 홉킨스의 <의식혁명>에 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1000까지 나누는데 이런 예를 든다.

화려한 부자 동네 앞에 혼자서 서성대는 허리가 굽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늙은 사람이 하나 있다. 이 노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다. 사람의 의식이란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지, 또 어떻게 대응하는지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 '왜 젊을 때 뭐하고 늙어 저렇게 되었나?'라고 생각한다.
- 더럽고 구역질 나서 얼른 피하고 싶어한다.
- 노인이 저런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은 뭔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잘못 산 것이다.
- 노인문제를 경제사회적 모순의 결과로 보고 연구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고민한다.
- 노인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해 다가간다.
- 노인을 우리들 자신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동정심을 갖는다.
- 폭행을 하거나 곤란을 줄 것 같아 얼른 자리를 뜬다.
- 사람들이 노인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보고 회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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