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조근호의 ‘행복 경영’] 가구 배치·기둥 색깔만으로도… 공간이 조직을 혁신한다

  • 조근호 행복마루 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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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11.08 03:29

    딱딱한 검찰 조직도 변해… 동호회·간담회 활용하며
    소통 확산 노력했으나 실패 커피숍 만들자 극적 변화 대화·모임 크게 늘어
    공간은 말을 한다… 물건은 계속 메시지 보내
    가구 배치가 생각에 영향 재건축·리모델링 할 때가 혁신할 절호의 기회인 셈

    조근호 행복마루 컨설팅 대표
    조근호 행복마루 컨설팅 대표
    검찰에 몸담았을 때 ‘혁신추진단장’이란 직책을 맡아 조직 혁신을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시행착오를 통해 중요하게 깨달은 점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을 통한 변화였다.

    부산고검장 시절 직원들과 소통하고자 야외 간담회도 열고, 동호회도 활성화해 봤지만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검찰청사 내부에 개인 공간이 없는 직원들을 위해 소통 장소로 커피숍을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내봤다. 반대도 있었지만, ‘행복마루’라는 이름으로 호텔식 커피숍을 열었다. 우려와 달리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점심에 미리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식사를 일찍 끝내는 일까지 벌어졌고, 오후 3시쯤 티타임을 가지며 대화하는 직원이 점점 늘어났다. 동호회와 음악회 행사도 열렸다. 작은 커피숍 하나가 소통 문화를 바꾼 것이다.

    공간은 예상 외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법무연수원장 시절, 연수원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일이다. 무겁고 엄숙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건물 내부 도색 때 점잖은 색으로 칠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밋밋하다는 이유로 아무 상의 없이 강당 앞 기둥을 빨갛게 칠해 놓았다. 공공 기관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색 기둥을 보고 모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의외로 일부 직원과 수강생은 생동감이 있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딱딱한 법무연수원 강의실, 복도, 휴게실, 기숙사가 빨강, 노랑, 파랑 옷을 제각각 입게 됐다. 그 무렵 5주간 신임 검사 교육이 있었는데, 수료식 날 검사들은 알록달록한 원색 연수원 내부를 배경으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뮤지컬 ‘그리스’에 나오는 노래 ‘Summer Night’를 ‘나는 초임 검사야’라는 가사로 바꿔 부르며 흥겨운 의식을 치렀다. 매년 신임 검사 교육과정을 운영했지만 이런 다채로운 음악회 수료식은 처음이었다. 유채색 공간이 이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행복의 건축’ 저자 알랭 드 보통은 “건물은 말을 한다”고 말했다. “건물은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가 되어 온갖 일상의 방해물에서 벗어난 이상적 삶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건물은 우리 열망에 구체적 형태를 부여한다. 인간의 약함을 채워준다. 다시 말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세계적 가구 회사 비트라(Vitra)는 가구가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표현한다. “가구 배치는 사람의 감정과 기분에 영향을 끼치고, 궁극적으로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사무실 가구 배치는 단순한 기능적 작업이 아니라 가구들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증진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자유분방한 사무실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구글 사무실 전경. 공간 혁신은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자유분방한 사무실 분위기를 잘 반영하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구글 사무실 전경. 공간 혁신은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아크데일리(arch daily) 제공
    이렇게 ‘물건’과 ‘공간’은 사람에게 일정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고 끊임없이 사람의 뇌리에 각인된다. 그러한 메시지가 축적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를 흡수하고, 바뀌고, 결과적으로는 조직도 바뀔 수 있다. 우리는 물건과 공간이 보내는 메시지에 너무 무덤덤했던 건 아닐까?

    2003년 포스코는 ‘회의 문화를 개선하자’는 목표 아래 혁신 운동을 벌였다. 사례 연구에 매뉴얼 개선 등 별의별 방식을 동원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건 ‘공간 혁신’이었다. 전에는 회의실이 모두 사무 공간 안에 있어 회의하다 누군가는 불려나가기도 하고 외부 참석자는 사무 공간 지나는 동안 안면 있는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회의 분위기가 산만했다. 간부 사무실 내 회의실은 대부분 활용도가 낮아 비효율적이기도 했다. 포스코는 회의 문화 개선은 회의 공간 개선에 있다고 판단, 회의실을 2층에 집중 배치했다. 그 결과 회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공간 효율성도 향상됐다.

    기업과 정부 기관은 끊임없이 건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한다. 어찌 보면 혁신할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그러나 리더 중 여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혁신에 관한 회의는 수없이 주재하면서 건축에 관한 회의에는 얼마나 참석하고 있을까? 십중팔구 건물 기공식과 준공식 때나 잠깐 얼굴을 비추고 축사를 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혁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팰로앨토에 있는 실리콘밸리 회사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구글, 시스코, 페이스북, AOL 등을 둘러 보니 사무실이 모두 개방형이었다. 사무실과 복도 사이에 벽이 없었다. 통상적인 우리나라 건물은 남쪽에 사무실이 위치하고, 그다음 벽과 복도가 있다. 중간에는 항상 엘리베이터나 화장실 공간이 있고, 다시 복도와 벽, 그리고 북쪽 사무실이 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 회사의 최근 흐름은 남쪽 사무실 벽과 북쪽 사무실 벽을 모두 없애 남쪽 사무실에서 북쪽 사무실 창문이 보이는 구조였다. 이렇게 개방형으로 만든 이유는 단 하나, 소통이었다. 방과 복도로 차단되어 있으면 직원들이 아이디어가 있어도 상사에게 보고할까 말까 망설이다 포기하고 말 수 있다는 논리다.

    세계적 서비스 디자인 회사 아이데오(IDEO) 창립자 빌 모그리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창의적이고 협업을 유도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공간’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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