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부부의 자전거로 유라시아 #1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바퀴 | 바퀴에디터 | 입력 2014.07.25 18:00 | 수정 2014.07.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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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 이성종, 손지현 씨는 지난 2007년 호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해오고 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그들의 여정은 이제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사람과 환경에 대한 꽤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번 여행기는 부부의 여행 중 2011년부터 2012년까지의 유라시아 횡단 부분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 이야기는 단행본 '거침없이 방황하고 뜨겁게 돌아오라'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책과 같은 내용이 아니라 책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떠나라!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우르릉!'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소란에 잠에서 깬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밖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내가 꿈을 꾼 건가?"
다시 문을 닫고 들어오려는 찰나 아까보다는 작지만 미세한 진동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그래 분명 꿈은 아니었다. 그제야 낮에 가이드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호수는 지진활동이 활발해 지금도 계속 깊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면서 아직도 더욱 깊어지고 있는 곳, 바로 바이칼 호수다.

다시 문을 닫고 들어오려는 찰나 아까보다는 작지만 미세한 진동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그래 분명 꿈은 아니었다. 그제야 낮에 가이드가 해 주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호수는 지진활동이 활발해 지금도 계속 깊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면서 아직도 더욱 깊어지고 있는 곳, 바로 바이칼 호수다.

남편은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역시 저 정도쯤 되니까 나까지 데리고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왠지 얄미우면서도 귀여운 생각이 들어 드르렁대는 남편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꽤 세게 꼬집었는데도 미동조차 없다.

지금은 새벽 3시.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계속 잠을 설치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하나같이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좋다. 낯설고 지저분하지만 왠지 정감 가는 이 민박집의 향취도 그렇고, 창밖에 보이는 은하수도 아름답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런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우리는 지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동해항에서 페리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려 또 기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 모스크바를 지나 동유럽의 관문인 상트페테르부르그까지. 무려 8일이라는 긴 시간을 기차 안에 있자니 좀이 쑤셔서 잠시 바이칼 호수에 들러 찬 바람을 만끽할 참이다.

그런데 잠깐. 자전거 여행이라면서 자전거가 없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지금 배낭여행 중이다. 잠시 배낭여행으로 이탈리아의 밀라노까지 이동한 뒤 그 곳에서 우리의 새 자전거를 받아 한국까지 돌아오는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 여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냥 비행기 타고 밀라노 가서 시작하면 안 되냐고?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은 같은 값이면 비행기 타고 가는 것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을 더 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고집을 피웠다. 내가 그 고집을 어떻게 꺾을 수 있을까. 그저 일이 틀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대한민국 마누라 행세를 할 참으로 묵묵히 따를 뿐이다. 바가지 긁을 타이밍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 있는 것이니까.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해 사실 우리도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단지 난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에 앞서 그나마 좀 낭만적인 둘만의 휴식을 원했는데, 그걸 몰라주니 아쉬운 마음이 들뿐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여행은 시작됐다. 대충이나마 계획을 세워보니 최소 1년 이상이 걸릴 대장정이다. 여행을 위해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우리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들을 모두 버리고 시작한 여행이다. 많이 비운만큼 많은 것을 채우고 돌아올 수 있으리라. 마음만은 누구보다 가볍다. 여행이 끝난 뒤를 생각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기에 더욱 진정한 여행을 마음 속 깊이 느끼고 돌아올 것이다. 떠나자!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 러시아 바이칼 호수에 위치한 알혼섬.

사람 속으로 떠나는 여행

덜컹이는 열차 밖 풍경도, 특유의 냄새도 슬슬 지겨워질 때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종착지이자 백야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그에 도착했다. 이곳은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메따지를 비롯해 표트르 대제의 별장인 뻬쩨르고프 등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일단 관광에 앞서 호스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긴 시간 동안 열차를 타고 왔기에, 못 씻은 강아지처럼 정수리서부터 발끝까지 구수한 쉰내가 나는 기분이었다. 아마 실제로 악취가 심했을 지도... 어쨌거나 얼마 만에 즐기는 따뜻한 샤워인지 기분이 좋아 한참을 씻고 있자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샤워 후에도 온기가 몸에 남아있어서일까? 한결 여유가 생겼다. 찬 공기에 머리를 말리며 숙소 주변을 천천히 어슬렁거렸다. 우린 경비를 아끼고자 여행자 전용 숙소에 짐을 풀었다. 덕분에 주변엔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바로 앞자리를 차지한 커플은 덴마크 남자와 러시아 여자였다. 수다스러웠던 그녀는 우리에게도 때때로 말을 걸며 장거리 연애의 고충을 토로했고, 그녀의 남자친구는 우리에게 덴마크 전통 사탕을 선물해 주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맛은 최악이었다. 쓰면서도 짠 맛. 도무지 말로 형용하기 힘든 맛이었다. 그 옆에는 홍콩 여자와 중국인 남자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때때로 중국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또 몸에 알코올이 조금 들어가면 느닷없이 중화사상을 설파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 세상에서 가장 긴 열차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

어찌 보면 도떼기시장 같은 곳이지만, 그 속에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그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좀처럼 없을뿐더러, 굳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과 오래 있을 일도 많지 않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부대끼며 끊임없는 소통을 필연적으로 하게 된다. 사람마다 여행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에 일부러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이 구석진 호스텔을 찾아온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저렴하다는 이유 때문에 이곳을 왔다고 벌써 말했기에 경제적 속물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부인하진 않으련다.

* 기차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인연.

마음의 벽을 허무는 카우치서핑

동유럽을 여행하면서는 '카우치서핑'을 자주 사용했다. '카우치서핑'이란 일종의 인터넷 용어로서 말 그대로 카우치(소파)를 타고 서핑(파도타기)을 한다는 개념이다. 즉, 세계 각국의 회원들이 자신의 소파를 내어주면, 여행자들은 그 소파에서 하루를 보내고 거처를 옮겨 다니며 파도타기 여행을 한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에 도착하기까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비롯해 라트비아의 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 등에서 운 좋게 카우치서핑을 체험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폴란드에서 만난 폴라네 가족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집 주소 하나만을 달랑 가진 채 바르샤바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그런지 터미널은 한산했다. 터미널 근처의 상인들이 출근시간이 다가오자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터미널을 빠져나와 사람들에게 집주소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목적지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 10분쯤 달렸을까. 버스는 우리를 한적하고 조용한 교외의 마을에 내려 주었다.

물어 물어 그들의 집을 찾아간 우리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이 안내해 준 주소지는 가정집이 아니라 B&B (숙박과 아침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형태의 숙박시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 제대로 찾아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혹시 카우치서핑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혹시 그런 부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커져만 갔다.

조금 경직된 표정으로 초인종을 누르니 무뚝뚝한 표정의 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예약은 했어요?"
"아니요. 저희는 카우치서핑을 통해 찾아 왔는데요..."
"카우치서핑이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던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분명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직원이 돌아오길 기다리니 잠시 후 한 남성과 함께 그가 나타났다.


"아! 너희들이구나! 반갑다! 겁나 일찍 왔네!"
그의 이름은 세바스찬. 그가 바로 우리를 초대한 주인공이다.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안으로 초대한 뒤 차를 한 잔 건넸다. 우리는 아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안 잡혀 어리둥절해 있었는데, 세바스찬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나는 아내 카롤리나와 딸 폴라를 데리고 세계 여행을 했었어. 아쉽게도 이제 여행은 끝났지만 말이야. 그 대신 이렇게 B&B를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가끔씩은 우리처럼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재워주기도 해. 우리가 예전에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야. 내 집처럼 편하게 있다 가!"

그제서야 오금이 저리던 게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근사한 핑계로 사기를 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한번쯤 속아줘도 나쁠 거 없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그럴 리는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잠시나마 멀쩡한 사람을 나쁘게 만든 것 같아 괜히 양심이 찔렸다. 아무래도 아직 여행의 시작 단계라서 그런지 타인에 대한 마음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진 않았나 보다.

우리와 같은 나이인데다가 서로 동갑이기까지 한 그들 부부는 굉장히 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친절을 베풀어 주었는데, 우리에겐 과분할 정도였다. 소파 한 구석이 아닌 객실 하나를 통째로 내 주었고 식사는 물론, 본인들의 바비큐 파티에도 초대해 주었다. 낮에는 시내에 나가 관광을 했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가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였으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금새 정이 들었던 것 같다.

짧았던 만남이 끝나고 언제나 아쉬운 작별의 시간은 찾아왔다. 곧 아프리카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는 그들에게 이런 저런 여행 정보를 알려주고,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우리를 찾으라는 당부를 남기며 폴란드를 떠났다. 우리에게 폴란드라는 나라는 유명한 관광지나 아픈 역사와 같은 사실보다는 좋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평생 기억될 것이다. 우리 또한 그들에게 대한민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문화사절단으로서의 역할을 앞으로도 톡톡히 해야겠지? 물론 앞서 잠시나마 사기꾼으로 오해한 것은 다시 한번 사과한다.

이탈리아 배낭여행

드디어 우리의 자전거가 기다리고 있는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자전거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한 달 가까이 더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서는 다행히도 자전거 여행 중 만난 존과 글로리아 부부 집에 머무르며 신세를 질 수 있었지만, 그 분들이 곧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우리도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자전거를 받아 스위스를 넘어 독일에서 열리는 유로 바이크를 관람하고 세계 3대 축제의 하나인 옥토버페스트에 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자전거가 없는 상황. 게다가 물가도 비싼 유럽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에, 계획을 바꿔 이탈리아를 간단하게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첫 목적지는 베니스였다. 베로나에서 불과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수상도시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후로도 우리는 기울어진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가죽 공예와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한 피렌체, 피자로 유명한 나폴리,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하는 곳에 선정된 포지타노,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로마 바티칸 등 다양한 곳들을 여행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 물의 도시 베니스.

그 중 기억에 남는 일화를 꼽자면, 로마에서 바티칸 투어 중 한국인 친구 둘을 만난 것. 나이도 비슷하고 얘기도 잘 통해서 우린 금방 친구가 되었다.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콜로세움 앞에서 그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두 친구와 안면이 있는 다른 한 친구가 자연스레 자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그날 다녀온 바티칸에 대해서였고, 새로 온 친구는 다음 날 그곳에 갈 예정이라 귀 기울여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우리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마치 훈련소 입소를 마친 군인에게 PX에서 총을 사서 가야 한다고 말해주듯, 바티칸 박물관에 들어갈 때 여권을 놓고 가면 입국 거부가 되니 반드시 챙겨 가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이럴 때는 어찌 그리 단결이 잘 되던지 모두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에게 입국거부를 당하는 사람을 봤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말로 그를 놀렸다. 결국 순진한 그 친구는 다음 날 바티칸에 여권을 가져갔고, 진지한 표정으로 함께 갔던 일행들에게 여권 안 가져왔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일행들로부터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어쨌거나 배낭여행을 잘 마친 우리는 우리의 자전거가 기다리고 있는 밀라노로 향했다. 사실 아직도 최소한 열흘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여행 경비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일단 밀라노로 가서 최소 경비로 열흘 동안 버텨보기로 결심했다. 이탈리아가 휴가철이었던 관계로 카우치서핑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가장 저렴한 호스텔을 찾아갔다.

* 이탈리아 하면 빠질 수 없는 나폴리 피자.

지금까지 숙소 중, 최악으로 기억되는 이 호스텔은 열악하고 좁은 시설은 둘째고, 손님 중 한 명이 장갑차 석대 분량의 코골이를 하는 통에 투숙객 모두가 잠을 설쳤다. 우리 바로 옆 자리에는 독일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자전거를 받으려면 정확히 며칠이나 더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갑갑한 마음뿐. 그래서 우리는 밀라노 관광 대신 카우치서핑을 하는 것에 집중했다.

다행히 운이 좋게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커플에게 당분간 와서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신나는 표정으로 짐을 꾸리는 우리를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독일 친구들의 표정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지만, 일단 우리부터 살고 봐야 할 일 아닌가? 한국인은 정이라는데, 우린 그들을 뒤로 하고 매정하게 그곳으로 향해 떠났다.

친절한 가브리엘, 발레리아 커플과 지내며 한층 개선 된 삶의 질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던 우리에게 이튿날 한 통의 메일이 날아 왔다. 독일 친구들이었다.

"잘 지내고 있어요? 한 가지 소식을 전해주려고 메일 보내요. 간밤에 코골이 남자가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직원이 올라왔어요.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더니 자고 있던 그를 깨워서 숙소 밖으로 쫓아내 버렸지 뭐예요! 그에겐 안 됐지만, 지난밤은 정말 태어나서 가장 잠을 잘 잔 날인 것 같아요."

독특하지만 좋은 친구 다리오와의 만남

가브리엘과 발레리아 커플과는 3일간 함께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밀라노에서 멀지 않은 베르가모 지역에서 다리오라는 친구가 자신의 집에 와서 지내도 좋다는 연락을 주어 그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약속 시간이 되어 나타난 그는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였다. 말도 너무 빠르고 한 곳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 왠지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마치 미드 <빅뱅이론>에 나오는 그들처럼 말이다. 그런 그가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갑자기 말을 잘 할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컴퓨터나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그렇다. 그는 예상대로 컴퓨터 게임 오타쿠였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는 단박에 그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너무 빠져들어 주변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친구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 그가 카우치서핑을 통해 이렇게 방을 내주다니 의외였다. 대체 무슨 동기일까… 성격을 고쳐보기 위한 그만의 노력일까? 일단은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 후 그는 우리에게 콘서트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나는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듣고 있는 것보다는 음악을 듣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나섰다.

잠시 후, 우리를 태운 차는 한적하고 음산한 술집에 도착했다. 콘서트에 가기 전에 맥주라도 한 잔 하고 가려나 생각하던 찰나, 그 곳에서 귀를 찢을 듯이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 퍼졌다. 데스메탈이었다. 헤비메탈도 아닌 데스메탈! 정신이 혼미해졌다. 클래식은 들으면서 잠이라도 잘 수 있지만 데스메탈은 정말 내 취향 아니었다.

* 다리오가 우리를 데려갔던 공포의 데스메탈 콘서트장.

관객이라고는 열 명도 안 되는 학교 동아리 공연이라 중간에 빠지기도 어려워 그르렁대는 쇳소리를 한 시간이나 들었더니 귀가 멍하고 속이 뒤집힐 뻔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다리오에게 잘 해주고 싶었지만, 그날 일들이 있고 나선 왠지 함께 있는 것 조차 힘들었다. 그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만 들뿐이었다. 언제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공기 좋은 산 속에 위치한 그의 별장에서 푹 자고 다음 날 다리오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다행히 남편이 그의 이야기를 잘 받아주어 나는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잠시 후에 어제 데스메탈 공연을 했던 친구들이 집에 찾아올 것. "아니 어째서!?"

잠시 후 그들이 정말로 찾아왔다. 낮에 봐서 그런지 어제와 달리 다들 말쑥한 차림이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이 하나같이 손에 선물을 쥐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날이 바로 다리오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친구가 많지 않은 다리오는 이번 생일을 여러 사람들과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우리를 초대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왠지 가슴 한 켠이 짠해지며 잘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일 파티는 오래된 게임을 조이스틱 8개를 연결해서 다같이 즐긴다거나 한 번에 4시간 이상씩 걸리는 상당히 전문적인 보드게임을 즐기는 식으로 진행됐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취향은 전혀 아니다. 그래도 나는 그를 위해 한국 음식도 만들어주고 관심 없는 게임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조금이나마 그가 특별한 생일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게 말이다.

어쨌건 다리오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다 보면 그가 가진 문제점들도 자연스레 해결될테니.

* 컴퓨터 괴짜이지만 순수한 청년 다리오와 함께!

사실 다리오와의 만남을 통해 나 또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다리오는 우리에게 잘해주려 노력했지만, 단지 표현의 방법이 서툴렀던 것뿐이다. 오히려 내 취향과 맞지 않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배척하려는 태도를 보인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다리오의 생일이 있고 며칠 후 자전거 회사로부터 드디어 연락이 왔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자전거가 완성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조만간 이탈리아의 장인 펠리쫄리 할아버지께서 손수 만드신 자전거 위에 오를 우리를 생각하니 짜릿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래봤자 텅 빈 주먹이지만, 뜨거운 심장만큼은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글/사진: 이성종, 손지현

 

동갑내기 부부의 자전거로 유라시아 #2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바퀴 | 바퀴에디터 | 입력 2014.08.01 19:13 | 수정 2014.08.0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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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 이성종, 손지현 씨는 지난 2007년 호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해오고 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그들의 여정은 이제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사람과 환경에 대한 꽤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번 여행기는 부부의 여행 중 2011년부터 2012년까지의 유라시아 횡단 부분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 이야기는 단행본 '거침없이 방황하고 뜨겁게 돌아오라'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책과 같은 내용이 아니라 책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의 자전거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이탈리아 베르가모에 위치한 펠리쫄리 할아버지의 공방을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우리의 자전거. 이제 이 자전거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이라는 대장정을 시작할 순간이다. 해가 떠오르는 곳을 따라 꾸준히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한국의 집까지 도착할 수 있겠지?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떠나볼까나!

이탈리아 정통 수제 프레임 장인 펠리쫄리 할아버지

"오래 걸려서 미안해요. 자전거가 완성되었으니 찾으러 오세요."
긴 기다림의 끝을 알리는 반가운 메시지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이라도 날까 서둘러 채비를 마쳤다.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베르가모 지역 외곽에 위치한 공방을 찾아갔다. 오랜 세월 자전거 프레임만을 만들어 온 장인의 거처라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프레임들이 쌓여 있었다. 자전거에 관심이 많은 이대장은 이런 흔치 않은 광경에 정신을 못 차린다.

* 펠리쫄리 할아버지 공방 전경.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프레임들이 쌓여 있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공장 내부로 향했다. 모두 엄청난 열정으로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기도 미안할 정도.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전거 역시 최선을 다해 튼튼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과연 이 수많은 자전거 중에 우리 자전거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하던 차, 누군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바로 이 공방의 주인이자 자전거 장인인 펠리쫄리 할아버지였다.

"오~ 자네들이군. 내가 만든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한다는 친구들이."
"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직접 만드신 자전거로 여행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체구는 작아도 성격이 당당하고 호탕한 펠리쫄리 할아버지였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아우라가 그의 고집과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자전거를 만날 시간. 영롱한 빨간색이 빛을 발하는 내 자전거 '베리'와 묵직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검정색이 돋보이는 이대장의 자전거 '테리'는 멀리서부터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너희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그 먼 길을 달려왔구나. 앞으로 잘 부탁한다.

* 할아버지에게선 자전거 장인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 만큼 곧바로 자전거 조립에 들어갔다. 늦어진 일정을 조금이나마 따라잡아야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갈 수 있을 테니까.

처음부터 프레임만 받기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에 조립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부품들은 여행 전에 미리 공방으로 발송해 두었다. 이대장은 자신감을 보였지만 단시간에 자전거 두 대를 조립하는 일은 꽤나 버거워 보였다. 게다가 나는 자전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 큰 도움이 못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대장의 표정은 초조해졌고 작업 속도는 더욱 느려지는 것 같았다. 단순히 자전거 조립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여행용 부품과 액세서리 장착도 해야 하고, 피팅도 해야 하므로 아무래도 당일 끝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우리야 시간이 좀 늦어도 상관없었지만, 다른 직원분들이 퇴근을 못 하는 것이 문제. 결국, 내일을 기약하며 아쉬운 오늘의 일정을 마쳤다.

* 공방에서 선물로 받은 티셔츠. 해석하면 대충 '아버지와 아들이 자전거를 만든다'일려나?

뜻밖의 초대, 긴 여정의 막이 오르다.

일정이 꼬이니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숙소였다. 그냥 자전거를 조립해서 바로 여행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펠리쫄리 할아버지께 혹시 공방 주차장 구석에서 캠핑할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는데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집에 남는 방이 있으니 괜찮다면 와서 지내도 좋다며 우리를 흔쾌히 댁으로 초대해 주셨다.

*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식사 중인 할아버지와 우리. 언어의 장벽이 있었는데도 펠리쫄리 할아버지의 표정과 몸짓이 워낙 풍부해 대화가 통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정이 많은 할아버지께서는 단순히 잠자리뿐만 아니라 식사도 주시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풍부한 표정과 몸짓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대화가 통했다. 우리가 가야 할 길과 비슷한 루트로 이탈리아에서부터 중국 북경까지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여행한 사람들의 사진첩을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바티칸의 교황에게 자전거를 선물한 일화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아침 식사를 하러 어느 카페에 갔더니 한쪽 구석에 펠리쫄리 할아버지가 교황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어서 다시금 얼마나 대단한 분과 함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분이지만, 얼마 전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나셨지만, 아들을 비롯한 가족 대부분이 이 공방에서 일하는 터라 집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그래도 다행히 금방 기운을 차리고 요즘은 기술 전수에 여념이 없으시다고 한다. 연세가 있으시니 할머니께서는 쉬엄쉬엄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시지만, 할아버지의 열정을 막기에는 역부족인가보다.

그렇게 평생을 자전거 프레임을 만드는 데 바친 할아버지께서 처음으로 만든 본격적인 여행용 자전거는 '동방의 독수리'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동방의 먼 이국땅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러 이탈리아까지 날아온 우리가 할아버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 펠리쫄리 할아버지 댁에서 하룻밤 신세 지며 꼼꼼히 여행 준비 중. 그런데 짐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며칠 간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달릴 준비가 된 동방의 독수리들 '베리'와 '테리'. 할아버지께도 작별 인사를 드릴 시간이 찾아왔다. 그간 정이 많이 들었는지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할아버지의 열정에 뒤지지 않는 뜨거운 여행을 할 것이라는 결심을 마음에 새기고는 용기를 내어 유라시아 횡단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탈리아의 정취를 느끼며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 길.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페달을 굴리기 시작하자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가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도 잠시, 이내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길이 시작됐다.

* 짐까지 싣고 나니 이제 정말 여행하는 기분이 난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든 이탈리아에는 옥수수며 사과, 키위가 길가에 탐스럽게 열려 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었다. 가끔가다 지나치는 작은 마을은 오랜 세월을 머금은 전통 양식의 건물들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곳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나 분주히 일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 유라시아 횡단을 향한 첫 페달질. 동방의 독수리들 '베리'와 '테리'야. 잘 부탁한다!

흔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알려졌다. 휴가철이 되면 전 국민의 대부분이 한 달 가까운 휴가를 떠나고,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도 모자라 낮에는 긴 낮잠을 자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문화이다 보니 나 역시 자연스레 그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런 모습이 조금 생소하긴 했지만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여유롭게 행복을 좇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이탈리아에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많다.

텐트를 찾은 한밤의 불청객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비큐 파티를 꽤나 좋아하는 듯 했다. 특히 주말 식사 시간이면 한 손에는 맥주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기를 굽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가끔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손을 높이 들어 인사를 건네곤 했고 인심 좋은 사람들은 우리를 바비큐 파티에 초대해주기도 했다.

하루는 즐겁게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는 대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 그 바비큐장이 캠핑하기에 적당해 보여 아예 텐트를 치고 자리를 깔았다. 거하게 늦은 점심을 즐긴 대학생들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고, 장시간 라이딩으로 지쳤던 우리는 해가 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레 큰 음악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생소한 음악 소리가 텐트 주변을 에워쌌고 그 음악에 맞춰 정체 모를 일당들이 춤을 추고 있는 그림자가 텐트 속을 어지럽게 떠돌았다.

제발 우리를 못 보고 지나가길 기도했건만, 야속하게도 그들은 아예 우리 근처에서 자리 잡고 바비큐를 시작하는 듯했다. 한껏 취했는지 여러 명이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이대로 텐트 안에 있으면 불안감만 더 커질 것 같아 이대장에게 밖으로 나가보라고 했지만, 이대장 역시 불안했는지 차마 나가지는 못하고 텐트 입구를 살짝 열어 밖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텐트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낯선 사람들은 이쪽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텐트 안에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서는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 시골길을 달리며 본 과일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안녕. 너희는 여기서 텐트 치고 뭐해?"
"우린 자전거 여행 중인데, 힘들어서 여기서 하룻밤 쉬고 다시 출발하려고 해."
"어디까지 가는데?"
"한국!"
"말도 안 돼!"

술이 좀 취해서인지 과장된 몸짓으로 놀라움을 표하는 모습을 보며 긴장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금은 한밤중,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얼핏 봐도 이들은 다섯 명이 넘는 상황. 이미 쪽수에서는 불리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친절했던 그들은 우리에게 바비큐와 술을 대접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터라 경계하면서도 음식은 입으로 밀어 넣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무장해제가 될 뻔 했지만,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들은 루마니아에서 온 노동자들이었다. 트로트와 비슷하면서도 생소했던 그 음악은 바로 루마니아 가요였고.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어쩐지 분위기가 달랐던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적이고 좋은 사람들 같았다. 사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매우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고,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형식적인 대화만을 나누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루마니아 친구들은 뭐랄까 약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고나 할까.

* 생일 축하 자리에 초대 받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모였다니, 화기애애한 가족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편견이 없진 않았다. 아무래도 소득 수준이 낮은 점이나 최근까지 이어졌던 유고 내전, 집시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들, 각종 영화 속 악의 축을 담당하는 동유럽 국가들의 이미지 등이 그러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물론 이 친구들처럼 언제나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확실한 것은 미리 겁먹고 부딪혀보기도 전에 결론을 내리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이제 이탈리아를 지나면 슬로베니아를 시작으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을 차례로 여행하게 될 텐데, 미리 이런 편견을 갖고 여행을 시작한다면 그 나라를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 재미없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쾌활한 루마니아 친구들 덕분에 좋은 깨달음을 얻게 된 밤이었다.

글/사진: 이성종, 손지현
홈페이지: coupletourist.com

동갑내기 부부의 자전거로 유라시아 #3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바퀴 | 바퀴에디터 | 입력 2014.08.07 19:14 | 수정 2014.08.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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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 이성종, 손지현 씨는 지난 2007년 호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해오고 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그들의 여정은 이제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사람과 환경에 대한 꽤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번 여행기는 부부의 여행 중 2011년부터 2012년까지의 유라시아 횡단 부분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 이야기는 단행본 '거침없이 방황하고 뜨겁게 돌아오라'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책과 같은 내용이 아니라 책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자전거 박람회에 우연히 들르게 된 우리.

한국과는 전혀 다른 자전거 문화와 철학 앞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또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현지인에게 직접 초대받기도 하고, 자전거로 여행하는 동료들을 만나기도 하며 점점 더 여행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즐겁기만 하던 우리 여행에 처음으로 닥친 난관.

그것은 바로 슬로베니아의 알프스 산맥이었다. 오르막이라면 쥐약인 내가 과연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일단은 부딪혀보는 수밖에.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자전거 박람회

자전거가 한 달이나 늦게 준비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계획이 있다. 바로 세계 최대 자전거 박람회인 '유로바이크'에 참관하기로 했던 것.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그때, 파도바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자전거 박람회에 때맞춰 지나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곳에 가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던 정통 이탈리아 자전거들을 많이 볼 수 있을 터이고 또 동양의 자전거 여행객이 흔치 않은 만큼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박람회장을 구경하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실망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파도바에서 열리는 이 자전거 박람회는 이탈리아에서는 꽤 큰 행사인 듯했다. 파도바 외곽에 들어서자 자전거 박람회를 알리는 커다란 광고판도 보이고 행사장을 찾는 듯한 동호인들도 보였다. 동호인들이 타는 자전거를 살핀 결과, 이탈리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자전거를 즐기며 확실히 산악자전거보다는 로드바이크의 인기가 많은 듯했다. 막상 행사장 내부로 들어가 둘러보니 의외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 바이크쇼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 하지만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양하고도 독특한 볼거리들이 있어 우리 부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파도바에서 열린 이탈리아 최대 자전거 박람회 '엑스포비씨(EXPOBICI)'

특히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빼앗긴 것은 바로 화려한 수제 자전거들이었다. 이탈리아의 소규모 공방에서 출품한, 장인 정신이 듬뿍 깃든 수제 자전거들이 반짝이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그에 어울리는 가죽 공예품들도 즐비했다. 이에 질세라 비앙키, 치넬리 등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대표 브랜드에서도 깊은 연륜과 내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오랜 역사가 깃든 클래식 자전거에서부터 최신 기술이 집약된 신형 자전거까지 총망라해 꾸며 놓았다.

이뿐이랴. 이탈리아 자전거라 하면 캄파놀료도 빠질 수 없다. 그들 역시 오랜 세월 쌓아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한 새로운 부품들을 내세우며 신기술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거침없이 눈길을 주행하는 팻바이크나 여행용 자전거, 여성용 자전거, 전기 자전거 등도 많이 출품되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BMX 동호인들의 공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클래식 자전거 부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열렸는데 평소 구하기 어려웠던 아이템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엑스포비씨'에서는 다양한 공방에서 만든 클래식 자전거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박람회장의 한쪽 구석에는 클래식 자전거 부품을 판매하는 특설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다는 사실.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어가 잘 안 통하는 듯했다. 게다가 행사장 내에는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쉬움을 더했다.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릴 수 있을 테니,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있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될 기회가 생길 거라는 기대를 조금은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직도 자전거에 대한 장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전거 문화를 접해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자전거의 역사에 관한 책에서부터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전거 관련 책을 출판하는 '에디씨클로(ediciclo)'의 부스


친절했던 그의 정체

자전거 박람회 구경을 마치고 슬로베니아를 향해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나이는 우리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였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자기도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집에서 며칠간 머물다 가라는 친절을 우리에게 베풀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집으로 초대받는 일이 굉장히 드물었다. 가끔 바비큐에 초대받더라도 식사를 마친 뒤 "하룻밤 묵어갈 곳이 필요한데 혹시 마당에서 캠핑해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면 "여기서 한 50km 정도만 더 가면 캠프장이 있어. 약도 그려줄게."라며 안내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문화겠지만 어째 적응 안 되는 것은 사실.

또 한 번은 시골 마을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정원을 손질하다 말고 우리를 관심 있게 쳐다보시더니 박수를 쳐 주시는 거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할아버지께 혹시 그 근처에 캠핑할 만한 곳이 있는지 여쭤 보았다. 그분은 흔쾌히 집 안 창고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우리를 반기지 않았던 것. 결국, 가족들은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고, 이미 시간이 꽤 늦은지라 차마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던 우리는 굉장히 불편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도둑고양이처럼 그 집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들이 있었던지라 웬 낯선 아저씨가 쫓아와서는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집으로 초대하니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이탈리아의 가정 문화도 체험할 겸 못 이기는 척 그의 집으로 따라갔다.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준 마테오 아저씨

아저씨의 이름은 마테오. 수제 구두를 만드는 독신남이었다. 그의 집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주 단순한 가구들만 놓여 있었고,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벽 한쪽에는 젊은 시절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했었다는 아저씨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이대장은 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아저씨의 자전거를 손보기 시작했다. 함께 집으로 오던 중 바퀴가 펑크 났기 때문. 하룻밤 신세 지는 입장이니 자전거를 고쳐주고 점수를 따려는 심산이었다. 그런 이대장의 모습을 아저씨는 괜한 일을 시킨 것은 아닌지 염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펑크 수리쯤 식은 죽 먹기라는 듯 이대장이 금방 고쳐내자 마테오 아저씨는 기쁜 마음에 소고기를 사와 맥주 파티를 즐기자는 제안을 했다.

정육점이 꽤 먼 곳에 있었기에 나는 집에 남고 두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하고 한참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인 게다. 둘은 거의 한 시간 반 만에 돌아왔는데 처음에는 정육점이 그렇게나 멀리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두 남자가 부쩍 친해진 것으로 보이길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신나는 바비큐 파티. 고기와 소지지, 파인애플이 맛있는 향을 풍기며 익어간다.

어쨌거나 마테오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바비큐도 맛있게 먹었고, 다음 날에는 그 지역에서 유명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빌라를 구경했다. 빌라는 과거 베네치아가 부강했던 시절 부를 축적한 귀족들의 집으로 그 엄청난 크기와 화려함으로 미루어 보아 과거 베네치아가 얼마나 부강했던 곳인지 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이대장보다는 내가 사교성이 더 좋은 편이라 남녀를 불문하고 나와 친해지는 경우가 더 많은데 아저씨는 오히려 나와의 대화는 꺼리고 이대장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바퀴를 고쳐주고 바비큐 준비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왠지 아저씨가 남자를…

그때부터 기억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먼저, 꽤 준수한 외모에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마테오 아저씨가 그 나이에도 혼자라는 점. 여자 친구가 왜 없는지 물어봤더니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안 했던 점. 남성 취향이라고 보기엔 너무 깔끔했던 인테리어. 왠지 모르게 이상한 말투. 마지막으로 이대장을 바라보는 저 눈빛!

물론 성적소수자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는 편이랄까. 하지만 그 대상자가 내 남편이라는 사실이 난감할 뿐. 더구나 이대장은 눈치도 없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선 뭐가 그리 좋은지 행복한 얼굴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 모두는 각자의 신념과 철학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비범한 사람들 또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과정은 일상 속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는 과정이기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더 많은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으리라.

*알피니 다리 근처에서 발견한 창문. 이탈리아의 감성이 묻어 나는 듯.

마테오 아저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이러한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지금까지 만나 본 이탈리아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친절하고 관심사도 비슷해 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비범한 취향만으로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겐 바르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저씨를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아직은 조금 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그러니 부디 내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둘 사이에 아무 일이 없길.

* 위의 글은 본지의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자의 마음가짐

이탈리아와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이 왔다. 떠나기 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독주인 그라파의 본 고장 바사노 델 그라파에 들러 알피니 다리를 구경하고 그라파도 한 잔 시음해 봤다. 술맛은 잘 몰라 뭐라 딱히 이야기할 순 없으나 정말 독하긴 독했다.

*이탈리아를 떠나기 전 들렀던 바사노 델 그라파의 명물, 알피니 다리.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 촬영장소로도 알려졌다.

그리고는 다시 열심히 달려 슬로베니아에 도착했다. 육로로 국경을 넘은 것은 처음. 슬로베니아 역시 솅겐 조약이 적용되는 유럽 연합국이기에 입국 심사가 까다롭진 않았다. 마치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듯이 그냥 표지판 하나 달랑 놓여 있을 뿐이라 오히려 약간 김이 샜지만, 그래도 처음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며 기념사진을 찍고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두 번째인 나라 슬로베니아에 입국했다. 지금부터 우리의 목적지는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 하지만 끝자락이라고 해도 그 산세가 굉장히 험하다. 사실 나는 오르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어떻게 보면 싫어하는 쪽에 가깝지만, 이대장은 나와 반대로 산을 좋아하고 비포장도로를 좋아한다. 그래도 언제나 한 사람의 취향대로 다닐 수는 없는 법이니 이번만큼은 이대장의 의견을 존중해 험난한 산세를 타보기로 했다. 일단 해보고 정 안돼서 포기해도 후회는 없을 테니까.

*알프스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친구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두 친구를 만난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시작해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두 친구는 짐이 진짜 많았다. 패니어 뒤에는 트럭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식을 붙여 놓는가 하면 심지어 통기타까지 싣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짐을 싣고 가파른 알프스 산맥을 여행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저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슬로베니아에 들어서자 위풍당당한 알프스 산맥이 우리를 반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대화 끝에 헤어지며 조금만 더 가면 있는 캠프장에 자전거 여행자 친구들 몇 명이 또 있으니 가서 만나보라 권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두 팀이나 만나게 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것도 이런 알프스 산맥의 중턱에서.

*가파른 경사 중간에서 만나 짧은 이야기밖에 나누지 못했지만 반가웠어.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앞서 그들이 말한 캠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을 생각으로 안쪽에 들어가니 한참 떠날 채비를 하는 자전거 여행자 한 팀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오후 3시, 우리는 잘 곳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이들은 이제 떠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여행 방식이다.

*자전거 여행 중인 독일 친구들과의 첫 만남. 도대체 빨래를 며칠 동안 안 한 거니.

남자 둘과 여자 하나였던 그들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자전거로 유럽 여행 중이긴 하지만, 주목적은 암벽등반이라던 그들에게 자전거는 장비와 사람을 실어주는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친구들도 아까 만난 두 명과 마찬가지로 짐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짐이 많은 멤버는 심지어 자전거조차 고장은 안 날까 싶은 고물이었다. 보기에도 아찔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인지라 여행은 고사하고 앞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캠프장을 미처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자전거에 고장이 나 한참을 고친 후에야 그들은 겨우 다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며 내게 없던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여행을 그 자체로 즐기는 마음.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이들은 이런 고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즐거운 도전이라는 듯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괴짜면 어때. 유쾌하고 즐거웠던 독일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념하며.

나는 왜 저들처럼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던 것일까. 긴 오르막은 단지 자유로운 여행에서의 힘든 과정일 뿐 우리의 여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순간 자신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들을 보며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한 발 한 발 페달을 꾹꾹 밟아 나아갔다. 힘들 때마다 몰려 오는 모든 짜증을 벗어 던지기 위해 독일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지었던 해맑은 표정을 기억했다. 내 마음이 바뀌니 기분도 좋아졌고,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졌던 오르막도 어느새 즐거운 여행길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프스 산맥의 정상에 섰을 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환희가 나를 감쌌다. 힘든 오르막을 정복한 것 때문이 아니라 힘든 것도 즐겁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맛본 희열 때문이었다.


글/사진: 이성종, 손지현
홈페이지: coupletouri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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