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온라인 사업의 대부, 바이두 CEO 리옌훙 회장의 포부

이코노미스트 2014/07/29 10:00

중국에는 페이스북이 없다. 트위터도 없다. 구글도 없다. 그렇다면? 많은 중국의 사람들을 엮는 온라인 서비스는? 바로 중국 최대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100대 브랜드’ 조사에서 지난해 33위에서 올해 25위로 8단계를 뛰어 오른 기업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웹서비스 업체다. 현재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중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구글에 뒤지지만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 검색엔진인 네이버보다도 훨씬 앞선다. 12억 인구를 바탕으로 하는 사업이다 보니 중국인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두 CEO 리옌훙 회장



 바이두


바이두를 이끄는 공동 창업자 리옌훙(李彦宏·46) 회장은 중국 경제를 이끌어나가는 주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CEO를 맡아 하며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개인 재산이 122억 3100만 달러에 이르는 중국 본토 1위의 부자다.

 7월 3~4일 서울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끌고 온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방한한 리옌훙 회장이은 지난 7월 4일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참석했다. 중국 정치협상회의 위원이기도 하며,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馬雲·50) 회장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인이다.

바이두는 2000년 1월18일에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의 낡은 여관방에서 6명의 직원과 함께 문을 열었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후발 인터넷 기업에 해당한다. 하지만 올 7월 현재 하루 6억명이 접속하며 직원 3만4600명, 지난해 매출 319억4400만 위안(약 5조2000억원)의 거대 공룡기업이 되었다. 네이버가 지난해 기준으로 직원 1959명에 매출 2조3119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바이두의 규모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바이두는 베이징에 있는 본사를 영어로 바이두 캠퍼스라고부른다. 구글이나 애플의 느낌이 난다. 2005년 8월5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했지만 아직은 사업이 글로벌로 뻗지 못하고 중국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2006년 12월 일본에 진출해 2008년 1월23일부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정도다. 회사 이름부터 다분히 중국 지향적이다. 중국 남송의 시인 신기질의 시 ‘청옥안·원석(靑玉案·元夕)’에 등장하는 구절에서 따왔다.



바이두 클라우드


 

중국에선 바이두가 없으면 인터넷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바이두의 서비스는 57종이나 된다. 구글이 영어 사용자들의 인터넷 생활을 지배한다면, 중국어 사용자의 웹 생활은 바이두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로 가능한 서비스 대부분을 중국어로는 바이두를 통해 할 수 있다. 바이두에는 토론 포럼도 있어 중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중국이 국내 치안을 이유로 일부 해외 사이트를 차단하는 등 인터넷 검열이 강화되는 와중에 중국 토종 인터넷 기업으로 자국 시장을 쉽게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로 2011년 6월 미국의 일부 인권운동가들이 바이두가 중국 당국의 검열에 복종해 미국 헌법을 위반했다며 제소했다. 그러나 이 재판은 바이두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 법원이 바이두는 친민주화 사이트를 봉쇄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리 회장은 꾸준한 기술 개발과 서비스 확대, 사업의 국제화로 이런 비난을 비껴가려고 하고 있다.

바이두는 2012년 7월 31일부터 모바일 서비스도 개시했다. 2012년 11월 8일에는 미국 퀄컴사와 손잡고 안드로이드 사용자를 대상으로 무료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두윈(百度雲) 또는 바이두 클라우드로 불리는 이 서비스는 2테라바이트의 저장용량을 제공한다.

리 회장은 중국에서 해외파 기업인에 속한다. 베이징대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에 유학해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해외에서는 로빈 리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1987년 중국의 대입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서 양추안 지역수석을 차지해 베이징대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컴퓨터공학 박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1991년 가을 미국 유학을 떠났지만 1994년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학업을 중단했다.

대신 그는 직장을 택했다. 대학 시절 일본 기업 마쓰시타의 미주지사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그는 1994년 5월 다우존스의 뉴저지 지사에 해당하는 IDD 인포메이션 서비스에 들어가 1997년 6월까지 일했다. 이 회사에서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온라인판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업무를 맡았다. 그러면서 검색엔진의 알고리즘 개선을 위한 작업에도 참여했다. IDD에서 일하던 1996년 그는 검색엔진 페이지 순위를 파악할 수 있는 랭크덱스 사이트 순위 알고리즘을 개발해 특허를 얻었다. 그는 나중에 바이두의 검색엔진에 이 기술을 사용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후 인포시크라는 검색회사로 옮겨 1997년 7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일했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사진 검색 기능을 개발했다.



1998년 그는 <실리콘밸리에서의 비즈니스 전쟁(Business War in Silicon Valley)>이라는 책을 썼다.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형태를 관찰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평론가·연구가·저술가에 머물지 않고 직접 창업에 나섰다. 1999년 말 중국으로 귀국한 그는 2000년 1월 베이징대 인근 낡은 여관방에서 6명의 직원과 함께 바이두를 공동 창업했다. 


베이징대 학우인 후용(徐勇·영어이름 에릭 후)이 공동창업자였다. 두 사람은 중국 국적으로 미국 유학을 한 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미국 기업을 경험하고 귀국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후용은 1982년 베이징대 생물계에 입학해 1989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록펠러 장학금을 받고 미국 텍사스 A&M대에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버클리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9년 중국으로 귀국했으며 2000년 리 회장과 함께 바이두를 창업했지만 2004년 회사를 떠났다.

리 회장은 바이두를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업체로 키웠다. 바이두는 중국 검색엔진 시장의 최대 80%를 차지했으며 단독 업체로는 세계 2위 규모다. 2007년에는 중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나스닥100 지수에 포함됐다. 그 해 리옌훙 회장은 CNN 머니가 매년 발표하는 50대 주목할 만한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비즈니스에서 기술을 강조한다. 바이두의 성공비결로 ‘기술의 힘’을 들 정도다. 실제로 바이두는 검색창에 언어식별 기술, 이미지 식별 기술 등 다양한 첨단기술을 적용해 중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예로 길가에서 발견한 식물의 사진을 찍어 바이두의 이미지 인식을 거치면 식물의 이름은 물론 생물학적 데이터를 곧바로 확보할 수 있다.

리옌훙 회장의 꿈은 바이두를 글로벌 인터넷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들어 인공지능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국에 인공지능연구소를 세웠다. 이를 통해 개발한 첨단 인공지능기술로 구글을 넘어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인 애드루 응을 초빙해 바이두 대뇌라는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가 개발 중인 인공두뇌는 현재 200억개에 이르는 실험용 신경세포를 바탕으로 2~3세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췄다. 그는 조만간 이를 10대 청소년의 지능 수준으로 높여 혁명적인 인공지능 인터넷 시스템을 내놓을 계획이다.

리 회장은 이번 방한 중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성공한 사업모델을 한국 시장에도 진출시키겠다”며 한국 시장 진출 의지를 밝혔다. 또 “한류를 계기로 한·중 사업 합작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리 회장은 최근 한국과의 협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2004년 첫 방한 이후 지금까지 4차례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초청을 받아 방한했다. 바이두와 삼성은 지난 몇 년간 모바일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합작사업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바이두


SM 엔터테인먼트


리옌훙 회장은 SM엔터테인먼트와도 협력하고 있다. 바이두는 중국에서 SM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판권을 맡을 예정이다. 전략적으로 봐서 한·중 경제협력을 넘어 인터넷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융복합적 합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 한류 판권을 확보하는 한편 한국 시장 진출과 바이두의 문화사업 진출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류 팬카페에서 활동하는 중국 블로거수가 2000만명에 이르는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를 펼칠 경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양적으로 세계 최고인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와 속도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인 한국 인터넷의 장점을 서로 합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성공했던 인터넷 사업모델을 한국에서 펼쳐보고 싶다는 꿈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 중심적이었던 바이두의 사업영역을 한국 진출을 통해 더욱 국제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의 목표는 바이두를 구글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과 인터넷 업체로 키우는 것이다. 중국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IT강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게 그의 야심이다. 이를 위해 한국을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로 보인다. 한국으로서는 이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은 인터넷 기술과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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