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클릭]명량…사나이 마음 울리는 웅장한 정극
기사입력 2014.08.04 11:27:57 | 최종수정 2014.08.04 13:07:29 싸이월드 공감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명량/ 액션, 드라마/ 김한민 감독/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출연/ 128분/ 7월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김훈의 ‘칼의 노래’나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에서 입증됐듯, 이순신의 내면을 추적하는 작업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다. 수많은 주석과 연구와 전설이 덧붙여지고 초등학생 아이부터 초로의 노인까지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이가 바로 이순신이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도 이런 대열에 합류한 이상, 난중일기를 마르고 닳게 봤을 터. 그리하여 그는 선조를 위시한 조선시대 당시의 정치권 상황을 철저히 배제한 채 무조건 전남의 바닷가로 향한다.

영화 ‘명량’은 리더의 고독에 관한 영화다. 휘하의 부하들은 계속해서 “이 싸움은 불가하다”며 ‘어명’을 따르라고 진언한다. 누가 어떻게 이순신을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설왕설래하는 일본 진영에도 내분이 있지만, 한국 진영의 내분은 아예 싸움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귀결된다. 이 가운데 이순신이 있다. 어머니의 제사마저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장수.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만 그 어떤 감정도 내색할 수 없는 사내. 목숨까지 거두려 했던 임금을 끝까지 좇을 수 있었던 것은 임금보다 위에 있다고 믿은 백성을 향한 마음이었다.

이순신 역의 최민식은 영웅이나 성웅이 아닌, 인간적인 고뇌와 고독이 뼛속까지 스며든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탁월하게 조탁하고 있다. 그가 연기한 이순신은 낮의 장군이라기보다 밤의 노인, 갑옷을 찬 장수라기보다 한밤에도 잠을 못 이루는 산발한 사내의 이미지다. 낮에는 군율을 어기고 도망친 자의 머리를 베어내고 호령하지만, 밤에는 꿈속에서 전쟁통에 죽은 동료들의 유령을 맞이한 채, 황망하게 등을 돌리는 유령들을 붙잡으려 몸부림친다. 그리고 이순신의 고독과 고뇌의 끝자락은 울돌목 앞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바다를 굽어보는 단독 샷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런 이순신의 내면에 대한 접근만으로 김한민 감독의 야심을 재단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극은 점차 명량의 치열한 해상 전투신으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을 옮긴다. 이때부터 많은 인물들이 가세하고 영화의 스케일도 확장을 거듭한다. 적진에는 구루지마의 그림자이자 뛰어난 저격수인 하루가 버티고 있고, 이순신과의 싸움에서 그의 대단함을 감지하고 있는 와키자카가 등장한다.

수많은 CG로 치장하고 위험을 감내하며 배 위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한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의 스케일을 과시한다. 음이 소거된 지옥해전이 슬로모션으로 펼쳐지기도 하고, 몸과 몸이 칼과 칼이 부딪치는 백병전의 결기와 배가 배끼리 충돌해 싸우는 충파 장면도 압도적이다. 전작 ‘최종병기 활’이 바람을 가르는 직선의 영화라면, 선상 촬영이 유려한 ‘명량’은 커다란 붓으로 일필휘지한 곡선의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 다시 이순신만 남았다. 결전의 날이 밝기 직전, “모두 여기에서 죽으라, 목숨에 기대지 말라”는 장수의 울부짖음은 곡소리를 내는 울돌목 바다와 조응한다. ‘명량’은 사나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웅장한 정극이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물리친 희대의 장수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필히 살 것이다”라는 이순신의 외침이 뭔가 현실과 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의 교훈이 자본주의 사회를 힘겹게 헤쳐 나가는 후손들에게 자기 계발과 동기 수준을 높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안타깝지만 미지수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69호(08.06~08.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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