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위대함을 느껴라
팻 크로스, 빌 리용 지음
1. 무지개 위에서 본 풍경
나는 프로농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선수들의 발목에 붕대나 감아주던 내가 이제는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연봉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옛날에는 경기장에 몰래 숨어들다가 경비원들에게 발각되어 줄행랑을 치곤 했지만 이제는 특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문을 통과해 빨간 양탄자를 밟고 당당히 걸어들어 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5년 전 베이터와 나는 필라델피아 외곽의 한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우리는 웨스트 체스터 대학에 가서 풋볼 선수로 활동하기 위해 면담을 신청했다. 베이터의 풋볼 선수로서의 명성을 그 코치가 알아차린 것은 행운이었지만 명성이랄 것도 없는 나는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뻔뻔함이 있었고, 운 좋게도... 자신감과 긍정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거나 어떤 꿈이 실현되지 않을 거라고 회의를 품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는 코치에게 팀에서 뛸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입학신청서에 추천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분명 만나자마자 추천인이 되어달라고 말할 만한 용기가 있다면 자신의 풋볼팀을 위해 무슨 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미친 녀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 역시 그가 그렇게 생각하길 바랬다. 물론 그는 내 추천인이 되어주기로 했다. 어떤가? 물어본다고 해서 해가 될 건 없고, 들을 수 있는 최악의 대답은 고작 '안 된다.'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부탁하지 않는다면 대답은 언제나 ‘안 된다.’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웨스트 체스터에 다닌다.’ 등의 목표를 메모했다. 나는 메모에 대한 광신도이다. 일단 종이 위에 적고 나면 희망과 소원들은 분명히 성취할 수 있는 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희망 사항을 적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은 더 이상 압도적이지도 엄청나지도 않다. 종이 위에서 나를 마주 바라보는 그 글씨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2. 네온 달빛 아래서
나는 웨스트 체스터에서 체육전공으로 입학허가를 받았고, 신입생 풋볼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또 이미 배정된 룸메이트를 설득해 베이터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나는 우등생 명단에 들고 싶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 그러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기숙사에서 쫓겨난 후, 풋볼 팀 선배의 도움으로 철도 옆의 집에 머물게 되었고, 그 곳까지 갈 차편을 가진 선배를 기다리기 위해 저녁에는 항상 바에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결국 나는 우등생이 되었다. 돈을 아껴 써야 했던 나는 ‘철도의 집’에서 파티를 열어 내가 개발한 게임으로 이윤을 얻는 방법도 깨우쳤다.
2학년 때부터는 풋볼 팀 대신 태권도부에 들었다. 아무리 많이 먹고 운동을 해도 프로 풋볼 선수가 될 만큼 충분한 덩치와 빠르기,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선택한 것은 싸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완전히 그 반대이다. 태권도는 내 에너지의 출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정신을 집중할 대상도 되어 주었다. 거기서 생긴 집중력은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키워주었다. 그저 시간을 끌거나 문제가 저절로 사라져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공격을 선택하는 태도를 길러주었다.
무언가에 정면으로 마주서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회의주의자들에게는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이 상당히 부풀려진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말로 효과가 있다.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어떤 사람들은 골칫거리로 보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기회로 본다.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야말로 스스로에게 가장 강력한 박차를 가해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1973년 처음 태권도를 시작하고 그 후 피츠버그 대학에서 계속 수련을 하면서 태권도 실력이 점점 향상되어 가자, 내 속에서 악마와 같은 존재가 잠재해 있다는 사실과 또 그 존재를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하는 길들을 점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당수도는 내 안의 넘치는 양의 에너지를 죽이고 음의 에너지와의 균형을 찾도록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한국의 무술인 태권도와 당수도에서 각각 검은 띠를 땄다.
3. 음(陰)을 찾아서
끈질김은 씹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베어 물고, 베어 문 것을 끝까지 씹어 삼키는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거절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뿐만 아니라 거절은 치명적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서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거절은 불변의 조건도 아님을 알았다.
졸업을 앞둔 내 목표는 물리치료 학위와 체육 트레이너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물리 치료사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지붕 수리공과 페인트공, 경비원과 상점 탐정, 그리고 물리치료 자원봉사를 전전하며 1년을 보냈다. 또한 검은 띠를 따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물리치료 학위를 따기 위해 간 피츠버그의 기숙사에서 건장한 체구의 학생들이 집단으로 한 사람을 공격하는 ‘폭력의 축제’에 걸려들었다. 정규교육을 깨끗한 경력으로 마쳐 가는 나를 미치광이 녀석들이 망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치밀었다. 싸움은 경찰들이 총을 꺼내게 되고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다음날 물리치료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 녀석을 평생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게 만들거나 그보다 더 지독한 상태로 만들어버리기를 원하고 있는 나 자신이 당혹스러웠다. 내 분노가 그토록 강하다는 것이 두려웠고, 그 끔찍한 보복에 대한 욕구를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다시는 그렇게 강렬한 분노에 나 자신을 무방비로 내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자기통제를 향해 첫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4. 영혼의 동반자
만약 당신이 아주 운이 좋다면, 평생을 당신 곁에 있어 줄 단 한 명의 진실한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아내 다이앤이 그렇다. 다이앤은 마구 날뛰는 나에게 완벽한 음(陰)의 존재로 나의 결점들을 잊고 대신 가능성들을 그릴 줄 아는 존재가 되어 주었다.
돈 한푼 없이 오두막에서 아버지와 장인어른 댁의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을 옮겨다 쓰며 신혼을 시작했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없는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씩 더 큰 집으로 이사할 때마다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투덜거렸지만 그녀는 “이 집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안정과 지속성을 좋아하는 정착민이었고, 나는 언제나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하는 해적과 같았다.
그녀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나를 항상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맹목적인 지지는 아니었다. 의심스러운 계획들이 모두 성공할 거라고 믿는 척하지도 않았고, 솔직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존재는 우리가 변할 수 있도록 도와줄 누군가이다.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하는 내 영혼의 동반자가 곁에 있다면 아무 문제 없다.
5. 스펀지 찬양
나는 일찍이 내가 그다지 똑똑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알아차릴 만큼은 똑똑했다.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땄고 우등생 명단에도 올랐었고, 체육트레이너 자격증도 땄다. 그중 엄격하고 꾸준한 노력 없이 이뤄진 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결코 타고난 학자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듣기와 질문하기 그리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끈질기게 물리치료사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테일러 병원의 스태프로 들어갔다. 그 병원의 클리닉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의사들이 갓 생긴 상처를 보고 부상을 진단하는 것을 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1년 뒤 나는 나 자신의 물리치료 부서를 이끌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책임자가 되어 치료와 서비스에 대한 나의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물리치료를 위한 시설과 공간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해버포드 커뮤니티 병원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오히려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뛸 뜻이 기뻤다. 그 곳의 책임자를 잘 설득시킬 수만 있다면 내 계획과 기술을 기반으로 새 물리치료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혼자 연구해서 자세한 계획을 세우고 나는 그를 완전히 설득시켰다.
해버포드 커뮤니티 병원, 물리치료 과장. 이것이 내 새 직함이었다. 더구나 이 직함은 새로 생긴 물리치료과의 이름보다 글자가 한 자가 더 많았다! 지금 우리 집에는 서서 들어갈 수 있는 장롱들이 있는데, 내 첫 물리치료과는 이 장롱들보다 좁았다. 아,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포츠의학클리닉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전국을 휩쓸던 80년대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스포츠 센터가 성행하면서 운동에는 반드시 부상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을 근거로 나는 다시 설득을 시작했고, 마침내 전국 최초 개별 병원부설 스포츠 의학 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다. 그 후로 5년 동안 나는 스포츠의학 클리닉 복음 전도사가 되어 가능한 모든 곳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6. 긁을 수 없는 근지러움
스포츠의학 클리닉에는 점점 많은 수의 부상자들이 몰려들었고 우리는 더 많은 직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훌륭한 경력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자원봉사 활동을 아주 지지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결단력과 욕망의 깊이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열정적이며 돈이 아니라 진정한 몰두에서 나오는 행동을 선호하고, 스스로 배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을 다른 모든 이들보다 훌륭하다고 보는 점이다.
나는 이들을 나의 조직으로 만들었고, 그들과 함께 1980년에 ‘정형 스포츠 재활센터’라는 이름으로 내 사업을 시작했다. 그 시절 저녁이면 다이앤과 나는 맥주집에 들러 큰소리로 우리의 꿈을 얘기했고, 그 꿈은 모두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단지 우리의 꿈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이미 꿈을 더욱 키워야겠다는 결심이 서 있었다. 그것은 나의 딸 켈리와 켈리의 동생이 탄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센터와 강연, 기고, 물리치료 시술을 하느라 온종일 바빴지만 나는 그 이상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기업가 딕의 제의로 그가 세우는 거대한 스포츠의학센터를 계획하고 관장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그 계획은 꿈이지만, 전적으로 완전한 내 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권은 내게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꿈과 내 운명조차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을 터였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영혼의 동반자 다이앤을 제외하고 누구의 부름에도 의무적으로 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하라. 때로는 어떤 행동을 결코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이 최선의 행동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7. 나의 힘으로
천재 방송인 척은 천재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과녁으로 삼고 명중시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결코 실망했다고 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또한 모든 사람이 그가 할 수 없다고 말했던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첫 성공을 하기 전 경험했던 모든 실패들을 되새기는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매혹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이런 생각이 내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척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도 할 수 있다!
8. 내 꽃밭에 토하지 마!
수년에 걸쳐 스포츠계와 연예계의 유명한 인물들이 내 센터를 열심히 드나들었다.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똑같이 힘든 운동을 해야 했고, 예외는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주인인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땀을 빼며 운동하는 것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기막힌 효과가 있다.
비회원인 유명인사가 평소 다른 곳에서 대접받던 대로 생각하고 왔다가 웃음거리가 된 경우도 많았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우리처럼 운동을 따라하다 구역질을 하려고 하면, 나는 “감히 내 카펫에 토하려 들다니! 속에 든 걸 게워내려거든 바깥으로 나가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찬바람을 쐬고 돌아오면 “그리고 내 꽃들 위에도 토하지 말아요!” 하고 말했다. 그들 중 다시 돌아와 운동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은 달빛 내린 해변가를 거니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영혼에 유익하다. 운동과 해변산책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사소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둘은 우리의 가치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9. 트라이앵글
어느 날 낙서를 하다가 정삼각형을 그렸던 것이 이후 내 사업과 사업 접근법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똑같은 길이의 세 변을 바라보며, 나의 사업이 종국에 어떤 지점에 이르기를 원하는지를 정리해보고자 했다. 즉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품질, 즐거움, 이윤’이라는 사명선언문을 세웠다. 내 삶에서 이 세 가지 중 어떤 것도 다른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사소하지 않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생각은 없었고, 환자들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서비스의 수준이 낮아지면 자연히 이윤도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에 맞는 보상도 분명히 원했다. 그것이 바로 즐거움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결정한 그 선택이
우리 자신을 만든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라.
내 안의 위대함을 느껴라
팻 크로스, 빌 리용 지음
팻 크로스, 빌 리용 지음
1. 무지개 위에서 본 풍경
나는 프로농구단을 소유하고 있다. 선수들의 발목에 붕대나 감아주던 내가 이제는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연봉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옛날에는 경기장에 몰래 숨어들다가 경비원들에게 발각되어 줄행랑을 치곤 했지만 이제는 특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문을 통과해 빨간 양탄자를 밟고 당당히 걸어들어 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5년 전 베이터와 나는 필라델피아 외곽의 한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우리는 웨스트 체스터 대학에 가서 풋볼 선수로 활동하기 위해 면담을 신청했다. 베이터의 풋볼 선수로서의 명성을 그 코치가 알아차린 것은 행운이었지만 명성이랄 것도 없는 나는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뻔뻔함이 있었고, 운 좋게도... 자신감과 긍정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거나 어떤 꿈이 실현되지 않을 거라고 회의를 품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나는 코치에게 팀에서 뛸 수만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입학신청서에 추천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분명 만나자마자 추천인이 되어달라고 말할 만한 용기가 있다면 자신의 풋볼팀을 위해 무슨 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미친 녀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 역시 그가 그렇게 생각하길 바랬다. 물론 그는 내 추천인이 되어주기로 했다. 어떤가? 물어본다고 해서 해가 될 건 없고, 들을 수 있는 최악의 대답은 고작 '안 된다.'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부탁하지 않는다면 대답은 언제나 ‘안 된다.’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웨스트 체스터에 다닌다.’ 등의 목표를 메모했다. 나는 메모에 대한 광신도이다. 일단 종이 위에 적고 나면 희망과 소원들은 분명히 성취할 수 있는 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희망 사항을 적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은 더 이상 압도적이지도 엄청나지도 않다. 종이 위에서 나를 마주 바라보는 그 글씨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2. 네온 달빛 아래서
나는 웨스트 체스터에서 체육전공으로 입학허가를 받았고, 신입생 풋볼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또 이미 배정된 룸메이트를 설득해 베이터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나는 우등생 명단에 들고 싶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 그러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기숙사에서 쫓겨난 후, 풋볼 팀 선배의 도움으로 철도 옆의 집에 머물게 되었고, 그 곳까지 갈 차편을 가진 선배를 기다리기 위해 저녁에는 항상 바에서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결국 나는 우등생이 되었다. 돈을 아껴 써야 했던 나는 ‘철도의 집’에서 파티를 열어 내가 개발한 게임으로 이윤을 얻는 방법도 깨우쳤다.
2학년 때부터는 풋볼 팀 대신 태권도부에 들었다. 아무리 많이 먹고 운동을 해도 프로 풋볼 선수가 될 만큼 충분한 덩치와 빠르기,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선택한 것은 싸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완전히 그 반대이다. 태권도는 내 에너지의 출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정신을 집중할 대상도 되어 주었다. 거기서 생긴 집중력은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치면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키워주었다. 그저 시간을 끌거나 문제가 저절로 사라져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공격을 선택하는 태도를 길러주었다.
무언가에 정면으로 마주서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 회의주의자들에게는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이 상당히 부풀려진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말로 효과가 있다. 똑같은 대상을 놓고도 어떤 사람들은 골칫거리로 보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기회로 본다.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이야말로 스스로에게 가장 강력한 박차를 가해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1973년 처음 태권도를 시작하고 그 후 피츠버그 대학에서 계속 수련을 하면서 태권도 실력이 점점 향상되어 가자, 내 속에서 악마와 같은 존재가 잠재해 있다는 사실과 또 그 존재를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하는 길들을 점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당수도는 내 안의 넘치는 양의 에너지를 죽이고 음의 에너지와의 균형을 찾도록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나는 한국의 무술인 태권도와 당수도에서 각각 검은 띠를 땄다.
3. 음(陰)을 찾아서
끈질김은 씹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베어 물고, 베어 문 것을 끝까지 씹어 삼키는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거절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뿐만 아니라 거절은 치명적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서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거절은 불변의 조건도 아님을 알았다.
졸업을 앞둔 내 목표는 물리치료 학위와 체육 트레이너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다. 물리 치료사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지붕 수리공과 페인트공, 경비원과 상점 탐정, 그리고 물리치료 자원봉사를 전전하며 1년을 보냈다. 또한 검은 띠를 따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물리치료 학위를 따기 위해 간 피츠버그의 기숙사에서 건장한 체구의 학생들이 집단으로 한 사람을 공격하는 ‘폭력의 축제’에 걸려들었다. 정규교육을 깨끗한 경력으로 마쳐 가는 나를 미치광이 녀석들이 망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치밀었다. 싸움은 경찰들이 총을 꺼내게 되고서야 끝이 났다.
하지만 다음날 물리치료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 녀석을 평생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게 만들거나 그보다 더 지독한 상태로 만들어버리기를 원하고 있는 나 자신이 당혹스러웠다. 내 분노가 그토록 강하다는 것이 두려웠고, 그 끔찍한 보복에 대한 욕구를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다시는 그렇게 강렬한 분노에 나 자신을 무방비로 내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자기통제를 향해 첫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4. 영혼의 동반자
만약 당신이 아주 운이 좋다면, 평생을 당신 곁에 있어 줄 단 한 명의 진실한 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아내 다이앤이 그렇다. 다이앤은 마구 날뛰는 나에게 완벽한 음(陰)의 존재로 나의 결점들을 잊고 대신 가능성들을 그릴 줄 아는 존재가 되어 주었다.
돈 한푼 없이 오두막에서 아버지와 장인어른 댁의 지하실에 있는 물건들을 옮겨다 쓰며 신혼을 시작했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없는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씩 더 큰 집으로 이사할 때마다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투덜거렸지만 그녀는 “이 집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안정과 지속성을 좋아하는 정착민이었고, 나는 언제나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하는 해적과 같았다.
그녀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나를 항상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맹목적인 지지는 아니었다. 의심스러운 계획들이 모두 성공할 거라고 믿는 척하지도 않았고, 솔직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존재는 우리가 변할 수 있도록 도와줄 누군가이다. 그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하는 내 영혼의 동반자가 곁에 있다면 아무 문제 없다.
5. 스펀지 찬양
나는 일찍이 내가 그다지 똑똑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알아차릴 만큼은 똑똑했다.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땄고 우등생 명단에도 올랐었고, 체육트레이너 자격증도 땄다. 그중 엄격하고 꾸준한 노력 없이 이뤄진 일은 하나도 없다. 나는 결코 타고난 학자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듣기와 질문하기 그리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끈질기게 물리치료사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테일러 병원의 스태프로 들어갔다. 그 병원의 클리닉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의사들이 갓 생긴 상처를 보고 부상을 진단하는 것을 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1년 뒤 나는 나 자신의 물리치료 부서를 이끌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책임자가 되어 치료와 서비스에 대한 나의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물리치료를 위한 시설과 공간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해버포드 커뮤니티 병원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오히려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뛸 뜻이 기뻤다. 그 곳의 책임자를 잘 설득시킬 수만 있다면 내 계획과 기술을 기반으로 새 물리치료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혼자 연구해서 자세한 계획을 세우고 나는 그를 완전히 설득시켰다.
해버포드 커뮤니티 병원, 물리치료 과장. 이것이 내 새 직함이었다. 더구나 이 직함은 새로 생긴 물리치료과의 이름보다 글자가 한 자가 더 많았다! 지금 우리 집에는 서서 들어갈 수 있는 장롱들이 있는데, 내 첫 물리치료과는 이 장롱들보다 좁았다. 아, 하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포츠의학클리닉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전국을 휩쓸던 80년대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스포츠 센터가 성행하면서 운동에는 반드시 부상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을 근거로 나는 다시 설득을 시작했고, 마침내 전국 최초 개별 병원부설 스포츠 의학 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다. 그 후로 5년 동안 나는 스포츠의학 클리닉 복음 전도사가 되어 가능한 모든 곳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6. 긁을 수 없는 근지러움
스포츠의학 클리닉에는 점점 많은 수의 부상자들이 몰려들었고 우리는 더 많은 직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훌륭한 경력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자원봉사 활동을 아주 지지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결단력과 욕망의 깊이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열정적이며 돈이 아니라 진정한 몰두에서 나오는 행동을 선호하고, 스스로 배우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을 다른 모든 이들보다 훌륭하다고 보는 점이다.
나는 이들을 나의 조직으로 만들었고, 그들과 함께 1980년에 ‘정형 스포츠 재활센터’라는 이름으로 내 사업을 시작했다. 그 시절 저녁이면 다이앤과 나는 맥주집에 들러 큰소리로 우리의 꿈을 얘기했고, 그 꿈은 모두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단지 우리의 꿈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이미 꿈을 더욱 키워야겠다는 결심이 서 있었다. 그것은 나의 딸 켈리와 켈리의 동생이 탄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센터와 강연, 기고, 물리치료 시술을 하느라 온종일 바빴지만 나는 그 이상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기업가 딕의 제의로 그가 세우는 거대한 스포츠의학센터를 계획하고 관장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그 계획은 꿈이지만, 전적으로 완전한 내 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종 결정권은 내게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꿈과 내 운명조차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을 터였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영혼의 동반자 다이앤을 제외하고 누구의 부름에도 의무적으로 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억하라. 때로는 어떤 행동을 결코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이 최선의 행동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7. 나의 힘으로
천재 방송인 척은 천재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과녁으로 삼고 명중시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결코 실망했다고 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또한 모든 사람이 그가 할 수 없다고 말했던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첫 성공을 하기 전 경험했던 모든 실패들을 되새기는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매혹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천천히 이런 생각이 내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척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도 할 수 있다!
8. 내 꽃밭에 토하지 마!
수년에 걸쳐 스포츠계와 연예계의 유명한 인물들이 내 센터를 열심히 드나들었다.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똑같이 힘든 운동을 해야 했고, 예외는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주인인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땀을 빼며 운동하는 것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기막힌 효과가 있다.
비회원인 유명인사가 평소 다른 곳에서 대접받던 대로 생각하고 왔다가 웃음거리가 된 경우도 많았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우리처럼 운동을 따라하다 구역질을 하려고 하면, 나는 “감히 내 카펫에 토하려 들다니! 속에 든 걸 게워내려거든 바깥으로 나가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찬바람을 쐬고 돌아오면 “그리고 내 꽃들 위에도 토하지 말아요!” 하고 말했다. 그들 중 다시 돌아와 운동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은 달빛 내린 해변가를 거니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영혼에 유익하다. 운동과 해변산책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사소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 둘은 우리의 가치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9. 트라이앵글
어느 날 낙서를 하다가 정삼각형을 그렸던 것이 이후 내 사업과 사업 접근법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똑같은 길이의 세 변을 바라보며, 나의 사업이 종국에 어떤 지점에 이르기를 원하는지를 정리해보고자 했다. 즉 나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품질, 즐거움, 이윤’이라는 사명선언문을 세웠다. 내 삶에서 이 세 가지 중 어떤 것도 다른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사소하지 않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생각은 없었고, 환자들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서비스의 수준이 낮아지면 자연히 이윤도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에 맞는 보상도 분명히 원했다. 그것이 바로 즐거움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결정한 그 선택이
우리 자신을 만든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라.
내 안의 위대함을 느껴라
팻 크로스, 빌 리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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