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한국엔 섬뜩한 경보 "IT 세상도 'I2' 시대"

  • 황순현 엔씨소프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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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5.31 03:00

    [Cover Story] 中 알리바바, 美 상장 돌풍의 의미

    알리바바닷컴의 中 고객 비중 40% 미만
    아마존 뺨치게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

    美서 IPO 성공은 美·中 2强 체제의 서막
    'IT 강국 한국'은 신기루… 낄 자리 사라져

    280만개 기업이 中 알리바바닷컴(전자상거래사이트)에 둥지…
    거래액(알리바바그룹 전체) 이베이의 4배

    알리바바 美 증시상장 땐
    150억~200억달러 자금조달 전망
    페이스북 160억달러 기록 깰수도

    I2 사이에 낀 한국
    온라인게임 종주국인 한국
    정부 규제 등으로 경쟁력 약화
    게임시장 절반이상 외국업체 손에

    황순현 엔씨소프트 전무
    황순현 엔씨소프트 전무
    경기도 안양시 평촌동에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 로고스바이오시스템스(Logosbiosystems). 창업 이후 6년째 바이오 툴(생명과학용 도구나 시약을 제공하는 후방 산업) 분야를 파고 있는 이 회사 주력 제품은 세포 계수기(cell counter)다. 세포 배양 시에 육안(肉眼) 대신 컴퓨터를 통해 살아있는 많은 세포 수를 빠르게 측정하는 기기이다. 세포 계수기는 생명공학자들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미국 NIH(국립보건원)를 포함, 전 세계 바이오 기업 1500여곳에 독자 브랜드로 공급했다.

    직원 수가 30명도 안되는 국내 벤처기업이 1대당 500만원 이상 하는 바이오 기기를 세계적 기업에 납품한 비결은 복합적이다. 벤처 정신으로 광학과 컴퓨터 융합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고객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한 덕분이다. 여기에 한 가지 비밀이 더 숨어 있다. 알리바바닷컴(alibaba.com)을 활용한 가격 경쟁력 향상이다.

    알리바바에서 부품 20% 구입

    이 회사는 세포 계수기 '루나(Luna)'에 들어간 부품 수백 개 중 20%를 기업 간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알리바바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alibaba.com에 들어가 검색 창에 '광학용 확산 필터(optical diffuser)'라는 단어를 입력해 보라. 관련 제품들이 화면에 쭉 뜨고, 세포 계수기 '루나'에 들어가는 규격의 필터가 나타난다. 개당 최저 가격은 0.1달러. 품질이 같은 제품을 국내에서 구하려면 수십 배 비싸다고 로고스바이오시스템스 정연철 사장은 전했다. 그는 규격 부품 외에 일부 가공(규격이 표준화되지 않아 상황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맞춤형 부품) 부품까지 알리바바를 통해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년 전 알리바바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품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납기일을 제대로 맞출 수 있을까, 중국 기업이니까 의사소통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기우였습니다. 배송 기간은 2주 정도 걸리지만, 알리바바는 기업 간 거래 위주라 주문량도 최소 100개 이상을 요구하는 곳이 많고 수백~수천 개 단위로 사야 하는 우리 회사로서는 가장 효율적인 부품 구매 경로입니다."

    그래픽 2013년 전자상거래 기업 판매액
    그래픽=정인성 기자
    알리바바가 조만간 미국 증시에 상장(IPO)할 계획을 공개하자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 저널 등 유력 언론에서는 "알리바바가 이번 IPO로 현금 150억~200억달러를 조달할 전망"이라며 "페이스북의 IPO 조달 금액(160억달러)을 넘어 미국 증시 역사의 신기록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상장 초기 알리바바 기업 가치(시가총액)는 1600억달러(로이터)~2500억달러(월스트리트저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침묵 기간(silent period·상장을 앞두고 기업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 중인 알리바바의 상장 이후 성적표를 미리 점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계 IT와 자본시장에는 가히 알리바바 광풍(狂風)이 몰아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광풍이 주는 의미는 뭘까. 이를 또 하나의 '대박 신화의 탄생'으로 취급하는 건 너무 피상적이다. 창업자 잭 마(마윈·馬雲)를 중국 항저우 영어 교사에서 일약 세계 경제계의 스타로 부상한 입지전적 인물로만 묘사하는 것도 지나치게 파편적인 분석이다. 알리바바에 2000만달러를 투자해 14년 만에 3000배를 불린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화려한 재테크 솜씨에 주목하는 분위기 역시 핵심에서 빗나간 해설이다.

    알리바바에 대한 진실과 오해

    그렇다면 알리바바 신드롬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알리바바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살펴보자.

    알리바바는 거대한 중국 소비 시장이라는 태생적 장점만을 지닌 운 좋은 기업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미국 아마존과 버금가는 속도와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라는 평가가 더 어울린다. 고객도 중국에만 한정되지 않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글로벌 업체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그룹 주력 서비스인 알리바바닷컴에서 중국 고객 비중은 40% 미만이고, 나머지는 미국·일본·한국 등 제조업 강국이 차지하고 있다. 세계 280만(2012년 말 기준) 기업이 알리바바닷컴에 둥지를 틀고 셀 수 없이 많은 제품을 판매 중이며, 세계 3670만명(주로 제조 기업 구매 담당자)이 이 사이트를 통해 제품을 거래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전 세계 제조업체들을 단숨에 빨아들일 가능성이 큰 '전자상거래의 글로벌 블랙홀'이다. 세계 제조업체 대부분이 부품이나 반제품을 저렴하게 거래하기 위해 알리바바 의존도를 높여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란 국가의 사회적 생산성 개선이란 관점에서 이번 알리바바의 IPO는 의미가 남다르다. 인터넷이라는 개방 플랫폼은 모든 경제 주체를 연결하고, 기기를 연결(networking)하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거래 시간을 단축하고, 경제활동을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래픽 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의 세력구도 / 알리바바 마윈 회장
    자료:WSJ.com / 블룸버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알리바바를 대표 주자로 내세운 중국의 IT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배경으로 사회적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알리바바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혈액을 구석구석 공급하는 실핏줄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중국의 공장들은 알리바바를 위시한 전자상거래 업체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로고스바이오시스템스 정연철 사장은 “알리바바는 플랫폼 자체가 영어로 되어 있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공급자가 웹 메신저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응해준다”며 “적절한 업체를 못 찾으면 알리바바에서 적절한 부품 업체까지 추천해 준다”고 말했다.

    알리바바그룹 내에는 알리바바닷컴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이베이나 한국 G마켓과 비슷한 소비자 간 직접 전자상거래(C2C) 사이트인 ‘타오바오’도 갖고 있다. 또 중국인 대상 브랜드 쇼핑몰인 ‘티몰(TMall)’도 운영 중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i리서치는 “타오바오에는 800만 판매자가 입점해 있고, 타오바오와 티몰 두 쇼핑몰 사이트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80%”라며 “지난해 거래액이 2960억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알리익스프레스닷컴(글로벌 B2C 쇼핑몰), 1688.com(중국어로 된 B2B 플랫폼) 같은 초대형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즐비하다. 세계 12개국 화폐와 연동되는 인터넷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alipay)도 잭 마 창업자가 개인 지분으로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알리페이를 통해 거래되는 액수는 작년 한 해 동안 519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 중 62%가 비(非)알리바바 회사에서 거래된 것이다. 미국의 페이팔(paypal)과 함께 글로벌 결제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알리바바는 최근에 자산 운용업과, 대출 등 금융 비즈니스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IT 칼럼니스트 김국현씨는 “알리익스프레스를 이용하다 보면 한국에서도 저렴하고 편리하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며 “알리바바의 글로벌화 속도가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픽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규모, 주요 IT기업 시가총액
    ‘I2’ 시대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한국

    알리바바 IPO를 보는 또 다른 독해법(讀解法)은 우리에게 비극적이다. 이번 알리바바의 성공적인 IPO는 세계 ‘I2 체제’의 완성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세계 경제와 정치가 G2(미국·중국 두 강국 중심)로 굳어졌듯, IT와 인터넷의 세상도 미국과 중국이라는 2파전으로 게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기반으로 구글· 애플·테슬라 같은 스타 기업을 내세운 미국과, 거대한 시장(수요)을 바탕으로 한 알리바바·텐센트·샤오미 등 중국 기업의 한판 대결로 정리됐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 주식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한 알리바바의 이번 IPO는 중국 인터넷 강자(强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강자로 등장했다는 출사표다. 이 살벌한 약육강식의 링에 한국 기업이 낄 자리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한때 한국은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인터넷 강국이었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커지고, 글로벌 기준에 어울리지 않는 정부의 규제 정책은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국내 게임 회사들도 기술을 발전시키고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미흡하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국내 게임 시장의 절반 이상은 이미 외국 온라인 게임 업체에 넘어갔고, 모바일 게임 결제 플랫폼은 100% 애플과 구글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텐센트 한 기업의 움직임이 국내 게임 업체들 향방을 좌우하는 처지다.

    거의 광속(光速)으로 제조업체-유통업체-소비자 간 B2B와 B2C 전자상거래를 다면적으로 진행하는 중국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 하나 사려면 수십 분간 컴퓨터와 씨름해야 하는데도 새로운 IT 서비스는 번번이 기득권 세력과 규제 당국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한국. 어쩌면 지금 우리는 ‘IT 강국’이라는 흘러간 옛 노래에 취한 채 21세기 디지털 식민지라는 늪으로 한 발 한 발 빠져가는 중인지 모른다.

    ☞I2

    전 세계 패권을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장악한다는 G2에 빗대, 전 세계 인터넷시장도 미·중 양강이 지배하게 됐다는 의미의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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