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기성용 SNS 사태, 어떻게 봐야하나
최근 한달 동안 불거졌다 일단락된 기성용 사태를 정리해봅니다. 기성용 사태는 박사 논문을 써도 될 정도로 복잡한 요소가 너무 많이 얽혀져 있습니다. 선수 시각, 언론 시각, 축구협회 시각, 기성용 팬 시각, 일반 축구팬 시각, 보통의 국민 시각 등 다양한 관점에 따라 사태를 달리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성용 사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우선 SNS에 글을 남긴 기성용의 행동을 살펴봅시다. 기성용이 한 일은 SNS에 감독에 대한 불만을 적은 겁니다. 공개 SNS에서 리더론을 거론했다가 설교 말씀이라고 어설프게 해명했고 이후 비공개 SNS에 적은 노골적인 조롱조 글이 공개되면서 기성용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기성용 팬 입장에서는 기성용이 공개적으로 한 건 공개 SNS를 통해 리더론을 거론한 것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그게 무슨 엄청나게 잘못이 되느냐고 반문할 겁니다. 팬들의 이런 의견, 물론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성용의 SNS 사건은 결과적으로 보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이유는 기성용이 그만큼 엄청나게 큰 잘못을 했다기보다는 기성용에게 불리하게 돌아간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음을 인정합니다. 즉, 굴욕적으로 월드컵 진출권을 따내면서 불거진 대표팀 부진, 그 과정에서 불거진 적잖은 내부 잡음에 크게 실망한 보통 사람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서 그게 기성용에게 그대로 쏟아진 거죠. 반대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만일 대표팀이 좋은 성적과 내용으로 월드컵 티켓을 시원하고 화끈하게 따냈다면, 기성용에 대한 비판은 아마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비했을 겁니다. 그래서 기성용이나 기성용 팬들이 지금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적잖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왜 기성용을 징계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인 걸까요. 기성용 팬들도 사태를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성용 팬들은 기성용 편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팬과 일반 국민들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성용이 최 감독을 노골적으로 조롱했고 심지어 선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로 조직의 수장을 비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대표팀 감독의 권위를 무너뜨렸고 대표팀 경기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결과적으로 대표팀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에 기성용은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거죠. 그건 기성용이 밉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기성용의 행동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징계가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요. 일반 국민들은 축구대표팀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숭고하고 소중한 조직으로 바라보며 존중, 사랑, 지지, 신뢰를 보내왔습니다. 그만큼 사랑했고 그만큼 구별된 조직이라고 보고 아낌없이 응원하고 사랑해온 거죠. 그래서 대표팀에서는 그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런 일이 불거지기 시작한 초기에는 아예 믿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점점 사실로 드러나자 축구대표팀과 기성용에 대한 국민적인 실망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죠. 특히 축구대표팀에 엄청나게 큰 기대를 갖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기성용의 행동을 불경죄처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기성용은 축구협회가 주는 대한민국 올해의 선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선수입니다.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주인공이며 세계 최고 축구판인 프리미어리그에서 정상급 미드필더로 뛰고 있고요. 물론 앞으로 한참 동안 한국대표팀을 이끌 키 플레이어입니다. 그만큼 좋은 선수였기에 그가 SNS에 남긴 글로 인해 국민들이 받은 실망감은 무척 컸던 거죠. 만일 기성용보다 인지도와 무게감, 존재감이 떨어지는 선수가 SNS를 통해 같은 글을 썼다면 그 여파는 지금보다는 훨씬 약했을 겁니다. 그게 슈퍼스타와 보통의 스타, 스타와 평범한 선수 사이 대중적 파급력의 차이죠.



기성용 사태와 비슷한 일이 일반 회사에서 벌어졌다고 가정해보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큰 글로벌 기업에서 직원 한명이 직원들과의 술자리에서 CEO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조롱하는 소리를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그 사실이 동석한 사람들의 전언을 통해 회사 전체로 퍼졌고 그게 CEO 귀에 들어갔으며 언론을 통해 기사화까지 됐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CEO와 회사는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겁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 회사 CEO라면 그 직원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직원이 회사를 흔들거나 CEO를 노골적으로 비판할 의사가 없었고 동료들과의 사석에서 한 말이었다는 이유로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만일 당신이 진정으로 그를 용서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그에게 연봉, 인사 등 모든 면에서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줘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앞으로 다른 직원이 비슷한 사태를 일으켜도 똑같은 식으로 봐줄 수 있다는 게 전제돼야하고요. 하지만 조직 전체를 책임져야하는 자리에서 그 직원을 그렇게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는 CEO는 거의 없을 겁니다. 내부 규정에 따라 그 직원을 어떤 식으로든 징계하는 CEO가 대부분일 겁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축구 최고 상위기관 축구협회는 징계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건 기성용 팬, 축구인들로부터는 환영을 받았지만 일반 팬들 또는 일반 국민들로부터는 거센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협회는 징계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징계위원회를 열지도 않은 채 사건을 서둘러 덮어버리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또 광주축구협회장인 기성용 부친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등 다양한 의혹도 제기됐고요. 많은 게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으로 진행됐고 끝내 정치적으로 무마됐다는 느낌도 듭니다. 결국 일반 국민들은 축구협회가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했을 뿐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고요. 축구협회, 일부 팬들, 축구계 인사들은 기성용의 징계 없음을 환영한 만큼, 일반 국민들이 축구 대표팀과 축구협회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은 식었고 반감은 증폭됐습니다. 축구협회는 축구계 의견은 나름대로 수렴했지만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결국 자기 자신을 작은 조직으로, 자기식구만 감싸는 사조직으로 스스로 평가 절하한 것과 마찬가지죠. 축구협회는 만일 기성용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실망시켰다고 판단했다면, 징계규정에 의거해 기성용에게 합당한 징계를 내려야 했습니다.



기성용이 소속팀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준다면, 또 본인이 태극마크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홍명보 감독이 기성용을 고의로 외면하지 않는다면, 기성용은 당장은 몰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표팀에 다시 뽑힐 겁니다. 그 때 국민들이 과연 기성용을 진심으로 환영할까요? 아니면 못 마땅해 할까요? 지금 상태라면 아마도 후자가 더 많을 겁니다. 게다가 기성용이 만일 조금이라도 부진하거나, 과거보다 못한 플레이를 하거나,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에 대한 비판은 다시 거세질 겁니다. 기성용의 칭찬에 대해서도 인색할 거고요. 그건 아마도 기성용이 징계를 받지 않고 복귀한 데 대한 근본적인 불만이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차라리 기성용이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은 뒤, 징계시간이 다 끝나든, 아니면 규정에 따라 징계가 감면되든, 어쨌든 규정에 따라 징계를 감내한 뒤 태극마크를 달고 돌아오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비공개 SNS에 대한 다른 해석도 곁들입니다(저는 비밀 SNS라는 표현은 분명히 잘못됐기 때문에 비공개 SNS라고 씁니다). 스타들의 SNS는 비공개든, 공개든, 엄청난 파급력을 지닙니다. 대중은 스타들의 말을 거의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스타들의 말이 거짓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대중은 그에게 엄청나게 실망해 외면하기 십상입니다. 혹자는 비공개 SNS는 일기장과 같다고 합니다. 일기가 공개돼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비공개 SNS도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일기와 비공개 SNS는 분명히 다릅니다. 일기는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걸로 끝나지만 SNS는, 아무리 비공개라고 해도, 함께 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공개 SNS든, 비공개 SNS는 공유하는 사람들의 숫자, 그리고 그게 퍼져나가는 속도만 다를 뿐 궁극적으로 공개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 스타들의 말을 접한 사람들은 그걸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게 됩니다. 일기는 혼자 덮어두면 공개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공개 SNS는 혼자 덮어두려고 해도 태생적으로 그럴 수 없습니다. 이번에 기성용이 비공개 SNS에 쓴 글이 알려진 것도 기성용의 비공개 SNS에 친구로 가입된 누군가가 그걸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외부로 흘렸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Personal이지만 SNS의 첫 S는 Social입니다. 그건 SNS가 태생적으로 혼자만 알고 혼자만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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