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키운 제자 1000명 … 지동원·손흥민·이청용 내 손 거쳐가"

[중앙일보] 입력 2013.07.13 00:11 / 수정 2013.07.13 00:20

청소년 월드컵 8강 이끈 이광종 감독

2000년부터 13년째 한국 축구 유망주를 길러온 이광종 감독. 터키에서 열린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 8강을 지휘한 이 감독은 “말하기 힘든 부분까지 터놓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은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광종(49) 감독은 터키에서 열린 201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8강에 올린 지도자다.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축구 팬은 많지 않았다.

 무명 감독은 무명 선수를 이끌고 축구가 ‘희생’ ‘헌신’ ‘투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8일 열린 이라크와의 8강전은 백미였다. 비록 승부차기에서 4- 5로 패했지만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세 골씩 주고받는 명승부를 펼쳐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성인 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졸전을 거듭했고 팀 내부에 극심한 갈등이 있었다는 게 알려졌던 시점이라 청소년 대표팀의 선전이 더 기특했다. 성인 대표팀 기성용 선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문을 일으킨 것과 달리 청소년 대표팀은 트위터 등을 통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 게 알려져 형들을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대표팀이 터키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10일 중앙일보가 이광종 감독을 만났다. 셔츠 단추를 한두 개 풀어헤치고 열정적으로 경기를 지휘했던 그는 “여기저기 인사 다닐 데가 많아 넥타이를 맸더니 답답해 죽겠다”고 했다.

 -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축구대회에 나갔다가 스카우트됐다.”

 그는 유공(현 제주 유나이티드)과 수원 삼성에서 10년간 뛰었다. 266경기에 출전해 36골을 넣었다. 빠르고 체력 좋고 성실한 미드필더였다. 유니버시아드 대표, 국가대표 상비군도 거쳤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해 정식 국가대표는 한 번도 못했다.

 - 국가대표를 못한 게 아쉽지 않나.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를 못한 게 아쉽다. 대신 지금 국가대표를 길러내고 있으니 괜찮다. 내가 좀 부족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못 뛰는 선수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유소년 전임 지도자는 어떻게 됐나.

 “선수에서 은퇴하고 축구 교실도 하고 사업도 했다. 전국을 서울, 경기, 영·호남, 중부 등 5개 지역으로 나눠 권역별로 유망주를 선발해 가르쳤다.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키울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그는 12~15세 선수를 지도하는 유소년 전임 지도자는 물론 15·17·19·20세 대표팀의 코치와 감독을 두루 거쳤다. 벌써 13년째 축구협회에서 유소년과 청소년 지도를 하고 있다.

 - 30대 중반부터 유소년 유망주를 지도한 지 13년째다.

 “유소년 전담 지도자를 하다가 학교나 프로팀 감독을 맡아 떠난 동료도 많다. 김상호 전 강원FC 감독도 유소년 전임지도자였다. 나도 프로팀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여기 남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어린 선수를 지도하며 나도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어린 선수를 지도하니까 늙지도 않는 것 같다.(웃음)”

 - 13년 동안 거쳐간 선수가 몇 명이나 될 것 같나.

 “1년에 100명 정도는 된다. 모두 합치면 1000명은 넘을 것 같다.”

 - 지동원(22·선덜랜드)·손흥민(21·레버쿠젠)·이청용(25·볼턴)·기성용(24·스완지시티) 등 요즘 잘 하는 선수들을 모두 가르쳤나.

 “한 번씩은 다 가르쳤다. 백지훈(28·상무)·김진규(28·FC 서울) 등 거쳐간 선수가 많다.”

 - 그 선수들 특징을 꼽아달라. 어렸을 때는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지동원은 순간 스피드를 키우면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 순간적으로 수비를 따돌리고 슈팅을 때리는 게 조금 느리다. 손흥민은 유소년 때 가르쳤다. 우리 선수들이 대체로 슈팅이 약한 편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슈팅 능력을 타고났다. 발목 힘이 좋아 슈팅이 정말 뛰어났다. 16세 때 독일에 보낸 것도 축구협회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이청용은 왜소했지만 방향 전환이 매우 빠르고 민첩했다. 기성용은 체격은 크지만 느린 편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기량이 발전한 선수다.”

이광종 감독은 평소엔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훈련이나 경기를 지휘할 때는 말도 많아지고 목소리도 높아진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 유소년 때 잘한다고 모두 성인 대표가 되지는 못한다. 꾸준하게 성장할 선수가 눈에 보이나.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조원희(30·우한 줘얼)는 청소년 때 기술적인 면이 부족했다. 하지만 운동장에서 열심히 해서 나중에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 대표 선수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본다. 성실한지도 눈여겨본다. 마음가짐에 따라 기량 이상의 것을 발휘한다. 그러나 조금 잘한다고 해서 열심히 안 하는 선수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 선수는 결국 팀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준다.”

 - 기술보다 인성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이기적인 선수는 좋아하지 않는다. 배려하고 팀을 위해 희생해야 좋은 팀이 된다.”

 - 이번 청소년 대표팀이 그런 케이스 아니었나.

 “대표팀에 오는 선수는 어느 정도 기량이 있다. 베스트를 정할 때도 잘 차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한다.”

 - 10년 넘게 한국 축구의 유망주를 키우고 있는데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있는 거 맞나.

 “우리나라 초·중·고 지도자는 성적을 못 내면 잘리는 구조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먼 미래를 볼 여유가 없다. 당장 눈앞의 성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골키퍼는 킥부터 배운다. 상대 문전으로 길게 공을 차 넣고 경합을 붙이는 게 초등학교 축구에서는 골을 넣는 데 유효하기 때문이다. 패스를 하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기본기와 개인기를 제때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보다 개인기가 약한 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한다. 일본만 해도 우리보다 훨씬 개인기가 좋다. 아시아권을 완전히 탈피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이광종 감독이 선수로 뛸 때와 요즘 선수들을 비교하면 어떤가.

 “내가 어렸을 때보다 요즘에는 팀 훈련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개인 훈련은 오히려 적어졌다. 개인 훈련을 좀 더 열심히 하면 훨씬 잘할 수 있다. 또 아무래도 헝그리 정신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패스는 우리 때보다 좋아진 것 같다.”

 - 어린 선수들과 세대 차이는 어떻게 극복하나.

 “경기장 밖에서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여자 친구 이야기도 물어보곤 한다.”

 - 이번 대회 기간에 선수 생일 파티를 열었다고 들었다.

 “원래 대회 중에는 단것을 못 먹게 한다. 그런데 주무에게 케이크를 부탁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권창훈(19·수원 삼성) 생일이라 자기들끼리 축하해 주려는 것이었다. 팀에서는 내가 아버지나 마찬가지인데 왜 나에게 이야기 안 했느냐고 말하고 함께 축하해줬다.”

 - 선수들이 감독님 목소리를 성대모사 한다고 하더라.

 “난 작전 지시나 뭔가를 설명한 뒤 ‘이해했어’라고 꼭 확인한다. 생각을 일치시키는 게 전술의 출발점이다. 아마 그 말투를 흉내 냈을 거다. 난 못 들어봤다. 내가 안 듣는 데서는 뭘 못하나.”

 - 동료의 허물을 감싸고 격려하는 대표팀의 모범적인 SNS가 화제가 됐다.

 “SNS는 하지 말라고 했다. 주장을 맡은 (이)창근(20·부산 아이파크)이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쓴 것도 언론에 칭찬받았지만 경기에만 전념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할 수 있지만 단체 생활을 할 때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 기성용 SNS 같은 문제가 청소년 대표팀에서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선수는 다음부터 뽑지 않는다. 내 스타일은 그렇다. 하지만 기성용은 친구들끼리 한 것 아닌가. 너무 일이 커진 것 같다. 기성용이 최강희 감독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SNS 문제가 과도기였던 만큼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

 - 선수들이 대표팀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예전에 비해 가벼워진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해외파 중에는 소속팀 경기를 대표팀보다 중시하는 경우도 있다. 박지성(32·퀸스파크 레인저스)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것도 예전 같으면 힘든 일이다.

 “대표팀이 있었기에 성장하고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초심을 잃지 않고 내가 어떻게 컸는지를 생각한다면 대표팀을 위해 더 열심히 뛸 것이다.”

 - 어떻게 해야 좋은 보스가 되나.

 “요즘은 선수도 지도자를 평가하는 시대다. 노력하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선수들을 대할 땐 내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선수들과는 비밀이 없다. 부족한 점도 확실히 알려주고 격려해야 한다. 베스트가 못 되는 선수들에게도 설명을 하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좋다. 믿고 이야기하면 선수도 나를 믿는다.”

글=이해준·김민규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광종 감독
●생년월일 : 1964년 4월 1일
●고향 : 경기도 김포
●출신교 : 김포 통진고-중앙대
●선수 : 유공(1987~95)-수원 삼성(96~97)
●주요 대회 성적 : 2009년 나이지리아 U-17 월드컵 8강, 2011 U-20 월드컵 16강, 2012 아시아 U-19우승, 2013 U-20 월드컵 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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