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을 앞두고, 사실상 여권 내에서 독주체제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이재명 경기지사의 '킹 메이커'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나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지사와 친문세력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맡을 거란 분석인데요. 다만 친문 지지자들은 아직까지 '제3 후보'에 대한 기대감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예로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의 등판을 바라는 목소리가 큽니다. 관련 내용, 조익신 반장이 정리했습니다.
촛불정부의 숙제는 한시적 촛불연합을 안정적 다수파 연합으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1번 갈등’ 자리에 다수의 관심사와 무관한 검찰개혁을 앉혔다. 주권자는 불안을 느꼈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들어 올렸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총선 압승 이후 불과 1년 만에 4·7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 후보들은 2020년 서울 지역구 49곳을 합쳐 305만 표를 얻었다. 1년 만에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얻은 표는 190만 표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대붕괴다. 집권세력은 어디서 어떻게 무너졌나.
널리 퍼진 오해부터 보자.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으므로 총선 이전에 제시된 문제들, 그러니까 최저임금 정책이나 조국 사태 등에서는 국민들이 민주당 노선을 승인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 보궐선거의 심판은 2020년 4월 총선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주로 지목된 게 부동산 정책이다. 부동산 정책 때문에 패배했다는 분석은 다시 한 층 내려가면,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졌다는 함의를 깔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여론의 미묘한 장기 추이를 놓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국선거는 두 차례 있었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이다. 둘 다 집권 여당이 압승했다. 그런데 두 압승 직후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임기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하강기’를 기록했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79%로 정점을 찍은 국정수행 지지도가 12주에 걸쳐 49%까지, 무려 30%포인트가 훅 빠진다(〈그림 1〉 참조). 2020년 총선 직후에도 쌍둥이 같은 추세가 나타난다. 총선 3주 후에 71%로 정점을 찍은 국정수행 지지도는 이후 10주에 걸쳐 46%로 미끄러진다(〈그림 2〉 참조). 낙폭은 25%포인트다.
매우 이례적이다. 전국선거에서 압승한 정권은 여론의 ‘승자 편승 효과’ 덕분에 강한 지지층 결집을 한동안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놀라운 압승 직후에 어김없이 놀라운 대하강기를 겪었다. 2018년 1차 대하강기는 최저임금 논란이, 2020년 2차 대하강기는 부동산 논란이 원인으로 지목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이례적인 구조는 개별 이슈를 넘어서는 어떤 징후다.
4월7일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배우자와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중도적인 유권자들에게 두 차례 전국선거는 야당 심판 선거 속성이 강했다. 여당에 불만이 있어도 보수 야당은 도저히 찍기 어렵다는 기류가 있었다. 그런데 이 결과를 정부·여당이 ‘압도적 지지와 전면적 승인’으로 해석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중도층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이념적 이슈로 간주하는 의제들(검찰개혁 이슈가 대체로 그런 평가를 받아왔다)까지 승인받은 듯이 굴면, 이들 유권자는 지지 철회로 경고신호를 보낸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이후 이런 상황이 되풀이해 일어났다. 최저임금과 부동산은 그 자체로 민심 이반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경고신호를 내기 위해 불려 나온 이슈라는 속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렇게 관점을 바꿔보면, 2020년 4월 총선 이전의 통치가 총선으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불만스러운 지지자’는 두 차례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그대로 누적된다.
그렇다면 어떤 불만인가? 문재인 정부의 기본 성격은 ‘촛불정부’였다. 2016년 촛불집회는 대단히 폭발적인 정치행동이었고, 국민의 80%에 해당하는 이례적인 규모가 동의했다. 이 80%는 고스란히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지지율로 이어졌다. 여기서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본질이 나온다. 국민 80%의 지지율로 출범한 정부는 속성상 연합정부일 수밖에 없다. ‘80%가 동의하는 단일노선’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꼭 야당과의 연합을 뜻하지는 않는다. 계층과 처지가 서로 다른 ‘80%’가 공유할 만한 ‘연합 의제’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있느냐.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출발부터 받아든 숙제였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선택했다. 어떤 의미로는 납득이 가는 노선이었다. 광활한 80%를 묶어주는 끈은 촛불집회 지지 하나밖에 없어 보였고, 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은 ‘연합 의제’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용어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야당 전체를 적폐 세력으로 몰아갔고, ‘검찰 적폐’ ‘언론 적폐’ 등 대상이 전방위로 확장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부정보 투기 사건이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적폐 청산”을 외쳤다. 이 장면은 ‘적폐 청산’이 사실상 모든 통치행위를 대체하는 용어로 올라섰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종북의 길 따라간 적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적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종북’이 갔던 길을 따라갔다. 둘 다 최초에는 통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키워드였고, 둘 다 점차 의미의 인플레이션을 겪었으며, 둘 다 결국에는 지나치게 의미가 확장된 나머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인플레이션은 적폐 청산을 ‘연합 의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종북’이 그랬던 것처럼, ‘적폐’도 좁은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휘두를 때만 다수가 동의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전방위 적폐 청산은 강성 지지층만 남기고 촛불연합 구성원 대다수를 소외시켰다.
‘80% 촛불연합’의 일원이지만 강성 지지층은 아닌 온건·중도층 여론은 정권 중반기부터 피로감을 호소했다. 적폐 청산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민생과 사회경제 이슈의 우선순위가 계속 밀린다는 데 불만을 표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도 여러 여론조사에서, 적폐 청산 이슈를 앞세우면 총선이 위태롭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20년 총선은 정부·여당에 놀라운 기회를 열어줬다. 유권자들은 총선 성적 기준 180석(민주당+비례위성정당)을 집권세력에 몰아줬다.
적폐 인플레이션이 촛불연합을 흔들고 있었으되, 한동안 촛불연합 붕괴를 막아준 요소는 두 가지였다. 첫째,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통치 성과로 시의적절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남북관계의 극적인 개선이 있었고,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코로나19 대응 성공이 있었다. 둘째, 보수 지지 블록이 구조적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40~50% 선의 투표연합을 꾸준히 유지하던 한국 보수는 2016년 4월 총선(촛불집회 이전이다)부터 네 차례 전국선거에서 30%대 득표력으로 내려앉았다. 이 두 요인 덕분에, 정부·여당은 임기 중 두 차례 전국선거에서 압승했다. 그리고 이 두 요인에도 불구하고, 압승 직후 ‘불만스러운 지지자’의 급격한 지지 철회를 두 차례 모두 겪었다. 그리고 이 불만을 억누르는 중요한 뚜껑이었던 통치 성과가 뒷걸음질 치자, 누적된 불만은 촛불연합을 해체해버릴 파괴력으로 폭발했다. 그게 2021년 보궐선거였다.
적폐 청산이냐 여야 협치냐. 돌파냐 통합이냐. 이 양자택일의 질문이 집권세력의 노선을 크게 제약했다. 탄핵된 정부를 만들었던 보수 야당을 협치 대상으로 곧바로 받아들이는 건 촛불정부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게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여야 협치가 아니라면 적폐 청산 노선 말고는 없어 보였다. 돌파는 촛불정부의 숙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양자택일을 벗어나는 제3의 길은 임기 초부터 꾸준히 논의됐다. 국민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한시적 촛불연합을 안정적 다수파 연합으로 전환하는 길이었다.
3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사실 이 노선은 제3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으로 다수파를 엮어내는 길은 가장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치’라고 불리는 일 그 자체다. 20세기 미국의 정치학자 E. E. 샤츠슈나이더가 “정치란 사회갈등을 폭 넓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는 일”이라고 썼을 때, 그가 의도한 게 바로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으로 다수파를 엮어내는 일’이다. 그러니 ‘적폐 청산이냐 여야 협치냐’라는 양자택일이 있는 게 아니었다. 적폐 청산이냐, 여야 협치냐, 정치냐. 이 삼자택일이 있었다. 그리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치가 마치 선택지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대표적 사회경제 프로그램인 최저임금 인상이 좌초한 후로, 문재인 정부는 ‘1번 갈등’ 자리에 먹고사는 문제를 배치할 역량을 소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맥락에서 2020년 봄은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이자, 2017년 집권 초기보다도 더 활짝 열린 기회의 창이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공동체가 재난에 직면했다. 재난기는 대단히 압축적인 정치의 공간이기도 하다.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한다는 압력이 평시와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하다. 그래서 평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재난기에는 가능할 수 있다. 집권 4년 차에 이런 기회를 받는 정권은 여간해서는 없다.
정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작동할 때, 재난은 불평등을 줄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위기에 등장한 ‘한국판 뉴딜’의 취지도 이것이었다. 지난해 6월9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습니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한국판 뉴딜의 궁극적인 목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은 정확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으나, 이후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됐다. 지난해 연말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후 소득격차 확대와 대·중소기업 생산성 격차 확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폭등하면서 자산 보유 계층은 재난기에 오히려 부를 불렸다. 영세 자영업자와 불안정노동자는 영업제한 조치와 경기후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대비가 하도 선명하고 인상적이어서, 재난기의 시민들은 격차 확대를 사실상 실시간으로 체감했다.
반년이 지나서 대통령은 “뼈아프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짊어지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립니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통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높여나갈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6월의 정확한 문제의식은 반년 동안 여전히 문제의식에 머물렀다. 정치를 어느 방향으로 작동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재난기는 그 프로그램의 부재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3월31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이 국회에서 연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 뒤에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희소한 자원을 낭비한 사건
보통의 유권자들이 보기에 정부·여당에 우선순위 높은 과제는 따로 있었다. 통치는 엘리트 내부의 관심사로 비치는 검찰 이슈에 집중됐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의 대립을 극한으로 끌고 갔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 흐름에 사실상 동조했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이 올린 윤석열 총장 징계안을 재가했다가, 법원이 징계 효력을 정지하면서 사과 메시지를 내야 했다. 적폐 청산 노선은 거의 희극적인 변형을 거쳐 고립됐고, 이 시간 동안 작동했어야 할 재난기 정치는 실종됐다. 촛불연합에서 강성 지지층을 제외한 광범위한 이탈층이 발생했다. 이는 ‘윤석열 현상’의 토양이 됐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보통 “이슈 관리에 실패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문제이지만, 실제 벌어진 일은 그보다 훨씬 심대하다. 앞서 만난 샤츠슈나이더로 돌아가보자. 빠르게 고전이 된 그의 책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가장 유명한 표현이 ‘갈등의 전국화’다. 정치란 인간 사회의 숱한 갈등 중에 무엇이 핵심 갈등인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인종 갈등을 ‘1번 갈등’으로 끌어올려 정권을 잡았다. 그러니까 ‘갈등의 전국화’란 어떤 갈등을 ‘1번 갈등’으로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1번 갈등’은 엄청나게 희소한 자원이다.
어려운 사람들은 행정부나 입법부의 결정에 직접 개입할 통로가 부족하지만, 대신 머릿수가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가 시끌시끌해지고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면(‘1번 갈등’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이 크게 유리해진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리한 체제가 되는 경로다. 반면 인권·시민권 문제는 어려운 사람들의 견해나 이해관계가 동질적이지 않다. 그래서 검찰개혁이나 법원개혁 이슈는 구조적으로 ‘1번 갈등’이 되기 어렵다. 2020년 총선 이후 1년 동안 벌어진 일은, ‘1번 갈등’ 자리에 엉뚱한 이슈를 줄기차게 가져다 앉히며 정치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을 낭비한 사건이었다. 집권세력이 검찰개혁의 우선순위를 높게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1번 갈등’으로 만들 프로그램의 부재 때문이기도 했다.
최저임금 정책, 조국 사태, 윤미향 파동, 추·윤(추미애·윤석열) 갈등, 부동산 정책에서 정부·여당의 참패 원인을 찾는 분석이 많다.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국면마다의 실패는 줄기에 해당한다. 진짜 문제는 뿌리에 해당하는 세계관이었다. 촛불정부는 헌법에 반하는 통치가 반복되지 않게 하라는 명령과, 80%에 달하는 촛불연합을 꾸려나가라는 명령, 두 요구를 동시에 받았다. 전자는 적폐 인플레이션으로 과잉 수신됐다. 후자는 사실상 인식되지도 않았다. 윤건영 의원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그는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근무를 마친 2020년 1월에 〈시사IN〉과 인터뷰했다. 국정수행 지지도가 2018년 1차 대하강기 때 크게 하락했다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분명한 건 임기 3년 차에 이 정도 지지율은 전례가 없다.”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와 같은 시점끼리 비교했을 때, 4년 내내 역대 최고 지지율을 놓친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연합이라는 대단히 이례적인 토양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인사들은 대체로 이를 ‘곧 사라질 보너스’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원래 우리 지지층이 아닌 유권자가 많이 들어와 있다는 이유였다. 한시적 촛불연합을 안정적 다수파 연합으로 전환한다는 정치가의 비전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원상복귀를 당연시하는 방어적 태도가 주류였다. 촛불연합은 이렇게 해서 ‘원래 해체될 운명’ 취급을 받았다. 정치가 실패했으나, 실패 자체를 인식하지 않아버리는(“원래 우리 지지층이 아니었다”) 기묘한 해법이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심대한 실패는 이렇게 해서 집권세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촛불정부는 본질상 연합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조건은 현 집권세력의 세계관과 궁합이 좋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둔 집권세력은 선명한 선악구도, 도덕과 명분의 우위, 정치를 거악(巨惡)에 맞서는 성전(聖戰)으로 보는 태도 등을 공유한다. 어느 하나 연합정부의 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촛불정부를 ‘80% 연합정부’로 인식하지 않았던 이유 중 일부는 이것으로 설명된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집권세력의 노선과 세계관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총선 압승을 이끌고 당 대표 직무를 끝낸 2020년 9월에 〈시사IN〉과 인터뷰했다. 여기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사회 제반 영역이 다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강하고, 시민사회가 강하고, 언론이 강해져야 한다. 지금은 제도정치 한 곳에서 정당만 섬처럼 있으니까, 노조·시민사회·언론이 다 취약하니까, 정당이 밀려나면 다 밀려나는 것이다. 민주화는 투표나 직선제 같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투명성이 높아야 하고, 참여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균형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게 총체적으로 달성되는 게 민주화인데, 지금은 사회 각 영역이 불투명하고 참여가 제약되어 있고, 그 결과로 균형이 무너져 있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제4차 범국민 촛불문화제가 열렸다.ⓒ시사IN 신선영
이 말은 이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사회 각 영역마다 운영원리가 민주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정론이다. 의사결정의 독점과 권위주의 문제는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둘째, 정치권을 넘어 사회 각 영역에서도 민주화 세력이 적폐 세력을 몰아내야 민주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거악에 맞서는 성전’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 두 해석의 갈래 중에 집권세력과 지지층이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정치를 다루는 방식은 극적으로 갈리게 된다. 후자의 길로 접어들 때, 집권세력은 ‘무오류의 태도’로 빠져들어 간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3월22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무오류의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나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나 도덕성이 야당 후보를 압도한다.” “지금 부동산 공급 문제는 5년 전 정책의 결과다.” ‘오만’이 이번 보궐선거의 키워드가 되었던 이유 중 일부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는 총칼로 하던 전쟁을 말로 하는 싸움으로 순치하는 행위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회는 내전을 대체하는 기구였다. 정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규칙 있고 결과에 서로 승복하는 질서 있는 투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치를 긍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불완전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의견 차이는 불가피하며, 우리 편이 반대하는 공적 결정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자에게 통합이란 의견의 통일을 뜻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자에게 통합이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존중한다는 공통의 합의’를 뜻한다.
상대의 승리가 악의 승리이고, 우리 편의 승리가 선의 승리라고 믿는 사람은 이런 ‘정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거악에 맞서는 성전’의 세계관은 그래서 원리상 정치혐오에 속한다. 정치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존중한다는 공통의 합의’ 위에서 작동하는데, 성전(聖戰)의 세계관은 바로 이 공통의 합의로부터 이탈한다. 집권세력이 정치를 작동시키는 데 실패한 이유 중 일부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전의 세계관에 뿌리를 둔 무오류의 태도는 참패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무오류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참패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번 선거 결과를 부동산 자산 증식을 원하는 ‘욕망의 투표’로 규정한다. 이러면 ‘정의 대 욕망’의 구도를 짤 수 있으므로 참패를 오류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욕망을 인정하자”라고 점잖은 결론을 내리고 부동산 정책을 바꾼다 해도, 무오류의 태도는 손상 없이 지킬 수 있다. 둘째, 집권세력에 오류가 없었는데도 주권자가 심판 투표를 했다면, 집권세력과 주권자 사이를 연결하는 경로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언론이다. 무오류의 태도에서는, 참패 이후의 대책은 언론개혁이라는 결론이 그래서 나오게 된다. 참패 이후의 해석투쟁은 곧 있을 대선 경선 구도에도 영향을 주는 급박하고 중대한 전장이다. 무오류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참패를 설명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욕망’보다는 ‘불안’
언론을 문제로 지목하는 논리는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의 압승 앞에 궁색해진다. 언론 환경이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징후는 없다. ‘욕망의 투표’는 부동산 이슈와 맞물려서 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번에 유권자들이 보여준 결집력과 특히 민주당 지지 블록의 붕괴는 욕망보다는 더 부정적인 에너지, 분노와 심판으로 더 잘 설명된다. 왜 분노하고 왜 심판했는가라는 질문에 “욕망 때문에”라는 답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욕망’보다 주권자들의 정서를 더 잘 포괄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다. 불안정노동자와 자영업자는 소득 안정성이 낮아서 불안하다. 중장년은 노후가 불안하다. 무주택자와 1주택자는 널뛰는 부동산시장에서 주거가 불안하다. 급격하게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보고 있으면 자산 증식의 막차를 놓치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 저성장 시대에 청년은 기회 자체가 사라져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청년은, 윗세대의 노후를 자신이 부양하고 자기 노후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불안의 종류는 처한 상황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요구하는 해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저성장·저출산·고령화로 사회가 수축하고 쪼그라든다는 감각, 기회와 미래와 안전망이 사라져간다는 감각은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공유한다. 주권자들은 실제 피부로 느끼는 불안을 정치의 ‘1번 의제’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는데 정치가 딴짓을 할 때, 내 불안과 무관해 보이는 의제를 ‘1번 갈등’으로 밀어붙이려 들 때, 집권세력이 내 불안을 알고 해결하려 노력한다는 믿음은 사라진다. 이럴 때 불안은 분노가 된다. 분노는 투표율을 끌어올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율은 58.2%로, 보궐선거 사상 최고치다.
성전의 세계관과 사회경제 프로그램의 부재가 만나면, 이중의 의미로 정치가 작동을 멈춘다. 정치의 작동을 멈춘 정치가들은 정치의 가장 큰 이벤트인 투표로 심판받는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폭거에 저항하는 미얀마 국민이 6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군부는 현지 언론의 취재 보도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마치 1980년 5월 한국 광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목숨을 건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투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우리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얀마 기자 ‘쏘 얀 나잉(Saw Yan Naing)’과 그 동료들의 특별기고를 싣습니다. 쏘 얀 나잉은 BBC 미얀마 지국장 등을 역임한 베테랑 저널리스트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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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 얀 나잉(Saw Yan Naing)
'Z세대'라고 불리는 미얀마의 젊은 시위대가 지난 2월 미얀마 양곤 시내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CDM)으로 알려진 반군부 시위를 시작했다. (사진 = 쏘 얀 나잉 기자)
지난 2월 1일 미얀마 쿠데타 이후, 어린이를 포함해 600명 이상의 미얀마 국민들이 군부의 폭거에 저항하다 사망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 각계에서 모인 시위대는 거리에서 반 쿠데타 시위를 열었고, 버마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등 선출된 지도자들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군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게 권력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폭력 상황이 더 악화될수록 시위대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억류된 정치인과 활동가 석방,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시위대는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 미래를 앗아가는 미얀마의 나쁜 체제와 싸우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의 극심한 권력 다툼이 미얀마 국민의 꿈과 희망을 파괴하고 있다. 군부 쿠데타 징후는 지난해부터 나타났다.
아웅산 수치와 군부 엘리트의 전쟁
지난해 8월,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제4차 연합평화회의(Union Peace Conference)가 열렸다. '21세기 팡롱'이라고도 불린 이 회의는 2019년 전국 평화 프로세스를 무산시킨 정부 대표들과 소수민족 무장 단체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해 의논하고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 대신 말싸움이 회의를 장악했다. 민 아웅 흘라잉 군 사령관은 소수 민족 집단이 이전 중앙정부에 반대했고, 평화 프로세스 참여자들을 향해서도 정직하지 못하다며 비난했다.
반면 민주주의 리더 아웅산 수지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군사력에 의존하는 나쁜 정치 문화를 없애야 한다며 군부를 비난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분석가들은 그날 회의가 아웅산 수지와 군부 엘리트들의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연합평화회의에 참석했던 한 학계 인사는 미얀마 최대 권력자 2명이 충돌할 경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분쟁으로 이어지고 지난 수년간의 평화 구축 과정이 무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네피도의 정계 인사들은 아웅산 수지와 민 아웅 흘라잉이 지난 몇년 동안 협치를 시도해왔지만 서로를 향한 적대감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한다. 두 사람 모두 너무 완고하고, 야망과 자존심이 크다는 말이다.
안전상의 이유로 익명을 요청한 한 중견 정치인에 따르면 아웅산 수지와 민 아웅 흘라잉은 서로 사이가 나빠 직접 만남은 피한 채 각각 대표자를 선정해서 대화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실질적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가 권력을 쥐고 있을 당시, 그는 전력에너지부, 교육부, 외무부, 대통령실 등 4개 부처 장관 자리를 할당 받았다. 전력에너지부와 교육부 장관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아웅산 수지는 여전히 막강한 정치 권력을 행사했다.
아웅산 수지는 한때 국가평화재건센터(NRPC)와 연합평화대화합동위원회(UPDJC) 의장을 맡기도 했다. 국가고문으로 임명되면서 실질적으로는 총리급 지위를 유지해왔다.
NLD 내 일부 세력 또한 아웅산 수지의 독단성과 그가 정부 고위직을 여러 개 차지한 것은 과하다고 평가한다.
국가 고문이라는 직위를 새로 만들 때도 큰 논란이 일었다. 군부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한 의원은 국가 고문이라는 직위는 위헌이라며 비판했고 투표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의회는 2016년 4월 투표를 통해 국가고문이라는 자리를 탄생시켰다.
당시 군부를 대표하던 마웅마웅 소장은 의회 투표 결과를 두고 "군부를 왕따"시키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국가 고문 자리를 고안해 낸 이는 아웅산 수지의 법률 고문 우 코 니(U Ko Ni)라고 알려진다. 우 코 니는 2017년 양곤국제공항에서 저격당했다.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의 배후로 군부를 지목한다.
이렇듯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줄다리기는 폭력과 유혈사태로 이어진 전력이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예측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민주정부 하에서도 특권 가졌던 군부
미얀마 군부 또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부에서도 특권을 누렸다. 2008년 군부가 뽑은 변호사들이 작성한 헌법에 따라 그들은 자동적으로 의회 내 25퍼센트의 의석을 차지했다.
또 해당 헌법은 군대가 국방부와 국경부, 행정자치부 등 3개의 주요 부처를 장악할 수 있도록 보장했고, 군부는 부통령을 임명할 수 있는 특권도 가지고 있었다. 미얀마는 한 명의 대통령과 두 명의 부통령을 두고 있다.
정치력 외에도, 군부와 그들의 친인척과 측근들은 미얀마경제공사(MEC)와 미얀마경제홀딩스 유한회사(MEHL) 등 두 개의 거대한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군과 장교들에게 배분한다.
미얀마 군부의 자금을 주로 다루는 ‘미얀마 저스티스(Justice for Muriana)’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경제홀딩스(MEHL)는 광산의 옥과 루비 라이선스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현 군부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의 아들과 딸, 며느리 역시 리조트와 건설, 통신, 영화 산업, 의료 공급 사업, 식당 및 고급 체육관 등의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쿠데타 직전,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자신들이 운영하는 TV 채널을 통해 쿠데타를 선포하자 미얀마 국민과 국제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미 쿠데타의 전조를 느끼고 있었다.
연방의회 의원들, 외교관 모임과 현지 언론은 NLD와 군부 대표자들이 지난 1월 28일 협상을 위해 만난 바 있다고 전했다. 이때 군부는 2020년 11월 NLD가 압승했던 선거 결과에 의혹을 제기했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군부는 간과하기에는 불규칙성이 너무 컸다고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며 재검표와 재선거를 원했다.
NLD 또한 양보하지 않았고 대화는 결렬됐다. 그 시점에서 쿠데타는 이미 예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웅산 수지와 NLD 또한 쿠데타가 임박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미얀마 현지 언론 는 아웅산 수지가 1월 28일 자택에서 당원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회의에서는 군부의 요구에 반대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가 논의되었다.
군부 채널이 2월 1일 쿠데타를 공식 선언했을 때는 이미 군부가 당일 새벽 아웅산 수지를 포함한 여러 고위 정치인을 구금한 뒤였다.
군부와 그 측근 정당은 부정선거 의혹이 쿠데타의 원인이었다고 하지만, 다수의 분석가들은 쿠데타를 위한 변명일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미얀마 헌법상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지만 군부는 스스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을 내쫓은 뒤 새 대통령을 임명했다.
현재까지 600여 명 사망...시위대, 무장 세력 찾아가 훈련
현지 언론과 인권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600여 명의 시위 참가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더 큰 원동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국제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미얀마 거리 곳곳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분노한 시민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현장을 볼 수 있다.
미얀마 상황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현재 많은 미얀마 시위대들이 소수민족의 무장 세력을 찾아가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 치료 기술, 폭발물 장치 만드는 법, 그리고 다른 전투 기술들을 배우는 것이다. 몇몇은 이미 대도시 돌아와, 반군부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시위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사회 각계에서 모인 시위대는 거리에서 평화 시위를 열었고, 버마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등 선출된 지도자들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군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게 권력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얀마의 'Z세대' 시위대가 양곤 시내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CDM)을 벌이는 모습 (사진 = 쏘 얀 나잉 기자)
양곤시에서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인 에(Aye) 씨는 "청년들(Z세대)은 군사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싸우고 싶어한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부가 억류된 정치인들을 풀어주고, 그들과 타협한다고 하더라도 청년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군부가 권력을 쥐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Z세대는 전국적으로 반군 시위를 이끌고 시위대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양곤시에서 시위에 참여한 코 피요 씨는 "더 이상의 패배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싸움입니다"라며 "지금 물러선다면 우리는 자유와 꿈 그리고 미래를 잃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군부 독재 아래 살고 싶지 않다"며 시민 불복종 운동만이 미얀마 국민들의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시민들은 정치적인 이득을 얻고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시는 군부 독재 하에 살고 싶지 않다는 순수한 열망 하나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미 군부 치하에서 고통받았고 군사 독재 사회가 어떠한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1962년부터 2010년까지 이어진 군사정권 하에서 민주주의는 크게 좌절해왔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반체제 인사들, 활동가들, 언론 노동자들은 두려움 속에 살았다. 일부는 감옥에 가거나 가택연금을 당하고, 다른 일부는 미얀마를 떠나 이웃 나라 등으로 망명했다. 농촌 지역의 민간인들은 군사 공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피난을 가야 했다. 도시 지역의 민간인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혹은 이웃 나라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나라를 떠났다.
미얀마의 미래는?
아웅산 수지와 민 아웅 흘라잉 모두 타협의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둘 중 하나만 남아야 하는 상황에 치닫고 말았다.
정치 분석가들은 국가행정위원회(SAC)로 알려진 군사 정권이 1년간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후 선거를 열어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선포함에 따라 시민들의 반군 활동이 내년 2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위대들은 시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전적으로 군부의 잔혹함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정치권에서는 군부가 선거를 실시할 수 있도록 올해 중순까지는 이 같은 상황을 통제하길 원하겠지만 시위대 역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위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석가들은 군부의 국가행정위원회(SAC)가 다음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으로 내다봤다. 군부와 측근 정당인 연합연대개발당(USDP)은 계속 권력을 쥐고자 할 것이고, 아웅산 수지의 정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가 집권하기 이전처럼 국가를 통치하길 원하는 게 분명하다.
2015년 NLD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기 전까지 미얀마는 군인 출신이자 연합연대개발당의 테인 세인 대통령이 집권했다. 당시 군부의 지원과 함께, 연합연대개발당은 선출되지 않은 군인 의원들이 의회의 25%를 차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의회를 장악했다. 군사 정권은 ‘테인 세인의 스타일’이라고 물리는 행정부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이 신뢰할 만한 대통령을 뽑고, 다음 정권 하에서도 큰 특권을 누리는 겠다는 것이다.
민 아웅 흘라잉은 패배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반독재 시위가 확산되기 전부터 미얀마 군 지위부는 국가행정위원회를 꾸려 정치적인 기반을 다져왔다.
국가행정위원회는 민 아웅 흘라잉이 직접 뽑은 각 정당 및 소수민족 대표자 11명으로 구성됐다. 이를 놓고 전문가들은 민 아웅 흘라잉이 새 정부의 포용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카렌민족연합(Karen National Union) 전 지도부의 일원인 만 녜인 마웅은 카렌족 대표 자격으로 국가행정위원회에 참석했다. 민중개척당(People’s Pioneer Party) 셋 셋 카잉 대표는 복지구호재정착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과거 NLD에 몸담았으나 당의 실적에 불만을 느끼고 떠난 인사들도 국가행정위원회에 들어갔다.
국가행정위원회는 민간인 7명으로 구성된 자문단도 꾸렸다. 여기에는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응언 쿵 리안 박사도 속했다. 응언 박사는 친(Chin)족으로 지금은 해체된 미얀마평화센터의 법률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쿠데타가 공식 선포된 날 국가행정위원회는 미얀마가 앞으로 1년 동안 국가 비상사태에 돌입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선거는 그 후에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부는 누구든 상관없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에게 기꺼이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분석가나 활동가들은 그 때가 되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늦어버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미 민 아웅 흘라잉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질 것이기 때문에 민 아웅 흘라잉에게 불리할 리가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 자리에는 민 아웅 흘라잉이 직접 앉거나 또는 그의 최측근을 앉힐 가능성이 크다.
“독재자들은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지 않는 한 절대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겁니다.”
한 분석가는 민 아웅 흘라잉이 최고사령관 자리에서 자진 사퇴하기 전에 자신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해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작진
정리
강혜인 기자
번역
강혜인, 이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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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단지는 사유지 지키는 섬 구조 선진국엔 아파트 있어도 단지는 없어 과천 등 3개 지역서 파리형 아파트 실험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완벽한 섬이에요. 해외에도 아파트는 많지만 단지 형태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행자 전용 공간부터 수영장까지 온갖 좋은 시설들을 단지 안에 지어놨죠. 주민이 사생활을 보호받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앞으로 차량뿐만 아니라 보행자의 출입까지 막는 고급화된 단지들이 더 늘어날 겁니다. 서울 고덕동 택배대란과 비슷한 갈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우울한 시나리오죠.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고덕동 택배대란은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들은 외부와 단절돼 자족적으로 삶을 꾸리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시의 빈약한 기반시설을 극복한다. 단지는 주민이 돈을 모아서 만들어낸 사막의 오아시스, 황무지의 성과 같다. 이러한 경향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선진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그들의 아파트는 작게 건설돼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한국도 아파트 문화를 바꿔야 한다. 범부처 건축 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 소속 위원회를 이끄는 박인석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의 지론이다.
15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아파트 단지로 택배 물품이 손수레에 실려 들어가고 있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 1일부터 단지 내 지상도로로 차량이 다니지 못하도록 전면 통제 됐으며, 지하 주차장 높이가 택배 차량의 높이보다 낮게 지어져 차량 출입이 불가능하다. 뉴시스
아파트 '단지'는 한국만의 특징
아파트 단지는 개발시대의 유물이며 이제라도 결별을 준비해야 한다. 16일 서울 종로구의 집무실에 만난 박인석 위원장은 그렇게 강조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정부가 가난해서 등장했다. 도시에 기반시설을 깔아줄 돈이 없었던 정부는 땅을 큼지막한 덩어리로 나눠서 싸게 팔았다. 건설업체들은 이를 분양해 아파트 단지로 만들었다. 도로부터 공원, 놀이터까지 정부가 지어야 했던 기반시설을 주민이 직접 만든 셈이다. 누가 봐도 단독주택 지역보다 아파트 단지의 생활환경이 우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주택가를 허물고 아파트 단지를 지어왔다.
박인석 위원장은 2012년 저서 ‘아파트 한국사회’에서 출입통제가 한층 강화된 아파트 단지의 등장을 예견했다. 고급 아파트, 스스로 격리된 아파트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썼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단독주택 인기가 높아져 주거문화가 바뀔 거라는 예측이 요새 쑥 들어갔죠. 그러려면 도시의 주거환경이 아파트 단지만큼 좋아져야 하는데 정부 정책이 그렇지 않았거든요. 최근에야 생활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약한 수준이죠.”
박인석 제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위원회 집무실에서 아파트 단지가 도시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고덕동 택배대란, 단지 구조 자체가 문제
고덕동 택배대란은 직접적으로는 택배차량이 지하주차장에 진입하지 못해서 일어났다. 그것은 사고가 났으니 문제가 생겼다는 식의 동어반복이다. 원인은 단지 구조에 있다는 이야기다. “주민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상을 보행자 전용구간으로 만들어놨다면 저라도 지키고 싶을 거예요. 공간구조를 그렇게 만들어놨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죠.”
도시는 망가지고 아파트 단지만 발전하도록 주거문화를 놔둘 것인가? 박 위원장은 지금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로에 차단기를 설치해서 차량 통행을 막는 아파트 단지들이 20년 전쯤부터 등장했습니다. 최근에는 경비원과 잠금장치로 보행자 통행까지 막는 아파트 단지들이 나타났죠. 이런 아파트 비율이 현재 전체 아파트 단지의 5% 정도라면 앞으로는 60%까지 늘 겁니다.”
과천 등 3개 지역서 파리식 아파트 실험
변화를 위한 실험이 시작됐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토교통부는 3기 신도시를 개발하며 단지가 아닌 아파트 주거지역을 공급한다. 과천과 안산신길2, 수원당숙 모두 3개 공공택지지구가 선정됐다. 각각 7,000여세대 규모로 계획안 공모를 마쳤다. 과천은 도시계획 확정이 코앞이다. 거칠게 말하면 저층 아파트들 사이에 상가, 도서관, 체육관과 공원이 들어서는 ‘프랑스 파리형 아파트 지구’를 짓는 셈이다.
물론 한국 현실과의 타협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것이 시작이다. 실험이 성공해야 국민이 ‘단지가 아닌 아파트에서도 살만 하구나’ 생각하게 될 거라고 박 위원장은 강조한다. “우리 국민의 60%가 이미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으니까 공감대를 얻기가 힘든 싸움이죠.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주민들은 싫어할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3월 과천지구 도시건축통합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시아플랜건축사무소 컨소시엄의 계획도 일부. 아파트 단지 대신 개별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지상층에는 상가 등의 시설이 계획돼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제공
과천에 들어설 아파트 주거지역 계획도 일부. 아파트 블록들이 잘게 나뉘어져 있다. 블록들 사이로 공공공간들이 설계돼 있다. 보행로와 차도는 동선이 나뉘어져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제공
오해1: 땅이 좁아서 고층 아파트 단지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은 국토가 좁아서 고층 아파트 단지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위원장은 오해라고 설명한다. 고밀도 개발 방식이 반드시 고층 단지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일본의 유명한 도심형 주거지 프로젝트인 치바현 마쿠하리 베이타운의 경우 5층 아파트로 180~230% 용적률을 구현한다. 파리 도심을 채우고 있는 5, 6층 건물들 역시 대부분 아파트다. 박 위원장은 ‘아파트 한국사회'에서 이들 지역의 건축 밀도는 한국의 신도시 초고층 아파트 단지보다도 높다고 지적했다.
그림 A는 8m 격자에 20층 아파트 세 동을 배치한 것이다. 한 층 높이를 3m로 가정하면 건물 높이가 60m이니 건물 사이 간격과 높이가 1 대 1이상이 되도록 64m를 띄워서 배치해야 한다. 그림 B는 똑같은 공간에 5층 아파트를 배치한 것이다. 건물 사이 간격은 24m다. 용적률은 178%(A)와 200%(B)로 20층보다 5층의 밀도가 더 높다. 현암사 제공
오해2: 선진국형 주거구조는 개발비용이 더 든다
유럽식 개발이 더 비싸지도 않다고 박 위원장은 주장한다. 총비용은 같다. 단지 누가, 언제 비용을 부담하느냐의 문제다. “아파트 단지든, 파리 형태의 주거지역이든 어차피 누군가는 도로와 상하수도, 공원을 만들어야 하죠. (파리처럼 만든다면) 국가가 땅을 작게 나누고 기반시설까지 개발한 단계에서 건설업체에 팝니다. 소비자가 최종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국민에게 당당히 평가 받아야
반발도 있다. 한 시범사업 예정지에서는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지역에 들어와야 한다’고 반발했다. 건설업계에서도 이런저런 말이 많다. 박 위원장은 “익숙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죠. 모든 일은 시민의 공감 없이는 이뤄질 수 없어요”라면서 앞으로 사업이 진행될수록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드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니 공공이 먼저 시범사업을 펼쳐야 돼요.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이제 저렴하면서도 품격 높은 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거든요.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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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21년 신규 라인을 선보인 향수 브랜드 '에타페'의 '보태니컬 랩' 시리즈의 향수와 스토리 영상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보태니컬 랩이라는 단어에서도 느껴지듯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그리너리한 컬러를 사용해 봄에 맞는 좀 더 싱그러운 무드를 경험할 수 있다.
지엔코 김석주 대표는 "전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 문화 컨텐츠에 독보적인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이번에 오픈한 VR스토어를 필두로 더 많은 디지털 체험 컨텐츠를 개발해 시장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