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름 2㎜ ‘빨대 묶음' 지나니 폐수가 청정수로… 롯데케미칼의 水처리 마법

지름 2㎜의 분리막, 미세 기공으로 이물질 여과
올해 수주 23만7820t 예상… 전년比 430% 성장

이윤정 기자

입력 2021.06.06 12:00

 

 

 

 

 

대구 달성군 물산업클러스터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수처리 분리막 공장./롯데케미칼

지난 2일 찾은 롯데케미칼 (280,500원 ▼ 1,500 -0.53%) 대구공장에선 지름이 약 50㎝인 원통형 실패 여러 개에서 지름이 약 2㎜에 불과한 하얗고 얇은 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빨대처럼 가운데가 뚫려있는, 특수 제작된 실이었다. 이 실은 60도의 뜨거운 폴리비닐리덴(PVDF) 용액을 만나 겉면이 코팅됐고, 이후 45도의 따뜻한 물이 담긴 3m 깊이의 수조를 통과하며 빠르게 응고됐다. 두 차례의 세정 작업까지 거치니 2~3m짜리 길고 얇은 빨대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이 빨대는 롯데케미칼이 만드는 수처리 분리막(멤브레인)으로, 물 속의 오염물질을 여과해 양질의 물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가느다란 관의 중앙이 비어있는 형태인 ‘중공사형’ 분리막은 롯데케미칼이 자체 개발했다. 강도가 높으면서 무게가 가볍고, 여과된 물은 저항을 적게 받으며 이동할 수 있어 운전 압력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수질 기준 강화에 따른 대응과 물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정수, 하·폐수 및 재이용 처리에 주로 적용되는 수처리 핵심 기술로 꼽힌다. 반도체, 화학 등 제품 생산 과정에서 물을 많이 쓰는 기업들이 주요 고객이다.

가느다란 관의 중앙이 비어있는 형태인 ‘중공사형’ 분리막. 롯데케미칼이 자체 개발했다. 지름이 2㎜에 불과하다. /이윤정 기자

롯데케미칼은 지난 2011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수처리 분리막 기술을 선정하고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2015년에는 삼성SDI (621,000원 ▲ 1,000 0.16%)의 수처리 기술을 인수해 사업에 본격 진출했고, 2018년 5월엔 대구 달성군 물산업클러스터에 연면적 5785㎡ 규모의 수처리 공장을 준공했다. 물산업클러스터는 대구시가 혁신 산업단지로 조성한 국내 유일의 물산업단지로, 롯데케미칼은 이곳에 입주한 1호 대기업이다. 연간 55만㎡의 생산 능력을 보유해 국내 최대 규모의 수처리 분리막 공장으로 꼽힌다.

중공사형 분리막 표면에는 수십~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무수히 많은 구멍(기공)이 분포하고 있다. 이 기공의 크기에 따라 여과 역량이 갈리는데, 롯데케미칼 분리막의 기공 크기는 0.03㎛로,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에 해당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0.03㎛ 기공으로는 물에 떠다니는 이물질부터 병원성 미생물 등 박테리아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며 “다수의 균일한 기공을 만드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분리막 표면을 코팅해 기공을 만드는 핵심 소재인 PVDF는 롯데케미칼이 30년 이상 축적한 폴리머 소재 고분자 가공기술 노하우를 활용, 높은 내화학성과 내오염성을 보유해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수 장치를 이용해 분리막 가운데 통로를 진공 상태로 만들면, 수많은 기공들을 통해 이물질은 걸러지고 정수된 물은 통로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 다만 하나의 분리막으로는 다량의 물질을 걸러내기 어려운 만큼, 정수량을 높이기 위해 롯데케미칼은 분리막 다발을 대량으로 모아 ‘모듈’을 제작하고, 이 모듈을 또 여러 개 모아 맞춤 제작한 카세트에 넣는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노출 면적이 24㎡ 규모인 모듈 1개엔 분리막이 약 1800가닥 들어가는데, 이 모듈 하나면 하루에 12t의 하수를 여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반도체, 화학 등 물을 많이 사용하는 공장을 지을 때 설계 단계부터 참여, 각 기업 생산량에 맞춰 필요한 카세트의 양을 책정해 납품한다.

롯데케미칼이 제작한 분리막 카세트. 보통 2~3m 크기로 제작되는데, 각 기업에서 필요한 정수량에 맞춰 크기와 개수는 조정될 수 있다./이윤정 기자

롯데케미칼 대구 공장도 산업용수를 여과할 때 자사 분리막 제품을 이용하고 있다. 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화학적산소요구량(COD) 배출 기준은 300㎎/ℓ이지만, 롯데케미칼이 배출하는 물의 COD는 6~7㎎/ℓ에 불과했다. COD가 낮을수록 수질이 좋다는 뜻이다.

올해로 11년째에 접어든 롯데케미칼의 수처리 기술 사업은 지난해부터 성과를 내고 있다. 수주 실적을 살펴보면, 2018년 롯데케미칼은 하루 3만3375t을 정수할 수 있는 정도의 분리막을 생산해냈다. 2019년엔 2만5546t으로 오히려 전년 대비 23%가량 줄었지만, 지난해엔 4만5150t으로 77% 늘었다. 올해 예상 실적은 23만7820t으로 427%가량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24만t이면 81만명이 하루에 사용한 물을 걸러낼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정다운

롯데케미칼은 향후 시장 상황에 맞춰 생산 라인을 증설할 계획이다. 현재 대구 공장에선 라인 1개만 돌아가고 있지만, 2개의 라인을 추가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다. 영국 물 조사기관인 글로벌워터인텔리전스(GWI)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수처리 시장 규모는 8341억달러(약 924조원)에 달했다. 이영준 롯데케미칼 첨단소재사업 대표는 “국내는 물론 세계 유수의 수처리 전문기업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해외 시장 확대에도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산업 많이 본 뉴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