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줄넘기 연습 없듯이 잘못된 골프 빈 스윙도 없어 꾸준함만이 요구되는 세계 하루에 빈 스윙 100번 한다면 60번은 그네처럼 왕복으로 30번은 실제 샷처럼 원웨이로 10번은 반대 방향으로 하시길
▲ 김헌의 마음골프학교 교장
프로의 스윙을 따라가거나 남의 스윙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 몸이 허용하는 가장 편한 스윙을 해야 골프가 편안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에 공감한다면, 남은 문제는 '내 속에 있는 나만의 스윙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빈 스윙 즉 '공이라는 물체가 없는 상태의' 빈 스윙을 꾸준히 반복하면 자기 스윙을 찾게 된다. 공을 치는 행위로서 샷을 분리해서 스윙만을 놓고 보면 스윙은 그저 작대기를 들고 휘두르는 운동이고, 그것은 너무도 쉬운 운동이다. 딱히 따로 배워야 할 것도 없는, 다 할 줄 아는 운동에 불과하다. 줄넘기를 레슨받지 않는 것처럼 작대기로 휘둘러서 원을 그리는 동작을 배우는 데 과외 선생을 붙일 필요는 없다. 줄넘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질적 향상이 이뤄지는 것처럼 스윙의 질이라는 것도 빈 스윙양에 비례할 뿐이다. 줄넘기를 1만번 한 사람과 10만번 한 사람의 차이는 어떨까? 잘못된 줄넘기 연습이 없는 것처럼 잘못된 스윙 연습도 없다. 그저 꾸준함만이 요구되는 세계다.
그런데 공이라는 물체가 나타나면 어떤가? 스윙이 급해지고 궤도가 일그러지면서 불완전해진다. '내가 왜 이러지, 공만 보면 왜 달라지지' 하고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러기 때문이다. 공을 보면 마음이 인다. 욕심이기도 하고 불안과 긴장일 수도 있다. 어쩌면 걱정과 근심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무엇이든 마음이 일면 손목이 굳어오든 팔에 힘이 들어가든 동작이 빨라지든 뭔가 몸의 변화가 따른다. 그런 상태에서는 '무심한 스윙'이 만들어질 수 없다.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자신만의 스윙은 공을 치면서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빈 스윙은 공이 없는 상태의 스윙을 의미하지만, 텅 빈 마음으로 하는 스윙이기도 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르는데 생각의 군더더기들이 달라붙을 틈이 없다. 양궁 선수가 활을 당기는 시위 동작에 의혹이 있으면 목표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는 것처럼, 다트를 던지는 사람이 던지는 행위 쪽으로 의식이 가면 표적에 몰입할 수 없는 것처럼, 골프도 스윙이라는 행위에 일말의 의혹이라도 남아있으면 그 결과는 참담해 진다. 스윙 연습의 목적은 '아무 생각 없는 스윙 만들기'다.
초보자들은 1만번 정도 빈 스윙을 하면 어디 가서 민폐 안 끼치고 골프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의혹이 없는 스윙'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어느 정도 골프를 해 왔던 사람은 스윙의 궤도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는 레슨의 흔적들,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 하고 지적받았던 상처들이 흉터로 남아있다. 그것을 다 지워야 한다.
'백스윙을 이렇게!' '스윙 톱에서는 어떻게!' '임팩트에는 손을 어떻게!' 하는 식으로 스윙의 궤적에 묻어있는 스윙 메커니즘에 관한 모든 생각은 다 잡념이다. 그 생각대로 내 몸이 따라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집중과 몰입을 해치는 주범이다. 그런 스윙으로 샷을 하는 것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대충 치는 것만 못하다. 언제나 그렇다. 인간의 몸은 의식으로 통제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상의 모든 운동은 무의식적인 운동이다. 그런 이유로 스윙을 무의식적인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 빈 스윙이다. 골프 구력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더 많은 빈 스윙이 필요한 이유다. 빈 스윙으로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단순한 반복이 주는 거룩한 경험'의 경지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야 한다.
빈 스윙은 굳이 연습장에 가서 하지 않아도 된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골프 클럽을 꼭 들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빈 몸으로 자세를 잡아도 좋고, 작은 막대기도 좋다. 그것도 없으면 손수건을 꺼내서 끝에 물을 적셔서 약간 무겁게 해서 활용해도 좋다. 그저 몸을 움직이고 골프에 유용한 자세를 잡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거다. 그렇게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독특한 동반자들을 견뎌내고, 내기에 강한 '뿌리 깊은 골프'가 되는 것이다.
이왕 빈 스윙 연습을 하려거든 거울이나 벽 앞에서 하는 것이 좋고, "쿵짝짝 쿵짝짝" 하면서 리듬에 맞춰서 춤을 추듯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빈 스윙을 100번 한다면 60번은 그네처럼 왕복으로, 30번은 실제 샷을 하는 것처럼 원 웨이로, 나머지 10번 정도는 반대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다. 반대 방향이란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잡이 스윙을 하라는 뜻이다. 반대 방향으로 마무리해야 몸의 균형이 유지된다.
텅 빈 마음의 빈 스윙으로 내 몸이 허락하는 최적 스윙을 찾자. 그것이 행복한 골프의 시작이면서 끝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러 선입견을 갖고 산다. '충청도 양반'이라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아마도 말이 느리고 행동이 신중해서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따라서 '항쟁', '봉기'를 충청도와 연결시키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5‧18 광주항쟁, 부마항쟁은 있지만 대전항쟁은 없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충청도와 항쟁은 별로 상관이 없다고 잘못 생각했었다. 이번 한국 근현대사 기행을 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대표적인 것이 두 가지다. 첫째, 60년 4‧19혁명 당시 제일 먼저 이승만 정권이 저항해 들고 일어난 것이 대구(2‧28 민주항쟁)였고 그 다음이 대전이었다. 3월 15일 부정선거에 대항한 마산의 3‧15 이전인 3월 8일 대전에서 '3‧8 민주의거'가 일어난 것이다(아래 참조).
둘째, 문헌에 나오는 '최초의 민중봉기'가 충청도에서 일어났다. 바로 우리가 흔히 '망이·망소이의 난'이라고 부르는 '명학소 민중봉기'가 일어난 곳이 예전의 공주, 현재의 대전이다(명학소 민중봉기는 비록 고려시대에 일어났지만, 자유, 평등이 그 핵심인 '근대'를 지향한 최초의 운동이라고 생각해 이번 한국 근현대사 기행에 포함시켰다.)
▲ 기념탑에 세워져 있는 반란군 지도자 망이의 동상 ⓒ손호철
'계급'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조건반사적으로 '좌파'를 연상한다. 하지만 '계급', '신분'은 이념이나 정치적 입장과는 상관없는, 객관적‧역사적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객관적인 역사적 현실'이다. '계급'이란 말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것 같은 박근혜도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노비였을지 모르고, 대표적인 '극우논객' 조갑제도 고대에 태어났으면 '노예검투사(글래디에이터)'였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도 역사적으로 시대에 따라 그 구체적인 내용은 변했지만, 신분적 불평등과 계급이 지배하던 사회였고, 차별당하고 지배당하는 민중은 신분적 불평등을 전복시키고 자유와 평등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
"무신정변 이후 천민도 권력자에 올랐다. 그러니 우리라고 왕후장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각자 주인을 없애고 노비문서를 불태운 뒤 시장에 모여 봉기하자!"'만적의 난'의 주모자인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노비들을 모아놓고 한 연설은 이 같은 투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 우리만 갖가지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이로부터 20년 전인 1176년 정월, 현재 대전 서구 탄방동 일대에 있던 명학소에서 망이, 망소이가 주민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했다. 명학소 민중봉기가 시작된 것이다.
▲ 관군과 싸우는 명학소 민중들의 투쟁(좌), 봉기를 준비하는 명학소 소민들을 그린 벽화(우) ⓒ손호철
이 봉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의 행정조직을 이해해야 한다. 고려시대에는 일반행정구역 이외에도 향, 소, 부곡 같은 특수행정구역이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신분적으로는 양민이지만 세금부담 등은 일반 양민보다 훨씬 높으면서도 과거나 국학 입학이 제한되고 승려도 될 수 없는 등 신분적 제약이 많았다.
그 중 소는 철강 등 특수한 제품을 만드는 지역으로 명학소는 탄방동이라는 지역 이름이 시사하듯이 숯을 만들던 곳이라는 설과 이 숯을 가지고 철을 만들었다는 설, 탄방동이란 지역명은 훨씬 이후에 생긴 것으로 수공업 생산지였다는 설 등이 경합하고 있다.
명학소 민중봉기가 일어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무신들이 힘으로 세상을 뒤집고 권력을 잡은 무신정변 이후, 민초들도 신분제라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며 언제든 힘으로 엎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두 번째는 무신들의 수탈이 문신 시절보다 악랄해 민중들의 삶이 황폐해지고 불만이 누적된 것이다. 그 결과 명학소 이외에도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특히 소의 경우 신분적 차별까지 겹쳐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나 소의 인구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봉기는 농민들이 가담하지 않았다면 폭발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명학소 민중봉기는 특수행정구역 소 주민들의 신분 해방운동과 농민 반란이란 이중적 성격을 가지는 '민중연합 봉기'였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단일계급이 아니라 다양한 민중 세력들이 함께 손을 잡을 때, 그 힘이 배가되는 것이다.
망이·망소이가 이끄는 1000여 명의 반란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공주를 공격해 함락했다. 놀란 중앙정부는 대규모 진압군을 보냈지만 망이·망소이는 이들 또한 격퇴했다. 반란군은 충주로 진격해 갔다. 이곳에는 농토를 빼앗기고 산으로 올라간 농부들이 있어 망이는 산행병마사를 자칭하며 이들과 연합했다.
반란이 길어지자 중앙정부는 6개월 뒤 명학소를 일반 양인들과 부역 등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는 현으로 승격시키는 파격적인 유화책을 제시했다. 망이·망소이는 응하지 않았지만 일부는 이에 만족해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게다가 중앙정부는 북쪽의 난을 정벌하고 그 병력까지 명학소 봉기 진압에 투입하면서 망이·망소이 등은 1177년 초 항복했다. 중앙정부는 이들에게 곡식을 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끝난 줄 알았던 명학소 민중봉기는 두 달 뒤 다시 타올랐다. 망이가 천안의 홍경원을 공격하고 예산의 가야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망이·망소이는 당시 사원경제 등으로 민중들의 원한을 샀던 홍경원을 불태우고 승려들을 살해했다. 2차 봉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이 2차 봉기에 나선 것은 중앙정부가 유화책을 쓰면서도 뒤로는 이들의 가족들을 잡아가는 등 보복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홍경원 주지승을 통해 개경으로 보낸 편지에서 싸우다 죽을지언정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왕경까지 쳐들어가겠다"고 공언했다. 정권 타도와 권력 장악의 의지를 선포한 것이다. 이들은 청주 지역을 장악하고 이천 등 경기도 남부지역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규모 진압작전 끝에 완전히 진압되고 말았다. 이 봉기는 1년 반 만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 봉기의 결과로 결국 소와 같은 불평등한 행정제도는 사라졌고, 이후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한 한반도 민중들의 저항의 씨를 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대전 서구지만 유성에서 가까운 곳에 남선공원이란 작은 공원이 있다. 이 공원 한가운데에는 꽤 높은 탑이 있다. 세 개의 기둥을 세워 놓은 탑에 가까이 다가가면 머리띠를 동여매고 죽창과 칼을 든 장정들의 조각이 나타나 범상치 않은 탑임을 알려준다. 2006년에 만든 명학소 민중봉기 기념탑이다. 유성온천에 자주 왔지만, 이 같은 탑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된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이 여러 기념시설들을 경쟁적으로 짓고 있지만, '불온한 반란'으로 치부하던 망이·망소의 난을 기념하는 기념탑이 있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역시 지방자치는 좋은 일이다.
세 개의 기둥은 각기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하며, 탑의 정면에는 망이·망소이를 형상화한 무사 두 명의 조각이 세워져 있다. 점잖게 칼을 차고 있는 이들과 달리 세 기둥 끝에 세워진 농민군들은 분노의 고함을 지르며 칼을 내리 찍으려고 하거나, 죽창을 찌르거나, 주먹을 쥔 팔을 하늘로 높이 쳐들고 소리를 지르는 전투적인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그곳 화장실 외벽에 그려져 있는 명학소 민중봉기 그림이다. 관군과 싸우는 봉기군 중에 스님들의 모습이 두 명이나 그려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화가가 단순히 상상력으로 스님들을 그려 넣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자료들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은 동학혁명과 같은 근현대 투쟁에 기인하며 그것이 실질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명학소 투쟁에 있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은 아주 조금일지 모르지만 명학소 민중봉기에 빚지고 있다. 나는 망이·망소이 등에게 감사를 표하며 남선공원을 떠났다.
망이, 망소이의 후예들과 3‧8민주의거
"학생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 "학교에서의 선거운동을 배격한다!"
3‧15 대통령선거를 앞둔 1960년 3월 8일, 대전고 1, 2학년 학생 1000여 명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구호를 외치며 대전 시내 중심가로 달려갔다. '3‧8 민주의거'가 시작된 것이다.
3‧8 민주의거는 4‧19혁명과 관련해 전국적으로 최초로 일어난 항쟁인 대구의 2‧18 민주의거에 대한 동조시위로 3‧15 부정선거 이전에 일어난 것이 특징이다. 즉 학생들을 선거에 동원하는 이승만 정권의 관권선거에 반대해 학생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경찰은 학생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무차별 구타와 연행으로 대응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과 시민들은 3월 10일 대규모 시위를 벌여 경찰과 투석전까지 벌였다.
3‧8 민주의거는 잊혔다가 1987년 민주화가 진행되며 이를 재조명하기 시작해 2006년 명학소 민중봉기기념탑으로부터 멀지 않은 둔지미공원에 기념탑을 설치했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은 탑 위에는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탑을 올려다보며 3‧8 민주의거를 생각하자 망이·망소이의 후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2018년 이 의거의 의미를 높이 평가해 3월 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대전시는 매년 3월 8일 이곳에서 기념행사를 연다.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1> 그들만의 농지 공화국 '지분 쪼개기' 매입 도의원 "매우 후회" 밭 사놓고 8년간 경작 안해 '죽은 땅' 해외근무 중 위임장 없이 땅 매입도 뭘 심겠나? 답(畓)… 영농거리는? 1… 엉터리 농경계획서 제출해도 허가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농지에 빠진 공복들’ 기획을 통해 고위공무원들의 농지 소유 실태를 조명합니다. 경자유전 원칙과 식량 주권을 위해 국가가 보호하는 토지인 농지가 고위공직자들에겐 투기 대상일 뿐이었다는 현실,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농민들이 피해를 입은 사연 등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전북도의회 의원이 2014년 매입한 제주시 한경면 일대의 감자밭. 제주에서 300km 떨어진 전북 익산에서 거주하는 김 의원은 농경계획서에 '자기노동력'으로 직접 마늘과 감자를 심겠다고 기재했지만 해당 필지는 현재 농어촌공사에 임대 중이다. 제주=김영훈 기자
2008년 2월 투기 의혹으로 물러난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당시 박 후보자가 구입했다가 문제가 된 땅은 농지였다.
자연의 일부인 농지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구입한 땅의 99%도 농지였다. 농사 지을 생각이 있다면 누구나 살 수 있다지만, 유독 고위공직자들이 농지 구입에 앞장선 점은 의미심장하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3월 재산을 공개한 고위공직자(1,885명) 중 절반(45.1%)에 가까운 852명이 농지(3,778개 필지)를 갖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농지를 소유하게 된 과정이다. 한국일보는 농지 소유 고위공직자 852명 중에서 1㎡당 가격이 5만 원 이상이면서 1만㎡ 이상 농지를 보유하고 있거나,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소속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대상 장차관 및 기관장 △투기과열 지역인 제주도와 세종시 농지 소유자 등169명을 추려 이들이 보유한 654개 필지의 등기부등본을 집중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이들이 소유한 농지 가운데 70% 이상의 필지가매입(375개·57.3%)이나 증여(94개·14.3%)로 취득했고, 상속 필지는 23.7%(155개)에 불과했다.10명 중 7명은 본인 의지로 농지를 구입했다는 얘기다.
경자유전(耕者有田·농사 지을 사람이 농지를 보유함) 원칙과 농업 경영을 할 사람이 아니면 농지 취득을 제한한 농지법이 고위공직자들 앞에선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셈이다.오세형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 팀장은 "농지는 일반 대지와 달리 강력히 보호돼야 하는 땅"이라며 "고위공직자 절반이 농지를 갖고 있고 농지 보유자 70%가 매입과 증여를 통해 소유하게 됐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위공직자들이 농지를 사들이는데 앞장선 이유는 취득 과정에 허점이 많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농지 취득 때 필수서류인 농지취득 자격증명신청서와 농업경영계획서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해보니 곧바로 파악됐다.질문에 맞지 않는 엉뚱한 답변을 적어내도, 거주지와 농지 소재지가 멀리 떨어져 영농 활동이 불가능해도, 한눈에 봐도 작물을 심기 부적절한 땅에 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해도, 농지를 취득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익산에 살면서 제주에 농사 짓겠다는 도의원
전북도의회 김기영(51) 의원은 2014년 제주시 한경면 일대 밭 7,850㎡를 30년 지기 고향 친구와 함께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매입했다. 김 의원은 농업경영계획서에 '자기 노동력'으로 직접 마늘과 감자를 심겠다고 기재했다.자신의 거주지인 전북 익산에서 300㎞ 떨어진 섬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한 셈이다. '공문서 위조'에 가까운 행위지만 농지취득 자격증명 발급엔 제약이 없었다.
한국일보가 직접 방문한 김 의원의 제주 농지에는 감자와 기장이 심어져 있었고, 농사 짓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김 의원 농지 인근 논에서 경작하던 마을주민 고모(74)씨는 "여기서 농사 짓는 사람들은 모두 섬 주민들"이라며 "땅을 가진 외지인이 직접 농사 짓는 건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농지 외에 인근에 임야 2,731㎡도 같은 시기에 함께 사들였다. 그는 땅을 보지도 않고 공매 사이트를 통해 샀다고 한다. 이 땅은 김 의원과 배우자,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자녀, 김 의원 고향 친구와 그의 배우자, 자녀까지 8명이 지분을 공유하고 있다. 이곳은 당시 제주 제2공항 부지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였던 대정읍 신도리와 맞닿아 있다. 김 의원의 토지 매입이 투기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위공직자(852명) 소유 농지 지역별 분포. 그래픽=송정근 기자
2015년 11월 제2공항 부지는 한경면이 아닌 서귀포시 성산읍으로 결정됐지만, 한경면 일대에 중국 자본이 몰리고 관광명소로도 부상하면서 이듬해인 2016년에만 공시지가가 40% 상승했다. 제주에서 그해 두 번째로 땅값이 많이 올랐다. 김 의원은 컴퓨터 클릭 한 번으로 막대한 (미실현) 시세 차익을 올린 셈이다.
한국일보가 해당 농지 매입 경위를 묻자, 그는 "친구와 의논해 대부분의 토지를 처분하기로 합의했다"며 "매입 당시엔 의정 활동을 하지 않을 때였지만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본의가 어떻든 후회된다.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뿐이 아니었다. 농경계획서에 스스로 농사 짓겠다고 신고했지만, 실제론 농사 짓지 않는 고위공직자들을 찾아 보니, 골라내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수두룩했다.
수풀 잡초 우거진 채 버려진 논밭
농지법상 농지를 매입한 뒤에는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휴경을 할 수 없다. 무단 휴경이 확인되면 관할 지자체는 농지 소유주에게 강제 처분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지자체는 1년간 농지 처분 의무를 부과하고 그 기간에 처분 또는 성실 경작을 하지 않으면 처분 명령을 내린다. 그로부터 6개월 후에도 처분이 안 되면 매년 농지 공시지가의 20%를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한다.
경북도의회 황병직 의원 배우자 소유의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밭. 농업경영계획서엔 콩 농사를 짓겠다고 썼으나 실제론 잡초와 나무가 우거진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영주=윤현종 기자
그러나 농지법상 규제 조항에도 불구하고, 처분하거나 다시 농사를 짓기보다는 황무지나 다름없이 버려진 농지가 적지 않았다. 경북도의회 황병직(57) 의원의 배우자 A씨는 2013년 6월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밭을 1억4,600만 원에 매입했다. A씨는 지자체에 제출하는 농업경영계획서에 '자기 노동력'으로 두류(콩) 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취재팀이 현장을 살펴본 결과,이 밭은 수풀과 나무를 헤치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죽은 땅'으로 변해 있었다.좌석리 주민들과 이장은 "최근 8년 동안 농지 소유주가 여기 온 적도 없고 농사 짓는 걸 본 적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황 의원은 이에 대해 "처음 매입할 땐 조경수로 소나무를 심었지만, 식목이 잘 안 됐고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이라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며 "팔려고 내놓은 지 3년쯤 됐지만 안 팔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외국에서 근무 중인 고위공직자가 주말 농사를 짓겠다며 농지를 구입한 사례도 있었다.이헌(57)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은 2014년 3월 경기 여주시 금사면 장흥리의 밭(420㎡)을 샀다. 이 실장 날인이 찍힌 농지취득 자격증명신청서에는취득 목적이 '주말·체험 영농'으로 적혀 있었다.하지만 이 실장은 2013년 7월 주홍콩총영사관 부총영사로 발령받아 농지 매입 당시 한국에 없었다.이 실장은 "큰조카로부터 산 땅이다. 농지취득 자격증명 발급 절차도 조카가 대신했다"고 해명했다.
경기 여주시 금사면 장흥리에 있는 이헌 외교부 재외동포영사실장의 밭. 그는 주홍콩총영사관 부총영사로 재직 중일 때 이 밭을 주말체험 영농 목적으로 구입했다. 이 밭 입구에는 현재 '입산금지' 푯말이 있다.(위) 이 푯말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 실장 소유의 밭이 나오는 데 휴경 상태로 방치돼있다. 여주=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이에 대해 "대리 신청의 경우 위임장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외국에 있는 사람이 주말 농사를 짓겠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취득 목적에 맞지 않으므로 농지취득 자격증명이 발급된 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농지법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았을 때 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1년 내에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처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 실장의 농지도 7년째 황무지 상태로 방치됐다. 이 밭 바로 옆 땅에서 9년째 양봉업을 하고 있는 박병덕(62)씨는 "땅 주인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는데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이 실장은 "농지법에 대해 잘 몰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답했다.
동문서답에도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주 재배 예정 작목은? 답(畓)' '영농거리는? 1'
동문서답인가 싶겠지만 정동균(61) 경기 양평군수 배우자 B씨와 인천시의회 조광휘(56) 의원의 농업경영계획서에 실제로 기재된 내용들이다.
B씨는 2017년 10월 양평군 양평읍 대흥리의 자신 소유 대지(107㎡)와 바로 옆에 있는 타인 소유 자투리 논(96㎡)을 교환했다. B씨는 농지취득 자격증명신청서에 취득 목적을 농업경영으로, 농경계획서에 노동력 확보 방안을 자기노동력으로, 영농 착수 시기를 2018년 5월로 기입했다. 그리고 주 재배 예정 작목란에는 엉뚱하게도 '답'이라고 기재했다. 이 논은 매입 1년 9개월 만인 2019년 7월 대지로 변경됐다.
한국일보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고위공직자 852명의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와 농업경영계획서. 확인 결과 질문에 맞지 않는 엉뚱한 답변을 적어내거나 거주지와 농지 소재지가 멀리 떨어져 영농 활동이 불가능해도 농지취득자격증명은 아무 제약 없이 그대로 발급됐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ilbo.com
B씨의 경우 농사를 짓겠다는 계획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 토지는 양평-횡성을 잇는 6번 국도와 양평읍 중앙로가 합쳐지는 구간에 위치한 긴 삼각형 모양으로, 두 도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땅이다. 한눈에 봐도 농사용 땅은 아니다.
B씨는 2014년에도 이곳의 밭 두 필지를 농지 전용 목적으로 매입해 2년 3개월 뒤 대지로 바꿨다. 2017년에 새로 취득한 농지가 이전에 사들인 두 필지와 바로 붙어 있는 땅이다. 토지거래 전문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 땅들은 서로 연결돼 있어야 가치가 생긴다"며 "토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농지를 추가로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B씨가 잇따라 구입해 농지에서 대지로 바꾼 땅들의 공시지가는 현재 2~4배 상승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이 땅은 양평의 척추 라인에 해당한다"며 "(양평에선 비싼 편에 속하는) 평당 300만원(㎡당 9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 양평군 양평읍 대흥리에 있는 정동군 양평군수 배우자 박씨 소유의 땅. 이 토지는 양평-횡성을 잇는 6번 국도와 양평읍 중앙로가 합쳐지는 구간에 위치한 긴 삼각형 모양이다. 박씨는 2017년 건물 바로 앞에 있는 논을 사며 농업경영을 하겠다고 썼으나 휴경 상태로 방치하다가 1년 9개월 뒤 대지로 변경했다. 양평=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정동균 군수는 공보팀을 통해 한국일보에 "옆 토지 소유주가 지속적으로 땅 교환을 요구해 수락했다. 농업경영을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여의치 않아 방치하다가 대지로 변경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광휘 의원 부부는 2011년 8월 경기 광주시 오포읍의 논 두 필지(7,924㎡)를 4억원에 매입했다. 이 논은 조 의원 부부를 포함 세 부부가 3분의 1씩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농지 매입을 위해 각각 2억원을 대출받았다. 땅을 살 당시에 조 의원의 거주지는 인천이었고, 농지 소재지인 오포읍과는 60㎞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농지 매입자들에게 위임장을 받아 대리인이 일괄 작성한농업경영계획서에는 영농거리가 황당하게도 '1'로 표기됐다. 서류를 신청하는 사람이나 심사하는 해당 관청 모두 농지취득 자격증명 발급 절차를 요식행위로 인식했던 셈이다.
조 의원은 "(농지 소재지인) 광주에서 멀지 않은 성남이 외가이고, 그쪽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농지도 외삼촌 부부와 외삼촌 지인 부부와 함께 산 것"이라고 해명했다. 허술한 농업경영계획서 작성에 대해선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농지법 위에 군림하는 그들
농업 전문가들은 고위공직자의 농지 취득에 대해선 일반 시민들보다 더 엄격한 관리감독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농지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법망을 피해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개발정보에 대한 접근도 일반인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사동천 홍익대 법대 교수(한국농업법학회 회장)는 "역사적 흐름이나 최근 행태를 보면 농지 투기는 공직자가 앞장섰고 이후 일반인들에게 정착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오세형 경실련 경제정책국 팀장도 "선출직은 비리 의혹이 있으면 투표로 심판할 수 있지만, 비선출직이 대부분인 고위공직자는 견제도 쉽지 않다"며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만큼 고위공직자의 농지법 위반과 투기 행위는 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참담하게 실패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동산 투기가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어설픈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근본대책 마련에 실기한 것과 부동산값을 잡겠다고 장담하면서도 도시재생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임대주택등록제를 확대하는 등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함께 추진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수요 억제 정책에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올해 2월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전환했는데, 이 또한 실패를 만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투기로 인해 수요가 급팽창해서 생긴 문제를 공급확대로 해결하려고 하니 해결될 리가 없고, 공급확대 자체가 새로운 투기수요를 촉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LH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신도시 정책을 재개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칼럼을 통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오류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를 다시 언급해 봐야 중언부언이 될 뿐이다. 이 글에서는 접근을 약간 달리해서,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배경에 모종의 프레임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밝히고자 한다.
모종의 프레임이란, 부동산 시장 참가자를 투기꾼과 실수요자로 나누고 부동산값 폭등은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 기인한다고 보는 인식 틀을 가리킨다. 2017년 6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집값 급등은 실수요자보다는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선언한 것을 필두로, 정부 여당 인사들은 4년 내내 투기꾼 타령을 계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데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 최근 들어 여권 인사들이 정책 실패를 반성하면서도 투기 세력에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그 프레임의 영향이다.
부동산값 폭등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프레임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할 뿐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악당'을 특정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한다. 그래서 정치인들도 정책을 펼칠 때나 정책 실패를 반성할 때 대중의 이런 성향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단시간에 대중을 설득하는 데 그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범 후 줄곧 이 프레임에 기대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온 문재인 정부는 바로 그것 때문에 역풍을 맞고 말았다. LH사태가 투기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국민 앞에 여지없이 드러냈으니 말이다. '범인'이 문재인 정부 공기업 안에 있었으므로 국민의 분노가 정부 여당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의 정신에 배치되는 임대계약을 맺었다는 뉴스는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갖다 부었다.
엉터리 프레임이 초래한 결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핀셋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이상 징후를 보이면 그 지역을 콕 집어서 규제지역으로 지정해 상대적으로 강한 투기 억제 장치를 가동했고, 이것저것 해보다 안 통해서 뒤늦게 착수한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도 다주택자와 규제지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4.7 재·보궐선거 후 논란이 일고 있는 보유세 부담 증가 문제도 집값 급등으로 인한 공시가격의 이례적 상승이 없었다면 규제지역에 부동산을 가진 극소수 다주택자에게 국한되었을 것이다. 한때 투기꾼을 잡겠다며 부동산 특별사법경찰, 자금출처 조사 등 유치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거론한 것을 보면 부동산 투기 광풍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 탓으로 돌리는 정책 프레임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던 것 같다.
작금의 부동산 투기는 '핀셋'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엄청난 '괴물' 같은 존재였다. 우습게도 문재인 정부는 4년 내내 핀셋을 들고 이 괴물을 잡겠다며 허둥댔다. 결과는 역대 최고의 부동산값 폭등과 역대 최다의 풍선 효과였다. 강남을 규제하니 투기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번지고, 마용성을 규제하니 '노도강'(노원·도봉·강북)으로 번지는 식이었다. 언론은 '금관구'(금천·관악·구로),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안시성'(안산·시흥·화성), '김부검'(김포·부천·검단) 등의 신조어로 이 현상을 풍자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몇 사람의 '악당'이 저지르는 악행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경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누구도 거역하기 어려운 소위 '수요-공급의 법칙'이 근본 원인인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이 원인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에 행동이 민첩한 데다 정보 접근이 쉬운 까닭에 이 법칙을 누구보다 먼저 이용하는 악당들이 더 눈에 띈다. 이 경우 악당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원인을 다뤄야만 비로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투기 광풍이 격화된 원인은 간단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시된 유동성 확대 정책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바람에 유동성 과잉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제도적 장치가 취약했던 까닭에 과잉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는 투기적 가수요의 팽창으로 이어졌다. 주택공급은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는데도 투기적 가수요가 급격히 팽창하는 바람에 집값은 폭등했다.
투기적 가수요의 대열에서 제일 앞줄에 선 수요자는 민첩한 전문 투기꾼들과 부동산 기득권층이었다. 그 뒤를 따른 것은 중산층이었으며, 2030세대가 맨 마지막에 합류했다. 요즘 2030세대가 몰두한다고 알려진 '영끌구매'나 '패닉바잉'은 투기 장세에서 흔히 나타나는 비이성적 과열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이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처럼 떼돈을 벌 가능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2010년대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무리해서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엉터리 프레임에 기대어 정책을 펼친 탓에 문재인 정부는 또 다른 역풍을 맞고 있다. 부동산값 상승과 공시가격 현실화로 새로 종부세 대상자가 된 1주택자들이 '나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는데 왜 투기꾼에게 물리는 종부세를 내라고 하느냐?'라고 항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종부세를 투기 세력에게 매기는 벌금처럼 취급했으니 이들의 항변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근거를 갖춘 항변이 표출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두가 엉터리 프레임을 선택한 정부 여당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을!
그렇다면 올바른 인식 틀은 어떤 내용이라야 할까? 부동산 시장 참가자를 투기꾼과 실수요자로 나누어 투기꾼을 징벌하는 식은 곤란하다. 누구든 경제여건에 따라 실수요자도 투기꾼도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부동산 시장에 정의의 여신이 있다면 보유주택 수, 소득, 연령 따위는 보지 않고 오로지 가격만으로 판단할 것이다. 시장의 모든 정보는 가격에 집약되므로 가격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다.
가격이 아닌 보유주택의 수와 유형에 따라 차등 과세한다든지, 소득과 연령을 기준으로 자꾸 예외를 만들면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 경제적 왜곡이 불가피하다(소득이 없는 노령층에 대한 배려는 과세이연(원활한 자금운용을 위해 자산을 팔 때까지 세금납부를 연기해주는 제도) 제도 등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
1주택자를 실수요자로 간주해 세 부담을 가볍게 하고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간주해 중과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는 형태로 투기가 행해지고, 시가 상응 과세의 원칙도 무너져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사회의 자원이 특정 지역의 고가주택 쪽에 과다 배분되는 비효율까지 초래된다.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이 심해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현재 정부 여당 인사들이 보유세를 개편한다고 하면서 바라보는 방향이 이쪽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엉터리 프레임이 '정책의 실패'만이 아니라 '정권의 실패'까지 초래하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나날이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모임인 '더민초'의 의원들이 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더민초 쓴소리 경청 20대에 듣는다' 간담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민주당이 '촛불집회' 대상이 됐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초선 의원들 모임인 '더민초'와 간담회를 가진 20대 청년들은 방송인 김어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윤미향 의원 사태 등을 거론하면서 그야말로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MZ세대는 '공정'의 가치를 주창해온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공정'의 가치를 훼손시킨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민초'는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더민초 쓴소리 경청 20대에게 듣는다'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최근 정치권에서 화두가 된 '젠더 갈등', '군가산점 문제', '조국 사태'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간담회에서 A씨는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석한 민주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윤미향, 조국 사태 등을 보며 20대가 엄청나게 실망했다. 만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니었으면 민주당이 촛불집회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직격했다.
또 다른 청년 B씨는 "조국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나, 안 했나"라며 "송영길 대표도 아들에게 의견을 듣던데 인턴 비서라도 잡고 물어보시라. 허위 인턴, 표창장으로 대학에 간 사람이 있는지"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그러면서 "일자리 만들겠다던 대통령은 어디 갔나"라며 "(취임 초 등장했던) 일자리 상황판은 행방이 묘연하다"고 꼬집었다.
김어준을 옹호하는 듯한 스탠스를 취한 정부여당에 겨냥해서는 "출연료, 편향성 문제에도 불구하고 김어준은 성역이냐"라고 따져묻기도 했다.
20대 남성 C씨는 '젠더 갈등'으로 촉발된 군가산점 문제를 거론하면서 "군가산점 담론은 젠더 갈등과 무관하다. 동시에 이런 사태가 만들어진 원인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며 "20대 남성들이 1년 6개월간 군 복무를 하면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이 재보선 참패 이후 20대 남성이 돌아선 것 때문에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 중 이름만 다른 군 가산점제를 내놓은 것을 보고 어리석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다"며 "사람들은 특혜가 아니라 공정을 원한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가야할 길이 멀구나 생각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20대 여성 D씨는 "20대 남성 표에 집중하면서 페미니즘 문제들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까지 제기하는 청년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청년의 목소리가 다시 묻히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다른 여성 E씨는 "박용진 의원의 남녀군사훈련, 군가산점제 재도입 등 주장에 실망했다. 재보선 (참패를) 만회하고 20대 남성들의 만족을 위해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성은 현재도 젠더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며 "여성을 군대에 보낸다고 해서 성평등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F씨는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20대 청년들은 혜택을 보지 못했는데 뺏기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넘어가는 과도기 때문"이라며 "건강한 사회라면 (정치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맞나"라고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반문하기도 했다.
화상회의로 함께한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제 아들, 딸도 91년생, 96년생"이라며 "민주당이 아빠의 심정으로 여러분들 아픔에 공감하고 뒷받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더민초' 고영인 운영위원장은 "청년들이 일자리, 반칙 없는 세상 등을 기대하고 요구했는데 우리가 제대로 응답을 못했고, 실패를 자인할 수밖에 없다"며 "다시 시작하기 위해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부터 출발하겠다"고 사과했다.
`자산어보`가 최종 예고편을 공개했다. 정약전과 창대는 서로의 내면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것을 예고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더팩트 | 유지훈 기자]
'자산어보'가 조선시대 후기 인물들을 통해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배급사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은 10일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의 최종 예고편을 공개했다.
작품은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 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 분)가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예고편은 흑산도를 배경으로 학자 정약전과 어부 창대가 조선 최초의 어류 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시작, 두 사람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로의 배움과 마음을 나누며 벗이 되어가던 정약전과 창대는 각자 꿈꿔왔던 세상이 달랐음을 깨닫는다.특히 "너 다른 생각하고 있구나"라고 묻는 정약전에 이어 "지도 사람대접 좀 받아야겄습니다"라며 울먹이는 창대는 점점 고조되는 두 사람 간의 갈등을 예고한다.
끄트머리에는 관아의 수탈로 고통받는 백성들과 이를 보며 혼란스러워하던 창대가 "임금도 필요 없는 세상에 누가 주인인들 어떻습니까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담겨 영화를 향한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자산어보'는 '사도' '동주' '박열' 등으로 역사 속 인물을 새롭게 조명해온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작품이다. 2019년 가을 촬영을 마치고 2020년 개봉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일정을 연기한 끝에 오는 3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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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시가 광역자치단체장 평가 조사에서 1위 자리로 복귀했다. 지난 4·7 재·보궐 선거 이후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각각 3·4위를 차지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3월 25~30일, 4월 23일~30일까지 전국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광역단체장 평가 조사 결과, 이 지사의 긍정평가가 62.5%로 지난 조사 대비 1.1%포인트 올랐다. 지난 1월 이후 석 달만에 다시 1위로 올랐다.
반면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난 조사보다 4.3%포인트 하락한 60.8%로 2위로 내려왔다.
4·7 재·보선에서 이겨 새로 취임한 오 시장과 박 시장은 각각 53.9%, 51.9%를 기록해 3·4위에 올랐다.
이철우 경북지사(50.0%), 권영진 대구시장(48.8%), 이용섭 광주시장(47.9%), 원희룡 제주지사(46.8%), 송하진 전북지사(46.7%), 양승조 충남지사(44.2%), 김경수 경남지사(44.1%)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는 3, 4월 두 달(3월은 3월25일~3월30일, 4월은 4월 23일~4월30일)에 걸쳐 이뤄졌다. 서울·부산시장의 경우 4월만 조사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0.8%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