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저소음 정찰드론 11월부터 운영…“수소에너지 최초 도입”

방위사업청, 수소 파워팩 드론 구매 계약
저소음 장점…90분 이상 비행 가능

입력 : 2021-05-17 11:18

  •  
  • 트위터로 퍼가기
  •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 구글로 퍼가기
  • 인쇄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수소 파워팩 드론은 바다 위에서도 90분 이상 장시간 은밀 감시·정찰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방위사업청 제공
    군 감시·정찰 임무에 친환경 수소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된 드론이 연내 도입된다. 드론은 공군이 사용하게 된다.

    방위사업청은 ‘수소 파워팩 드론’ 구매계약을 체결해 6개월간의 제조·검사과정을 거친 뒤 오는 11월부터 시범 운용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방사청은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과 8억3100만원에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방사청은 “민간의 최신기술인 수소에너지를 군에 최초로 도입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드론은 전자광학(EO)·적외선(IR) 카메라 기능 등을 탑재하고 90분 이상 비행이 가능하다. 또 가솔린 드론 대비 저소음·저진동이라는 장점이 있어 은밀한 감시·정찰 임무 수행에 적합하다는 게 방사청의 설명이다. 방사청은 “이번 시범사업이 마중물이 돼 앞으로 수소 인프라(저장·운송·충전 등) 구축과 대형 드론, 차량, 장갑차 등 다양한 무기체계 동력원으로 수소에너지를 확대 적용하는 등 새 국방 분야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수소 파워팩 드론이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을 촬영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수소에너지는 경제적·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미래 성장 동력이자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세계 각국이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10월 세계 최초로 수소 드론 상용화에 이어 지난해 7월 세계 최초 수소 전기 트럭 상용화에 성공했다. 지난 2월에는 수소연료전지 파워팩의 유럽 통합규격인증(CE)을 획득했다. 국내 수소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와 민간기업에서는 군에서도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마련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수소연료전지 활용 모빌리티(Mobility)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며 “일본·영국 등 기술 선도국과도 어깨를 나란히 해 기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 중”이라고 밝혔다.

    수소 파워팩 드론은 강 위에서도 90분 이상 장시간 은밀 감시·정찰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방위사업청 제공
    이번 드론 도입은 신속시범획득 사업에 따른 것이다. 전통적 무기체계 도입 방식은 전력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민간 신기술이 반영되기 어려웠다. 반면 신속시범획득 사업은 주기가 1년 내외로, 단기간 내 군에 도입해 운용해봄으로써 신규 수요 창출과 기존 무기체계에 발전된 성능을 반영할 수 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853452&code=61111111&sid1=pol&cp=nv2

 

[5·18 41주년] 41구·6구·8구… 계엄군의 고백… 그날, 암매장 진실 파헤쳐질까

 

 

 

 

 

 

 

0

입력 :2021-05-16 17:56ㅣ 수정 : 2021-05-17 03:35 

 

 

 

▲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 서울지국 소속 기자였던 노먼소프가 1980년 5월 27일 오전 촬영한 광주 현장에서 시민을 붙잡아 가는 계엄군의 모습.
광주 연합뉴스

“뼛조각이라도 찾아 묻어 주고 싶을 뿐입니다.”

5·18 행불자 가족인 김금희(76·여·전남 무안)씨는 “매년 이맘때면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다”면서 “가족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진실만은 꼭 알고 싶다”며 고통의 세월을 되새겼다.

1980년 5월 20일 김씨의 어머니(당시 57세)와 남동생(당시 23세), 또 다른 남동생(당시 14세), 자신의 아들(당시 5세) 등 4명이 모두 광주역 인근에서 실종됐다. 이들은 당시 의정부에 살고 있는 김씨의 언니 집에 가기 위해 무안 몽탄역에서 오전 10시 30분 열차를 타고 광주역으로 향했다. 광주역에서 내려 1㎞쯤 떨어진 광주종합터미널에서 의정부행 고속버스를 갈아탈 예정이었다.

10여일 후 의정부의 언니로부터 “왜 엄마가 안 올라오시냐”는 전화를 받은 이후 41년째 행방이 깜깜하다. 5월 20일은 3공수가 광주역에서 시민 시위대와 대치 중이었고, 같은 날 밤 인근 주택가에 무차별 사격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루 뒤인 21일은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상황으로 이어지는 등 시내는 시위 군중과 계엄군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때이다.

이 기간, 김씨 가족을 비롯 초등학교 1학년 이창현(당시 7세), 계엄군을 피해 조선대 뒷산으로 숨었던 고교 1학년 임옥환, 학동 삼거리에 나갔던 10세 문미숙 등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들처럼 5·18 이후 종적이 묘연한 수많은 실종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16일 광주시에 따르면 5·18을 전후해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이는 242명이다. 심사를 거쳐 관련자로 인정된 사람은 84명이다. 이 가운데 6명은 2002~2006년 ‘무명열사 묘지’ 11기를 파묘한 뒤 DNA 감식으로 신원이 밝혀졌다. 4세가량의 아이를 포함한 나머지 5명은 지금껏 무명열사 묘역에 묻혀 있다. 5·18 공식 행불자로 인정된 사람은 모두 78명이다.

행불자 70여명에 대한 행방 추적이 41년동안 이뤄졌으나 단 한 명의 흔적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수치상 약간의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암매장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묘지에서 발견된 40여구의 신원미상 유골 가운데 구멍이 뚫린 머리뼈.
광주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 조사위원회(조사위)는 최근 중간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최소 55구의 시신을 추적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각 광주교도소 일대 41구, 주남마을 6구, 송암동 8구 등이다. 국가기관이 행불자에 대해 구체적 수치를 적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위는 “이런 정황은 현장에서 암(가)매장을 지시·실행·목격했다는 계엄군 중 제3공수여단 51명의 제보와 진술 등을 기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주남마을에 주둔했던 제11공수여단 4개팀(1팀 3~4명)이 5·18 직후 광주에 다시 내려와 시체 수습에 참여했다는 증언도 확보했고, 이후 수년간 군과 정보기관의 주도로 ‘시체처리반’이 운용됐다는 의혹도 확인 중이라고 덧붙였다.

추가 사망자 증언이 집중된 곳은 광주 외곽의 북구 옛 광주교도소와 동구 주남마을, 남구 송암동 등지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계엄군의 광주 봉쇄 기간(5월 21~27일)에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광주교도소는 5·18 직후 계엄사령부가 ‘폭도들이 6차례에 걸쳐 교도소를 습격했고, 이 과정에서 시민 등 28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던 곳이다. 당시 교도소 안팎 야산 등지에서 11구의 시체가 가매장 또는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하지만 나머지 17명의 행방도 묘연하다. 조사위는 “광주교도소 동서쪽의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에 대해 최소 13차례 피격이 이뤄졌고,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사살했다는 복수의 장·사병 증언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계엄사 발표와 달리 피격 또는 교전 횟수가 2배 이상 차이 나는 만큼 사망자도 늘 것이란 추측이다.

광주~전남 화순 길목인 동구 지원동과 주남마을은 그동안 알려진 마이크로버스와 구급차 피격 사건 이외에 또 다른 승용차와 구급차 등 최소 5대의 차량이 피격됐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광주와 나주를 잇는 남구 송암동 일대는 1980년 5월 24일 오후 1시 30분쯤 주둔지 교체 과정에서 계엄군끼리 오인 사격으로 장교와 사병 등 9명이 숨진 곳이다. 계엄군은 이 교전 직후 인근 마을 청년 등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3곳에서만 최소 55구의 사망자에 대한 추가 제보가 이뤄지면서 추적 조사가 진행 중이다.

앞서 광주시는 2000~2009년 ‘행불자 소재찾기사실조사위’를 꾸려 242가족 440여명의 혈액을 유전자 분석용으로 채취했다. 암매장 제보지 64곳 중 옛 광주 군통합병원 담장 밑·건설현장 등 신빙성이 있는 9곳을 발굴해 유골 150여점과 유류품 등을 발굴했으나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5·18기념재단도 2017년 옛 광주교도소 안팎·광주~화순 간 너릿재 구간 등 11곳에서 암매장 발굴을 시도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계엄군의 ‘시체처리반 운용’ 진술 등을 토대로, 사망자(실종자) 일부가 헬기·군 수송기 등에 실려 제3의 장소로 옮겨진 뒤 매장 또는 소각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전국 화장장을 전수조사하고 증언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다 보면 언젠가 행불자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2021-05-17 8면

여권, 조희연 사건 ‘공수처 1호 지정’에 부글부글

  •  김희원 기자
  •  승인 2021.05.14 12:02
  •  댓글 0
  • 기사공유하기
  • 프린트
  • 메일보내기
  • 글씨키우기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특별시교육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조희연 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의혹을 첫 사건으로 정했다./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여권은 지난 1월 21일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호 사건’으로 진보 진영 인사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별채용 의혹을 선택하자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문재인 정권의 호위 기구’로 전락할 것이라며 출범 자체를 반대해왔다. 일각에서는 공수처 수사대상 1호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공수처는 지난 10일 조 교육감의 해직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 사건에 대해 ‘2021년 공제 1호’ 사건 번호를 부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여권은 “황당하고 어이 없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BBS 라디오에서 “공수처 설치의 이유가 검찰의 견제 기구로서의 공수처라는 이상이 있다”며 “그런 점들을 비추어 봤을 때 이번에 공수처 1호 사건을 조희연 교육감 사건으로 선택한 것은 너무 편한 선택이었다고 보이고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공수처는 중대범죄도 아니며  보통 사람의 정의감에도 반하는 ‘진보 교육감의 해직교사 채용의 건’에 대해 별스럽게  인지 수사를 한다고 눈과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했다”며 “공수처의 칼날이 정작 향해야 할 곳은 검사가 검사를 덮은 엄청난 죄, 뭉개기 한 죄를 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을 지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KBS 라디오에서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며 “공수처를 만들려고 했던 취지는 권력형 비리 사건이 은폐되려고 하거나 검찰이나 경찰이 제식구를 감싸게 하려고 하거나 정치적 논란이 계속 일어서 수사의 공정성이나 중립성 문제가 제기되거나 이런 경우에 공수처 같은 조직을 통해서 수사하자고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희연 교육감 사건은 이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공수처장께서 공수처 발족의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공수처 1호 사건으로 지정하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감사원이 지난달 23일 공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조 교육감은 2018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직 교사 5명을 특정해 관련 부서에 특별채용을 검토, 추진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조 교육감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공적 가치 실현에 높은 점수를 받은 대상자를 채용한 것”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Tag

#민주당#공수처#조희연#1호#사건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틸트로터

 

 

[새 연재 |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2)]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

‘헛짓’에 빠진 아이들의 꿈 미래는 그곳에 있다

jmagazine.joins.com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3)] 코로나19가 반복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3)] 코로나19가 반복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

언택트 혁명 시작 됐는데 여전히 인터넷은 나쁘다고요?

jmagazine.joins.com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4)]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회사 생활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4)]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슬기로운 회사 생활

“신을 데려올 수 없다면 데이터를 믿어라”

jmagazine.joins.com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7)] 창업에 성공하는 실전 노하우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7)] 창업에 성공하는 실전 노하우

고객의 마음을 열어야 디지털 세상 열린다

jmagazine.joins.com

 

 

 

 

지금은 문명 대전환의 시대! '다른 세상'이 온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바꿔야 할 9가지│[Full 버전] 교보문고XtvN 인사이트 2020 명강의Big10

 

교보문고 X tvN 인사이트 '2020 명강의 Big 10' EP.5 최재붕 편

 

문명의 대전환기를 관통하는 ‘포노’들의 새로운 기준,

아홉 개의 포노 사피엔스 코드를 읽어라! 도서상세보기➡

https://bit.ly/3oFcm1g 최고의 저자 10인과 함께해 온 교보문고의 '명강의 Big 10'

2020년, tvN 인사이트와 함께하는 언택트 강연 시리즈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8)] 포노사피엔스 시대에 바꿔야 할 9가지 관념(1) 

바꾸지 못한다면 버려라 

글자크기글자크게글자작게|프린트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경제 생태계 무너지고 디지털로 자본 대이동
인터넷 공간에서 자라난 MZ세대의 상상력이야말로 신문명의 본질

 

지금까지 총 7편의 연재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포노 사피엔스 문명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생각해봐야 할 다양한 관점과 성공사례들을 다뤄보았다. 불행하게도(나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과는 별개로) 연초에 예측했던 현상들은 더욱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며 세계 시장을 혼돈과 혁명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 혁명시대 생존전략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다급한 현안이 돼버렸다. 그동안 언급했듯이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도전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들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그중에 제일 근본적인 것은 역시 ‘내 마음부터 바꾸는 일’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본질은 ‘문명의 교체’다. 문명이 바뀌면 인류의 살아가는 방식, 학습 방법, 일자리, 필요한 능력 등 거의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한다.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학습하려면 우선 마음의 표준부터 바꿔야 한다. 사실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자기가 옳다고 믿고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두껍게 쌓인 생각의 껍데기를 깨는 일은 고통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차근차근 정말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세세히 챙기며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디지털 문명 전환을 위해 마음속 점검해야 할 아홉 가지 코드를 정리하고 올해 코로나 사태를 반영해 [체인지 9]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출간 후 일어났던 변화들까지 다시 챙겨가며 ‘마음속 바꿔야 할 9가지’ 이야기를 본 칼럼의 독자들과 함께 되짚어보려 한다. 3회에 걸쳐 나눌 첫째 이야기의 주제는 인류 개인의 변화다.

코드 0 | 혁명의 본질 - 변화의 출발점은 마음이다

 

우리는 이 시대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 부른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인류 스스로 디지털 문명을 선택하고 이동한 것이다. 스마트폰의 탄생 이후 문명의 트랜스포메이션이 급격한 속도로 일어나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5G·자율주행 등 디지털 기술이 미래를 바꿀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혁명은 문명의 교체현상이다.

그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BTS다. BTS는 얼마 전 빌보드 차트 핫100에서 1, 2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역사적으로 이를 기록한 건 오직 5팀밖에 없으며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처음 기록한 아티스트는 비틀스다. BTS가 왜 21세기 비틀스로 불리는지 데이터가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다. 2017년 AMA(American Music Award) 소셜 아티스트 부문 1위를 차지한 이래 그들이 세계 최고의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음악평론가들은 대중음악의 세력교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 1위에 오른 ‘savage love’는 한글 가사가 포함된 노래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다. 새로운 기록은 이뿐 아니다. 최근 개최된 온라인 콘서트에서도 유료 관객 99만3000명, 티켓 총금액 491억원을 기록하며 언택트 시대의 새로운 대중음악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BTS를 키운 건 팬클럽 아미(ARMY)의 강력한 팬덤이다. 지금까지 대중음악 세계를 지배하던 자본과 방송의 권력이 그 자리를 팬덤과 SNS에 내주고 말았다.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모든 룰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BTS는 이 시대 혁명의 상징이다.

실제로 방송이 갖고 있던 권력은 많이 쇠락했다. 지상파 TV의 광고 매출은 10년 사이 절반가량 줄었고, 우리나라 국민 70% 이상이 유튜브, 넷플릭스, OTT 등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시대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전 국민의 70% 정도가 스마트폰 뱅킹을 사용하는 시대가 오면서 모든 은행이 지점을 줄이느라 분주하다. 출범 2년 된 카카오뱅크는 지점 하나 없이 어느새 1250만 고객을 모으고 흑자 전환했다. 디지털 뱅킹 표준시대가 소리 없이 시작된 셈이다.

유통도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급격하게 증가하던 온라인 쇼핑 매출은 코로나를 만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며 유통의 표준을 바꾸고 있다. 미국에서는 시어스, 니만 마커스, JC페니 등 100년 넘은 백화점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오프라인 유통 중심의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30%가량 문을 닫았다. 반면 아마존은 20만 명 이상을 신규 고용하면서 쏟아지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오프라인에 의존하던 영세 소상공인들이 하루 1100곳씩 문을 닫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온라인 쇼핑몰은 올해 상반기에만 40% 이상 성장하며 새로운 유통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진행 중이던 세계 시장에 코로나19의 등장은 이를 가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염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인류를 덮치면서 그동안 디지털 문명을 거부해왔던 기성세대도 강제로 온라인 소비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데이터는 인류의 표준 문명 변화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코로나19,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팬데믹 쇼크, 이제 인류는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함께 찾아온 애프터 코로나 시대는 이제 소비의 방식도, 교육의 방식도, 일상의 생활도 모두 달라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바라보는 인간·사회·기업·일자리 등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 출발은 마음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늘 하던 일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기고, 늘 하던 방식을 온라인으로 바꾸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변신에 적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룰이 바뀐 것이다. 룰이 바뀌었다면 내용도 바뀌어야 하고 준비하는 생각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 문명을 바라보는 마음의 표준이 디지털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 내 마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거기가 출발점이다.

코드 1 | 트랜스포메이션 - 모든 부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한다

 

이 시대는 포노 사피엔스(Phono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신인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PEW리서치센터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은 무려 94%로 압도적 세계 1위다. 2위 이스라엘이 88%, 미국이 6위로 81%, 일본이 13위로 66%다. 연구소에서 직접 27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무작위 설문을 통해 작성한 결과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개발도상국들은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이 50% 이하인 걸 보면 선진국이냐 아니냐의 척도는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표준 인류는 스마트폰을 잘 쓰는 포노 사피엔스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창조하고 이끌어가는 기업들이 현재 세계 1~5위의 기업들이다. 더구나 이들은 팬데믹 쇼크 이후 주가가 40%가량 상승하며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대표 기업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2020년 9월 5일 시가총액 기준 세계 5대 기업은 애플(2461조원), 아마존(2009조원), MS(1950조원), 구글(1320조원), 페이스북(986조원) 순이며, 이들의 시가총액 합계는 6526조원으로 우리나라 코스피, 코스닥에 상장된 모든 기업 시총 합계의 3배를 넘는다. 이미 세계의 투자자본은 이들 기업을 미래 성장가치가 크다고 선택한 것이다. 전 세계 청년들 사이에서 주식투자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그들의 선택도 다르지 않다. 모든 부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 기업들로 이동하고 있다.

1경원이 넘는 돈은 경제 생태계를 바꾸는 힘으로 작동한다. 실제로 택시·호텔·금융·유통·방송 등 현대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산업의 표준이 지난 10년간 급격한 속도로 변화했다. 택시를 대체하는 우버, 호텔을 대체하는 에어비앤비, 방송을 대체하는 유튜브·넷플릭스, 은행을 대체하는 스마트폰 뱅킹 등 변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인류는 그야말로 혁명적 문명의 전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이 인류 스스로 디지털 플랫폼으로 생활공간을 옮기며 일어나는 현상이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강제로 이동 중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72%가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본다고 대답하고, 70%가 은행 업무는 스마트폰으로 처리한다고 대답하는 사회라면 이제 디지털 플랫폼에서 생활하는 인류, 포노 사피엔스가 표준이라고 생각하고 학습·소비·업무 등 모든 일상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나의 미래를 준비하려면 디지털 플랫폼으로 내 생각의 공간을 옮겨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출발점이다.

코드 2 | 메타인지(METACOGNITION) - 검색하는 인류 생각의 지평이 다르다

 

내 생각의 공간이 디지털 문명에 접속하면 일단 메타인지가 달라진다. 메타인지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능력으로,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관찰하는 자아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의 일곱 번째 큰 도시는?’이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모른다’고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이것이 메타인지다. 그런데 검색에 익숙한 인류는 ‘검색해보면 찾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지식검색에 익숙하고 검색지식을 활용하는 데 훈련된 사람들은 ‘아는 것’의 지평이 크게 확대된다.

검색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가 넓고 깊다면 그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창조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을 뿐 아니라 ‘지식공유’라는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만들었다. 이제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오픈소스를 활용하고 자신이 개발한 코드는 공유하는 것을 거의 상식으로 생각한다.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의 소스코드도 80%를 즉각 공개한 것이 좋은 사례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도 앞다퉈 강의 내용을 공개 중이다. MOOC 사이트에는 세계적 석학의 강의들이 가득하다. 특히 최근 2년 사이 빅데이터, 인공지능 분야와 관련된 유튜브 내 지식자료는 어떤 대학의 강의 콘텐트보다도 훌륭하다. 바야흐로 지식의 공유시대, 지식의 검색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지식 공유 문화는 학습의 성과를 다른 차원으로 옮겨버린다. 교육(education)은 여전히 정해진 내용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데 집중하지만 스스로 탐구하는 학습(learning)은 과거와 다른 차원으로 발전했다. 영재발굴단 프로그램에서 만난 디지털만렙 초등학생들은 학교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에서 코딩을 배웠고 매우 높은 수준의 프로그래밍을 스스로 해내고 있었다. 유튜브에는 ‘6살 꼬마가 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이라는 영상이 나올 만큼 코딩학습은 쉬워졌다. 동시에 이들처럼 검색과 공유지식의 활용에 능한 인류는 새로운 메타인지를 갖게 됐다. 자기 지식의 부족함을 실시간으로 채울 수 있는 무한한 학습 공간이 열린 셈이다. 그리고 이들이 새로운 생각으로 신문명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이 열어가는 세상이 바로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 ‘플랫폼 경제’다.

검색과 공유로 학습한 인류는 상상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이 보여준 결과물만 봐도 그걸 알 수 있다. 우리 정부에서는 매일 아침 10시 확진자 수와 발생지역, 동선을 보도자료 형태, 즉 텍스트로 발표한다. 이것이 기성세대 문명의 표준이다. 반면 이 자료를 본 26세 대학생 이동훈씨는 ‘이렇게 해서는 내가 오늘 가는 목적지에 확진자가 있는지 알 수가 없겠다’고 생각해 지도앱 위에 확진자 발생 장소와 동선을 그리는 서비스, ‘코로나맵’을 만들어냈다. 분명 같은 데이터인데 생각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더구나 개발에 걸린 기간은 불과 이틀이다. 오픈소스를 이용해 SNS에 축적된 지식을 활용한 것이다.

코드 3 | 상상력(IMAGINATION) - 학습 방식 달라야 상상의 실행력 달라진다

 

이렇게 상상력도 다르고 실행능력도 다르다. 최근에는 2000년생 홍준서 군이 코로나라이브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매일 아침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보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인데, 그가 주목한 것은 놀랍게도 ‘재난문자’였다. 5000만 국민이 매일 재난문자를 받고 있었는데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 가기를 기다리면서 개인 프로젝트로 재미 삼아 만든 것이 이 정도 수준이다. 보도자료가 미래의 표준이 될지, 아니면 코로나맵, 코로나라이브가 미래 표준이 될지의 답은 자명하다. 이미 국민은 코로나 맵과 라이브를 통해 안전을 챙기고 있다. 우리가 생각의 표준을 바꿔야 학습 방식도 바꿀 수 있고 나의 미래도, 역량도 바꿀 수 있다.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주역은 밀레니얼(1980년 이후 태생)세대와 Z세대(1995년 이후 태생)다. 소위 MZ세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이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1980년 이후 태생들은 어린 시절 싸이월드에서 미니미도 만들어보고 BGM도 깔고 집도 꾸미고 도토리도 좀 써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인터넷 문명이 어떤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체득하고 있다. 반면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는 인터넷을 업무 관련해서 배웠을 뿐 생활 속에서 즐기고 놀던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디지털 문명의 창조에는 MZ세대가 유리하다.

특히 1995년 이후 태생들은 10대 때 스마트폰이 출시된 세대다. 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이 거의 신체의 일부처럼 자리 잡게 된다. 그들이 창조하는 세상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치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이동훈, 홍준서 군 외에도 암호화폐계의 새로운 황태자가 된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세계 최고의 AI회사 오픈에이아이에 33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취업해 주목받은 김태훈 군 등 슬기로운 Z세대는 이제 너무 많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문명은 어렵고 버겁다. 그래서 우리는 비판하기를 더 좋아한다. 배우기보다 비판이 쉬워서다. 실제로 디지털 문명으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중독, SNS중독, 비인간적인 디지털사회 등 부작용에만 집중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든 슬기로운 인류는 존재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메타인지와 상상력이 다른 신인류가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새로운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MZ세대가 창조한 세계가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다. 메타버스는 상상, 가상을 상징하는 단어 meta와 우주를 상징하는 단어 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의 현실세계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싸이월드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메타버스를 상상의 세계에서 이제 현실세계로 옮겨놓고 있다. BTS가 만든 온라인 콘서트는 VR, AR, XR의 신기술이 총동원돼 마치 한 편의 가상현실 게임 같았다. 그리고 심지어 많은 관객이 그 무대에 온라인으로 출연하며 함께 즐겼다. 이것은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콘서트 형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세상에 두 개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던 MZ세대는 이제 현실세계와 메타버스의 합체를 시도 중이다. 비트코인에 기반을 둔 무화폐경제, 캠퍼스 없는 대학, 출근이 필요 없는 회사, 매장이 필요 없는 소셜커머스, 점원 없는 편의점 등 수많은 새로운 실험과 도전이 세계 경제를 흔드는 중이다. 데이터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이 정해진 미래이며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신문명에 내 마음을 맞춰야 한다.

코드 4 | 회복탄력성(RESILIENCE) - 실패는 일상, 다시 일어설 힘을 디지털 문명에서 배운다

 

안 그래도 인생에는 실패가 많지만, 특히 혁명의 시기에 우리는 더욱 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어려움이 찾아왔다면 일단 어느 정도 실패한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거기서 어떻게 다시 힘을 내 도전하느냐다. 마냥 ‘코로나는 언제 끝날까’, ‘비대면 세상 너무 불편하다’고 한탄만 하고 있으면 결코 다시 일어날 힘을 만들 수 없다. 문제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류에게 실패는 일상다반사다. 그래서 새롭게 도전하는 힘이 필요하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실패를 딛고 성공한 사람의 특성을 분석해 실패를 딛고 도전하는 힘,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정의하고 있다.

김주환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하게 언급된다. 실패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 첫째, 자기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둘째, 공감과 소통을 기반으로 만드는 대인관계력이 매우 좋으며, 셋째, 모든 것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고력과 감사하는 마음이 남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문명교체 시기를 맞아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자기감정을 통제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한 다음 미래를 향한 재도전을 위해 디지털 문명으로 표준을 재설정해야 한다. 랜선회의, 단톡방 대화법 등 온라인 기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디지털 문명의 단점은 지워버리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라이프의 장점을 찾아내 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거 언제 끝나려나’라는 한탄이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코드 5 | 팬덤(FANDOM) - 권력은 소비자의 손끝에서 나온다

디지털 문명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하는 코드가 바로 팬덤이다. BTS는 아미를 통해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가 됐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자면 ‘소비자 권력 시대’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자본과 방송이 아니라 소비자가 스스로 SNS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팬덤경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고객이 열광하며 스스로 팬이 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드는 시대, 대한민국의 벤처가 만든 상어가족(baby shark)이라는 아기용 뮤직비디오가 67억 건이라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시대, 애플의 블루투스 이어폰이 14조원어치나 팔려나가는 시대, 이 현상에 성공 비결이 숨어 있다.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는 아홉 개 중 가장 중요한 코드가 바로 팬덤이다. 팬덤 창조의 비결에 대해서는 정말 할 얘기가 많다. 궁금하다면 다음 호를 기대하시라.

※ 최재붕 - 성균관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을 겸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융합을 기반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알려져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

좋아요(2) 콘텐트 구매안내 목록보기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9)]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바꿔야 할 9가지 관념(2) 

팬덤의 마음 얻는 자가 시장을 갖는다 

글자크기글자크게글자작게|프린트

온라인 소셜 커머스 시장의 대세는 소비자가 주도권 쥔 ‘팬덤 경제’
소비자에게 ‘좋은 경험’ 선사하는 게 브랜드 영향력 증대의 관건

 

지난 호에서 새로운 디지털 문명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바꿔야 할 9가지 중 4가지를 짚어 보았다. 첫 번째 코드는 내 마음의 디지털 대전환(트랜스포메이션)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이제 표준 인류는 포노 사피엔스(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다. 포노 사피엔스는 인지 능력이 다르다. 검색하는 인류는 지식의 범위가 넓고 깊다.

그래서 메타인지(코드2)와 상상력(코드3)이 달라지고 학습 방법이나 문제해결능력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 슬기로운 포노사피엔스 인재들이 디지털 문명을 창조하고 리드하는 중이다. 디지털 혁명은 사실 인지혁명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지식공유 문명을 경험한 인류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인식의 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네 번째 코드는 회복탄력성(코드4)이다. 내가 지금 코로나로 인해 어렵고 힘들다면 꼭 필요한 것이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힘, 회복탄력성이다. 냉정하게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공감과 소통을 통해 대인관계를 확장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생긴다는 회복탄력성도 이제는 디지털 문명을 기반으로 다시 준비해야 한다. 비대면 미팅도 즐겁게 하고 SNS를 통한 소통도 기꺼이 배워야 한다.

코로나로 인한 디지털 대전환에 불평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장점을 배워야 한다. ‘도대체 코로나가 언제 끝나나’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잘나가는 곳들은 도대체 무엇을 잘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디지털 회복탄력성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성공하는 비결에 대해 알아보자.

나는 BTS를 보면 항상 디지털 대전환의 법칙을 읽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BTS는 자본과 방송이라는 절대 권력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팬덤과 SNS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가 됐다. 이것을 일반 시장에 적용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자본도 일천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좋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상품이나 콘텐트를 개발했다. 자본가에 투자를 호소하고 방송국에도 부탁해 보았지만 외면당하고 만다. 그래서 자기 상품 홍보를 위해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한 사람 두 사람 상품을 경험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작은 팬클럽이 생겼다. 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상품은 꼭 써봐야 한다’며 자발적 마케터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열풍이 동남아로, 중국으로, 중동으로, 유럽으로 급기야는 태평양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번지면서 세계 최고의 상품이 되고 말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바로 BTS다. 이런 현상을 ‘팬덤 경제’라고도 이야기한다. 팬덤 경제는 이제 거의 모든 산업분야로 급속하게 확산 중이다.

코드 5. 팬덤(FANDOM) | 권력은 소비자의 손끝에서 나온다

 

팬덤 경제는 ‘소비자 권력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절대 권력이라던 자본과 방송의 힘은 줄어들고 소비자 스스로가 SNS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음악시장이다. 자크 아탈리의 이론대로 음악 소비가 가장 빠르게 변화했다. 그리고 그 폭풍이 바로 방송시장으로 밀어닥쳤다.

이제 전 세계 방송의 최고 인기 플랫폼은 유튜브다. 프로들이 만드는 콘텐트의 최고 플랫폼은 넷플릭스다. 모두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나라 국민 28%만이 저녁 7시 이후 TV를 보고 있고, 무려 57%가 유튜브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방송의 권력이 유튜브로, 즉 파워 유튜버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권력자가 된 강력한 파워 유튜버도 방송할 때마다 시청자에게 애걸하는 것이 있다. 바로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권력의 근원이 ‘소비자의 선택’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손끝의 선택이 떠나면 권력은 사라진다. 방송은 사회가 약속해서 만들어낸 시스템 권력이지만, 유튜버는 소비자의 선택이 만들어낸 권력이다. 그래서 빠르게 성장하고 또한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모든 권력은 소비자의 손끝에서 나온다. 이 근원적인 권력의 이동은 미디어 연계 생태계의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방송사들도 이제는 고객의 팬덤을 얻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EBS는 펭수를 핵심 캐릭터로 삼아 팬덤을 확보 중이고 인기 예능 PD 나영석, 김태호도 유튜브 콜라보 방송에 도전 중이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시작된 것이다.

외국에서 뜨는 ‘꼬마 유튜버’, 한국에선 비판도

 

우리는 새로운 현상을 만나면 배우려고 하기보다 비판하는데 익숙하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여섯 살 꼬마 유튜버 보람이가 한 달에 30억씩 돈을 벌어 서울에 100억짜리 빌딩을 샀다는 보도가 나가자 모든 언론이 이런 현상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노동의 가치를 왜곡시킨다며 방송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고 아이를 팔아 돈을 버는 부모를 심층 취재한 시사방송도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어른이 여섯 살 꼬마의 방송을 난도질하듯 폭주했다. 아이들에게 이상한 것을 먹이는 방송이나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방송은 마땅히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배우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는 점이다. 데이터를 통해 보람이가 만든 현상을 제대로 분석해보자.

보람튜브의 구독자 수는 현재 2700만 명이다. 세계 최고의 키즈 유튜버 미국의 라이언에 비해 10만 명이 모자라는 키즈 유튜버계의 2인자다. 이 중 2600만 명이 해외 구독자다. 한국 어린이가 한국어로 방송하는데 해외에서 열광하며 시청 중이라는 얘기다. 해외 마케팅 한번 없이 이런 팬덤이 형성됐다.

5억6000만 조회수를 기록한 ‘뽀로로 떡볶이 먹기 놀이’가 만든 현상도 분석해보자. 뽀로로 떡볶이를 개발한 식품회사 사장님이 수출할 경우 기존 방식이라면 전시회에 나가 많은 바이어를 만나고 상담을 통해 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광고비를 지불해야 한다. 5억6000만 명에게 광고를 노출시키려면 적어도 수백억 원의 광고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본이 없이는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방식이 바뀌어버렸다. 보람이가 먹방을 한 것만으로 전 세계 아이들에게 상품이 노출됐고, 이를 본 아이들은 부모를 조르기 시작한다. 소비 수요가 발생하자 바이어들은 역으로 식품회사로 연락해 수출을 의뢰한다. 큰 자본 없이도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기회를 잡은 것이다. BTS의 팬덤효과가 방송시장에서도 여지없이 입증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광고산업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2019년 TV 광고시장의 매출은 15%가 줄었고 라디오, 신문, 잡지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모바일 광고 시장은 17%, PC 광고시장은 11% 성장하며 약진 중이다. 이 변화는 일자리의 지형을 바꾼다. 기존 광고 전문가는 줄여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소셜 광고 전문가의 수요는 폭증한다. 이미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미디어산업과 광고산업의 변화는 다시 유통산업으로 번진다. TV홈쇼핑 회사의 매출도 TV 방송을 통한 판매보다 모바일 방송을 통한 매출이 이미 더 커졌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라방(라이브 방송)’이라는 새로운 소셜 커머스 형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방식은 이미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새로운 유통 형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왕홍’ 마켓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중국의 왕홍마켓은 올해 16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소셜 커머스는 무려 516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야말로 중국에서는 소셜 유통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11월 11일 열린 ‘광군제’ 이벤트는 무려 83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작년 45조원의 기록을 가볍게 넘어섰다. 특이한 것은 전체 매출의 60% 이상이 바로 라이브 방송에 의해 판매됐다는 것이다.

팬덤 등에 업고 소셜 커머스 시장 급성장

 

왕홍마켓과 광군제는 전형적인 팬덤 경제를 보여주는 판매방식이다. 이러한 소셜 커머스를 무대로 성장한 우리나라 기업들도 즐비하다. 소셜 커머스의 원조라고 불리는 ‘스타일난다’의 김소희 대표는 동대문시장을 기반으로 창업한 지 13년 만에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 1600억원 넘는 매출을 기록하더니 2018년 6000억원의 거액을 받고 로레알에 매각하며 신화적인 성공을 이뤄냈다. AHC도 광군제와 왕홍마켓을 기반으로 급격하게 회사를 키워 유니레버에 3조40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JM솔루션은 2019년 5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1조5000억원 가치 기업으로 성장하더니 올해 광군제에서는 7000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중국 왕홍 신바와 ‘라방’을 통해 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또한 한국인과 결혼한 중국 며느리 컨셉의 유명 왕홍 ‘따루루’와는 틱톡 라이브 무대를 활용해 13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소셜 커머스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코로나가 무색한 신시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팬덤을 일으켜 급성장한 닥터자르트는 에스티로더에 2조원을 받고 매각한 후 아시아 시장의 선봉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올해 광군제에서만 작년 대비 두 배에 이르는 48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도 전 년 대비 174%의 매출 신장을 만들었고 최근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모레퍼시픽도 매출이 100% 성장하며 소셜커머스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화장품 산업은 이제 소셜커머스가 메인 유통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소셜커머스는 팬덤이 핵심이다.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무신사다. 2019년 거래금액 9000억원을 기록하며 2조2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무신사는 코로나 사태로 오히려 더욱 성장하며 상반기 매출 200%, 거래금액 60% 신장을 기록했다. 올해 목표 거래금액 1조4000억원을 무사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기업은 고객의 좋은 경험이 팬덤을 일으켜 성장한 기업이다. 이들이 집중했던 소셜 커머스는 코로나 이후에 오히려 성장세를 보이며 오프라인 중심의 판매기업들과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을 그래서 이들 기업에서 배워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화장품 제조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코스맥스와 콜마도 소셜커머스에 대한 대응책을 강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거대 화장품 기업들에 OEM 또는 ODM 방식으로 납품해 왔다면 강력한 인플루언서를 발굴해 이들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는 소셜커머스 방식의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전통제조업까지 변화가 밀려왔다는 것이다.

팬덤 경제는 음악시장에서 발원해 미디어시장, 광고시장, 유통시장을 차례로 휩쓸며 이제 제조업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 기업의 가치는 팬덤의 크기다. 이를 위해 기업의 모든 시스템을 리셋해야 한다.

코드 6. 다양성(DIVERSITY) |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장이고, 미래 가능성이다

 

팬덤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형성되고 있다. 가장 전통적이고 진입이 어려운 주류시장에서 급성장을 이루고 있는 지평 생막걸리가 대표적이다. 지평주조는 1925년 시작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조회사 중 하나다. 그런데 2010년 매출이 2억원으로 추락하며 폐업 위기에 놓였다. 이때 김기환 대표가 회사를 맡아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막걸리 사업을 펼치겠다며 도전을 시작한다. 그는 SNS 마케팅을 강화하기 이전에 100년 된 막걸리의 맛부터 바꿨다. 100년 동안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에 시큼한 맛이라고 믿어 왔는데 고객 테이스팅을 통해 5%에 달콤한 맛을 선호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과감하게 표준을 바꿔버렸다.

그러고서 SNS 마케팅을 강화했다. 그는 팬덤은 고객의 좋은 경험이 만드는 것이지 SNS 마케팅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객의 좋은 경험은 SNS를 타고 번지면서 지평 생막걸리 매출을 10년 만에 100배 늘어난 200억원으로 끌어 올렸다. 지평 생막걸리의 성공비결은 고객데이터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술도가의 장인이 막걸리를 정의하는 게 아니라 고객의 데이터가 막걸리의 표준을 정하는 시대를 그는 정확히 간파했던 것이다. 고객 중심경영이 아니라 ‘고객집착경영’이라는 제프 베조스의 경영 전략을 실천해 성공한 사례로 삼을 수 있다.

팬덤을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돼온 영역이 바로 트로트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고, 몇몇 가수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아이돌은 물론 래퍼에게도 크게 밀리며 다시는 열기를 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런데 [미스트롯]을 통해 팬덤의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미스터트롯]을 통해 마침내 폭발적인 팬덤을 만들어냈다. 팬덤의 비결은 시청자에게 권력을 쥐여준 것이다. 시청자의 투표로 순위를 결정한다고 하자 재능있는 가수가 대거 참여했다. 이를 통해 중학생 가수도, ‘트바로티’도 탄생할 수 있었다. 트로트 신인가수는 원로가수나 기획사의 인맥으로 결정된다는 오랜 전통을 깨고 권력이 소비자에게 양도되자 좋은 콘텐트가 양산되고 이는 곧 폭발적 팬덤으로 이어진 것이다. 팬덤을 만드는 데 불가능한 영역은 없다는 것을 트로트가 보여줬다.

공예품도 예외는 아니다. 김동한 백패커 대표는 잘 만들어진 공예품에 주목했다. 누구도 플랫폼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목하지 않은 시장에 도전했다. 그는 철저하게 좋은 공예품만 선별했다. 팬덤의 핵심이 고객의 ‘좋은 경험’임을 정확히 인지한 것이다. 그가 만든 아이디어스 플랫폼에서 물건을 구매한 고객들은 만족도가 높았고 그 리뷰가 날개를 달아 누적거래 액 3000억원을 돌파하는 대표 플랫폼으로 성장하게 했다.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중고거래 시장의 판도를 바꾼 당근마켓도 대표적인 팬덤 성공 사례다. 중고나라와 번개장터로 양분된 중고거래 시장에서 당근마켓은 룰을 바꿔버렸다. 거래범위를 평균 6㎞로 나누고 동네마다 보다 쉽게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장터를 만들었다. 고객의 심리를 세심하게 살펴 집에 있는 물건을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게 해주자 경험한 고객의 심리변화가 일어났다. 불필요한 물건 하나를 들고 나가 현금을 받게 되면 사람의 마음에는 물욕이 생긴다. 이것을 한번 경험하고 나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내다 팔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남편의 롤렉스시계를, 아들의 명품 카디건을 헐값에 내다 파는웃지 못할 사고가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당근마켓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오래 머무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뒤를 잇는 대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거래 수수료도 받지 않는 이 플랫폼은 동네 가게들을 적은 비용으로 광고해주며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경쟁력을 인정받아 투자도 늘고 있으며 해외 진출도 앞두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임방송 8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둔 유튜버 대도서관도 있고, 곤충방송으로 유명해진 정브르도 있다. 개, 고양이 유튜버가 되어 크게 성공한 덕후도 즐비하다. 팬덤만 만들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시장이고 모든 것이 미래를 열어주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원래 다양하다. DNA가 같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동안 만날 수 없던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삼삼오오 플랫폼을 통해 모여들고 그래서 아주 작은 영역에서도 매우 강력한 팬덤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코드 7. 실력(ABILITY) | 포노 사피엔스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한번 팬덤이 형성되면 그 범위와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 최근 스마트스터디가 만든 유아용 동영상 ‘아기상어(baby shark)’의 유튜브 조회수가 71억 회를 돌파하며 ‘데스파시토’(Despacito, 11월 현재 70억5800만건)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유튜브 업로드 4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대한민국의 작은 벤처에서 만든 이 동영상은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팬덤을 일으키더니 동남아 전체로 순식간에 번졌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엄청난 인기몰이를 2년째 지속하고 있다. 2500개 이상의 제품과 로열티 계약을 맺은 베이비 샤크는 지난해 스마트스터디의 매출 1000억 시대를 견인했다. 스마트스터디는 올해 금융감독원 평가에서 기업가치 8100억원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12번째 유니콘(10억 달러 이상의 벤처기업)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네이버 웹툰의 성장도 비약적이다. 만화의 종주국이던 일본이 웹툰 시장에서는 실패했지만 네이버 웹툰은 세계 100개국 방문자 수 1위를 기록하며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네이버 웹툰의 성공비결은 재능있는 작가들의 성장이다. 오로지 고객의 조회수로만 랭킹을 결정한다는 공정경쟁 시스템이 도입되자 수많은 인재가 모여들어 새로운 팬덤을 만드는 킬러콘텐트를 만들어냈다. 신인류의 공감은 국가와 문화적 경계가 없다. 국내에서 강력한 팬덤을 만든 웹툰들은 여지없이 동남아로 급격히 퍼지며 많은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플랫폼에 접속한 사람들은 계속 다양한 콘텐트에 빠져들며 신세계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글로벌 팬덤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것이 팬덤 경제의 공식이다.

이제는 우리 전통국악까지 팬덤 경제에 가세했다. 이날치가 만들어내는 판소리 ‘범 내려온다’ 등을 활용한 한국 관광 홍보 영상의 합산 조회수는 3억을 돌파하며 k-콘텐트 열풍에 기름을 붓고 있다. 넷플릭스에서의 K드라마 인기는 언급조차 필요치 않다. 오죽하면 올해 일본의 유행어 선정 후보에 ‘사랑의 불시착’과 ‘제4차 한류’가 나왔겠는가. 이 모든 강력한 팬덤의 근원은 바로 좋은 경험을 만드는 실력이다. 고객에 집중하며 데이터로부터 교훈을 얻고 끊임없이 이를 반영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도전하는 집착이 팬덤을 태산처럼 쌓아 올리는 것이다. 실력은 이제 학벌과 스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팬덤을 만드는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 바로 진정한 실력이다. 그리고 포노 사피엔스 문명은 진정한 실력을 원하고 있다.

이제 남은 두 개의 코드, 디지털 문명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장 근원적인 마음의 자산이 나올 차례다. 다음 호도 기대하시라.

※ 최재붕 - 성균관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을 겸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융합을 기반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알려져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

좋아요(2) 콘텐트 구매안내 목록보기

부동산 '영끌族', '깡통주택' 리스크 직격탄

페이스북 트위터공유하기

최종수정 2021.05.14 15:26 기사입력 2021.05.14 11:31

댓글2

뉴스듣기

인쇄하기스크랩RSS

폰트축소폰트확대

 

과도하게 유입된 자산 거품 빠지면 '깡통주택' 속출 지적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의 모습./김현민 기자 kimhyun81@

    •  

주식"큰돈"벌고 싶다면 "3가지 원칙" 꼭 지켜라! "화제"

    •  
    •  

백만원 주식해 3년만에 "40억" 번 男 알고보니…

  •  

썝蹂몃낫湲 븘씠肄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김동표 기자] 미국발(發) 금리 인상 우려가 확산하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내 집을 매수한 이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자칫 집값이 하락할 경우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깡통주택’이 속출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이 가속화될 경우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한계치까지 끌어쓴 아파트 ‘영끌족’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지난해 패닉바잉 열풍 속에 대출을 끼고 주택을 매수한 젊은 층은 당장 급증하는 이자 비용 부담에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2019년 분석한 금리 상승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대출원금 3억원·만기 30년으로 대출했을 때 월 상환액은 금리가 3.5%에서 4.5%로 1%포인트 상승시 134만7000원에서 151만 5000원으로 16만8000원이 증가한다. 연간으로는 200만원 이상 부담이 느는 셈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금리 인상시 이자 부담이 높아지면 경매로 나오는 물건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 "영끌은 주택담보대출만이 아니라 금리가 높은 편인 신용대출 등도 포함되는데 금리인상 시 20·30 계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2월말 기준 국내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593조원으로 이중 변동금리(혼합형 변동금리 잔액 포함) 비율은 68.1%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총 404조원이며, 1년 전보다 53조원 늘어난 규모다. 주담대 잔액의 약 30%를 차지하는 20·30대 차주의 변동금리 비중도 68.3%에 이르는데다 특히 20대는 변동금리 비율이 72.6%나 됐다. 청년들의 주담대 상당 규모가 금리인상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단기간에 급등한 부동산 가격도 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집값이 하락할 경우다. 저금리기조에 이어 정부의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이 순항하게 될 경우 부동산시장에 몰렸던 자금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과도하게 유입된 자산의 거품이 걷히며 영끌족의 ‘깡통주택’ 리스크가 커질 수 있어서다.

 

이미 주택시장의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집값 상투론’에 대한 주장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지역의 4분기 기준 주택구입부담지수(HAI)는 역대 최고치인 153.4를 기록하며 전국 평균치보다 100포인트 이상 높았다. 이는 과거 주택시장 침체기 진입 시점 이전인 2007~2008년 수준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가계 부채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금리 인상 시 대출을 받아서 영끌한 계층의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면서 "특히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계층은 2030이고, 지역별로는 서울보다 수도권 외곽, 지방이 금리인상의 영향을 먼저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김학의 수사' 전방위 압박에 결국 못 버틴 안양지청 지휘부

입력 2021.05.15 04:30

 

 

 11  1

이성윤·윤대진이 직접 안양지청에 반복 연락
이규원 검사 출금 조치 "대검·법무부 합의" 주장
"왜 문제 삼느냐" "왜 수사하느냐" 질책성 연락
이현철 안양지청장 "더 이상 수사 못하겠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차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수원지검 안양지청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 수사’를 막기 위한 대검과 법무부의 전방위적 압박 정황이 드러났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안양지청 지휘라인에 연락해 “왜 수사를 하느냐”며 질책했다. 이현철 당시 안양지청장은 압박이 거세지자 “더 이상 못하겠다”며 수사를 중단시켰다.

이규원 검사 수사하자 시작된 압박

14일 이성윤 지검장의 공소장 등에 따르면, 안양지청은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관련 의혹에 대해 법무부가 출입국본부 직원들을 수사 의뢰한 사건에 대해 2019년 4월 11일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안양지청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된 이규원 검사가 김 전 차관 출금 과정에서 존재하지 않는 내사번호를 사용한 정황을 발견했다. 안양지청은 6월 19일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검사 비위 혐의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이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문건이 6월 20일 대검 반부패부에 보고되자,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이던 이 지검장은 친분이 있던 배용원 안양지청 차장검사에게 전화해 “김학의 전 차관 출금 조치는 법무부와 대검이 협의한 사안”이라며 이규원 검사의 출금 조치에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지검장은 이현철 지청장과 인연이 있는 김형근 대검 수사지휘과장을 통해 “안양지청 차원에서 해결해 달라. 이 보고는 안 받은 것으로 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대검에선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는 의미였다.

법무부도 가세 "왜 이규원 문제 삼느냐"

이현철 안양지청장은 비슷한 시기 법무부에서도 압박을 받았다. 윤대진 당시 검찰국장은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 지청장에게 전화해 “왜 이규원 검사를 문제 삼느냐. 이규원 검사가 곧 유학 가는데 문제없도록 해달라”고 했다. 이 메시지는 이규원 검사가 이광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에게 부탁한 내용으로, 조국 민정수석을 거쳐 윤대진 국장에게 전달된 것이었다. 이현철 지청장은 그러자 이규원 검사 관련 수사는 중단하고, 출입국본부 직원들 수사만 진행하라고 안양지청 수사 검사에게 지시했다.

2019년 6월 25일 윤대진 국장은 이 지청장에게 재차 연락했다. 출입국본부 직원들 수사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나까지 조사하겠다는 거냐”며 윤 국장에게 경위 파악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윤대진 국장은 이현철 지청장에게 “왜 출입국 관계자들을 수사하나. 장관이 화내서 겨우 막았다”며 질책했다. 비슷한 시기 이성윤 대검 반부패부장도 나섰다. 그는 안양지청에 출입국본부 직원들 수사 경위서와 조사 과정이 담긴 영상녹화 자료를 요구했다.

두 손 든 안양지청 지휘부 직권남용 가능성도

대검과 법무부 고위인사들의 계속되는 압박에 안양지청 지휘라인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이현철 지청장은 2019년 7월 2일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을 살펴보던 안양지청 수사팀에 “대검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라는 취지로 독촉하니 더는 못 하겠다”며 수사를 그만할 것을 지시했다. 배용원 안양지청 차장검사도 같은 취지의 지시를 내렸고, 대검에 보고되는 수사결과 보고서에 수사팀 의견과 다르게 ‘이규원 검사 수사 진행 계획이 없다’는 문구를 넣도록 했다.

이성윤 지검장을 기소했던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형사3부장)은 지난 12일 이 지검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 윤대진 당시 검찰국장과 이현철 지청장, 배용원 차장검사를 공수처에 이첩했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이들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면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당시 안양지청 지휘라인은 압박을 받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수사검사들에게 지침을 어겨 수사를 못 하게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9 2 

공유

 

갑자기 한국을 언급한 조던 피터슨...!

'꼬리표 없는' 예산, 업무추진비 분석해 보니

황일송

2021년 04월 21일 10시 50분

 

글자 크기  

2378억 원.

올해 정부, 국회, 법원 등 국가기구에 배정된 특수활동비 예산이다. 특수활동비는 일명 꼬리표 없는 예산으로 불린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얼마를 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수활동비는 구체적인 사용 내역과 영수증 증빙 없이 사용액만 국회에 보고한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마다 부정 사용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특수활동비가 가장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국가정보원에는 공식 배정된 특수활동비가 0원이라는 점이다. 

나라 살림의 2019년 결산 내역을 보면 모두 17개 기관이 2471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 국방부(1058억 원)와 경찰청(776억 원), 법무부 및 검찰청( 217억 원)은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안보실(96억 원)보다 더 많은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 

이어 대통령 경호처(84억 원), 해양경찰청(82억 원), 과학기술정통부(44억 원), 국세청(34억 원), 감사원(23억 원), 통일부(21억 원), 국회(12억 원),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7억 원, 원), 외교부(7억 원), 관세청(4억 원) 등의 순이었다. 

업무추진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정부

1698억 원.

이른바 ‘묻지마 예산’인 특수활동비 못지 않게 사용 내역이 베일에 가려진 예산은 또 있다. 예전엔 ‘판공비’로 불렸던 업무추진비다. 올해 배정된 업무추진비 예산은 1698억 원. 2019년 결산액 기준 1739억 원보다 소폭 줄었다. 2019년 당시 국방부가 가장 많은 483억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고, 외교부(169억 원)와 대법원(135억 원), 국회(111억 원), 경찰청(86억 원) 법무부와 검찰청(77억 원),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71억 원), 행정안전부 (46억 원), 중앙선관위(34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2019 결산 기준 업무추진비 지출액을 확인한 결과 국방부가 국가 전체 업무추진비 예산의 3분의 1 이상을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업무추진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019년 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2019 정부 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예산과 조직 법령 등 핵심 정책 과정에 국민 참여를 확대하고, 관심 정보를 알기 쉽고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업무추진비 등 예산 집행의 중점 공개분야를 선정, 상세 공개 기준을 표준화하고 일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상은 속 빈 강정, 부적절한 지출 여부 검증 불가

8억 6048만 원.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020년 한 해 동안 업무추진비로 쓴 국민의 세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4인 가구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622만 원)의 138배, 최저 임금으로 따지면 국민 10만 명의 한 시간 시급이다. 정세균 총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위해 업무추진비를 사용했을까?

뉴스타파는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 홈페이지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정 전 총리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들여다봤다. 

국무총리비서실이 공개한 정세균 전 총리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는 현장방문 위로격려 등 4가지 항목의 총 사용 금액만 간단히 공개돼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국민들은 정 총리가 사용한 업무추진비의 세부 내역을 알 수 없게 돼 있다. 총리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은 1년에 딱 2번 공개된다. 상반기 사용내역을 모아 8월말에 공개하고, 하반기 사용액은 이듬해 2월말 공개된다.  

세부 사용 내역에 대한 정보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정 전 총리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목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사용했는지 구체적인 집행 내역은 모두 비공개 돼 있다. 

정책조정 및 현안대책 관련 회의, 민생 현장방문 관련자 위로 격려, 민의수렴 및 국정홍보를 위한 간담회, 내외빈 초청 등 관련행사. 이 네가지 항목으로 나눠 정 전 총리가 사용한 업무추진비 총액을 뭉뚱그려 놓았을 뿐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해 1년간 6050만 원을 업무추진비로 사용했다. 업무추진비 사용액이 많은 10개 부처 장차관급 공무원의 평균 사용액 3829만 원보다 1.58배 더 썼다. 1건당 사용액은 평균 38만 원으로 2배 많았다.

 하지만 대검찰청이 공개한 자료에는 윤 전 총장이 언제, 어디서, 몇 명을 만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세부 정보가 빠져 있어 부적절한 지출 여부를 검증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국무총리를 맡은 고건 전 총리는 자신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공개했다. 고건 총리는 또 공개 요청이 있을 경우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밝힌 지출품의서와 영수증 등 증빙서류 일체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훈령 제442호를 제정, 행정정보 공개의 확대를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12년 이 훈령을 폐지했다. 명목상으로는 사문화된 총리 훈령을 공공기관 정보 공개에 관한 관련법에 통합했다는 것.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지출품의서와 영수증 등 업무추진비 지출 내역을 검증할 수 있는 원문공개 조항이 사라졌다. 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전달한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9년 2월 ‘정부 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통해 장차관에서 실국장까지 업무추진비 공개 대상을 확대하고 공개 기준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제도 도입에는 1년이 넘게 걸렸다. 강화된 공개 기준이 시행된 것은 2020년 3월. 

 업무추진비 공개 기준에 사용일자와 시간, 장소를 추가하고, 공개 대상에 기존 장차관과 청장, 기관장외에 본부 실장 및 국장급 공무원을 포함하도록 했다. 공개 주기도 기관 자율에서 매월 또는 분기로 강화됐다. 

사용내역 공개된 업무추진비, 전체의 8.5% 불과

국민의 알권리는 얼마나 충족됐을까?

 뉴스타파가 정부 부처와 위원회 48곳의 업무추진비 사용실태를 전수 조사한 결과, 공직사회 코로나 19 방역 대책이 강화된 지난해 11월 23일부터 연말까지 국장급 이상 공무원 698명이 모두 6,355 차례 총 9억 4천여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1년간 매달 동일한 금액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실국장 이상 고위공무원들의 업무추진비 사용액은 113억 원 안팎.  2019년 결산 기준 정부 각 부처가 사용한 업무추진비 1332억 원의 8.5%에 불과하다. 

 강화된 정보공개 기준도 유명무실했다. 업무추진비 사용인원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공무원은 127명. 경찰청 소속이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행정안전부(23명), 검찰청(22명), 국가보훈처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각 9명) 등의 순이다.

 업무추진비 사용 시간을 누락한 공무원은 310명,  사용장소를 밝히지 않은 공무원은 48명이었다. 

 이른바 힘있는 기관들은 정보공개 확대 시행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국무조정실 및 국무총리비서실, 감사원 등이 대표적이다. 또 청 단위 기관으로는 유일하게 대검찰청이 수혜를 입었다. 

 대검찰청은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에 수사 업무 관련 사항 등이 포함돼 있어, 이를 공개할 경우 직무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해명했다. 

 몇 시에, 어떤 장소에서, 몇 명과 함께,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는지를 공개하는 게 직무 수행에 차질을 준다는 검찰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해양경찰청은 국실장 이상 고위 공무원들의 업무추진비 세부 내역을 모두 공개하고 있고, 경찰청 간부들 역시 사용인원과 장소를 대부분 공개하고 있다. 

정보공개 확대해 업무추진비 집행 투명성 확보해야

 업무추진비 사용 시간과 장소, 사용인원 수를 공개하는 것은 업무추진비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뉴스타파는 지난 2월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분석, 강 청장이 서울 용산의 한 한정식집에서 기자들에게 1인당 6만 원이 넘는 음식과 술을 접대해 김영란법을 위반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공정위 국장들의 김영란법 위반 의혹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의 코로나 19 방역수칙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예산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예산 집행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빠짐없이 공개해야 한다.

제작진

데이터 김강민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태그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문재인정세균윤석렬뉴스타파고건

뉴스타파는 권력과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광고나 협찬 없이 오직 후원회원들의 회비로만 제작됩니다. 월 1만원 후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후원하기제보하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