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토지자산 가치는 4배가량이다. 한국의 토지 전체를 팔면 GDP의 4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토지자산 통계를 제공하는 주요 11개 국가 중 최고다. 호주가 3배가량, 일본은 이 비율이 2.5배가량이다.
한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 헛말이 아니다. 부동산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왜 자영업자는 가게를 꾸려가기 힘든가. 경기 침체와 과다 경쟁 못잖게 자영업주의 목을 죄는 건 높은 임대료다. 임대료는 왜 올라가는가.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왜 기업들은 그 많은 이익금을 쟁여두거나, 기껏 부동산에만 투자하는가. 부동산 투자가 확실한 수익을 손쉽게 올릴 길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부동산 투자에 목을 매는데 고용이, 설비투자가 활발히 일어날 리 만무하다.
부동산이 좋다는 건 이제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장래 희망이 건물주'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어느새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지난해 10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 직장가입자 전체 현황자료'를 보면, 미성년자 244명이 이미 부동산 임대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부동산 소득은 불로소득이다. 뜻 그대로 땅만 소유하고 있으면,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절로 소득이 생긴다. 예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힘을 가진 자는 누구나 땅을 취한 까닭이다. 가장 힘 센 자가 가장 큰 땅을 가졌다. 왕조 시대, 땅은 왕의 소유물이었다. 모든 국토의 주인이 왕 하나였다. 조선 시대 왕이 왕족과 고위 관료에게 하사한 과전의 소유주도 엄밀히 말해 왕이었다.
힘센 자라면 누구나 무한정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그래서 땅을 가진 자는 가만히 앉아서도 편한 삶을 누리고, 땅이 없는 자는 빌린 땅에서 힘겹게 산다면 사회는 무너진다. 노동의 결과물을 모두 지주와 나라에 빼앗기고 산적이 된 옛 왕조 시대 백성들의 이야기는 어느 나라 역사에서나 반복된다. 옛 이야기일 뿐일까. 농민을 자영업주, 세입자로 치환하고 지주를 건물주로 바꾸면 바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공화국은 지주의 등장을 막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땅을 독점하는 자가 늘어나면 공화의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경실련, 토지정의시민연대 등 시민 사회 단체에서 실천적 지식인으로 오랜 기간 활동한 전강수 교수는 신간 <부동산공화국 경제사>(여문책 펴냄)에서 이 같은 정책을 가장 잘 편 모범 국가로 한국을 꼽는다. 정확히는 해방 직후 농지개혁에 성공한 한국이다.
일본인 지주가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고 해방의 봄이 왔다. 한국 정부는 지주들의 땅을 매입해 농민들에게 그 땅을 나눠줬다. 1950년 2월 지주의 토지 몰수 보상액 150%와 토지 구입 농민 상환액 150%를 확정한 농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한국은 순식간에 지주의 나라에서 소농의 나라로 변화했다. 이 개혁으로 지주층이 소멸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이 천지가 개벽한 개혁에 따라 1960년 무렵 한국의 토지분배 지니계수는 0.3 수준으로, 분석 대상 26개국 중 토지분배 수준이 가장 평등했다. 심지어 중국보다 한국의 지니계수가 낮았다. 민주정이 들어선 후 토지개혁이 이처럼 성공한 대표적 국가가 한국과 일본, 대만이다. 실패한 대표적 국가는 베네수엘라, 페루,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등이었다. 전 교수는 한국의 기적적 고도 성장 배경에 토지 개혁이 있다고 강조했다. 토지개혁으로 인해 누구나 노력하면 노력의 수확물을 누릴 수 있고, 이를 교육에 재투자해 더 나은 삶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기에 한국인의 유별난 교육열과 성공에의 열망이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는 의미다.
그랬던 한국이 왜 지금은 부동산 공화국이 되었나. 경실련이 지난 2017년 3월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64년에서 2015년 사이 한국의 땅값은 6702조 원 올랐는데 이 중 상위 1%가 가치의 38.1%(2551조 원)를, 상위 10%는 82.8%(5546조 원)를 독점했다.
이 같은 격변의 원인 제공자로 전 교수는 박정희를 꼽는다. 그가 건설 재벌과 손잡고 선분양제 등의 대기업 친화적 제도를 만들어 강남을 개발해, 전국적으로 토지 투기 열풍이 일어나 땅이 평등한 나라였던 한국이 투기 공화국으로 변했다는 진단이다. 한 번 만들어진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전 교수는 종합부동산세 폐지, DTI, LTV 규제 완화 등으로 일관한 이명박근혜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정부와 전두환 정권 등도 토지 투기에 의존해왔다고 비판했다.
대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어떤 대안이 나와야 불로소득에 목을 맨 투기 공화국이 다시 건전한 자본주의 국가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대목이다. 전 교수는 강력한 토지 보유세를 도입해 투기의 근본 원인을 무력화하고, 다시 땅을 더 평등하게 나눠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빨갱이론'을 전면에서 반박하는 이 책은 헨리 조지의 뜻을 빌려 '부동산 투기야말로 자본주의의 적'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한국 부동산 정책 변화사를 대중이 읽게 쉽게 정리한 부동산 경제 역사서로 볼 수 있으나, 실은 '토지보유세 도입의 실패사'로도 읽을 수 있다. 멀게는 조봉암에서부터 가까이는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토지 보유세를 도입하려 한 여러 사람의 개혁 의지가 땅을 가진 기득권층의 반발에 무너진 역사를 정리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실, 토지 기득권층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자들의 역사가 한국의 현대사라고도 읽을 수 있을 법한 대목이다.
부동산 투기와의 싸움을 기준으로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재평가한 부분도 참고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승만 신화와 박정희 신화를 통렬히 비판한 지점도 이 책에서 확인해 볼 부분이다. 저자가 머리말과 에필로그에서 역대 정부가 땅값을 잡는데 실패한 이유를 지적한 대목은 현 정부도 깊이 새겨봄직하다. 당장의 투기붐을 가라앉히는 진통제 투여만으로는 부동산 투기의 근본 원인을 잡지 못했으며, 이 원인 해결을 위해서는 토지보유세 도입만이 정답이라는 지적이다.
"많은 사람이 부동산 시장의 상태나 부동산 정책의 효과를 이야기할 때 부동산 가격을 기준으로 잡는다. (...) 하지만 부동산값의 움직임은 병의 증세, 즉 통증과 같다. (...)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경제의사'가 나서서 강한 '정책 진통제'를 투여해 집값을 잡겠노라고 약속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제발 그렇게 해서라도 이 고통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실제로 그리되면 그에게 감사해야 할까? 대다수 국민이 부동산 정책을 대할 때 그렇게 한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그는 진통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가 오로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자기 병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사회적 통증을 유발하는 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것은 많은 사람을 투기로 내모는 특수한 초과이익, 즉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 부동산보유세, 특히 토지보유세는 조세로서도 매우 우수할 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효과도 있다. 그것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개인이 사적으로 취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따라서 불로소득으로 말미암은 불평등은 크게 완화된다. 세수 증가분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게 되면 불평등 완화 효과는 더 커진다. 또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도 자연히 사라진다. 부동산 거품의 형성과 붕괴 때문에 금융 시장이 불안정해지는 현상도 자취를 감춘다.
경제주체들이 지대추구에서 관심을 돌려 땀 흘려 일해서 정당한 부를 추구하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누적되는 사내유보금으로 기업이 땅 투기에 나서는 일도 사라지고, 일반 국민이 집값 상승의 이익을 노려 무리하게 대출받는 일도 없어진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다시 한 번 공평한 성장을 구가하게 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 <부동산공화국 경제사>(전강수 지음) ⓒ여문책